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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평점 :
한동안 미지의 세계인 노스캐롤라이나 해안 습지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어린 카야가 사람들로부터 버려져 오롯이 혼자인 채 습지가 주는 양식과 야생이 공급한 정신으로 주위를 맴돌다 떠나가는 사람들로 받은 상처를 치료하는 법을 스스로 깨닫고 성장하기까지 먹먹해진 가슴을 부여잡고 늘 그녀 곁에 머물러 있었다.
실제 생물학 박사인 작가가 70이 넘어 쓴 첫 픽션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소설은 지루할 틈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그녀만의 언어로 된 아름다운 묘사와 따뜻한 믿음이 함께하는 사랑 이야기에 끊임없이 추측하게 만드는 법정 스릴러까지 그 어떤 것도 방해할 틈도 안주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런 글을 읽을 수 있음에 너무 좋다가도 한동안 여기서 헤어 나올 수 없을 걸 알기에 힘이 든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캐릭터 ‘테이트’, 카야에게 글과 습지를 가르쳐 결국 자신만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된 테이트, 만일 테이트가 없었다면 생존할 수야 있었겠지만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 자신의 삶을 지켜나가는 카야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카야에게 삶과 사랑의 동의어였던 테이트도 카야에게 깊은 상처를 준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의 테이트도 충분히 이해가 가기에 그렇게밖에 흘러갈 수 없는 운명을 원망할 수밖에...
테이트를 보면서 20여 년 전 일이 떠올랐다. 큰아이가 4살 때쯤? 놀이터에서 아이와 같이 있는데 5-6살 정도 되는 남자아이가 같이 놀고 싶었는지 딸에게 다가와 조심하라면서 손도 잡아주고 그네에서 시소까지 장소를 옮겨가며 아이가 혹시 넘어지지 않는지 살펴 가면서 말도 어찌나 다정하게 하는지 선한 아이의 본성을 보는 게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 저 아이는 커서도 저런 심성을 가지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 누구 집 아이인지 궁금하기도 했었다.
체이스를 연상케하는 기억은, 어느 날 마트 실내 놀이터에 아이가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떤 또래 남자아이가 딸이 타고 있는 자동차로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자동차 문을 열어젖히고는 자기가 타겠다며 아이를 끌어 잡아 내리고 있었는데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작가는 인간은 누구나 내면에 테이트와 체이스가 공존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체이스보다는 테이트가 더 자주 나오기를,..
문득, 그 역시 다른 무지한 주민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오로지 습지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카야에게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깨달음이 덮쳐와 부끄러움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테이트의 아버지 스커퍼가 각성하는 이 순간도 마음에 드는 장면.
아무튼, 이 소설 굉장하다.
"한참 후에야 카야가 말했다. "이제 원하는 게 뭐야. 테이트?" "어떤 식으로든 네가, 나를 용서해 주는 거," 테이트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기다렸다.
카야는 자기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왜 상처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피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용서의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 걸까? 카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외로움을 아는 이가 있다면 달뿐이었다.
예측 가능한 올챙이들의 순환고리와 반딧불이의 춤 속으로 돌아온 카야는 언어가 없는 야생의 세계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한창 냇물을 건너는데 벌써 발밑에서 허망하게 쑥 빠져버리는 징검돌처럼 누구도 못 믿을 세상에서 자연만큼은 한결같았다.
잠은 카야을 피해 다녔다. 언저리에 주저앉았다가 팩 달아났다. 카야의 마음이 불현듯 수면의 벽을 따라 낙하해 찰나의 행복을 누리면 카야의 몸이 금세 부르르 떨며 그녀를 깨웠다.
카야는 이렇게 수월하게 자신을 받아주는 고양이에게 감동해 눈을 감았다. 갈망으로 점철된 삶에 찾아온 심오한 휴식의 시간이었다.
카야는 고양이가 잠자는 모습을 지켜보다 따라서 잠이 들었다. 더는 화들짝 소스라쳐 깨어나지 않고, 마침내 아무것도 없이 텅 빈 평온 속에 표류했다.
이번에도 테이트는 자기가 돌봐주겠다고 말하지 않고, 카야가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도록 격려해 주고 있다. 카야의 삶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그러다가 사라져버렸다.
문득, 그 역시 다른 무지한 주민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오로지 습지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카야에게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깨달음이 덮쳐와 부끄러움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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