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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아트북 : 크리스토퍼 놀란의 폭발적인 원자력 시대 스릴러
제이다 유안 지음, 김민성 옮김, 크리스토퍼 놀란 서문 / 아르누보 / 2023년 10월
평점 :
자기가 생각한 것들에 대해
상대방과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감독과,
이런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질문할 줄 알고
책으로 남길 수 있는 저자가 있다는 사실이
책장을 넘기며 행복하게 만든다.
오펜하이머라는 영화 자체는,
내겐 테넷이란 영화로 망한거 같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흡사 재기해 돌아온 작품 같았다,
물론 이번 작품 이전에도 몇 편의 영화는 있었지만.
이전의 몇몇 너무 난해하거나 실험적인 영화들이 아닌
어느 정도 보통의 관객들을 위한
상호 소통되는 수준의 느낌을 주는 영화라 반가웠고,
그러면서도 그만이 가진 특유의
세상보는 눈은 너무 관객에 맞추지 않고
잘 담겨있기에 좋을 수 밖에 없던 작품이 됐다.
에밀리 블런트, 맷 데이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주인공으로 나오는 여러 배우들이 조연으로 출연한 점은,
단순히 이색적이기 보다 오히려
이질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조연진이 화려했던 이 영화.
그런 느낌들에 대해서도 이 책에선
감독의 시선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감독 스스로도 그런 점들을 짧게 언급하면서
유명 배우들의 조연출연 느낌 각각을 언급하기 보단
이 정도의 배우들이 조연으로 주연을 받치면서
자신을 덜 돋보이게 하는 동시에
극흐름은 살려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완급력을 가진 자체가,
이들이 여기선 분명 조연이지만
주연으로써 활동하는 내공처럼 설명해 주었다.
아트북인 이 책은
영화의 한장면을 그대로 사진으로 담은 책이 아닌,
촬영 중 존재했던 세트들의 제작과정이나
관객이 필름으로만 봤던 앵글들의
밖에서 보는 시점으로 그 장면들을 담아,
또다른 영화 한편의 탄생처럼
오펜하이머의 장면들 속 촬영현장들을 담고 있다.
여기에, 주연배우 뿐만이 아닌
중요 인물들을 맡은 배우들 각각의 프로필들과
왜 그들이 그 배역을 맡게 됐는지도 설명해 놓았다.
그러니, 그냥 사진 위주로 흝어보고
사진첩처럼만 읽게 되는 책이 아닌,
글로 담긴 내용들의 풍부함에
오히려 놀랄 수 있는 구성의 책일 수 있다.
또 이 바닥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이란 감독이 가진
공인된 파워를 느낄 수 있는 부분들도 많았는데,
배우 캐스팅을 위해
리딩 테스트라던지 오디션 등을 보는 과정은
오펜하이머의 배우들을 뽑을 때도 있었는데,
한번도 그런 자리에 참석하지 않아 왔다는 한 배우는
사비를 들여 테스트를 받으러 오고
리딩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왔다는 얘기나,
어떤 영화인지도 모르고
그냥 감독이 같이하고 싶어한다는 그 말 한마디에
모두가 그냥 오케이 사인을 냈다는 에피소드를 들을 땐,
배우로써의 소신이었을지 모를 어떤 고집이나 일관성도
자기 일생에 다시 없을 작품에
초이스 되고 싶은 경쟁라인 앞의 한 지원자로써
마치 사회 초년생처럼 적극적이게 될 수 있는 그 분위기는,
한국사회가 아닌 미국 영화계 안에서
그런 걸 느껴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크리스토퍼 놀란을 책 속에선 크리스라고 부르는데,
크리스가 배우를 선택하고 바라보는 시점은
영화 한편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가상세상 속 인물들을 단순 창조하는게 아니라
실제 연기할 사람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퍼즐맞추기 식으로
배역 이외의 요소로 중요하게 간주하며,
역할 자체만 잘 해내면 되는 식이 아닌
그 사람 본연의 성격과 품성이
역할에 자연스럽게 배어나 올 수 있는 배우를 찾고 있었다.
매우 깊게 관찰하고
실제를 가상에 반영하려 한다는 걸 알게 되던 이야기들.
단순 영화를 만드는 감독같지 않았고,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이나
군대를 지휘하는 통솔자 같기도 했다.
자신과 같은 곳을 바라봐야
같이 하는 작업에 시너지가 나온다는 마인드.
꼭 필요한 인재를 뽑을 줄 아는
심미안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에겐
연출만큼 중요한 요소란 것도 깨달았다.
영화를 DVD나 블루레이로 사는 사람들은
본편 자체도 보려 사지만,
감독과 배우의 코멘터리를 들으려
구입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책의 구성은 글로 담겨진
한편의 코멘터리의 외형을 갖추기도 한 책이라,
그런 취향의 사람들에게도
읽고 싶고 알고 싶을만한
사진들과 내용들을 담았다 본다.
주인공이었던 길리언 머피...
오펜하이머의 주인공으로 선택도니 이유와
그가 한 연기 부분에 관해서도,
매우 인상적인 크리스의 소견이 담겨있다.
당연히 모든게 뛰어난 배우라고 생각해서 선택했지만
그만이 지닌 독특한 눈빛은
이 역할에 적격이라 초반부터 생각했다 하면서,
그를 단순히 주연이라 치켜 세워주는 말들이 아닌
주연보다 오히려 커리어 면에서 화려했던 조연들이
오펜하이머란 서사를 위해
자신의 도드라짐을 내려놓고
길리언 머피를 위해 밝혀주는 배경처럼
스스로의 힘을 강약조절할 줄 아는
그런 모습을 감독으로써 안다는
그런 평가 또한 매우 신선했다.
단순히 사진만으로 읽는 책이 아닌
글로써도 진짜 읽을게 많은 책이니,
소장하기 아깝지 않을 가치는
분명히 지녔다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