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카의 인생 수업 메이트북스 클래식 15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정영훈 엮음, 정윤희 옮김 / 메이트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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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대적인 언어로 각색된 

세네카의 전집 중 일부다.

그의 에세이 12개 중 6개를 각색했기에

전문이 실려야 온전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겐

책의 완성도에 의문이 들기도 하겠지만,

다 읽고 책을 덮으니

오히려 이 에세이 6개의 정리만으로도

충분히 책한권은 완성은 됐거다 여겨진다.


책초반에 등장시킨 시간이란 주제를 다룬 부분에선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마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연들처럼 

내게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살아내지 못했기에

드는 느낌이라 여기며 읽었던 부분이다.


대개 큰 주제로써 제목이 소개된 후

2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그 제목들이 마무리 되기에,

수많은 모든 내용들을 정리해 전달하는 건 무리다.

그저 가장 와닿고 통찰할 꺼리를 던졌던

순간순간을 기억할 뿐이라는게 맞는 표현일거다.


가장 먼저 마음에 담고 싶었던 내용은 

마르쿠스 키케로와 리비우스 드루수스의 이야기였다.


키케로는 세네카를 소개한 머리말에서

짧게 언급되며 소개됐던 인물이기도 한데,

세네카, 키케로, 아우릴리우스는

오늘날에도 그 시대를 대표했던 

현인이었다며 머리말에 소개되었다.

아우릴리우스는 기시미 이치로의 책에서

세네카가 소재로 쓰인 이 책 같은 구성으로

읽었던 인연이 있기에 짧은 이름의 언급이었지만

소회가 남다름이 있기도 했다.

여하튼, 어쩌면 머리말 속 키케로의 언급은 

세네카를 다룬 이 책 속에 담긴 

세네카 급 정도 되는 또한명의 위인 언급이었다

상상해 보면 좋을 짧은 소개였다.

하지만, 내가 읽고 느낀 바가 컸다고 소개한

책 속 키케로의 사연과 이야기는

그런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키케로.


그는 국가재건을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다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휩쓸려 사라졌다고 묘사된다.

그랬던 그지만 현직에 있는 동안 

부귀함과 명성을 누렸다.

하지만, 힘들게 된 시점 이후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인생은

한순간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묘사한다.

오늘날 위대한 현인 중 한명으로 회자되나

그 당시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이겨내진 못한 인물로 그려지는 것이다.

결국, 온갖 역경 속에 

성격마저 변해갔음이 이어지는 사연들.

키케로가 아티쿠스에게 전했던 편지 속엔

그의 날카로웠던 심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 물었나?

난 '반포로' 신세로 투스쿨룸에 있는

시골집에 기거하고 있다네...'

역자인지 세네카의 해석인지 모를 

키케로가 남긴 그 당시 심정은

지난 시절을 늘어놓으며 푸념하고 있는 것으로 정리됐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도 변함없을 거란

희망없는 신세를 토로하는 것이라 평하고 있는 것.


'반포로' 신세.


그 말이 참 의미심장 했는데,

책은 곧바로 그가 진정한 현인이었다면

스스로를 반포로 신세라 표현으로

스스로를 말하지 않았을거라며,

그 점을 주목하고 있었다.

즉, 현인이라면 자신의 삶에 주인으로 살아갈테지

결코 스스로 속박되고 온전치 못한 자유라

원망하며 살아가진 않았을 거란 점에.


뒤이어 등장한

리비우스 드루수스란 정치인의 사례에선,

수많은 지지를 얻고 새로운 법안을 발의해

스스로 그 결과까지 내보고자 개혁을 이끌어 봤지만

그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 자신이 만든 개혁이란 도구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야 할 입장이 됐고

그것은 계속 그에게 불가능한 업무를 부과하게 된 것.

그후 그런 처지가 된 후

자신의 상황을 되집어 보며 인생을 회고한 그는,

자신은 태어난 순간부터 

한번도 평온한 적없는 인생이었다며

스스로를 저주했다고 전하고 있었다.


책에선 좀더 정리가 더 된 상태에서

나름의 결말에 이르르지만

그 부분들이 내용이 그리 중요하진 않기에 

책이 내놓은 결말로 바로 이야기를 마무리 해보자면,

더없이 행복한 모습이기도 위인급 인물이었지만

힘들어지기 시작하자 자신의 평생을 

스스로 후회하듯 요약하는데 빠지는 건

그가 현인은 아니였음을 말하는 거라 전한다.


키케로나 드루수스까지, 

때늦은 푸념이란 결국 

그 자신도 다른 사람도 변화시키진 못할 처신이며,

그렇게 한순간의 푸념만 들어놓다 

다시 평소 생활로 돌아가다 생을 마쳤다고도 전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결론은 내려졌지만

완전한 해석풍의 결론은 아니었다.

약간은 열린 결말 같았고

두사람의 공통점만이 연관되어 기억될 수 있었을 뿐.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반포로 신세라던가 평생 편한 적이 없었다는 

두사람 각자의 푸념섞인 말 속에는, 

분명 그 말을 하던 당시의 두사람은

매우 불행함을 느끼고 있었음은 전달되어져 왔다.

아마 현대를 살고 있다면 이 둘은 

급성 우울증이나 화병 정도의 진단은 

병원에서 받지 않았을까도 싶었고.


이 둘에겐 공통점으로 느껴지는 측은함도 있었는데

그건 이들은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기엔

타인과 가까운 주변인들에게 마저 큰 나무와 같아서

누군가의 귀감만 되어야 했을 뿐

힘들어도 본인이 기댈 사람은 

세상에 없었다는 공통점이 있던 사람이었다란 측은지심.

이 책에서 마저도 이들의 인간적인 푸념들은

허락되지 말아야 했던 불완전한 인간들의 것이었으니까.

현인이라 칭송받고 위대한 정치가라 칭송 받는거와는 별개로

그들의 실패와 좌절은 본인이 철저하게 짊어져야지

토로할 수 있거나 타인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이었다는.


책의 중후반 쯤엔 세네카 본인의 변론이 등장한다.

이어지는 2편이 연결되는 부분인데 

그 부분과 앞서 등장했던 키케로와 드루수스의 이야기는 

비슷한데 다뤄지는 느낌에선

상충되고 모순적인 면이 다소 들어있다.


세네카가 말했던 많은 금과 옥조와 같은 말들,

스스로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말 속의 의지들,

하지만 그것들과는 별개로

자신 세네카란 사람 자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속 모습을 그것과 연결시켜 보지 말 것을 

일종의 당부하는 글들이었다.

금으로 된 식기를 사용하고 부유하며 

보통 인간처럼 감정도 드러내며 사는데

자신의 철학과 자신의 삶이 서로

이율배반적이지 않느냐는 대중의 질문에 대해

세네카 본인이 이야기 한 부분이다.


나는 성인이 아니다,

고로 철학적으로 지향하는 바와

스스로 완벽하지 못하게 살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 스스로는 나를 현인으로 인지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살려고는 노력한다.

현실속 자신 세네카의 모습을 

발전시키려는 자신의 철학과

매칭시키지 말라 강변하는 그다.

그걸 지적하는 건 이른바 악의적이라는 평과 함께

자신은 그런 악의적인 지적에 더욱 분발할 것이며,

도달하고자 하는 철학과 정신세계의 완성엔

계속 심혈을 기울일 것이기에

충실히 자신의 삶을 살아 나가겠단 

강한 어조로 이야기를 맺는다.


앞서 평가 되어졌던 키케로와 드루수스,

다음 등장하는 세네카 본인이 말하는 인생관.

이 둘은 나란 독자의 눈엔 비슷했지만

다른 예와 결말을 다룬 소재로 등장했다.


짧은 지면에서 굳이 정리를 해보자면

앞선 두사람도 세네카 본인이 스스로를 말한

그 선에서 정리되는 면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세네카가 자신은 현인이 아니라 단정지어 강변했지만

현인으로 추앙받는 현시대에서

위와 같은 속세적인 면을 인정받고 싶던 

세네카의 개인적이고 솔직한 모습은 대중들에겐 없기에.

키케로와 드루수스에게도 그의 인생관을 좀 대입시켜

대신 변호해 줘도 될 사연들 같기에.


역자는 세네카가 남긴 글들 중 일부를 엮은

아포리즘 즉 명언집 형태의 글이라 칭한다.

그러나, 각색된 원문과 해석은

명언 보다는 에세이로써의 읽는 재미를 주며

유한한 시간과 인생을 느껴보기엔 

사색적이며 회의적인 반성의 시간도 선사해 준다.

누구라도 한부분 쯤은 분명 

와닿는 게 있을 내용들이다.

그 안에선 순간적이나 용기를 얻어갈 수 있다면 

이또한 책이 주는 각성효과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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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 - 사람을 쉽게 믿지 말라!
한가(家)롭게 지음 / 한가롭게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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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목이 끌렸다.

뭐, 여기서의 뒤통수란 배신이라던가 변절, 

혹은 사기의 뜻으로 쓰인 거였지만,

처음에는 짧은 제목이 왠지 

시집은 아닌가 생각들게 만들었다.

그리 느낀건 나뿐일까 조금은 

궁금해지는 지점이기도 하고.


이 책 제목인 뒤통수가 배신의 뜻인 걸 알고

나름 임팩트 있게 잘 지은 제목이라 생각하면서

하나 더 궁금해졌던 건,

이미 비슷한 소재의 책이 

같은 류의 이런 제목으로 나와있지 않은가였다.

하지만, 좀더 더 찾아봐도 그런 제목은 전무했다.

물론, 이종오가 쓴 '후흑학'이란 책이 

삶의 어두운 면을 다뤘고 

오래 전 쓰여져 더 알려진 바가 있다고 쳐도,

그 책과 이 책이 소재면에선

비슷한 면이 있을 뿐이지,

저자도 언급한 1위는 교통사고이고 

2위가 사기범죄라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

뒤통수란 단어를 넣은 책이 

이리 적었다는 점도 놀랄 일 같았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인간을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는 의지를 주로 담고 있다.

그러나, 불신을 좌우명처럼 살라는 말은 결국 아니다.

그렇기에, 저자의 조언은 믿지 말라에 있는게 아니라

잘못 믿어서 얻을 수 있는 불이익을

사전에 막자는 쪽에 강조함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사람에 대한 불신도 상당히 들어는 있다.

그건 저자가 살아오면서 겪은 인간관계들도 한몫 했고.


의외로 뒤통수란 배신을 주로 논하면서도

정확하게 얘기하진 않았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는 좀더 지키고 

힐난은 가급적 줄이자는 쪽의 이야기도

많다는 특이점이 있다.


회사내 공통으로 입을 후드티 제작을

직원 한명에게 전적으로 맡겼는데,

완성품이 나와 입고 보니 

로고가 명치쯤에 달려 있어 웃고 넘어갔단다.

본인의 빠지는 머리카락, 

힘없이 늘어지는 머리카락을 연상하며

늘어지는 신체처짐과 발맞춰 

후드의 로고 위치도 아래쪽으로 배치시켜 줬다 여기며

웃고 넘기는 식으로 이해했다는 

에피소드처럼 마무리 된 이야기였지만,

이건 뒤통수와는 조금 결을 달리하는 이야기였기에.


믿음이 실망으로 돌아온 사건 말고도

여러 사건사고가 많았던 저자의 인생담 속에는,

꼭 뒤통수와 관련된 사건 뿐이 아니라,

믿고 같이했던 사람들의 홀대나 

자신의 발로 먼저 알아서 나와야 했던 분위기 등,

일상에서 받은 상처의 상당부분들은

뒤통수를 맞은 일로써만이 아닌 

사람에 대한 믿음이 옅어져고

무뎌졌어야 견딜 수 있었던 환경이었음도 

느껴볼 수 있던 대목이었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연은,

강연 의뢰가 들어왔을 때 거절하는 때가 있는데

그건 '주인의식'에 관한 의뢰가 들어올 때라는 부분이었다.

저자입장에서 그 이유는 간단했다.

주인의식, 충성심, 사랑은 강요 할수록 멀어지는 것이라는 것.

실린 많은 이야기들과 다소 글의 전개도 달랐고

짧지만 의미하는 바나 공감가는 바가 있었다.


여기서의 의뢰받은 주인의식은 애사심이었을거다. 

그러나, 저자가 충성심과 사랑으로까지 범위를 넓히면서 

교육으로 고취시킬 수 없는 분야라는 단정에 이해가 갔다.

강요라는 말보다는 설득이 더 맞는 표현이겠으나,

설득으로 협상은 어찌 되겠지만

설득으로 사랑하게 만들고, 

설득으로 인정받는 것은

어렵기 보단 불가능한 분야로 봤을거고

그렇기에 강의에 들인 노력만큼 

나올 수 있는 아웃풋은 한계가 있다는 점이,

굳이 돈을 받고 교육하는 사람의 입장임에도

고사했어야 할 이유는 있었을 거 같다.


딸과 매우 친한 저자인지,

그간은 이렇게 책으로써가 아닌 

책에 실릴만한 얘기들을 

부녀지간끼리 많이 나눠 왔는데,

딸 쪽에서 아버지 얘기를 책으로 선보여 보는게

어떻겠냐는 제의에서 시작됐다는 이 책.


사람에 대한 단순 불신이 아닌

불특정 다수와 인연을 맺고 살아가야 하는

세상속 인간관계 안에서 

각자가 어디쯤을 자기 보호나 자기 방어로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겠는가를 주제로

이 책을 읽어나갔던 거 같다.


긍정적이고 좋은 얘기는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갑의 문제뿐 아니라 을의 문제점도 생각은 해보며

이와 같은 쓴소리 쪽 얘기는

쉬이 들어보기 어려운 환경이라 본다.

모든 얘기들이 왠지 맥락상 비슷하게 이어지는 느낌도 있지만

어떤 부분은 내겐 인상적이었던 

교육으로 안되는 분야도 있다는 식의 사연처럼,

자신에게 더 와닿는 대목들은 

책을 통해 찾고 만나보길 바란다.

성공담쪽 보다는 제기와 시행착오쪽 얘기들에서 

삶의 진솔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더 맞을 구성이면서

내용이 아주 난해한 책도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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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부부 범죄
황세연 지음, 용석재 북디자이너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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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광고카피에 이끌려 

읽고 싶은 단편이 생겼던 소설집이다.

그 카피문구가 뭐냐면,


'평소에 잘해야 해, 그래야 눈치를 못 채지...'


여러 단편의 모음으로 구성된 이 책 안에서

위에 해당하는 소설의 제목은 '진정한 복수'고,

위 카피가 이야기 안에서 등장해야 했던 이유는,

죽이고 싶은 부인을 성공적으로 해치우기 위해

가장 가까이 있는 용의자가 될 자신으로써는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사전준비에 필요한 마음가짐으로써

다짐에 둬야 할 스스로의 마음단속 쯤의 문장이었다.


어떤 단편을 먼저 읽던,

읽으면서 생각없이 해당 스토리만 

오롯이 따라갈 수 있는 저자의 이끔이 좋다.

어렵거나 심오했다면 책읽는 시작과 끝마치는 모두가 

어느 정도는 의무가 됐을텐데 

끝까지 재미를 주었기에 작가와 책에 감사했다.


여러 편이 있지만

단편들 중 2편만 골라 간단히 소개해 보겠다.


먼저, 위에 소개한 '진정한 복수'부터.


최순석은 부인과 진정한 끝은 사별이라 마음 먹는다.

사랑해서 결혼했으나 애초에 부정했던 여자, 

출신이 깨끗하지 못해 매번 만나게 되는

그녀의 친구들마저 순석에겐 꼴 사납다.

좋게 해결하려 한 대화는 항상 순석의 KO패.

자신도 그녀의 전남편처럼 그녀를 패버리고 싶은 걸 

겨우 억누르며 점차 진솔했던 사랑도 식어간다.

그런 미움의 누적은 그녀의 죽음을 원하게 되는데,

만일 자신 곁에서 부인이 죽게 된다면 

제1용의자가 될 게 뻔한 자신을 위해

본인의 결백함이 가능한 죽음의 덫을 구상해 나간다.

그러던 와중 생각난 한명의 인물, 친구 김낙인.

어디로 튈지 모를 분노 증후군 같은 기질이 있던 친구라,

그 친구를 자기 대신 부인을 죽여줄 적임자로 점 찍는다.

미리 돈을 빌려준게 있었던 걸 이용해 

친구를 금전적으로 압박해 댄다.

이는 돈을 받기 위한게 아닌 

친구의 못된 심보를 자극할 용도일 뿐.

근데 왠걸, 친구는 자신의 처지를 어필하며 

화냄이 아닌 선처를 구해온다.

그럼에도 순석은 계획을 진행시켜 나갔고

최종 나올 돈이 없을 그 친구에겐 

자신의 돈을 받아오란 심부름을 부인에게 대신 시킨다.

가서 돌아버린 김낙인의 손에 저세상으로 가시라고.

과연 이 소설의 결말은?


내가 끌렸던 문구가 들어있는 이 단편은

이 책의 다른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반전이 존재한다.

반전을 상상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내용일 수 있지만

반전을 이끄는 김낙인의 역할과 대사가 

이 단편이 가진 핵심일거다.


다음은 '비리가 너무 많다'란 단편.


책의 시작은 뜸금없이 군대를 한번 더 가겠다는 

주인공과 병무청 간의 전화통화로 시작한다.

군생활을 잘했기에 다시 가겠다는 30대의 자신을 

왜 받아줄 수 없냐고 계속 따져 묻는데,

상담원이 처음엔 이런 경우가 없었다며 난처해 하다가

재입대를 마치 악성민원처럼 따져묻는 주인공에게

점차 화를 내며 막무가내인 그의 통화를 끊어버린다.

별거 아닌 해프닝 같기도 했지만

주인공 스스로가 설명하는 그 이유를 듣노라면

왠지 소설다운 공감도 가게 만들면서

웃긴 설득조의 변명이나 이유에

조금은 고개를 끄덕여주고 싶어진다.

그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해온 일이라곤 나무십자가에 매달리는

예수님의 양 손에 대못을 박아온 일이 다였던 그.

아무리 목각인형인 예수의 손바닥에 

업무상 못을 박아온 것 뿐이지만,

그 반복된 일이 왠지 부정했었나 반문해 보며

그로인해 하늘의 벌이라도 받은 걸지 모른다는 의도로

세상에 어필도 해보려니 아무도 그 처지에 공감하지 않는다.

이리저리해 능력없는 이가 실직의 기로에 서니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나라에서 자신을 거두줬고 케어해 준 

군시절이 떠올라 그리워 진거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던가 갖은 이유로

군대를 안 가겠다는 사람 대신 

가고 싶다는 자신을 받아 줄 자리가 

왜 없느냐며 따지고 든 것.

군대를 가면 이 삶의 굴레에서 

생각없이 탈출할 수 있을거 같다는 생각이었다.

과거 그때 그 시절이 자신에겐

가장 홀가분했던 시기였다고 여겨졌으니 말이다.


역시나 그 모자랐던 발상의 계획은 흐지부지 끝났고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그만의 새직업을 창조해내게 된다.

그건 불특정 다수를 향한 '협박성 E메일 보내기'.

그 시작은 그냥 간단한 제목을 가진 E메일이 다였다.

E메일 제목은 모두 '틀켰다! 튀어라'.

예상외로 실제 불특정 다수를 향한 협박은 통했고

그렇게 그에게 돈을 보낸 이들의 숫자나 금액을 통해

앞으로 자신이 이 일을 계속 했을 때

실제 보낸 총 메일수를 비례해 수입을 추산해보니,

약 40만통의 메일을 보내면 

얼추 자신이 계획했던 수준의 

큰 돈을 만질 수 있을거 같았으나,

더 줄이고 줄여 수고는 적게 하면서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좁혔고,

거기에 자신만의 노하우를 

조금씩 업그레이드 해 발전시켜 나간다.

이 단편 안에서도,

불화가 있는 부인이 등장하는데

주인공이 점차 벌이가 나아지자

둘의 관계에선 역으로 부인이 적극적이고

남편인 주인공이 거리를 두는 관계가 되어가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사업이 아닌 가정사에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 책 속에 들어있는 모든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면서,

간단하게는 인과응보의 개념이란 공통점이 존재하고,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자승자박'의 구조가 들어있다. 


한편의 얘기로 쭉 끌고나가는게 아니라

여러 편의 단편 모두가 저마다의 스토리를 가지기에

아주 복잡하진 않고 매번 끝나지만, 

오히려 그 짧은 길이에 담을 수 있는 걸

매 단편마다 최대한 담아냈음에,

독자의 호기심과 이야기의 반전을 잘 이끌며

짧은 호흡이지만 내실있게 각각의 이야기들을 

재밌게 감상할 수 있도록 배치해 놨다.


김영하의 유명세의 시작이었을 수 있는

소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가 연상되는 

비슷한 얼개가 느껴지는 소설 같으면서도

이 책만의 개성도 느껴져 매 단편 모두 재밌었다.

유머와 메세지가 잘 버무려진 소설이라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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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피난처에 잘 있습니다
이천우 지음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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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껍질을 지녔으나

이 책은 저자의 실화를 모티브로 구성됐다.

실제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던 어머니를 지켜보던

저자가 집에 들렸다 우연히 발견한

아버지의 일기장 5권을 읽게 된 후

느낀 바가 있어 쓰게 됐다는 이 소설.

저자 어머니의 평소 간병모습은

부모님이 젊었던 예전 시절부터

현재의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까지

하나의 띄처럼 연속성으로 다가오며,

원래 기획했던 스토리가 가진 방향을 틀어

부모님의 실제 스토리에 상상을 더해

이 작품을 만들어 냈다고 전한다.


스토리 속 진태, 진수, 해민은 3남매다.

그들이 매우 의좋은 남매지간이라고 

보이는 부분은 없다.

오히려 서로의 고통에도 무관심하고

죽어도 상관없을 정도의 거리감도 있던 사이.

매우 시니컬하게 세상을 보는 첫째 진태,

양심과 그 동반자 게으름이 천성이 된 착한 둘째 진수,

자신의 성정체성을 레즈비언이라 공헌하는 웹툰작가 막내 해민까지,

이들 3남매는 아버지의 장례식 바로 전

실연의 충격에 한강다리에서 

투신시도를 하다 미수에 그쳐버린

진수를 진태가 부모님 집까지 데려오게 되면서

집에 있던 막내 해민까지 다 모이는 장면으로

셋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게 

이들의 첫 3자 대면으로 등장한다.

그러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아버지의 유품 중 아랑훼즈 협주곡을 틀어놓고 

우연히 발견한 시바스리갈의 술기운에 빠져

3남매 모두 스르륵 잠에 빠져 들었다가,

납득 안되고 불안하게 만드는 

일정기간만 반복되는 시간 루프에 빠지고 만다.

2010년 8월 5일부터 2010년 8월 22일까지만 반복되는 세상 속으로.


이 짧은 순간의 반복동안 

이들은 드라마틱한 변화를 

꿈꾸거나 꾀하진 않는다.

그냥 믿기 힘든 사실에 혼란스러워 하고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에 괴로움을 반복한다.

중요한 변화도 일어나긴 하지만 

결국 모두 비슷한 상황으로 끝나버리는 시간의 반복들.


그러다 셋은 생각한다.

이게 아버지가 만든 반복되는 세상일지 모른다는.

아버지가 겪은 무던히도 힘들었던

20대 시절 속 고통을 들여다 보기 시작하면서.


아버지가 해병대 시절 펜팔로 열열히 사랑했던

에이미란 여자와의 사랑얘기에 남매들은 꽂힌다.

만약 이 시간반복에 이유가 있다면

분명 이 이야기에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촉으로

그들은 아버지의 연애담에 집중한다.

반복되는 임종 때마다 아버지가 되뇌이는 이름.

의사가 먼저 그 '에이미'라는 사람이 누군지

남매들에게 언질은 줬지만.


3명의 자식들이 반복된 시간에 갇혀

결국은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 쯤으로 

스토리라인을 상상해 볼 수도 있을 얘기 같지만,

책을 이끌어 나가는 건

아버지의 과거를 쫓아가며 알게 되는

아버지의 실제 과거 속 모습과

자신들이 자라며 각자 인식해 왔던

아버지 모습간의 간극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 간극을 매꾸지 못하고 떠나 버릴지도 모를 아버지를 두고

남매들 각자가 그 빈틈을 매꿔가는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고.


책의 말미쯤에 가선,

아버지가 남긴 일기장 속에 묘사된

옛날 아버지 모습과 같은 누군가를 

그 장소 근처에서 본 듯하다는 얘기를 

남매들이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빗속에서 에미미를 기다리며

단성사 앞에서 마음 졸이던 그 옛날 아버지가

현실에 등장해 종로 거리를 떠돌고 있다는 느낌으로.

책에선 그 사실을 더이상은 확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게 가능한 시간반복의 상상 속에서

이 확인되지 않은 존재의 등장은

삶과 죽음 모두가 되풀이 되는 줄거리 안에서라면

의식없이 누워있던 임종을 앞둔 아버지가

실제 젊은 모습으로 어딘가에선 실제로

자신이 애타했던 그 시절 그 모습으로

떠돌고 있는 것도 필히 가능할지 모른다는 

착각인지 실제인지 확인 안될 

가능성 하나를 독자들에게 던지는 듯도 했다.


이 출판사에서 나온 

'후려치는 인생'을 먼저 매우 재밌게 읽었었는데 

이번 책 또한 실망하지 않고 끝까지 잘 읽을 수 있었고,

말미쯤 부터는 몇번 눈물이 맺히게 만들던

재연과정 속 이별이 임박한 아버지와 남매들의 모습도

글을 마무리하며 새삼 떠오른다.

무의미한 재미나 감동쪽의 소설이라기 보다는

묘한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스토리를 품고있다고 봐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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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벽 - 노화를 늦추고 긍정적으로 지내기 위한 뇌의 올바른 사용법
와다 히데키 지음, 허영주 옮김, 김철중 감수 / 지상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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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와 노인성 우울증, 

이 2가지로 책내용을 양분하여

골고루 다루고 있는 편인데,

어렵지 않고 부드러운 진행에

심각하지 않게 모두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사실, 치매가 더 주된 내용이지만

노인성 우울증에 관한 내용이

더 현실적이고 개선가능성이 있는 부분이라

읽는 내내 관심이 더 갔었는데,

그건 읽는 사람의 사정에 따라

그 관심분야는 다를 수 있겠다.


치매.


저자는 이 책에서 강조하는 부분이 많이는 없는데

흔히 알고 있는 치매에 관한 상식 중

중요부분들에 허구가 많음은 굉장히 강하게 되집는 편이다.


길을 잃고 헤매는 모습,

매일 밥달라며 화내는 모습,

자신의 배설물로 집을 더럽히는 모습 등,

영화나 TV 등을 통해서 본 

이런 모습들은 대부분 허구라 전한다.

이렇게 방송 등을 통해 자연스레 습득된 

치매에 관한 매우 부정적이고 강한 이미지로

이 병을 그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임은

치매란 병에 앞서 분명 우려될 상황이긴 하다.


일단 책에서는,

위에서 말한 보통사람들의 상식들은 

모두 틀렸음을 강하게 되집어가며,

치매가 걸리면 오히려 바깥활동을 자제하게 되고

스스로 집에 쳐박혀있는 경우가 많고 염려되게 되지

자꾸 집밖으로 뛰쳐나가 행방불명 될 소지는 매우 적으며,

화를 내는 경우 또한 매우 적은 경우의 수에 속하는 증세로

이런 증세가 있다면 치매가 다른 정신병적 요소를

자극한 것에 가깝지 치매자체의 병증은 아니라 설명한다.

게다가 보통의 치매는 오히려 평소 화가 많던 사람도

점차 착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온화하단 느낌 쪽으로

성격변화를 거치게 되니 대부분이 얌전한 상태로 

유지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고 한다.


내가 실제 목격한 사연이면서

들었을 당시에도 마음 아팠던 일이기도 한데,

예전 아버지와 우연히 친해진 분이 

가끔 우리 집으로 놀러 오신 적이 있었다.

그럴 땐 본인 외출시 차에 

항상 부인을 대동하고 다녔는데,

당시 젊은 나이임에도 그 부인분이 치매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가끔 놀러오면 집안끼리 친한 사이가 아니어서인지

밖에서 아버지와 몇시간을 보내다 가시곤 했던 사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그 치매걸린 부인이

불쌍하다는 말을 불쑥 꺼낸 날이 있었다.

자신과 그  남편이 몇시간 이야기하다 왔는데

차안에 홀로 있던 부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는 것.

아버지는 남인데도 순간 매우 걱정되면 놀랐다고 하시면서

이 사건 이전에도 항상 같이는 다니는데

남편이 놀다올 동안 차안에 갇혀있는 경우가 많아 

기다려야만 하는 그 부인도 안됐다는 말을 자주하셨던 기억도 

이 책으로 당시를 떠올리니 덩달아 기억이 났다.


땀을 흠뻑쏟은 그 날은 여름의 차안이었기에 

찜통같은 공기 안에서 사우나를 하듯 고생안 그 부인분이

돌아온 두 사람에게 측은하게 발견된 날이 되었다.

오래된 일인데 이 책을 읽다가

배회하거나 화내지 않는게 오히려 치매의 주 증상임을 들으며

불현듯 잊혀졌던 그 치매걸린 여자분의 상황이 떠올려졌다.

항상 그 치매걸린 부인을 아버지가 말할 때

참 곱고 얌전하고 차 옆자리에 잘 따라다닌다고 했던 말 까지도. 

그 분은 잘 사시다 돌아가셨을까?

아님 아직 살아계신 분일까?


책을 읽으면 치매란 병은

본인에겐 망각의 행복을,

부양가족에겐 두려움의 엄습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치매는 본인은 그 사실을 잊고

가족들이 그 병을 인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부분이 있으므로.


의사인 저자는

치매환자에겐 누구보다 배려와 따뜻함이 요구됨을 강조한다.

채근이나 속상함, 질책 등은 독이 될 수 있다면서.

어쩌면 치매를 떠나 모든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가장 우선시 되야하는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노인성 우울증은 사전정보 차원으로 접하면 좋은 내용이다.

우선, 치매와 같은 난치성이 아닌데다

조기에 발견할수록 운이 좋으면 2주만에도 

좋아지는 케이스를 봤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니,

치매는 치매대로 우울증은 우울증대로

반드시 주위에 있는 사람의 증상 인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단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노인성 우울증의 무서운 점은

생활반경이 줄어들면서

허리와 다리의 근육이 줄어들어

마음이 아닌 심각한 몸의 질병을 유발시킨다데 있다.

젊어도 몇주면 건강한 근육도 사라지는데

하물며 노인의 근육이야 오죽하랴.


우울증은 충분히 약과 조기발견 그리고 가족의 관심으로

상당한 치유과정과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병이니,

환자 본인만의 힘과 계기로 자가치유를 꿈꾸기 보다는

해당되는 가족들에게 관심과 행동의 

발판이 됐으면 좋을 내용이라 보인다.


어려운 내용도 없고 즐거운 내용도 없지만

읽으면서 왠지 모를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

병을 위한 배려, 치유를 위한 협동 등,

이런 책속에서의 권고 사항같은 이야기들 모두는

병을 떠나 화목한 가족을 이룰 수 있는 구심점 같기도 했고,

이 책을 보고 그리 해 볼 수 있는 가족이라면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는 

서로의 존재일 수 있겠다란 생각도 들었다.


생로병사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으니

노년만을 위한 책이 아닌

모두를 위한 책이라 생각하며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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