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 : 간신학 간신
김영수 지음 / 창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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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들의 고사와 사례들을 읽어나다 보면,

직관적으로 바로 와닿는 이야기들도 많지만

일부 이야기들에서는 좀더 음미도 해야하고,

실제 제시된 상황에서의 

속는 자와 속지 않으려는 자로써의 

상반된 입장차도 구분해 가보며 

여러 방향으로 이해해 보는게 쉽진 않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작업은 필요한 책으로 보인다.


책이 주는 가장 큰 전제라면,

누가 속고 싶어서 속겠느냐는 

상식적인 생각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꼭 중국의 옛날 이야기 속이 아니더라도

거짓임을 알거나 이해 안가는 선택임을

알고서도 받아들이고 즐기는 사람도

실제 적지 않음도 사실은 사실이니까,

간신들이나 했을 교묘한 술수나 술책과 함께

속임을 당해도 행복해하는 

특별한 소비주체가 있음도 

한편으론 떠올려 보게 된다.


이 책은 '사기'연구와 책들로 유명했던

김영수 저자의 간신 3부작 중 하나인데,

3부작 중 유독 이 '간신학'에 만큼은 

더 흥미가 생겨 이 시리즈의 순서 무시하고

읽어보고 싶은 생각에 선택했다.

아마, 다른 간신이야기에선 사례들이 주를 이뤘다면

이 책은 그 '수법'들을 다뤘다는 측면에서

정리된 학설같은 걸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다보면 같은 주제에 관해

이해가 엇갈리는 듯한 부분도 자주 발견된다.

깨어있는 지성이라면 가차없이 간신의 접근을

멀리하고 단죄하는게 맞고,

본능적으로 간신의 정체도 알아보는게 필요하며

당연 멀리해야 할 것임을 말하고 있지만,

책의 다른 요지에선,

간신이 적이라면 그 적을 이해하고 

내가 가진 요소가 없는 적을 이기기 위해

더럽다고 멀리만 할게 아니라 

이들의 술수를 자신의 것으로 이해하려는 적극성도 가져보고 

어느 순간엔 사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하니까.


물론 여기에 담긴 함의는 충분히 이해 가능하겠다.

하지만, 멀리하는 것과 배우는 것

상반되는 2가지 모두를 멀티로 받아들이는 건

좀더 분별력, 능숙함, 절제미를 요구하는 듯 한 부분이었다.

이게 만일 싸움으로 비유하자면

공격이냐 수비냐의 일도양단적인 결정은 아니라

공수를 겸할 수 있는 능력이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니

엇갈리는 듯해도 접점이 생겨야 할 부분을 언급한 것이고, 

인간관계 속 사회성이나 적응능력을 뜻하는 바도 크니

이해 못할 부분까지는 아니겠지만,

지금 이걸 정리하는 이 순간에도

상반된 2가지 경향성을 한몸에 장착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책엔 여러 이야기들이 등장하지만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해봤던

하나의 고사를 소개해 본다.


요언공명(謠言共鳴).

유언비어가 공감을 얻는다는 뜻으로

헛소문을 퍼뜨림으로써 상대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작용을 설명한 파트다.

흔한 수법의 하나로 설명되는데

여기서는 이 뜻 자체보다

뜻을 이해시키기 위해 등장한 

하나의 사례가 더 마음을 움직인다.


'사기'에 등장한 고사로

이름난 효자 증삼(曽參)과 관련된 이야기다.

이 증삼은 공자의 효경을 지은 저자라고도 언급된다.


어느 날, 동명이인인 다른 증삼이

살인을 벌인 사건이 동네에 알려졌다.

사람들은 그 증삼이 이 증삼이라 생각해 전하기 시작.

이 얘기를 듣고 효자 증삼의 이야기인 줄 안 누군가는

가장 먼저 증삼의 어머니에게 찾아와 

아들사건이라며 급하게 알려준다.


'당신 아들이 사람을 죽였소!'


베를 짜고 있던 증삼의 어머니는 전혀 믿지 않는다.

그런데 잠시 후, 또다른 사람이 찾아와 재차 알린다.


'당신 아들이 사람을 죽였소!'


이또한 어머니는 믿지 않았고 하던 일만 계속한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이 찾아와 전하는 상황...


'당신 아들이 사람을 죽였소!!'


이번엔 그의 어머니는

문도 아닌 담장을 뛰어넘어 아들을 찾으러 달려 나간다.


'사기' 속 이 이야기에 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 글귀를 실었다.


'증삼도 어질고,

그의 어머니 또한 자식을 믿었지만,

3명이 의심하고 전하자 

그 어머니도 결국은 두려워 하였다'


살면서 보여온 행동이 있고

다름아닌 지척에서 그런 자식을 보아왔을 어머니였지만,

3명이 똑같은 사실을 알려오자 

결국은 안 믿을 수 없었다는 것.


사실, 이이야기가 '유언비어'라는 

많이 알려진 고사성어와 

간신의 흔한 술수의 예로 소개됐지만,

독자로써는 다른 방향의 생각꺼리도 갖게 되었다.


현대적 시각으로 사건을 조금 변형해 보면

흡사 보이스피싱을 겪는 상황과도 유사했다.

꼭 거짓에 속은 상황이나

믿기 어려운 상황에 타인으로 의해 노출돼,

주입 되버리듯 믿어버리게 되는 상황으로써 

국한짓기 애매한 부분도 보였고.


책 속 다른 이야기들 중에

간신의 술수를 피할 수 있게 해 줄 태도로

크로스체크 즉, 교차검증을 언급한 사례가 있는데,

위 증삼과 그 어머니의 이야기도

단순히 유언비어의 사례로써만 아니라

교차검증이 필요한 상황 속에 빠진 경우일 수 있겠고,

현명한 판단이나 생각만으로 

믿음이 있다 없다나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는

단순결정을 내리긴 어려운 경우라 보여졌다.


하지만, 이야기가 어찌 흘렀던

2번이나 믿지 않던 어머니였음에도 

진짜 대문도 아닌 담을 넘어 뛰쳐나갔을 정도로

이성을 잃은 3번째 모습이 결론이 됐다면,

아마도 1번째 2번째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이미 베짜는 일을 손은 계속하고 있었지만

본인 정신은 잃고 있었다고 보는게 맞겠다 싶었고,

그런 판단이 단순 속임을 당한게 아닌

모르는 상황파악과 걱정에 만들어 낸

상식적인 대응일 수도 있다고 본다면

더욱 생각할 꺼리는 많아지겠다.


하지만, 책의 의도대로만 우선 보고 

누군가 믿지 않을 수 없게

3번의 거짓을 전해온다면, 

굳건한 믿음도 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고사이기에

책이 전하는 의미가 분명한 이야기이긴 하다.


책은 간신의 여러 술책을 논한다.

직접적으로 이 책 내용이 더 와닿으려면

이젠 존재하지 않는 왕과 신하의 시대이지만

국가적인 업무와 관련된 직업의 사람들이거나

관직에서 결정을 내리는 위치의 사람이어야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주는 귀감은 결국,

간신 그 자체가 아닌

간신과 같은 사람이 가진 본성과 

간신과 같은 사람과 엮일 가능성을 열어놓고,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불가항력적인 지점에서

일반인들에게 또한 효용이 있을 내용으로 다가오는 것이고

나 스스로도 그런 마음으로 읽기를 원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상황을 안 만나고

이런 인물들과 안 만나는 인생이 최적이겠지만,

아쉽게도 타인 뿐만이 아닌

가족 내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라고 본다.

다만, 그것이 이 책 속 이야기들처럼

충언을 올리는 신하는 내몰리고

교언영색하는 간신같은 이들만이 

살아남게 되는 상황이라면,

그 당사자들 중 간신만을 제외하고는

어떤 스탠스를 갖춰야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을지

관찰자로써 드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어쨌든 좋은 책내용에서 받은 영감으로

어두운 환경에 매몰되지 않을 

자구책을 모색할 줄 아는 삶이어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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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쾌한 해설과 그림이 있는 천로역정
존 버니언 지음, 릴랜드 라이큰 글, 오현미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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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읽기 전에,

글의 형식으로써 설명되고 강조된

이 책의 컨셉 '우화'에 대해

먼저 알 필요가 있어 보였다.


[우화]

:동물이나 무생물을 의인화 해서

그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풍자와 교훈을 줄 목적하에 만들어진 

짧은 이야기들


짧은 이야기들이 주로 우화의 형식이라면

천로역정은 긴 스토리니 좀 다른건가 싶었다.

하지만, 하나씩 여행기처럼 읽어가니

결국 하나의 여정 안에 여러 만남과 스토리가 

우화형식으로 들어있다 보니 결국은 

짧은 우화들이 긴 우화로 연결된 

결합의 우화로 봐도 될 거 같았다.


어릴 때 읽었던 이솝우화도

그냥 이야기였지 형식으로 느꼈던 바는 없었다.

이렇게 우화의 정의를 일부러 찾다보니 

왜 이솝이 만든 그 이야기도 

왜 우화라고 불렸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여우가 말을 하고 자기 상황을 변명하고,

강에 비친 개가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짖다가 뼈를 놓치고.

결국, 의인화 된 동물들이였지만

모두 현실성 있는 우화 형식의 캐릭터들였다는 것도

이제서야 어른의 감성으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천로역정의 이야기 중, 낙심의 늪과 절망거인도 

결국 사람들에게 성경에 대한 깨달음을 주기 위한 

우화적 장치들이었는데 그 둘을 돌아보고자 한다.


주인공인 크리스천은 묻는다.

가라고 해서 간 길이었고

통과할 문을 가리키기에 

그냥 향해 걸어갔을 뿐인데,

자신은 이 늪에 빠지고 말았노라고.

그 질문을 받은 도움이란 인물은

크리스천에게 왜 디딤판을 안 밟았냐고 묻자 

크리스천은 엉뚱한 답을 해온다.

두려워서 피해 걸으려다 보니 

늪에 빠지게 됐노라고.

늪에 빠진 크리스천...

그는 도음을 만났을 때,

단숨에 끌어 올려지길 우선적으로 요청하지 않는다.

왜 먼저 나간 후에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가?

빠져있는 상태에서 왜 빠져 있는지부터 먼저 설명하려 하고

그게 일장연설이 끝난 후에서야

다 들은 도움이 손을 잡았으며

그 늪 속에서 타의적으로 끌어올려진 건가?

빠진 자가, 구해줄 수 있는 자를 만났는데

끌어 올려지기 전에 자신의 푸념부터 토해 놓았다.

늪에 빠져있었다면 점점 더 빠져들어 위험한데

사정얘기가 그에겐 구출보다 먼저인 그 모습...


해설에서 이 낙심의 늪은,

어리석어 빠진 함정처럼 그려지지 않았다.

늪이 만들어진 원리는 

오물처리장 같은 더러운 것들의 종착지지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신의 거룩함과 자신의 죄를 인식함으로 인한

좌절같은 기운들이 모여

낙심의 늪이 만들어진거라 그려졌다.

밟지 않았느냐 물었던 그 디딤판은

죄의 사함을 의미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크리스찬은 그 디딤판을 밟지 않고

오히려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요행을 바란 그. 

디딤판 없이도 늪을 밟지 않을 수 있다 믿었고

눈에 보이는 발밑을 보며 자신의 인지를 따라

늪을 피해 통과할 수 있으리라 믿은 그다.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으나 그보단 자신을 믿었고

결국 그러다 빠진 늪 안에서도

자신의 처지부터 열심히 설명하는게 먼저였던 그.

손을 먼저 내밀어 건져지지도

자신의 급한 사정을 호소하며 도움부터 청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그 늪에서 나온 크리스천은

늪 속에서 해대던 질문과는 다른 질문을 시작한다.

왜 자기같은 사람들의 통과를 위해

늪을 안전하게 건널 조치를 

미리 더 확실하게 해놓지 않았느냐고.

그러자, 도움은 아무리 개선한 들

늪을 뒤덮는 찌꺼기들은 어떤 디딤판이라도

덮여 버리고 만다고 설명해줬고, 

그대신 어떻게든 이 늪을 건너

안내받은 좁은 문에 다다르면

그 곳은 디딤판이 필요없는 

단단한 땅의 시작이라 얘기해준다.


이 우화에선 건너기까지의 위험함만이 주제가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빠지고 말 늪의 개선을 꿈꾸지 말고

건너서 발디딜 곳이 충분한 땅이 있는

좁은 문에 도착함이 나을거란 얘기를 우선 해주는 것.

그런데 그 좁은 문...

그 좁은이 의미하는 바도 분명 있어보인다...


또 하나의 이야기, 절망거인.

의심하는 성의 주인 절망거인은 

주인공 크리스천과 소망을 만나자 가두고 구타한다.

마지막엔 스스로 자살하라 강권하기도 하고.

그런 고난 속에 소망은 크리스천을 독려해 주지만

절망거인은 매일 찾아와 이들을 괴롭힌다.

그러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빠져나갈 열쇠가 있음을 알고

의심하는 성을 빠져나와 다시 길 위에 나선다.

그리고 자신 뒤에 올 누군가를 위해

절망거인의 구역으로 가지 말라는 

경고메세지를 남겨둔다.


처음 이 거인이야기를 읽기 시작했을 땐

잭과 콩나무의 거인처럼 종국엔 

잭이 이겨 없어지는 거인역할인가 상상하며 읽어갔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 거인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거인의 마지막은 없었고

계속 고통받다 탈출하는 주인공과

그 벗어남으로 거인과의 인연이 끝났음만 그려진다.

주인공도 살고 거인도 살아있는 결론.

이 이야기를 마무리 해주는 장치로는

다른 이의 발길은 이 성안으로 닿지 않도록

선경험자인 크리스천이 경고하는게 다였다.


천로역정은 여정 속 어떤 고난이던 사라지지 않았다.

모두 경험했고 지나가는게 다다.

그리고 알려주는 사람이 있거나

경험한 이가 후에 올 누군가를 위해 

조심하란 경고 정도를 해주게 다다.

모두의 경험은 각자 새롭겠지만 

결국 그 길 위에선 하나고 반복을 만들어내는 여정.


그 상상력과 각자에게 맡겨진 해석 때문에

이 책이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켰다고 본다.

달라지는 해석들로 저마다

여러번 읽게 되는 책이라 칭해진 거 같고.


우화인 줄 알고 읽었지만

현대적인 우화와는 또 다른 맛이었다.

신의 섭리를 주제로 했기 때문일까?

깊고 경건해지는 바가 분명 존재한다.

인간으로써의 외소함을 일깨워주는 울림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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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 - 세계적 가족 심리학자 버지니아 사티어의 15가지 양육 법칙
버지니아 사티어 지음, 강유리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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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 먼저 목차를 보며

궁금해 하던 단어가 있었다. 그건 '솥'.


목차 속 문맥만으로 대강 느낌은 왔지만

외국인이 쓴 가족관계이론 안에 서

왜 솥이란 단어가 등장해야만 하는지

그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선, 책은 솥이란 단어부터 

알아서 설명해주며 시작하고 있는데,

'솥'은 '자존감'을 의미하며,

이 솥이란 단어 자체가 

하나의 정의로써 사용된다기 보다

솥 안에 어떤 자존감이 들어있느냐가 핵심으로 표현된다.

솥이란 자존감 안에 들어있는게 

긍정적 가치인지 부정적 가치인지 보면서.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도 중요하지만

그게 솥안에 어느 정도의 양으로 들어있는지도 살펴볼 요소다.


많은 책, 많은 저자들의 이야기들 속에

자존감은 여러 형태로 설명된 걸 봤었다.

이 책 이전엔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자존감의 정의는

너새니얼 브랜든의 책에서 정갈하게 정리된 내용들이었다.

굉장히 세련되게 정리돼 있고 

자존감이 연구되어 온 역사도 느껴볼 수 있는 

그런 류의 좋은 책이다.

헌데, 가족이론의 대가인 사티어의 책 속 자존감은

색다르게 설명되고 있다고 느낌을 받는다.

분명 자존감이란 용어엔 일맥상통하는 바가 없을 순 없지만

사티어의 설명 안엔 마치 모성이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사티어는 자존감을,

자아를 높게 평가하며

품위와 애정을 기반으로 현실감 있게 

자신을 선보일 줄 아는 능력으로 묘사했다.


자아, 품위, 애정, 현실감...


그리고 그 모든 걸 아우르는 

단 하나의 귀결점은 '능력'.

그렇다, 사티어의 자존감은

한 사람의 '능력치'로 귀결된다.

어떤 밥을 지어낼 수 있는 솥인가

그 솥이 어떤 자존감이기에

각자 발휘하는 바가 다른가는

저마다가 가진 솥이란 자존감의 능력치였다.

그렇기에 대인관계에서 보여지는 바탕이 되는 것이고.

사티어 스스로 이런 정의에 대해 보충설명 하길

교육, 치료, 커리어, 사적 경험이 어우려져

자신에게 확립시켜 준 개념이라 했다.

뭣보다 가장 중요했던 

자존감으로 벌어지는 긍정적인 세부묘사들,


▶완벽함 

▶정직함

▶책임감

▶열정

▶사랑

▶경쟁력


이것들이 샘솟듯 우러나오게 하는게 자존감인 거라고.

자신을 믿기에

남에게 의지할 수도 있고,

결정은 스스로 내릴 수 있다고 판단내릴 수 있는 그 중심.


스스로를 자신의 정보원이라고 여길 수 있다는 표현은,

스스로에게 의지 하냐 안하냐란 구체적인 설명보다

자신이 자신을 전천후로 믿고 의지한다는 개념설명을

가장 축약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구라 생각 들었다.


그런 사람이어야만 신뢰와 희망을 주변에 나눌 수 있고

감정에 솔직하기에 모든 감정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즉, 감정을 선택할 자유가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다.


지성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힘.

자존감이란 솥이 차 있는 사람이라면

솥이 바닥을 드러낼 위기가 느껴지더라도,

순간의 위기로만 여기고 그 고비를 넘길 수 있다.


반대로, 자존감이란 솥이 없다면 생명력이 없는 것이기에

항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속일까 전전 긍긍하고

자길 속이고 억누르고 무시할까 걱정한다.

자신을 방어하려만 하기에 뒤에 숨는 것이고

외로움과 고립감에 힘겨워 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가도 나아지는 건 없다.

왜냐면 본래 그리 길러져서 나온 태도니까.

명료한 생각은 갈수록 어려워질거고

동시에 다른 사람은 무시하고 깎아내리려 든다.

계속 그러면 어떻게 될까?

숨어서 자신이 이렇다는 걸 부인까지 해야 하기에

스스로 방어하듯 합리화에 몰두한다.


자존감이 바닥이라는 건,

원치 않은 상황과 감정이 느껴지면

그런걸 마주칠 힘이 없으니,

아예 그런 상황 자체가 없는 것처럼 군다는 뜻이다.

자존감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어야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누구나 기분이 다운될 순 있다.

하지만, 자존감이 채워져 있는 솥을 가진 사람만이

책임을 전가하지도 피하지도 않을 수 있다.

자존감은 결국 한 사람의 태도를 결정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정이 바로 서야하고

그 가정을 구성하는 성인들이 

올바른 자존감으로 후세의 틀을

갖춰줘야 한다고 가르치는 책.

너무 옳은 방향을 얘기하고 있으나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와는 세상이

이젠 많은게 변해있음도 느끼게 만드는 순수한 이론들...


사티어는 자존감 발달을

진정한 자아라고 확정짓지 않는다.

다만, 이것을 길이라고 '믿는다'고 표현한다.

아주 어릴 때 올바른 환경에서 

적시에 길러졌다면 좋았을 자존감 형성이지만,

후천적으로 늦게 보완될 기회를 얻더라도

부정적 측면이 완화되고 회복되는 걸

지켜볼 수 있었다는 그녀.


대신, 몸에 밴 습성이 나아지기까진

인내심이 필요하며

대담한 용기도 필요할거라고

동기부여 같은 격려도 잊지 않는다.


대가의 책이니 읽는 거 자체에 가치를 둬도 좋고,

두껍지 않은 두께에 핵심만 느껴지는 문체들에

무게를 두고 읽어도 남을 게 많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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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괜찮을 줄 알았어 - 나를 잃지 않고 우울증을 앓는 가족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안내서
지민아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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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훨씬 좋은 내용의 책이었다.

제목만으로 책 내용을 짐작해 봤을 때 예상된

그에 합당한 내용들도 물론 있었지만

이 책이 좋게 다가올 수 있었던 이유는,

우울증, 화병, 범불안증세 등을 언급하면서

관련된 당사자 뿐만이 아닌 주변인의 반응과 

환자 본인의 적절한 대응을 같이 실었고,

본인이 할 수 있는 노력 부분들도 단순 나열식이 아닌 

그걸 본인이 왜 해야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느끼게 해주는 측면이 잘 언급됐기에

의사로서의 설득을 넘어선

환자와 그 보호자들의 변화를 독려할

깔끔한 정보공유의 측면이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내가 구체적으로 소개해 보고 싶은 부분은

여러 내용 중 3개 논점에 관해선데,


첫번째, 우울증을 겪는 부모의 자녀가 겪는 고통.

두번째, 상실과 애도감에 비유된 우울증의 자가인식.

세번째, 공감과 동감의 차이.


먼저, 자녀가 느끼는 부정적 감정을 정리한 파트는

5개의 카테고리로 자녀의 마음을 진단해 놓았다.


'슬픔, 분노, 죄책감, 절망과 무력감, 불안'


이 5개의 목차와 같은 분류는 

책을 읽은 후 기억해두기에 분명 필요할 요소들이지만

실제 그 안에 해설된 설명들을 보노라면,

일반가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상같은 부분이면서

감정기복으로 인한 분란으로 확장해 이해해봐도 

도움될 내용들이라 느껴지기에 좋았다. 

우울증 환자 못지않게 그 보호자를 자처하는 주변인들이라면 

반드시 자각해 봐야 할 마음의 변화라고도 느낀다.

여기서는 우울증 환자의 대상을 부모라 한정지었기에

모든 상대방을 부모라 놓고 들어보기로 한다.


1.슬픔

평소 알던 부모님과의 일상이 변하면

자녀 스스로의 역할에 혼란이 올거고

변한 부모의 모습에선 마음이 아플 것.

왜 하필 자신에게 벌어진건지 원망이 생길 수 있음.

(저자평: 소중했던 걸 잃은 건 매우 슬픈 일)


2.분노

자녀의 노력에 오히려 부모쪽에서

화를 내거나 생각만큼 따라오지 않는다면

그런 반응에 자녀입장에서 분노가 생길수도.

오히려 이때 자녀는,

자신의 고민이 이해받지 못했다고 여김과 동시에

노력마저 무시된 걸로 받아들여져 헛되다 여길 수 있음.

만일, 노력의 정도마저 무척 컸다면 더욱

몰라주는 태도에 야속함도 클 수 있다.

(저자평: 서러움과 분노의 해소가 상황 속에서 벅찰 수 있다)  


3.죄책감

가족의 우울증이 자신의 탓이란 생각에 사로집힐 가능성.

특히, 돕고 싶단 의지가 강할수록

반대로 강한 죄책감을 느깰 가능성 큼.

화를 내야하는 순간이 생긴다면

이 또한 아픈 환자에게 화내는게 맞나 고민을 만들고

화와 죄책감으로 괴롭게 될 수 있다.

또한, 아픈 부모나 가족에게 

그걸 받아주는 식으로 되지 않는단 느낌에,

지난 과거를 두고 죄책감을 자초하거나

때론 인간이기에 힘들어 무시나 방관으로 

회피하려는 류의 감정에 죄책감이 들수도 있음.

(저자평: 잠깐의 행복이나 즐거움도 일상의 죄책감으로 다가올 수 있음)


4.절망감과 무력감

끝이 안보이는 누군가의 우울증 지속에 끼인 감정.

노력에 반응없기에 절망감 커짐.

타인의 도움이 전혀 없다면 오롯이 가까운 이의 몫이 됨.

차도없는 것과 더불어 환자 본인의 거부감이 크다면 힘겨움.

(저자평: 끝모를 고통이라 느낀다면 보호자로써 매우 힘듬)


5.불안

부모의 차도를 낙관적으로 기대하다

어느 순간 그 합리화의 모순을 접한다면,

오히려 그간의 오판에 대해 의심이 들 수 있다.

지나친 실수라 생각하면서도 걱정은 안 없어지더라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이라 인식해 보기.

(저자평: 부모에 대한 걱정이 클수록, 그 불안감도 커질 수 있음)


여기까지 5개로 보호자의 심정을 정리해 봤는데

꽤나 포괄적으로 이해해 볼 내용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죄책감이란 말이나 불안이란 말을

'자책'이란 말로 바꿔본다면 

이해 측면에서 훨씬 그 깊이를 넓힐 수 있을거 같고.

2번째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만든 애도의 5단계를

환자가 느끼는 우울증에 빗대어 표현한 부분이다.


'부인→분노→타협→우울→수용'


현실을 부인하다가,

왜 하필 나인가에 분노가 일며,

다른 선택을 했을 걸 상상해 보다가

더이상 바꿀게 없음에 좌절에 이른다.

그러다 결국 상실을 인정하면

그냥 살아가게 되는 단계에 접어들고.

이를 우울증을 빗대어

앓는 이 본인의 마음을 해당설명으로 응용했다.


다음은 공감과 동감의 차이.


공감(Empathy)은,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상대입장'에서 느끼고 이해.


동감(Sympathy)은,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방에 대한

연민, 측은함, 걱정 등의 감정을 느끼며

자신의 과거감정과 경험으로 미루어

상대감정을 느끼는 것.


저자의 핵심설명은,

내가 상대의 마음을 '모른다'는 생각에서 시작할 것과,

상대마음이 자신과 같을 것이고

자신처럼 생각할 것이란 

주관적인 전제를 꼭 버리라는 부분에 있었다.


상대의 잘못된 생각이 강화될 걸 우려해

공감해주길 꺼려했었다면 

공감이 아닌 외면할 상황을

열어놓았음도 주의하라 일러준다.

혹, 우울증 환자가 여러번 같은 말을 반복한다면

충분히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했기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볼 걸 권하며

그에 맞게 올바른 대응을 해볼 수 있기도 권해준다.


어려운 말들은 아니나,

대부분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거나

아는 듯 오해하고 살았을 이야기들도 보인다.

특히, 공감과 동감은 꼭 구분해야 할 이유가 보이고.


책제목이 '엄마는 괜찮을 줄 알았어'라서

저자 본인가족의 우울증 투병기거나

에세이 느낌의 정신과 의사의 글로써 

우울증을 단순소재로 다룬 글이라 오해할 수 있는데,

오히려, 군더더기가 별로 없는 내용이라 놀라웠다.

정확하고 간결한 내용들이어서 더 좋았던 책.

우울증에 대한 책들을 많이 접해봤는데

가장 정확한 시야를 제공해주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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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마음 뒤로 숨다 - 나만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심리 공감 비블리오테라피
임옥순 지음 / 행복플러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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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과 관계된 책이라 생각하고 읽는게 맞겠지만

읽으면서 내내 들던 생각은,

많은 심리상담 경험을 떠올리며

저자의 추억도 소환해 보며,

그때 그 상황에서 자신의 현실을 오버랩 해 봤던

부드러운 에세이를 읽고 있다는 느낌으로 더 다가왔다.


남편을 따라 외국으로 이민을 떠났던 저자는

목회일과 두자녀의 엄마로써 이미 큰 일을 해냈다고 느낀다.

그녀는 그런 일상 속 부인과 어미니로써의 역량뿐만 아니라

본인의 심리상담가로써도 역량도 개발하여 상당한 성취를 이뤄냈다.

본인의 내면도 일깨우며 선택한 공부로써 타인도 돕는 성취.


저자의 글을 읽노라면 

그녀의 삶을 보는 관점이 아름다워 보인다.

현재의 안정감이 주는 시각의 부드러움은

과거 속 많은 부분 또한 아름다운 추억으로 소환되고 

아픔 또한 현재의 성숙도에 맞게 

재정립 되거나 되어가고 있음도 느낀다.

라이너스의 담요로 심리요소를 설명하다

자신만의 푸른 앞치마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거나,

한국에서 친구가 보낸 곶감 상자를 보면서는

어린 시절 잊고 살았던 감나무를 떠올린다거나 식으로

일상과 심리기재의 설명을 융합해가며

자신을 소개하고 독자에겐 부드러운 지식을 전달한다.

때론 반대로, 상담현장에서 느낀 

내담자의 격한 감정에 이입되어

슬픔, 절망, 분노에 휩쓸렸기에,

회복되는데 상당한 시간을 보내다가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오는데 

꽤 애를 먹었던 사연들도 기록으로써 보여준다.


에세의 형식으로 여러 심리기재를 녹여내다 보니

이 한권 안에는 주요한 심리기재들의 설명들이

현실상황과 편안하게 매칭되어 배치됐다.

단순 심리지식이 아닌 생활의 일부분처럼 

설명되고 느껴지게 하는 건 일종의 장점이라 보였다.


그 중 몇몇을 떠올려 보면,

본인이 겨울내내 빠져 살았다는 TED에서 방영된 한 강의,

그건 브레네 브라운의 강의로써 주제는 '수치심'이었는데,

저자는 수치심을 '취약성'의 큰 범주에 넣고

취약성을 인정하지 않고는

새로운 도전은 없다는 걸 돌아보게 되는 계기로 삼았다.

취약성은 역기능으로 수치심을 만드는 것이라고.

내담자의 사연에선 이렇게 작용한 수치심의 뿌리는 

스스로 인식하는 것과 회복하는데

힘든 인고의 세월이 필요함을 

상담가로써 관찰해야 하는 고통이 있음도 언급한다.


주제로써는 서로 다르지만

인정욕구와 사랑이란 부분에서나 애착에서도

묘하게 비슷한 설명이라 느껴지는게 있어 

기억을 더듬으며 각각의 주제를 다시 읽기도 했다.


한편, 상담가에게까지 인정받고 싶어하는 한 내담자가

스스로의 그런 심리를 느끼며 씁쓸해 했다던 사연을 소개하며

아픔과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안에 들어있는 단어들,

순간 툭 건내오는 불특정 소재나 회상 안에서는

상담가의 능력으로 해야 할 일은

경청을 통한 핵심이슈 찾기가 되어야 한다 말하는데,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아서,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아서,

억울하고 답답함에 마음이 꼬여버렸다고 추정될 수 있을만한

무언가를 무심코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꺼냈음을 캐치해야 된다는 것.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다양한 표현과 말들로 쏟아낼 때

상담가는 여러 감정을 내담자가 가지고 있음을 

그냥 느끼고 지나가는게 아닌

그 안에서 가장 본질적인 무언가를

캐치할 수 있게 도와주는 한단어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말을 하면서 자신의 안을 들여다 봐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그 사람을 가장 잘 담아내고 있는 

최선의 축약된 단어를 찾아내는 작업을 해야하는 것.


칼 로저스가 말했다는 내부의 자기 이해에선

스스로의 감춰진 원래의 내부능력을 자원으로 본다 말해준다.

자기개념, 태도변화, 지향성을 가진 삶을 살기위한 

원래 지니고 있는 원동력으로써의 내부자원.

이 내부자원이 삶을 미래로 나아가게 만드는 추진력이라 보기에

이런 힘을 느낄때라야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신으로써 스스로를 이끌어갈 

힘을 자각한다고 보는 것.

목회와 관련된 일을 하는 저자로써는

칼 로저스가 말한 거대한 자원은 

기독교적인 신이 허락한 

인간의 형상과 맞물려 추론하는 듯 했다.

미숙함, 허물과 상처, 상처가 빚은 죄 등 까지도

원래의 원형을 빛바래게 했을 테지만

그 안에는 온전한 본인들이 가려져 있다는.

그렇게 보기에 그 본성에 기인하여

본래의 자신을 찾고자 상담가를 찾고

여기저기 도움을 받고자 간청하는 것이라고 보게 된다고.


이책은 심리학적인 내용도 놓치지 않으려고 

매 사연과 매치해 실으려 한 점도 돋보이지만,

오히려, 심리학에 아무 관심 없더라도

그냥 편안한 에세이 한편을 읽는 마음으로 

접해봐도 좋을 내용이라 보이는 부분이 많은 책.

따라서, 굳이 심리학적 에세이라 이름붙이지 말고

보통의 에세이로 생각하고 읽어도 충분히 괜찮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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