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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머문자리
임려원 지음 / 프로방스 / 2023년 6월
평점 :

책을 완전히 읽기 전 맛보기처럼 읽었던
머리글 속 몇 줄 만으로도 이미 좋은 책이었다.
그 머리글 중 해당 문장이 포함된 부분을
기억이 아닌 발췌로 옮겨 본다.
'...상담사로써, 경험이 쌓이면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탁월한 해안이 생기는 줄 알았다.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고, 그 누구도 평가하지 않으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줄 알았다...
다른 사람들을 단번에 이해하고
그들의 문제를 한 쾌에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허무맹랑한 희망은 '환상'이었다.
상담사가 되고 나서 해가 거듭날수록,
누군가를 안다는 말이 얼마나
'무모한' 말인가를 뼈저리게 느낀다.
상담사로 사는 나는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
마음이 휘어지며 감정에 휘청이는 삶을 산다...'
책은 이 머리글 속 첫인상 보다도
훨씬 좋은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다.
어느 한 부분만이 아닌 전반적인 내용들이
처음 기대되던 만큼이나 모두 좋았고,
저자 본인의 표현으론 부족한 듯 묘사했던
그런 상담사로서의 한계적인 느낌도 없었다.
균형있는 내용과 그 정리면에선 오히려
같은 계통의 책들보다 풍부하기에,
문장 사이마다 촘촘히 박혀있는 듯 느껴지는
경험을 녹인 글들과 해석들만이 빼어나게 다가왔다.
소개한 머리말을 다시 정리하듯 읽어보며,
원래 없던 쉼표와 작은 따옴표로 내 느낌들을 정리해 봤다.
3~4줄로 된 이 문장은, 저자가 인정하는 한계들과
'무모한'이란 한단어로 전달되는 저자의 내려놓음 같아,
상담사란 직업이 가진 한계와 능력도
어떤 것일지 한번쯤 생각해 보게 한다.
비용을 받고 함께하는 상담사가
많은 공부를 했어도 자기도 모르겠다는 말이나
결국 자기 스스로도 원하는 걸 못 이뤘다는 말은,
듣는 입장에선 신뢰하기 어려운 결격사유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의 내용을 다 읽어 본다면
저자가 일정 실력 이상을 갖춘
훌륭한 상담사란 건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정부분 또한
능력부족 자체의 계량적 의미라기 보다는
고백에 가까운 용기쯤으로 봐주는게 적당할 것 같았다.
책내용들은, 매우 시같은 6개의 소제목들로 나뉘었다.
모두 마음이란 주어로 앞에 두었고 그 뒤에
번지고, 스미고, 흐르고, 열리고, 놓이고, 머문다를 붙여 표현했다.
맨 앞부분 소제목인 '마음이 번지듯이'의 내용은,
많이 알려진, 내면아이, 역기능적 가정, 애착 등을
폭넓게 다루며 하나로 이야기를 정리해 가는 챕터다.
그 중, 메인으로 이 챕터를 이끄는 건
역기능 가정환경에서 자란 성인 아이들이 가진
성장과정과 신념으로 봐도 좋을만한 내용들이었다.
너무 많이 알려져 익숙한 주제임에도
또다른 상담사가 같은 주제로 정리한 글이
이렇게 신선하고 뭉클하게 다가온 건 오랜만이다.
느낌을 느낌으로 남기지 않고 구체화하듯
책의 모든 내용을 정리한 저자라 이 부분 역시,
개인 스스로는 쉽게 정리하지 못할
기억과 마음 속 많은 무형의 것들이
상담사로써 축적한 혜안으로 정리되어,
흩어진 듯 제각각처럼 보이던 사실들이
한줄의 염주처럼 꿰어져 이해되는 좋은 해설들이었다.
마치, 무지개로 나뉜 빛이 다시 하나로 모이는
역 프리즘이 있다면 그걸 다시 통과하는 빛처럼 말이다.
많은 얘기를 하지만
저자는 책의 어느 부분에서건
쉬운 위로는 건내지 않았다.
독자 스스로의 이해를 돕고 격려할 뿐.
이 챕터를 읽을 때, 불현듯
얼마 전 유명 프로에서 모태솔로인 출연자가 나왔던
상담장면 속 한 부분이 오버랩 됐다.
자신을 분석하 듯 해석을 들려주는 상담사의 말을 듣던 출연자는
갸우뚱한 표정으로 동의하지 않는 제스처를 보였다.
물론, 말로 정확하게 아니라고 한 건 아니였지만
상황과 둘의 모습을 시청자로써 보며 느껴지던 건
해당 분석에 대한 출연자의 소심한 부정이였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출연자의 느낌을
그 방향으로 살리며 대화하기 보다는
상담가의 해석쪽으로 유도해가는 느낌이 들었는데,
더 의외였던 건, 첨엔 부정하듯 보였던 출연자가
점차 맞장구치듯 행동하는 모습이었다.
성인으로써 나이와 직업적 소양도 갖춘 사람이라
돌변하듯 완전 모든 걸 뒤집듯 변해간 건 아니지만.
이 앞뒤 상황을 보면서 난, 예전
지인이 나에게 유머처럼 들려줬던
점보러 온 사람과 점쟁이 사이의 대화가 생각났다.
A: 당신, 앞마당에 벼락맞은 대추나무가 있지않아?
B: 어...없는데요?
A: 그래?...맞아! 그게 없어서 당신이 그런거야!!
B: ?...어...그렇군요...그랬던 거군요!
출연자가 이 책의 1장에 등장하는 사례인진 알 수 없다.
오히려 전혀 상관도 없을 수도 있다.
다만, 역기능적 집안에서 착한 아이로 길러지고
로열티(충성심) 가진 책임감 강한 아이의 특성,
그로 인해 타인을 향해 자신의 의사표현 방식을
맞춰가듯 이야기 하게 되는 성향,
그런 느낌처럼 화면 속 대화흐름이 느껴졌다.
공신력 있다고 느껴지는 대상을 향해
자신이 자신의 마음해석을 들려주면서도
그 타인이 확정지어주는 자신이란 사람의 의견에 맞춰가듯
자신의 마음을 재해석해 나가는 모습처럼.
서평으로 정리한 일부분의 내용임에도 이만큼 길어져 버렸다.
책 전체로 봐선 1/6도 안되는 적은 내용들이었는데 말이다.
워낙 잘 쓴 책이라, 인연이 닿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