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제일 놀라웠던 건,
영화자체가 아니라 의외로 짧았던 상영시간 때문이었다.
한 1시간 10분정도의 런닝타임으로 끝맺음 지은 영화...
재밌게 진행되던 이야기가 막판 급하게 막 내리는듯한 느낌에
다소의 아쉬움도 줄 수 있겠단 생각도 들었지만,
짧은 시간으로 전하지 못한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곤 보여지지 않는다.
지구를 멸망시키는데 쓰인 기계들과
이 영화속 9명의 로봇은 어찌보면 같은 핏줄이다.
한 과학자의 손에 의해 개발되고 탄생됐으니까...
지구가 황폐하게 파괴된 상황에서 이 과학자는
등에 1부터 9까지 차례대로 숫자를 써넣은 9개의 로봇들을 만들어
하느님이 진흙으로 아담과 이브를 창조했다는 창세기 얘기처럼
이들 9개의 로봇을 세상에 내놓았다.
로봇이면서 성별도 있고 연령도 각기 달라 보이는...
어찌보면 이 창조물들은,
더러워진 목장갑이나 푸대자루를 꽤매 만든듯한
초라한 겉모양들은 하고 있지만
각각의 개성을 지닌 채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처럼 행동하며 말하는 인간모습의 축소판을 보여준다.
다툼과 협동, 이기심과 희생까지 모두 표현해내는 이들...
맨 마지막에 태어난 9(나인)은,
다른 8명의 동료들처럼 특별한 재주나 개성은 없지만
도리어 점차 이들의 리더가 되어가고
그 평범함이 도리어 다른 8명 사이에서 뚜렷한 색깔을 드러나며
성장해가는 독특한 소영웅 캐릭터다.
특별하고 재주있는 이들이 아닌,
휴머니티(Humanity)를 지닌 이가 리더로써
파괴된 지구를 재탄생시키는 임무를 우여곡절끝에 완수해 나가는 영화...
어쩌면 이 영화는 감독의 상상속 난세에 필요한 어떤 적임자의 모습을
형상화 해 그려넣은 것이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조금 보다보면,
이 있으나 없으나 마나했던 9명의 로봇들이
파괴되어 버린 지구의 최후의 생존자들로
왜(Why?) 간택되었는지 궁금해지도록 만든다.
이런 궁금증은 영화속 9(나인)도 갖게 되고
이 인물을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도 생기게 만든다.
왜일까?...왜였을까?...
극중 주인공과 관객이 모두 같은 의문점을 가지고
스토리를 쫓아가는 독특하고 기발한 발상이란 느낌이다.
둘 모두에게 던지는 화두같은 메세지는
현대인에게 던지는 심오한 철학이었을까...
9(나인)까지 만들고 죽어버린 과학자의 방으로 찾아가
자신들을 왜 창조했고,
자신들이 왜 존재해야 하며,
자신들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답을 찾고자 한다.
영화는 종반으로 접어들면서
세기말적 분위기면서도 동화같은 이 9명의 캐릭터에
점차 숭고함을 조금씩 불어넣기 시작한다.
마지막 장면에 가서는
영화 '13고스트'가 연상되어지는 씬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는 비슷할 뿐 분명 다른 뉘앙스를 담고 있다.
제작자로만 참여했다는
'유령신부'의 팀 버튼과 '원티드'의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이 둘의 냄새는 감독이 아닌 제작자들임에도
영화 곳곳에 흠뻑 배어있는 듯 하다.
9명의 캐릭터들에겐 팀 버튼의 냄새가,
전체적인 분위기와 상상력엔 티무르 베크맘베토브의 냄새가 말이다.
상영시간은 짧아도 있을건 다 있는 영화!
긴장감, 스피드, 액션, 메세지까지...
목장갑 패션에 가슴엔 본인 머리만한 큰 지퍼까지 달고 있던
9(나인)의 생소했던 모습에 적응키 어렵던 이 영화가
끝날 즈음엔 저런 피규어 하나 가지고 싶단 생각으로 바뀌어졌던 영화...
그게 바로 영화 '9(나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