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에우리피데스를 알고 계십니까?”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주인공 와타나베가 침상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말하고 있다. 환자는 여자 친구 미도리의 아버지다. 미도리와는 연극사 수업에서 만났다. 미도리가 병실을 맡기고 일을 하러 간 사이, 아버지가 눈을 뜨고, 와타나베는 자기소개를 한다. 참 어색한 만남이다. 이 어색함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소소한 신변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환자에게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는 듯 보이는 이 이야기 가운데 그리스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가 등장한다. 왜 하필이면 에우리피데스일까? 에우리피데스가 즐겨 썼던 데우스 엑스 매키나에 관한 대목에서 작가의 의도를 눈치 채게 된다.

 

그의 연극의 특징은, 모든 사람들이 엉망으로 혼란에 빠져서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어 버리는 점입니다.…… 모든 사람이 정의가 통하고 모든 사람의 행복이 달성되는 일은 원리적으로 있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카오스가 닥쳐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게 또 실로 간단하게 풀립니다. 마지막에 하느님이 나타나는 거죠. 그리고 교통정리를 하는 거예요. ……그리하여 모든 일이 제대로 해결됩니다. 이걸 바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 부르고 있어요. 에우리피데스의 연극에는 노상 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나오는데, 이 대목에 이르러 에우리피데스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갈리고 있어요.

그러나 만일 현실 세계에 이러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있다면 일은 편할 겁니다. 곤란하게 됐다,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됐다고 생각되면, 하느님이 위로부터 스르르 내려와서 모두 처리해 줄 테니까요. 정말 편할 겁니다. 우리는 대학에서 대체로 이러한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 노르웨이의 숲무라카미 하루키)“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의 멍한 얼굴에서 이해했는지 기색을 찾으며 지껄이는 이 이야기는 그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역시 혼돈에 빠져 옴짝달싹 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주인공이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반복하는 소설의 마지막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말하던 이 병실 장면과 겹쳐진다.

 

하루끼가 와타나베를 통해 말한 것처럼 이런 장치가 우리 인생에도 있다면, 어떨까? 처음 대답은 없는 편을 선택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구원만이 해결책일 것 같은 인생의 순간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방이 꽉 막히고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 조금 살아보니, 속단과 장담은 지금의 나보다 더 어린 시절의 몫이란 생각이 든다. 소포클레스가 누군가 이틀 또는 그보다 더 많은 날들을 미리 내다보려 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트라키스의 여인들943~945)”이라고 노래한 것처럼 장래는 알 수 없으니. 어찌 알겠는가 그처럼 나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바랄 혼돈가운데 빠지게 될지.

 

에우리피데스의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에는 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등장한다. 아울리스에서 신전에 제물로 바쳐진 이피게네이아는 아르테미스에 의해 타우리스족의 땅 타우리케로 옮겨지고 신전의 사제로 살고 있다. 어머니와 그의 정부를 죽이고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던 그녀의 남동생 오레스테스는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훔쳐오라는 아폴론의 명령을 받는다. 친구 퓔라데스와 그 땅에 도착하고, 사로잡힌 그들은 이 신전의 제물로 바쳐질 위기에 처한다. 제물의 축성을 담당한 이피게네이아와 오레스테스는 대화 도중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 남매는 토아스 왕을 속여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가지고 이 땅을 탈출하기로 한다. 역풍으로 인해 배가 출발하지 못하고 생포될 위기에 처하지만 아테나 여신이 나타나 구해준다. 아테나 여신이 나타나 토아스의 추적을 멈추게 하고 그들을 떠나게 하라고 명령하는 장면이 바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괴테의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에서는 이 기계적 장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사라졌다. 대신 이피게니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그들을 살리려 하고, 그녀의 지혜와 설득의 힘이 구원으로 이끌고 간다. 그 땅의 통치자 토아스의 마음을 돌린다. 한때 낭만주의자였던 괴테다운 마무리란 생각이다.

 

에우리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는 트로이를 향해 출항하려고 모여든 그리스 연합군의 함대가 바람이 불지 않아 항구에 발이 묶인 상황에서 시작한다. 이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칼카스의 예언이 아가멤논에게 전달되었고, 아가멤논은 그녀를 아울리스로 데려오라는 편지를 보낸 상황이다. 아가멤논은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번복하지만, 메넬라오스가 막아서고, 아울리스에 모여있는 그리스 함대의 압박을 느낀다. 사실을 알고 클뤼타임네스트라가 반대하고, 이피게네이아 역시 아버지에게 애통해하며 간청한다. 아킬레우스 역시 그녀를 구해주겠다고 한다. 이피게네이아의 아버지의 호소에 다시 마음을 바꿔 희생하기로 결심하고 신전을 향한다.

 

이전 신화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아 삼부작,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에 따르면 이피게네이아는 아울리스에서 희생 제물로 바쳐져 죽든지, 구원되어 헬라스에서 불멸의 존재가 되든지, 구원되어 타우리오족의 땅에서 불멸의 존재가 된다. 에우리피데스는 그녀가 죽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라신은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을 따르면서, 더 많은 등장인물, 더 많은 변수들을 추가했다. 17세기 사람들에게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아킬레우스와 이피게네이아의 사랑이 이 극을 이끌어가는 한 축이 된다.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에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아가멤논에게 존재만으로도 압박이 되었던 오디세우스가 직접 등장하여 트로이로의 출전을 재촉하는 그리스군의 입장을 대신한다. 라신은 여기에 이 극의 반전을 일으킬 인물 에뤼퓔레를 등장시킨다.

 

어쨌든 그리스 신화와 비극에 등장하는 아가멤논의 가정사를 보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의 분노를 산 아가멤논이 딸을 제물로 바치고, 그의 부인 클뤼타이메스트라는 트로이에서 돌아온 그를 죽이고, 딸 엘렉트라는 어머니와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내내 저주한다. 아들 오레스테스는 복수를 위해 어머니 클뤼타이메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를 살해한다. 트로이 전쟁은 클뤼타이메스트라의 동생 헬레네을 구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비극 아니 참극이 가능할까?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은 어떤 일도 벌일 수 있고, 그 욕망으로 인해 이런 비극은 오늘날에도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신탁이나 명예, 미덕이라는 것들로 포장되었을 뿐이다.

 

이피게네이아는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의 지위를 시사하고 있다. 그 여성의 운명은 그 가정이 속해 있는 도시국가와 더 큰 세계의 정신이 지배하고 있다. 여성뿐 아니라 한 개인을 지배하는 시대정신과 그 정신의 한계는 이피게네이아를 재해석한 라신과 괴테에게서도 볼 수 있다. 개인은 그 정신에 의해 때로 원하지 않는 삶으로 이끌려 간다. 에우리피데스의 이피게네이아도 라신의 에리퓔레도 자발적으로 희생을 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 그 선택에는 개인이 거스를 수 없는 큰 힘이 작용하고 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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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8-21 16: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노르웨이 숲에 저런 대사가 있었군요 잘 읽었습니다 한 주 잘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3-08-21 16:59   좋아요 3 | URL
제 책이 오래되서 페이지 안 넣었어요.
거의 뒷부분에 있습니다.^^

페넬로페 2023-08-21 17: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하루키를 좋아하는 부분이 저런 면이예요. 엉뚱하지만 진지한 모습요.
에우리피데스 읽으면 저도 꼭 저 부분 인용하려고 했어요.

그레이스 2023-08-21 17:42   좋아요 3 | URL
^^~♡
어제 상실의 시대 다시 읽었어요.
3번째네요
바쁜데....ㅠ
다시 읽으니 못봤던 것들이 많았네요.

미미 2023-08-21 20: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라신 희곡선>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아가멤논 <일리아드>에서 얄미웠는데 콩가루 집안이었군요?
상실의 시대 3독이라니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3-11-08 13:11   좋아요 2 | URL
콩가루집안 ! ㅎㅎ
저도 일리아스에서 아가멤논 별로예요
여기서도 그렇긴한데,,, 그리스 연합군 총지휘관이라는 무게가 느껴지긴 해요.
암튼 갈등하는 그도 별로 맘에는 들지 않죠.
상실의 시대 읽을때마다 다르네요.
발췌때문에 도서관에서 노르웨이의 숲도 빌려봤으니...^^
그런 책이 있더라구요.
제게 자꾸 돌아오는 책이!

라신 희곡집도 좋았어요
잃시찾때문에 페드르(파이드라)도 봐야해요.

cyrus 2023-08-21 2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20대 중반에 문학사상사 판 <상실의 시대>를 읽었어요. 책 속에 에우리피데스를 언급한 대목이 있었군요. 신기해요.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2권이거든요. 20대의 저는 에우리피데스를 잘 몰랐을 거고, 그가 쓴 비극을 읽을 줄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

그레이스 2023-08-21 21:0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책을 읽을수록 자꾸 고전쪽을 향해 가게 되네요^^
 
길고 긴 나무의 삶 - 문학, 신화, 예술로 읽는 나무 이야기 피오나 스태퍼드 식물 시리즈
피오나 스태퍼드 지음, 강경이 옮김 / 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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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서울에서는 자작나무를 볼 수 없게 될 것 같다. 한동안 공원마다 자작나무를 10주 이상씩 군식(群植)해서 하얀 수피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는데, 그렇게 심겨진 자작나무는 이제 기온상승으로 인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한그루씩 베어져 나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리짓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나무다. 내가 처음 자작나무에 매료된 것은 광릉 숲에서다. 가을 금빛으로 반짝이는 나뭇잎들을 달고 무리지어 서있는 하얀 나무들은 숲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안내하는 연구원 분은 이쪽 거는 우리나라 자생, 저쪽은 만주 자작나무 하고 손으로 가리키며 알려 주셨지만, 그런 식의 구분은 나에게 의미가 없었다. 하얀 옷을 입고 서있는 무리들이 만드는 이국적인 정취에 반해 이후로 자작나무는 나의 최애 나무 중 하나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라는 소설에서 매머드의 시대 사람들이 자작나무 부드러운 수피의 효용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클림트의 그림, 시베리아 유형지 등, 자작나무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나의 추억과는 다르게 저자는 이 나무 이야기를 자작나무(Birch)의 체벌(birch)이라는 뜻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 유연한 가지들이 회초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수피에 있는 짙은 반점들은 눈처럼 보여서 아르고스(그리스 신호에 등장하는 백 개의 눈을 가진 거인)나무라고 부른다. 존 러스킨, 존 밀레이, 구스타프 클림트, 로버트 프로스트의 그림과 시에 담긴 자작나무를 소개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오슬로 북쪽 거대한 삼림지대 노르마르카에 있는 은색자작나무 숲이다. 이 삼림지대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미래도서관>은 묘목들로 이루어져 100년 후 1000그루를 이용해 출판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청탁받은 작가는 마거릿 애트우드, 데이비드 미첼과 함께 한강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내게 있어 호랑가시나무는 항상 천리포 수목원을 떠올리게 한다. 방문 당시 탄성을 자아낸 것은 사람 키의 두배 정도 되는 사초류(억새)이다. 잡지에 나온 캘리포니아나 미국 남부지역의 저택 입구의 풍경을 이루던 그 식물을 보게 되어 반가웠고, 이런 조경식물이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했는데, 이제는 서울 도심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또 한 가지 감탄의 대상이었던 것은 물속에 잠겨 있던 낙우송이다. 붉은 낙우송은 연못을 조성하면서 물에 잠기게 되어 그런 신비한 빛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나무들에 시선을 빼앗기고 감탄하고 있는 우리에게 연구원은 그들은 열악한 생존을 이겨내고 있는 중이라고 수목원의 숲을 이루고 있는 호랑가시나무를 주목하라고 환기시켰다.


호랑가시나무는 백악기 화석기록을 남긴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이름이 Holly인 이 나무는 크리스마스 리스에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친숙하다. 이름에서 예측되듯 악령을 쫓는다든지 이 나무를 훼손하면 재앙을 당한다든지 하는 그런 믿음들이 있었다고 한다. 미국의 Hollywood가 이 나무 이름에서 왔다. 재미있는 것은 유럽 이주민들이 미국 서해안에 도착해서 주홍 열매와 상록수 잎을 단 토착나무를 보고 캘리포니아 홀리(Callifornia Holly)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사실 그 나무는 토연나무(Toyon tree)였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토연우드보다는 할리우드가 더 그럴듯하다.

 

물푸레나무(Ash)는 실물보다는 도마나 가구, 문학으로만 익숙하다. 이제는 물푸레나무는 제임스 조이스의 지팡이와 존 컨스터블의 그림으로 기억될 듯하다. 컨스터블의 풍경화에 자주 등장하듯 영국의 풍경을 이루고 있는 흔한 나무이다. 이 나무로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하는 놀이가 있다는 것은 쉽게 구하고 친근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속성수라는 점과 목재의 단단함과 유연성 때문에 목재를 다루는 이들에게 사랑받는 소재다. 썰매, 스키, 갈고리, 지팡이, 의자, 마차 바퀴 등에 사용된다. 제임스 조이스가 항상 들고 다닌 것이 이 물푸레나무 지팡이다. 1941년 생산라인을 떠나게 된 모스키토 폭격기 역시 이 나무가 재료이다. 1940년대 자동차의 뼈대에도 사용되었다영국에서 가장 친근한 나무 가운데 하나인 이 나무는 물푸레나무 역병과 호리비딱정벌레의 습격으로 인해 위기를 만났다고 한다.

 

사시나무처럼 떨다는 말이 영국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포플러(Poplar)의 한 종류인 사시나무(은백양)은 잎병(잎자루)가 가늘어서 공기의 작은 흐름에도 흔들린다. 잎의 윗면은 짙은 초록색이고 뒷면은 은회색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바람에 흔들리면 그 잎의 떨림이 반짝이는 듯 더 눈에 띈다. “존 키츠는 미완성 서사시 <히페리온Hyperion>에서 정복당한 고대 대지의 신들을 그릴 때 이 패배한 이교 신들의 지도자가 흐린 눈에 마비된 혀, ‘사시나무 병으로벌벌 떠는 수염을 가졌다고 묘사했다.(183p)”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조경수 뿌리에 달려와 심기는 바람에 이질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은백양이 한그루 있다. 책상에 앉아 창밖을 보면 바람이 없는 날에도 파르르 반짝이고 서있다.

 

저자는 이 책의 목차 첫 번째로 주목(Yew)을 두었다. 길고 긴 나무의 삶(The Long, Long Life of Trees)라는 제목과 가장 잘 어울리는 수목이기 때문일 것이다. 느리게 자라기도 하지만 긴 수명을 가진 나무다. 성장이 느려서 나이테로 그 정확한 나이를 측정할 수 없다. 오래 전 문학이나 역사 향토 기록을 통해 그 수명을 짐작해보기도 한다. 둘레가 10미터가 넘는 주목은 약 2,500년이 넘는다고 추정한다.


주목은 정원수 중 비싼 나무에 속한다. 묘목을 심으면 다음 세대에야 성목을 볼 수 있다. 아파트 입구에 원추형으로 서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그 형태 때문에 겨울이 되면 전구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보는 그 형태는 전정가위로 다듬어진 모양이다. 주목은 잎을 잘라내면 옆으로 퍼지면서 밀도를 높이기 때문에 토피아리나 수벽으로도 이용된다. 유럽의 오래된 정원의 자수화단에 서있는 동물모양의 나무들은 대부분 주목이다느리게 성장하는 주목의 목재는 그만큼 튼튼해서 고급 소재로 사용된다. 목재의 강함과 탄성때문에 주목은 영국의 활 롱보우longbow 에 사용되었고 그 파괴력은 가히 위력적이었다고 한다.

<웨일스의 위대한 주목길>

웨일스의 위대한 주목 길에 있는 아치형 주목 터널에 있는 오래된 나무는 피를 흘리는 것처럼 붉은색의 액체를 내기도 한다. 주목은 나이가 들면 줄기 속이 비기 시작하고 가지가 늘어져 땅에 닿으면 그 가지에서 새로운 생장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해서 터널이 형성된다. 사람들은 오랜 역사와 그 신비로움에 반하는 듯하다.


그밖에도 벚나무, 마가목, 사이프러스, 산사나무, 느릅나무 등 영국인들이 좋아하고 친근한 나무들과 관련된 역사와 신화 문학과 예술 정치와 경제를 시적 언어로 이야기한다. 프루스트의 작품에서 자주 그려졌던 산사나무와 포플라는 영국인들에게는 조금 다른 느낌의 대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사나무의 추억과 관련된 프루스트의 아름다운 표현과 달리, 아일랜드의 산사나무(가시나무)는 경작지의 울타리로 사용되었고, 죽음을 상징하기도 하는 조금은 어두운 인상을 준다. 아일랜드의 기근을 배경으로 한 소설 <슬픈 아일랜드>에서도 산사나무가 죽음의 소식을 전해주는 매개로 사용되었다.

 

롬바르디아 사이프러스에 반해 여행자들이 영국으로 들여오던, 여행이 유행이던 시대 풍조들, 버찌와 산사열매를 좋아해서 식재를 장려한 왕들, 위험성 때문에 Cherry picker 면허를 받은 사람만 버찌나 산사열매를 수확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들, 이 책에 등장하는 나무들은 신화, 역사, 생활사, 문학과 예술 등의 다양하고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새삼 나에게도 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해준, 충만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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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8-18 0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남은 이 달 건강히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레이스 2023-08-18 05:1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곡님도 건강히 잘 보내세요

미미 2023-08-18 08: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자작나무 저도 좋아하는데 저희 동네 공원에도 있거든요. 그 자리를 지나갈 때마다 감상하려고
천천히 걷게 되요. 기온 상승으로 너무 많은 것들이 바뀌어가네요.
웨일스의 주목길도 아름답습니다! 빨간망토 소녀가 막 달려 나올 듯한^^
그레이스님의 피톤치드같은 리뷰네요~♡

그레이스 2023-08-18 10:05   좋아요 3 | URL
빨간망토 소녀를 상상하시는 미미님!
미미님이 그 소녀를 닮았을까요?
신비로운 주목의 생명에 감탄했습니다.

페넬로페 2023-08-18 09: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강원도 월정사 입구에서 본 자작나무가 생각나요.
나무는 보기만 해도 좋아요.
근데 이름을 잘 몰라요.
웨일스 주목길, 가고 싶어요^^

그레이스 2023-08-18 10:08   좋아요 4 | URL
주목길 뿐 아니라 웨일스에는 저도 가보고 싶어요~♡

거리의화가 2023-08-18 12: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푸레나무 단단하면서도 유연해서 다양한 곳에 쓰이는군요^^ 주목의 터널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놀랍네요! 올려주신 이미지를 보니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도 자주 본 듯합니다.
기후재난으로 이제 남한에서는 자작나무를 보기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그레이스 2023-08-18 13:43   좋아요 2 | URL
예 자작나무 제대로 감상하려면 강원도 인제쯤 가야할듯요

책읽는나무 2023-08-18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웨일스의 주목 터널은 좀 무섭네요?
사람의 팔 같아 보이기도 하고, 머리카락 늘어뜨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
신비롭기도 하네요.
자작나무가 서울에도 있었었군요?
강원도 인제에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동네는 뭐...아니 이 곳에 자작나무가? 하고 놀라서 달려 갔더니 인조 자작나무!!!ㅋㅋㅋ

그레이스 2023-08-18 18:25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러고보니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겠네요
서울에도 한동안 자작 많이 심었었죠.
 
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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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리뷰를 남겨야 할지 벅찬 책들이 있다. 온통 발췌문만 가득해지고 내 문장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기가 힘든……. 보뱅의 책들이 그렇다. 아름답다는 말로만은 표현할 수 없다. 그가 보는 세계는 그에게서 정화되어 글이 된다. 그 글은 아포리즘이 되고 시가 된다. 새롭게 창조된 세상이 된다.

 

원제 ‘La Folle Allure’미친 발걸음정도로 번역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순화하면 무분별한 발걸음이라고 하면 될까? 그러고 보니, 소설의 표제지에 인쇄되어 있는 작가의 글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우리는 이중의 삶을 살아야 한다. 같은 수레에 묶여 서로 자기 쪽으로 미친 듯이 끌어당기는 두 마리 말과 같은, 기쁨과 고통, 웃음과 그늘이라는 두 줄기 피가 우리 마음에 흐르게 해야 한다. 그러니 적절한 보폭을 찾고 올바로 판단하려 애쓰는 눈밭의 기수들처럼 앞으로 나아가자. 그 길에서 만나는 아름다움이 때론 얼굴을 때리는 낮은 나뭇가지처럼 우리를 쓰리게 하고, 목덜미로 달려드는 황홀한 늑대처럼 우리를 물어뜯는다 해도.

-크리스티앙 보뱅


이 소설에는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한 글이 많이 담겨 있다. “나는 진지할수록 웃는 게 좋고,……이름들은 진지하다. ()은 태어날 때부터 당신 위로 떨어지고, 나이가 들수록 두툼한 옷 속으로 스미는 가랑비처럼 점점 더 무거워진다.(29)” 타고난 혈통에 덧입혀진 의미들로 말미암아 무거워진 존재를 생각하게 된다. 밀란 쿤데라는 자신의 소설에서 존재의 가벼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독자에게 사유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보뱅은 이 소설 가벼운 마음에서 계속해서 탈주하는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무거움으로부터 탈주다. 무거움을 견디지 못한다.

 

화자이며 주인공인 뤼시는 나는 오로르다라고 소개하고는 곧 아니 농담이다. 내 이름은 벨라돈이다. 그리고 마리 뤼드밀라, 앙젤, 에밀리, 아스트레, 바르바라, 아망드, 카트린, 블랑슈다.(29p)”라고 한다. 그녀는 그 누구도 아니고 그 누구도 될 수 있다. 한 가지 이름으로 규정되길 거절하고 규정 될 수 없다는 뜻이리라. 모비딕“Call me Ishmael”이란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짧은 문장의 번역과 해석을 놓고도 독자들은 많은 의미들을 만들어 냈다. 이름으로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대표적 소설이다. 반면 보뱅의 이 소설에서는 화자가 지나가며 가볍게 농담하듯 여러 가지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하며, 오히려 웃음이 자신보다 강하다고 말한다. 이름조차 말할 필요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뤼시의 영혼의 친구는 늑대다. “내 첫사랑은 누런 이빨을 가지고 있다.” 두 살 때 늑대의 우리 안에서 늑대의 배에 머리를 대고 잠이 들어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들이 공포에 떨었던 것은 우리 안에서 졸고 있는 짐승이 아니라 우리 위에 적힌 빨간 글씨의 안내판이다. “두렵게 만드는 건 이름이다. 이름이 없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실체 자체도 없다.(11p)” 늑대의 죽음과 함께 그녀의 가출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많은 이름들을 지어냈다.

 

뤼시는 서커스단에서 태어나 자랐다. 부모가 있지만 특별히 누가 부모랄 것도 없이 그 공동체 내의 열세 가정에서 동시에 자랐다. 어릿광대나 곡예사 아주머니 등 어른들에게서 자랐다.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은 직관적이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늑대와 같고 어머니는 고양이 참새, 넝쿨식물, 소금, 꽃가루 같다.

 

뤼시는 네 살짜리 쌍둥이 동생들을 물속에 빠뜨리고, 머리위로 비둘기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싶어 세례를 주었다고 말함으로 어릿광대 아저씨의 교육을 무화시키지만, 그의 몸짓과 표정으로 표현된 복음서 이야기들을 승화된 아름다운 예술적 장면으로 기억한다.

종교에 관한 한, 나는 향유, 맨발, 머리카락, 이 눈부신 삼위일체에 머물러 있다.(41p)”

 

그녀는 글을 쓸 때 잉크로 쓰지 않는다. 가벼움으로 쓴다.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여름비의 도도한 서늘함에 침대 맡에 팽개쳐둔 펼쳐진 책의 날개들에, 일할 때 들려오는 수도원 종소리에. 활기찬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음에, 풀잎을 씹듯 수천 번 중얼거린 이름에, 쥐라산맥의 구불구불한 도로에서 모퉁이를 돌아가는 빛의 요정 안에,…… 저녁마다 덧창을 느릿느릿 닫는 의식에,……(68p)”

 

아름다운 글이다. 그녀가 말하듯 어디에나 가벼움이 있지만, 찾기 힘든 게 우리다. 그렇게 희박해서 찾기 힘들다면, 그 까닭은 어디에나 있는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기술이 우리에게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단순하게 받아들이기! 나로서는 실천하기 힘든 태도다. 그런 기술을 장착할 수 없는 것은 불안 때문이 아닐까?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해도 될까?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말해도 될까? 그 뒤에 다른 의미들이 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서커스단에서 태어나서 이리저리 유랑하고, 다툼이 일상인 부모가 불편하면 다른 트레일러를 찾아가고, 가출이 습관이 되어버린 아이 뤼시는 불행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 속에 감추어진 가벼움으로 글을 쓰는 능력은 그러한 삶에서 갖게 된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렇진 않겠지만 그녀에겐 축복이 되었다.

 

마주할 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고 바로 그때가 되면 생각하는 것, 어떤 일을 할 때 왜 하는지 몰라도 할 수 있다는 것, 가벼움으로 본 삶에 대한 깨달음이다. 사랑과 결혼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 “사실 감정의 깊이는 사랑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때가 많다.” “부부생활을 더딘 죽음을 견뎌내는 커다란 짐승과 같다.” 그리고 궁극적인 질문 영혼은 무엇인가?”이른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은 그녀에게 이런 질문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녀는 자신의 질문들에 바람을 쐬어 주고 응시하기 위해 자주 홀로 머문다. 그녀는 누군가의 구속을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다.

 

나의 늑대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눈에 비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죽음을 향해 가고 있으며, 그들이 다가오는 것 같을 때라도 실은 우리에게서 멀어진다는 것과, 모든 건 처음부터 사라지며 소멸해간다는 것이다. …… 그 때문에 오히려 주저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으며, 그 생각으로 나는 이 순간에도 노래 부를 수 있다.(154p)”

 

누군가에게는 미친 발걸음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은 가벼움을 찾아가는 걸음이다. 그만큼 무게를 덜어내기가 쉽지 않으므로 갈지자로 보인다. 유목민처럼 태어나고 살았던 그녀일지라도. 수많은 의미가 담긴 시선으로 보면 그 가벼운 마음의 행보가 미친 듯 보인다. 그녀와 달리 오늘도 모든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나를 본다. 무겁다. 무엇이 나에게 더 좋은 삶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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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7-31 15: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아서 주변에도 선물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에게는 웃다가 벅차서 눈물 나는 가벼움이었어요.
설명하기 힘들어서 독후감 쓰지 못했는데 그레이스님의 리뷰로 대리만족합니다.ㅎㅎㅎ

그레이스 2023-07-31 15:07   좋아요 3 | URL
미미님도 그러시군요.
그냥 책 한권으로 간직하고 싶은 그런 글들이죠. 뭔가 감상을 쓰는게 훼손하는 것 같은! ㅎㅎ

거리의화가 2023-07-31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순하게 받아들이기,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장들이 참 아름답네요. 저도 언젠가 보뱅 만나보겠습니다^^*

그레이스 2023-07-31 15:28   좋아요 2 | URL

정말 넘 아름다운 문장들이예요
제 책상에는 환희의 인간이 올려져 있습니다.
절판된 책들도 다시 나왔으면 좋겠네요.

페넬로페 2023-07-31 15: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 이 책 다 읽었는데~~
다시 읽으려고 해요.
제 나름의 의미를 아직 찾지 못했어요.

그레이스 2023-07-31 15:29   좋아요 3 | URL
예~
저도 다시 읽게 되면 놓친게 많은걸 알게 될 것 같아요

얄라알라 2023-07-31 19: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영광입니다!!!!

[가벼운 마음]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바로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읽었을 정도로 보벵의 문체와 매력적인 인간형에 반했었는데요. 그의 문장에 압도되다 보니, 찬탄만 나오지 독자로서 어떤 문장으로 정리해야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주인공이 남편을 떠나 계단을 내려올 때 내던 그 소리가, 책 읽은지 몇 달 지나고 난 지금 가장 먼저 생각납니다 그레이스님께서는 ‘이름‘에 주목하셨네요. ˝ 이름조차 말할 필요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그레이스님 말씀)___ 혹 제가 이 책을 또 읽을 기회가 생긴다면, 그 땐 그레이스님의 시선을 상상하며 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다시 읽고싶어지네요

그레이스 2023-07-31 20:16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댓글에 감동받았어요
저도 말씀하시는 그 부분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티타티티타티, 티타티타타티...~♡

제가 영광입니다^^

얄라알라 2023-08-01 12:43   좋아요 1 | URL
아!!! ㅋㅋ맞아요 그레이스님

˝티타티티타티, 티타티타타티....˝

자꾸 그 부분에서 무용수의 몸짓을 상상했는데

티타티티타티, 티타티타타티..
요거 였군요^^

2023-08-01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1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오 2023-08-02 18: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가벼운마음 진짜 좋죠!!!!! 🥹🥹🥹🥹🥹🥹🥹🥹🥹🥹🥹🥹🥹🥹🥹🥹🥹
저도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보뱅 에세이도 한권 읽었는데 이것도 좋았지만 역시 가벼운마음이 최곤거같아요.. 진짜.. 너무 좋아....ㅠㅠ

그레이스 2023-08-02 21:31   좋아요 1 | URL

다들 좋다고 하시니, 저도 뿌듯합니다.
보뱅읽기는 계속되어야 할듯요.

얄라알라 2023-08-03 0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보뱅의 파란책을 빌려왔는데 제목이 갑자기 기억이 안남이요...혹시 은오님 말씀하시는 에세이일까?^^ 기억력을 구박하며 서가로...가봐야겠습니다 ㅎ

그레이스 2023-08-03 05:14   좋아요 1 | URL
환희의 인간!
저도 그거 읽으려고 해요~~

얄라알라 2023-08-05 03:54   좋아요 1 | URL
^^ 그레이스님

온통 파란 그 책 제목은 <인간, 즐거움>이네요 저도 이후 찾아봤어요

1984books처럼 편집이 예쁘지는 않아서 말 그대로의 파란색이예요^^

저도 나중에 <환희의 인간> 읽어볼게요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3-08-05 07:59   좋아요 0 | URL
그건 없는데...
찾아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ㅠㅠ
절판된 책이군요.
도서관으로....!
 

그리스 비극을 처음 읽었을 때는 서사를 놓치게 되는 순간이 많았었다.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한권 전체를 읽는데 주석(註釋)이라는 돌부리들을 만나 흐름이 깨지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다. 재독(再讀)의 즐거움 중 하나는 처음과 달리 제법 막힘없다는 것이다. 두 독서 사이에 지식을 쌓은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확인해야 하는 사실들이 있다. 처음 읽을 때보다 오히려 참고할 책들이 많아지기도 한다. 서사는 알고 있으니 처음 겉핥기로 지나쳤던 지식을 더 찾아보는 여유가 생기기도 했고, 무엇을 더 읽어야할지 잘 보이기 때문이다.

 

아폴로도로스의 비블리오테케 BIBLIOTHEKE를 번역한 이 책은 토마스 불핀치나 에디스 해밀턴, 그리고 국내작가가 쓴 그리스 로마신화와 달리 간결하여 곁에 두고 사전처럼 읽기에 편한 책이다. 호메로스나 기원전 5세기경에 활동했던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와 같은 작가들도 자신의 작품에서 신화나 영웅의 이야기를 각색하고 재구성했다. 이렇게 신화책들은 구전되거나 극적효과를 위해 재구성된 것들을 기록하다보면 내용이 많아지고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공존하게 된다. 아폴로도로스는 기원전 2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하던 아테나이 출신 대학자이다. 이전 기록들을 참고하여 백과사전 형식으로 정리한 책이다. 그래서 제목도 비블리오테케 BIBLIOTHEKE’. 고대 도시 국가의 탄생과 그 왕들의 계보와 함께 그들과 관련된 신화에 관한 정보를 주고 있다.

 

그리스 비극을 읽기에 좋은 참고서다. 예를 들자면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배경이 되는 고대 테바이의 신화와 역사를 시간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특히 라이오스와 아들 오이디푸스로 이어지는 테바이의 왕위계승자들과 찬탈자들, 테바이 전쟁에 관한 기록은 두 세 페이지 안에 비극의 핵심 내용이 담겨있다. 한 줄의 문장을 비극으로 탄생시킨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한다. 아니, 복잡하고 극적인 사건을 신문기사처럼 간결하고 정확한 정보로 전달하는 아폴로도로스와 같은 기록자에게 감사하게 된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시간적으로 오이디푸스왕안티고네사이에 위치하지만 소포클레스의 현존하는 작품으로는 가장 늦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오이디푸스 왕이 분노와 죄책감으로 스스로 눈을 멀게 한 이후 시간이 흐른 후의 이야기다. 격정이 지나가고 절망했던 친부살해와 근친상간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달라져있다. 콜로노스에 도착한 그는 아테나이 시민들에게 나는 법 앞에 결백하며 영문도 모르고 그리 했던 것이오.(549)”라고 말합니다. 진실을 알게 되었던 때, 죽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었으나 세월이 흘러 고통이 가라앉고, “홧김에 지난날의 과오를 너무 지나치게 벌주었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그때서야 비로소 도시가 나를 억지로 나라에서 내쫓으려 했다.(437~440)”라고 회상합니다. 콜로노스에 도착한 그는 아테나이 시민과 테세우스에 의해 환대를 받는다. 그는 예언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과거 눈이 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비웃고 의심했던 오이디푸스는 테이레시아스의 위치에 서게 된다. 눈이 있으나 볼 수 없었던 것을 눈을 잃고 시간이 흐른 후 보게 되는 역설이다.

 

그를 쫓아온 크레온은, 아리스토파네스가 그의 희극에서 비판했던, 정치적이고 외교적 수사에 강한 인물이다. 그는 부드러운 언변과 태도로 감춘 욕망을 이루어내는 노회한 사람이다. 오이디푸스에게 행한 일들이 정의롭지 않음이 드러나도, 여전히 능란한 말로 변론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정치적인 인간도 안티고네라는 복병을 만나 악수를 두고 후회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 교훈적이다.

 

자신을 찾아온 폴뤼케이네스를 만나지 않으려하는 오이디푸스의 노여움에서 세월이 흐르고 깨달음이 있다 해도 여전히 성품이 변하기는 쉽지 않음을 보게 된다. 안티고네의 설득으로 내키지 않지만 아들을 만나기로 한 오이디푸스가 퇴장하고 코러스가 부르는 노래는 슬프다.

 

경박하고 어리석은 청춘이 지나고 나면

누가 고생으로부터 자유로우며,

누가 노고(勞苦)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이오?

시기, 파쟁, 불화, 전투와 살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난받는 노년이

그의 몫으로 덧붙여지지요.

힘없고, 비사교적이고, 친구 없고, 불행 중의

불행들이 빠짐없이 모두 동거하는 노년이.”

(1229~1238)

 

힘없고, 불행한 상황은 불가피하다해도, 비사교적이고, 친구 없는, 비난받는 노년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생각해보게 한다.

 

주인공이 하데스를 향하는 장면은 호머의 오디세이아,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단테의 신곡의 장면과 오버랩 된다. 또한 노년의 주인공이 욕망, 수치심, 분노 등을 내려놓고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템페스트에서도 보게 된다. 오이디푸스의 죽음은 그의 비극적인 삶에 대한 보상처럼 보인다. 아폴로도로스는 비블리오테케에서 앗티케의 콜로노스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서 탄원자로 앉아 테세우스의 환대를 받았으나 곧 죽었다.(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211p)”라고 짧게 말하고 있으나, 소포클레스는 믿음과 상상력을 통해 재현한다. 고대인들에게 죽음은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며, 이 땅에서의 삶과는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므로, 죽음을 앞둔 인간은, 모든 정념(情念)이 사라지고, 안식을 맞이한다. 인간에게 죽음은 실존이며 영원한 숙제이고 철학적 주제일 수밖에 없다. 문학의 주제로 반복 재현되는 이유일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죽고 안티고네는 테바이로 돌아간다. 크레온은 테바이를 위험에 빠뜨렸던 폴뤼케이네스의 시체를 장사지내지 말라고 명령을 내린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이 벌였던 왕권다툼과 추방된 폴뤼케이네스가 아르고스의 군대를 이끌고 조국 테바이를 쳤던 테바이 전쟁이라는 역사가 배경이다. 그러므로 크레온의 명령은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안티고네는 안티고네가 이 명령을 어기고 오빠의 시체 위에 흙을 덮으러 나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명령을 어긴 안티고네를 체포해서 무덤에 가두는 크레온 앞에 다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등장한다. 소년을 의지해서 등장한 그는 올바른 숙고(생각)’이 가장 값진 재산이라고 말합니다. 그 올바른 숙고의 결과는 양보’, 자기 의지를 바탕을 한 완고함을 거두고 유연해짐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올바른 길은 하나밖에 없음을 주장(796, 685행)하는 크레온에게 하이몬이 한 충고(710, 723, 712-14, 715-17행)와 맥락을 같이 한다. 하이몬과 테이레시아스 모두 배움과 양보, 그리고 실천적 지혜와 유연한 융통성을 강조한다.

 

마사 누스바움은 세계에 대해 완고하기보다는 유연하게 반응하면 세계가 품은 가치의 풍부함을 인식하는 길을 여는 한편, 충분한 만큼의 안전과 안정으로 향하는 길도 함께 열 수 있다.(연약한 선208p)” 고 말한다. 그가 말한 것처럼 크레온이 주장한 에토스의 단일성은 어리석고 추악하고 빈곤하다.

 

강태경 교수는 크레온은 페리클레스를 가리키고 있다고 한다. 당시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맹주 아테네는 패권주의를 추구했습니다. 기원전 5세기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동맹국인 밀레토스(Miletus)와 사모아(Samoa)의 분쟁에 개입하여 사모아와 전쟁을 벌인다. 분쟁국의 전쟁에 참여하게 되면서 전사자가 속출하자 가정장례를 국가 장례절차로 치르게 한다. 사모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한 후 페리클레스는 전몰자를 위한 장례의식에서 연설을 한다. 애도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연설을 했다. 페리클레스의 통치적 의도를 엿보게 된다.


이 작품이 디오니소스 연극축제에서 처음 상연되었을 때 아테네인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그 공로로 극작가를 사모아의 총독으로 추대했다. 이 작품은 첫 상연 이후 32년에 걸쳐 연속적으로 연극축제에 출품되었다.(『고전문헌목록』 J. 랑프리에르)


이 작품에 페리클레스를 비판하는 의도가 있었다면, 작가인 소포클레스가 사모아의 총독으로 추대됐다는 사실 또한 아이러니하다.

 

지금까지 안티고네에 대한 거의 모든 해석들은 헤겔의 논의의 변주와 반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헤겔의 영향력은 절대적(안티고네39p)”이라고 한다. 그는 비극이란 동등한 두 권리 내지는 윤리적 요청의 충돌이며 안티고네는 그러한 충돌의 역학과 그것이 종합적으로 해결되는 정--합의 변증법적 과정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개괄적 이해를 제시한다. “상대적으로 동등한, 궁극적으로 일면적인이 두 윤리적 행위는 각자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상호배제적이라는 점에서 참된 정의”, 곧 보다 높은 윤리적 차원을 획득하지 못하고 상호 파멸에 이른다는 것이 헤겔의 설명이다.

안티고네는 시대와 함께 재해석되어 왔다. 18~19세기 계몽주의 시대, 안티고네는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의 이미지로 열광 받았다. 양극화와 극단적 진영논리가 팽배한 현대 상황에서 마사 누스바움의 해석이 적용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다.

 

완전히 수동적인 희생자는 다른 사람을 돕는 행위를 할 수 없고 크레온과 같은 행위자는 타자를 보지 못한다. ‘운명의 칼날에 서려면 반드시 이런 식으로 질서와 무질서, 통제와 연약성 사이에서 극도로 섬세하게 균형을 잡아야 한다.(연약한 선2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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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7-23 22: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연약한 선>의 발췌문 인상적입니다. ^^
이렇게 어려운 책을 재독하시느라 뜸하셨군요!
공부는 할수록 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ㅎㅎ

그레이스 2023-07-23 22:38   좋아요 3 | URL
^^;;
공부하는 팀이 늘어났어요.
고전 읽기 모임이 하나 더 생겨서 다시 재독 중입니다^^
재밌는데,,, 다시 읽고 논제 만드는데, 더 수월하지도 않네요.

새파랑 2023-07-24 0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랑 좀 다른거 같아요 ㅋ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깊이의 차이가 느껴집니다~!!

그레이스 2023-07-24 01:02   좋아요 1 | URL
;;
다 각자 읽는 프레임이 다를 뿐이죠.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3-07-24 1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름을 잡을 수 있다고 하시니 혹하네요.
근데 저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샀던 것 같은데.. 심지어 읽었던 것 같은데..?? 본가에 있나 찾아봐야겠어요^^;;

그레이스 2023-07-24 18:02   좋아요 1 | URL
ㅎㅎ
완전 공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의 구성요소를 플롯, 성격, 조사, 사상, 장경, 노래로 정의했다. 그 가운데 극중 사건의 순차적 배열방식인 플롯을 비극의 생명이라고 강조한다. 비극의 소재가 널리 알려진 신화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관객은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다. 알고 있는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전개하는가에 따라 관객의 감동은 달라지게 된다.


그는 <오이디푸스 왕>을 좋은 플롯의 예로 제시한다. 극을 이끌어가는 플롯의 세부분은 급전발견파토스. <오이디푸스 왕>에서 사자(使者)의 등장은 상황의 역전, “급전(peripeteia)”을 이룬다. 동시에 역전된 상황(급전)을 통해 어떤 중대한 사실 또는 진리에 대한 발견(anagnorisis)”을 가져 온다. 한순간에 급전과 발견이 일어나, 극적 긴장감을 전달하는 효과적인 플롯을 갖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이 비극에서 오늘 안에라는 예언적 대사의 반복이 보여주듯이 하루라는 시간 안에 완결됨으로 그 긴밀성을 더하고 있다.

 

급전(急轉, peripeteia)이란 사태가 반대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변화는 위에서 말했듯이 개연적으로 또는 필연적 인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오이디푸스에서 그 예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자는 오이디푸스를 기쁘게 해 주고 그를 모친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시켜 줄 목적으로 왔지만, 그의 신분을 밝힘으로써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발견(anagnorisis)이란 그 말 자체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무지(無知)의 상태에서 지()의 상태로 이행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등장인물들의 행운에의 숙명을 지녔느냐 불행에의 숙명을 지녔느냐에 따라 우호 관계로 들어가기도 하고, 적대관계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발견은 오이디푸스에 있어서와 같이, 급전을 동반할 때 가장 훌륭한 것이다. (시학11)”


오이디푸스 왕을 재독하면서 시학과 함께 오이디푸스왕 풀어 읽기도 다시 읽었다. 이 책에는 고대 디오니소스 극장과 그리스 비극과 관련된 유물, 현대 다시 재해석되어 올려진 공연 사진들이 실려 있다. 타이론이 거스리(Tyrone Guthrie)가 연출의 1945년 런던공연(로렌스 올리비에 주연), 1955년 캐나다 스트랫포드 공연 시 타냐 모이세비치가 고안한 가면들, 1952년 독일 다름슈타트 공연, 미로슬라브 마챠첵(Miroslav Machacek)연출의 1963년 프라하 공연, 막스 라인하르트(Max Leinhardt)연출의 1910년 뮌헨·1912년 런던·1920년 베를린 공연의 사진들이다.

 

그리스비극의 기원과 공연을 이루는 요소들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기원전 6세기 중반 아테네에서 디오니소스의 도시라는 축제의 일환으로 시작되어 발전했다. 5세기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의 맹주가 되면서 주변 국가에서도 참여하는 행사가 되었다. 연극은 경연형식으로 이루어졌고 비극 3편과 목양신극(Satyr Plays:반인반수의 목양신들이 등장하는 노래와 춤으로만 이루어진 연극) 1, 또는 희극 3편과 목양신극 1편이 하나의 작품으로 출품되었고, 10개 부족의 대표자들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하여 투표의 형식으로 그 우열을 가렸다.(오이디푸스왕 풀어 읽기174p)”

 

고대 그리스의 극장은 객석 테아트론(theatron:theatre의 어원), 객석을 접하고 있는 반원형 또는 원형의 무대인 오케스트라(orchestra:원래 원형이라는 뜻), 단상 무대인 스케네(skene:scene의 어원)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에는 아고라에 목재로 극장을 만들었다가 객석이 무너지는 사고 후, 산비탈을 이용해 만든 것이 디오니소스 극장이다.

다른 요소들로는 가면(character:원래 가면을 뜻), 코투르나이(kothurnai, 높은 신발)이 있다. 가면은 세명의 배우가 일인다역을 하거나 대규모 공간에서 표현적 연기를 위해서 필요한 장치다.


이 중 가장 새롭게 의미를 발견한 것이 객석을 의미하는 테아트론이라는 단어의 어원과 관련한 것이다. 테아트론(theatron)본다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단어 테아오마이(theaomai, θεαομαι)유심히 관찰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보편적인 원리나 본질을 통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theory도 여기서 파생되었다. 김헌 교수는 객석 테아트론은 무대와 오케스트라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을 통찰(테아오마이)하라는 요청을 받는 자리라고 말한다. 유심히 관찰하는 태도, 그리스의 비극이 현대에도 새롭게 재해석되고, 거기서 독자나 관객이 통찰을 하는 원리다.

 

오이디푸스 왕에는 긴장감과 극적인 반전을 이루는 장면, 충격적 형상 외에도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리스의 역사를 알고 있다면 그 시대 아테네의 정치와 관련된 문제 제기도 포착하게 된다. 사건이 일어나는 곳은 테베라는 고대 도시국가이지만, 소포클레스는 아테네의 상황을 대입시켜 비판하고 있다. 코러스의 합창을 통해 아테네 전통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음을 알게 된다. 크레온과 오디세우스의 대화에서는 참주와 귀족 간의 견제와 갈등을 읽게 된다.

오이디푸스 왕의 마지막 부분을 차지하는 코러스는 신에 대한 경외심을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보아 소포클레스는 전통 질서를 지키려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델로스 동맹의 시대를 살고 있는 그로서는 평화를 깨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역병의 원인에서 출발하여 추적해간 오이디푸스가 닿은 진실은 그가 누구인가이다. 신탁을 피해 도망치지만 그 부르튼 발은 테베와 델포이와 코린트 사이를 헤매고, 세 갈래 길에서 저주를 이루게 된다. 스핑크스로부터 테베를 구하고 지도자가 된 그는 오만했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이다. 눈먼 테이레시아스가 볼 수 있는 오이디푸스의 존재와 운명을 눈뜬 오이디푸스 스스로는 볼 수 없는 아이러니, 이오카스테가 향을 피우며 신탁을 기원하는 자욱한 연기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사신의 초라한 모습이 바로 아폴론의 현현이고, 진실을 가진 자라는 역설을 읽게 된다. 스스로 눈을 찔러 피를 흘리는 그의 참혹한 모습은 두려움과 연민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한다고 하지만, 현재의 시간을 사는 나는 그 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를 생각해본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느끼는 한 연약한 인간의 절망감,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죄의식, 피해갈 수 없었던 자신의 무지와 무능에 대한 분노, 오만했던 시간들에 대한 비웃음과 처벌이었을까?


기원전 5세기 후반, 즉 플라톤이 유년 시절을 보낸 시기의 아테네는 인간의 힘에 대한 맹렬한 갈망과 활기찬 자신감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이때 아테네인들은 인간 삶이 갖가지 형태로 운에 가장 크게 노출됨과 동시에, 통제 불가능했던 우연성을 인간의 진보를 통해 사회적 삶에서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다.(『연약한 선』마사 누스바움 221p)”

이 문장때문에 이 책을 레퍼런스로 추가했다.


(갖고 있는 <시학>은 둘 다 절판된 책이라 같은 저자의 재출간 된 책을 같이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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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30 0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극에 관해 유익한 공부가 된 셈입니다.

그레이스 2023-06-30 09:07   좋아요 0 | URL
그런듯요
희곡 몇개 검색해서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미미 2023-06-30 1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이디푸스 왕>읽다 말았는데 꼭 읽어봐야겠어요! 연극으로 인물과 그에게 벌어진 상황을
읽고 통찰하는것은 참으로 입체적인 경험인듯 합니다.
관련 책들로 다방면에 걸쳐 뼈속까지 읽어내려 노력하시는 그레이스님 너무멋짐요~♡

그레이스 2023-06-30 14:2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재독하니 옛날에 지나쳤던 것들이 다시 보이네요

새파랑 2023-06-30 14: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이디푸스왕이 재미있는 이유가 있었군요~!! 오래전 작품임에도 전혀 위화감이 없더라구요 ㅋ

그레이스 2023-06-30 18:14   좋아요 1 | URL
예 맞아요
지금도 적용할 지점이 많죠~!

서니데이 2023-07-07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이디푸스는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책으로 읽으면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오래전에 산 책이 집에 있는데 지금도 있는지 찾아봐야겠어요.
그레이스님, 더운 여름입니다. 시원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3-07-08 14:07   좋아요 1 | URL
예~
서니데이님도 건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