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ㅇㅅ이가 친구들과 놀이공원에 갔다. 함께 간 친구들 몇 명이 패스트 트랙을 이용권을 갖고 있었다. ㅇㅅ이는 오랫동안 줄서는 자신과 달리 기다리지 않고 입장하는 그 아이들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당연히! 친구들과 자신이 느끼는 불공평함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그럼, 너도 돈을 더 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는 집에 와서 엄마와 이 문제를 이야기 했고, 고민에 빠졌다. 엄마 ○○씨는 아이에게 이 책을 권했다. ○○씨는 아이와 읽다보니 생각할 지점이 많은 것 같았다고, 이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ㅇㅅ이는 내가 지도하는 독서클럽의 학생이다. 매주 토요일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 아이들과 엄마들이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동아리다. 시작한지 3년이 넘었고, 아이들도 많이 컸다. ○○씨는 더 오랜 시간 나와 책을 읽어온 고전독서 동아리 회원이다


항상 그렇듯, 목차를 본 아이들은 흥미를 느끼는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로 나뉘었다. 엄마들도 그에 따라 이 책을 아이들이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표시하기도 했다. 여러 번에 나누어 읽고, 읽기 전에 각 주제마다 찬성과 반대로 팀을 나눈다. 우선은 책 안에서만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증을 정리하기로 했다.(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의 말은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첫 장의 제목이 새치기. 음식점에서 웃돈을 얹어주고 얻었던 은밀한 혜택이 이제는 공항, 놀이공원, 관광지 등의 패스트 트랙(Fast Track)이라는 비용을 지불하고 얻는 정당한 권리가 되었다. 공연장에서는 수고비를 받고 대신 입장권을 사주는 라인 스탠더(line stander)들이 있다패스트 트랙(Fast Track)의 경우, 기업이나 이용자들 모두에게 이익과 편의를 제공하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도 같은 인식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라인 스탠더의 경우, 이 문제를 보수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이런 일반화되고 가벼운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더 심각하고 무거운 문제로 나아간다


병원의 진료 예약권, 연회비를 지불하는 병원의 전담의사제도의 경우가 그렇다. 이 제도는 소수를 위한 전담 진료가 결국 경제적 여유가 없는 다른 환자들을 일반 의사의 붐비는 진료실로 밀어 넣고(50p)”있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줄이 천천히 움직이는 곳에 힘없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불공평하다는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50)”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 우리가 사고 파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패스트 트랙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개인의 자유 존중과 행복이나 사회적 효용의 극대화와 같은 논리로는 놓치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 항상 자유시장경제와 공리주의 시각이 놓치고 있는 무엇이다. 줄서기를 비롯해 재화를 분배하는 비시장적 방식이 시장논리 대체되는 경향은 우리 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이 시장을 움직이게 하는 수요자가 되고 있다.

 

마약 중독자들의 불임수술에 보상을 하는 자선단체 프로젝트 프리벤션의 프로그램으로 2인센티브」의 질문을 시작한다. 태어날 아기의 건강과 행복이라는 문제로 보면 긍정적일 수 있지만, 이 방법에 있어 도덕적인가에 대한 논란은 심각하다. 과연 이 불임결정이 뇌물이나 강압에서 자유로운가에 대해 아니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장은 오히려 극단적인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생활에서 경험하는 많은 인센티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만큼 우리는 부지 중 인센티브로 인해 성취를 경험하기도 하고, 인센티브를 이용해서 아이들이나 팀원을 격려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5장의 명명권은 흥미롭다. 이름에 기업이나 상품의 이름을 붙이는 문제에서 나아가 몸에 광고를 문신하는 사람들에 관해 우리의 생각을 묻는다.

 

과거에는 웃돈을 주고 새치기하는 것은 비난 받는 행위였다. 지금은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지만, 우리가 사고 파는 시장경제 논리는 과거 우리 삶에서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정신이다. 공동체를 지탱해 왔던 평등의 정신이라면 어떨까? 지속적으로 누군가가 불평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 공동체는 합의를 이뤄내기 어렵다. 지금의 양극화의 원인을 거기서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저자는 그럴 수 있어, 그게 왜 문제가 되지?” 할 수 있는 문제들로 우리에게 접근한다. 그러다가 생명이나 존재와 관련된 자본주의의 부조리 문제에 부딪치게 한다. 마치, “이래도? 그래? 그럼 이건 어때?” 하는 것처럼. 어느새 처음엔 가볍게 여겼던 문제들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다시 처음 질문으로 다시 돌아간다.

 

독서 클럽의 ㅅㄹ이는 패스트 트랙에 반대하면서 패스트 트랙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기업은 또 다른 단계의 상품을 만들려고 할 것이고 그것은 또 다른 경계를 만들어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 그거야!^^’)

 

3주에 걸쳐 읽고 있었으므로, 우리가 이 책을 읽고 있던 기간 중에 △△씨는 아이들과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다녀왔다. 첫 날은 패스트 트랙으로, 둘째 날은 줄서서 이용했다. 그러면서 계속 이 책의 내용들이 생각이 났다고, 둘째날 줄 서서 함께 갔던 조카들과 이 문제를 이야기 했다고 한다. 만일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아직은 아이들에게 많은 생각을 기대할 수는 없다. 언젠가 이런 문제들을 고민할 나이가 왔을 때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래본다.

 

나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인용한 존 롤스의 장막 뒤의 선택을 소개했다. 공동체를 위한 선택에 있어 정의를 위한 한 개인의 가장 좋은 생각은 자신이 인종, 성별, 빈부, 학벌 등의 자신의 조건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 의미다. 장막 뒤에 있는 것처럼 자신의 조건에 대해 무지한 사람처럼 입법이나 정치인을 선택해야 한다는 롤스의 정의론을 전해주었다. 자신의 조건 안에서 문제를 바라보지 않는 것이 정의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그러면 어디까지 돈으로 살 수 있는지가 보일 것이라고.

 

ㅇㅅ이의 마음에 흡족한 토론이었길 바란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4-02-05 13: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 이 이야기 어디선가(아마도 인스타?)
에서 본 것 같습니다.

입장권을 사서 놀이동산에 갔는데
좀 더 비싼 패스트트랙인가를 산 이들
에게 우선 탑승권을 준다는.

일단 입장한 이들에게는 모두 동일한
기회를 제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본
의 극대화된 논리에 매몰되어 또 다른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게 정당한가 -

제 생각에 결국 따뜻한 자본주의라는
건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는 유토피아
의 그 무엇인가가 아닌가 싶어졌습니다.

그레이스 2024-02-05 15:02   좋아요 1 | URL
계속해서 끊임없이 자본으로 소수의 특권을 만들어 내고 있죠 ㅠ
그것 말고도 생존권, 공간점유권, 교육권 등 많은 부분이 그렇죠!ㅠ

고양이라디오 2024-03-13 1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클럽을 지도하신다니 멋지십니다^^b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이 이 책을 읽다니 대단합니다.

예전에 재밌게 읽었던 책이라 반갑네요. 또 읽어보고 싶네요^^

그레이스 2024-03-13 17:26   좋아요 0 | URL
가끔 벽에 부딪치기도 하지만, 일단 읽어오긴 합니다. 대견해요~♡
 
르 코르뷔지에, 콘크리트 배를 만나다 - 센강 위 가난한 자들의 안식처 루이즈-카트린의 여정
미셸 캉탈-뒤파르 지음, 류재화 옮김 / 체크포인트 찰리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콘크리트! 손길을 만나고 체온이 닿아, 예술이 되고 시대의 사유가 된다. 구조물은 시선과 마주쳐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고, 생기를 얻고, 글로 살아난다. 르 꼬르뷔지에만 알고 있다면 이 책을 지나치지 말기를!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오 2024-01-25 10: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르 꼬르뷔지에도 모르면 지나쳐도 되나요...?

그레이스 2024-01-25 12:13   좋아요 1 | URL
ㅋㅋ
몰라도... 읽어도 되요
ㅎㅎ

페넬로페 2024-01-25 10: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르 꼬르뷔지에 부터 알아야 하나요...?

그레이스 2024-01-25 12:15   좋아요 2 | URL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에 관한 책인줄 알았는데,,, 그것보다는 예술과 사회를 보는 시선과 관련있어서... 몰라도 되요

그레이스 2024-01-26 08:56   좋아요 1 | URL
간략하게하면 콘크리트를 사용하게 된 시작부터 콘크리트 건축의 역사라고 볼수 있겠네요
앞의 제 댓글이 넘 뜬구름처럼 읽혀서.. 어제 기분이 그랬나봐요^^

미미 2024-01-25 10: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르 꼬르뷔지에 이름만 알아요ㅎㅎㅎ

페넬로페 2024-01-25 10:50   좋아요 3 | URL
역시 미미님, 대단해요~~

미미 2024-01-25 10:56   좋아요 3 | URL
>.<

그레이스 2024-01-25 12:40   좋아요 3 | URL
공동주택, 공공건축과 관련해서는 이 건축가 중요하죠^^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에도 잠깐 언급되죠.
저는 대학때!

레삭매냐 2024-02-05 1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 새 콘크리트 정글에 사는 걸
당연하게 받아 들이게 된 현생인류
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네요.

그레이스 2024-02-05 15:00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러네요
그래도 콘크리트 건물때문에 공동주택이 주거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고 하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 콘크리트 공간이 너무 비싸서 ... 자기 공간으로 할 수 없는 사람이 많죠.
콘크리트 배!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의 주인공은 부모로부터 사랑과 돌봄을 받지 못한 상처를 안고 있다. 그녀가 의지한 것은 오히려 낯선 사람들의 친절이었다고 말한다. 클레어 키건의 두 작품 맡겨진 소녀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나는 한 사람이 받아야 할 사랑의 결핍을 채워주는 타인의 친절과 돌봄을 읽었다. 또한 그 사람이 타인에게 되돌려주는 사랑을 보았다. 아주 작고 사소할 지라도, 그 발걸음 혹은 달리기는 충만함으로 가득 차 있다.


 

맡겨진 소녀의 주인공 는 엄마의 출산 때문에 방학 동안 친척 집에 맡겨진다. 에드나 아주머니와 킨셀라 아저씨의 농장이다. “먹을 건 엄청나게 축낼 겁니다.(18p)”라고 말하고 서둘러 일어서는 아빠의 모습에서 삶의 고단함과 아이들을 세심하게 양육할 여유 없음이 엿보인다. 어쩌면 가난 때문이 아니라 아빠는 그런 성품의 사람일 것이다.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모든 부모가 자식에게 다 만족함을 주진 않는다. 아주머니와 아저씨 집에서 맛본 시원하고 깨끗한 우물물의 맛을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30p)”이라고 하는 아이의 마음은 양가적이다. 부모와 떨어진 슬픔, 무례한 아빠의 부재가 주는 안도감, 가난하고 형제가 많은 집에서는 받아보지 못한 세심한 돌봄이 가져다 준 편안함 등의 감정들이 전해온다. 아이는 이곳이 당분간 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30p)”

 

를 목욕시키는 에드나 아주머니의 손길은 엄마의 것 같다. 그러나 거기엔 또 다른 것,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것(24p)”이 있다. 독자도 나중에야 알게 되는 슬픔이다. 아이는 냄새로 맛으로 촉감으로 알아챈다. 집에서의 삶과 아저씨 아주머니 집에서의 삶의 차이, 다른 사람들과 아저씨 아주머니의 차이를 몸으로 느낀다. 그러기에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많아(73p)”라고 하는 아저씨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안다.

 

농장의 일상과 밤바다의 풍경과 뜻 모를 우편함까지의 달리기는 아름다운 한 컷 한 컷의 영상이 되어 흘러간다. 헤어질 시간이 되고 의 달리기는 말 없는 인사가 되어 이별의 아쉬움, 다정함에 대한 고마움, 그들의 슬픔을 온몸으로 끌어안는 몸짓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리기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주인공 펄롱은 빈주먹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미혼모다. 어머니의 가족들은 그녀의 곤경을 외면했으나, 그녀가 가정부로 일하던 집의 주인 미시즈 윌슨은 두 모자를 돌봐 주었다. 펄롱은 아이린을 만나 결혼하고 가정의 성실한 가장으로 살아가면서도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공허와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딸들은 잘 자라고 있는 것인지, 자신의 가족은 괜찮을 것인지 불안해한다. 실업수당을 받으려는 사람들과 전기가 끊긴 추운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빚 때문에 차를 파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혹독한 시기였다. “잠시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29p)” 하는 생각을 하지만 항상 쉼 없이 다음 단계로 해야 할 일로 넘어가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펄롱은 그가 일하는 석탄 창고에 갇혀 있던 여자아이를 발견하게 되고, 그녀가 근처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미혼모이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게 된다. 시설 책임자인 수녀의 태도나 아일린의 충고에 비추어 이 지역에서 수녀회의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권력에 맞서면 일자리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일랜드에는 수녀회 4개 단체가 운영하는 통칭 막달레나 세탁소10곳이 있었다. 1845년 이래 수녀회가 운영하던 그 세탁소는 매춘여성과 미혼모, 불륜 등 당시 성윤리에 어긋난 짓을 저지른 여성들이, 법원과 경찰, 사회복지사, 병원, 의회, 성직자, 더러는 가족에 의해 강제로 수용돼 세탁 노동으로 육신의 죄를 씻고 기도로 마음을 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운영되었다.

 설립 취지나 명분과 달리, 실상은 사뭇 달랐다. 학교 수업을 빼먹은 여학생도, 기차에 무임승차한 여성도, 성당 신부나 가장의 판단에 행실이 단정치 못한, 그래서 남자를 유혹해 타락시킬 우려가 있다고 판단된 여성도 수용됐고, 심지어 강간 피해 여성도 대상이었다. 그들은 입소 직후 수녀회가 부여한 새 이름과 식별 번호로 불리며 감옥과 다름 없는 폐쇄된 공간에서, 머리를 깎고 수용복을 입고 침묵의 계율을 준수하며 대화도 삼가야 했다. 가족 방문도 수녀 입회하에 제한적으로만 허용됐고, 편지도 원칙적으로 금지였다. 그들은 아침 5시에 일어나 미사와 식사를 마친 뒤 주 6일 하루 10~12시간씩 세탁과 다림질, 세탁물 포장, 바느질, 자수 등의 강제노동에 임금 없이 동원됐다. 고객은 기업체와 종교시설, 정부부처와 군대, 병원, 학교, 교도소, 의회 등 다양했다. 만일 통제에 저항하거나 규율을 어기면 굶거나 독방에 감금당했고, 장시간 무릎 꿇기와 삭발 등 처벌 외에 언어폭력과 구타도 빈번했다. 그들은, 10대 소녀들도 아무런 교육을 받지 못했다. 드물게 벽을 넘거나 세탁물 수거차량에 숨어 탈출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경찰에 의해 다시 끌려왔고, 가혹한 처벌을 받은 뒤 수녀회가 운영하는 다른 지역 세탁소로 옮겨졌다.”

(한국일보 철조망 너머, 막달레나 세탁소의 진실2022.10.17 24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2101315310004852?did=NA)

 

펄롱은 심란하다. 다시 그 창고에 갇힌 세라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간다.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119p)”하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119p)” 하고 질문한다. 그가 세상에 맞서는 방식은 친절이다.

 

펄롱은 자신과 어머니를 구해줬던 미시즈 윌슨의 친절과 격려, 사랑을 기억한다. 이 아이를 데려감으로 치르게 될 대가와 고생을 헤아려 본다.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어머니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그가 예상되는 일들에 대해 각오를 할 수 있게 해준다.

 

영화 ,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국 현대 사회의 복지 제도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가 장악하고 있는 시스템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자신의 인간다움과 자존심을 위해 끝까지 싸우는 목수 다니엘의 이야기는 감동적이고 가슴 아프다.

 

나는 다니엘의 갖고 있는 자연스러운 연민과 친절함에 주목했다. 자신도 질병으로 인해 수당을 받아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음에도 두 아이의 엄마인 케이티의 곤경을 보고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는 그의 태도에 감동했다. 타인이 당하는 부당함에 대한 분노나 자신이 갖고 있는 작은 것으로 돕는 데 있어 그에게는 어떤 장벽도 문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저함이 없고 자연스럽다. 사회복지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사람들이 겪는 수많은 장벽들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국가는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차가운 얼굴로 수치심만을 안기지만, 가난한 다니엘은 누구보다 부유하고 따뜻한 얼굴로 도움을 준다.


시장경제 논리가 우리의 삶에서 미덕을 몰아내고 있고, 돌봄, 친절, 용서와 같은 것조차 돈으로 지불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사랑, 배려, 희생과 같은 것에 더욱 감동한다. 이유는 그 희소성이 높아지는 때문이기도 하고, 그 미덕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에드나, 킨셀라, 미시즈 윌슨, 펄롱, 다니엘 블레이크 같은 사람일 수 있을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5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4-01-23 07: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분량이 짧지만 거기에 많은 걸 넣었더라고요. 잃.시.찾과 대조적인 느낌도 받았어요.

그레이스 2024-01-23 07:35   좋아요 2 | URL

짧지만 압축된 내용이 많았고, 메시지도 그렇죠?!
잃시찾^^
갑자기 언제 정리하나 하는 현실자각 중입니다

새파랑 2024-01-23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키건의 책이 핫하네요~!! 전 <맡겨진 소녀>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는데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좀 다를까요?

밑에 영화 포스터를 보니 ‘막시무스‘님이 생각나네요~!!!

그레이스 2024-01-23 11:53   좋아요 1 | URL
^^
취향이 다 다르니까 뭐라 말씀드리기가 그렇긴한데,,, <맡겨진 소녀> 읽고 저는 눈물을 흘렸거든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생각하고 토론할 만한 논제들이 보였구요.

이 영화 강추입니다.
정말 좋았어요.
맞아요 막시무스님 프로필 사진이더라구요!^^

레삭매냐 2024-01-23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니엘, 블레이크> 보고서
켄 로치가 켄 로치했구나 싶었습니다.

과연 따듯한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시스템인지에 대해 묻게
되더군요.

그레이스 2024-01-23 16:57   좋아요 1 | URL
예~
따뜻한 자본주의는 시스템에 없지 않을까 싶네요. 개인의 의지나 양심, 공동체의 미덕에 맡겨져야 할듯요.
 
생의 이면 - 1993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이 없으면 소설도 없다.(212p)”

작가는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으로 흩어져 있는 삶의 파편들을 선택하거나 배제하고, 왜곡함으로 소설을 쓴다. 그러므로 독자는 그 파편들 속에 감추어 둔 작가의 내밀한 음성을 발견해야한다. 독서는 파편들을 퍼즐 맞추듯 맞춰 사실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다. 독자가 읽어야 하는 것은 소설 속에서 형상화되고 발견해 낸 작가이지, 현실의 작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독자는 소설로부터 읽은 작가를 현실의 작가와 동일시하는 오류를 흔히 범한다.

 

소설 중 화자 는 작가로서 출판사 편집자로부터, 한 작가의 문학과 삶을 집중 조명해서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내는 작가탐구에 글을 써줄 것을 청탁받는다. 그에게 부여된 글쓰기 대상은 그 작가의 소설이 아니라 바로 그 작가라는 말은 쉬울 수도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인상을 남긴다. “그 작가의 삶의 과정그의 문학이 맺고 있는 인과성(14p)”을 전달하는 작업은 어렵게만 느껴진다.

 

몇 번의 인터뷰와 그의 자전적 소설에서 작가의 의식 안쪽에 단단하게 붙어 그의 삶과 문학을 지배해 온 질기고 억센 몇 개의 큰 흉터들을(19p)” 발견한다. 사실과 진실에 관해 침묵하는 박부길 앞에서 는 어쩔 수 없이 그 흉터들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자기 노출적인 소설 <내 속의 타인>에서 마주친 흉터들은 이후 작품들 안에서 질서 없이 몸을 섞고 있다. ‘는 그 흔적들을 찾으며, 어느새 박부길을 소설적으로 바라보고 있는(18p)” 자신을 깨닫게 된다.


가 작품들에서 찾은 파편들로 맞춰진 퍼즐, 그는 이렇게 불행하고 지독히도 외로운 존재가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비극적이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모친의 이야기 속에만 존재했던 신화 속 아버지는, 유년기의 그가 목격한 한 남자의 광기와 죽음, 그 남자를 향한 이유모를 끌림, 그의 죽음에 자신이 가담했다는 죄의식, 선산을 태우고 고향을 떠나면서 흉터가 된다. 모친의 사랑 역시 받아보지 못하고, 자신을 향한 사랑을 왜곡된 정서 죄의식과 회환으로만 표현하는 애처로운 어머니를 외면하는 그는 굶주리고 외로운 존재다. 그가 고향(현실)을 떠난다는 것은 곧 무극사(신화)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95p)”이지만 그 신화는 무극사에서 끝이 난다.

 

작가탐구를 준비하면서 박부길의 자전적 작품을 <지상의 양식>을 싣기로 한다. 이 소설은 액자소설의 형식으로 고향을 떠난 그의 청소년기와 20대의 삶을 그리고 있다.

외로움 안에 갇혀 있었던 그는 같은 세계에 사는 동질의 원형질을 가진 단 한 사람의 동료를 만나는 것(141p)”이 간절했기에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습관적인 독서 안에서 의도적인 오독을 한다. 골방에서 스스로를 가두고 철저히 혼자인 존재가 하는 독서란 외부 세계와 개인의 내면 사이에 높은 벽을 세우고 하는 행위이기에 오독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나는 오독이 일어나는 상황과 그 빈번함을 소름끼치게 깨달았다. 나의 상황, 기분 안에서 작품들을 읽고 해석했던 많은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그는 나처럼 이 세상에 잘못 보내진 나의 형제, 나와 동일한 표적을 소유한 나의 동지, 나와 원형질이 같은 단 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159p)” 그러므로 사랑 역시 그 대상을 자신과 같은 세계의 사람이라는 오해로 시작한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이 사랑의 불구성을 짐작할 수 있다.(288p)” 사랑을 받지 못했고 배우지도 못한 그의 사랑은 너무 아슬아슬하고 가학적이었다고, 전쟁처럼 하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사랑은 흉기가 되어 사람을 상하게(289p)” 했다.

 

그의 사랑도 신앙으로 대체되어 있는 갈망도 가짜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신과 인간의 문제를 깊이 천착한 다른 작가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회의와 갈등, 반항과 구원의 드라마로부터 너무 자유롭다.(262p)”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도 동료들과 공감대를 찾지 못한다. 그가 주장하는 학자적 태도는 불통의 이면을 갖고 있다. 그가 세상을 따돌리는 오만함은 사실 슬픔과 울분, 또는 슬픈 울분이고 그 뿌리는 좌절감(31p)”이다. 그는 세상과 불화하며 부유(浮遊)한다. 많아지는 생각은 결핍으로 향하고, 불화감은 증폭된다. 그 증폭된 불화감은 더 복잡은 생각의 밑천이 되는 악순환에 갇힌다.


이승우 작가는 이 액자소설을 통해 한 사람의 지독한 외로움을 통해 사랑, 신앙심이 진실이 아닌 거짓일 수 있는 인간상황에 대해 그려가고 있다. 그와 동시에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면서 그것을 드러내거나 감추고 가장하면서 쓰는 작가의 작업과 그렇게 흩어져 있는 작가의 파편을 읽어내는 독자의 시선에 대해서 생각을 전하고 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주제를 전하기 위해, 이런 소재와 구성을 취한 작가의 글쓰기가 탁월하다.

 

작가는 물론 자신의 삶을 사실 그대로 베끼지는 않는다. 기억되거나 말해진 사실은 결국 발췌된 사실일 뿐이다. 선택과 배제를 통해 사실이 구성된다. 거기에 굴절과 왜곡이 끼어든다. 그것이 작품이다.(210p)”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이러한 글쓰기를 보여주는 백미라 할 수 있다. 어둠이 그와 충분히 친해졌을 때, 박부길은 충동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중학교 때 국어 선생으로부터 상상력의 위험을 경고 받은 바 있는 작문 <아버지>의 세련된 늘이기에 다름 아닌 이 작품을 씀으로써 그는 막혔던 글의 길을 비로소 뚫는다.(335p)” 그의 글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선생님들의 경고가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그의 잠재된 죄의식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기도하듯 내면의 고백을 털어놓는다.

 

사람들은 왜 기도를 하는가. ‘그것은 자기 이야기를 마음 놓고 솔직하게 늘어놓기 위해서이다. 아무 불평도 하지 않고 한없는 끈기와 인내로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이야기들을 들어 줄 상대를 찾아서 사람들은 기도처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지상의 양식>) (331p)“

 

그는 그 죄의식을 노출하여 공식화함으로써 아버지를 인정하고자 했다.(335p)” 어릴 적 뒤뜰에 살고 있던 광인 아버지를 감추려했던 어른들의 태도로부터 전이된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벗어나 아버지의 존재를 시인하고, 아버지로 하여금 그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새로운 신화를 쓰고자 했다는 말에서 뭔가 긍정적인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그가 해낸 것은 아버지와의 값싼 화해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교묘한 것이다. 죄의식의 되돌림.(335p)”이라는 말에서 자전적 글쓰기가 가져다 줄 수밖에 없는 회환에 갇히는 작가의 고통을 보게 된다. 작가의 작업은 교묘하다. 드러냄은 전략적이다.

그는 감추기 위해서 드러낸다. (335p)”

작가들은 그렇게 신화를 쓴다. 그러기에 글쓰기가 자유롭게 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 고통스럽지 않을까?

 

사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고, 그 도시가 의미하는 것은 사람들의 감추어진 마음 혹은 무의식 혹은 영혼의 어두운 곳을 의미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다. 그것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면이고 그것을 보는 것은 지울 수 없는 고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승우 작가의 이 책 제목이 생각났다. 누구나 갖고 있을 생의 이면’, 그것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기억나게 하는 흉터일 수도 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4-01-12 19: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삶을 사실 그대로 베끼지는 않지만 상당 부분 자신의 경험과 생각은 들어갈 것 같아요.
올려주신 기도에 대한 인용문~^
저는 신에게 제 얘기 늘어놓는 게 귀찮아서 ㅋㅋ
남을 위한 기도만 하는 듯요^^

그레이스 2024-01-12 21:56   좋아요 3 | URL
그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그 기도 장면 너무 처절했어요.

혹시 ‘다 아시잖아요?‘
이런 말은 안하시나요?
^^

미미 2024-01-12 2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죄의식의 되돌림‘, ‘감추기 위해 드러낸다‘ 그런 고된 작업이기에 작가들의 평균 수명이 의외로 낮은가 봅니다.ㅎㅎㅎ
그래도 그렇게라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절박함이 느껴져서 슬프기도 하고요. ‘흉터‘맞는 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4-01-12 21:57   좋아요 2 | URL
예!
작가의 글쓰기의 고됨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서곡 2024-01-14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일요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4-01-14 15:39   좋아요 1 | URL

서곡님두요
길 미끄러운데 조심하세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소리와 분노에서는 퀜틴이 죽기 전 자신의 그림자를 보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그가 보는 자신의 그림자는 일그러지며 그와 분리될 것만 같은 불안감을 전달한다. 그림자는 세계에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가 그림자를 바라보는 심리는 그가 사는 세계에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하는 존재로서의 불안과 갈등을 보여준다. ‘존재의 과거형보다 슬픈 말을 찾지 못한 그는 존재의 과거형이 된다.

 

소설 도시와 불확실한 벽에서, 현실 세계에서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림자를 벗어야 한다. 그곳의 사람들은 그림자가 없다. 그 그림자는 벗겨져 떼어진 채로 도시의 문밖 숲에서 살아가다 힘을 잃고 소멸된다. ‘그림자는 육체일까?, 포크너의 소설에서의 그림자처럼 현실세계에 존재함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일까?’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야기의 진전과 함께 이 소설의 그림자는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현실세계의 17살 소년 16살 소녀를 만나고, 두 사람은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그 도시는 구축되어간다. 도시는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숲에는 일각수가 살고, 도시로 통하는 유일한 문에는 문지기가 산다. 현실세계의 그녀는 외롭다. 소년 는 그녀의 삶에 대해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두 사람은 특별한 비밀세계를 만들어내고 함께 나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가 높은 벽에 둘러싸인 신비로운 도시다. ‘는 이 현실세계에서 그 소녀를 상실한다.

 

40대가 된 는 그 소녀의 실체를 만나기 위해 도시의 문을 넘어 들어갔다. “그림자를 버리고, ‘꿈 읽는 이로서 눈에 상처를 내고, 두 번 다시 그 문을 넘지 않는다는 암묵의 계약을 맺고(68p).” 그림자를 벗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도시, 그것은 육체로는 들어갈 수 없는 영혼의 세계인 듯 보인다. ‘가 도시를 걷고 탐색하면서 그 도시는 하나의 세계, 형태를 띈 실체로 다가온다.

 

그 도시에 있는 16이란 황동 플레이트가 박혀있는 도서관에서 오래된 꿈을 읽는다. 그곳에는 가 현실세계에서 만났던 그녀와 똑같이 생긴,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소녀가 일하고 있다. 현실세계의 그녀는, 마지막으로 보내온 편지에서, 자신은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살고 있는 실체가 벗어버린 그림자이고, 곧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럼 이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소녀가 그녀의 실체일까? 도시의 문지기가 한 말에 비추면, 그림자는 육체이며 그 그림자를 벗어버린 존재, 도시에 살고 있는 존재는 영혼임을 짐작하게 된다.

 

의 그림자는 이 도시에 사는 존재가 그림자이고 바깥세상에 있는 것이 본체라고 말한다. 주인공이 읽어야 할 오래된 꿈은 도시 밖으로 쫓겨난 본체가 남겨 놓은 마음의 잔향이라고 한다. 미처 제거 하지 못한 슬픔, 망설임, 질투, 두려움, 고뇌, 절망, 의심, 미움, 곤혹, 오뇌, 회의, 자기연민…… 그리고 꿈, 사랑(178p)”등의 마음의 씨앗이라고 한다. 로이스 로우리의 기억 전달자 (The Giver)를 생각나게 하는 장면이다.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가 유지되게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이 오래된 꿈을 읽고 감당해야 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는 숲속 그림자 쉼터에서 죽어가는 자신의 그림자를 찾고, 그들을 막아서는 벽들을 통과해 도시를 빠져나가는 웅덩이 앞에 다다른다. 실체와 그림자, 영혼과 육체가 하나가 되는 것을 막는 살아 움직이는 벽은 무엇일까? 설령 하나를 통과하더라도 그 너머에 다른 벽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의식과 마음, 영혼과 육체가 일치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삶에서 만나는 수많은 장애들이 아닐까? 살아있는 동안 그 둘은 함께 연관되어 영향을 주고받지만 그것이 큰 간격을 두고 벌어질 때, 그 벌어진 곳에는 심연이 남는다. 두 세계 사이에 놓인 웅덩이처럼.

 

의 그림자는 웅덩이에 뛰어들어 현실세계로 간다. 그리고 중년의 는 현실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림자에 끌려온 것이라 짐작하는 는 스스로를 현실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느끼며 살아간다. 직장을 그만두고 Z** 마을의 도서관 관장에 지원해서 간 이유는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도서관에서 오래된 꿈을 읽던 기억 때문이다. 이 도서관의 반지하 공간에서 만난 사건들은 오컬트적인 분위기를 띄고 있다. 영혼과의 대화가 그렇다.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와 현실세계는 서로 대척점에 있는 두 세계다. 도시는 움직임이 없고 말수 적고, 간소하고 정밀하고, 그리고 완결된 장소다. 사람들이 하는 말은 본래의 의미만을 지니고, 모든 것이 각자 고유의 장소에, 혹은 눈길이 닿는 그 주변에 흔들림이 없이 머물러(53p)” 있는 곳이다. ‘의 현실세계는 많은 말들이 오가고, 너무도 많은 의미가 만들어져 흘러넘치는(52p)” 곳이다. 누군가는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어울리고, 다른 누군가는 현실세계에 더 잘 어울릴 것이다. 그러나 어느 세계가 벽으로 둘러싸인 곳일까? 독자로서 나는 ‘2에서 현실에서 사람들과 관계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알아가고 있는 의 삶에 편안함을 느낀다.

 

전임관장 고야스씨의 영혼이 성경을 빌어 말했듯, 인간이 덧없는 존재고 살면서 영위하는 나날이 지나가는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영혼과 몸이 분리된 듯 살아갈 수는 없다. 살아가는 동안,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하는 듯 보이는 육체와 영혼이 혹은 육체와 마음이 일치하는 순간을 맛볼 수 있다. 도시의 가 현실세계의 와 하나가 되듯. 고야스씨가 말한 것처럼 본체와 그림자는 원래 표리일체이고, 상황에 따라 역할을 맞바꾸기도 한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깊이 침잠해서 육체를 잊은 듯 영혼의 숨만 쉬는 시기가 있을 수도, 육체가 활발한 활동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을 수도 있다. 때로 그 영혼을 잊은 듯, 육체를 잊은 듯, 한 쪽에 치우쳐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자신이 치우쳐 있는 세계에서 역경을 뛰어넘기 위해 다른 영역의 일에 몰두하는 시기를 만나기도 한다. 어쨌든 두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는 모두 나 자신인 것이다.

 

공간의 왜곡과 축소, 시간의 역행, 그리고 토끼라는 상징적인 이미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한다.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들어간 꿈의 세계는 재밌고 흥미진진한 곳만은 아니었다. 위험해보이고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가게 되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소원하게 되는 그런 곳이었다. 마찬가지로 소녀를 만나기 위해 들어갔던 그 도시 역시 추위 때문에 일각수들이 죽어가고, 동물들이 먹을 수 없는 사과만 많이 열리는 곳, 유채기름으로 죽은 사체를 태우는 곳, 시계에 바늘이 필요 없는 단조로운 삶이 이어지는, 많은 말을 건넬 필요 없는 그런 곳이다. <노란 잠수함>의 이상향 페퍼랜드가 누구에게나 행복하고 편안한 곳이 아니듯, 꿈과 낙원은 각자의 마음에 있다.

 

그 도시로 갈 수 있는 문을 발견한 소년은 이 현실세계에서 살아갈 수 없는 육체의 일을 잊은 자다. 어쩌면 그런 존재도 필요하지 않을까? 누군가를 대신해 영혼의 영역에 머무는 존재를 의미한다.

 

소년이 그 도시에서 만난 는 누구일까? 그림자에 이끌려 나온 줄 알았던 의 실체가 여전히 거기에 존재하고 있었다면, 현실세계의 에게 생긴 그림자는 무엇일까? 소설은 명쾌한 답을 주는 공식을 갖고 있지 않다.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와 현실 세계, 본체와 분신, 실체와 그림자 등은 플라톤의 이데아, 이원론, 마음과 꿈, 평행 세계 등 무엇이 될 수도 있고, 또 무엇이라 규정하기엔 모호한 부분이 존재한다.

 

그 강줄기가 복잡한 미로가 되어 암흑의 땅속 깊은 곳을 흐르는 것(223p)”처럼 우리의 현실 또한 우리의 내부에서 몇 갈래 길로 나뉘어 나아간다. 현실과 선택지가 얽혀 우리가 인지하는 현실이 완성된다. 그러기에 인생의 깊숙한 강을 흐르는 불가지성을 해결할 수 없을지 모른다. 소설의 모호함도 그대로 둘 수밖에.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그 이면을 보려는 사람이 있고, “현실은 이것 하나뿐이고 다른 건 없다(223p)”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태반 눈을 감은 채로 인생을 보낸다. 그러나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오른쪽 얼굴(101p)”을 보는 사람은 있다. 노인이 그런 것은 보는 게 아니었다고 후회하는 말로 비추어, 한 사람의 감춰진 이면의 세계는 드러난 왼쪽 얼굴처럼 그리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읽혔다. 낙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그 심연을 들여다본다.

 

그 심연을 보고 읽으려는 자는 작가가 아닐까? 인간의 마음 깊은 곳을 향한 문에 들어섰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하는 작가의 마음과 의식 사이에 생긴 골을 짐작해본다. 실제 삶에서는 겪지 않을 감정을 향한 문이 열리고 그 문을 닫지 못해 심리적 고통을 겪었다는, 사형수를 연기했던 한 영화배우의 고백을 떠올린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시 벽으로 둘러싸인 그 도시의 문을 연다. 작가는 글쓰기를 위해, 독자는 읽는 행위를 통해 인간의 영혼과 마음에 감춰진 심연을 탐험하기 위해 뛰어든다. 끝없는 낙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4-01-02 0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 있는 사람은 그림자가 없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그림자도 사람한테는 중요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림자를 두고 가야 하는 세계... 몸은 두고 영혼만 가는 걸지...

책을 보다 보면 여기가 아닌 어딘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그곳에서 자신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지도 모를... 좀 더 잘 살면 좋을 텐데 싶기도 합니다

그레이스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 잘 챙기시고 책 즐겁게 만나세요


희선

그레이스 2024-01-02 09:34   좋아요 1 | URL
빛을 향하면 내 그림자가 보이지 않고,
빛을 등지고 있으면 내 그림자가 보이죠.
또 다른 상징으로서 그림자를 생각해봅니다.

희선님
2023년에는 제가 많이 소원했네요.
새해 건강하시고 좋은 시와 글들 기대합니다.

페넬로페 2024-01-02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완독하고 글 쓰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는데 실패했어요 ㅠㅠ
뭔 말을 하려는지 이해는 되는데
그 맥락이 연결되지 않더라고요
그레이스님!
1등 예약입니다
저에게 약간의 콩고물을~~ㅎㅎ

그레이스 2024-01-02 22:00   좋아요 1 | URL
저도 힘들게 썼습니다^^
아직도 이해 안되는 부분이...
포기할뻔 했는데... 감기때문에 스케쥴 취소하고 여유가 생긴바람에 겨우 썼습니다.

캐모마일 2024-01-02 2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낙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그 심연을 들여다본다.˝ 그래서 옐로 서브마린 소년은 떨어져도 확신을 가지란 희망을 주었군요.

그레이스 2024-01-02 22:15   좋아요 1 | URL
저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다양한 의미로 해석이 가능해서 다양한 적용이 나올듯요^^

레삭매냐 2024-01-11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춘수 샘 책 나올 때마다
팬이 아니라고 하면서고 꾸역꾸역
사서 읽곤 했는데... 이번엔 패스하
게 되었네요.

뭐랄까 사그러져 가는 옛 영광의
잔영이라고나 할까요.

그레이스 2024-01-11 10:00   좋아요 1 | URL
ㅎㅎ
춘수 샘!
저도 그렇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