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행운과 모험, 그리고 적어도 각자가 한 번쯤은 경험할 기적같은 시간이, 저 북쪽 사막으로부터 올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더 불분명해지는 이 막막한 우연을 위해, 군인들은 인생의 전성기를 요새에서 소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 P71

드로고는 요새에 남기로 결정했다. 어떤 욕망에 이끌린 결정이었지만 단순히 비장한 마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순간 그는 어떤 고귀한일을 해냈다고 믿으며 자신한테 생각지도 못한 선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다만 겨우 몇 달만 지나도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며 요새를 떠나지 못하도록 그의 발목을 붙들던 비참한 것들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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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2-03-07 0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It was from the northern steppe that their fortune would come,
their adventure, the miraculous hour
which once at least falls to each man‘s lot.
Because of this remote possibility which seemed to become
more and more uncertain as time went on,
grown men lived out their lives pointless here in the Fort.

― Dino Buzzati, The Tartar Steppe p. 60

Grace 님이 인용하신 글은 저도 밑줄 좍좍 그어 놓은 문장.
두 번째도 밑줄 그어 놓았지만 길어서 통과.

그레이스 2022-03-07 05:11   좋아요 1 | URL
영문으로 읽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2-03-07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 내서 다시 읽어 보고
싶어지네요...
 

드로고는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총안처럼 생긴 작고 좁은 창문너머로 북쪽 골짜기, 그 슬픈 땅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어둠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펜은 종이 위에서 조금 더사각거렸다. 밤이 온 세상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보루를 에워싼 방어벽사이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며 뜻 모를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보루안에는 짙은 어둠이 밀도를 더했고 공기마저 습하고 불쾌했지만, 조반니 드로고는 ‘모든 면에서 저는 아주 만족하며 잘 지내요‘ 라고 적어내려갔다.
- P59

우리보다 앞서 기다리고있는 놀랍고 환상적인 일들을 미리 맛본다. 아직 그 일들은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 우리가 그것에 다다르리라는 것은 틀림없으며 절대적으로 확실하다.
그것이 멀리 있느냐고? 아니, 저 아래 강을 건너기만 하면 되고, 저푸른 언덕을 넘어가기만 하면 된다. 아니, 어쩌다 벌써 도착한 것은 아닐까? 이 나무들과 초원, 이 하얀 집이 우리가 찾고 있던 게 아닐까? 잠시 그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거기에 머물기를 바랄 수도 있다. 그러면 이런 말이 들려올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더 멀리 있으니 괴로워 말고 다시 길을 떠나라.
그리하여 신뢰에 찬 기다림 속에서 걸음은 계속된다. 하루하루 날은길고 평온하다. 태양은 다시 하늘에서 높이 빛나고, 결코 석양으로 저물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어떤 시점에서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본다. 그러면 등뒤에, 돌아갈 길이 막힌 채 빗장이 질린 철문이 보인다. 그 순간 무언가 변했음을 느낀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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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3-06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용해주신 내용의 두번째 문단 내용이 좋은 것 같아요.
그레이스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편안한 오후 시간 되세요.^^

그레이스 2022-03-07 06:29   좋아요 2 | URL
매일 조금씩 읽어가고 있어요
적은 분량으로 나뉘어 있어 좋네요
 

요새는 고요했고, 정오의 강렬한 햇살에 잠겨 그림자라곤 찾아볼 수없었다. 누렇게 바랜 성벽이(정면은 북쪽을 향해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적나라하게 노출된 채 요새를 둘러싸고 있었다. 굴뚝에서는 엷은연기가 피어올랐다. 중앙의 건물과 성벽 그리고 보루의 성곽을 따라가다보니 어깨에 소총을 멘 십여 명의 경비병들이 보였다. 그들은 각자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질서정연하게 위아래로 순찰중이었다. 흡사 추의 움직임과 비슷한 그들의 걸음은 거대한 고독의 마법을 깨는 일 없이 시간의 단계적인 흐름을 따라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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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라스 불바의 행방이 밝혀졌다. 12만 명의 카자크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에 나타났다. 그 군대는 이미 전리품 때문에 혹은 타타르인을 추격하기 위해 나선 어떤 작은 부대나 지대가아니었다. 그렇다, 참다못해서 전 민족이 일어난 것이었다. 자신들의 권리가 조롱당하고 자기들의 풍속이 짓밟힌 것에 대항하여, 수치스러운 모욕에 대항하여, 조상의 신앙과 신성한 관습이 능욕당한 것에 대항하여, 그들의 교회에 대한 모독에 대항하여 봉기한 것이었다. 그리고 타국인 폴란드 귀족들의 난폭함과 무례함에 대항하여, 카자크에 대한 박해에 대항하여, 그리스교와 로마교의 연합에 대항하여, 그리스도교 지역에 대한유대 민족의 수치스러운 지배에 대항하여 봉기한 것이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카자크 민족의 증오심을 증대시키고 더욱 심하게 그들을 억압해 온 모든 것에 대항하여 복수하려고 봉기한 것이었다.  - P209

 모든 곳에서 카자크들이 봉기한 것이었다. 치기린에서, 페레야슬라프에서, 바투린에서, 글루호프,
에서, 드네프르 강 하류 지방에서, 그 상류의 모든 지방과 섬들에서 일제히 일어났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말과 무수한 수레차 무리가 온 들판에 늘어섰다. 이들 카자크군 여덟부대 중에서 가장 뛰어난 한 부대가 있었으니, 그 부대를 지휘하고 있는 자가 타라스 불바였다.  - P210

드네스트르 강은 작지 않다. 이 강에는 물굽이와 갈대숲, 여울목, 깊은 곳들이 수없이 많고, 높게 째지는 백조의 울음소리에 반쯤 미쳐 버린 거울 같은 수면이 반짝이고, 그 위로 거만한 오리가 재빠르게 헤엄쳐 가고, 황새와 가슴패기가 붉은 쿠루흐탄 과 가지각색의 새들이 갈대숲 속과 강가에서 무리를지어 살고 있다. 카자크들은 키가 두 개 있는 좁다란 촐른의노를 활기차게 젓는다. 사이좋게 협력하여 노를 저으면서, 얕은여울을 피해 조심스럽게 날아오르는 새 떼들을 헤치면서 자신들의 아타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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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바는 무서울 정도로 완고했다. 그러한 성격은 살기가 힘들었던 15세기 유럽 변방 지역의 유목민에게서만 볼 수 있는것이었다. 그 당시 영주들에게 버림받은 남러시아 땅은 포악한 몽골 침략자들의 습격으로 인해 황폐해지고 송두리째 불타 버렸다. 집과 생활 터전을 빼앗기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용감해졌다. 이웃 나라의 끊임없는 위협을 걱정하면서도 환란 속에 살림을 옮겨 와 온갖 고생을 다 해 가면서 살았던 시대였다. 또한 전쟁의 불길 속에서도 평화를 사랑하는 옛 슬라브인의 영혼이 카자크, 즉 러시아인의 소위 담대한 국민성과놀기 좋아하는 기질을 형성하던 시대였다. 강가의 모든 땅, 나루터, 물가의 완만한 경사지 등 살기에 적합한 지역으로 셀 수없을 만큼 많은 수의 카자크들이 빼곡히 이주해왔다. - P16

그러나 전쟁이나 총동원 시에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왕이 지급하는 체르보네츠 한 닢만을 손에 쥔 채, 더도 말고 여드레 만에 무장을 하여 말을 타고 속속 모여들었다. 그러고 나면 두 주 안에어떠한 방법으로도 도저히 모으기 힘든 신병을 모집한 강력한 군대가 조직되었다. 원정이 끝나면 군사들은 목장으로, 농토로, 또는 드네프르 강의 나루터로 돌아가 고기잡이도 하고,
장사도 하고, 술을 담그기도 하면서 자유로운 카자크가 되었다. 같은 시대의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러한 카자크의 비상한재주에 놀랐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카자크가 못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술 담그기, 수레 만들기, 화약 만들기, 대장일, 철공 등은 물론이고, 여기에 덧붙여서 러시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탕 마시고 노래 부르고 떠들어 대며 노는 것도 있다. 그러나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싸움터로 나가는 것을 의무로 생각하여, 군적에 등록되어 있는 카자크를 제외하더라도 유사시에는 언제든지 완전한 군대(기마 의용대)를 편성할 수가 있었다. - P18

타라스 불바는 손꼽히는 주요 원로 지휘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의 몸은 전쟁을 위하여 태어난 것 같았고, 그의성품은 남보다 월등히 용감하고 강직했다. 당시는 폴란드가 러시아 귀족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던 시기였다. 많은 귀족들이폴란드의 사치스러운 풍속을 본받기 시작하면서 화려한 하인들, 사냥하는 매, 사냥개, 저택들을 소유하고 잔치를 베풀었다.
타라스 불바는 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순박한카자크의 생활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는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 쪽으로 기울어진 자들을 폴란드판 노예라고 불렀다. 그때문에 그런 사람들과 여러 차례 말다툼을 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소란을 일으키면서, 그는 자신이 정교의 올바른 옹호자라고 주장했다. 어디선가 소작인들에게 압박이 가해졌다거나 농가에 새로 부당한 세금이 부과되었다는 불평이 들려오기만 하면, 그는 직접 그 마을로 들어갔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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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3-02 2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란드 귀족들이 자식들을 프랑스 파리로 유학 보내거나 가정교사(당시 혁명등으로 바르샤바로 망명한 이들)들 한테 철저하게 우아하면서 화려한 문화와 예절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톨스토이 우화집에 카자크 농민들 농번기에는 주변국 용병으로 나가 싸우면서 마을로 돌아 오면 그야말로 놀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ㅎㅎ

불바 영화에서 율브리 너!

그레이스 2022-03-02 23:06   좋아요 1 | URL
키예프 아카데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유학을 보낼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고 하더라구요^^

서니데이 2022-03-03 1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책 소개 찾아봤어요. 16세기 우크라이나 키이우(키예프)가 등장하는 책이네요.
<대장 부리바>는 영화를 본 적은 없는데, 들어본 것 같긴 하고요.
잘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좋은 하루 되세요.^^

그레이스 2022-03-03 18:28   좋아요 1 | URL
저도 대장 부리바는 못봤어요
그냥 책만 읽는게 날듯요^!^
좋은하루 되세요~ 서니데이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