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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팜
조앤 라모스 지음, 김희용 옮김 / 창비 / 2020년 12월
평점 :
얼마전 냉동난자은행을 통해 아이를 출산한 비혼인 일본인 방송인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그와는 성격은 다소 다르지만 냉동정자와 난자은행은 엄연히 우리 사회에 현존하고 있고, 부와 권력을 모두 소유한 이들에게 출산의 영역을 돈이 필요한 다양한 형태의 대리모들이 대신해주고 있다는 가상은 어쩌면 우리가 모를 뿐 세계 곳곳에서 엄연한 현실로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나 역시도 한두번은 들었던 기억이 있다. <베이비 팜>은 이런 대리모들의 가상 이야기들을 소설로 쓴 작가 조앤 라모스의 성공적인 첫 데뷔소설이다.
2019년 미국과 영국의 언론의 뜨거운 주목을 받으며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베이비 팜>은 오프라 윈프리 외 수많은 저명인사들과 언론들이 강력추천하고, <타임>이 선정한 '꼭 읽어야 할 책'에 선정된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작가 조앤 라모스 역시 필리핀에서 거주하다 미국으로 이주한 필리핀계 미국인으로, 대학 이후 사회생활을 통해 만나고 경험했던 부와 계급, 인종, 기회에 대한 커다란 격차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꿈꿔왔던 가난한 이민자 여성들의 삶을 접하게 되면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어떠한 식으로 바라보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고, 각기 다른 욕망을 지닌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민자와 근본적인 경제시스템으로까지 확장되는 부의 불평등이라는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문제를 통해 어머니와 여성으로서의 삶의 신선한 시각과 존재에 대한 의문점을 제시해주고자 이 책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이 책 <베이비 팜>은 제인, 아테, 메이, 레이건이라는 네 명의 여성이 각기 자신들의 시각과 관점을 통해 바라본 사실을 번갈아가면서 진행되는 이야기 형식을 띠고 있다. 여성책임자 메이가 대표자격으로 있는 가상 비밀 대리모 시설인 최고급 리조트 '골든 오스크 농장'은 홀러웨이사의 미래를 이끌어갈 사업으로, 점차 더 많은 투자를 끌어들여 그 사업을 확대해 갈 계획이다. 남편과 이혼 후 혼자 힘겹게 아밀리아를 키우는 필리핀 여성 제인은 보모일을 해 경제적 기반을 잡은 사촌 아테의 권유로 보모일을 시작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게 되자, 그녀의 권유로 골든 오스크농장의 대리모로 들어가게 된다. 철저히 비밀에 싸인 부자 의뢰인고객의 요구에 따라 대리모로 선발된 후 수정란 착상 시술 후 임신부로서 외부와의 격리와 감시관리를 받으면서도 그녀는 평상시 누리지 못했던 온갖 편의를 제공받게 되고, 호화 리조트 골든 오스크에서 9개월간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며 무사히 아이를 출산하게 될시 거액의 보너스를 지급받게 되는지라 그녀의 딸 아밀리아가 보고 싶어도 참으며 성실히 그 곳 생활에 임하게 된다. 듀크 대학을 나왔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부모를 둔 레이건과는 성장배경도 삶의 가치관도 너무도 달라 괴리감을 느꼈으나 그들은 룸메이트로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세번째 대리모로 온 리사와도 모두 친구가 된다. 제인의 아기 아밀리아와의 만남이 몇 번이나 취소되고, 이후 사촌 아테와의 영상통화는 물론 연락조차 뜸하게 되자 불안감을 느낀 제인은 아밀리아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간파하게 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해지자 제인의 친구들은 그녀를 위해 무엇이든 해보기로 한다. 그들의 계획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도대체 아밀리아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이민자라서, 혹은 가난하다고 해서 차별을 당하는 일들은 뉴스나 미디어에서도 너무도 자주 접하게 된다. 가장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의 이미지지만 실상은 굉장히 보수적이고 닫힌 나라이기도 한 미국의 이면을 보게 되는 스토리였다. 필리핀이라는 한정을 두고 썼지만 사실은 수많은 아시아인과 유색인종들이 경험할 수 있는 불평등과 차별이야기를 <베이비팜>, 대리모라는 주제를 통해 매우 현실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기존 책들이 남성들이 주체가 된 여성의 상품화가 주류였다면, 이 책은 상위 1%의 기득권 세력인, 그것도 주로 여성이 주체가 되어 약하고 가난한 여성대리모를 전면에 내세운 점이 기존 페미니스트 책들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라서 신선하고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 비즈니스업체에 맞서 용감하고 씩씩하게 투쟁해 자신들이 얻고자 하는 것들을 당당하게 쟁취해가는 모습이나, 시설 관리자로서의 자신이 가진 욕망을 감추지 않고 슬기롭게 대처해나가는 여성의 모습들은 과거의 소설과는 다른 현대적 감각이 묻어난 느낌을 받았고, 흥망성쇠의 결론을 내세워 스토리를 마무리되기 보다는 모두에게 더 나은 결과를 창출해 또 다른 미래의 모습을 그리게 되는 이야기는 흥미유발과 함께 잠재적 가능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소설 속 결말이나 그에 따른 주제의식에 대한 찬반 양론을 펼쳐내기보다는 다소 도발적이고 문제가 될 사회주제의식을 다룬 소설이라 상당히 인상적이게 다가온 책이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긴 호흡이 필요한 소설임에도 몰입도가 상당해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읽었으며, 각종 사회문제들에 대한 진솔한 경고와 함께 미래 사회에 대한 향후 모습까지도 상상하며 그려보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