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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밀라 - 태초에 뱀파이어 소녀가 있었다
조셉 토마스 셰리든 르 파뉴 지음, 김소영 외 옮김 / 지식의편집 / 2021년 1월
평점 :
뱀파이어 이야기는 언제들어도 매력적이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살아간다는 사실과 동시에 언제나 마성의 외모로 인간들의 시선과 마음을 온통 앗아가는 매력적인 인물들로 묘사되곤 한다. 이 책 <카르밀라>는 이토록 매력적인 1800년대의 최초의 뱀파이어 소녀의 이야기로, 140년이 지난 현재에도 뱀파이어는 여전히 우리들에게 친숙한 소재이긴 하지만, 최초의 뱀파이어는 어떻게 그려졌을지가 궁금해졌고, 그래서 이책을 만났다.
이 책 <카르밀라>의 작가 조셉 토마스 셰리든 르 파뉴는 아일랜드 고딕 소설의 거장으로, 초자연적 현상을 사실적인 당시 사회 상황에 잘 녹여낸 작품들로 유명하며, 특히 공포를 심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묘사하여 고딕 소설의 한 틀을 만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특히 <카르밀라>는 브램 스토커에 영향을 주어 <드라큘라>를 탄생시켰고 최초의 여성뱀파이어 소설로서 수많은 영화나 연극, 뮤지컬로도 재해석 되는 기초를 다진 작품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카르밀라>, <녹차>, <하보틀 판사> 이렇게 총3가지 각기 다른 이야기들로 엮여 있지만, 3가지 이야기 모두 헤셀리우스라는 박사의 논문참고자료나 여행 중 알게된 지인의 편지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로 풀어나가고 있다. 유럽 전역을 떠도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연구하는 전문가로서 헤셀리우스 박사는 르 파뉴 작가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라는 사실을 옮긴이의 말에서 알게 되었다.
첫번째 챕터의 <카르밀라>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최초의 여성 뱀파이어 카르밀라 소녀의 이야기다. 은퇴후 원시적이고 고립된 숲 속에 살게 된 로라네 가족에게 우연히 맡겨진 아이 카르밀라가 온 후 근처 마을에는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나간다. 로라 역시도 카르밀라의 매력적인 애정표현에 나날이 그녀에게 빠져들면서 이상징후들을 경험하게 되고 그녀는 다른 마을 사람들이 겪었던 것들처럼 점차 시름시름 앓게 된다. 그녀를 살리기 위해 슈벨스베르크 의사를 통해 그녀의 상태를 인지하게 되고, 가족의 오랜 지인 스필스도르프 장군을 통해 카른슈타인 가문의 이야기를 듣게 되며 비밀이 하나씩 풀려간다.
두번째 챕터 <녹차>는 헤셀리우스 박사의 친구 반 루 교수의 '형이상학적 의학'에 관심이 있다는 신부님이 겪은 이교도 악령의 흉한 모습을 한 원숭이 유령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악령의 공포와 두려움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 <하보틀 판사> 역시 죽음의 나라 사형집행인에 관한 이야기로 평소 냉소적이고 이기적인 판사 하보틀이 겪은 꿈 속 경험이 실재상황과 혼재되어 마치 자연적 영혼이 현실적 영혼에 잠식되어 점차 파멸되어 가게 되는 한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실 읽는 내내 몰입도도 상당했고 재미도 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현대적 뱀파이어와 유령이야기는 엉뚱하고 오히려 더 판타지적 요소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반면 1880년대의 뱀파이어 이야기나 초현실적 형이상학적 존재들의 이야기들은 오히려 더 현실에도 존재할 듯한 오싹함과 공포를 더 자극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두려움과 공포감이 배가 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과 닮은 외모의 전혀 다른 존재의 심오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재미와 흥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낼 수 있는 책이라고 단언할 수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