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가 세상에 살다간 햇수와 반비례하여 창조한 음악들로 봤을 때,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천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가는 대부분 사후(死後)에 이름이 알려진다라는 건 역사만 봐도 많은 실례가 있다.
한창 인기를 얻었던 전성기도 있었지만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어서는 그가 거주하던 빈에서 그의 음악은 무시ㆍ외면
당했으며, 지독하리만치 궁핍한 생활 속에서 삶을 마친 불운한 작곡가이다.
오죽하면 한 목소리로 그 당시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못 알아본 말로 '천박한 빈 사람들'이라는 말까지 있을까.
25세나 연상이었지만 모차르트를 존경했던 하이든(모차르트 또한 진정으로 존경했던 작곡가는 하이든 뿐이라고 할 수
있다)은 모차르트가 요절 했을 때 '앞으로 100년 동안 세계는 이와 같은 천재를 갖지 못할 것이다'라며 세상의 무관심과
냉대에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창조적 예술가이자 위대한 인물, 현재 수 많은 이익을 창출하는 문화적인 아이콘이지만 그도 사람이다.
많은 교우관계, 여자관계가 있었는데 역시나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그의 부인인 콘스타체와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모차르트의 썸씽녀(;;)들. 왼쪽부터
콘스탄체 모차르트 (Constanze Mozart, 1763~1842)
낸시 스토라체 (Nancy Storace, 1765~1817)
마리아 안나 테클라 모차르트 (Maria Anna Thekla Mozart, 1758~1841)
콘스탄체는 모차르트가 처음 사랑을 품었던 알로이자 베버(Maria Aloysia Antonia Weber, 1760~1839)의 동생이다.
1778년 모차르트가 만하임에 체류할 때 프리돌린 베버 일가를 알게 되었는데, 젊은 나이지만 이미 성악가로서 확고한
명성을 얻고 있던 알로이자에게 마음을 빼앗겼지만 알로이자 자신은 모차르트에게 별다른 남성적 매력을 못 느꼈던 것
같다. 훗날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모차르트의 고백을 거절한 것을 후회하긴 했지만.
그녀의 동생인 콘스탄체한테 모차르트는 처음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알로이자에게 사랑을 거절당하고 좌절한 상태
였을 때 그녀가 구원이 되어주었던 것일까?
1782년 경 알로이자의 가족들이 빈으로 이주하여 여인숙을 운영할 때 모차르트는 그 곳을 찾았고 콘스탄체와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결국 아버지 레오폴트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 해에 결혼에 골인~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긴 했지만 여러 전기나 내용들을 봤을 때 콘스탄체는 악처의 한 표본이었던 듯 하다.
질투심이 강하고 낭비벽이 심했으며,(모차르트의 만년 가난은 콘스탄체의 무분별한 소비로 인한 이유가 크다)
사생활도 문란하였다. 1789년 이후에 그녀는 요양을 핑계로 바덴의 온천장에 가곤 했는데, 보통 모차르트의 제자인
쥐스마이어가 동행을 했다. 이 시기의 태어난 F.X.모차르트(1791~1844)가 쥐스마이어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모차르트 자신은 콘스탄체의 경박한 부분은 인정하면서도(편지들을 통해 그녀에게 정숙을 요구하는
글 들이 있다) 한편으로 그녀를 끝까지 사랑했다.
뭐.. 어찌됐든 모차르트의 걸작들이 그녀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에서 나온 산물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을 듯.
허나 이런 모차르트도 바람둥이 기질이 있었으니.. 낸시 스토라체와의 관계가 그 점을 잘 보여주는 듯 하다.
그녀는 모차르트의 제자인 스테판 스토라체(Stephen Storace, 1762~1796)의 동생인데, 그 당시(1786년)의 가장 잘 나가는
소프라노 중 한 명이었다. '피가로의 결혼'의 최초 수잔나 역할을 맡기도 했는데, 그 당시는 오페라 대본가나 작곡가들이
가수들과 문란한 관계가 있는 것이 풍습(?)이었던만큼 그 둘의 관계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낸시가 모차르트의 편지들을 의식적으로 없애버렸기 때문에 정확한 증거가 없긴 하지만 말이다.
모차르트는 그녀를 위해서 다양한 연주회용 아리아를 작곡했으며, 그녀가 영국으로 돌아갈 때 애들은 아버지인 레오폴트
에게 맡기고 콘스탄체와 함께 영국으로 넘어갈 생각도 했다. 결국 레오폴트의 극렬한 반대로 무산되긴 했지만.
이런 일만 봐도 모차르트는 한 여자에게만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은 아니었던 듯 싶다.
미라아 안나 테클라 모차르트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볼프강의 사촌동생이다.
그녀는 콘스탄체와 모차르트가 결혼하기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이고, 결혼 후에는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언급할 만한 점은 적은 듯 하다.
허나 많은 문헌이나 전기 등에서 이 인물이 적게 언급되는 이유는 이른바 치부, 저속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마리아와 볼프강은 1777년(모차르트 당시 21세)에 처음 만났는데, 그녀는 말괄량이에 발랄하며 성적 매력이 넘쳤고,
젊은 모차르트가 이에 별다른 저항없이 강하게 끌린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여러 편지들의 내용을 보아도 그녀가 모차르트에게 '사촌 여동생'이상의 존재였음은 확실하고,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만
비춰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실례로 알로이자에게 사랑을 거절당했을 때 모차르트는 자신을 위로해달라고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부르기도 했으며,
그녀는 그런 부탁에 흔쾌히 응했다. 마리아는 모차르트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결혼까지 꿈꾸기도 했지만, 모차르트에게
그녀는 그 이상의 존재는 아니였던 듯 하다.
모차르트같은 대작곡가의 사생활은 분명 많은 화두거리를 낳고, 과장 또는 부풀려지게 마련이다.
허나 언급했다시피 그도 사람이고, 기본적인 사랑과 욕망에 휘둘렸음은 당연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했던 것은 뭐.. 음...(--;)
언급한 여성들이 모차르트가 작곡하는데에 깊은 영감의 원천이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역시.. 뭐든지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것은 사랑에서 기인한다는 평범한 결론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