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 토니오
정용준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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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는 저 위에 펼쳐진 하늘을 보며 상상력을 키워나간다.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푸르름, 나아가 지구 밖 우주를 향해. 그러나 생각해보면 하늘만큼이나 닿지 못하는 광활한 곳이 또 하나 있었으니 바로 바다다. 그리고 그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포유류, 고래가 존재하고 있으니, 오늘도 그들은 푸른 심해 어디에선가 자유롭게 거닐고 있을 것이다.

 


  『프롬 토니오』. 이 책은 환상적이면서도 기이하고 신비로우며 아름답다. 작가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바다 밑의 바다, 고래와 영혼의 언어의 세계를 보여주며 몽환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문장을 펼쳐낸다. 어느 날 이 책의 주인공 미국인 화산학자 시몬 앨리엇은 마데이라 남쪽 해변에서 파일럿 고래 수십 마리가 해변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마치 ‘그 이름처럼 날개를 잃고 불시착한 경비행기처럼 보였(p.5)’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사이에 거대한 흰 수염고래가 한 마리 있었고, 그 입에서 정체불명의 생물이 나왔다는 점이다. 시몬은 그것을 모포로 덮어 집으로 데려온다. 점점 사람의 형상을 갖춰가며 말을 할 수 있게 된 그는 자신에 대한 기억을 점점 하나씩 떠올려 간다.

 

“내가 누군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어디에서 왔는지는 말할 수 있네. 유토피아는 두 가지의 어원을 갖고 있어. 유토포스(eu-topos), 말 그대로 '좋은 곳'이라는 뜻이지. 그리고 우토포스(ou-topos),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이네. 이 세계엔 유토피아가 없지만 내가 있었던 세계엔 있지. 바다 깊은 곳에 또다른 바다가 있네. 바다의 바다라고 해야 할까. 거기에 유토(euto)가 있네. 그곳의 대기가 이렇게 황금빛이었네. 머리 위의 하늘과 흐르는 물결 속에 금이 녹아 있었지. 녹은 철과 금으로 이루어진 바다, 유토. 나는 그곳에서 건너왔네.”(p.96) 


  그는 자신이 토니오(Tonnio)라고 불렸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토니오는 전투기 조종사였으며 비행기가 포격 당해 망망 바다 한가운데 착륙을 시도했었다. 그러던 중 흰 수염 고래에게 삼켜져 지구의 중심을 향해 잠수했었고 그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바다, 유토라는 세계에 갔다가 다시 거기서 건너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오십 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지금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여러모로 매력적인 요소가 가득하다. 기묘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토니오라는 존재도 그렇고 고래의 언어를 청각은 물론 시각적으로 이미지화한 문장은 읽는 것만으로도 눈앞에 그대로 그려지는 듯했다. 특히 우리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바다 아래의 세상이자 세계의 안쪽에 대한 묘사는 사람의 마음을 잡아끌며 점점 빠져들게 했다.
  더불어 이 책은 인물들의 내적 변화를 통해 그것을 읽는 사람 역시 함께 치유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바다에 잠수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앨런을 찾느라 거의 자신의 삶을 포기했었던 시몬도, 가족을 잃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데쓰로도 어느새 저마다의 상실과 슬픔에서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점차 삶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토니오가 사랑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기로 힘을 모은다.

 


  이 책을 읽는 누군가는 유토라는 세계를 꿈꿀지도 모르겠다. 고래를 보고 싶고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분명 그곳은 육체의 고통도, 나이 듦과 죽음이 없는 초월적인 세상임이 확실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토니오를 통해 다시 한번 느낀다. 죽음이 있기에 ‘삶’을 갈망하고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것이며 사랑하는 사람과 어떤 의미, 그리고 살아있다는 느낌은 바로 이곳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피부와 피부가 닿는 것. 전해지는 온도와 정서. 이 모든 것이 토니오에겐 너무도 강한 힘으로 와닿았다. 여기가 유토가 아니라는 확신. 다시 지상의 존재로 돌아왔다는 실감. 육체와 육체를 통해 주고받는 살갗의 느낌과 피부밑을 흐르는 혈액의 뜨거움. 그 느낌은 살아 있다는 선명한 인식과 함께 한 걸음 앞에 죽음이 있다는 절대적 현실을 깨닫게 했다. (p.205)


“그래, 차라리 이렇게 늙어가는 이 느낌이 삶의 감각이지. 죽음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안전한 삶은 왜 지루한 걸까. 시몬, 이야기를 더 해도 되겠나? 유토란 정말 따분하기 짝이 없는 곳이라, 누구라도 좋으니 붙잡고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진다네.” (p.230)

 
“...마음의 시간은 흐르지만 유토의 육체는 제자리에 멈춰 있다는 건...... 그것은 생각처럼 좋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더군. 이상하다, 이상하다, 느끼다가 마침내 무감각해지네.” (p.231)

 

 

  토니오는 시몬과 데쓰로 그리고 우리에게 전한다. 죽음이란 그것으로 끝이 아니며 영혼은 그곳에 머물고 있으니 언젠가는 만날 수밖에 없다고. 반드시 만나게 된다고. 『프롬 토니오』는 죽음과 사랑과 삶에 대해 따뜻하고 편안하며 부드러운 온기로 한없이 그렇게 마음을 데워주는 책이었다.

 

“우리들에게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뭘까? 죽는 순간의 통증? 더 살 수 없다는 아쉬움? 아니야.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혼자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지. 떠나는 자도 남겨진 자도 같은 이유로 두려워하네.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 새로운 기억을 만들 수 없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야. 죽음 저 너머로 떠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들을 가슴속에 데리고 간다네. 남겨진 자들은 반대로 죽은 자들을 떠나보내지 않고 기억 속에 담아 함께 살아가지. 데쓰로 자네처럼 말일세. 그것이 기억이고 추억이야. 그것은 환상이나 환영 같은 것이 아니야. 영혼은 바로 그곳에 머문다네. 그리고 절대로 사라지지 않아. 내가 앨런을 만나고 온 것처럼. 만날 수 있지. 아니, 반드시 만나게 되네. 죽은 자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누군가가 간절히 찾는다면…… 언젠가는 만날 수밖에 없어.”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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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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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눈이 내릴 때마다 손을 내밀어 본다. 그러면 깃털같이 가볍고 폭신해 보이는 그것은 손에 내려앉자마자 사르르 녹아 없어진다. 눈(雪)은 그처럼 묘한 매력이 있었다. 새하얀 절경으로 아름다움을 선사하면서도 차가움이란 속성 때문에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만 좀 더 오래 두고 볼 수 있다. 놓치고 싶지 않다고 두 손에 힘을 쥐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빨리 사라져버릴 뿐이다.
  2018년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의 수상작 <작별>은 바로 이러한 점을 잘 담아냈다. 이 작품은 벤치에 앉아 깜박 잠들었다 깨어나 보니 눈사람이 되어버린 여자의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이런 일이 생기면 놀랍고 당황스럽고 무서울 법도 하건만, 여자는 오히려 담담하고 차분하게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한강 작가는 눈사람이 된 그녀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양쪽 모두와 호흡하며 그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애틋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슬픈지 섬세하게 그려나간다. 그리고 이 책은 이 책은 「작별」 외에도 6편의 수상 후보작을 담고 있어, 다양한 작가의 개성 넘치는 글들을 한데 모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차라리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억울해하거나 아는 사람이라도 잡고 하소연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녀는 자신이 눈사람이 되었음을 인정하며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직감할 따름이다. 그래서 그 모습이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했던 것 같다. 특히 아이가 걱정할까 봐 일부러 밝게 말한다거나 하룻밤 지나면 괜찮아질지도 모른다고 말했을 때, 부디 그녀의 시간이 좀 더 이어지기를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그녀가 아이를 안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팔이 그녀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마주 안았다. 순간 그녀의 왼쪽 가슴이 더워졌다. 얼어붙은 줄만 알았던 눈두덩 안쪽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새어 나오려 하는 것을 느꼈을 때 그녀는 아이를 안았던 팔을 풀며 말했다.
현관문 닫아야겠다. 공기가 너무 따뜻해.
아이가 돌아서서 현관문을 닫는 짧은 시간 동안 그녀는 열여덟 평 아파트의 내부를 일별했다. 그녀가 소유해온 모든 사물들이 그 안에 있었다. (「작별」, p.37)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졌지만 체감하는 속도나 양과 질은 저마다 다른 삶의 시간들.
그 시간은 유한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느끼며, 조금만 더 버텨주기를 얼마나 바라고 또 바랐는지 모른다. 모든 것이 아스라이 흩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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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 못해 사업을 시작하는 어른들을 위한 책
송명빈 지음 / 베프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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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를 틀면 자주 들려오는 소식 중 하나가 바로 취업난에 대한 소식이다. 그러나 지금 직장이 있다 하더라도 걱정되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경기 침체와 고용불안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되는 창업 그리고 사장님이 되는 꿈. 우리는 주변에 잘 되는 곳을 보며 자신 또한 그곳처럼 대박신화를 이뤄내는 상상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그러한 소망만 가지고는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 게 바로 창업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면 좋으며,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동안 자세히 알고 싶어도 조언을 구할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면 이 책을 추천해본다.
저자가 차근차근 옆에서 하나하나 일러주며 기본기부터 탄탄하게 잘 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창업에 대한 조언을 시작하기 전에 저자 자신의 직장 생활 이야기부터 시작하며, 창업을 시작하기 전,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것부터 중요하다며, 본인의 ‘핵심역량’은 무엇인지를 질문해온다. ‘성공을 가능케 하는 힘, 남들에겐 없는 나만의 동력, 그것이 핵심역량이다. (p.57)’ 그리고 아이템 선정을 할 때는 리스크를 최소로 줄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사업은 생각한 대로,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며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충분히 시뮬레이션하고 그에 대한 차선 및 3선책을 준비하라는 말도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사업을 시작하면, 잘 되겠지라는 마음,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의 마음은 알겠으나 이런 마음은 막연하기만 할 뿐 정작 문제가 발생하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미리 연습하고 대응책을 미리 만들어둔다면 나중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사업을 시작하는 것도 비용이 들겠지만 유지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데 이 책은 꼭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말하지 않고 기본은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음을 말해준다는 점이 좋았다. 예를 들면 반드시 오프라인 매장 혹은 사무실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며 무료 혹은 초저가 홈페이지 개설이나 오픈 마켓을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말한다. 매출을 일으키는 제품 역시 그것이 형체가 있을 수도 있고 형체가 없는 서비스도 하나의 제품이 될 수 있다며 각각 그에 맞는 사례를 함께 제시해주니 이해하기가 훨씬 편했다.
  특히 세금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계약서에 관한 것, 헷갈리기 쉬운 용어 등 자칫하면 그냥 넘어가거나 실수할 수 있는 부분까지도 자세히 언급해 주니 이 책 한 권만으로도 훌륭한 지침서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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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나보다 어린 사람이 보기에 많은 나이.
나보다 더 많이 산 사람이 보기에는 난 아직 젊은 나이.

 


그럼에도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느끼는 순간은
체력 차이라든가 아플 때, 아주 절실히 느끼는 중이다.
아파도 하루 만에 쉽게 낫지 않으며
회복하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
그리고 이 추운 날에 나는 긴팔을 입어도 추운데
누군가는 패딩이든 외투든 속에 반팔을 입고도 괜찮아요, 별로 안 추워요,라고
말하는 친구들을 보고 속으로 진심으로 부러웠더랬다.
...나도 이제 나이 먹었구나.라는 생각이 꼬리처럼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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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바라본 비행기는

새보다 더 가볍고 소리 없이

넓은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

.

.

마땅히 떠오르는 곳도 없으면서

나도 데려가 줬으면,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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