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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밸리로드 - 조현병 가족의 초상
로버트 콜커 지음, 공지민 옮김 / 다섯수레 / 2022년 7월
평점 :

여기 한 가족이 있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족의 형태가 아닌, 12명의 자녀를 두었고 그 중 6명의 아들이 조현병을 앓은, 너무도 불행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만나보았다.
한 때 완벽한 가족을 꿈꾸었던 엄마 미미를 포함해 12명의 형제들에 대해 서술되는 내용들은 너무도 자세하고 리얼해서 520 페이지를 덮었을 때에는 한 편의 영화관람을 마친 듯한 느낌이었다.
직업군인으로 성공적인 삶을 이룬 아버지 돈의 덕분에 어릴 때부터 다양한 운동과 악기를 연주하고, 좋은 환경에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누렸던 갤빈가족은, 그러나 첫째 아들의 조현병 발병을 시작으로 6명의 아들한테서 점차적으로 조현병 증상이 발견되면서, 이들의 삶은 철저히 무너져버린다.
처음에는, 자신들의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를 위해 그토록 많은 자녀를 두었지만, 아버지 돈은 실상 직업적인 관계로 거의 집에 있는 일이 없었고, 그러니 자연히 엄마 미미 혼자서 그 혈기왕성한 10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키워나가야 했다는 점은, 어떻게 보면 참 무책임하고 대책없는 가족계획이 아니었다 싶기도 하다.
그리고, 아들들의 조현병 발병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고, 어느 순간까지는 대외적으로는 여전히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아픈 6명을 위해 나머지 정상적인 자녀 6명은 자연히 소홀할 수 밖에 없었던 엄마 미미의 행동이 너무도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으로써의 아버지 돈에 대해서는 많이 거론되고 있지 않다. 자녀들이 커가는 동안 부재의 기간이 길었던 탓도 있고, 노년에는 병으로 집에만 칩거하는 상황이다보니)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한명도 아닌 6명의 장성한 아들이 차례로 조현병에 걸리고 집에서 끊임없이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조차도 포기하지 않고 이들을 스스로 거둬들인 엄마 미미를 생각하면, 그 고난의 삶을 상상하는 것조차 힘겹기만 하다. 가슴에 피멍이 들었겠지..
무엇이 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 형제들은 어릴 때부터 서로가 경쟁의 대상이었고, 보통의 형제들끼리 아웅다웅하는 수준을 떠나, 수시로 정말로 죽일듯 몸싸움을 하면서 자랐다. 어린 동생들을 위의 형들에게 맡기고 대외활동에 집착했던 부모의 탓일까..아니면 이미 이들에게는 뭔가 증상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일까..
지금도 여전히 치료방법이 명확하지 않은 조현병은 그 당시만 해도 정확한 병명도 없었고, 치료방법이라고 해봐야 병원에 입원, 각종 약을 처방하는 것 뿐이었으니 어린 나이에 처음 발병해 입퇴원 반복, 거의 4,50년을 이런 약을 복용했으니, 질병이 아닌 약의 부작용으로 몸에 이상이 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조현병을 앓은 6명의 아들도 안됐고, 그런 자식을 곁에서 바라봐야했던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상상도 하기 힘들지만, 정상적인 자녀 6명이야말로 가장 큰 피해자가 아닐까 싶다.
평생을 자신에게도 언제 정신병이 발병할지 몰라 두려워한 6명의 자녀들. 그리고 그 중 특히 맨 아래 2명의 딸들은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그러한 정신병을 앓고 있는 오빠들에게 노출된 채 성폭력, 위협, 불안을 달고 살아야만 했다.
그러나, 이들은 성인이 된 후 더이상 과거의 어둠을 묵인하지 않고, 자신들의 아픔을 외면했던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가여운 오빠들의 삶을 뒤돌아보며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길을 나서게 된다. 그리고 갤빈 가족은 자신들의 DNA 자료를 기증함으로써 조현병의 예방, 치료 연구에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책은 이렇듯 갤빈 가족의 뼈아픈 가족사와 조현병 환자들의 티테일한 증상들, 그리고 그 이전부터 이루어졌던 정신의학의 변천 등에 대한 내용이 정말 잘 담겨 있다. 행복했던 모습의 어린 시절의 사진들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조현병에 대해 그리고 그 당사자와 가족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 다섯수레 출판사 에서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