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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독립
최지현 외 지음 / 무제 / 2025년 6월
평점 :
가제본 서평 - 《사나운 독립》 최지현, 서평강, 문유림 지음 (무제, 2025년 6월)
-남자 없는 여자들, 최지현.
작가는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와 엄마, (때로는)이모와 지냈다.
시크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외할머니만의 애정, 내가 먹는 음식과 받는 교육만큼은 분명 힘썼으나 그 외 정서적으로는 불안했던 엄마. 요양병원에서 여생을 보내신 외할머니의 하루를 생각하고 두려워하기도 하고(p.51) 동생들을 책임지고 남자 없는 집안의 가장이 된 맏딸에 대한 외할머니의 기대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생각해 좌절한 엄마의 상처도 마주한다(p.62~64).
결국 외모부터 시작해 서로 오해하고 화를 내는 부정적인 모습까지 엄마와 많이 닮아 버린 내 모습에 놀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마음 저 아래 깊숙이 접어둔, 작가도 알고 있는 사실이라 담담하다. 아들을 낳은 작가는 외할머니부터 맏딸에게서 맏딸로 이어지는 역사를 끝냈다.
-나선형의 물, 서평강.
원하지 않았던 자식으로 태어나 평생 엄마에게 폭언을 듣지만, 큰 병을 얻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엄마를 끝까지 사랑한다.
두 페이지를 꼬박 채우는 그 폭언을 보고 나는, ‘정말, 이게 친모가 친딸에게 퍼부은 말들이라고? 마음이 무너지고 먹먹해져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언어 형태로 내 아이를 무너뜨리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다가 이런, 지금 이렇게 내가 이기적일 수가 있나? 싶었다. 부모와 자식은 모두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된다. 그저 내가 먼저 그 악습을 끊고 우리 아이는 답습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생각했다.
병상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해 딸에게 미안해하는 엄마에게 ‘아니야, 마음껏 해. 내가 다 해줄게. (p.202)’라는 구절을 보고 또 생각(아니, 반성)했다.
그럼에도, 그런 엄마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슬퍼하는 딸. 부모가 자식을 조건 없이 내리사랑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식이 부모를 조건 없이 사랑한다. 그리고, 조금 더 인생을 살아본 부모는 그걸 알면서도 그런 자식의 마음을 이용한다.
그리고 작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어쩌면 조건 없는 사랑은 부모의 사랑이 아니라 자식의 사랑인 것 아닐까.
나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엄마로 부르고 자신의 우주로 여기고 나를 무조건적으로 의지하고 사랑해 주는 사랑. (p.268)’
그렇게 경멸했던 엄마를 떠나보내며 용서와 사랑을 깨닫는다. 엄마가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자식을 낳고 이해한다. ‘가장 안전한 길을 알려주고 싶어서. 그 길이 아니면 죽을 거라고 두려워 떨 정도로 고집을 부리던 그 안전할 길. 기괴한 모양도 끈덕지게 들여다보니 사랑이더라... 외곬의 사랑, 맹목의 사랑, 부족하고 미숙한 사랑, 들어맞지 않는 사랑. (p.308)’
-열 평의 마그마, 문유림
살고 싶은 곳에서 살아야 하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작가는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오래전 사랑을 찾는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그와 겨우 연락이 닿았고 그렇게 그만을 향한 (어려운) 사랑으로 집을 옮기고 또 옮긴다. 그와 이별해야 한다면 그의 아이라도 낳아야겠다는 생각에 딸을 낳는다. 이제는 딸과 둘이 살고 있지만 작가는 아직도 자기만의 집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한다. 글 안에서 작가는 일본과 아이슬란드, 뉴질랜드와 제주도를 오가지만 결국 다시 딸과 함께 지내는 집으로 돌아온다.
사실 이 마지막 에세이가 가장 어려워 두세 번 반복에서 읽었다. 작가는 이제 그렇게도 자신을 옭아매던 뜨거웠던 지난 사랑에서 독립해, 앞으로 펼쳐질 딸과의 삶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독립은 사나울 수밖에 없다. 부드럽고 우아한 독립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그러면 ‘나 독립했다!’라고 시원하게 외치기가 조금 민망할 것 같다.
나 역시 철없던 시절 독립을 선언하고 부모 울타리에서 나온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아무 생각 없었겠지만 지금 엄마가 되어 다시 생각해 보니 독립을 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부모님도 자식에게서 독립하셨다. 그것도 아주 담담하고 깔끔하게.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그럴지는 몰라도 나는 그렇게 하라면 못 할 것 같다. 지금 보니 우리 부모님은 속으로는 얼마나 찢어지고 터졌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겉보기에는 진정한 독립가들이었다.
나도 딸인 게 처음이고 엄마인 게 처음이다. 누군가와 짝을 이루어 평생 살기로 한 것도 처음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서툴 수밖에. 《사나운 독립》을 읽으며 같이 웃고 울었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 잡은 독립(?)에 대한 갈망을 느긋하게 부드럽게 달래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