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 프로듀서 퇴사하겠습니다
오조 지음 / 팩토리나인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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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슈퍼히어로’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하여

오조 작가의 『히어로 프로듀서 퇴사하겠습니다』는 익숙한 히어로물의 틀을 깨고, 그 이면의 사람들—히어로를 ‘만드는 사람들’—의 세계를 유쾌하고도 뭉클하게 그려낸 K-히어로 판타지 소설이다. 슈퍼 파워나 거대 악당이 아니라, 이름 없는 조연들의 분투와 연대, 그리고 ‘사람 냄새’ 나는 드라마가 이야기를 이끈다. 이 책은 단순히 장르 소설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의 가치와 윤리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 히어로의 ‘뒷모습’을 만든다는 설정이 신선하다

책의 배경은 ‘히어로 프로듀서’라는 독특한 직군이 존재하는 세계다. 이들은 세상에 필요한 영웅을 선별하고, 그들의 이미지를 기획하며, 대중에게 신뢰를 심는 역할을 한다. 얼핏 보면 연예기획사의 매니저나 이미지 메이킹 전문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히어로 시스템을 떠받치는 ‘숨은 조력자’들이다.

주인공 조영은 바로 그 히어로 프로듀서다. 그는 매년 새해마다 ‘퇴사’ 의지를 다지면서도, 여전히 히어로들과 일하며 소진되고 지쳐간다. 조영의 이야기는 ‘사명감과 생계’, ‘가치와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잃어가는 모든 현대인의 초상처럼 그려진다. 특별한 사건 없이도, 그의 피로감은 리얼하고 절절하게 와닿는다. 이 책의 재미는 바로 이 비범한 세계관 속의 평범한 고민에 있다.


✔ 3부 구성: 그만둬야 할 순간, 붙잡아야 할 것, 그리고 함께해야 할 시기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 1부: 누구에게나 그만둬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이 부분에서는 조영이 히어로 프로듀서로 일하며 겪는 권태와 좌절, 그리고 인간적인 갈등이 중심이다.
    “세상은 아무리 발견해도 보편해야 할 히어로들이 많지 않다”는 대목은 현대 사회의 자격과 선별의 문제를 풍자적으로 건드린다.

  • 2부: 누구에게나 붙잡아야 하는 것이 있다
    이 부에서는 일터에서의 관계, 책임감, 그리고 진심이라는 가치가 중심이 된다.
    “지심아, 바가지 얼른 언니한테 줘. 너무 빨라는 말고 조금만 빨리” 같은 문장에서는 인물들의 리듬과 감정이 구체적인 사물과 언어로 정교하게 묘사된다. 피로한 인물들이 ‘일’을 매개로 나누는 교감이 따뜻하다.

  • 3부: 누구에게나 함께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
    마지막 부는 연대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영웅이란, 처음부터 영웅이 아니며, 영웅으로 이어 나가는 행위를 뜻한다”는 문장은 이 책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준다. 영웅이란 존재가 아니라 실천이며, 그 실천은 특별한 힘이 아닌 ‘의지’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가 강렬하게 전해진다.


✔ 영웅은 누가 만드는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영웅은 누가 되는가?”가 아니라 “영웅은 누가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되묻는다는 점이다. 그동안 히어로 장르가 주목했던 인물은 초능력자, 싸움꾼, 구세주였다면, 이 작품은 그 주변의 이름 없는 사람들—조율자, 보좌자, 기록자, 때론 방패막이인 존재들—에 집중한다. 이는 곧 영웅 서사의 탈중심화이자, 주변인물들의 복권이다.

특히 히어로 프로듀서라는 설정은 언론, 정치를 포함해 '이미지를 기획하는 사람들'의 역할을 은유한다. 실제 세상에서도 대중은 언제나 특정 인물을 ‘영웅’으로 믿고 소비하지만, 그 이미지의 생산과 관리, 편집에는 무수한 손길이 작용한다. 이 소설은 그러한 현실의 메커니즘을 장르적 상상력으로 풀어내며, 독자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 유쾌함 속의 따뜻한 공감, 그리고 사회적 질문

『히어로 프로듀서 퇴사하겠습니다』는 분명히 가볍고 빠르게 읽힌다. 재치 있는 대사, 유머러스한 설정, 귀여운 일러스트까지 독자의 몰입을 돕는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회 구조 속에서 인간이 겪는 피로, 존재의 무게, 인정 욕구, 윤리적 혼란 같은 깊은 주제들이 서려 있다.

조영이라는 인물은 특별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나 평범하고, 소심하고, 쉽게 상처받는다. 그렇기에 그의 여정은 독자에게 실감나게 다가온다. 독자 자신이 회사원, 활동가, 기획자, 교사, 혹은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는 곧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것이다.


✔ 작가 오조의 데뷔작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

이 작품은 오조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다. 그는 동국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23년 한경가족 스토리 공모전 ‘로맨스 도파민’에 단편 <행운을 빌며 한가 밤>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신인답지 않게 세계관 설정은 탄탄하고, 인물 간의 감정선은 섬세하다. 특히 '소설 쓰면서 목구멍에서 불이 나는 걸 좋아한다'는 작가 소개처럼, 에너지와 열정이 글 전반에 살아 숨 쉰다.


✔ 총평: 히어로물이 아니라, 히어로를 만드는 모두의 이야기

『히어로 프로듀서 퇴사하겠습니다』는 ‘영웅’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너무도 가볍고 유쾌하게 풀어낸다. 하지만 그 끝에는 묵직한 울림이 있다. 사회 속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던 연대와 진심, 그리고 *‘누군가를 빛나게 하기 위해 내 삶을 써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이 소설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아직도 히어로를 원하지만, 그 히어로가 당신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추천 독자

  • ‘히어로물’은 식상하다고 생각했던 독자

  • 일터에서 번아웃을 겪고 있는 직장인

  • 조연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들

  • 일과 사람 사이에서 방향을 잃은 누군가

한 줄 요약

: “히어로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당신이 만들어낸 세계가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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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어를 바꾸는 골프 심리학 - 세계 최고 스포츠 심리학자의 골프 멘탈 관리법
밥 로텔라 지음, 스포츠심리학연구소 옮김 / 현익출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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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스코어를 바꾸는 골프 심리학’ 리뷰 — 샷보다 먼저 마음을 세팅하라

밥 로텔라의 『스코어를 바꾸는 골프 심리학』은 “골프는 멘탈 게임”이라는 상투적 문장을 실전 도구로 바꿔주는 책이다. 저자는 PGA·LPGA 최정상 선수들을 오랫동안 코칭해 온 스포츠 심리학자로, 투어 현장에서 증명된 원칙들을 사례와 훈련법으로 정리한다. 단지 동기부여를 주는 책을 넘어, 스코어카드에 바로 반영될 수 있는 ‘생각의 기술서’에 가깝다. 국내 서점 소개에서도 로텔라가 수십 년간 챔피언들의 멘탈 코치를 맡아온 이력과 본서의 실전 지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예스24알라딘교보문고


1) 골프는 ‘꿈을 좇는 게임’에서 시작된다

책은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으로 문을 연다.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꿈을 정하고, 그 꿈에 맞게 일상의 선택을 조정하라고 권한다. 목표가 선명해질수록 집중·회복탄력성·승부욕 같은 심리 근육이 자란다는 설명은 로텔라 특유의 직설로 설득력을 얻는다. 초기 장(1~3장)은 꿈–마음가짐–자기신뢰라는 토대를 다져, 이후의 모든 기술을 지탱하는 기반을 만든다.

2) ‘마음가짐은 선택’이라는 급진적 명제

로텔라는 컨디션·바람·러프보다 먼저 다룰 변수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불안과 의심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생각 습관이며, 바꿔 잡을 수 있는 그립과 같다는 비유가 인상적이다. 특히 “정신은 목표에, 감각은 볼에 둔다”는 원칙은 스윙 메커닉에 매몰되는 아마추어에게 유효한 해독제다. 목표(타깃)로 시각을 띄워 보내고, 몸은 감각의 자동조종에 맡기는 방식이다. 이 원리는 책의 중반(7·9·15장)에서 다양한 루틴과 함께 구체화된다.

3) 루틴: 무의식을 설계하는 공정

**프리샷 루틴은 ‘생각을 덜어내는 시스템’**이다. 루틴의 핵심은 세 단계로 요약된다.

  1. 결정: 타깃과 샷 유형을 하나로 정하고(‘결심’),

  2. 시각화: 그 궤적과 탄도를 잠깐 그려 본 뒤,

  3. 몰입: 셋업에 들어가면 언어적 생각을 끊고 감각을 따라간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항상 같은 순서’와 ‘짧은 시간’이다. 루틴은 좋은 샷의 확률을 키우고, 나쁜 샷 이후 심리 회복을 빠르게 만든다. 책이 말하는 “루틴=무의식의 설계도”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4) 결과를 내려놓으면 샷이 좋아진다

아마추어가 가장 흔히 저지르는 오류는 결과 집착이다. 파 퍼트를 남기면 “놓치면 보기”라는 계산이 뇌를 장악하고, 근육은 방어적으로 굳는다. 로텔라는 **‘결과–과정 분리’**를 주문한다. 결과는 스코어카드에 적히는 숫자, 과정은 타깃을 향해 자신 있게 스윙하는 한 번의 행동이다. 오직 과정에만 책임을 지겠다고 결심하면(10장), 손의 긴장이 풀리고 거리와 방향의 편차가 줄어든다. “숫자를 지우고 샷에 집중하라”(19장)는 장 제목이 상징적이다.

5) 자신감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훈련된다

로텔라는 자신감도 근육이라고 말한다. 매 라운드에서 가장 잘 친 3개의 샷을 기록하고, 그 감각을 짧게 언어화해 다음 라운드를 위한 ‘긍정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라고 권한다(13장). 좋은 기억을 저장하는 습관은 어제의 실수를 오늘의 의심으로 재가공하지 못하게 막는다. 이처럼 자신감을 계획적으로 키우는 기술은 로텔라 코칭의 백미다. 국내 소개문도 “연습의 목적은 자기 신뢰”라는 본서의 주제를 강조한다. 예스24

6) 두려움 리셋 & 전략적 보수성

압박이 커질수록 사람은 안전한 스윙이 아니라 안전한 타깃이 필요하다. 로텔라는 하이 리스크/하이 리워드 대신, 보수적 타깃·공격적 스윙을 권한다(16~17장). 이는 핀을 직접 겨냥하기보다 안전 지점을 향해 강하게 커밋하는 방식이다. 동시에 그는 호흡·시선·셀프토크로 구성된 ‘두려움 리셋’ 프로토콜을 제시해, 트리플 보기를 더 키우는 악순환을 차단한다(14장). 이 조합은 스코어의 하한선을 현실적으로 끌어올린다.

7) ‘경쟁자는 자신’이라는 태도

로텔라는 동반자의 샷, 코스 난도, 날씨마저 통제 불가능으로 분류한다. 비교를 중단하고 **자기 기준(과정 준수율)**만 점검하라고 강조한다(20장). 이 철학은 엘리트 선수들에게만 필요한 도덕적 선언이 아니라, 이튿날 연습의 방향을 명료하게 만드는 데이터 관리법이다. ‘샷 전 결심–시각화–몰입’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18홀 동안 체크하면, 스코어보다 유의미한 피드백이 남는다.

8) 연습장을 필드로 옮기는 법

연습은 자세 교정이 아니라 신뢰 구축을 위한 것이다(21장). 따라서 루틴을 포함한 ‘필드 시뮬레이션’이 핵심이 된다. 1) 타깃을 바꾸며 한 번씩만 치기, 2) ‘파 3홀’ 같은 미션 연습, 3) 페이드·드로우를 번갈아 요구하는 의도 훈련 등은 실전 전이도가 높은 프로그램들이다. 책은 “감각을 길들이는 연습”과 “생각을 조용히 하는 연습”을 분리해 설명하는데, 이는 아마추어 연습의 비효율을 줄여준다.

9) 사례가 주는 설득력

로텔라의 강점은 스토리텔링이다. 벤 크렌쇼, 톰 카이트 등 투어 프로의 일화와 LPGA 무대의 코칭 사례가 책 전반을 관통한다. 단순한 훈계가 아니라 결정–집중–회복의 장면을 현장감 있게 보여주기에, 독자는 원칙의 생명력을 느낀다. 국내 소개 자료에서도 주요 투어 선수들과의 협업 이력이 확인된다. 알라딘Facebook

10) 아마추어를 위한 ‘적용 체크리스트’

  • 라운드 전: 오늘의 과정 목표 2가지(예: 루틴 준수율 80%, 타깃 시각화 유지) 적기.

  • 티잉그라운드: 타깃–샷 유형–커밋의 3단계 루틴을 20초 안에.

  • 그린 주변: ‘핀 직공’ 금지. 보수적 타깃·공격적 스트로크 원칙 적용.

  • 나쁜 샷 후: 심호흡 3번, 중립 문장 1개(“다음 샷에만 집중”)로 두려움 리셋.

  • 라운드 후: 최고의 샷 3개 기록(상황·의도·감각) → 자신감 데이터베이스 업데이트.

11) 한계와 장점

해외 투어 사례가 많아 코스 환경·문화가 다른 국내 아마추어에게 100% 일치하진 않을 수 있다. 또 메시지의 축은 일관되게 “과정 집중”에 모여 다소 반복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반복 덕분에 실행의 심리 장벽이 낮아진다. 문장을 덮고 곧바로 연습장·코스로 나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책이다.


결론

『스코어를 바꾸는 골프 심리학』은 스윙 이론을 더하는 대신 잡념을 덜어내는 법을 가르친다. 목표 설정–마음가짐–루틴–결과 분리–자신감 훈련–보수적 전략–자기 기준 피드백으로 이어지는 일관된 프레임은, 아마추어의 가장 흔한 문제(연습장 실력의 필드 이전 실패)를 정면으로 해결한다. 로텔라가 수십 년 현장에서 다듬은 원칙을 압축해 담았다는 점도 신뢰를 더한다. 책 소개문들이 강조하듯, 이것은 단순한 동기부여가 아니라 스코어를 바꾸는 실전 멘탈 매뉴얼이다. 샷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생각의 순서를 바꾸라—이 책의 가장 강력한 한 문장 요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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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들을 의심하는 100가지 철학
오가와 히토시 지음, 곽현아 옮김 / 이든서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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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당연한 것들을 의심하는 100가지 철학』은 철학자 오가와 히토시가 독자들에게 전하는 강력한 사고 실험장이자, 일상 속 사고의 전환을 촉구하는 안내서다. 표지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책은, 우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상식’ 혹은 ‘진리’라 여겨온 명제들을 정면으로 낯설게 만든다. 그것도 무려 100가지 질문을 통해 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그 어떤 철학 개론서보다 친절하고 명확하다는 점이다. 독자는 복잡한 개념을 암기할 필요도, 철학사 전체를 이해할 필요도 없다. 다만, 매 페이지마다 던져지는 도발적 질문 앞에서 자신의 사고를 멈추고 "정말 그런가?"라고 묻는 연습을 하면 된다. 예컨대 “벌은 징계인가, 성장의 기회인가?”, “SNS에 이용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모든 것은 지식의 ‘유행’일 뿐인가?” 같은 질문은 일상을 구성하는 생각의 틀을 뒤흔든다. 철학을 거창하고 먼 학문으로 여기던 독자에게도, 이 책은 ‘생각하는 힘’이 얼마나 실천적인 능력인지를 깨닫게 만든다.

책은 총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1부는 ‘당연함을 의심하는 50가지 방법’, 2부는 ‘철학자에게 배우는 50가지 의심’으로, 철학적 질문과 함께 인용된 철학자의 이론 또는 작품이 짧고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다. 예를 들어, 1부에서는 "욕망의 더 깊은 곳을 꿰뚫어 보라"는 라캉의 ‘대상 a’ 개념이, 2부에서는 "정의로운 전쟁이 있다라고 생각해 보자"는 월저의 ‘정전론’이 소개된다. 이때 중요한 건 개념 자체의 정답이 아니라, 그 질문이 우리 사고에 어떤 균열을 내느냐는 것이다. ‘균열’은 곧 변화의 출발점이다.

흥미로운 점은 질문들이 철학자들의 이름 뒤에 숨지 않고, 오히려 평범한 우리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된 방식으로 배치되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행복이 다른 사람에 대한 의무일 수 있는가’, ‘복수는 정말 나쁜 것인가’, ‘인터넷이 세상을 편리하게 만들기만 했는가’ 같은 질문은 철학을 교양이 아닌 ‘도구’로 삼게 한다. 이것은 저자가 강조하는 ‘실용 철학’의 진수다. 즉, 철학은 고상한 사색이 아니라, 실생활을 좀 더 잘 살아가기 위한 ‘생존 기술’이다.

책의 구성도 매우 체계적이다. 각 질문은 한 쪽 내외의 짧은 분량으로 정리되어 있고, 철학자의 사상과 그 질문의 연결고리가 깔끔하게 설명된다. 독자는 꼭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된다. 목차에서 흥미로운 질문을 고르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는 것만으로도 그날 하루의 사고가 새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바쁜 현대인들에게 ‘짧고 깊은 사고’를 선사하는 책이라는 점에서 강점이 있다.

『당연한 것들을 의심하는 100가지 철학』은 청소년 철학 입문서로도, 성인을 위한 사고 전환서로도 훌륭하다. 입시와 취업, 효율과 실용만을 좇는 교육과 사회 분위기 속에서 ‘질문하는 법’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이 책은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바로, “의심은 지성의 시작이다”라는 철학의 오래된 격언이다.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든, 질문하고 성찰하는 힘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능력임을 이 책은 강하게 주장한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철학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상의 실천이다. 내가 무심코 믿어온 생각, 고정관념, 통념에 ‘왜?’를 던지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철학은 거창한 담론이 아닌, 아주 작고 사소한 물음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이 책은 친절하게 보여준다.

철학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싶거나, 자기 사고의 틀을 확장하고 싶은 독자라면 반드시 이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100개의 질문은 단지 지적 자극을 넘어서, 당신의 삶을 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도록 이끌 것이다. 의심은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 변화의 씨앗이 자란다. 이 책은 그 씨앗을 틔우는 최고의 철학 입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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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 런던 여행지도 - 수만 시간 노력해 지도의 형태로 만든 런던 여행 가이드북, 2024-2025 개정판 에이든 가이드북 & 여행지도
타블라라사 편집부.이정기 지음 / 타블라라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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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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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 원에 산 비트코인 1억 원이 넘어도 안 파는 이유 - 100억대 자산가 최성락의 비트코인론
최성락 지음 / 여린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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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50만 원에 산 비트코인, 1억 원이 넘어도 안 파는 이유』는 단순한 투자 성공담을 넘어, 비트코인이 지닌 경제적·정치적·사회적 의미를 다층적으로 해석하는 흥미로운 교양서이다. 저자 최성락은 비트코인을 2013년에 처음 접하고, 이후 수년간 그 가치와 본질을 통찰해온 연구자이다. 그는 단기적 가격 상승에만 주목하지 않고, 비트코인이 제도화된 경제와 정치 질서에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 이 자산의 존재 의의를 탐색한다.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장은 비트코인을 바라보는 경제학의 시선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비트코인이 왜 주류 경제학자들에게 비판받는지를 설명하며, 시장의 자율성과 국가 개입 사이에서 경제 이론이 어떻게 갈라져 왔는지를 짚는다. 특히 고전적 자유주의, 케인스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비트코인의 위치를 조명한다. 비트코인은 정부가 발행하지 않은 통화로서, 정부의 경제 개입을 최소화하려는 자유주의적 이상에 부합하지만, 동시에 불안정한 가격 변동성으로 인해 케인스주의적 비판에도 직면한다.

2장에서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비트코인의 접점을 다룬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탈국가적 통화로서 비트코인은 기존의 주권 개념에 도전하며, 중앙정부가 통제하지 못하는 화폐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동양과 서양의 권력 개념의 차이, 국가 권력의 경계, 세계정부와 국민국가의 갈등 등 정치철학적 담론과 연결시키며 비트코인이 단순한 '디지털 자산'을 넘어선 정치적 실험이라는 시각을 제시한다.

3장은 비트코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연대기적으로 정리한다. 1기(출현2017), 2기(20172025), 3기(트럼프 정권 이후)로 나눠 비트코인에 대한 사회와 제도권의 수용 과정을 설명하며, 특히 가상자산 관련 법규와 제도의 변화를 통해 제도권이 어떻게 비트코인을 받아들여 왔는지 분석한다. 비트코인 ETF의 의미와 주식·부동산 등 다른 자산군과의 관계 변화도 이 장의 주요한 논점이다.

4장은 투자 대상으로서의 비트코인을 살핀다. 저자는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에만 주목하는 단기적 접근을 경계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왜 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리를 제시한다. 여기엔 통화 발행량의 제한, 탈중앙화, 검열 저항성 등의 본질적 속성이 있다. 투자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병치하면서, 변동성과 리스크, 마니아적 신봉층의 존재도 다루며, 독자가 비트코인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도록 이끈다.

5장에서는 비트코인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을 정리한다. 범죄에 활용된다는 우려, 환경을 파괴한다는 주장, 양적긴축 등 거시경제 환경 변화에 취약하다는 지적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비판을 회피하지 않고 성실히 검토하면서, 비트코인의 기술적 진보 가능성과 제도화 이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한다.

6장에서는 '그래도 비트코인'이라는 주제를 통해 비트코인이 가지는 철학적·문화적 의의를 조명한다. 알트코인과의 차별점, 국제 상품화 가능성, 블록체인의 미래 기술로서의 잠재력, 디지털 시대의 희소성과 작가 사망 후 예술작품의 가치 상승과 유사한 메커니즘 등이 제시된다. 특히 ‘한계를 돌파하는 상상력’으로서 비트코인이 가지는 문화적 상징성은 이 책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다.

이 책은 단순한 암호화폐 입문서나 투자 지침서와는 다르다. 경제학, 정치철학, 사회학, 기술사 등을 횡단하며 비트코인의 본질을 파헤친다. 저자는 비트코인을 통해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정부가 발행하지 않은 통화는 어떻게 제도권에 편입될 수 있는가?”, “자산의 희소성과 가치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디지털 시대의 소유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단순히 암호화폐의 성패를 넘어 현대 사회가 직면한 화폐의 본질, 권력, 신뢰, 그리고 자유에 대한 성찰로 확장된다.

총평하자면, 『50만 원에 산 비트코인, 1억 원이 넘어도 안 파는 이유』는 비트코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꼭 추천할 만한 책이다. 단기 수익에만 초점을 맞추는 시각에서 벗어나, 이 새로운 자산이 기존 세계관에 던지는 도전과 가능성을 통찰력 있게 풀어낸 이 책은, 비트코인을 '돈'이 아니라 '담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저자의 치밀한 분석과 균형 잡힌 시선은 독자에게 단순한 정보가 아닌,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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