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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심이 마음이나 용기가 아니라 돈이라는 게 문제가 됐다.

"무슨 곤경이길래 열세 살이나 많은 사람이 도와줬어?"

실패한 이야기나 마음을 먹먹하게 하는 얘기는 한오를 두렵게 했으니까. 그런 고객들도 성공한 적이 있었지만 잠시에 불과했다. 결국 실패에 이르고 그러면 대개 가진 것을 잃었다.

다만 어떤 징검다리를 거쳐 그 결말에 이를지는 각자가 선택할 수 있다. 시간여행자는 관찰할 사건을 스스로 결정함으로써 자신의 기억을 수정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기억이 수정되면 우주의 운행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이처럼 희망은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한다. 그러니 과거에서 희망을 찾지 말아야 한다. 희망은 우리의 미래에 있었다. 방금 ‘있다’가 아니라 ‘있었다’라고 쓴 것처럼, 이미 결말을 아는 사람처럼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바로 희망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타인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삶의 일들은 그저 벌어질 뿐인데도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받기 위해 이유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유가 필요 없다. 대신에 희망이 필요하다. 나의 희망으로는 결코 타인들에게 이해받지 못한다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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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상대가 나를 사랑해줄 경우에 그 사람의 매력이 순식간에 빛이 바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타락한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이상적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서 사랑을 한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어느 날 마음을 바꾸어 나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만하다고 인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취향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그런 문제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내가 바라던 대로 멋진 사람일 수 있을까?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어떤 면에서 나보다 낫다고 믿어야만 한다면, 상대가 나의 사랑에 보답을 할 때 잔인한 역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묻게 된다."그/그녀가 정말로 그렇게 멋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아직 완전히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무한히 풍부해 보이는 삶의 물질적 기호들에 대한 매혹으로 나타났다. 일상적인 것이라도 특별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경이의 빛을 발산하기 마련이다.

전이(轉移)의 한 형태이겠지만, 나는 그녀가 소유한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아주 완벽하고, 세련되고, 사람들이 일반 가게에서 사는 것과는 달라 보였다.

그녀의 육체의 성소. 나는 수상 순례지를 찾은 순례자.

그녀의 거짓말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자부심의 징후였다. 그녀는 낭만적인 것을 비웃는 데에, 감상적인 것을 배격하는 데에, 사무적인 태도를 취하고 거리를 두는 데에 어떤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속으로는 정반대였다. 이상주의적이고, 몽상적이고, 베풀려고 하고, 입으로는죽을 쑤는 것(지나치게 감상적인 것/역주)이라고 배격하는 모든 것에 깊은 애착을 느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어쩐 일인지 보답을 받을 가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었다. 나는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데에 더 무게를 두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일에 집중했던 것은 아마도 사랑을 받는 것보다는 사랑을 하는 것이 언제나 덜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며, 큐피드의 화살을 맞기보다는 쏘는 것이,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 쉽기 때문일 것이다.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은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안전하게 고통스럽다. 자신 외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초한 달곰씁쓸하고 사적인 고통이다. 그러나 사랑이 보답을 받는 순간 상처를받는다는 수동적 태도는 버려야 하며, 스스로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책임을 떠안을 각오를 해야 한다.

클럽에 가입하기를 소망하면서 그것이 실현되자마자 그 소망을 잃어버리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클로이가 나를 사랑하기를 바랐으면서, 막상 그녀가 나를 사랑하자 그녀에게 화를 내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어쩌면 어떤 사랑은 아름답거나 고귀한 존재와 사랑의 동맹을 맺음으로써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약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충동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사랑해준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돌아와 우리를 애초에 사랑으로 몰고 간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원했던 것은 사랑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저 믿을 수 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믿게 되었으니 우리가 어떻게 계속해서 그 사람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만일 네가 나 하라는 대로 했다면 나는 네가 너무 나약하다고 생각했을 거야.

만일 우리 내부에 부족한 데가 전혀 없다면 우리는 사랑을 하지 않겠지만, 상대에게서도 비슷하게 부족한 데를 발견하면 불쾌감을 느낀다.

사랑이 보답을 받는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그 순간을 어떻게 헤치고 나아가느냐 하는 것은 자기 사랑과 자기 혐오 사이의 균형에 달려 있다. 자기 혐오가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의 보답을 받게 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저런 핑계로]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다고 [자신의 쓸모없는 면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잘 맞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 사랑이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이 보답받게 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수준이 낮다는 증거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었다는 증거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불충분한 자료에 기초하여 사랑에 빠지며, 우리의 무지를 욕망으로 보충한다.

성숙한 사랑의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상대를 진정으로 알 때에만 사랑이 자라날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왜곡된 사랑의 현실[우리가 알기전에 태어나는 사랑]에서는 아는 것이 늘어날 경우, 그것은 유인이 아니라 장애가 될 수도 있다―유토피아가 현실과 위험한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랑 이야기에는 이런 순간들이 있지 않을까? 자신의 생각이 반영되기를 기대하면서 상대의 눈을 찾지만, 결국은 [희비극적인] 불일치로 끝나버리는 순간―그것이 계급투쟁의 문제이건, 구두 한 켤레의 문제이건.

"내 딸과 자네가 서로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네. 나는 사랑 문제에 전문가가 아니지만 한 가지는 말해두겠네. 결국 누구와 결혼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가 않네. 처음에 좋아한다고 해도 끝에 가서는 좋아하지 않을 수 있네. 처음에는 미워하다가도, 결국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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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라오는 깨달았다. 그는 사후 세계도 내세도 믿지 않았다. 이것은 속죄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불행과 무관하게 반짝반짝 빛나는 이 도시를 증오하고 있었다. 라오는 이 전화가 세상에 혼란을 가져오기를, 누군가의 가슴을 무참히 찢어 놓기를 바라고 있었다.

어두운 사람을 반기는 조직은 없다. 불행한 사람은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숨겼어야 했다. 작위적으로 보일지라도 밝게 웃었어야 했다. 나중에 알려질지언정 나서서 눈물까지 보이며 털어놓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무탈하고 무고하며 건강하고 씩씩해서 무슨 일이든 잘 해낼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감당할 수 있으며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는 원만한 사람입니다.’ 회사가 듣고 싶었던 메시지는 그런 고백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허세나 허풍일지라도.

여자도 그들을 등지고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제 이쪽으로는 다시 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느라 인생을 허비하는 것은 인생에 딱 한 번이면 족했다.

슬픔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더 드세게 두 사람의 삶을 틀어쥐었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런 채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슬픔과 상실감 역시 아이가 남긴 흔적이었다. 정희는 차마 다시 행복해지고 싶다거나 아이를 잃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런 마음은, 그런 시간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형사의 눈빛이 흐려질 때마다 정희의 감정은 가파르게 무너졌다. 제대로 설명해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부담감에 그녀의 가슴이 조여 왔다.

그녀는 빛 속을 터덜터덜 걸었다. 삶이 또다시 그녀의 의지나 욕망과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정희는 고통과 시련을 통해 단단해지는 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맷집조차 만들지 못했다. 사나운 운명이 정희에게 남긴 것은 트라우마와 두려움, 그리고 그녀 자신 말고는 아무도 그녀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는 초라한 자기 연민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외로움과 불행을 범죄의 알리바이로 삼는 것도 일종의 중독이라고 생각했다.

또다시 누군가의 불행을 빌고 또 비는 끔찍한 밤들이 지나갔다. 두 번째 공여자는 뜻밖에도 빨리 나타났다.

정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가능성은 현실적으로도 확률적으로도 희박했다. 그녀의 삶이 그런 판타지로 작동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정희는 문득 억울해졌다.어째서지? 한 번쯤은 그래도 되잖아. 인생에 딱 한 번쯤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대부분 간과했다. 하지만 값없이 베푸는 친절이었다. 그런 것까지 시시콜콜 지적해 대며 상대를 무안하게 할 필요는 없다는 걸 공 기사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뭐.
공 기사는 마음에 일어나는 거스러미를 뚝뚝 잘라 버렸다. 알면서도 반백 년 넘게 고치지 못했다. 여태 못 했으니 앞으로도 못 할 것이다.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욕망도 필요도 느끼지 못한 지 오래였다.

부모는 자식을 맹신한다. 그렇다고들 했다. 철식의 부탁을 받았을 때 공 기사는 죽은 아들을 떠올렸고, 그 눈먼 믿음을 흉내 내고 싶었다. 철식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은 것은 그래서였다. 공 기사의 아이는 유순했다. 그 애는 너무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죽었다. 아니, 사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기억을 제 마음대로 뒤바꾼 것인지도 몰랐다.

혜순은 딸이 있을 종합병원 장례식장 입구에 서서 축축해진 손바닥을 허리춤에 문질러 닦았다. 손을 잡아 줘야 할 테니까. 더 이상 아이의 엄마도, 누군가의 아내도 아니지만 아직 삶이 끝난 것이 아니라고 딸에게 말해 줘야 할 테니까. 혜순은 여기, 너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 줄 사람이 있다고, 너는 내 딸이라고,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오래 너를 그렇게 불러 온 여자가 여기 왔다고, 딸의 두 손을 단단히 붙잡고 말해 줄 생각이었다.

그녀는 딸을 볼 면목이 없었다. 딸의 삶에 비하면 그녀의 인생은 너무 순탄한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나 부당하고 가혹했다. 하지만 혜순에게는 그것을 거둬 갈 능력도 지혜도 없었다. 이런 삶을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혜순은 차마 딸을 낳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응어리진 가슴을 치며 혜순은 겨우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정말 끔찍한 사람은 그녀가 작성한 기사 바깥에 있을 거였다. 내연녀를 살해하고 자살(하며 노인을 객사하게)한 김 씨의 아내. 어떤 의미에서 그녀의 악몽은 이제 막, 시작된 셈이다. 머리가 반 이상 날아가고도 숨통이 완전히 끊어지기 전까진 고통당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죽지 못한 자들의 숙명이니까.

자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먹어야 했다. 너무 기력이 없으면 잠조차 잘 수 없다. 삶이 아직도 보고 싶지 않은 속살을 드러내 가며 그녀에게 뭔가를 가르쳐 줬다. 이건 몰랐지? 이것도 몰랐을 거야. 진저리가 날 정도였다.

그렇지 못한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30년 넘게 살면서 많은 약속을 해 왔다. 대부분 지키지 못하거나 지킬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녀가 지금껏 살면서 파기해 온 약속들 중 최악도 아닐 것이다.

아내가 그런 결심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너무 살고 싶은 마음은 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과 한 끗 차이라는 것.

"주변에 있는 사람들한테 기대 볼 수도 있겠죠. 사람들은 대체로 내게 다정해요. 내가 너무너무 불행하니까. 나를 동정하면서 아직 자기들이 잃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안도하기도 하겠죠. 하지만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고, 결국엔 다정했던 사람들도 내 슬픔에 진절머리를 내게 되죠."
"……."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남은 시간이 너무 길어요."

현실 세계에서 발을 떼고 있는 사람에게 현실적인 겁박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발을 잡아당겨 현실을 딛고 서게 하는 것이 먼저였다.

철식은 지난 3년간, 자신의 삶을 무겁게 억누르고 있던 죄책감과 책임감이 무지와 착각의 소산일 뿐이었다는 사실에 허탈함을 느꼈다.

불행한 사람들을 찾아와 자신의 대나무밭인 양 떠들어 대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너와 비슷한 아픔을 겪어 본 적이 있어. 나도 그만큼 아팠어. 들어 보면 공감의 근거는 희박하고,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지껄이는 것뿐이다. 정말 끔찍한 건 그런 무례함이 다정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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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도는 절대로 응답받을 수 없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비참한 순환에는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에 하나 하늘이 우리를 가엾게 여겨 우리가 그리던 왕자나 공주를 만나게 해준다면, 그 만남을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한 번만이라도 논리에서 벗어나서 그 만남이 우리의 낭만적 운명의 징표라고 해석할 수는 없을까?

대화는 두서없이 이어져나가면서 서로의 성격을 흘끔거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구불구불한 산악 도로에서 잠깐씩 경치를 구경하는 것과 비슷했다.

어떤 사람을 두고 자신의 필생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 살아보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따라서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나는 회의적 태도로 운명의 문제를 생각할 능력을 잃어버렸다. 우리 둘 다 그때까지 미신적인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클로이와 나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느끼던 것, 즉우리가 서로에게로 운명지어졌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무수한 사실들―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을 손에 쥐게 되었다.

우리 두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하늘의 거대한 정신이 우리 궤도를 미묘하게 조정하여 우리를 어느 날 파리발 런던행 비행기에서 만나게 해준 것 같았다. 우리의 사랑이 우리에게 현실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이 되지 못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 누군가 비행기를 놓치거나 전화번호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쓰이지 못했던 로맨스들을 무시해버릴 수 있었다. 우리는 역사가들처럼 확고하게 실제로 일어난 일의 편을 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만났다. 이 계산은 우리에게 이성적 주장들을 납득시키기는커녕,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된 것에 대한 신비적 해석을 뒷받침해주었을 뿐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엄청나게 작은데도 결국 일어났다면, 운명론적 설명에 호소를 한다고 해도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불안에서 벗어나려고 운명이라는 것을 만들어낸다. 인생에 있는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의미도 우리가 만들어낸 것일 뿐이며, 두루마리 같은 것은 없으며[따라서 우리를 기다리는 미리 정해진 숙명은 없다], 우리가 비행기에서 누구를 만나고 만나지 못하는 것에는 우리가 부여하는 의미 외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생기는 불안―간단히 말해서 아무도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해두지 않았고, 우리의 사랑을 보장해주지도 않았다는 불안에서 벗어나려고.

나의 실수는 사랑하게 될 운명을 어떤 주어진 사람을 사랑할 운명과 혼동한 것이다. 사랑이 아니라 클로이가 필연이라고 생각하는 오류였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우리의 사랑 이야기의 발단을 운명론적으로 해석했다는 것은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증명해준다―내가 클로이를 사랑했다는 것. 우리가 만나고 못 만나는 것은 결국 우연일 뿐이라고, 989.727분의 1의 확률일 뿐이라고 느끼게 되는 순간은 동시에 그녀와 함께하는 삶의 절대적 필연성을 느끼지 않게 되는 순간, 즉 그녀에 대한 사랑이 끝나는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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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야말로 인간이 얼마나 세상을 왜곡된 형태로 지각하는지 보여주는 증거인걸."

말은 뱉어진 순간 힘을 갖는다. 나는 입을 연 순간 후회했다. 또다시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하고 말았다. 나는 내가 정말로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다시는 일어설 수도,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살아갈 수도 없을 것만 같았다. 생명을 붙들고 있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아 영혼이 흘러내려 없어져버릴 것만 같았다.

"네 주인에게 돌아가. 그런 이유로는 그들을 떠나 살 수 없어. 설령 떠나 산다고 해도, 그 이유가 사랑받지 못한 것에 대한 절망이라면 결코 네 영혼은 자유를 찾지 못해. 네 영혼은 이미 그들에게 묶여 있어. 너는 늑대가 아니야. 그리고 그게 그렇게 나쁜 일도 아니야."

그는 밤이 오면 달빛이 은은하게 거리를 비춘다는 것을 모른다. 하늘 가득히 별이 빛나고 그 별이 하루에 한 번씩 천구를 운행한다는 사실 또한 모른다. 달의 모양이 주기적으로 차고 이지러지며 오늘 같은 보름밤에는 그 창백한 빛에 거리가 은빛으로 빛난다는 것을 모른다. 그에게 밤이란 단지 소리가 가라앉는 시간이며 습기가 차고 기온이 낮아지는 시간이다. 공기가 무거워지는 시간이며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시간일 뿐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슬픔에 젖는 줄을 그는 또 어떻게 알겠는가. 우리가 서로 다른 우주에 살고 서로의 진정한 모습을 알지 못하건만. 서로의 그림자를 사랑하건만 그 실체를 알지 못하고,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다른 차원에 걸쳐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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