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 - 아름다움은 인간을 구원하는가
조주관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10월
평점 :
일시품절


조주관의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아르테, 2022, 336쪽 분량)』은 도스토옙스키 애독자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아니, 소장 욕구를. 저자는 책의 또 다른 제목으로 <도스토옙스키의 미술관>을 꼽으며 미술품을 모아 전시하는 공간으로서의 미술관과 예술 비평의 관점을 가리키는 이중적 의미를 부여한다. 조주관 교수는 반세기가량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에 경도되어 살아온 국내 러시아문학 권위자로 논문 및 강연뿐 아니라 번역과 집필로 독자를 러시아 문학으로 이끌어왔다.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은 세 가지 형태의 기록을 종합하고 있는데 <작가 일기>와 아내의 <회고록>, 소설과 미술평론이다.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곳은 어디일까. 도스토옙스키는 “미술관”이라고 여겼다. 그의 미술관 여행은 편안한 취미 활동보다는 절실한 필요에 이끌리는 행보였다. 그는 어떤 그림을 스치듯 통과하지 않았고 흡수하듯 영혼에 새겼으며 투영한 결과물을 일기와 소설, 비평에 녹여냈다.

도스토옙스키 장편 소설을 읽다 잠시 정지 버튼을 누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멈추어도 될까 자문한다. 각주가 제공하는 정보가 오히려 질문은 만들어 멈추고 두리번거려 본 독자들은 안다. 그렇게 모은다고 모은 자료 역시 영 흡족하지 못함을. 이 아쉬움을 해소해줄 책이라는 걸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 이라는 제목만으로 알 수 있었다. 저자는 『백치』에서 정지버튼을 눌러야 했던 한스 홀바인의 <관 속의 그리스도>를 어떻게 설명해 줄까. 그림을, 작가를, 소설 속 인물들을, 그 순간 미쉬낀 공작과 로고진 사이에 흐르던 공기를 말이다. 저자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냈던 치열한 정신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 영혼에 새겼던 그림,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시간을 3부 20장의 전시실에 선보인다.

1부는 <성과 속>이다. 빛과 어둠의 화가 렘브란트는 마지막 작품인 <돌아온 탕자>에서 가장 완전한 용서의 순간을 담아낸다. 여기서 고통을 통한 구원과 러시아 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아버지와 아들” 문제를 부각하게 된다. 이 주제를 <미성년>에서 아르카디의 성장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죄 없이 벌을 수용하는 장남 드미트리의 선택으로 연결 짓는다.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은 “고난을 통한 구원”(p.58)에 도달한다. 도스토옙스키가 좋아했던 티치아노의 <공전>은 마가복음의 유명한 장면을 그린다. 주제가 돈이니 읽다보면 3천 루블이 시종일관 귓전에 맴도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불러내게 된다. “그의 소설에서 돈은 힘이며 자유이고 시간이자 언어”(p.79)였고 나에게 3천 루블은 무엇인가로 수렴하게 만들었던 미완의 최고작이다.

2부 <미와 추>에서 저자는 “어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인가?”(p.117)라는 질문을 <백치>의 화두로 본다. 도스토옙스키는 <시스티나의 마돈나>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생각하는데 그림과 관련해 아내가 기록한 에피소드는 인상깊다. 반면 톨스토이나 체르니솁스키가 보였던 부정적 시선도 고르게 조명한다. 도스토옙스키가 아름다움을 성과 속, 두 가지 기준으로 구분했고 이는 그가 창조해낸 인물의 특징으로 스민다. 도스토옙스키가 바젤 미술관에 찾아가 보게 된 홀바인의 <무덤 속 그리스도의 시신>은 “미세한 상처의 찌르기”(p.174)와 같은 격렬한 인상을 남기고 <백치>에 그대로 담긴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재현하기 위함이라는 목적과 극단에 있는듯한 처절한 죽음은 반어적 표현으로 임무를 완수한다. 또한 사진의 중요성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실물보다 사진으로 먼저 나스타샤를 보았던 미시킨 공작의 반응을 따라가면서 시각에서 비롯한 통찰의 문제를 재확인한다. 3부 <생과 사>에서는 도스토옙스키가 평생 잊지 못했던 과거 사형집행의 순간과 집행 직전의 번복부터 소환한다.

“그가 언급하는 화가들은 모두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는’ 눈의 소유자이다. 그러한 화가들의 예술적 상상력은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스토옙스키에게 창작과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p.331) 이는 저자가 에필로그의 소제목에 덧붙인 설명이다. 책은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 51점과 직접 그린 드로잉 4점을 통해 작가의 삶과 작품을 재조명한다. 19세기 러시아 문화계의 기류, 왕성하던 이동파 화가들의 활동과 한계, 이에 대한 제언도 엿볼 수 있다. 미술 평론에 있어서는 슬라브주의자였던 도스토옙스키가 유럽인들이 러시아 미술을 제대로 평가해주기를 바라는 기대도 동력으로 작용했다. 아내 안나의 <회고록>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생생한 스케치를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애독자라면 작품 속 불멸하는 인물들과 조우하는 기쁨이 가장 클 것이다. 읽지 못한 작품이라면 완독 후 본문의 분석을 다시 확인해보고 싶다는 의욕을 다지게 될 것이다. 도스토옙스키 초상화도 익히 보아왔던 페로프의 것과 새로운 발견 트루톱스키의 그림, 여기에 로운 이순영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까지 더해 모두 소중하다.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저자의 헌사와도 같은 이 책은 독자에게도 다시 펴보고 오래 아낄 선물이 될 것이다.

책 속에서>

도스토옙스키에게 미술작품은 순수한 미적 즐거움의 대상이 아니라 영혼과 마음을 사로잡는 ‘푼크툼’적 예술품이다. 그의 소설은 미술작품에서 받은 감동을 전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그는 미술작품을 ‘읽었’는데, 이는 작품을 보며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대답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끝없는 질문과 답변의 놀이를 통해 새로운 독해를 시도한다. 그의 미술 텍스트 독해는 그저 남이 이미 읽은 궤적으로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었다.(p.168)

도스토옙스키는 아름다움을 보는 심미안을 강조한 작가다. 그는 타자의 내면을 읽고 진실과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백치』에서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주제는 부분적으로 ‘미술의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할 것이다’라는 말로도 재구성될 수 있다. 이 재구성은 시각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p.18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담과 이브의 일기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마크 트웨인 지음, 프란시스코 멜렌데스 그림, 김송현정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짧은 소설은 아담과 이브, 남성과 여성의 입장에서 사랑의 시원부터 종결까지의 전 과정을 그려 보인다. 예측 가능했던 매듭에 이르렀을 때 독자는 영원, 어쩌면 미지의 불멸로 시선을 던질지도 모른다. 소실 이후에도 무(無)화되지 않을, 않아야만 한다는 믿음은 소망을 넘어선다. 『아담과 이브의 일기(프란시스코 멜렌데스 그림, 김송현정 옮김, 문학동네, 2021』는 「아담의 일기 발췌」(1904)와 「이브의 일기」(1906)를 함께 수록하고 있지만 마크 트웨인 자신은 두 소설이 함께 실린 판본을 확인하지 못했다. 전자가 쓰여진 시기가 사치와 투자실패라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중 쓰였다면 후자인 「이브의 일기」는 작가에게 실질적인 편집자이자 검열가였던 아내 올리비아 랭던을 잃은 후 집필되었다.

마크 트웨인은 『톰 소여의 모험』(1876), 『미시시피강의 생활』(1883), 『허클베리 핀의 모험』(1884)까지 미시시피 3부작으로 유명하다. 미국식 구어체를 구사한 최초의 작가이면서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특유의 비판의식과 유머로 그렸던 마크 트웨인을 윌리엄 포크너는 ‘미국문학의 아버지’라 불렀다, 또한 헤밍웨이는 미국의 모든 현대문학이 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극찬한다. 마크 트웨인은 다양한 여행기 뿐 아니라 역사와 공상과학적인 상상력이 결합된 많은 소설, 에세이식 작품을 통해 창작은 물론 비판의 목소리 내었으며 행동하는 지성으로서의 역할에 적극적이었다.

『아담과 이브의 일기』는 <아담의 일기 발췌>와 <이브의 일기>를 차례로 묶었다. <아담의 일기>는 “이 긴 머리의 새로운 피조물이 아주 거치적댄다.”(p.11)라는 문장으로 문을 열고 “이 모든 세월이 지나고 보니,”(p.38)로 시작하는, 시를 방불케 하는 진심으로 이야기를 닫는다. 나의 본성과도 취향과도 부딪히는 타자의 돌연한 출현은 반가울 수가 없다. 그가 부르는 명칭은 이브의 교정으로 ‘그녀’가 되기 전까지 내내 ‘그것’이었다. 호기심 가득한 그녀는 뱀과도 친해진다. 금단의 열매와 그로 인한 후속 결과는 작가가 차용한 에덴동산 이야기를 변주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아담의 시선은 달라진다.

<이브의 일기>는 “나는 이제, 태어난 지 만 하루쯤 됐다.”(p.41)는 소개로 기록을 시작한다. 아담의 기록이 타자인 이브로 시작되었다면 이브는 자기 자신을 탐색한다. 그녀는 기록하고 실험하며 면밀히 관찰하고 궁금해한다. 꼼꼼하게 단계를 밟아 추론한다. “~듯하며, 했는데, 테고, 테니, 더 나을 것이다.”(p.45) 그녀가 아담을 부르는 호칭은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그것’에 머물지 않는다. 파충류일 수도 건축물일 수도 있다고 가늠하면서 특징을 열거한다. 그녀의 명명하기는 논리적이다.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별을 노래하는 천문학자의 모습도 이브에게서 만날 수 있다. 이브의 호기심은 두려움보다 깨우치는 기쁨으로 기운다. 쓸모와 아름다움 사이에서 헤아린다. 그녀는 에덴동산 추방 이후의 서술에서도 감상에 매몰되지 않는 명징한 인과를 보여준다.

『아담과 이브의 일기』는 단편 소설이면서 우화이고 상징적이면서 자전적이다. 헌정을 담은 사사로운 기록이면서 인간의 보편적 감정의 행로가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내는 파수꾼 역할을 한다. 독자는 아담과 이브의 자리를 자신의 이름으로 치환해 또 하나의 이야기로 간직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아담과 이브의 일기』는 상호 교류하는 감정의 물결과 깊이 침잠하며 귀 기울일 때의 내면 풍경과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모든 첫 발견의 흔적들이 촘촘하다. 독자는 인류 최초의 시선을 공유하게 되고 낱말과 문장, 행간과 페이지를 따라 낯선 여행에 동참한다. 그 여행은 모든 예상과 기대를 물리치기에 걸음걸음이 발견이고 성장이고 역사가 된다. 이 역사를 생생하게 밝히는 또 한가지가 프란시스코 멜렌데스의 삽화다. 독특하고 세밀한 그림은 그 자체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작은 분량의 작품이다. 하지만 몇 번쯤 재독하면 충분하다 여기게 될지는 알 수 없고 특히 마지막 페이지는 더욱 그렇다. 웃음소리가 들리고 눈물이 퍼지며 삶을 돌아보게 할, 작가의 마지막 작품을 추천한다.

책 속에서>

이 모든 세월이 지나고 보니, 내가 초반에 이브를 잘못 판단했음을 알겠으며, 그녀 없이 동산 안에서 사느니 그녀와 함께 동산 밖에서 사는 편이 더 낫다. 처음에 나는 그녀가 말을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목소리가 침묵에 잠겨 내 삶에서 사라져버린다면 안타까울 것이다. 우리를 가까이 하나로 맺어주고 나를 깨우쳐 그녀의 선량한 마음과 그녀의 다정한 영혼을 알게 한 그 밤에 축복 있으라!(p.38)

관찰을 통해서 나는 별들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가장 멋진 별 몇 개가 하늘에서 녹아내리는 것을 보았다. 하나가 녹는다면 전부가 녹을 수 있고, 전부가 녹는다면 모두 같은 날 밤에 녹을 수 있다. 그런 슬픈 일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매일 밤 잠들지 않고 되도록 오래 깨어서 별들을 쳐다볼 생각이다. 그리고 그 반짝이는 들판을 내 기억에 새겨서, 머지않아 별들을 빼앗기게 되면 내 상상력으로 그 사랑스러운 억만 개의 별들을 검은 하늘에 되돌려놓아 다시 반짝이게 할 작정이다. 그러면 내 눈물에 흐려져 별들은 두 배가 되겠지.(p.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박영근 옮김, 민음사, 1999, 1835, 420쪽 분량)』은 1819년 파리의 삶을 그리지만 시간과 공간을 어느 방향으로 이동시켜도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를 만나게 한다. 고급 하숙집과 사교계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사건과 일상은 인간의 다양한 욕구와 추구하는 가치를 드러낸다. 이에 필요한 수단을 노력보다 탈취와 희생에서 취하기 시작하면 도덕적 해이와 양심의 무감각은 이미 전제된다. 작가가 초판 서문에 썼다는 “모든 것이 사실이다.”(p.9)라는 말에 반대할 수 없다. 그가 확언했듯이 어느 누구의 집에서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도 한없이 되풀이되지만 제어할 마땅한 방법을 찾기 어려운 오래된 슬픔을 고리오와 그의 딸들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스무 살 때 문학의 길로 들어설 결심 후, 약 십 년간 독서와 습작, 경제적 독립에 전념했다. 그러나 시작하는 사업마다 실패하고, 소설을 써서 빚을 갚아 나가는 등 평생 곤란을 겪었다. 발자크는 서른 살 때 스콧과 쿠퍼의 영향을 받은 역사 소설 『올빼미당원』을 발표하고, 1848년에 이르기까지 약 이십 년 동안 수많은 작품을 썼다. 그는 갖가지 인간 삶을 그린 소설들을 서로 엮어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작품으로 구성되도록 한 작품집 『인간 희극』을 평생에 걸쳐 집필했다. 프랑스 문학사에 하나의 큰 덩어리로 남아있는 『인간 희극』은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모든 것을 소설을 통해 완벽하게 그려내려는 큰 뜻”(p.398)대로 <풍속 연구>, <철학적 연구>, <분석적 연구>라는 세 계열에 91편의 소설로 구성된다.

발자크는 『고리오 영감』에서 “인물 재등장 기법”을 처음 시도한 후 주인공들을 여러 소설에 등장시켜 경제적 효과를 얻는다. “인물 경제학의 대가”가 『인간 희극』에 선보이는 인물은 거의 2000여 명이다. 이는 559명이 등장하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1869)』를 상기시킨다. “완전한 단편의 형식을 갖추는 각각의 장은 완벽히 연결되어 거대한 장편소설을 완성했”(전쟁과 평화 4권 583p, 문학동네)던 톨스토이 이전에 근대적 소설의 탑을 정밀하게 구축하고 있다. 이런 발자크를 “인간 사회에 대한 진정하고 완벽한 모습을 제시하는 진짜 사회학자”(p.408)라고 알랭은 평한다.

작가는 고급 하숙집이라고 명시한 보케르 집을 촘촘하게 이동하는 카메라 렌즈와 같이 시각적으로 먼저 형상화한다. 이어 ‘냄새’를 보태 독자의 감각이 민감해지면 고급은 가난을 의미하는 또 다른 낱말이 된다. 하숙집에 묵고 있는 일곱 사람은 1820년대 파리에서 자신들의 열악한 처지를 견디며 혹시 나아지지 않을까 꿈을 꾼다. 3장 ‘불사신’에 중점적으로 등장하며 보트랭으로 불린 자크 골랭은 라스티냐크를 이용해 자기 이익을 도모하고자 계획하나 실패한다. 보트랭은 자신을 비난하는 보케르 부인에게 “당신은 우리 같은 놈들보다 더 훌륭합니까? 타락한 사회에서 무기력한 부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치욕이 우리 어깨에는 덜 있어요.”(p.276)라고 외친다. 여전히 묻고 있다.

“젊고, 사교계를 부러워하며, 여성을 갈망하는 이 청년이 자기를 위해 두 집안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다니!”(p.48) 으젠 라스티냐크는 성공적인 사교계 입성을 위해 학업보다는 유력한 관계에 의지하고자 결심한다. 보트랭이 보여주는 라스티냐크의 암울한 미래를 부정할 근거는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자네가 서둘러 출세하기를 원한다면 벌써 부자가 되어 있거나 겉으로라도 그렇게 보여야 한다는 말일세.”(p.149) 유혹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젊은 영혼을 흔드는데 거침이 없다. 그러던 중 라스티냐크는 제면업자였으며 아버지 중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리오 영감과 “자기 아버지를 모른다고 하다니!”(p.104)라고 한탄케 한 그의 두 딸의 사정도 알게 된다.

고리오 영감은 딸들에게 헌신했으나 그 대가로 버려졌다. 나의 엄마는 내게 늘 말씀하셨다.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라고. 너는 그러지 말라고. 그런데도 왜 그녀는 헌신했을까. 사랑의 역동은 수백 년 전 파리나 현재의 지구촌이나 놀라우리만치 닮아서 작가가 어느 골방에서 실시간 써내고 있는 글이 아닐까 착각하게 만든다. 어리석은 고리오 영감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결심하지만 그 자리가 한 순간 독자의 발밑과 흡사해 고리오의 고통과 호소는 오늘의 독자를 울린다. 그의 실수를 번복하지 말자는 부모의 각오는 무르고 빛바래 돌이킬 여분의 시간을 남기지 않는다. 작가는 인간 비극을 활자로 새기고 행여 흐트러질세라 고정액을 뿌려둔다. 그럼에도,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복되겠지만 말이다. 야망도 자신도 넘쳤던 라스티냐크의 도전은 눈물에 젖어 스러져가는 노인 곁에서 잠시 멈춘다. 노인에게는 연민을 담은 타인의 손만이 허락될 뿐, 그가 간절히 원했던 딸들의 목소리, 시선은 다른 공간에서 다른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러시아 여류작가 류드밀라 페트루셉스카야가 『시간은 밤(문학동네)』에서 그린 모성의 지독한 아이러니가 고리오 영감이 보여주는 부성의 비극과 겹친다. “어머니, 아, 이 얼마나 성스러운 단어인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당신은 아이에게, 아이는 당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아이를 사랑하면 아이들이 당신의 마음을 찢어놓을 것이고, 사랑하지 않으면 당신은 버려질 것이다. 아아아.”(p.225, 시간은 밤) 미칠 노릇이다. 임종을 앞둔 고리오 영감이 내는 절규는 작가의 섬세한 문장으로 생생하게 다가온다. 딸들과 나누는 대화 역시 사실적이면서 동시에 상징적이다. 또한 익숙해서 슬프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p.396) 소설의 마지막, 라스티냐크의 유명한 외침은 고리오가 걸었던 눈물과 비참의 골짜기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동행했던 청년의 치열한 도전장이다.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무저갱으로부터 이제는 비상만이 남았다. 라스티냐크는 어떤 길로 내달리게 될까. 그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라스콜리니코프(죄와 벌)의 구원이었던, 다른 이름을 가진 소냐일까? 무엇을 통해 어디에 이르게 될지 다음 장면이 필요하다. 작가는 결말을 절정으로 치환한다. 소설은 숨죽이며 꺼져가는 안타까운 부성과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통한 라스티냐크의 성장기를 고루 담는다. 질문하면 정보를 취합해 실시간으로 답을 알려주는 똑똑한 시대다. 우리는 얼마나 나아졌을까. 힘닿는 만큼 발자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겠다. 핑크빛 전망은 없겠지만 예리한 펜은 충분히 깊게 통찰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몰입 : 인생을 바꾸는 자기 혁명 - Think Hard! 몰입
황농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저자 황농문은 몰입을 통해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함으로 두뇌를 100% 활용하고 마침내 귀중한 업적으로 연결한 천재들로 뉴턴과 리처드 파인만, ‘방랑 수학자’라는 별명을 가진 폴 에어디시의 예를 든다. 그 탁월한 궤적은 아무나 넘볼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에서나 가능할 법한 전설로 여겨진다. 하지만 저자는 그들이 사용했던 몰입적 사고는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따라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몰입』(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292쪽 분량)은 황농문 교수가 특별한 몰입상태에서 7년간 진행했던 연구 경험을 추적해 관찰, 분석하고 체계화한 결과물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로 재직중인 저자는 몰입적 사고로 수십 년간 풀리지 않았던 난제를 해결하고 “세상 모든 것을 긍정하고 싶”(p.17)은 극적인 순간을 맞는다. 그는 ‘인생을 바꾸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알리기 위해 첫 책 『몰입』을 발표한 이후 『몰입, 두 번째 이야기』 에서는 몰입의 심층적인 원리와 더 풍부한 사례를 전한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은 다정하고 정교한 인문학 저서로 삶의 방향을 새롭게 이끈 명저다. 칙센트미하이는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동일한 밀도를 지니지 않았으며 그 밀도를 높일 때 변화가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 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이고 시간을 재배치하고 빼어난 성취와 기쁨을 선사하는 도구로서의 몰입을 선보였다. “인생을 바꾸는 자기 혁명”이라고 명명한 황농문의 『몰입』은 『몰입의 즐거움』의 활용편이다. 손에 잘 맞게끔 정교하게 다듬고 안내서를 첨부하고 질문에 실시간 답해주는 친절한 안내서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 저자는 “최선의 삶”에 닿고자 한다. 공부도 연구도 “최선”에 이르는 여정은 면밀한 계획, 불면을 비롯해 투입시간의 총합과는 어긋난다는 시행착오를 거친다. 매일 열심히 일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면서 Work Hard가 아닌 Think Hard로 전환하게 된다.

저자는 “몰입을 오랜 시간 유지하면서 두뇌 활동의 극대화와 지고의 즐거움을 동시에 경험”(p.58)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몰입을 시도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 과정과 단계를 보여준다. 환경, 주변 정리부터 공간 선정과 운동, 식사까지 구체적이다. 해야 할 것과 주의사항을 포함하고 몰입 도전자들의 상담 사례도 첨부한다. 몰입이 영적인 감정을 수반하기도 하지만 초자연적인 현상은 아니며 이를 뇌과학과 연결해 설명한다. 활동 위주의 몰입과 사고 위주의 몰입의 유사점과 차이, 쫓기는 사슴의 몰입과 쫓는 사자의 몰입을 예로 들어 수동적 몰입과 능동적 몰입을 알려준다. 저자가 죽음에의 통찰이 능동적인 몰입을 유도하며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위한 최선으로서의 몰입을 설명할 때 더 공감하게 된다. 유대인의 영재교육과 몰입적 사고의 근접성, 직장에서의 몰입 적용과 기업 우수사례, 5단계 실천법까지 계속된다.

저자는 “지금 해야 하는 일, 해야 하는 공부를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목표로 만들어라. 그러면 삶을 채우고 있는 모든 순간이 행복해질 것이다.”(p.280)라고 말한다. 자신이 처한 조건이나 환경에 주목하고 탓하기보다 주어진 현재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가 바탕이 될 것 같다. 타인의 시선이나 외부의 평가, 보여지는 모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조금씩 내면으로 침잠해 마음의 움직임을 살피며 속도 경쟁에서 벗어날 때 성취 이전에 빼앗기지 않는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다만, 몰입에 진입하기 위해 확보할 일정 기간이 장벽으로 작용해 일반화하는 데 걸림돌로 여겨질 수는 있겠다. 책은 미하일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이론을 요약 전달할 뿐 아니라 추가 질문을 끌어내고 체험을 통해 더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 『몰입의 즐거움』도 재독하고 싶다. 『몰입』은 어느 연령의 독자가 읽어도 삶의 가치를 다시 매겨보게 이끌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사례도 제시되었듯이 학업 중인 청소년들에게는 지니고 다닐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다. 자신만의 몰입 다이어리를 채워가며 발견할 세계는 얼마나 새롭고 경이로울지, 시도하는 만큼 생의 지평을 넓힐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 - 경험이 글이 되는 마법의 기술
메리 카 지음, 권예리 옮김 / 지와인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장 친근하면서 동시에 외면하기도 쉬운 글감인 자신을 기록하는 일은 그 자체


로 의미를 지니고 나아가 의무가 되어가는 듯하다. 자서전 쓰기는 도서관이나 학습관에서 모집 인원 미달로 폐강되는 일 없이 꾸준히 열리고 있다. 온 오프라인에서 접근 가능한 채널도 다양하다. 인기를 더해가는 장르인 자전적 글쓰기에도 눈 밝은 길잡이가 필요하다. 몇 해 전 참여했던 강좌에서 교수님은 다치바나 다카시의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을 필독 도서로 삼았다. 메리 카의 『인생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권예리옮김,지와인,2023,원제:The Art of Memoir,2015,328쪽 분량』는 읽고 쓰는 일을 비롯해 허구를 제외한 진실에 닿는 글쓰기의 가치를 전한다. 저자는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은 일인칭 시점의 실화를 읽을 때마다, 언젠가 나도 자라나 엉망진창인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키워갔다.”(p.14)고 서문에 밝힌다. 메리 카는 미국 시러큐스 대학교 영문과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1995년 출간한 첫 인생록 『거짓말쟁이들의 클럽』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머물며 자전적 글쓰기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인생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는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과 함께 작가 지망생들의 필독서로 여겨져 왔다.

책은 “인생은 어떤 가치를 품고 있나”와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법”, 2부로 구성된다. 인생을 기록하기 위한 재료는 상당부분 기억에 의지하지만 부실한 기억, 암송된 기억, 전승된 기억 모두 충분치 않다. 과거를 향하는 여정에 오르고 나서 경험을 글로 옮길 때 저자는 “일단 없는 이야기를 새로 지어내는 데에는 결사반대”(p.43)를 표한다. 고양이똥 샌드위치의 예를 들어 ‘거짓’에 대해 정의 내린다. 또한 쓸 준비가 되었는지 가늠해 볼 항목도 제시한다. 기억력이 나쁘면 포기하라, 마음의 상처치료를 원한다면 전문 상담사를, 복수를 원한다면 변호사를 찾으라며 특히 싫어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쓰지 말 것을 권한다. 20세기 들어 회고록에 열광하기 시작한 계기가 된 라이트의 <흑인 소년>부터 회고록의 역사도 살핀다. 찾아 읽어야 할 도서 목록들이 추가된다. 저자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를 읽지 않고 자전적 글쓰기의 작가가 되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가 쓴 작품의 분위기는 너무도 황홀해서 읽고 있으면 뇌 구조가 송두리째 바뀌어버리는 것만 같다.”(p.107)면서 <말하라, 기억이여>에서 만날 수 있는 빼어난 지점들을 짚는다. 또한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 세부 묘사의 중요성, 다섯 가지 감각으로 파악되는 육체성이 글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설명한다.

2부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법”은 한발 더 나아간다. 정보를 배치하는 방법, 저자가 주로 사용하는 구조, 서사 기법 등을 알려준다. 무엇보다 저자 자신의 경우를 예로 들어 생생하게 비평한다. 자전적 스토리를 쓰기 이전에는 독자들을 피해 다녔지만 꾸며낸 사실은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고 할 때, 시에 비트겐슈타인이 등장할 때, 고전문학을 동경하고 아빠에 대한 호칭을 고민할 때, 가식과 솔직 사이에서 서성일 때, “뭔가를 쓸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 두려웠”(p.256)던 순간, 그리고 “나는 곧은길을 걸어가듯 글을 써본 적이 없다.”(p.257)고 말할 때 심장은 두서없이 빠르게 뛴다. 페이지는 밑줄과 기호로 얼룩지고 감동은 저절로 차오른다. 저자는 30년의 글쓰기 강의를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인용과 사례, 지켜야 할 제언들과 요소를 요약해 번호를 매긴다. 밑줄과 색으로 강조한다. 행간에 시간이 흐르고 독자는 어떤 경이로운 공간에 이동해 있는 느낌이 든다.

훌륭한 사람이 된 후에 훌륭한 책을 쓰겠다는 결심이 터무니없는 이유를 조금씩 이해한다. 아마도 훌륭한 사람 되기라는 사명은 애초에 도달 불가능의 표지를 달고 만들어 졌을지 모른다. 지금의 나 역시 싸이즈를 줄인 시지프스일 뿐이다. 사생활을 개인적으로 기록하는 건 자유지만 인쇄물로 내어놓는다는 건 예의에서 벗어난다는 걱정이 컸고 의심은 계속되었다. 일기와 에세이와 소설은 동등한 선택지인가. 문맥과 가독성을 비롯해 한 교수님이 강조하는 객관적 상관물의 수준을 획득하는 글쓰기에 도달하는 동시에 정확한 진실을 새겨 넣는 일은 실현 가능할까 불안했다. 이에 대해 『인생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는 최대치의 답을 제시한다. “지독하게 엉망인 한 사람의 삶에서 진실을 끌어내려 애쓰는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는 마지막 페이지 문장에 깊이 감사한다. 읽고 쓰는 일을 저버리지 못하는 많은 분들이 아끼고 사랑하고 되풀이 펼치게 될 책이다.

책 속에서>

내가 읽고 또 읽은 책들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에 의존하는 시각적 매체인 영화처럼 기록하지 않는다. 여러 출처의 비중을 가늠하고 저울질해서 균형 잡힌 관점을 내세우는 역사처럼 기록하려 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자전적 글쓰기의 위대함이다.(p.99)




(서평단-도서제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