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철학자 강신주 생각과 말들 EBS 인생문답
강신주.지승호 지음 / EBS BOOKS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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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EBSBOOKS)』는 당대의 ‘문제적 인물’들을 만나며 끊임없이 시대의 징후를 읽어온 인터뷰어 지승호 작가가 철학자 강신주를 10년 만에 다시 만난 기록이다. 또한 자신만의 철학으로 일관된 삶을 살아가면서도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쟁점을 품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기획된 인터뷰집 시리즈 〈EBS 인생문답〉의 첫 책이기도 하다. 강신주는 ‘사랑과 자유의 철학자’, ‘거리의 철학자’ 등으로 불리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면서 동시에 가장 사랑받는 철학자로 《철학 vs 철학 :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강신주의 감정수업》 《강신주의 다상담》등을 썼다. 50시간의 인터뷰를 기록했던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이후 10년 만에 마주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지승호와 강신주는 연약해진 육신을 달래며 그럼에도 더 빛나는 통찰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첫 만남,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다”에서 강신주는 자신이 다뤄왔던 사람들을 “우리 패밀리들”이라고 칭한다. <강신주의 역사철학·정치철학>은 그들을 정연하게 기록하는데 많은 지배 담론이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패밀리를 “많이 구축”함으로써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소수가 아니라는 것”(p.41)을 보여주고자 한다. “사람의 문맥을 읽는다는 것”에서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의미를 명확히 한다. 그는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콘텍스트까지 이해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며(p.50) 말이나 텍스트에 사로잡히면 안되는데 “우리가 철학과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텍스트와 콘텍스트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능력을 기르는 거”(p.51)라고 설명한다. 변화하지 않는 가치와 연결된 철학자의 역할을 물을때 변화하니까 덧없는 것이 아니고 변화하니까,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소중하다며 “인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계속 존재할 테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없어져요. 그래서 소중한 거죠.”(p.68)라고 덧붙힌다. 그는 영원에 대한 욕망에 흐르는 권력적이고 지배적인 사유를 지적하며 영원의 형이상학, 피의 형이상학, 돈의 형이상학이 지닌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 강신주는 쉬운 언어로 초점을 무엇에 맞춰야 할지 환기시킨다.

4장, “스마트폰 사회경제학”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혁명이라 볼 수 없고 그저 스마트폰이 확장시킨 시장이자 젊은 세대에게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라는 이야기라 본다. 더 이상 노령세대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과 소통 시간도 빼앗긴다. 스마트폰이 MZ세대의 “외장형 심장”(p.123)이 되어버렸고 이 상품이 필수품인지 사치품인지 고민할 정치 경제학적 감각이 없는 그들은 “자신의 쾌락과 불쾌, 혹은 이익과 불리를 계산하는 벤담적 자아, 이기적인 개인주의가 스마트폰에서 마침내 완성”된다고 평한다. 그 위험을 알지만 제어하기 어려운 순환고리를 독자는 한 번 더 확인케된다. 부르주아사회의 특징을 이론적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p.137)고 설명하는 지점, 나아가 전문가를 인간적 불구로 보는 시선도 인상깊다. 5장에서는 “내 말을 듣지 않는 사람,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서 내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을 기르는 것이 진짜 교육”(p.168)이라고 교육을 재정의한다.

책은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주요 문제들을 깊이 들여다본다. 현상을 분석하는데 머물지 않고 근본과 본질을 건드려 원인을 노출시킨다. 이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고 나은 미래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철학자의 답변은 현학적이지 않았다. 어원을 풀어 이해시키고 과거의 예가 어떻게 현대에 재현되는지 보여주거나 논리와 논리가 연결될 때 느껴지는 쾌감은 이 책의 부가적 장점이다. 인용을 위해 등장하는 책들이 팡세 재독이 필요하다는 자각을 비롯해 필독 문사철 범위를 확장시킨다. 또한 철학자가 애정과 자부심으로 모은 그의 패밀리들을 함께 기대하며 비록 다 읽지는 못할지라도 일단 사두리라 마음먹게 했다. 현실 밀착형 답변은 사유하는 삶이 어떻게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작동 가능한가를 제시한다. 그가 다룰 카프카와 베케트는 얼마나 새롭고도 아름다울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훌륭한 예술가와 가짜 예술가의 대조(p.337), 나가르주나와 비트겐슈타인을 동·서양의 에베레스트에 견주며 결론을 내지 않고 지적으로 날카롭게 만듦으로써 철학자가 가져야 할 근본적인 태도를 보여준다고 일깨우는 등 읽는 내내 귀를 기울이게 된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의 유명한 구절을 제목으로 삼았다. 열 한 번의 만남을 따라가며 더 오래 머물고 싶은 대화의 장면들이 있었지만 에필로그는 정점을 찍는다. 먼지 뒤집어쓰며 오랫동안 책꽂이에 서있던 “해변의 묘지”가 아무리 찾아도 눈에 띄지 않는다. 가지고 있던 구판은 절판이고 개정판이라도 다시 들여야겠다. 이 지혜롭고도 다정한, 초록과 푸름으로 아름답기까지 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를 진심을 담아 권하며 앞으로 10년 후의 인터뷰를 기다린다.

책 속에서>

그렇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 사랑하는 것을 찾은 아이들은 이미 물을 만난 물고기와 같아요. 그러니 국가나 자본이 땅에서 살기를 요구해도, 그들은 가급적 물을 떠나지 않으려 할 거예요. 한편으로는 자신을 노예로 만들려는 경향과 맞서 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우리 아이들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모두가 주인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갈 거예요. 여기에 바로 인류의 희망과 미래가 있죠.(p.179)

분업 체계에 포획되지 않은 사유, 분업 체계를 가로질러 전체를 사유하는 사유, 그래서 소수의 지배와 명령을 무력화하는 사유! 바로 이것이 철학이에요. 제가 누누이 철학은 민주주의와 인문주의를 지향한다고 강조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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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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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이인규 옮김, 문학동네)』는 1952년 출간된 작가 생전의 마지막 작품이면서 동시에 가장 뛰어난 성취라 일컬어진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기 이전까지 전쟁의 상실감, 허무함을 다룬 작품들로 스콧 피츠제럴드, 윌리엄 포크너와 더불어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 작가로 불렸다.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 말년의 걸작”으로 높이 평가되고 1953년 퓰리처상을, 1954년 노벨문학상 수상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헤밍웨이는 신문기자 시절 습득한 단문 위주의 문장 구사로 하드보일드 문체의 개척자로 여겨지며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에서도 “서사 기법에 정통하고 현대문학의 스타일에 간과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라고 명시한다.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이인규 역자 번역본(문학동네)은 지금껏 쓰여온 돌고래 대신 어부들의 용어 ‘만새기’로 옮기는 등 노인의 입말에, 시간이 축적된 일상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게 한다.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그만 돛단배로 혼자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팔십사 일 동안 그는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다.”(p.9) 오늘도 빈 배로 돌아오는 노인을 맞을 때 소년 마놀린은 마음이 아프다. 소년은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줬던 산티아고 할아버지를 사랑하며 함께 바다에 나가고 싶지만 노인의 운이 다했다고 믿는 부모는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노인과 소년은 함께 했던 추억과 상상으로 꾸며낸 대화와 야구와 팔십 오일째에 틀림없이 만날 행운을 이야기한다. 노인은 멀리까지 나가볼 생각으로 노를 젓는다. 낚싯줄을 드리우고 고된 사투 끝에 미끼를 문 청새치를 잡고 집이 있는 곳, 아바나의 불빛을 향한다. 하지만 한 시간 후 최초의 상어가 물고기에게 덤벼들고 새로운 분투가 다시 시작된다.

영웅적 의지와 인간적 면모를 동시에 지닌 산티아고 노인은 잊지 못할 하나의 전형을 완성한다. 그는 살아온 시간을 부정하지 않고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미래를 또 한 번의 현재, 행운이 깃들 팔십 오일째 날로 삼는다. 노인은 오늘을 사는 자로써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대신 정확하고 성실하게, 진지하지만 낙관하고, 고통스울지라도 엄살부리지 않으며, 무엇보다 타자의식 없이 내적 자유를 분별하고 선택할 줄 안다. 그의 선의는 소년은 물론 잠시 날개를 쉬어간 작은 새와 자신이 잡은 물고기를 넘어 ‘라 마르’라 부르던 바다, 사자가 나오는 꿈속까지 닿는다. 이 온기는 강력하게 독자 마음을 사로잡는다. 치장 없이 간결한 문체, 적확한 단어의 연결은 감동을 증폭시키는 주요인이다. 윌리엄 포크너의 부연에 부연을 포개며 화려하게 이어지는 문체와 대비된다. 또한 ‘작은 배에서 살아남기’투의 소소하지만 긴급한 목표들과 그로인한 상념을 시적인 독백, 연극적인 대화체로 서술함으로 망망대해에서 주인공 홀로 버티는 시간이 긴장감 넘치게 진행된다.

상어가 없었다면 노인의 성공은 보존되고 인정받으며 영광으로 보답받았을 것이다. 물리쳐도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상어가, 점점 부실해져가는 도구로 맞서는 노인이 보편적 삶의 자화상으로 비친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싶으면 이를 비웃듯 또 다른 문제가 다가온다. 때론 서서히, 때론 죠스 뺨치게 빠르다. 이건 반칙이죠, 분노할 때도 있었다. 작게 보면 ‘당면한 문제’로 인해, 종국에는 ‘한정된 시간’이라는 생의 조건 때문에 예정된 위기에 봉착한다. 에이해브는 모비 딕에게 삭이지 못하는 분노를 품고 죽음도 불사하고 추격을 멈추지 않는다. 반면 산티아고에게 물고기, 청새치는 목표물이면서 동시에 탄생과 죽음이라는 조건 앞에 동일하게 내던져진 생명체라는 연대와 연민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상어들이 밤중에 달려들면 이제 어떻게 하지? 뭘 어떻게 한다? “싸우는 거지, 뭐.” 노인은 말했다. “죽을 때까지 싸우는거야.”(p.121)- 이 문장에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나왔다. “엄마네! 엄마잖아! 엄마를 어떻게 말려!” 명랑함과 결연함이 반반으로 섞인 엄마가 상한 손과 약한 몸으로 여전히 ‘계속해보겠습니다!’ 라고 외친다. 없는 기운에도 파이팅만은 우렁차다. 노인은 또다시 배를 띄울 것이다. 마크 트웨인은 “누구나 한 번쯤 읽기를 바라지만, 사실은 아무도 읽고 싶어하지 않는 책” 즉 칭송은 하지만 읽지 않는 책을 고전이라 정의했다. 설마 내가 『노인과 바다』를 안 읽었다고? 그렇소! 무수하게 전해들었고 보았고 짐작했을 뿐 당신은 활자를 읽지 않았소,에 해당한다면 지금 만나보기를 권한다. 고난 가운데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삶을 긍정하는 산티아고 노인에게로, 그가 보여주는 관계맺기의 향연으로, 그 빛나는 문장으로 몇 번이고 다시 돌아가고 싶어질 것이다.

책 속에서>

나는 줄을 정확하게 드리우지. 노인은 생각했다. 다만 더 이상 운이 없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아? 오늘이라도 운이 트일지?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인걸. 운이 있다면야 물론 더 좋겠지. 하지만 난 우선 정확하게 하겠어. 그래야 운이 찾아왔을 때 그걸 놓치지 않으니까.(p.34)

이런 일들은 난 잘 모르겠어, 노인은 생각했다. 어쨌든 우리가 태양이나 달이나 별을 죽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건 다행이야. 바다에서 살아가며 우리의 진정한 형제를 죽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말이야.(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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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록웰 켄트 그림,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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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록웰 켄트 그림, 황유원 옮김, 문학동네, 1851)』 은 포경선 피쿼드호의 에이해브 선장과 흰 고래 ‘모비 딕’ 사이의 대결을 그린 허먼 멜빌의 대표작이자 미국 문학의 걸작으로 『폭풍의 언덕』, 『리어왕』과 함께 영문학 3대 비극에 포함된다. 일등항해사 출신의 오웬 체이스가 쓴 <포경선 에섹스 호의 놀랍고도 비참한 침몰기>와 원양 포경선에서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일들은 『모비 딕』에 영감을 주고 31세의 멜빌은 『모비 딕』을 십팔 개월 동안 완성한다. 그러나 절친했던 너새니얼 호손에게 헌정한 이 작품은 출간 당시 평단과 대중의 혹평을 듣게되고 사후에야 평론가 레이먼드 위버의 극찬을 계기로 재평가가 시작된다. 현재 『모비 딕』은 완역도 여러 판본이 나와 있어 선택지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일러스트 모비딕은 『모비 딕』을 질투했던 윌리엄 포크너가 거실에 켄트가 그린 삽화를 걸어놓고 있었다는 이야기만으로도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나는 하찮은 자기표현은 원치 않는다. 나는 근원적이고 무한한 것을 원한다. 영원의 리듬을 그려내길 원한다.”고 했던 록웰 켄트, “‘멜빌 부흥’이 대중에게까지 전파된 데는 1930년에 출간된 『일러스트 모비 딕』의 공이 크다.”(p.909)는 설명은 영감 가득한 작품에 걸맞는 또 하나의 예술을 기대케한다.

본문에 앞서 어원과 발췌문이 먼저 독자를 맞는다. 발췌문을 읽을때 작가의 진지함이 전해지며 이 책이 “고래 완결판”이 되겠구나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총 135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된 책은 “나를 이슈미얼로 불러달라.”(p.35)는 유명한 첫문장으로 시작된다. 소설의 화자로 하나의 축을 담당하는 그는 울화증을 떨쳐버리는 방법으로 서둘러 바다로 떠나곤 해왔다. 권총과 총알을 대신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선 선원으로써가 아니라 포경 항해를 선택하고 결정적인 동기로 “거대한 고래 자체가 주는 압도적인 느낌”(p.41)을 든다. 이슈미얼은 앞으로 우정을 나누게 되는 작살잡이 퀴퀘그를 조금씩 알게 되고 함께 삼 년 예정으로 출항을 준비중인 세 척의 배 중 ‘피쿼드’호를 타기로 결정한다. 피쿼드호의 선장을 궁금해하는 이슈미얼에게 선주이자 관리인인 두 선장은 에이헤브 선장에 대해 “위엄이 있고, 신앙심은 없어도 신 같은 사람”이라는 설명 끝에 “에이헤브는 보통 사람이 아니야.”(p.149)라고 경고한다. “그대도 알다시피 옛날에 에이해브는 왕관을 쓴 왕이 아니었겠나!”(p.149) 구약의 인물 아합왕(왕상16~22장)으로 연상되는 이미지가 겹친다.

28장(p.210)에 이르러서야 ‘에이해브’ 제목으로 주인공은 처음 등장한다. 에이해브가 이 항해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는 장면은 더 기다려야 만날 수 있다. 그는 강박에 사로잡힌 표정을 감추지 않고 모비 딕을 향한 증오를 드러낸다. 자신의 돛대를 꺽어버리고 죽은 다리를 선물해준 “그 망할 놈의 흰 고래”(p.268)를 위해 세상을 모두 돌고 “지옥의 불길을 돌아서라도” 쫓아가겠다고 선포한다. 이를 드러내 반대하는 유일한 인물이 스타벅이다. 머스킷 총을 들고 고뇌하고 배를 내리는 에이해브를 만류하지만 끝내 막지 못하고 떠나보낸다. 모비 딕과 겨루는 사투, 처참한 추격전은 몇 번이고 반복된 끝에 바다는 태초의 모습 그대로,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듯 고요할 뿐이다. 유일한 생존자 이슈미얼은 “나만 홀로 피한 고로 당신께 고하러 왔나이다.(욥1:16)”라는 욥기의 적확한 요절로 인사를 고한다. “연극은 끝났다”(p.883)고.

“이 점에서 미국 포경업계는 미국의 육군과 해군과 상선, 미국의 운하와 철도 건설을 위해 고용된 토목 기술자들의 경우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다를 바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 모든 경우에서 미국 토박이들은 관대하게 머리를 제공하고, 나머지 나라 사람들은 아낌없이 근육을 공급하기 때문이다.”(p.209) 『모비 딕』은 19세기, 아직 석유 개발이 이루어지기 전이라 기계를 돌리기 위해 고래기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팽창을 시작하던 때에 분열적으로 혼재되어있던 대립과 갈등, 억압과 착취, 극단적 광기 등이 포경선이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그려진다. 소설은 우선 자신의 절대적인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선장 에이해브의 여정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이같은 단선적 행로는 화자인 이슈미얼이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사건과 상황, 현상과 관계, 그로부터 비롯한 심리 등을 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전달함으로 풍성해진다. 또 하나는 백과사전적, 박물학적 포경 지식의 보고 역할이다. 도서관의 문학 코너가 아닌 수산업 코너에 책이 배치되어서 더 독자의 눈에 띄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이해되는 지점이다.

『모비 딕』은 오래 음미하며 읽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고픈 작품이다. 물론 바로 돌아가기는 어려울지라도 빼곡한 밑줄을 추려 읽다보면 아마도 다시 읽자 싶어질 것이다. 주인공들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등장 인물이 생기를 간직하고 있어 독자적 삶과 그들의 선택에 주목하게 만든다. 문체는 다양하게 변조되어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반복되는 각운이 시적 울림을 주고 때론 연극 장면이 삽입된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읽는 듯 많은 의미를 내포하기도, 절제의 여운을 전하기도 한다. 풍성한 비유와 상징, 통찰이 돋보이는 장면에서는 한참을 숙고하며 멈추게 된다. 서정적 표현, 경구와 같은 문장, 직선적으로 질문하는 목소리, 활자로 읽는다기보다 갑판에서 체험하는 듯한 생생함,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 인간성의 보편적 성찰도 끌어낸다.

『모비 딕』은 대립되는 두 개의 항이 벌이는 대결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스터브와 스타벅을 동전의 양면, 인류 전체로 봤을 때 대척점에 홀로 선 에이해브는 멸망할지언정 멈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함께했던 자들은 서른명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써 화해하고 수용하고 끝내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며 합력하는 자유의지를 증명한다. 원망없이 비극을 대면한다. 『모비 딕』을 완독해서 다행이다.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미주를 찾아보느라 읽는 동시에 팔 운동, 고개 운동을 무한 반복해야 했던 일이다. 주석 분량이 많아서였겠지만 읽기 전 매번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다른 판본으로 읽는 일, 축역이나 편역을 찾아보는 일 뿐 아니라 그래픽 노블이나 『모비 딕』에서 파생된 작품들에 대한 기대도 크다. 무엇보다 빼곡한 밑줄을 눈으로 목소리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 멜빌의 『모비 딕』은 읽는 행위 하나만으로 경이로운 순간을 선사할 것이다. 또한 특정한 시대가 아닌 도래하는 모든 현재에 속하는 작품이다. 잔잔하고 때론 묵직한 감동을 만나고 또 모을 수 있기를.

'인간의 권리‘와 ’세계의 자유‘가 ’놓친 고래‘가 아니면 또 뭐란 말인가? 모든 인간의 정신과 의견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들이 지닌 종교적 신념의 원칙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남의 말을 훔쳐 허세를 부리는 웅변가에게사상가들의 사상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리고 독자여, 당신 또한 ’놓친 고래‘가 아니면 또 뭐란 말인가?(p.614)

“하, 하, 나의 배여! 이제 너를 태양을 끄는 바다의 전차라 불러도 되겠구나. 어이, 어이! 나의 뱃머리 앞에 있는 모든 나라들아, 내가 너희에게 태양을 끌고 가노라! 저기 저 파도에 멍에를 씌워라. 이랴! 파도가 일렬로 달리는구나. 내가 바다를 몬다!”(p.788)

“스타벅! 어떤 배들은 항구를 떠난 뒤로 영영 종적을 감춰버린다네!“

“그럼요, 선장님 더없이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썰물 때 죽고, 어떤 사람은 물의 수위가 낮을 때 죽고, 어던 사람은 물이 가득 차올랐을 때 죽지. 스타벅, 나는 지금 파도의 가장 높은 물마루에 올라선 심정이네. 나는 늙었어. 자, 나랑 악수하세.”(p.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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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The Complete Maus 합본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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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슈피겔만의 『쥐The Complete Maus(권희섭, 권희종 옮김/아름드리미디어)』는 유태인 대학살을 다룬 장편 만화로 부제는 “한 생존자의 이야기”다. 작가의 부모님이 아우슈비츠 생존자로 책은 부모님과 자신의 관계를 보여주는 자전적 이야기와 부모님의 생존담을 전한다. 작가는 유태인을 쥐로, 다른 등장인물들도 동물로 묘사한다. 잡지에 연재되던 『쥐 1』이 1986년 단행본으로 출간되는데 8년이 걸렸고, 그로부터 6년 후인 1991년에 『쥐 2』가 출간된다. 합본판은 발간 20주년을 기념해 2010년에 나오게 된다. 슈피겔만은 창작 예술가이자 만화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역사가이며 영상 예술 학교에서 “만화사”를 강의한다.(p.314) 또한 그는 만화라는 대중문화를 예술적 표현 양식의 하나로 끌어올린 ‘그래픽 노블’의 창시자가 되었으며 『쥐』는 1992년 만화책으로는 유일하게 퓰리처상을 수상한다. 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의 이해』 부록(p.246)에서 역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쥐』는 만화를 하나의 정점에 달하게 했고, 새 지평을 열도록 문을 열어주었다는 극찬을 받아 마땅한 자타가 공인하는 걸작이다.”

아들 아티는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과 어머니 아냐의 삶, 그들이 겪었던 전쟁에 대해 쓰고 싶어한다. 부자 관계는 소원한 편이었지만 그는 아버지 얘기를 듣기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쥐는 아버지의 회상 속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결혼 후 행복했던 시간은 잠시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징병통지서를 받은 아버지는 어머니, 어렸던 형과 헤어져 입대하게 된다. 전쟁 포로가 된 블라덱이 내뱉는 “난 죽지 않을 거야. 여기 있지도 않겠어! 난 인간 대접을 받고 싶다구!”(p.60)라는 말은 그를 지탱하는 주요 동기다. 블라덱의 고객이자 재단사였던 일체키씨에게 우연히 도움을 받고 목숨을 구하지만 도움을 준 그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다행히 그들의 아들은 살지만 블라덱의 큰아들, 아타가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던 형 리슈는 살아남지 못한다. 죽음은 자기 그림자처럼 가까웠고 예측가능성이란 없는 시간이다. “독일놈들에게 유태인 소수를 넘겨주면 나머지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유태인 경찰, 독일인이 아닌 유태인 경찰에게 아냐의 조부모님은 이끌려 희생당한다. 또한 작가는 단 두 지면을 할애해 스타디움 선별작업 당시 딸을 위해 담을 넘고 죽음의 편에 기꺼이 섰던 블란덱의 아버지를 그린다. 오래전부터 되풀이 들어왔던 이야기의 실재를 보여준다.

책 속의 책 “지옥 혹성의 죄수-하나의 일화”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이 어떻게 서서히 삶을 망가뜨렸는지, 고통의 대물림을 압축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하는 장면 회상으로 1부가 끝날 때 아티는 아버지가 어머니 아냐의 노트를 태워버렸다는 사실에 분노를 참지 못한다. 너무 많은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브란덱의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 했던 무수한 선택의 연장선에 있다. “나는 항상 아꼈지···만약을 위해 말이다!”(p.69)에서도 생존 본능이 그의 성격으로 고착되었음을 보여주지만 전쟁 이후 현재를 갉아먹는 불화의 단초가 된다. 2부에서는 『쥐1』이 성공해 조명 받던 당시 작가의 심정도 드러난다. “제가 바라는 건···사면입니다. 아니···아니에요···제가 원하는 건···제 어머니라구요.”(p.206), “인생은 늘 산 사람편이죠. 그래서 무슨 이유인지 희생자들은 비난을 받습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이 최선의 인간은 아니었듯이 죽은 사람들도 최선은 아니었죠. 무작위였으니까요!”(p.209)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명징하다. 브란덱과 아냐의 행적은 전쟁 종식과 이후 재회로 계속된다.

흑백의 빽빽한 그림, 진하고 거친 질감이 “한 생존자의 이야기”라는 무거운 주제를 더 심연으로 끌어내릴것 같았다. 가슴 아프고 잔혹한 장면은 속수무책으로 독자를 괴롭히지 않을까 두려움도 있었다. 아타는 책 속에서 현실이 만화로 하기엔 너무 복잡하다며 누락과 왜곡을 고민한다. 아타의 아내는 “그냥 솔직하게만 그려요.”(p.180)라고 답하는데 『쥐』는 이를 충실히 따른다. 책은 감정이 개입될 여지 없이 객관적인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의인화와 상징은 독자를 좀더 가까이 초청하고 어느새 숨을 죽이며 실제 일어났던 전장, 숨죽여야 했던 날카로운 공간에 함께 세운다. 『쥐』는 후반에 실린 작품해설까지도 또 하나의 작품 역할을 한다. “소호에 있는 천정이 높은 아트 슈피겔만의 저택 다락에는 한쪽 벽 전체가 전쟁 전의 폴란드와 유태인 대학살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는 책자로 가득 쌓여 있다”(p.314)는 설명으로 짐작할수 있듯 여러 곳에서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드러낸다. 그림 칸의 배열과 시점의 변화를 반영한 원근법 적용 등 다양한 시도는 알고 읽으면 더 감탄을 부른다.

형식적으로 최초의 그래픽노블로 획을 그었다면 내용적으로, 주제에 있어 반드시 쓰여져야 할 이야기다. 일정한 시기에 갇힐 수 없으며 계속 반복해서 다루어져야 할 아픔이다. 이 책의 빼어난 점은 과거와 현재,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 전쟁과 전쟁 이후, 상처와 치유가능성 등 대응하는 두 개 축이 이루는 균형에 있다. 아버지 블라덱의 과거 회상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페이지를 정독하게 하는 일과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세대 갈등, 부자간 감정의 마찰과 애틋함은 또다른 결로 생생하게 닿는다. 놀랍게도 유머까지 만나게된다. 읽고 나면 먹먹함에 질문을 던지게 되는 지점, 안타까운 면면들이 여전히 남는다. 정답이 없을지언정 충분히 묻고 숙고하고 경청할 때마다 시공간을 초월해 그들은 기억될 것이다. 여전히 이기심이 촉발한 참혹한 전쟁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쥐』는 결코 과거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읽어야 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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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파친코 1~2 세트 - 전2권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이민진의 『파친코(문학사상,2018)』는 격동하는 한국 근현대사에 맨몸으로 맞서며 사라지고 만 사람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을 기록한다. 작가는 “일본에서 살아가는 조선인들의 삶 대부분이 경시당하고 부인당하고 지워진다는 이야기를 글로 써야한다”(p.384)는 믿음이 확고했기에 30년에 걸쳐 소설을 완성해낸다. “일본에 사는 외국인 거주자”라는 의미를 지닌 용어 ‘자이니치(재일동포)’는 속지주의를 택하는 미국의 재미교포와는 다른 조건을 부여한다. “문제는 일본에서 태어난 조선인은 일본이 고향이고 일본어가 모국어인데, 왜 자신이 외국인 취급을 받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p.392,2권) 소설은 떨칠 수 없는 인생의 굴레와 옥죄는 고통에 맞서는 인물들을 담아낸다. 유년 시절 가족 이민으로 뉴욕에 정착한 이민진은 한국 이름을 고수하며 2004년 단편소설을 발표하고 2008년 첫 장편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Free Food for Millionaires”을 발표, 여러 상을 수상한다. “파친코”는 올해 웹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주목을 끌고 재출간되는 등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p.11, 1권) 여운을 남기는 도전적 선언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기형이 있지만 “분별있는 부모”(p.13)밑에서 자란 덕분에 훈이는 양진을 아내로 맞을 수 있었다. 그들의 유일한 자녀 선자는 정상으로 태어나 부모를 기쁘게 하지만 딸에게 애틋했던 아버지는 일찍 병사한다. 아기때부터 엎혀 드나들던 남포동 시장에 이제는 홀로 장보기를 도맡아야 하는 선자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새로온 생선 중매상 고한수를 만난다. 이삭을 만나기 6개월 전이다. 이미 결혼한 고한수의 아이를 가지고 그의 제안은 거절한 채 선자는 이삭을 받아들이고 함께 이삭의 형, 요셉이 있는 일본으로 향한다. 선자는 이삭이 투옥된 지 일주일 후 처음 장사를 시작한다.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온 여성, 또는 모성으로서의 마땅한 삶, 희생이자 고생이라고 일컬어지는 길로 들어선다.

요셉은 일본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이 자신과 무슨 상관인가 싶다. 그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모든 애국자나 일본을 위해서 싸우는 재수 없는 조선인 개자식이나 다들 먹고 살려고 애쓰는 만 명의 동포 중 하나일 뿐이다. 결국 굶주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p.267)고 되뇌인다. 선자의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 역시 나름의 싸움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의연하고 차분하고 영리했던 큰 아들, “엄마가 걱정할 게 없네.”(p.277)라고 말할 수 있었던 노아는 모든 규칙을 지키고 최고가 되면 “적대적인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p.282, 2권) 믿었다. 아들의 마지막 선택 앞에서 “그런 잔인한 이상”을 방기했다고 어머니는 자책한다. 모자수와 그 아들 솔로몬의 선택까지 확인하고 나면 소설의 첫 문장을 다시 읽게 된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다. 부산 영도의 훈이와 양진부터 그의 딸 선자, 선자의 아들 노아와 모자수,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까지 4대에 걸친 가족사가 펼쳐진다. 그들과 관계하는 인물들의 서사도 등장과 맺음마다 고유한 의미와 흔적을 선명히 남긴다. 선악을 떠나서 캐릭터는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그들의 입장에 이입해 보고 고통과 어려움에 공감하며 실패와 좌절, 실수나 후회에 가슴 아파하게 된다. 이는 작가가 지난한 취재를 꼼꼼히 다지고 탄탄하게 서사와 배경을 구축한 덕분일 것이다. 묘사와 대화의 균형, 간결한 문체, 담백한 서술, 속도감 있는 진행은 가독성을 높이고 몰입케한다. 반면 다양한 측면의 나열식 정보 전달이 오히려 주요 사건과 인물에 한껏 침잠하는 데는 저해요소가 아니었나 아쉬웠다.

<파친코>가 아니었다면 자이니치와 그들이 겪어온 시간에 여전히 무감각했을지도 모른다. 아픈 역사를 망각과 몰이해에서 빛으로 끌어오고 목도케 하는 작품이며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해당하는 보편적 질문이 도처에 흩어져있다. 다분히 현대적인 시대극이기에 등장인물들의 명멸은 분량과 관계없이 무게를 간직한다. 작가는 1권 고향(1910~1949)의 제사에 찰스 디킨스를, 2권 조국(1953~1989)의 제사로는 박완서의 문장을 선택한다. 『파친코』는 고향을 떠나 조국을 그리며 불모의 삶일지언정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라는 도전에 응전해온, 여전히 진행중일지도 모르는 인생들에게 바치는 찬가로 읽힌다. 이제 영상으로 만나볼 차례다. 아껴둔 선물이 가슴 뛰게 한다.

책 속에서>

선자는 인생을 살면서 두 남자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 사랑을 다시 받을 수 있으리라고는 이제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가끔씩 선자는 자신이 언젠가는 쓸모없어질 튼튼한 농장의 가축이 된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런 날이 오기 전에, 자신이 떠나고 없어도 아이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준비해주어야 했다.(p.330, 1권)

이 나라는 변하지 않아. 나 같은 조선인들은 이 나라를 떠날 수도 없어. 우리가 어디로 가겠어? 고국으로 돌아간 조선인들도 달라진 게 없어. 서울에서는 나 같은 사람들을 일본인 새끼라고 불러. 일본에서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무리 근사하게 차려입어도 더러운 조선인 소리를 듣고. 대체 우리 보고 어떡하라는 거야?(p.220,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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