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 선집
찰스 디킨스 지음, 권민정 옮김 / 시공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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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 권민정 옮김,시공사,2020,676쪽) 1859』는 19세기 영국 최고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였던 찰스 디킨스의 후기 대표작이다. “두 도시 이야기”는 단행본 소설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작품으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함께 2억부 이상 나간 베스트셀러(박차영, 2022)이기도 하다. 찰스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는 하급관리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학교 대신 공장에서 일하게 되고 15세 부터는 사환, 속기사, 기자 등 일을 하면서 고전을 탐독한다. 스물네 살에 등단한 그는 《피크위크 클럽의 기록》(1837), 《올리버 트위스트》(1838)를 발표하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중편《크리스마스 캐럴》(1842)과 후기 작품들까지 약 20여 년의 작품 활동 동안 열다섯 편의 장편소설, 다섯 편의 중편소설, 수백 편의 단편소설을 남긴다.

천재 이야기꾼이자 활동가였던 찰스 디킨스는 톨스토이부터 조지 오웰, 마르크스 등 동료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학자이자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영어로 소설을 쓴 천재 작가에 대해 말하라면, 그 시작도 끝도 디킨스다”라 평한다. ‘카프카적’이라는 대체할 수 없는 단어가 사전에 등재되었듯이 유사한 예가 디킨스에게 보이니 ‘디킨스적’이라는 표현은 그가 작품 속에서 자주 사용했던 끔찍한 사회 환경이나 코믹하게 그려지는 인물을 묘사할 때 흔히 쓰인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지 150년이 지났지만 디킨스의 작품들은 현재성을 띠고 영화, 연극, 뮤지컬 등으로 상영 중, 공연 중, 읽히는 중이다. 『두 도시 이야기』는 디킨스가 1859년에 발행한 주간지 《올 더 이어 라운드(All the Year Round)》에 실었던 연재 소설로 모든 계층의 독자에게 사랑받았던 작품이자 ‘대중문화에 가장 영향을 끼친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의미심장하고 매력적인 첫 문장으로부터 작품의 배경이 되는 ‘그 시절’인 프랑스 혁명기 1789년 전후와 소설 출간시점인 1850년대 ‘현 시절’(p.13)을 가늠하게 된다. “친애하는1775년 무렵”(p.17)이다. 영국 텔슨 은행에서 일하는 자비스 로리는 20여년 전 자신이 수탁자 역할을 맡고 있던 고객인 의사 알렉상드르 마네트 박사를 구하기 위해 파리로 향한다. 로리는 18년간 바스티유 감옥에 억울하게 갇혀있던 마네트 박사와 딸 루시를 데리고 영국으로 돌아가는데 이 배에서 루시와 찰스 다네이가 만나게 된다. 찰스 다네이는 프랑스 귀족의 지위를 포기한 에브레몽드의 아들이고 에브레몽드는 마네트 박사에게 죽음보다 더한 18년의 악몽을 설계한 주범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일상을 송두리째 파괴한 인물이다. 박사는 그럼에도 조건을 걸어 루시와 찰스 다네이의 결혼을 승낙한다.

어수선한 시대에도 루시가 등장하는 장면이면 고요와 밝은 빛이 일렁인다. 사려 깊고 선한 루시의 사랑은 피폐해진 아버지, 위험의 한복판으로 밀려들어가는 남편에게는 물론 사자의 배경으로 자칼을 담당하고 있는, 무력한 체념만인 일상인 시드니 카턴에게까지 미친다. 카턴은 비록 사적 사랑의 성취에는 실패하나 이와 비교하기 어려운 숭고한 결단과 행동으로 주변 인물에서 벗어나 작품 전체의 주제를 견인한다. 루시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 불길하고 미스테리한 인상을 전하던 드파르주 부인이다. 그녀는 단호하게 응시하고, 결코 잊지 않겠다 기록하고, 피를 묻히는 일에 거리낌이라곤 없이 폭력과 죽음을 잇댄다. 드파르주 부인은 혁명과 복수의 아이콘으로 뜨개질이 멈출 때 까지, 숨이 멎을 때 까지 무자비한 질주를 막을 길이 없다. 그녀는 왜 그토록 가혹해야 했을까, 그럴 수 있었을까. 마네트 박사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켰던 에브레몽드 가문의 악행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드파르주 부인의 정체가 드러나고 악은 복수를 부른다. 이를 갈며 견딘 시간은 공감이 연대를 낳게 하고 어느 순간 눈덩이처럼 커진 군중의 분노를 폭발시킨다. 그들은 이미 못할게 없다.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두 도시, 영국의 런던과 프랑스의 파리를 대비시킨다. 극적인 대비는 소설의 주요 장치로 무능하고 이기적인 귀족과 학대당하는 민중을, 부와 가난, 악과 선을 교차 배열해 부각시킴으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일개 부품처럼 망가지고 죽어가는 사람들은 대의나 군중심리, 일종의 광기 앞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두 개의 악이 겨루는 형국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만연체 문장은 긴 호흡으로 이어지지만 묘사와 대화, 서술이 균형을 이루어 지루할 틈 없이 몰입하게 된다. 극적인 전개와 캐릭터들의 생생한 육성은 시간을 거슬러 그 공간, 바로 그 순간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질척이는 발밑의 땅과 굶주림의 고통과 추위, 도처의 혈흔까지 감각되는 듯하다. 여성성으로 때로 의인화되는 기요틴이나 멈추지 않는 뜨개질의 상징성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작가는 폭력의 시대,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긴 호흡임에도 빠른 템포로 끌고 나간다. 참담함 앞에 잠시 멈춰 설만한 여유는 없다. 때론 노래처럼 곡조가 연상되는 문장으로 때론 리드미컬한 시처럼 라임이 맞춰지고, 후렴이 있고, 구조가 세워지는 디킨스표 문장 읽기는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부서진 포도주 통에서 흘러가는 포도주. 이로 인해 일어나는 다양한 반응, 이로써 민중의 일상, 기호나 삶의 편린을 포착하고 어느 사이 포도주는 중의적 의미로 변화한다. 결핍과 굶주림으로 조금씩 확대되고 복선을 깔기도 한다. 동어 반복의 미학, 구조 중첩의 효과를 발견할 때 하나의 단어는 고정된 의미라는 한계마저 넓힌다. 기록해내겠다는 작가의 의지를 본다. 역설과 풍자로 옷입고 핵심을 되풀이 두드린다.

그 시대의 독자에게 눈맞춤하며 써낸 작품, 작가가 들려주고 싶었던 진심은 아마도 마지막 문장에 녹였을 것이다. 심정을 가늠하는 유언 격으로 “나는 본다,”(p.655)로 시작하는 글.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은 지금껏 내가 했던 그 어떤 일보다도 훨씬, 훨씬 근사하다. 내가 취하러 가는 안식은 지금껏 내가 알았던 그 어떤 안식보다도 훨씬, 훨씬 근사하다.”(p.657)로 마침하는 순간은 "슬프게, 슬프게,"(p.160) 떠오르는 태양을 맞던 과거의 카턴을 생각할 때 깊은 감동을 안긴다. 삶과 죽음,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죽을 것인가, 사소한 것부터 판단보류인 채 얼어붙게 만드는 온갖 가슴 절이는 선택의 갈림길을 바라보게 한다. 백 여년 전 고전은 미래를 선취함으로 희생이 회생하고 부활케 하는 봄을 동시대 독자를 넘어 새로운 세기의 독자에게도 선사한다. 『두 도시 이야기』는 찰스 디킨스의 세계로 부르는 매력 넘치는 초대장임이 분명하다.

책 속에서>

최고의 시절이었고, 최악의 시절이었고,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고,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고,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고,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고,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아무것도 없었고, 우리는 모두 천국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고 있었고, 우리는 모두 천국을 등진 채 반대로 나아가고 있었다.(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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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 세상을 다스린 신들의 사생활
토마스 불핀치 지음, 손길영 옮김 / 스타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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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손길영 옮김/스타북스)2022,1855,504쪽』는 고전의 반열에 서 있는 한 편 동시대적 이슈에 의해 지속적으로 소환되며 여전히 화재의 중심을 차지한다. 그리스어 미토스(mythos)에서 유래된 신화(myth)는 ‘전해들은 말 또는 이야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리스 신화란 “고대 그리스 민족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호메로스에 의해 신화가 처음으로 문학으로서의 출발점에 서게 된 이후”(p.10/눈으로 보는 그리스 신화, 인서트, 모리 이요코 외) 신화는 서구 정신사에 중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이 책의 저자 토마스 불핀치는 신화를 학문으로서가 아닌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수용할 수 있도록 쉽게 서술했다. 토마스 불핀치 (Thomas Bulfinch,1796~1867)는 미국의 문학가, 역사학자, 신화학자로 대학의 고전학과에서 여러 고전작품을 배운 후 교사와 사업가를 거쳐 은행에 취직해 평생의 직으로 삼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읽고 쓰는 일에 바친다. 1855년에 완성한 『신화의 시대(The Age of Fable)』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책이자 그리스 로마 신화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된다.(해외저자사전, 2014. 5.)

책은 총 34장으로 장별 제목 아래 소제목을 두어 신, 요정, 괴물과 인간의 주요 에피소드를 다룬다. “그리스 신과 로마의 신”을 시작으로 후반으로 가면 일리아스와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간략하게나마 엿볼 수 있다. 5장과 6장은 “소원을 말해봐”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파에톤과 미다스, 바쿠키스와 필레몬까지 그들이 원하는 소원은 어리석음과 욕망, 애틋함을 보여준다. 파에톤 편에서 태양신의 궁전의 아름다움을 글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신화 읽기의 보너스 트랙과도 같다. 여러 지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바우키스와 필레몬 편에서는 노인 내외가 나그네로 변신한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위해 차리는 식탁이 흡사 “사자와 마녀와 옷장”의 비버 부부가 차려내는 식탁을 연상시킨다. 힙노스가 있는 잠의 집 정경 또한 인상 깊다. 묘사하는 글이 지루할 틈이 없고 상상은 시각적으로 풍성하게 재현된다. 아비코스 편에서 그려지는 고대의 노천극장도 눈여겨보게 된다. 신전 경내 원형 극장에서 이뤄지는 공연 장면(p.343)은 무척 생생하고 아바타를 상영하는 현대의 극장 체험과 맞먹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히아킨토스의 죽음에 슬퍼하는 아폴론의 한탄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모든 이들의 노래 같고 모르고 짓는 죄를 향한 벌, 가혹한 단죄가 여러 형태로 반복되는데(p.121), 이는 신화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한낱 도구적 존재 인간의 무력함을 본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세상을 다스린 신들의 사생활’이라는 부재가 말하듯 인간사에 끊임없이 개입했던 그리스 신들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그들은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치를 장착한 채 차원을 달리하는 순간을 영위한다. 신들이 보이는 행동의 근간 또는 이유 없음, 우연 등의 선행조건과 그로 인한 파장과 결과들이 이어진다. 그들의 의도에 부합해 받아들일만했던 사건과 의도치 못했으나 기준과 법칙을 깨뜨릴 수 없기에 역부족으로 넘겨야 했던 일들, 의도치 않았고 결과도 탐탁지 않아 신들 스스로 감정이 격동한 채 휘둘리고 질주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27장부터 본격적인 호메로스 읽기의 서론 격으로 등장하는데 이어서 두 편의 서사시<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완독해야 어쩌면 그리스 신화를 얼추 읽었다고 할 수 있겠다. 책은 명화에서 가져온 흑백 삽화도 곁들여 독자 스스로 관련 자료를 더 찾아가며 읽고 싶도록 한다. 신화의 흔적으로부터 자유로운 예술을 찾아보기도 어려울뿐더러 일상에 깊이 스며있기에 『그리스 로마 신화』는 정독의 필요가 있다. ‘토머스 불핀치 오리지널 완역본’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단, 아쉬운 점으로 매끄럽지 않은 번역과 교정이 미흡했는지 너무도 잦은 오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오타가 번역에 영향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괴롭고 언짢았던 중대한 독서 방해요소였다. 게다가 이제는 마지막 페이지부터 서서히 낙장이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완역한 다른 판본을 재구입할 예정이다. ‘고대인으로부터 구전되고 현대에 끊임없이 인용되고 있는’ 신들을 만나는 중, 몽테뉴의 한 문장이 허를 찌른다. “인간이란 참으로 지각이 없다. 진드기 하나 만들지 못하는 주제에 신을 한 다스나 만들어 놓는다.”(에세2, p.331,민음사) 정말이지 한 다스다. 길어내도 마르지 않는 샘은 여전히 흐르며 묻는다. 거울이 되어 이십일 세기의 독자를 비춘다.

책 속에서>

그래서 어느 날 그녀는 상자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곧, 불운한 인간을 괴롭히는 무수한 재액이 그 속으로부터 빠져 나왔다.(중략) 그리고 멀리 사방 팔방으로 날아갔다. 판도라는 놀라 재빨리 뚜껑을 덮으려 하였으나 이미 상자 속에 들어 있던 것들은 다 날아가고, 오직 하나만이 맨 밑에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희망’이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어떤 재난에 처해서도 희망을 전적으로 잃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한 어떠한 재난도 우리가 절망할 정도로 불행하게 만들지는 못하는 것이다.(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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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 Dear 그림책
숀 탠 지음,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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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탠의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이지원 옮김/사계절),2009, 90쪽』(원제; Tales From Outer Suburbia (2008년))은 삶이 간직한 비밀을 들추어 진실을 환기하는 판타지다. 그렇다고 무중력으로 떠다니며 현실에 잇댈 접점이라고는 없는 환상을 위한 환상은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책을 펼치는 독자는 이야기가 가진 침투력 또는 파장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숀 탠은 대학에서 미술과 영문학을 전공했고 1992년 국제미래출판미술가상을 수상한 뒤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그는 애니메이션 '월-E'와 '호튼'의 컨셉 디자이너로 일한 바 있는 비주얼 아티스트, 케이트 그린 어웨이 상과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한 호주의 대표적 그림책 작가, 세계 판타지어워드 ‘최고의 아티스트’로 선정된 독보적인 에스에프 일러스트레이터,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세계적인 그래픽노블리스트 등 작가이자 예술가로서 다양한 성취를 보여준다. 《잃어버린 것》, 《빨간 나무》, 《도착》을 비롯해 최근의 《개》까지 꾸준히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은 열다섯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앞 면지와 뒤 면지는 빼곡한 펜화로 채워졌는데 동일하지는 않다. 양 면을 넓게 활용한 두 번째 타이틀 표지는 가운데부터 모퉁이까지 그림을 응시하게 만든다. 차례 또한 평범치 않다. 차례라는 게 차례대로 써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다. 역시 숀 탠 적이다. 공간적 배경은 어느 도시의 변두리 지역으로 화자가 들려주는 말을 독자는 경청하지만 예상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뚝뚝 끝나버린다. 독자는 결말 언저리에서 한참을 서성이게 되고 다음 페이지를 펼쳐야지, 하고 결단 비슷한 마음을 먹는다.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을 읽는 일은 머뭇거림과 추스름, 전진과 넘김을 반복하는 일이다. 작가는 글로 한번, 그림으로 한 번, 두 개 방식의 병렬과 혼합으로 다시 한번, 최소한 세 번에 걸쳐 의미를 전달한다. <물소>의 마지막 문장 “도대체 물소는 어떻게 알았지?”(p.6)에 독자는 답한다. “물소가 뭘 뜻하는 거야? 혹시 내가 알고 있지 않을까?” 하고.

<에릭>은 조심해야 하는 작품이다. 폭풍 감동에 무방비로 습격당할 수 있다. <부서진 장난감들>에서처럼 의도치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선의로 작용하는 법이 종종 있다는 사실, 그럴 때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좋으리라 예견케 한다. <멀리서 온 비>, 형식이 곧 내용이고 주제며 텍스트와 이미지는 뒤섞인다. 천재 맞다. <기억 상실 기계>는 꼼꼼히 살펴야 한다. 발견했는가? 저기 꼭대기에 있는 솔 벨로우의 문장. 신문 기사에서 “부정부인부 장관”(p.74)이라니! 현실 비판 또한 강렬하다. <경야>에서 보여주는 비판은 또 어떤가. 최근작 『개』를 연상케 하며 마음이 아프다.

“차라리 이 책을 ‘보석’이라 하자. 아니, ‘보석의 모음’이다!”(스쿨라이브러리저널)라는 탄복이 결코 과장되지 않다. 작가는 환상적인 비틀기를 시종일관 구사한다. 하지만 간절하고 선한 염원이 충분히 드러난다는데 차이가 있다. 궤변이야, 싶은데도 불구하고 숀 탠이 말하면 믿어진다. 마법, 환상, 동화가 실제 하는 듯한 감동은 마냥 감정에 호소한 결과는 아니다. <할아버지의 결혼식에서>처럼 대화는 직설적이고 그래서 부연은 불필요해진다. 책은 오래전 경험했지만 잊었던 순간들, 아름다웠던 찰나들을 불러온다. 그런 지점을 어느 순간 불쑥 내어민다. 작가는 아이러니와 과장법, 다양한 종류의 비유 등을 빼어나게 사용한다. 상징과 은유는 시간을 들여 숙고하게 만들고 단편의 분량과 여운은 비례에서 벗어난다. 독자는 상상력의 한계를 재어보게 될 것이다.

남루하고 고된 세계의 이면에는 틈이 있다. 모두에게 공개되지 않았기에 이 틈새를 알아차리는 이들이 필요하다. 아이 또는 천재, 천사 또는 어린 왕자처럼. 숀 탠이라는 천재 덕분에, 몇 년이 넘도록 책꽂이에 두고 어여쁘다 바라보던 끝에 이제 함께 읽어볼까 결심한 어느 저녁 덕분에, 이 틈은 발견된다. 이제 새롭게 보는 법을 약간은 수월하게 익힌다. 비록 지속기간을 장담하지 못할지라도 얼마나 다행인가. 빛을 내고 손짓하고 속삭일 ‘사이’들이 안겨온다. 차원의 수가 높아질수록 경이로움은 일상이 되고 온기도 지닐 것 같다. 그가 건네는 종이상자를 풀어보자.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들이 눈부시다. 이야기는 빛으로 스며들어 먼저 우리 내면을 밝힐 것이다.

책 속에서>

안쪽 정원에서는 계절이 반대였다. 여름에 그곳은 겨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한 해의 가장 춥고 축축한 때에 여름 햇빛을 흠뻑 받곤 했다. 그것은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른 어떤 곳에 온 느낌이기도 했다. 고향과는 전혀 다른 어떤 곳의 느낌······. 희귀한 꽃들이 밤공기를 타고 떠다니는 고요한 밤에 식구들은 그런 깊은 상념에 잠기곤 했다.(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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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0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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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이경식 옮김/문학동네)2016』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먼저 쓰인 작품으로 저작연대는 '1600~1601년'(p.235)으로 추정한다. 원제는 ‘덴마크 왕자 햄릿의 비극적 이야기(The Tragicall Hiftorie of HAMLET, Prince of Denmarke)'로 제목에 ’비극‘이라 명시하고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1564~1616)는 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하던 16세기 중반 영국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1580년대 말쯤에 런던으로 진출해서 극작가 겸 단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1590년에서 1613년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의 극작가로서, 10편의 비극(로마극 포함), 17편의 희극, 10편의 역사극, 시집 및 『소네트집』을 남겼다. 생전에도 인기 작가였던 셰익스피어는 사후에도 수많은 찬사를 받는다.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토머스 칼라일), “단테와 셰익스피어가 근대를 나누어 가졌다. 그 둘 사이에 세 번째란 없다”(T.S. 엘리엇), “문학적 위력이라는 면에서 셰익스피어는 성경에 맞먹는 유일한 인물”(헤럴드 블룸), “어느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벤 존슨) 등의 말로 그를 기린다.

『햄릿』은 궁성의 망대 파수병들에게 선왕의 혼령이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작고한 햄릿 왕의 동생 클로디어스가 덴마크 왕국의 새 왕이 되었고 형수였던 거투루드를 “기쁨과 애통이 동일한 무게를 지니는 가운데”(p.21) 왕비로 맞았음을 공표한다. 왕비는 아들에게 “착한 햄릿아”라 부르며 말을 잇는다. 새 왕께 정다운 눈길을 보내볼 것을, 죽음은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일임에도 “어째서 너는 그처럼 유별나게 보이느냐?”라고 묻는다. 햄릿은 “저는 ‘보인다’를 알지 못합니다.”(p.24)라며 자기 속에 있는 것과 보이는 것이 어떻게, 얼마나 다른 별개의 문제인지 짚는다. 결국 보이는 것, 연기, 꾸며낼 수 있는 것, 겉치레, 장식, 겉옷과 자신의 속에 있는, 이 모두를 “초월하는 것”(p.25)이 대결하는 구도가 성립된다. 즉 후자에 진실, 진심, 가려진 실체, 바로잡아야 할 죄악과 부패-이는 국가 덴마크로 확대했을 때와 왕의 가문으로서, 개별적인 한 가정으로 점차 축소해도 동일하게 적용되는-가 속한다. 햄릿의 호소할 곳 없는 갈등은 “아비가 당한 흉측한, 가장 반인륜적인 살인을 복수하여라.”(p.47)라는 선왕 혼령의 명령 앞에서 나아갈 방향에 명분을 갖추고 동기를 부여받는다.

“세상은 관절이 어긋나 있다. 오, 이 저주받은 운명이여, 이것을 바로잡도록 내가 태어나다니!“(p.55) 햄릿은 이를 위해 광인 행세를 시작한다. 그는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대신 혼령이 내린 명을 재점검하는 도구로 극중극인 ”곤자고 살인“을 공연한다. 동시에 그런 스스로를 자조하며 죄책감을 느낀다. 햄릿은 복수의 적기를 놓치고 어머니와 대면 중 의도치 않게 폴로니어스를 살해하고 이는 딸 오필리어와 아들 레어티즈까지 참혹한 결말로 이끈다. 『햄릿』은 왕부터 무덤일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삶을 포착한다. 권력자는 의도하고 계획하나 민중의 사랑은 선택한 대상에 자유롭게 머문다.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가장 유명한 인물이자 문학사의 선두에 있는 캐릭터 햄릿은 물론이고 혼령, 거트루드 왕비, 클로디어스 왕과 폴로니어스, 오필리어, 레어티즈, 호레이쇼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사건을 주동하기도 이에 반(反)하기도 한다. 안타깝게 희생당하거나 비겁하게 침묵하기도 하며 각자의 가치나 실제적 이익을 선택하는 인간 군상을 대변한다. 관계맺음의 역동을 읽어 나갈 때 이를 간파하고 냉소하거나 때론 일격을 가하는 문장들은 시간이라는 녹을 깨뜨리고 날카롭게 빛난다. 아름답고 고통스럽고 깊고 명랑해서 인간 감정의 보고를 완성한다. “살 것이냐 아니면 죽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p.100)라는 독백이 여전히 긴 파장으로 공명하듯이 오래된 고민은 지나간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햄릿』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얼굴을 내어주는 작품이다. 간결하게 밀도를 높인 대사는 독자가 겪어내고 있는 시간의 결에 따라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목소리를 들려준다. 여백에서 행간에서 일대 일, 또는 일대 다(多)의 은유와 상징이 숙고하게 만든다. 노래 같은 비유도 신화에서 인용하는 문장들도 마찬가지며 유명한 대사와 구절이 많아 ‘격언의 연속’(p.227)같다는 말에 동의한다. 햄릿의 입을 빌은 셰익스피어의 연극론은 독자를 위한 다채로운 선물 중 하나다. 역자는 이 작품의 주제를 “햄릿의 복수 지연”(p.306)이라고 전한다. 숨겨진 진실에 닿는 일은 내면의 자신을 정확히 보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햄릿은 타협하지 않고 들여다보려고 애쓴다. 관찰의 도구인 돋보기와 미세한 저울추, 들끓는 침묵을 마련하지만 이와는 달리 제어하지 못하고 한 순간 저지른 행동은 폴로니어스 살해를 초래한다. 정작 좌우명을 기록한 수첩은 펼치지 않은 채 유예시킴으로 수레바퀴는 이탈하고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그는 의도했을까 떠밀렸을까.

모두의 비극을 멈출 수도 있었을 텐데, 비극의 범위를 최소화할 수도, 아니 정밀하게 겨눌 수도 있었을까. 그러나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조건, 보편적 삶이라는 무대로 극을 가져간다면 차이를 가리기 어려워진다. 사느냐 죽느냐 할 때 죽음 이후까지 범위를 확대한다면 더욱 가늠하기 힘들다. 지금 이 순간을 바르게 통과하기 위해 고투하는 한 인간을 본다. 그는 기준이 되는 단위가 여럿이고 어지러워서 부릅 뜬 눈으로 실수하지 않으려, 수치 환산에 정확을 기하려 헤아리는 일에 전념한다. 그런 순간의 나열은 대포 쏘는 소리가 터져 나오는 마지막 지문까지 이어지고, 이후 내려오는 막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끝난다. 햄릿이 인간의 초상인 이유 중 하나다. 르네상스적 인간 햄릿은 여전히 넘사벽의 아우라를 지니지만 말이다. 세 번째 읽는 햄릿이고 더 읽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삼회독 이유는 100면에 달하는 역자 이경식의 해설을 정독하는데도 있었다. 공부하면서 읽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자기만의 시선으로 마냥 읽어내도 좋을 작품이다. 더 이해하고 싶다는 간절함을 북돋는 고전 『햄릿』을 추천한다.

책 속에서>

살 것이냐 아니면 죽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것이 더 숭고한 정신인가,

변덕스러운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허용하는 것일까,

아니면 파도처럼 몰려오는 많은 고난에 대항하여

물리치는 것일까. 죽는 것은 잠자는 것,

그뿐이다. 그리고 잠에 의해서 우리가

심적 고통과 육신이 받는 허다한 충격들을

끝장낼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최적의 결론으로서

우리가 열렬히 바랄 바가 된다. 죽는 것은 잠자는 것.

잠자는 것, 어쩌면 꿈꾸는 것-그렇다, 여기에 난점이 있다.

왜냐하면 그 죽음의 잠 속에서 어떤 꿈이 찾아올까가-

우리가 인생 굴레의 속박을 벗어던졌을 때-

우리를 멈추게 한다, 바로 이 난점 때문에

장기간의 불행을 만들어가는 것이다.(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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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 그림으로 본 고흐의 일생
이동연 지음 / 창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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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연의 『그림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창해)2023, 272쪽』는 부제(그림으로 본 고흐의 일생)가 설명하듯 고흐의 삶을 그림으로 이야기한다. 고흐에게 그림은 일기였고 자작시였으며, 혼자 부르는 노래, 그러나 청중을 간절히 기다리는 노래였다. 제목인 “그림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가 숨을 거둔 후 주머니에서 발견한,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속 문장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림밖에 없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p.269)에서 가져왔다. 저자는 KBS 해피FM <그곳에 사랑이 있었네>에 다년간 출연하며 ‘예술가와 뮤즈’를 다루었고, 그때 고흐를 방송한 인연으로 《그림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를 출간했다.(출판사 인용) 책은 들판에서 뛰어 놀다 우연히 형의 비석을 발견했던 7세 어린 시절부터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고흐 삶의 궤적을 전한다.

화가의 길을 선택한 후 10년 동안 “유화 900여 작품과 드로잉 1100여 작품을 완성했으며, 기적같이 딱 한 작품만 팔렸”던,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역사상 최고가를 형성(p.30)하게 된 고흐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책은 총 7장으로 장별 5~11개 소제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각 소제목은 10면 이내 분량이며 고흐가 통과하는 시간이 어떤 작품으로 형상화되는지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그림이 삶이고 삶이 그림이었던 순간들은 외제니 로이어부터 마르그리트 가셰까지 기쁨이자 상흔이었던 사랑의 행적을 기록한다. 아를에 화가 공동체를 마련하겠다는 꿈은 아를의 노란 집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했으나 이 계획에 호의적이었던 고갱과는 공감보다 갈등하는 일이 더 잦다. “자연스런 풍경”과 “작가의 이미지 속에 잘 정돈된 그림”처럼 고흐와 고갱은 추구하는 스타일이나 화풍 뿐 아니라 성격이나 가치관도 달랐고 이는 고흐에게 특히 아픔으로 남는다. 고흐가 겪어야 했던 경제적 어려움과 동생 테오와 가족들에게 품고 있던 미안함, 어머니와의 관계도 글과 그림으로 정리하고 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구두 한 켤레>를 둘러싼 하이데거와 미술 사학자 마이어 샤피로, 그리고 쟈크 데리다의 논쟁이다. 고흐가 파리에 있던 1년간 그렸던 구두 그림이 5점이나 되고 이후 아를에서 1점, 생레미 요양원에서 그렸던 가죽 나막신까지 고흐가 의미를 부여했던 대상은 시공간을 넘어선다. 그리고 처음이자 유일한 감상자들에게 닿는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새로 시작하는 매개체가 된다. 해바라기, 사이프러스, 올리브나무 등 연작 시리즈들은 고흐가 겪는 감정의 고저를 가감 없이 반영하는 듯 보인다. 고흐가 극적으로 활용했던 임파스토 기법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들으면 회화가 조소처럼 보이는 현장, 입체감에서 오는 깊은 감동이 전율을 안겨준다는 <별이 빛나는 밤> 앞에 서고 싶어진다.

이제 ‘반 고흐 미술관’까지 가지 않더라도 미디어 아트를 비롯한 다양한 전시로 그를 만날 수 있다. 고흐 관련서도 동생 테오와 나눈 서한집부터 전기소설, 인문 기행서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 『그림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는 고흐의 일생을 작품으로 요약하면서도 분량이 부담 없다. 또한 피상적이라거나 부족한 느낌 없이 한 예술가의 내면에 깊이 닿는 충만함을 선사한다. 다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림 사이즈가 너무 작았던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서문과 후기 생략에도 본문에 저자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으며 현명하고 충실한 안내자 역할을 한다. 본격적으로 고흐를 만나보려는 독자나 전시 관람을 앞두고 있다면 이 책을 먼저 읽어볼 것을 권한다.

책 속에서>

고흐가 그리려는 대상은 영웅, 위인, 화려함, 미인이 아니었다. 황량한 대자연과 그곳에서 살기 위해 움직여야만 하는 바로 그 존재들이었다. 고흐는 어떤 것이든 미화하는 것을 싫어했고, 삶의 실체적 진실로만 화폭을 채워 나갔다. 그는 1885년 겨울 파리로 떠나기까지 이곳에서 2년 동안 450여 작품을 완성했다.(p.51)

하지만 고흐는 유행 방식을 추종하면서까지 그림을 팔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평소처럼 사물을 분석하지 않고 사물에서 솟구치는 느낌을 그대로 그려나갔던 것이다.(p.62)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릴 무렵 클로드 모네는 수련을, 폴 세잔은 사과를 그리고 있었다. 모네가 수련을 자신의 상징처럼 여기고 30년간 그렸다면, 세잔은 사과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며 40년간 사과를 그렸다. 고흐도 10년의 짧은 화가 생활 동안 꾸준히 해바라기를 그렸다. 그에게 해바라기는 태양의 항구성과 삶의 무상을 상징했다.(p.121)

저는 농부들보다 못하지만, 저에게는 캔버스가 밭이에요. 일하는 분들도 쉴 때 책이나 그림이 필요하죠. 그런 그림을 그리겠습니다./이 작품을 끝으로 고흐는 더 이상 자화상을 그리지 않았다.(p.209)



(출판사 도서제공/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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