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4
귄터 그라스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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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그라스의 『고양이와 쥐(1961/문학동네/박경희 옮김)』 는 작가의 잃어버린 고향을 기억하는 단치히 3부작 중 한 권으로 첫 소설 양철북 다음에 출간되었다. 올해가 귄터 그라스가 세상을 떠난 지 육 년, “고양이와 쥐”가 발표된 지 육십 년이 되는 해(194p)라는 말에 조금 더 일찍 귄터 그라스를 접하지 않았고, 못했던 스스로가 아쉽다. 출간 후 환영보다는 비판과 논란에 시달렸다는 “고양이와 쥐”는 1999년 노벨상을 수상한 귄터 그라스가 내내 집중했던 주제를 담아낸다. 살만 류슈디의 “홀로코스트를 두고, 독일인이 스스로 선택했던 맹목성에 대해 반 유대주의자라면 결코 쓸 수 없었을 역대 최고의 반나치 걸작들을 쓴 작가”라는 설명(193p)을 앞으로 읽어갈 귄터 그라스를 위해 기억하려 한다.

 

 

“그러나 나, 너의 쥐를 한 마리의 그리고 모든 고양이의 눈에 띄게 했던 나는 이제 써야만 한다. 설사 우리 둘마저 허구라 해도 나는 그래야 할 것이다.(8p)” 자책 같기도 고백 같기도 한 문장이 스스로에게 선고를 내린다. 문제의 발단은 쥐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숨고 싶은 쥐는 내내 등장하고 발톱을 드러낸 고양이 앞에 때로 속수무책으로 움츠리고 때로는 비현실적으로 압도하기도 하고, 혹은 무심한 척 기다린다. 말케의 울대뼈, 후두는 눈에 띄는 공격 대상이었고, 단지 그 이유로 무리는 태연히 자신들의 행동을 은연중에 정당화한다. 의도치 않은 시선집중을 피하고자 말케는 특별한 의미로 포장한 물건들을 치렁거리며 걸어보고 가려본다.

 

 

“수영을 할 줄 알기 전에, 너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따금 호명되면 대체로 정답을 말하며, 요아힘 말케라 불렸을 뿐. (중략) 그 무렵 큰 사건들이 세계를 뒤흔들었으나 말케의 시간은 자유롭게 수영하기 이전과 자유롭게 수영하게 된 이후로 나뉘었다.(36p)” ‘아무것도 아니었던 소년’이 ‘매우 특별한 말케(32p)’가 되어 모순된 의미를 지닌 갈채를 받기도 하다가 ‘위대한 말케’가 되기까지의 팽팽한 시간을 기록자인 필렌츠의 목소리로 듣게 된다. “실제 마주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는, 두려움이 깃들고 물기어린 눈(53p)”을 가진 말케의 적극적인 대응과 소리 없는 견딤은 마지막 장을 덮고 회상하는 이 시간 더 아프게 다가온다.

 

 

경외의 대상이었던 말케는 “부풀어오르는 소음의 한가운데서 경탄은 뒤집혔다. 우리는 그가 혐오스러웠고 그를 외면했다.(81p)” 더 이상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 학교 졸업생이자 해군 대위의 훈장 분실 사건과 말케의 대응, ‘전대 미문의 사건’이라며 내린 학교의 퇴학 조치, 어느날 다시 나타난 그는 조금 달라져 있다. 보지 못하는 동안에도 결코 잊히지 않았던 그에 대해 “무엇보다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잿빛이든, 검정이든, 얼룩무늬든 고양이만 보면 내 눈앞에는 쥐가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나는 계속 머뭇거리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작은 쥐를 보호해야 할지, 고양이들을 부추겨 사냥하도록 해야 할지.(134p)”라고 회상하며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말케를 쫒던 필렌츠는 선망과 질시 사이에서 감정의 극단을 오가다 말케의 소망이었던 자신이 다녔던 학교에서의 멋진 강연이 좌절되는 것을 지켜본다. 대신 한 사람의 관객 앞에서 들려주는 강연은 먹먹한 울림을 준다. “그러나 가장 큰 고요를 만들어낸 것은 너 요하임 말케였다. 내가 내는 소음에도 답할 줄 모르던.(180p)” 이어지는 ‘그러니까’, 하지만 ‘그러니까’가 백 번 이상 반복되어도 회복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시간적 배경이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39년부터 패전한 1945년 무렵까지라는 특수성을 배제한다면 소년들의 성장소설로도 읽힐 것이다. 내내 연상되는 작품이 존 놀스의 “분리된 평화”나 프레드 울만의 “동급생”이었듯이 소년들, 특히 주인공 말케와 서술자 필렌츠의 역학관계에 이끌렸다. 동시에 중반 부터는 본격적으로 예상하는 결말이 다가오겠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고, 다만 그 결말이 너무 참담하지 않기를 바랬다. 건조하고 사실적인 문장, 때론 시같고, 노래같은 반복이 인상깊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자 애도의 서로써 말케 뿐만 아니라 광기어린 시대와 후에는 웃어넘길 지언정 아슬아슬한 통과의례로써의 찬란함과 잔혹함이 공존하는 유년의 시기를 엿볼 수 있었다. 필렌츠는 말케의 심중을 예상해 “너는 생각했을 것이다. (중략) 어서 이 겨울이 지나갔으면. 나는 다시 잠수해서 물속에 머물고 싶다.(70p)”고 말한다. 물 속으로, 물 속으로 인간의 조건을 벗어난 공간만을 자신의 기지로 삼아야 했던 소년의 이야기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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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걱정러의 5만 생각과 픽토그램
미셀 리알 지음, 김지혜 옮김 / 아트앤아트피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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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리알의 『5만 생각과 픽토그램(아트n아트피플/김지혜 옮김)』 은 제목부터 신선하다. ‘오만가지’를 찾아보니 오픈사전에서는 -여러가지, "오만개의 가짓수만큼" 비유적 표현- 이라 하고, 국어사전은 -매우 종류가 많은 여러 가지. 또는 그런 것-으로 명명한다. 원제목이 궁금할 수 밖에 없는데 “AM I OVERTHINKING THIS?”로 표지에서는 OVERTHINKING만을 표기하고 있다. 이래저래 압사 직전까지 과하게 눌릴 걱정과 생각의 무게를 쉽게 연상할 수 있고 너무도 친근한 현상이라 그 처방이 무척 궁금하고 기대된다. 책을 처음 받았을 때의 느낌은 “이건 너무 예쁘잖아!”였다. 판형과 앞 뒤 표지의 흰 바탕과 겹치며 그려낸 색색의 벤다이어그램 속 낱말들이 ‘준비되었나요?’ 하며 시동을 거는 듯하다.

 

 

서문에서는 책의 사용법 및 정체성을 밝힌다. 앞서 속표지 이후 한 장을 할애한 분수 형식의 헌사나 “이 책은 도표 책이 아니다.”로 시작해서 “아, 그리고 이 책은 도표 책이다.”로 마치는 서문의 구조 또한 신선지수를 계속 상승시킨다. “5만 생각과 픽토그램”은 “일상 속 걱정, 오늘 뭐 먹지?, 이메일 제목 뭘로 하지?, 어른이 된다는 것, 인간관계, 이런저런 온갖 생각, 진지한 고민들”까지 일곱 가지 대주제를 중심으로 질문 형식의 항목들을 각각 한 페이지씩 할애한다. 픽토그램이 그림을 뜻하는 픽토(picto)와 전보를 뜻하는 텔레그램(telegram)의 합성어로 누가 봐도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문자라고 사전은 정리하고 있는데 “5만 생각과 픽토그램”이 바로 이 정의에 완벽히 부합한다.

 

 

“고데기 안 끄고 나왔나?”, “소파 뭘로 사지?”, “살까 말까?”, “버릴까 말까?”등의 기본 장착된 혼잣말을 지나가면 “어떻게 평정심을 유지할까?”, “아직도 모르겠는가?”와 같은 오래 멈춰있게 붙잡는 장면들을 만나게 된다.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나?”는 내게 너무 일상적인 질문이라 위로가 되었다. 나의 경우 이 질문의 확장으로 “혹시 지금 해야 되는데 안하고 있는 게 있을까?”, “다른걸 해야 되는데 이걸 하고 있는거면 어떻하지?”,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게 아닐까?”등이 수시로 등장하며, 뒤따르는 것은 심호흡과 두근두근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책을 펴고 종이와 펜을 찾지 않을까 싶다. 단순성은 기본이고 자유롭고 창의적인 표현이 놀랍다. 컬러테라피를 받듯이 아름다운 색을 즐길 수 있고 사물의 재치있는 활용은 그 자체로 일상을 재발견하는 기쁨을 준다. 충분한 여백 또한 의미있는 배려다. 이 책과는 더 많이 친해질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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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4
제인 오스틴 지음, 류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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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문학동네/류경희 옮김/1813)』 은 화사한 분위기의 영화이미지가 먼저 오버랩 되는 작품이었다. 달달한 로맨스에 무슨 유익이 있으리 하는 ‘편견’으로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채 펼친 “오만과 편견”은 장면 곳곳에서 무언가를 떠올리느라, 감정을 따라가느라, 예측하거나 기대하느라 읽다 멈추기를 반복하게 했다. “소설을 쓰는 셰익스피어”라는 찬사를 읽을수록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여섯 편의 소설로 문학사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된 제인 오스틴. 결혼 권장 또는 결혼 필수 시대를 평생 독신으로 살며 정착하지 못하고 불안정했을 그녀의 삶이 명민한 의식으로 갈등과 문제를 포착해 내어 자전적 경험을 승화시킨 일면이 “오만과 편견”의 사실성에 기반한 내적인 힘을 확고히 했을 것이다.

 

 

“큰 재산을 가진 미혼 남자라면 마땅히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9p)”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굳건한 ‘진리’가 바로 등장하는데 큰 재산을 가진 미혼 남자인 ‘그’는 “그들 딸들 중 누군가가 으레 취할 재산으로 여겨진다.(9p)”는 점이다. 꽤 자극적인 도입부가 가능한 것은 지금부터 200여년 전 18세기의 영국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다분히 목적지향적,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관계의 의도들, 결혼 집착은 시대적 배경을 이해할 때 설명된다. 사회적 계급을 뚜렷이 체감할 수 있었고 상류사회에서도 조건이 곧 명함이던 때 ‘한사상속’이라는 제도는 베넷 가를 더 긴장하게 만든다. 방어수단이라고는 없는 여성의 지위는 때론 감정 마저도 목적을 위한 도구로 왜곡시킨다.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면 수용의 폭은 넓어지고 뭉뚱그려 묵과하게 된다. 예를 들어 엘리자베스의 친구 샬럿 루커스처럼 ‘속셈’을 따로 두고 ‘너무하는 거 아닌가’에서 결국 ‘안쓰럽다’는 동정여론으로 선회하게 되는 것처럼.

 

 

강력한 방어기제 한 두 개 만으로 심플하게 평생을 밀어붙이는 엄마 베넷 부인, 돋보이는 유머와 여유를 이기적 무관심이라는 치명적 약점을 포장하는 도구로도 삼아 은근히 가족에게 상처주기도 하는 아버지 베넷 씨, 사람인가 천사인가 싶은 순백의 영혼 맏딸 제인, 찬탄의 순간을 규칙적으로 선사하는 우리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그 밖에도 개성 강한 동생들까지, 베넷 가 사람들을 중심으로 1년여간의 사랑과 오해, 갈등과 관계의 회복, 성장을 보여준다. 속내를 꺼내 지나치다 싶을 만큼 눈앞에 흔들어 댐으로, 계산의 수가 보이는데 늘 틀린 계산이기도 해 바보임이 확실하다 싶은 사촌 콜린스 씨를 비롯한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은 서사에 활력과 재미, 풍성한 색조를 덧입힌다.

 

 

다아시를 처음 만났을 때 엘리자베스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그는 오만하다고 확정하는데 ‘편견’의 시작이다. “종종 오만이 허영심과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사실은 아주 달라. 허영심 없이도 오만할 수 있어. 오만은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평가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심은 타인이 우리에 대해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바와 더 관련이 있거든.(31p)” 엘리자베스는 이후 다아시와 대화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첫인상에 근거해 주장을 펴나 다아시는 재기발랄하고 특별한 그녀를 스며들 듯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후에 “자신이 눈이 멀었고, 편파적이었고, 편견을 품었고, 어리석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268p)”고 스스로를 통찰하고 허영심, 편견과 무지에 자신 또한 사로잡혔음을 인정한다(268p).

 

 

결혼의 다양한 형태는 자연스레 등장한다. 엘리자베스에게는 상상할 수 없지만알다시피 나는 낭만적인 사람이 아니잖아(166p)’라며 세속적인 이점을 갈등없이 선택함으로 이루어지는 샬럿-콜린스 부부, 배우자에 대한 빠른 파악과 포기, 온당치 못한 태도를 견지했던 베넷씨와 아내, 특히 엘리자베스는 “이토록 안 맞는 결혼이 자식들에게 끼치는 불이익을 지금처럼 강하게 느낀 적이 없었고, 재능이 잘못된 방향으로 쓰이는 데 따른 해악을 이토록 온전히 느낀 적도 없었다.(302p)”라고 가슴 아파한다. 베넷 가의 막내 부부는 안타까움을 남기고 제인과 빙리,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까지는 앞으로의 상상의 몫까지 추가한다.

 

 

생기 넘치고 때론 실랄한 대화의 열기는 “오만과 편견”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다. “겸손한 척하는 것보다 더 기만적인 태도도 없습니다. (중략) 겸손이란 종종 그저 의견이 없다는 소리죠. 때로는 간접적인 자기 자랑에 불과하고요.(67p)” 개념을 자신의 말로 정리하는 문장들은 인물의 성격을 드러낸다. 유머 넘치는 문장들 또한 갈등의 긴장을 해소시킨다.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는 대화에서 때론 나쁜 의도가 담긴 인간 행동들과 심리를 비춰볼 수 있는데 어리석지만 억제하기도 쉽지 않은 지점을 확인케 한다. “저는 고집이 있어서 마음대로 겁주려는 사람들 앞에서 절대 겁먹지 않죠. 누가 겁을 주려 할 때마다 오히려 용기가 더 솟아요.(227p)”라는 엘리자베스의 말은 후에 캐서린 드 버그 귀부인과의 숲속 논쟁에서 충분히 증명된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후반 장면들, 특히 3부 16장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대사들을 연상시킨다. “엘리자베스 양을 향한 제 사랑과 소망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마디 말씀으로 이 일에 대해 저를 영원히 침묵하도록 하실 수 있습니다.(464p)” 마치 세레나데 같은 말들이 봄날의 아지랭이 같다.

 

 

엘리자베스가 특별한 이유는 제인 에어가 틀을 깬 새로운 전형인 이유와 같다. 시대에 반하는 드물고 경이로운 표본을 제시하기 때문이고 첫 시도의 성공은 확장된 가능성과 카타르시스를 선물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특히나 여성 독자에게 사랑을 받는 데에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뛰어넘어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캐릭터 중 하나로 손꼽을 수 있는 엘리자베스 베넷이라는 여성상이 제시되기 때문일 것이다.(496p)” 다크 초콜릿으로 버무려 슈가 파우더로 장식한 듯 절정에서 마무리 된 이야기를 덮으며 그들의 결혼 생활을, 나아가 함께 맞을 중년과 노년까지도 보고 싶어 자꾸 머릿속에 그려본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가 “비포 선셋”에서 “비포 미드나잇”까지 내심 ‘뭐 이렇게 까지나······이정도로 궁금치는 않은데요’ 할 때까지 놀래키며 나왔듯이, 또 내 시간도 동일하게 흐른 줄 모르고 빨리감기 한게 아닐까, 주인공들의 세월 흔적에 의아했음에도,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제인과 빙리의 이후 시간에 대한 불가능할 그림을 꿈꿔 본다.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을까, ‘오마주’라는 마법의 펜, 비장의 무기를 사용한다면? 화사한 분위기의 영화 “오만과 편견”은? 물론 볼 생각이다. 더 이상 편견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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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무는 무엇을 보았을까?
샤를로트 길랑 지음, 샘 어셔 그림, 김지연 옮김 / BARN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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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로트 길랑의 그 나무는 무엇을 보았을까?(BARN)는 그림작가 샘 어셔의 이름 때문에도 망설임 없이 선택할 작품이었습니다. STORM : 폭풍우 치는 날의 기적부터 또 다른 이야기를 기다리게 만드는 기적시리즈의 작가이자 제 2의 퀸틴 블레이크로 불리기에 다시금 로알드 달의 책들을 꺼내오게도 합니다. “그 나무는 무엇을 보았을까?”의 표지에는 커다란 나무 뿐 아니라 무언가를 응시하는 아이들도 보입니다.아이들의 시선이 닿는 곳, 나무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생각하며 책을 펼칩니다.

 

처음에 나는 작고 동그란 도토리였어요. 나뭇가지에서 툭, 하고 떨어져서 땅 속에 묻혔지요. 그러다가 나는 자라기 시작했어요. 무려 수백 년 동안 말이죠. 그렇게 나는 나무가 되었답니다. 그동안 나는 정말 많은 것들을 보았어요.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요?(책 속에서)” 도토리가 자라 수백 년을 지내면서 보고 느끼고 경험할 것들을 상상케 합니다. 책을 한 장씩 넘길때마다 같은 구도의 동일한 화면은 특별한 차이점과 변화를 부각시킵니다. 참나무의 성장 과정이 가장 눈에 띄지만 시간의 흐름은 계절의 변화와 배경의 전환, 참나무 주변의 사람들로 시선을 붙듭니다. 특히 아이들의 모습은 놀이 형태와 복장의 변화로 보여줍니다.

 

아름답고 직관적인 그림 만으로도 참나무가 본 것들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만 글이 더해지면 한층 세밀하게 감정까지 공감하게 됩니다. 자연의 대변자인 참나무는 묵묵히 지켜봅니다. 나무들이 베이지고 숲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마을이 생기는 것과 쟁기질로 파헤쳐지는 주변의 땅, 도끼를 휘두르며 잘라낸 나무로 배를 만들고, 공장과 도시의 확장으로 좁아드는 땅, 증기 기관차, 굴착기, 비행기까지 지켜보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독자의 마음도 안타깝네요. 그럼에도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었답니다.(책속에서)” 바로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에서, 생명을 이어갈 새 도토리에서 희망을 봅니다.

 

그 나무는 무엇을 보았을까?”를 읽으며 연상되는 작품은 버지니아 리 버튼의 1943년 칼데콧 상 수상작 작은 집 이야기입니다. 걸작 그림책의 반열에 올라있는 이 작품의 작은 집참나무로 대체하여 다시 한 번 독자를 일깨우고 울림을 주는 듯 했습니다. 책의 부록격으로 실린 한국사와 세계사의 굵직한 요약은 2020년 코로나 대유행까지 정리함으로 시간과 환경의 역습을 생각게 하고 1000년 후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 참나무의 한 살이도 시간과 생명에 대해 숙고하게 합니다. 밝고 경쾌한 톤으로 진지하게 질문하는 그림책 그 나무는 무엇을 보았을까?”는 책을 덮은 후에도 긴 여운을 남깁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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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65
샬럿 브론테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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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Jane Eyre(열린책들/이미선 옮김/1847)』 는 21세기의 현재까지 영화로, 연극으로, 낭독 뮤지컬로 독자 곁에서 여러 옷을 갈아입으며 함께하고 있다. 완역 번역본도 여러 선택지가 있지만 스핀 오프작으로 제인에어는 이제 그만, 버사 메이슨의 눈과 입으로 이야기하는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부터 제인 에어를 주요 모티브 삼아 확장하며 생각거리를 던지는 패러디 작품, 어른도 아이도 기뻐할만큼 사랑스럽게 각색되어 나온 근래의 일러스트 판형까지 그녀는 독자의 시선에서 빗겨 사라지지 않는다.

 

1847년은 샬럿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 자매가 각각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을 출간했다는 점에서 의미깊은 해 이기도 하다. 역자 해설의 다음 문장은 작품의 특징을 잘 설명한다. 인기를 누리며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제인 에어』는 연애 소설, 고딕 소설, 종교적인 주제를 다룬 소설로서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위선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 사회 비판서이자 주인공 제인 에어의정신적, 정서적 성장을 다룬 교양 소설 혹은 성장 소설로도 익힐 수 있다.(753p)” 더불어 정신분석학적인 텍스트, 버사 메이슨을 제인 에어의 거울 이미지로 해석해 볼 수 있는 페미니즘 소설, 인종적 편견을 보여주는 사회 문화적인 텍스트(754p)로도 접근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완역으로는 각각 다른 출판사의 판형으로 두 번째 읽는 “제인 에어”는 우선 ‘독서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을 직접 경험케 해주는 작품이다. 한 순간도 언제 다 읽나,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고 책 속으로, 제인 에어의 공간과 주변의 인물들과 심지어 꽃과 나무, 바람까지 촉감되는 가상공간으로의 초대를 내내 즐겼다. 제인 에어가 살아온 시간의 궤적을 일방향으로 쫓을 수 있는데 시기별 장소가 또 하나의 구조물로써 안정감을 준다. 게이츠헤드에서 로우드까지의 어린시절, 손필드에서 로체스터와의 만남, 윗크로스의 무어하우스에서 과거를 절연한 시간, 다시 손필드로, 그리고 완벽한 결말로 마무리된다.

 

“제인 에어”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때로 ‘독자여’하고 직접적으로 말을 건네기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제인 에어의 고난 앞에서는 응원하고, 부당함을 겪을 때면 함께 분노하고, 위험 앞에서는 숨죽이며 마음 졸이곤 했다. 부당함은 여러 모습으로 다가오는데 가장 압도적인 것은 ‘붉은 방’의 감금이다. ‘음산한 신성화의 느낌’을 간직한, 진한 붉은 다마스크 커튼과 붉은 양탄자, 탁자를 덮는 선홍색 천 덮개, 썰렁하고 조용하고 엄숙한, 외삼촌이 죽은 이후로 아무도 기거하지 않았던 방에 두려움에 떨며 홀로 갇혔던 어린시절의 기억은 결코 지워지기 어려운 트라우마다. “그런데 제인 에어, 너는 착한 아이니?(49p)”라는 질문과 “착한 아이가 되길 바란다.(67p)”는 판단하는 눈길도 그렇다. 자신의 의지 너머에 있던 버사 메이슨의 존재나 후에 세인트 존의 강압적 청혼도 결코 쉬운 장애물만은 아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제인 에어는 자신의 조건과 사회적 편견에 의기소침하지 않고 분별있는 목소리를 낸다. 자신을 존귀히 대하면서도 엄격하고, 스스로에게 물을 때에도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질서! 우는 소리 하지 말기! 감상에 빠지지 말기! 미련 갖지 말기! 나는 이성과 결단만 허용할 것이다.(262p)” 이성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성향, 동시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함은 가장 매력적인 그녀의 특징이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분명하고 세밀하게, 상대가 충분히 공감하게끔 풀어서 그려보이는 점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대화를 통해 제인 에어는 자신의 생각을 최대한 성실히 밝히는데 그들의 대화를 곁에서 듣는 즐거움, 말들을 왜 이렇게 잘하나 생각할 때 다시 한 번 작가의 필력에 감탄했다. 비유와 상징, 묘사와 인용, 반복적이고 리드미컬한 단어의 조화, 재치가 넘치고 유머가 웃게 만드는 순간들까지 가득하다. “단지 저보다 나이가 많다거나 세상 경험이 더 많다는 점 때문에 제게 명령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보다 더 뛰어나다는 주장은 당신이 어떻게 시간과 경험을 이용했느냐에 달려 있어요.(216p)”

 

한때 입장동화가 강조되었듯이 다른 등장 인물의 편에서 상황을 바라본다면 다른 생각들이 따라온다. “항상 그애 엄마가 싫었어.(374p)”로 시작되는 리드 외숙모의 마지막 말들은 결국 그 속에 함몰되어 자신 뿐 아니라 가족 모두를 잃어간 그녀의 부정적인 감정의 강도를 확인케 한다. “진실하고 너그러운 감정을 그리 대단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 두 성격은 그런 감정이 없기 때문에 한 사람은 참을 수 없이 혹독하고 다른 한 사람은 멸시받을 정도로 무미건조한 성격이 되었다. 판단력 없는 감정은 사실 물로 탄 약 같고 감정으로 순화되지 않은 판단력은 너무 쓰고 까칠까칠해서 도저히 삼킬 수 없는 조각 같다. (382p)”

 

“지배하고 정복할 권리와 살아서 봉기하여 마침내 군림할 권리, 그렇다, 그러니까 말할 권리를 주장했다.(408p)”, “저는 지금 관습이나 전통의 매개를 통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육체의 매개를 통해서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게 아니에요. 당신의 영혼에 말을 거는 것은 바로 제 영혼이에요.(410p)” 그러나 제인 에어는 그저 돌기둥인 윗크로스, 벌판, 히스 속을 헤매며 무모할 만큼 극한의 상황에 스스로 처한다. 처음 읽었던 때 적나라한 고통이 너무도 현실적이라 놀라왔으며 시간이 지나 또 다른 변곡점에 이를 순간 제인이 로체스터의 목소리를 듣는 장면은 제일 인상깊었다. 천성의 가장 세밀한 부분까지 잘 맞는(733p) 영혼의 단짝이 어려움을 이기고 결실을 맺는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된다. 결혼 후 10년이 된 시점에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며 정리한 제인 에어의 수기는 앞으로도 계속 현명하고 아름답운 길을 걸어가리라 넉넉히 짐작케 한다. 제인 에어의 많고 많은 말 중 하나를 새로운 모토로 삼는다. “할 일은 아무리 이른 시간에 시작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아.(523p)” 읽을 때마다 더 좋아지는 작품들이 있어 감사하다.

 

 

          책속에서>

 

- 무엇보다 가장 좋아했던 것은 절대 끝나지 않는 이야기에 마음의 귀를 여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끊임없이 서술되고, 내가 바라지만 내 실제 삶에는 없는 온갖 사건과 생명력, 열정, 감정으로 고무된 이야기였다.(176p)

-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해.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친구가 없으면 없을수록, 오점이 없으면 없을수록 나는 나 자신을 더욱더 사랑해. 나는 하느님이 주시고 인간이 인정한 법을 지킬 거야.(중략) 법과 원칙은 유혹이 없는 때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야. 그것들은 몸과 영혼이 그 준엄함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킨 지금과 같은 그런 때를 위해 존재하는 거야. 그것들은 준엄해. 그것들은 절대 더럽혀져서는 안 돼. 내가 개인적인 편의를 위해 법과 원칙을 어긴다면 그것들의 가치가 어떻게 되겠어? 그것들은 가치가 있어. 나는 항상 그렇게 믿어 왔어. (5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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