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재미있는 수학이라니 -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매혹적인 숫자 이야기
리여우화 지음, 김지혜 옮김, 강미경 감수 / 미디어숲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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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는 수학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간절함의 대상으로 두렵기만 한 존재였던 수학이다. 성인이 되고는 의무와 압박의 짐이 덜어지자 선택의 가능성이 생겼다. 그렇다고 취미로 정석을 푼다거나 신세계를 발견한 듯 어여뻐 보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때론 수학이 신비롭고 특별한 얼굴을 지녔고 아름다워 보일때도 있다는 짐작 정도로 마음이 열렸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토록 재미있는 수학이라니가 보여줄 재미에 호기심이 충만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수학이 놀다’, 즉 노는 것에 가까운 이유 세 가지를 제시하는데 그 중 마지막으로 수학을 공부하는 것은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돈이 들지 않습니다.(8)’라고 밝힌다. 사실이네 싶으면서도 단순경쾌한 순수함이 전해졌다. 또한 가장 최신의 연구결과를 반영하려 노력했다는 언급에서 성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레벨1부터 5까지 차근히 수학의 세계로 입성하게 되는데 흥미로운 소제목도 있고, 낯선 이름도 보인다. ‘싸우지 않고 케이크를 나눠 먹는 방법이라고 설명한 공평분배가 눈길을 끈다. 지금이라도 극복해보자 싶어 잠깐 동안 스토리텔링 수학 지도사 공부를 할 때 인상깊었던 주제라 반가왔다. 하지만 그때보다 훨씬 깊이있게 방법을 제시한다. 케이크 분배 과정에서 공평이라는 기준을 만족시키고 질투심리를 면해야 하는 조건부터 한 발 더 나아가고 있다. 분배 인원이 증가하면서 조건과 주의점이 늘어감을 알 수 있다. 기네스북에 오른 가장 큰 수라는 그레이엄 수는 또 한 번 상상력을 마구 발동시킨다. 위를 향하는 화살표로 지수의 층수를 표시한다는 크누스 윗 화살표 표기법이라니, 아니 왜 이런 엄청난 표기법을 고안해 냈나······나도 모르게 지적 한계를 고백한다. 게다가 마지막 500자리 수를 친절하게 공개하고 있다.


사실 책을 읽어나가는 일이 나에게는 이해 불가능의 영역에 맞닥뜨려 놀라워하는 연속 과정이었다. 여유가 생길 때마다 종이에 그림을 그려보다 전설적인 오각형 테셀레이션 모형을 발견했다는 50대 가정주부의 일화는, 그러므로 관심있다면 수학 연구를 지속하라는 격려에도 불구하고 우와감탄만 불러일으킨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즐기는 사람만이 성취할 수 있는 경지는 아름답고 탁월하리라는 사실이다. 레벨5알파고에 대응할 수 있는 세 가지 안이나 수학의 3대상필즈상, 울프상, 아벨상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으로 제대로 설명을 들은 듯 했다. 에필로그까지 어떻게 하면 좋은 추측을 생각할 수 있는지와 같은 재미있는 내용이 또 다른 시각과 배움을 가능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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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기차 지양어린이의 세계 명작 그림책 67
욘나 비옌세나 지음, 정경임 옮김 / 지양어린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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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은 무섭지만 꼬마 유령이나 보자기 유령은 으스스함보다는 귀여움과 호기심을 자극한다유령과 기차의 만남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욘나 비엔세나의 유령기차는 표지부터 잔뜩 기대감을 높힌다면지의 동굴 속 지하 철도는 구석구석 숨어보는 눈과 불빛소리가 들리는 듯한 유령의 고함치는 모습 등 독자의 시선을 끈다첫 페이지에서 토끼와 동물친구들의 지하철 사랑 모임은 여느때와 분위기가 다르고이는 지하철에 있다는 유령기차 때문이다소문은 근심어린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동물들은 모두들 그만 움츠러들고 만다.


그러나 늦었다고 화낼 엄마가 어둠보다 더 무서운 토끼는 정신없이 지하철에 오르고 유령들과의 예기치 못한 동행이 시작된다기차 안 유령의 모습은 하나같이 특색이 있어서 짚어가며 정체를 유추하는 재미가 있다토끼가 처음 만난 할머니의 눈이 갑자기 굴러떨어지는 모습은 팀 버튼의 유령 신부도 떠오르게 한다누워있거나 앉아 있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등 각기 다른 유령들을 남기고 탈출을 시도하지만 이것은 유령기차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기차 탈출은 토끼 뿐만이 아니라 시간의 굴레에 갇힌 유령 승객들에게도 중요한 과제이며 토끼는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자 가능성이 된다폭주하는 기차를 세워야 한다는 유령과 토끼 공동의 과제를 풀기 위해 두려움을 넘어서라는 필수 조건은 문제 안에서 길들여지고 붙들린 유령들에게는 도달하기 어려운 미션이다.


하지만 토끼는 현실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필요한 행동을 취한다그럼에도 위기가 다가오자 침착하게 기지를 발휘하고 결국 모두를 구해낸다아기자기한 예쁜 그림을 감상하며 뒷 이야기를 상상하는 즐거움도 크지만 고질적으로 반복되며 후회와 무기력을 불러일으키는 내가 가진 쏟아지는 커피잔은 무엇인지직시하지 않음으로 고착된 부정적인 패턴은 무엇인지변화와 문제해결그로인한 성장을 어떻게 가능케 할지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다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다양한 의미로 읽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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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원고 - 논픽션 대가 존 맥피, 글쓰기의 과정에 대하여
존 맥피 지음, 유나영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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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다는 마음도 물론 있었겠지만 그보다 꼭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존 맥피의 네 번째 원고를 펼쳤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총 다섯 권 분량의 고전 읽기와 겹치는 기간에 만났기에 집중해서 단번에 끝내지 못하고, 감동하다 닫아두다를 여러 번 반복하며 필 재독!’의 목록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네 번째 원고일까 궁금함을 안고, 앞과 뒤 면지의 애정 가득한 찬사에 분위기 고조되면서 창의적 논픽션의 선구자를 조금씩 알아간다. 1975년부터 프린스턴 대학에서 해오던 그의 글쓰기 강의 교실의 분위기를 때로 상상하면서.


알다시피 문학은 항상 하찮다고 여겨지는 대상 안에서 초월을 추구해왔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표현대로,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본다‘. 하지만 그러한 충동을 맥피만큼 멀리까지 밀고 나간 사람은 몇 안 된다.(10)’ 본격적인 글에 앞서 샘 앤더슨은 존 맥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맥피의 테마 보존에 대하여 그에게 배움이란 세계가 사라져버리기 전에 그것을 사랑하고 음미하는 방식이다. 존 맥피의 장대한 우주론에서는 지구상의 모든 사실이-그 모든 지역, 생물, 시대가-서로 맞닿아 있다. 그것의 없음과 있음이, 물고기, 트럭, 원자, , 위스키, , 암석, 라크로스, 선사시대의 기묘한 석화, 손주들, 그리고 판게아가.(30)”라고 설명하며 맥피에게 있어서 보존과 사라짐, 배움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가늠케한다.


글쓰기 과정을 주제로 한 여덟 편의 에세이는 독특하면서도 선명하고 생기가 넘친다. ‘구조편에서 작가는 모든 작문에 구조적 윤곽을 첨부하게끔 했다는 고교시절 선생님의 방식은 자료의 홍수안에 고군분투하던 자신에게 구원이 되었음을 고백하며 이후 으레히 구조에 집착했고 이처럼 가르쳤다 한다. 강하고 견실하고 교묘한 구조, 독자가 계속 책장을 넘기고 싶게끔 만드는 구조를 세워라. 논픽션의 설득력 있는 구조는 픽션의 스토리라인과 유사하게 독자를 끌어들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62)” 열정을 다해 일단 쓰고 보는 게 중요한게 아닐까, 짧은 글의 개요짜기 조차 선택의 문제려니 안이했던 나 자신이 기본에서 벗어남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나는 업셋 급류가 왼편에 오게끔 두 카드를 나란히 놓았다. 나머지 34장의 카드가 그 주변으로 서서히 모여들면서, 합판 전체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던 카드들이 마침내 정연하게 줄지어 놓였다. 이후 여러 달에 걸쳐 글을 쓰는 동안에도 이 배치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64)” 왜 이 문장이 이렇게 감동적이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그리고 뒤이어 등장하는 구조 이미지들을 너무나 중요한 금고의 비밀번호라도 숨기고 있는 듯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 본다. 한 편의 글은 어딘가에서 출발하여, 어딘가로 가서, 도달한 그 자리에 앉아야 한다. 어떻게 이 일을 할까? 반박의 여지가 없기를 바라는 구조를 세움으로써 이 일을 한다. 처음, 중간, .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첫 페이지.(82)”


글쓰기 명언집이라고 할 만한 날카로운 비법들이 우수수 쏟아지니 나의 광주리를 최대한 넓게 펴서 받아내야 한다. 그래, 그러면 도입부란 무엇인가?(104)“,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감없이 밝힌다. 약간 싸구려와 심한 싸구려 사이에 걸쳐 있는 블라인드 도입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1000개의 디테일이 모여 하나의 인상이 된다.(113)“, 흥미를 끄는 것은 포함시키고 흥미를 끌지 않는 것은 배제한다.(114)“ 편집자들과 발행인‘, ’인터뷰를 끌어내는 법에서는 여러 에피소드를 즐겁게 따라갈 수 있지만 관계, 신뢰, 완벽을 향한 정직한 수고, 글쓰기의 철학, 태도 등을 생각하게 된다. ’체크포인트의 팩트체커들에게는 경의를 표할 뿐이다.


작가가 좋아하는 작업으로 세 번째 퇴고까지 거친 다음, 네 번째 원고에서 단어와 어구에 친 네모를 대체할 다른 말을 찾는 과정을 꼽는다.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날이면 날마다 자기 집 안뜰을 걸어다니며 가장 적확한 단어 하나를 찾아 머릿속을 뒤졌다는 이야기(265)“를 하며 플로베르는 영웅과도 같았다고 덧붙인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글쓰기 책을 계속 이것 저것 찾아보고 읽어봐도 정작 나의 글쓰기는 나아지지 못하고 만다. 시지프스의 바위가 더 적절한 비유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존 맥피의 네 번째 원고는 구체적 현실에 기반한 엄격함과 너그러움이 공존하고, 격려와 응원의 진심이 전해지는, 몇 번이고 다시 읽겠다 다짐케 하는 책이다.


기본적으로 작가에게는 한 가지 기준만이 있을 뿐이다내 흥미를 끄는 건 넣고내 흥미를 끌지 않는 건 안 넣는다는 것비록 투박한 평가 방식이지만 이것이 여러부닝 가진 전부다시장 조사는 잊어라무슨 글을 쓸지에 대해 절대 시장 조사를 하지 마라가는 길에 도사린 온갖 중단재출발망설임기타 장애물을 뚫고 나갈 수 있을 만큼 흥미를 가진 주제에 대해 써라.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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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풀한 교과서 세계문학 토론 - 세계사를 배우며 읽는 세계고전문학! 특서 청소년 인문교양 9
남숙경.박다솜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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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세계문학, 세계고전문학, 때론 줄여서 세문....여러 이름으로 부르며 늘 읽고 있고, 읽기 시작한 이후 수 십년이 지났지만 날로 새롭게 다가오는 세계문학은 평생의 벗이 되었다. 한 작품을 출판사별로 소장하기도, 역자의 차별점이나 읽히는 글맛의 차이를 살피기도 하며 세계문학 읽기는 오늘도 계속된다. 그러다보니 초 중등 친구들과 하는 독서 수업에도 취향껏 세계문학을 다루곤 하는데 당연하겠지만 친구들은 아무래도 나만큼 열광하지 않는다. 심지어 과연 읽어올 것인가’, ‘읽어만 주어도 좋겠다는 생각에 노심초사하며 수업을 맞는데 시행착오 끝에 결국은 단편 쪽으로 방향을 선회해서 모파상이나 오 헨리 등으로 작품 읽는 시간을 수업 중에 할애하곤 한다. ‘완독’, ‘정독은 무엇을 하건 전제되어야 할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이 있었기에 작품 창작 시기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음으로써 고전을 보다 쉽게 읽도록 돕는 것이라는 저자의 집필 목적이 반갑게 다가왔다. 현재가 아닌 과거, 살아본 적 없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고 수용하고 나아가 현재의 나 자신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단계가 필요하다. 여기에 일정 부분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옳지만 그럴만한 여유를 내기가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다. 또한 배경지식을 쌓는다는 것이 과연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양과 질에 있어서 너무나 애매하다. ‘파워풀한 교과서 세계문학 토론은 그런 단계를 엄선된 세트 메뉴처럼 정성껏 펼쳐 보인다.


작품 선정이유를 통해서는 이 작품에서 무엇을 살필 수 있을지 주제를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작가의 삶을 짧게나마 들여다 보고 한 면으로 정리된 시대사 연표로 작품 출간 당시의 세계사와 동일 시점 한국사을 비교해 보게 된다. 본격적으로 작품 속 세계사 공부가 이어지는데 독자는 시공간을 거슬러 또 다른 면면을 만난다. 용어사전은 꽤 자세하게 핵심 키워드를 설명하고 있어서 찾아보아야 하지만 미심쩍게 넘어가고 마는 개념을 확실히 하도록 도와준다. 이해의 폭은 그만큼 넓어지게 된다.


쟁점과 토론에서는 인물관계도와 인물소개, 표로 정리한 쟁점 찾기와 마인드 맵, 토론 요약서와 입론서까지 한 작품을 충분히 깊게 해석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교과서 중심 세계문학 열 작품을 읽으면서 더 많은 작품들도 다루어 줬으면 하는 기대감도 생긴다. 이 책을 길라잡이 삼아 세계문학을 읽는 것이 비단 어느 시점, 어느 목적을 위한 읽기에서 더 나아가 벗이 되고, 동반자가 되는 세계문학 읽기, 질문하고 답하고 되묻는 자연스런 반복이 선순환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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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죄와 벌 1~2 - 전2권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문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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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굴곡들의 가파름이 조금이라도 덜했다면 그리고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도스토옙스키는 스스로에게 또 후대에 더 많은 것을 선사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더 아름다웠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특히 동시대를 살았던, 태생부터 귀족이었던 톨스토이와 비교할 때 삶과 그 연장으로서의 작품은 전혀 다른 색깔을 보인다. 죄와벌을 처음 읽었던 20대 때를 돌아볼 때 생계로서의 글을 쓰며 페이지를 늘리느라 묘사에 묘사를, 서술에 서술을 쌓아올리는 남루한 도스토옙스키를 상상하곤 했다. 그럼에도 상황설명과 과도한 분석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그의 문체가 옆에서 말을 거는것처럼 때론 다정하게 느껴졌다.


 

 

 

그 첫 번째 만남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노파살해사건, 마치 영화 한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듯 생생했던 장면인데 이 공포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닫힌 방문 너머 어디쯤에 혹시...하는 공상에 오랫동안 시달리게 했었다. 올 초, 두 번째 독서에서는 차라리 에필로그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유령같은 얼굴로 자백을 되풀이하는 라스콜리니코프로 이야기가 끝난다면 하고 가늠해봤다. 라스콜리니코프의 갑작스런 회심, 유형지에서조차 자신의 죄를 인정할 수 없었던 그가 한 순간 깨달음과 함께 새롭게 변하는 상황이 결국 소냐라는 빗물이 가 되었을 때 결국은 돌을 뚫는구나 이해하면서도 말이다.


 

 

 

세 번째 만남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끝내자 마자 읽었다는 배경 때문이었는지 은연중에 형제들과 비교하게 되었으며 단순하게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로 읽혔다. 가장 좋은 요약은 한 범죄에 대한 심리학적 보고서라는 작가가 칭했던 부제라 생각한다. 젊고 명민하며 빼어나게 잘생긴라스콜리니코프는 스스로를 벗어날 수 없는 감옥에 가둔다. 그 감옥은 질식할만큼 작고 더러운 방이라는 물질적, 육체적 옥죄임과 나폴레옹을 비롯한 선을 넘는 인물들과의 정신적 대결과 소통의 자발적 차단이라는 겹겹의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다. 균형을 잃은 의식은 반복되는 우연의 일치와 꿈을 의미심장하게 해석함으로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고자 행동하고 만다

 


 

 

 

행동 이후, 사건 직후부터 위에 말했던 심리학적 보고는 라스콜리니코프 뿐만 아니라 여러 인물의 입을 통해 작성된다. 처음부터 그는 ‘(중략)판단할 수 있었다면, (중략)가늠할 수 있었다면, (중략)이해할 수 있었다면, 분명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바로 자수하러 갔을 것이며, 그건 (중략)순전히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한 끔찍함과 혐오감 때문이었을 것이다.(1125)’고백하는데 이 내적 갈등은 작품의 막바지까지 고통스럽게 이어진다. 불행하게 죽음을 맞은 마르멜라도프의 집을 나올때처럼 잠깐씩은 구원의 빛을 보기도 했다. 어떤 새롭고 무한하며, 갑자기 밀어닥친 충만하고 강렬한 생명의 느낌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 느낌은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느닷없이 뜻밖의 사면을 받았을 때의 느낌에 비견할 만한 것이었다.(1290)”고 작가의 경험을 투영한다.


 

 

 

“(중략) 어쩌면 우리를 걱정하느라 몸을 망쳤는지도 몰라요. 너그럽게 대해야 하고, 많은 걸, 많은 걸 용서할 수 있어야 해요.(1372)” “걱정 마세요, 엄마, 마땅히 있어야 할 일이 있겠지요.(1372)” “엄마가 엄마라는 걸 기억해!(2240)”라며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여동생 두냐. 로쟈가 우리는 서로 다른 부류의 인간이라 말했고 자신의 이론과 동기와 결심의 과정, 생각이 병이된 과정을 처음으로 낱낱이 고백할 수 있었고, 그녀가 읽어주는 성경에 귀기울이고자 원했으며 결국 구원의 가능성이 되어준 소냐. 두 여성, 두냐와 소냐는 지혜와 사랑의 표본으로 다가왔다. 이들과 대조되는 반대측의 캐릭터들 중 스비드리가일로프에 대해서는 그렇다면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수수께끼야······(2274)“라는 문장에서 후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이반 형은 수수께끼야라던 문장을 떠올리게 된다.


 

 

 

도스토옙스키 작품들 속에서 캐릭터들간의 공통점이나 유사한 지점 또는 발전된 형태를 예측해보는 것은 흥미롭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스메르쟈코프처럼 스비드리가일로프 역시 비슷한 길을 걷는다. 62장의 자수를 권하던 포르피리 페트로비치와 라스콜리니코프의, 마지막에 모든 실현가능성에 대한 예비책까지(”만일에 대비해서 청이 하나 더 있습니다.“-3298) 언급하는 대화 장면도 인상깊었다. 심리전과 반전, 지적대결 또는 말 겨루기등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곳은 반쯤 미친 자들의 도시더군요. 우리에게 학문이란 게 있다면, 의사, 법률가, 철학자 들이 각자 전공을 살려 페테르부르크에 대해 아주 귀중한 연구를 할 수 있을걸요. 페테르부르크만큼 사람의 영혼에 음울하고 강렬하고 기괴한 영향을 미치는 곳도 드물 거요. 기후가 주는 영향 하나만 봐도 그렇지요! 무엇보다 이곳은 전 러시아의 행정 중심지니, 그 성격이 모든 것에 반영될 수밖에요. (2306)” 내가 오랫동안 동경하던 도시, 꼭 가보고 싶었던 페테르부르크를 문장으로 만난다.


 

 

 

역자가 쓴 해설을 읽는 기쁨이 정말 컸다. 도박과 빚, 간질과 사형집행 직전의 감형 등 기존에 알고 있던 도스토옙스키 생애의 특징들이 구체적으로 연결되면서 조금 더 그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송금을 구걸하는 편지를 쓰는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의 처음 몇 페이지를 쓰던 도스토옙스키를 상상해본다. 소냐와 알료샤에 버금가는 그리스도를 닮은 인간상이라는 백치의 미시킨 공작을 만나기 위해서도 그의 5대 걸작 중 나머지 세 작품을 빠른 시간 안에 다시 읽고 싶다. 죄는 무엇이고 벌은 무엇인지 라스콜리니코프와 함께 한 길고 고단한 여정을 마치며 역자 해설 말미의 죄와 벌 주석집도 읽을 수 있게 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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