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mazinga님의 서재 (mazinga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340125</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기록을 위하여https://blog.naver.com/4497699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03 Sep 2026 02:34:05 +0900</lastBuildDate><image><title>mazinga</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63340125409013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63340125</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mazinga</description></image><item><author>mazinga</author><category>서평</category><title>속이는 말과 살아있게 하는 말, 사라진 목소리를 대변하는 말 -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340125/17377479</link><pubDate>Mon, 06 Jul 2026 21: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340125/1737747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961&TPaperId=173774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60/44/coveroff/893204496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961&TPaperId=1737747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a><br/>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2월<br/></td></tr></table><br/>책은 “그러니까 나는 핌에 두 번밖에 가지 못할 것이었다.”(p.11)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논리와 이성, 현재 시점 최선책, 계획과 의지와 전망이 실현되지 못하고 어긋난 후에, 돌이킬 수 없는 시점에 회고하는 쓸쓸함과 아픔이 배어있다. 이 문장은 변화를 일으키고 다양하게 확대될 수도 있다. 그때가 마지막인 걸 알았다면, 그게 마지막일 줄 몰랐어, 평소와 다를 게 없었는데, 너무 갑작스러워 등의 읊조리는 문장들은 익숙하게 들어왔다. 말한 적도 있었다.  &nbsp;  『어느 서민 여성의 삶, 죽음, 노년』(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5, 366쪽 분량)에서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디디에 에리봉은 서민 여성이었던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성찰한다. 어머니와 가족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기록으로 출발하여 모두가 직면할 노화와 죽음이라는 공통의 인간 조건을 묻는다. 전작인『랭스로 되돌아가다』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귀향한 저자가 자신이 속했고 벗어났던 노동 계급과 성 정체성을 분석하였다면 이번 저작에서 어머니는 노년에 이른 취약한 인간 일반으로 확대된다. 즉 피할 수 없기에 누구나 맞닥뜨릴 현재 또는 미래 어느 시점을 구체화한다.  &nbsp;  어머니는 “내 집은 랭스야”라고 강조하지만, 방 하나가 예상보다 일찍 나온 덕분에 핌에 있는 에파드로, 즉 요양 병원 입소가 결정되었다. 연로하고 연약해지면서 집안에서도 넘어지거나 다치고, 연락도 끊기는 상황의 반복은 이성적인 선택만을 남겨두고 있다. 입소 이틀 후 어머니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사람들이 잘 돌봐줄 거라고, “두고 봐요. 괜찮을 거예요.”(p.53)라는 ‘상투어들’을 내뱉었다는 사실에 저자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회복하지 못하실 거라고 말할 수 없지 않느냐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중의 딜레마에 갇히는 갑갑함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nbsp;  어머니는 평생 불행했다고 저자는 인정한다. 그녀의 생애를 복기하고 그렇게 도달한 현재를 엘리아스, 흐라발, 솔제니친 등 다양한 작품과 견주는 과정이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사르트르가 보여주었던 상호성, 시선의 드라마, 대상화,-시선을 받는 것은 대상화되는 것이다. 우리는 절대로 거기서 빠져나가지 못한다.(p.82)- 즉,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경구와도 같은 말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는데, 독자를 서늘하게 사로잡는다. 요양원의 기존 거주자는 새 입소자에게 무엇이 기다리는지에 대한 이미지를 제시함으로 곧 다가올 미래의 힌트가 된다. 되는대로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어머니는 호소하고 격분하는 짧은 단계를 거쳐 슬라이딩 증후군으로 살아있음에서 미끄러진다. 저자는 어떻게 그녀 주위의 것들이 닫히고 막혀갔을지, 제도와 관리 방식이 어떻게 그녀를 학대하였는지 고프먼이 ‘총체적 기관’이라고 불렀던 의미를 어떻게 충족하는지, 그 부도덕성을 언급하고 밝히고자 한다.   &nbsp;  저자는 아들이긴 했지만 나쁜 아들이었고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자 더 이상 아들이 아님에, 가족으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탈주함으로 아들 역할 또한 축소하고자 의도했음에도 죄책감을 느낀다. 그는 최소한 사회학적이고 이론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확신한다. 그러면서 “어머니를 계속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그녀에 관해 말해야만 한다.”(p.183)고 쓴다. 사라져가는 어머니의 흔적을 아쉬워하며 복기하기 위한 여정은 공감을 부른다. 태어났던 그녀, 버림받았던 그녀, 일하고 결혼하고 불행하고, 또 일하고 열기와 분진과 소음 속에서 다시 일하다 요양원이 기다리는 삶이란. 저자는 그런 일생을 산 서민 여성인 어머니와 그녀의 아들인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한다. 기록한다.   &nbsp;  결말에서 저자는 노년, 취약함, 죽음 등에 관한 사회적 고찰을 심화한다. 신체적 자율성 상실과 ‘우리’라고 말할 가능성의 상실, 공적인 말에 가 닿을 경로의 상실에 대해 지적한다. 그들을 보이게 하고, 그들에게 목소리를 준다는 과제를 독자와 백세시대인 지금 우리에게 드러낸다.『어느 서민 여성의 삶, 죽음, 노년』은 자전적 글이 갖는 생생함이 감정을 내내 두드린다. 개인으로써 감당하고 있는 현실과 다양한 저서를 인용하여 실제와 연결하며 교차 서술하는 구성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독자 자신에게 대입하게 한다. 한 템포씩 멈추며 숙고하게 만든다. 사항마다 묻고 답하는 동안에 공감하는 지점은 늘어간다. 공감하기 때문에 위험하거나 불안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아무도 피해 갈 수 없는 쇠락과 죽음을, 그 끝에 도달할 공간과 시간을 가늠케 해주는 책이다. 그뿐 아니라 문장은 얼마나 아름답고 견고한지! 어떤 부분은 절절한 사모곡이다. “물론 G를 위하여”라는 헌사를 다시 읽는다. 본문에서 한 번도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던 어머니일까. 아마도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누군가가, 우리 각자의 G가 새롭게 그 자리를 채울 것 같다.   &nbsp;    &nbsp;  <br><br>  &nbsp;책 속에서&gt;<br>어머니를 계속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그녀에 관해 말해야만 한다.(p.183)  &nbsp;  <br>이젠 내가 지금과 같은 사람이 된 것이 ‘그녀였는데도’인 동시에 ‘그녀 덕분에’라는 점을 잘안다. 내 정신 속에서는 ‘그녀였는데도’ 가 ‘그녀 덕분에’를 오랫동안 능가해 왔다. 물론 오래전부터 내 이기심과 배은망덕이 부끄럽다. 이기심과 배은망덕이 어머니에게 가져다준 고통 때문에 고통스럽다. 하지만『내 어머니의 책』의 알베르 코엔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죄책감은 “조금 늦었다”라고.(p.255)  &nbsp;  <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60/44/cover150/893204496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604461</link></image></item><item><author>mazinga</author><category>서평</category><title>금 긋기, 경계 짓기, 선 넘기와 회복에 대하여 - [성역]</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340125/17358314</link><pubDate>Sat, 27 Jun 2026 16: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340125/173583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48X&TPaperId=173583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6/29/coveroff/893746148x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48X&TPaperId=173583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성역</a><br/>윌리엄 포크너 지음, 이진준 옮김 / 민음사 / 2007년 07월<br/></td></tr></table><br/>『성역』의 어두운 분위기는 긴장을 고조시킨다. 악 자체처럼 보이는 포파이, 문제를 일으키고 무책임하게 외면하는 인물 가우언, 폭력의 대상이자 자기 보호와 합리화를 위해 타협하는 여대생 템플 드레이크, 정의 실현을 목표로 행동하고 싸워나가지만 공고한 벽에 막혀 무력하게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변호사 호러스 벤보, 템플과는 다른 계층의 여성 루비 라마, 루비의 실질적 남편이자 토미 살해의 누명을 쓰고 투옥된 구드윈 등 책 속 인물들은 갈등 상황에 반복해서 빠져들고 헤어 나오기 위해 애쓴다.  &nbsp;  『성역』(이진준 옮김, 민음사, 2007, 440쪽 분량)은 1931년 출간 당시 작가 윌리엄 포크너에게 논란과 동시에 인기와 부를 안겨준 작품이다. 1920년대를 배경으로 산업화로 인한 비인간화와 가치관의 혼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피츠제럴드의 &lt;위대한 개츠비&gt;와 함께 거론되기도 한다. &lt;성역&gt; 출간 다음 해에는 &lt;팔월의 빛&gt;이 세상에 나오는데, 박계영의 논문에 따르면 단편 &lt;매마른 9월&gt;까지, 백인 여성의 강간과 강간범의 린칭 주제를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nbsp;  『성역』의 공간적 배경은 특히 소설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알콜 중독인 남자 친구 가우언이 자동차 사고를 내고 템플과 같이 밀주업자 구드윈의 저택에 머물게 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수풀로 둘러싸인 샘에서 과거 대농가였으나 폐허가 된 집으로 장소가 이동한다. 포크너 단편 &lt;스러지지 않으리&gt; 등에서 나왔던 프렌치맨스 밴드가 작가가 창조한 가상공간 요크나파토파 중에서 가난한 시골 농촌마을을 뜻한다면 &lt;성역&gt;의 올드프렌치맨 지역은 그 중에서도 몰락한 대농장과 폐허가 된 저택으로 영역을 한정한다. 폐허 저택에는 온전치 못한 사람들, 사회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이들이 금주법 시행 중 법망을 피해 은밀하게 밀주를 만들고 판매한다. 제퍼슨의 판사라는 고위층의 자녀 템플은 있어야 할 곳인 대학 또는 아버지의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아버지에게 이를 거예요!”(p.112)를 외칠 뿐이다.   &nbsp;포파이는 템플을 멤피스의 매음굴로 데려가고 그녀는 더욱 피폐해진다. 그녀는 저택에서도 멤피스에서도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템플의 탈출은 탈주 대신 되돌아오는 게 목표인 듯 거듭 회귀하는 코스를 반복한다. 포파이 대신 토미 살해 용의자로 몰린 구드윈은 진범 포파이에 대한 증언을 거부한다. 한마디라도 한다면 그걸로 끝장이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는데, 두려움에서 파생한 신념이 분명하다. 템플은 거짓 증언으로 원래 있던 자리를 찾아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그녀가 찾은 자리가 이미 의미라고는 상실한 공허가 아닐까 묻는다. 구드윈은 벤보의 신념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벤보의 여동생 나르시사는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고 이 일에서 손을 뗄 것을 그에게 계속 요구했다. 구설에 오르내리는 일을 피하고 거리를 두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도와줄 사람이 없는 루비 라마와 아기가 자기 부모님의 집이자 유년의 공간, 즉 ‘성역’에 머무는 것을 격렬히 반대한다.  &nbsp;  소설의 제목인 “성역(聖域/Sanctuary)”은 사전적으로 ‘신성한 지역’, 또는 ‘불가침 지역’을 뜻한다. 역자는 소설의 첫 문장인 “샘을 병풍처럼 둘러싼 수풀 뒤에서 포파이는 그 사람이 물을 마시는 것을 지켜보았다.”(p.7)의 ‘샘’이 ‘성역’을 상징하며, 그것이 침해되는 것은 성역시 되어왔던 ‘기존의 가치와 질서가 파괴되는 것’(p.427)을 암시한다고 쓴다.&nbsp;&nbsp;성역은 상대적인 의미를 지닐 수도 있겠다.&nbsp;&nbsp;템플이 들어가게 되었던 폐허 저택도 그들만의 성역일 수 있고,&nbsp;&nbsp;이때 템플은 루비가 강조했듯 침입자 위치에 놓인다.&nbsp;&nbsp;멤피스의 미스 레바의 집, 구드윈이 포파이를 피해 머물고자 했던 감옥,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법정이 성역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성역을 그 기능을 변조하고 비웃는다.&nbsp;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그런 인간은 재판도 하지 않아.”(p.388)라고 말했던 군중은 나름의 성역의 기준대로 사적 정의를 실현시킨다.   &nbsp;  소설은 마지막 장에 포파이의 탄생과 죽음을 배치한다. 지금까지의 혼란과 악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의 삶의 굴곡과 상흔이 어떤 방식으로 그를 이끌었는지 에필로그처럼 보탠다. 그럼으로 악은 태어나는 것인가 결핍과 트라우마로 획득되는 것인가 묻는다. 포파이의 반대편에 “사람이란 어떤 일을 할 때면 단지 그것이 옳기 때문에,&nbsp;&nbsp;그것을 하는 것이 사물의 조화에 필요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p.364)고 했던 벤보가 비록 지금은 실패하였지만 작은 희망처럼 존재한다.&nbsp;&nbsp;그는 &lt;팔월의 빛&gt;의 바이런 번치,&nbsp;&nbsp;단편 &lt;머리카락&gt;의 호크쇼 계열의 캐릭터로 미약할지라도 불의를 바로잡고자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다.&nbsp;&nbsp;물론 그에게 호의적인 조력자는 찾기 어렵다.   &nbsp;  소설은 3인칭 전지적 시점에 가까우나 포크너 소설이 으레 그렇듯 드러내고 전달하기보다 감추고 미완인 채로 둔다. 템플이 벤보에게 들려주는 사건의 전말은 대체할 수 없는 진실 같았다가 순진하고 비개인적인 허영심에 찬 경험의 재구성이라는 지적에 독자는 멈칫한다. 템플의 회상은 심지어 자아도취적인 면도 합세하여 현실과 환상을 뒤섞는다. 어쩌면 자기합리화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멤피스 미스 레바의 집에서 “그녀는 10시 30분을 생각했다”고 반복 서술하는 템플의 성찰은 인상 깊다. 동일한 시간대이지만 며칠 사이 그녀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nbsp;&nbsp;사건 이후 10시 30분은 더 이상 이전의 10시 30분이 아니다. 회복할 수 없는 상실로 완전하게 갈리는 카이로스의 순간이 되어버린다.&nbsp;&nbsp;시간과 소음의 비유나 다양한 수사는 사건의 진행 틈새에 멈추고 생각할 시간을 들인다.   &nbsp;  소설은 독자의 몫으로 여러 의문을 남겨둔다.&nbsp;&nbsp;책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삶을 추측하는 일도 독자의 몫이다.&nbsp;&nbsp;남부의 작가 포크너는 &lt;성역&gt;에서 1920년대 미국 남부 상류 사회의 부도덕과 속물근성을 비판한다.&nbsp;&nbsp;맹목적인 군중 심리, 익명의 목소리가 진실을 가리고 왜곡시키는 현장도 고발한다.&nbsp;&nbsp;진 스타인과 진행한 파리 리뷰 인터뷰에서 그의 소설이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는 작품이라는 평에 대하여 포크너는 답한다.&nbsp;&nbsp;폭력은 단지 목수의 연장 중 하나와 마찬가지이며, 목수가 한 가지 연장으로 집을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작가도 한 가지 연장으론 글을 지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 &lt;성역&gt;은 가독성은 좋으나 어둡고 불편한 작품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불편하지만 필요한 작품임은 물론이다.&nbsp;&nbsp;현대의 독자에게도 유효한 질문을 보내고 있는 &lt;성역&gt;의 일독을 권하는 이유다.&nbsp;  <br><br>책 속에서&gt;<br>“글쎄, 그들이 날 유죄로 만들 증거가 있다고 생각하든 말든 난 법정에서 승산이 있어요. 하지만 그자가 그 근처 어딘가에 있었다는 말을 내가 했다는 게 멤피스에 퍼졌다가는 내가 증언을 한 이후 이 감옥으로 다시 돌아올 가망이 있을 것 같아요?”“당신에겐 법, 정의, 문명이라는 게 있어요.”(p.174)   &nbsp;    &nbsp;  그는 언젠가 책에서 읽은 한 구절을 말하기 시작했다.“평화는 드물어라. 평화는 드물어라.”(p.396)   &nbsp;    &nbsp;    &nbsp;  <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6/29/cover150/893746148x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62905</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