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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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 최종철 옮김, 민음사, 2010, 162쪽), 1596』은 우정과 사랑, 복수와 자비를 노래하는 희비극으로 속도감 있는 전개와 극적 반전을 보여준다. 셰익스피어는 첫 작품 『헨리 6세』를 발표하며 명성을 얻기 시작한 이후 희극과 비극, 사극 등 여러 분야의 작품과 소네트를 집필했다. “그는 한 시대가 아니라, 모든 시대를 위해 존재했다!”는 찬사를 받았던 셰익스피어는 당대에 이미 최고의 작가로 자리한다. 그 시대의 모든 작품 목록 가운데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6분의 1에 지나지 않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거의 다 살아남았다.(셰익스피어,황광수,아르테) 그의 작품들은 쉬지 않고 영화와 연극으로 공연되며 새로운 해석과 시선을 보여주는 마르지 않는 보고(寶庫)다. 『베니스의 상인』은 셰익스피어가 극작가로서 명망을 얻기 시작하던 시기에 쓰인 극작품 가운데 하나로 배경은 르네상스 유럽의 가장 부유한 도시 베니스다.

바사니오는 아름다운 포셔를 마음에 두고 있지만 유명한 구혼자들과 경쟁해야 할 처지다. 사치하고 방탕했던 과거 행실은 청산해야 할 빚만 남겼고, 재력만 있다면 구혼에 성공할 텐데, 목전의 고민을 절친한 벗이자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에게 털어놓는다. 안토니오는 “내 지갑과 내 몸과 극한 수단까지도”(p.17) 필요하면 다 주겠다, “극단적인 무리를 해서라도”(p.19) 벨몬테의 포셔에게 갈 채비를 해주겠다며 함께 샤일록을 찾는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은 평소 안토니오가 자신에게 가했던 폭언과 모욕적 행위를 열거한 후 그럼에도 요청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단, 되갚는 계약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유쾌한 장난 삼아” 안토니오의 “고운 살 정량 일 파운드”(p.32)를 취하겠다는 조건을 단다. 평소 눈엣가시였던 안토니오에게 사적 복수의 기회를 갖게 되니 그로써는 내심 흡족하다.

포셔는 남편 선택을 위해 아버지의 유언대로 금, 은, 납, 세 가지 궤로 제비뽑기를 행한다. 구혼자들은 각각에 의미를 부여하며 신중히 고르나 결과에 실망하고 분노를 표하기도 한다. 포셔는 “잘못하고, 평가하는 두 일은 별개이며 그 본질은 서로 어긋난답니다.”(p.64)라는 말처럼 매번 유연하고 이성적으로 대응할 뿐 아니라 드러나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을 통찰한다. 바사니오는 겉과 속의 다름, 꾸밈이 내포하는 거짓된 진실을 깨닫고 이로써 결혼의 증표인 반지를 받는다. 하지만 안토니오의 배들은 사고를 당하고 빚을 갚지 못하게 된 그는 감옥에 갇힌다. 재판이 시작되고 증서대로 안토니오의 살덩이 일 파운드를 원한다는 샤일록과 법학 박사로 변장한 포셔의 법정 장면은 희곡의 절정을 이룬다.

안토니오의 헌신적 우정은 말로 확증하고 자기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사니오는 벗의 우정을 힘입어 사랑을 향해 나아간다. 지혜로운 여성의 전형인 포셔는 모든 것을 겸비했다. 아름다운 만능 해결사라고 할까. 진지를 구축하고 방어선을 치는 탁월한 전략가다. 하지만 무엇보다 훗날 <오셀로>의 이아고로 발전해가는, 셰익스피어의 빼어난 캐릭터 샤일록이 있다. 돈밖에 모르고 증오를 키운 채 복수에 여념 없는 악마적 이미지는 “육천 다카트의 한 개 한 개 다카트가 여섯으로 갈라져서 다카트로 다 변해도 그 돈을 안 받고 계약대로 할 거요!”(p.101)라는 선언에서도 두드러진다. 동시에 반유대주의라는 강압에 희생당하는 타자이자 외부인이라는 (법정에서 포셔는 이름이 아니라 ‘유대인’이라고 재차 호명한다.) 이중의 얼굴을 지닌다.

재기 넘치는 사랑의 테마와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인육계약, 그로인한 재판은 극을 이끄는 두 개의 동력이다. 어떤 형태로든 작품과 재회할 때 독자는 인물과 서사의 이면을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말 운문 형식으로 옮겨진 『베니스의 상인』은 읽을수록 감정이 이입되고 무대가 그려진다. 다양한 비유와 신화 인용, 위트와 유머도 풍성하다. <햄릿>, <리어 왕>과 비교했을 때 ‘무’의 함의나 ‘자비’, ‘정의’를 숙고하게 한다. 인물들이 던지는 상징적인 명대사들은 발화하는 씨앗처럼 움직이고 독자를 초청하고 개입시킨다. 눈으로 읽고, 목소리로 낭독하고, 고요히 묵상하고, 기록하게끔 하는 『베니스의 상인』을 다시 만나 봐도 좋겠다.

책 속에서>

바사니오_(전략) 그래서 꾸밈이란 극도로 위험한 바다의

속기 쉬운 해변이고 검은 미녀 가려 주는

아름다운 베일일 뿐이며, 한마디로

최고 현자 잡으려는 교활한 시대의

겉치레 진실이다. 그러므로 화려한 금이여,

미다스의 굳은 음식, 난 네게 뜻이 없고

인간들 사이의 창백한 천한 일꾼

네게도 뜻이 없다. 하나 너, 초라한 납이여,

무엇을 약속하기보다는 협박하는

창백한 네 모습은 웅변보다 더 감동적이다.

난 이걸 선택한다. 기쁜 결과 있기를!(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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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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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의 『크리스마스 타일(창비,2022,312쪽)』은 넋놓고 크리스마스잖아 싶은 표지가 이 성탄에 읽지 못한다면 당신은 확실하게 손해 보는 것이라 말하는듯하다. 얼추 맞다. 제목을 보고 가능한 이야기들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다. 읽을수록 마음을 밝히고 있는 유년의 성탄도 소환한다. 그러나 소설은 기억 속 트리의 오색 불빛처럼 마냥 알록달록하지만은 않다.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 중인 인물들은 자신이 주인공인 단편 속에서 크리스마스 곁을 서성인다. 더 이상 어드벤트 캘린더를 떼어내는 설렘은 없다. 하지만 주목받지 않아도 성탄은 여전히 소소한 마법을 일으키고 있는 게 아닐까. 


『크리스마스 타일』은 김금희의 첫 번째 연작소설이다. 『크리스마스에는』으로 시작된 이야기에 한편씩 보탤 때마다 작가는 “마음속 가장 깊은 그늘과 가장 환한 빛을 동시에 통과하는 기분이었다”(p.307)고 전한다. 2009년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신춘 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금희는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등의 소설집,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복자에게』를 비롯해 중편과 산문집 등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여 왔다. 『크리스마스 타일』에 담긴 이야기 일곱 편은 트리를 장식한 색색의 전구처럼 다르지만 조화롭게 읽힌다.


수술을 받고 난 은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계를 맺겠다고 마음먹는다. “참여자 없는 연극이자 듣는 이 없는 아리아, 만남이 불발된 채 혼자서 나누는 열렬한 악수 같은”(p.13) 다른 차원의 고독이 어울리는 삶을 선택하기로 한다. 복직한 은하는 예능국 전보자 오태만의 크리스마스 일화를 듣는다. 거듭된 낙방이라는 절망을 안고 간 아바나에서 탈진했을 때 자기에게 다가왔던 마차 한 대, 구조는 곧 구원과 맞먹는 효험을 일으켜 아나운서 시험에 결국 합격했으니 성탄 선물과 다름없다. 은하는 쿠바에서 만난 떠돌이 개와의 짧은 장면을 떠올릴 때 자신에게도 그에 못지않은 기적적 순간이었음을 회상한다. 안미진과 나이트 근무를 함께 끝낸 크리스마스 아침, 퇴근길의 한가을은 수치심일지도 열패감일지도 모를 “어떤 것들”(p.103)과 결별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새로이 시작할 수도. 


“옥주는 거기서 자신이 변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중략) 그런 변화는 셀 수 있는 게 아니니까.”(p.106) 여러 이별을 감당하며 중국으로 향했던 옥주에게 예후이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과일, 사과에 대하여 알려준다. 새로운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예후이의 고향에 동행했으나 흩어지듯 떠나가고, 흠집과 아쉬움만 남는다. 그럼에도 중랑천가를 걷는 사람들 일부로 섞여드는 옥주가 더 이상 걱정되지 않는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양감을 간직한 호수, 예후이와 보았던 호수를 마음 깊이 지니고 있을 것이기에. 때로 때때로 길어 올려 세포 틈틈이 윤기마저 넉넉히 채울 것이기에. 하바나 눈사람 클럽의 뒷이야기를 여전히 울퉁불퉁할지언정 양진희와 주찬성이 열어 재낄 미래는 결국 만났음으로 행복 꽃길 아니겠나 예측한다. 대학 동아리에서 알게된 지민과 현우는 우연히 일 때문에 재회한다. 시간은 흘렀지만 크리스마스 이브를 함께 맞았던 공간은 기억 속 그대로다. 두 번째 이별은 훨씬 온건하다. “복수도, 화해도, 용서도, 기적적인 능력에 대한 찬탄이나 입증,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던 부산행이지만 적어도 생일 축하는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니 홀리하긴 홀리했다고 여기면서.”(p.304)


소설은 찰떡처럼 쫀득하고 때론 설기처럼 푸실해 두 가지 다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곤란과 희망이 교차하는 이야기는 독자 자신의 엇비슷한 추억을 꺼내보게도 만든다. 취재와 자료수집 과정도 상상하면서 읽게 된다. 인물의 환경과 역사를 천천히 조립하며 퍼즐을 완성시켜가는 연작소설의 매력이 새롭다.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시기가 공통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잔뜩 힘을 준 채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그 앞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감당해가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조명을 비춘다. 크리스마스야, 그래서 어쩌라고, 만만치 않다, 삶! 해가며 마구 냉한 기분으로 이성을 갈고 닦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크리스마스잖아요, 크리스마스라고요 참견하며 일깨워주고 싶어진다. 


이만큼 살아왔다는 나이듦이 성장과 동의어는 아니다. 하지만 전진하는 시간이 성숙과 퇴보를 반 보씩 겹쳐가며 거시적으로는 좋아지고 나아지는 일에 가깝다고 낙관한다. 계절과 눈을 그려보이는 묘사가 아름답다. 툭툭 내뱉는 듯 무심해 보이는 문장이 소설을 읽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담백하게 기록된 감정을 읽고 있으면 독자에게도 말을 거는 듯하고 경쾌한 문체가 미련이나 아쉬움을 털고 걸음을 내딛게 만든다. 그렇다고 과도하게 매정하지 않다. 대상과 주체 모두에게 유일하고 소중했던 시간이었기에 이에 걸맞게 머물러 응시한다. 그렇게 떠나보내는 일은 조금 더 단단해진 나로 새로운 날을 여는 좋은 인사를 보여준다. 『크리스마스 타일』이라기보다는 퀼트,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아꼈던 헌 옷의 조각을 꿰매 붙인 조각 이불이 어울린다. 닳아 해지긴 해도 깨지지는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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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 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7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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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 왕(King Lear, 최종철 옮김, 민음사, 2005, 228쪽), 1605』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한편이자 <폭풍의 언덕>, <모비 딕>과 함께 영문학 3대 비극에도 포함된다. 셰익스피어 비극물 중에서도 ‘비극의 비극’이라 불리는 이유를 고통의 체험을 그리는 동시에 구원의 가능성은 차단하는데서 확인할 수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천재적인 언어 능력과 사회를 꿰뚫는 통찰을 보여준, 당대는 물론 모든 시대의 작가다. 버나드 쇼는 그를 “저항할 수 없는” “언어 음악”으로 인정한다.(p.355,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또한 “만 사람의 마음을 지녔다”라고 일컬어질 만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시함으로 셰익스피어 덕분에 인간의 다면성에 조금 더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는 셈이다. 작품은 투명하게 드러내는 거울로 등장인물들의 속내를 비추다 어느 순간 독자를 향해 방향을 바꾼다.

리어 왕이 “숨은 뜻”을 밝히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걱정을 훌훌 털고 가벼운 마음으로 여생을 보내기 원했던 노왕의 계획은 애초에 어긋나버린다. 리어는 사전에 발생 가능한 분쟁을 예방하고자 영토와 권력을 미리 나눈다. 이때 조건이자 기준으로 세 딸이 각자의 사랑을 스스로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 오직 말로써! 고너릴과 리간의 주장에 이어 리어의 “즐거움”인 코딜리아의 차례가 오나 그녀는 “없습니다, 전하.”(p.17)라고 답한 후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전 전하를 도리에 따라서 사랑하고 있을 뿐, 더도 덜도 아닙니다.”(p.18)라고 덧붙인다. 리어 왕은 이해하지도 수용하지도 못할 딸의 태도와 답변에 당황한다. 번복할 기회를 주고 진심을 재차 확인하고 그럼에도 돌이키지 않자 분노와 저주, 절연 선언으로 대면은 끝을 맺는다.

희곡의 두 번째 줄기는 글로스터 백작과 두 아들 에드먼드, 에드거의 서사다. 글로스터는 형 에드거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꾸며낸 에드먼드의 함정에 쉽게 빠진다. 성급히 분노하고 에드거와 의절하고 그를 내침으로 소통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진실을 보지 못했던 글로스터는 콘월에게 두 눈을 잃게 된다. 선과 악을 바로 보지 못한 대가는 그토록 그리웠던 에드거 곁에 함께였음에도 이를 알 수 없었고, 깨달았을 때의 기쁨은 이미 죽음을 담보했기에 다시 한 번 죄의 삵과 구원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본다.

상처받은 리어 왕은 스스로를 추스르며 권력을 승계한 두 딸에게로 향하나 그들이 공언했던 사랑은 빈말, 포장, 거짓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는 탐욕과 악만이 거침없이 흐른다. 이를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눈앞의 사실,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부정하고 싶다. 고통에 차서 묻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무엇을 잘못했을까, 그들은 또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보다 더한 아픔은 자신이 기대한 답을 거부했던 코딜리아에게 얼마나 잔인했던가 하는 회한이다. 편안한 두 번째 인생을 꿈꿨던 리어 왕은 폭풍우 치는 황야에 맨몸으로 내던져지기까지 정신과 육신의 고통을 겪고 탈진과 혼란에 이르면서 비로소 무소유 일색인 “불쌍하고 헐벗은 자들”(p.99)의 형편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여전히 결말에는 도달하지 않았다. 가장 감당키 어려운 일격까지 리어 왕을 기다리니 극의 최종 판결은 자비 없는 교훈, 비극의 쓸쓸한 울림만이 공허하다. 그럼에도 『리어 왕』은 독자를 놓지 않는다. 모든 것을 불구하고, 그럼에도 살았고 포기하지 않았고 고통에 맞섰고 한계에 이른 후 패했으니 오히려 고결한 승리의 모양을 띤다. 애통하는 자에게 허락된 복, 모든 언어가 소멸한 이후, 있고 없음의 차원을 넘어서는 절대 안식에 닿은 건 아닐까. 언어뿐 아니라 시간마저 초월한 지경까지 한계를 밀어붙이고 싶은 이유는 리어 왕의 예가 드물지 않을뿐더러 도처에 출몰하기 때문이다.

말의 실패, 소통의 부재, 돌이키지 못한 후회, 잠과 꿈과 지옥의 경계를 선명하게 가르지 못하는 시간들은 때때로 인간을 공격한다. 리어 왕의 노래 같은 문장, 시 같은 대사, 방백과 독백, 직언하고 비트는 말들, 지문과 표정이 인간의 아픈 시간을 견딜 만하게 해줄 것이다. 문학의 효용에 기댈 때 리어 왕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처음 만나는 듯한 삼회독에서 다시 한 번 느낀다. A. C. 브래들리는 “만일 우리가 한 작품만 빼고 그의 모든 희곡을 잃게 될 운명이라면” 하며 우리의 운명을 가정한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를 아끼는 사람들 대다수가 『리어 왕』을 간직하고자 할 것이라 예상하는데 이에 동의한다. 『리어 왕』은 권력의 정점에서 가장 낮은 자리까지, 패기 있는 젊음에서 백발과 주름만 남을 노년까지, 도모하고 오해하고 그 벌을 감당한 쓸쓸한 인생 모든 순간과, 단 한 번만 살아볼 수 있는 삶의 일회성, 그 찰나의 안타까움을 아우른다. 소모되는 인물이라고는 없이 모두의 목소리로 경고하고 달래는 『리어 왕』을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꿈의 목록에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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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 선집
찰스 디킨스 지음, 권민정 옮김 / 시공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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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 권민정 옮김,시공사,2020,676쪽) 1859』는 19세기 영국 최고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였던 찰스 디킨스의 후기 대표작이다. “두 도시 이야기”는 단행본 소설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작품으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함께 2억부 이상 나간 베스트셀러(박차영, 2022)이기도 하다. 찰스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는 하급관리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학교 대신 공장에서 일하게 되고 15세 부터는 사환, 속기사, 기자 등 일을 하면서 고전을 탐독한다. 스물네 살에 등단한 그는 《피크위크 클럽의 기록》(1837), 《올리버 트위스트》(1838)를 발표하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중편《크리스마스 캐럴》(1842)과 후기 작품들까지 약 20여 년의 작품 활동 동안 열다섯 편의 장편소설, 다섯 편의 중편소설, 수백 편의 단편소설을 남긴다.

천재 이야기꾼이자 활동가였던 찰스 디킨스는 톨스토이부터 조지 오웰, 마르크스 등 동료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학자이자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영어로 소설을 쓴 천재 작가에 대해 말하라면, 그 시작도 끝도 디킨스다”라 평한다. ‘카프카적’이라는 대체할 수 없는 단어가 사전에 등재되었듯이 유사한 예가 디킨스에게 보이니 ‘디킨스적’이라는 표현은 그가 작품 속에서 자주 사용했던 끔찍한 사회 환경이나 코믹하게 그려지는 인물을 묘사할 때 흔히 쓰인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지 150년이 지났지만 디킨스의 작품들은 현재성을 띠고 영화, 연극, 뮤지컬 등으로 상영 중, 공연 중, 읽히는 중이다. 『두 도시 이야기』는 디킨스가 1859년에 발행한 주간지 《올 더 이어 라운드(All the Year Round)》에 실었던 연재 소설로 모든 계층의 독자에게 사랑받았던 작품이자 ‘대중문화에 가장 영향을 끼친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의미심장하고 매력적인 첫 문장으로부터 작품의 배경이 되는 ‘그 시절’인 프랑스 혁명기 1789년 전후와 소설 출간시점인 1850년대 ‘현 시절’(p.13)을 가늠하게 된다. “친애하는1775년 무렵”(p.17)이다. 영국 텔슨 은행에서 일하는 자비스 로리는 20여년 전 자신이 수탁자 역할을 맡고 있던 고객인 의사 알렉상드르 마네트 박사를 구하기 위해 파리로 향한다. 로리는 18년간 바스티유 감옥에 억울하게 갇혀있던 마네트 박사와 딸 루시를 데리고 영국으로 돌아가는데 이 배에서 루시와 찰스 다네이가 만나게 된다. 찰스 다네이는 프랑스 귀족의 지위를 포기한 에브레몽드의 아들이고 에브레몽드는 마네트 박사에게 죽음보다 더한 18년의 악몽을 설계한 주범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일상을 송두리째 파괴한 인물이다. 박사는 그럼에도 조건을 걸어 루시와 찰스 다네이의 결혼을 승낙한다.

어수선한 시대에도 루시가 등장하는 장면이면 고요와 밝은 빛이 일렁인다. 사려 깊고 선한 루시의 사랑은 피폐해진 아버지, 위험의 한복판으로 밀려들어가는 남편에게는 물론 사자의 배경으로 자칼을 담당하고 있는, 무력한 체념만인 일상인 시드니 카턴에게까지 미친다. 카턴은 비록 사적 사랑의 성취에는 실패하나 이와 비교하기 어려운 숭고한 결단과 행동으로 주변 인물에서 벗어나 작품 전체의 주제를 견인한다. 루시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 불길하고 미스테리한 인상을 전하던 드파르주 부인이다. 그녀는 단호하게 응시하고, 결코 잊지 않겠다 기록하고, 피를 묻히는 일에 거리낌이라곤 없이 폭력과 죽음을 잇댄다. 드파르주 부인은 혁명과 복수의 아이콘으로 뜨개질이 멈출 때 까지, 숨이 멎을 때 까지 무자비한 질주를 막을 길이 없다. 그녀는 왜 그토록 가혹해야 했을까, 그럴 수 있었을까. 마네트 박사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켰던 에브레몽드 가문의 악행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드파르주 부인의 정체가 드러나고 악은 복수를 부른다. 이를 갈며 견딘 시간은 공감이 연대를 낳게 하고 어느 순간 눈덩이처럼 커진 군중의 분노를 폭발시킨다. 그들은 이미 못할게 없다.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두 도시, 영국의 런던과 프랑스의 파리를 대비시킨다. 극적인 대비는 소설의 주요 장치로 무능하고 이기적인 귀족과 학대당하는 민중을, 부와 가난, 악과 선을 교차 배열해 부각시킴으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일개 부품처럼 망가지고 죽어가는 사람들은 대의나 군중심리, 일종의 광기 앞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두 개의 악이 겨루는 형국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만연체 문장은 긴 호흡으로 이어지지만 묘사와 대화, 서술이 균형을 이루어 지루할 틈 없이 몰입하게 된다. 극적인 전개와 캐릭터들의 생생한 육성은 시간을 거슬러 그 공간, 바로 그 순간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질척이는 발밑의 땅과 굶주림의 고통과 추위, 도처의 혈흔까지 감각되는 듯하다. 여성성으로 때로 의인화되는 기요틴이나 멈추지 않는 뜨개질의 상징성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작가는 폭력의 시대,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긴 호흡임에도 빠른 템포로 끌고 나간다. 참담함 앞에 잠시 멈춰 설만한 여유는 없다. 때론 노래처럼 곡조가 연상되는 문장으로 때론 리드미컬한 시처럼 라임이 맞춰지고, 후렴이 있고, 구조가 세워지는 디킨스표 문장 읽기는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부서진 포도주 통에서 흘러가는 포도주. 이로 인해 일어나는 다양한 반응, 이로써 민중의 일상, 기호나 삶의 편린을 포착하고 어느 사이 포도주는 중의적 의미로 변화한다. 결핍과 굶주림으로 조금씩 확대되고 복선을 깔기도 한다. 동어 반복의 미학, 구조 중첩의 효과를 발견할 때 하나의 단어는 고정된 의미라는 한계마저 넓힌다. 기록해내겠다는 작가의 의지를 본다. 역설과 풍자로 옷입고 핵심을 되풀이 두드린다.

그 시대의 독자에게 눈맞춤하며 써낸 작품, 작가가 들려주고 싶었던 진심은 아마도 마지막 문장에 녹였을 것이다. 심정을 가늠하는 유언 격으로 “나는 본다,”(p.655)로 시작하는 글.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은 지금껏 내가 했던 그 어떤 일보다도 훨씬, 훨씬 근사하다. 내가 취하러 가는 안식은 지금껏 내가 알았던 그 어떤 안식보다도 훨씬, 훨씬 근사하다.”(p.657)로 마침하는 순간은 "슬프게, 슬프게,"(p.160) 떠오르는 태양을 맞던 과거의 카턴을 생각할 때 깊은 감동을 안긴다. 삶과 죽음,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죽을 것인가, 사소한 것부터 판단보류인 채 얼어붙게 만드는 온갖 가슴 절이는 선택의 갈림길을 바라보게 한다. 백 여년 전 고전은 미래를 선취함으로 희생이 회생하고 부활케 하는 봄을 동시대 독자를 넘어 새로운 세기의 독자에게도 선사한다. 『두 도시 이야기』는 찰스 디킨스의 세계로 부르는 매력 넘치는 초대장임이 분명하다.

책 속에서>

최고의 시절이었고, 최악의 시절이었고,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고,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고,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고,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고,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아무것도 없었고, 우리는 모두 천국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고 있었고, 우리는 모두 천국을 등진 채 반대로 나아가고 있었다.(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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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 세상을 다스린 신들의 사생활
토마스 불핀치 지음, 손길영 옮김 / 스타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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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손길영 옮김/스타북스)2022,1855,504쪽』는 고전의 반열에 서 있는 한 편 동시대적 이슈에 의해 지속적으로 소환되며 여전히 화재의 중심을 차지한다. 그리스어 미토스(mythos)에서 유래된 신화(myth)는 ‘전해들은 말 또는 이야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리스 신화란 “고대 그리스 민족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호메로스에 의해 신화가 처음으로 문학으로서의 출발점에 서게 된 이후”(p.10/눈으로 보는 그리스 신화, 인서트, 모리 이요코 외) 신화는 서구 정신사에 중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이 책의 저자 토마스 불핀치는 신화를 학문으로서가 아닌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수용할 수 있도록 쉽게 서술했다. 토마스 불핀치 (Thomas Bulfinch,1796~1867)는 미국의 문학가, 역사학자, 신화학자로 대학의 고전학과에서 여러 고전작품을 배운 후 교사와 사업가를 거쳐 은행에 취직해 평생의 직으로 삼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읽고 쓰는 일에 바친다. 1855년에 완성한 『신화의 시대(The Age of Fable)』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책이자 그리스 로마 신화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된다.(해외저자사전, 2014. 5.)

책은 총 34장으로 장별 제목 아래 소제목을 두어 신, 요정, 괴물과 인간의 주요 에피소드를 다룬다. “그리스 신과 로마의 신”을 시작으로 후반으로 가면 일리아스와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간략하게나마 엿볼 수 있다. 5장과 6장은 “소원을 말해봐”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파에톤과 미다스, 바쿠키스와 필레몬까지 그들이 원하는 소원은 어리석음과 욕망, 애틋함을 보여준다. 파에톤 편에서 태양신의 궁전의 아름다움을 글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신화 읽기의 보너스 트랙과도 같다. 여러 지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바우키스와 필레몬 편에서는 노인 내외가 나그네로 변신한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위해 차리는 식탁이 흡사 “사자와 마녀와 옷장”의 비버 부부가 차려내는 식탁을 연상시킨다. 힙노스가 있는 잠의 집 정경 또한 인상 깊다. 묘사하는 글이 지루할 틈이 없고 상상은 시각적으로 풍성하게 재현된다. 아비코스 편에서 그려지는 고대의 노천극장도 눈여겨보게 된다. 신전 경내 원형 극장에서 이뤄지는 공연 장면(p.343)은 무척 생생하고 아바타를 상영하는 현대의 극장 체험과 맞먹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히아킨토스의 죽음에 슬퍼하는 아폴론의 한탄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모든 이들의 노래 같고 모르고 짓는 죄를 향한 벌, 가혹한 단죄가 여러 형태로 반복되는데(p.121), 이는 신화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한낱 도구적 존재 인간의 무력함을 본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세상을 다스린 신들의 사생활’이라는 부재가 말하듯 인간사에 끊임없이 개입했던 그리스 신들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그들은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치를 장착한 채 차원을 달리하는 순간을 영위한다. 신들이 보이는 행동의 근간 또는 이유 없음, 우연 등의 선행조건과 그로 인한 파장과 결과들이 이어진다. 그들의 의도에 부합해 받아들일만했던 사건과 의도치 못했으나 기준과 법칙을 깨뜨릴 수 없기에 역부족으로 넘겨야 했던 일들, 의도치 않았고 결과도 탐탁지 않아 신들 스스로 감정이 격동한 채 휘둘리고 질주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27장부터 본격적인 호메로스 읽기의 서론 격으로 등장하는데 이어서 두 편의 서사시<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완독해야 어쩌면 그리스 신화를 얼추 읽었다고 할 수 있겠다. 책은 명화에서 가져온 흑백 삽화도 곁들여 독자 스스로 관련 자료를 더 찾아가며 읽고 싶도록 한다. 신화의 흔적으로부터 자유로운 예술을 찾아보기도 어려울뿐더러 일상에 깊이 스며있기에 『그리스 로마 신화』는 정독의 필요가 있다. ‘토머스 불핀치 오리지널 완역본’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단, 아쉬운 점으로 매끄럽지 않은 번역과 교정이 미흡했는지 너무도 잦은 오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오타가 번역에 영향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괴롭고 언짢았던 중대한 독서 방해요소였다. 게다가 이제는 마지막 페이지부터 서서히 낙장이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완역한 다른 판본을 재구입할 예정이다. ‘고대인으로부터 구전되고 현대에 끊임없이 인용되고 있는’ 신들을 만나는 중, 몽테뉴의 한 문장이 허를 찌른다. “인간이란 참으로 지각이 없다. 진드기 하나 만들지 못하는 주제에 신을 한 다스나 만들어 놓는다.”(에세2, p.331,민음사) 정말이지 한 다스다. 길어내도 마르지 않는 샘은 여전히 흐르며 묻는다. 거울이 되어 이십일 세기의 독자를 비춘다.

책 속에서>

그래서 어느 날 그녀는 상자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곧, 불운한 인간을 괴롭히는 무수한 재액이 그 속으로부터 빠져 나왔다.(중략) 그리고 멀리 사방 팔방으로 날아갔다. 판도라는 놀라 재빨리 뚜껑을 덮으려 하였으나 이미 상자 속에 들어 있던 것들은 다 날아가고, 오직 하나만이 맨 밑에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희망’이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어떤 재난에 처해서도 희망을 전적으로 잃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한 어떠한 재난도 우리가 절망할 정도로 불행하게 만들지는 못하는 것이다.(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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