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의 말대로 철로에 버려졌다는 단정은 스스로를 가엾게여기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자기 연민은 생이라는 표면에 군데군데 나 있는 깊고 어두운 굴 같은 것이어서 발을 헛디뎌 그곳에 빠질 수는 있어도 그 누구도, 영원히, 그 굴 안에서만 머물지 못한다. 고립이 필연적인 자기 연민에 침잠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으나 그 마음의 상태를 사랑한 적은 없었다,
단 한 번도.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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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노년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관성이 되어 버린 외로움과 세상을향한 차가운 분노, 그런 것을 꾸부정하게 굽은 몸과 탁한 빛의얼굴에 고스란히 담고 있는 모습.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타인을 보며 세상으로부터 버려지는 나의 미래를 연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복희는 노파의 이름일까. 아마. 외롭고 뚱뚱한 노파가 거주하는, 간판에 기록된 이름, 나는 운동화 끝으로 바닥을 툭툭 치며 그렇게 속으로 되뇌었다.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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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집이니까요.
서영의 두 번째 이메일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랄지 존재감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생각해요. 여기는 뭐든지 너무 빨리 잊고, 저는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라고 믿습니다.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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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작은 생명체는 자연스럽게 우주라고 이름 붙여졌다. 이 순간을 기억해야지, 나는 생각했다. 바람의 방향, 나뭇잎의 색깔, 금세 헝클어질 구름의 모양까지, 그래서 우주에게도 언어가 생기면 이 순간에 대해 긴 이야기를 해 주리라. 이제부터 나는 우주의 모든순간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우주와 세계를 이어 주는매개이자 그 존재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게 될 전령이며, 동시에 우주가 자라나는 과정을 증언해야 하는 증인이니까. 나는 그 역할들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단 한순간도 우주에게 암흑 따위를 상상하게 하지 않을 터였다. 그날 산책로의 나무 아래서 오직 그것만이 내 삶의 확실성이 되었다.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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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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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새로움이란 시간이 흘러도 늙지않는 거야. 푸른 도자기 찻잔, 덧없는 열정 한가운데 개화하는 순수한 아름다움,바로 이것이 우리 모두가 열망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이것이 바로우리네 서구 문명이 다다를 수 없는 영역이 아닐까?
인생의 변화 그 속에서 영원을 성찰하는 것. p.137
"전쟁 시나 평화 시나 사람들은 나를 끊이없이 비난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때가 있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모든것은 제때에 온다....."이 말을 원문으로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p.143
글의 행들은 그 자체가 각각의 행의 조물주가 될때
내의지를 벗어난다. 그리고 나도 모드게 종이 위에 문장이 기록되어탄생하는 기적적인 순간을 목격할 때, 나는 내가 알지도 못했고원한다고 생각지도 않은 것을 배우며 이 고통 없는 출산을 즐긴다.또한 진정 놀라운 행복감에 휩싸여 전혀 계산되지 않은이 명증성을 즐긴다. 나는 아무런 노력이나 예측을 할필요도 없이 나를 안내하고 데려가는 펜을 따라가기만하면 된다. 그 결과 나는 충만한 명증성과 나 자신을이루는 피륙 속에서 법열 상태에 가까운 자기 망각에이른다. 그것은 내게 방관자적 의식의 행복한 고요함을 맛보게해준다. p.172
미래. 그것은 산 자들이 진정한 계획을 가지고 현재를 구축하는 데 쓰인다. PI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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