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의 정치학 -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절대숫자
로렌조 피오라몬티 지음, 김현우 옮김 / 후마니타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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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탈리아 로마 출신의 정치경제학자인 로렌조 피오라몬티는 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프리토리아 대학에서 정치학 교수로 일하고 있고,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헤르티 커버넌스 스쿨의 연구원이면서 동시에 뉴욕 타임즈 및 가디언 지 등에 칼럼을 기고 하고 있는 정치경제학 계통의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특히 그는 아프리카 현지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관계로 현지의 지역 경제에 관심이 많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의 연구 분야 중 하나인 전반적인 GDP 경제학이 세계의 다른 빈곤 국가들에게 어떻게 별다른 소용이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학자적 호기심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연유로 이 책의 중요한 주제장인 3장, ‘GDP 퇴위를 위한 지구적 모색’에서 GDP와 아프리카 및 남아메리카 국가들의 GDP 사조에 따른 부작용 사례들과 상대적으로 빈곤국인 부탄과 코스타리카 국민들의 행복 지수 등을 제시하며 실질적으로 이 GDP가 시민의 안녕과 삶의 질을 설명해주는 지표가 될 수 없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지난 2013년에 “Gross Domestic Problem”이라는 원제로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6년 1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다만, 현재 피오라몬티의 이 책은 절판된 상태인데요. 책의 재간행을 앞두고 있는건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그의 다른 번역본은 아직 판매되는 것으로 보아 꽤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저자인 피오라몬티가 본문에 언급한 중요한 문장을 먼저 밝혀두고 싶습니다.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시장 메커니즘은 상황에 따른 가격 조정을 통해 희소한 자원을 대체하도록 인도하고 발명가와 기업가들이 다양한 기술적 해법들을 개발하도록 촉진함으로써, 결국 붕괴를 예방하게 할 것이라고 보았다”는 일종의 평가는 꽤 명백한 결론을 갖고 있습니다. 일찍이 멜서스가 낙태와 과감한 인구 계획 및 전쟁 상황을 경제상황에서 이용하자고 주장했던 것과 같이 효율성과 효용 및 경제 시스템하에서의 인간과 사회를 사실상 부속으로 취급한 것은 일련의 경제학 발전과정에서 매우 무분별하게 인용되어 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겁니다. 애덤 스미스도 자신의 그 유명한 논저가 모든 상황과 환경에서 무조건적인 합리성을 보장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이미 인지하고 있었을 겁니다. 특히 2008년에 일어났던 뉴욕 발 세계 금융 위기가 당시에 고도화된 금융 시장을 선도했던 경제 엘리트들이 과연 합리적이었는지는 모든 경제학자들이 스스로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자 역시 GDP의 도덕적인 측면이 전무하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 강조하고 있고, 성장 일변도의 경제적 논법이 겉으로 보이는 규모의 경제는 키웠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일면에는 수많은 문제점을 근대 이전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키워 왔다는 것은 모두가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짧은 분량의 서론과 1장에서는 어쩌면 냉전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 GDP가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간략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시 계획의 일환으로 효율적인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마련한 쿠즈네츠의 이 경제 도표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행정부가 대공황을 벗어나는데 기여를 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그전까지는 전년이나 10년전의 통합적인 경제적 지표가 불분명해 당시 기준으로 내각에서 어떠한 정책을 수립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도 인정될 만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쿠즈네프의 역할은 지대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가 1941년에 “국민소득의 계측은 항상 암묵적인 또는 명시적인 가치판단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과정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고 인정했습니다. 이 부분이 그가 갖고 있던 GDP에 대한 부정이라고 볼 필요는 없으나, 한가지 명확해 보이는 것은 2차대전 이후 권력층과 엘리트들에 의해 자신들이 주도한 경제 정책의 당위성을 보장해주는 지표로 이 GDP를 이용해 왔으며, 소위 양적인 측면의 외형적 성장이 그 내실이 어떠하던 간에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데 이용해 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마르티아 센과 더불어 GDP에 비판적인 세르주 라투슈 역시 “이 GDP에 대한 믿음”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저자인 피오라몬티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경제가 2퍼센트 또는 3퍼센트 성장할 때 마다, 우리의 삶의 질 역시 같은 정도로 향상되는가?”라고 말이죠. 여기서 GDP 수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권력의 지배의 도구로 널리 쓰였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정부가 민주주의적 가치를 잘 떠받든다 하더라도 경제에 있어서는 경제 자체와 정치간에는 범접할 수 없는 경계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행은 근대의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이것이 시민의 삶 깊숙이 들어오자 마자 시장을 마땅히 견제해야 하는 정치의 역할이 축소되고 말았습니다. 이를테면 경제적 합리주의에 입각해 이윤을 얻는 활동 모두는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과 같은 유일주의 말이죠. 물론 자유 경제 시스템하에서 기업과 개인이 경제 활동을 하면서 이윤을 얻는 것은 중요합니다. 다만, 수많은 개인들의 체제를 뒤흔들지 않는 이윤 추구는 마땅히 지켜볼 만하나,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과 거의 반독적점 지위를 악용하는 기업들의 매우 쥐어짜내는 이윤 추구와 영리활동 그리고 반면에 사회적 책무를 별로 달가워 하지 않는 이러한 자본과 경제의 고삐풀린 이행은 아마도 현재의 많은 문제를 촉발시킨 것으로 여겨집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게임을 지배하는 것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라는 것”은 이래서 중요한 것이며, “재화와 서비스에 지불되는 가격들이 경쟁 시장이라는 틀 속에서 반드시 결정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도 앞선 서술한 측면에 들어맞는 이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GDP로 해석되는 경제 담론에서 “사람의 마모에 대한 경제적 적용”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과 “한 사람의 노동가치를 과연 경제적으로 측정할 수 있겠는가”와 “GDP에서는 소위 ‘역량의 고갈’이라는 지표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GDP를 설명하는 수많은 기업들의 잘못된 관행등과 로비 움직임과 같은 것들을 여기에서 더 서술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현재 지속적으로 시민의 삶을 측정할 수 있는 세계 공통적인 지표를 특히,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만 다음 단계로의 이행이 가능하다고 여겨집니다. 이 책에서는 총수입계정체계 TISA와 물질적 삶의 질 지수 PQLI 및 국제적인 인간 고통지수 HSI 등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스티글리츠와 아마르티아 센의 공동 작업 등도 꽤 개선된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겠고요. 여기에서 문제는 이러한 연구 작업과 개선 움직임이 어떤 소수의 단체나 초도 단계에서 시도되는 것보다 현재 세계 주류 경제학에 있는 학자들이 “그 시장의 합리성” 문제를 다시 저울위에 올려보는 것으로 시작해야 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오바마 행정부 때 세계은행 총재로 추대받은 김용이 성장 지상주의자들과 여러 언론에서 비판 받았던 것을 고려해봤을 때, 아직도 주류와 다수 시민들의 요구와 해석에는 그 견해차가 상당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지그문트 바우만은 보통의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해석수단과 도표와 숫자들로 증명에만 힘썼던 나머지 현실을 도외시한 측면이 있다고 비판한 것은 귀담아 들을만합니다. 더욱이 이들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의 전문 분야에 대한 비전문가들의 비판을 매우 억울해 여겨왔던 것을 비추어 봤을 때, 과연 이들에게 다수의 이익이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해 다소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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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자유주의 양심 현대의 고전 12
마이클 하워드 지음, 안두환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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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의해 “영국의 위대한 역사가”라는 평가를 받은 전쟁사가 마이클 하워드는 옥스포드 대학의 치첼리 전쟁사 교수를 역임하고 미국 예일대의 러벳 해군 역사학 교수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런던 킹스 칼리지의 전쟁 연구 담당 교수로서도 명성을 떨치기도 했는데요. 마찬가지로 영국 내에서 양차대전에 대한 연구로도 명성이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잉글랜드 버크셔에 소재한 웰링턴 대학을 거쳐 옥스포드에서 수학한 그는 앞선 대학 교수와 연구자의 이력을 통해 유럽 전체 학계에서도 전쟁사 분야에 혁혁한 성과를 올린 학자였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그는 2019년 11월 세상을 뜨고 말았는데요. 97세에 이르렀던 나이를 생각하면 노환으로 숨을 거둔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렇게 노련한 학자가 세상을 등진 것은 어찌됐든 매우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의 이 책은 지난 1977년 초도 출판되어, 최근인 2008년에 일종의 개정판으로 신판이 출간되었습니다. 원제는 “War and the Liberal Conscience”로 국내에는 2018년 10월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특히 “마이클 하워드의 전쟁과 국제정치 3부작”이라는 시리즈로 그 가운데 ‘평화의 발명’은 절판인 상태지만, 나머지 ‘유럽사 속의 전쟁’과 이 책은 현재 시중에서 구하실 수 있습니다.

처음 책장을 넘기면서, 앞쪽에 문고판 서문이 있길래 처음에는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색인을 포함해 약 478페이지의 분량이 어떻게 문고판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이었는데요. 결국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주를 포함한 원래의 본문은 203페이지고, (아마도) 옮긴이가 특별히 수록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인명색인이 250여페이지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일반 위키백과에서 찾아 보기 힘든 고트프리트 헤르더와 같은 인물의 상세 정보가 있어 일종의 보론으로 충분히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봐도 일견 무방해 보이기도 했는데요. 다만, 이 ‘전쟁과 자유주의 양심’이 먼저인지, 아니면 그에 따른 ‘인물 색인’이 먼저인지는 분량상 불확실해 보이긴 합니다만 보는 분들에 따라서 출판사의 이런 분량 추가는 마냥 즐거워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추가된 분량 때문에 그만큼 책가격이 올랐기 때문입니다.

다시 책 내용으로 돌아와서, 마이클 하워드가 이 책을 통해 밝히고자 하는 주제는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던 15세기 이후의 자유주의가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제정치에서 어떠한 결과를 낳았고, 이들이 혐오해 마지 않았던 군비경쟁과 세력 균형보다 못한 파급을 초래한 것을 꽤 객관적으로 비평”하고자 하는 목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앞선 결과물은 칼 포퍼의 몇줄 통찰과도 상당히 일치하는데요. 천국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결과적으로는 사회의 지옥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이죠. 더불어, 여기에는 칼 포퍼 역시 자유주의를 신봉한 학자라는 것이 매우 흥미로운 점인데요. 뭐 거창하게 역사의 장난이라는 것으로 뭉뚱그려 쓸 필요는 아마 없을겁니다. 이어서 전제 권력에 의한 개인의 자유 증대라는 가치의 15세기 자유주의 태동은 유럽의 일반 전제 군주들이 상업적인 목적이나 자신의 위신을 위해 혹은 복잡한 혼맥에 따른 요인 등으로 당시 국민들의 의사와는 다르게 전쟁에 뛰어들게 됨으로써, 이러한 전쟁을 방지하고 어떻게 하면 평화를 구축할 수 있겠느냐에 대한 기본성찰과 그에 따른 평화의 일반적인 이론을 상기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1장과 2장에 등장하는 에라스무스와 벤담, 밀, 루소 등의 발자취는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열렬한 계몽주의자였던 몽테스키외 조차도 “군주정의 정신은 전쟁과 지배의 확대에 있다”는 평가 또한 동일한 범주안에 있는 해석일겁니다. 이러한 이념의 발전 가운데 임마누엘 칸트는 자신의 ‘영구 평화론’에서 “모든 인간이 자유로운 시민이 되는 국제 사회로의 발돋움으로 공화주의적 헌정 체제에서의 책임 있는 정부가 주가 되는 정체”가 평화 상태의 구축에 필요한 요소로 꼽은 바가 있습니다. 물론 저자인 마이클 하워드 역시 사실상 민주주의와 이를 따르는 국가들이 더 많아져야 국제정치가 평화로울 수 있다고 동의하고 있는데요. 다만, 5장 파시즘의 도래에서 우리가 볼 수 있듯이, 1943년 당시 히틀러에게 체코의 할양을 승인했던 “뮌헨 회담”을 지지하는 소위 자유주의적 양심이 히틀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었는지는 매우 명백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구별되어야 할 점은 정치를 주도하는 영국의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이때의 평화를 반겨했으나, 다수의 시민들은 이에 대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졌다는 점은 뭔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국제주의적 이상주의에 탐닉했던 우드로 윌슨과 그의 추종자들이 고안한 국제 연맹 체제가 1935년 이탈리아가 같은 국제 연맹 회원국인 에티오피아에 대해 야욕을 드러냈을 때, 영국이 주도한 협의체가 이탈리아에 에티오피아 할양을 승인한 이 아비시니아 위기와 그 이전인 1933년 동유럽 소수 민족의 자치와 민족주의를 무시한 4국 회담이 어떠한 결론에 이르렀는지 역시 자명합니다. “집단 안보의 유일한 보장책은 여론의 힘”이라는 벤담의 견해가 얼마나 순진무구했는지는 “일본의 만주 침공과 독일에서 히틀러의 등극은 아비시니아 위기 이전부터 이미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지 암시했다”는 저자의 판단에도 예측되고 있습니다. 일찍이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 정권이 군사력을 증대하고 전쟁 준비를 하는 것을 일종의 비도덕적인 문제로 폄하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동유럽에서 증대되었던 민족주의적 위기는 아직은 세계가 “평화보다는 자유가 더 필요하다”는 뼈아픈 현실을 드러내었다고 여겨집니다. 즉, 권력의 주체라고 불리거나 이를 뒷받침하는 자유주의적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세력 균형 자체를 도덕적으로 혐오했으면서도 외형적으로는 그것을 답습해 나갔다는 점은 이론과 현실은 엄청난 격차를 보인다는 증명이겠죠. 개인의 자유라는 기본적인 개념과 이를 확대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일종의 보기 힘들었던 개혁적 상황이 그러한 이상적인 상태를 고려하더라도 무조건 평화를 가져다 주지 않았다는 점도 역사의 비참함인지 아니면 그 자유주의 양심의 순진함인지는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대전 종전 이후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승전국들이 독일을 국가 상태로 나둬야 하냐는 불확실한 두려움에도 독일을 일반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개조시킨다는 의지는 꽤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국제정치학적 지점에서 독일을 영국과 프랑스의 방파제로 만든다는 핵심이 들어가 있었지만, 결국엔 제국주의적 대결에 지나지 않았다는 2차대전의 비판에도 스탈린의 소련을 제외한 승전국은 자유 민주주의가 독일에 필요하다는 공감대에 긍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애초에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신봉하고 있듯이 시민이 주가 되는 공화주의적 정부들이 평화 구축에 도움이 된다는 이념에 동의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논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선 3장의 1차대전과 관련해서 저자가 일부 역사가들이 오도하고 있는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대결 내지는 자본가와 노동자들의 대결에서 비롯되었다는 오해를 비판하고 “적어도 유럽 대륙에서는 평화가 정당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전쟁을 더 치러야만 도래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는 해석은 꽤 의미심장하기도 합니다. 1차대전을 뭔가 이념대전으로 매몰시키지 않고 국가간의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자유주의적 열정과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은 1차대전 전후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과거 E. H. 카가 1차대전 즈음에 흘렀던 전쟁에 대한 낭만주의적 태도와 동경은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 우리가 역사를 통해 대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시기의 각 국가들간의 광적인 군비 경쟁이 최소한의 갈등의 조절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 연유가 아닌가 짐작해 보기도 하는데요. 따라서, 국력 확장의 시기에서 서로간의 이해하는 군축의 필요성과 갈등을 이성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동등한 국가들간의 협력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지난 1차대전의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계몽주의적 담론의 확대와 시민 사회의 자유를 함양시켰던 자유주의 자체의 이념은 충분히 근대의 맥락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무분별한 이상주의에 근거해 윌슨의 국제적 협력주의를 허무하게 끝내게 되었고, 특히 당시에 부상하고 있던 동유럽과 유럽 각지의 민족주의를 백안시한 점은 자유주의의 패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민족주의가 자유주의와 함께 갈 수 있겠는가에 대한 꽤 면밀한 논의가 있어야만 했으나, 이성이 없는 민족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민족주의를 확대하고 강화하는 것이 결국 유럽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두려움에 휩싸여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 것은 자유주의자들의 크나큰 실책입니다. 물론 1차대전 이후 급격하게 붕괴한 세계 경제 상황에도 대전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혐오스런 전체주의를 잉태했던 것은 자유주의만의 문제는 아니겠으나, 한편으로는 얼마나 순진함에 가득차 있었는지는 이것들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개인 뿐만 아니라 민족의 생존 문제는 그것의 영향력이 지대할 수 밖에 없다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고 과연 ‘국가 이성’이라는 것이 실존할 것인가에 대해 뭔가 깊은 고찰이 더 필요해 보이기도 합니다. 보다 이성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객관적인 근대와 자유주의를 바라보고자 하는 한 역사학자의 이 글은 단순한 전쟁사가의 논법이라기 보다는 꽤 노련한 철학자의 연구물로 느껴질 정도로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곧 마이클 하워드의 번역된 다른 글도 찾아보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만큼 시대의 이성과 시민들의 합리성 그리고 자유에 대한 전반적인 양심에 대해 역사적 기록으로 탐구해 볼 수 있는 훌륭한 글이 아니었나 판단해봅니다.




-156페이지의 헨리 모겐도는 헨리 모겐소로 수정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173페이지의 뮌헨 협정과 관련된 문장에서 뮌헨 옆에 ‘협정’의 표기가 없었습니다. 양장본으로 만든 이 책에 이런 자잘한 편집 오류를 수정하지 않은 것은 매번 하는 말이지만 실망스런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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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홀로코스트 - 개정판
로버트 S. 위스트리치 지음, 송충기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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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카자흐스탄에서 폴란드 유대인 출신의 정치적으로 좌파 성향을 지닌 부모에게서 태어난 로버트 솔로먼 위스트리치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소재한 헤브루 대학의 유럽 및 유대인 역사를 가르치는 학자였는데요. 지난 2015년 5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유대인과 반유대주의에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학자로 이름을 올리며, 이러한 연구에 온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영국 켐브리지와 런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뒤이어 하버드, 브랜다이스, 옥스포드 등의 교환 교수를 거치면서 그는 반유대주의 연구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지금 소개해 드릴 이 책 역시 그의 학자적 양심과 연구의 한가운데 있는 논저로 저로서는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매우 차분하고 진지한 어조로 제2차 세계대전과 히틀러 그리고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려는 노력이 깃들어 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꽤 존경받을 만하지 않은가 싶기도 합니다. 이 책은 원제, “Hitler and the Holocaust”로 2004년 출간되었는데, 국내에도 마찬가지로 2004년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제가 구한 판본은 개정판으로 지난 2011년 출간된 것입니다.

흔히 일반인들 가운데 몇몇은 2차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자행된 유대인 홀로코스트와 관련해 과연 히틀러가 여러가지 정신적인 문제로 그야말로 ‘미친 짓’을 벌인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공식적으로 추계된 600만이라는 죄없는 사람들을 가스실로 보내는 짓 자체가 정상적인 행동의 산물이라고 이해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많은 유럽의 전문가들에 의해 아돌프 히틀러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에 초점이 맞춰지기도 했으나, 역시 제 예상대로 그는 매우 멀쩡한 인간이었습니다. 물론 저 멀쩡하다는 범주를 어느 정도까지 국한해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의 의견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어찌됐든 한 국가의 전쟁 수행을 최종적으로 승인했던 권력가가 아예 맛이 갔다는 식으로 치부해서는 안되는 일일겁니다. 히틀러 특유의 과대망상과 강박증이 저자인 위스트리치에 의해 소개되기도 합니다만, 이것은 전반적인 정신 이상의 근거로 쓰여서는 안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선 이 책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몇가지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하는데요. 먼저 14세기 이후부터 유럽에는 아주 뿌리깊은 ‘반유대주의적 풍토’가 만연했으며, 뒤에 등장하는 히틀러는 이를 아주 교묘하게 이용한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차대전 당시 독일 국적을 갖고 있던 많은 유대인들이 ‘독일 제국’을 위해 참전했으며, 독일 각지에 퍼져 살고 있던 유대인 공동체가 스스로도 독일사회에 잘 적응했고 18세기를 거치며 불안했던 반유대주의적 기조에 거의 종지부를 찍었다고 봤다는 점입니다. 이를 아주 간단히 말하면, 독일에 국한된 유대인들이 나름 독일 사회에 적응을 잘했다는 점입니다. 마찬가지로 불명예스런 1차 대전의 참전 결과를 낳았던 아돌프 히틀러는 힌덴부르크를 내세워 친위 쿠데타에 성공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내심을 드러내게 됩니다. 바로 “선택된 민족은 둘일 수는 없는 것”이라는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 말입니다. 히틀러는 내부적으로 유대인에 대한 해결을 준비하는 1941년 전까지는 자신의 이러한 반유대주의적 증오와 적개심을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최종적으로는 스스로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유대인 절멸’을 승인하게 됩니다. 이것은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 Endlosung, 그리고 절멸 Vernichtung”이라는 단어로 함축할 수 있을텐데요. 즉, 이 글의 4장에서 논의되고 있는 바와 같이 히틀러는 연합군을 유대인의 사주를 받은 세력으로 규정하고 연합국이 독일에 퍼부은 공습에 비하면 유대인들을 절멸 시킨것은 매우 인간적인 것이었고, 이는 “아리안족”에 대한 “유대인의 침략행위”로 받아들인 점은 뭔가 기괴하고 광기까지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실, 위스트리치가 밝히는 이러한 히틀러의 광기에는 근간의 소련에서 일어났던 볼셰비즘 혁명에는 유대인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세계의 암덩어리이자 전염병인 이 볼셰비즘을 분쇄하는 지상 최후의 명령이 나치 독일에 주어졌다는 일종의 단일대오가 있습니다. 히틀러의 제3제국이 최종적으로 소련을 분쇄하는 것에 대해 어떤 사명감을 갖고 있었는지는 불명확하나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나치즘이 공산주의의 박멸을 목표로 정치적 테제를 표명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선동주의적 나치즘이 곧이곧대로 볼셰비즘의 대항마로 빗대는 것은 무리가 있으나, 독일 내부에서는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로 시작되는 침략 전쟁의 구실이 되었으니 실로 아이러니한 부분입니다. 선을 구축한 악이 자신을 제외한 다른 것들은 전부 거악이라고 찌르는 꼴이니 역시 인지부조화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런 볼셰비즘과 유대인의 한몸통이라는 곡해를 바탕으로 히틀러와 괴링, 하이드리히 등이 매우 철저하고 잔인하게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낸 것은 어떠한 철학적 기준을 들이댄다 하더라도 보통 인간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장에 보여지는 로마 카톨릭의 나치에 의한 유대인 절멸에 대한 애매한 태도, 그리고 “피를 부른 나치의 반유대주의가 저지른 이 처참한 광경을 알고서도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거의 모든 개신교 및 가톨릭 성직자가 침묵을 지켰다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는 서술은 그 시대의 종교적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시대적으로 매우 불행한 일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권력 고위층들이 모인 ‘반제 회의’에서 히틀러가 전면적인 유대인 절멸 계획을 창안하고 이를 수행하면서 폴란드, 체코, 헝가리,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이탈리아 등 거의 유럽 전체가 유대인 절멸에 부역한 역사는 독일의 제3제국을 악의 집합이라고 통칭하더라도 프랑스의 비시 정권이 나치에 투항한 것처럼 인간의 권력적 속성이 얼마나 나약하고 무력한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 여겨집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근대가 어느 인종의 말살로 귀결되는 것으로 세기의 종말을 고한 것은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대로 산업 사회에서 비롯된 어지러운 사회적 신분의 유동성을 재규정하려는 필사의 노력인 것과 같은 철학적 담론으로 나아가는 것은 개인적으로 어려운 부분이나, 이 홀로코스트가 우리의 근대를 아예 뒤엎어 버린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심지어 이런 나치에 자발적으로 부역한 유대인들이 있었다는 점도 이것이 단순하게 총과 칼을 들고 위협하는 중대한 악의 총체에 일개 인간이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모든 이들의 권력으로부터 비롯된 이 전체주의가 어떻게 일개 ‘비정상적인 권력가’에 의해 이처럼 비인간성과 종말을 함께 표출할 수 있는지는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혹은 민족적으로 오래된 편견과 통념에 근거한 신념이 어떤식으로 인류를 절망에 빠트렸는지 결국 그것의 모든 것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후에 1964년 이스라엘 모사드에 붙잡힌 아이히만이 “오로지 기술적인 부분에서 어떻게 하면 신속하고 쉽게 유대인들을 처리할 수 있겠는가”에 몰입했다는 것에서 우리는 수백만의 인명을 말살한 이들의 진정한 배후가 무엇이었느냐에 대해 진정 탐구해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우리와 수많은 역사가들의 몫으로 남겨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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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대중의 탄생 - 흩어진 개인은 어떻게 대중이라는 권력이 되었는가
군터 게바우어.스벤 뤼커 지음, 염정용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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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공저자 중 한명인 군터 제바우어는 독일 팀멘도르퍼 슈트란트 출신으로 2012년 은퇴한 이후, 베를린 자유대학의 명예 교수로 자리하고 있는데요. 그는 베를린 공과대학과 카를르수에 공과 대학을 거쳤고, 1991년부터 1993년까지 국제 스포츠 철학 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주요한 관심사는 사회철학과 스포츠철학, 언어 이론, 인간한 등인데요. 특히 프랑스의 파리, 스트라스부르 및 일본의 히로시마에서 초청 교수로도 활동했습니다. 다른 공저자인 스벤 뤼커는 2010년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저작자이자 철학 강사로 일하고 있는데요. 특히 뤼커의 박사 논문은 베를린 자유 대학에서 인문학 최고 논문에 수여하는 에른스트 로이터 상의 영예를 누린 바가 있습니다. 그는 철학과 역사학, 근대 이론 및 대중이론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저술 활동에 매진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책은 “Vom Sog Der Massen Und Der Neuen MAcht Der Einzelnen” 이라는 원제로 2019년 출간되어, 국내에는 21세기북스를 통해 올해 2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우선, 본격적으로 논의에 앞서 여기에 논증되고 있는 3장, ‘이중 대중’과 4장, ‘포퓰리즘’ 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위의 4장은 지난 2017년에 번역 출판된 얀 베르너 뮐러의 “누가 포퓰리스트인가”의 훌륭한 보론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였습니다. 특히 뮐러의 논저가 분석하는 “포퓰리스트들에게 어떤 이들이 자신들이 강조하는 ‘국민’에 속하는가?”에 대한 적절한 해답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저 역시, 이들 포퓰리스트들이 구분한 ‘적과 아’의 개념에 대해 동의하지 않으며, 자신들에 대한 성찰은 전혀 없이 피아 구분으로 사실상 민주주의를 혼란에 빠트리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얻은 한가지의 통찰은 포퓰리즘 자체의 가장 큰 문제는 생각이 다른 시민과 시민들 사이에 대화와 토론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는 측면에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인식은 실로 중요한 것이어서 공저자들의 학문적 노력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만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기존의 대중에 대한 연구자들이었던 귀스타브 르 봉과 가브리엘 타르트 그리고 오르테 이 가세트 등이 피력했던 이론들이 인식상 지금의 시대와는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공저자들이 현재의 경향과 ‘이러한 대중들’이 어떤 형태와 영향력의 표출로 이어지는지 여러 사례들로 살펴보고, 문화와 종교까지 갈음하는 꽤 방대한 결과물로 이어졌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단순히 자유주의 담론에서 해석되었던 “유일성을 가진 개인”이라는 관념이 대중에 참여하는 개인과 인간들에 대한 사실상의 두려움으로 르 봉과 타르드의 대중론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정치사회적으로 경우에 따라서 “국민”의 개념이 확실하게 실체화되지 못한 경우도 분명 존재하는 것처럼 각 개인들의 자유와 권리라는 개념을 일반적인 지식인들이나 상류층이 이를 인정하면서도 “과연 무리를 이룬 개인들, 즉 이 대중이 얼마나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요구할 것인가?”에 대한 앞선 이들의 두려움이 카를 슈미트와 같은 현상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도 슈미트는 인용되기도 하는데요. 제가 보기에 정치적 상황에서 적아 구분을 명확히 하는 슈미트의 논법은 그것의 본질을 떠나 역설적이게도 우파들에 의해 변질되어 자신들의 의견과 다른 계층의 시민들을 역사속에서 무참히 적으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계몽주의와 함께 발전한 우리의 공화주의가 일견 자유라는 명목으로 슈미트에 의해 부정된 것이며, 이러한 명맥이 우파 포퓰리즘에 이어져 현재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즉, 현재의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의 유럽 우익 포퓰리즘이 미국의 티파티 운동의 구호처럼 “좌파를 격멸하자”는 식으로 애용되기도 하는데요. 이것은 도널드 트럼프가 적극적으로 이용했고, 자신을 지지하는 지지층에게 “총을 들고 나서서 싸워라”라는 식으로 (물론 이들이 총을 들고 나서지는 않았지만) 일개 선동 정치가가 어떻게 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치는지 잘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2장에서 르 봉의 입을 빌어 말하는 정신적 감염에 대해 “대중의 구성원들이 과연 ‘현대의 미개인’으로 변하는 것”에 완전히 얼토당토 없는 것으로 치부하기는 어렵습니다. 뒤이어 3장에서 저자가 인용하는 2017년에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암약한 무정부주의자들인 ‘검은 복면단’의 사례는 이처럼 꽤 위험한 사례이기도 한데요. 마누엘 카스텔은 일반 시민들이 행동에 나설 때, 맨처음 주저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 ‘공권력’의 존재를 먼저 들었습니다. 확실히 자신들의 정치를 위해 나서야만 하는 상황에서 잔잔한 호수를 파국에 이르게 하는 거대한 돌덩어리처럼 단순한 공권력과의 대결에서 유혈이 낭자하는 폭력시위로 언제든 상황이 위태롭게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국가 공권력과의 대치는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헌법을 수호할 의무를 가진 지도자가 헌법을 수호하지 않고 오히려 국민을 억압하는 경우도 수도 없이 많았기에, 대중이 오로지 혁명을 바랄뿐이다라는 논법은 여건상 이치에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정치 대중은 아무리 다양화된다 하더라도 대표자들에게 파괴의 잠재력이 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이 대표자들 뿐만 아니라, 대중을 비방하는 사람들은 “동시에 또다른 ‘선량한’ 대중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양면성을 드러내는 것이다”는 해석은 대중의 정치 활동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을 갖게 하는 장치로서도 기능합니다. 저는 일반 대중정치론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엘리트와 기득권층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쌓아올린 각자의 기반을 필히 체제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강하게 기존의 시스템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매시대 있어왔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지옥일지 모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더할 나위없이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나딘 고디머의 한줄 문장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사실 이 쯤에서 중요한 점은 이 대중과 대중정치를 파극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부정만 할 것이냐 아니면 “모두가 공감하는 단호한 결의”아래 정치를 개선하는데 쓰이게 할 것인가의 논법에는 오로지 우리가 그 심판자로 서있게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어, 3장과 4장은 대중에 대한 분석의 인식 강화판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카를 슈미트의 적아 개념이 완벽히 들어맞는 ‘이중 대중’은 자신들 이외의 다른 대척점을 만들어 강력한 대결을 추구하면서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그 지점에서 찾는 것으로 오로지 자신들은 옳고 저들은 틀리다의 논법과 아예 일치하기도 합니다. 반대편의 사람들을 자신들의 존재 이유로 삼는 논법은 매우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그리했었죠. 앞선 2장에서 “대중 유형의 개인들이 더이상 열성적으로 지도자에게 매달리지 않는다”는 현재의 모습이 물론 그러한 점에 대해 반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뒤에 4장에서 이 이중 대중이 포퓰리즘과 어떻게 결탁하고 있는지 꽤 노골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적이 비로소 나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 “포퓰리즘에서 말하는 우리들과 그 적들”, “포퓰리스트들은 자신에 대해 긍정하는 말은 하지 않고, 남들에 대해 부정하는 말을 한다”, “포퓰리스트들은 자신이 ‘거짓 언론’에 둘러싸여 있다고 판단하며, 박해받고, 속고, 경멸받고 있다고 느낀다”는 등의 일례들과 함께 이중 대중과 포퓰리즘과의 상관 관계가 4장에서 규명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포퓰리스트들은 자신이 본래의 것과 따라서 ‘진정한 국민’을 확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시민들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구분하고, 자신들의 편에 속하지 않는 시민들을 적으로 규정, 나아가서는 사회와 국가의 악으로 단죄하는 것입니다. 뭔가 로마 카톨릭 시대의 속세 규정법 같습니다만, 이러한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는 선동 정치인들이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 드러나고 있어 대중의 행동 양식과 이해에 관한 지금보다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끝으로, 한나 아렌트는 ‘대중의 정치적 출현 공간’에 대해 위르겐 하버마스와 비슷한 입장의 의견을 피력한 바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옹호하는 민주주의에서의 공동체에 이르기 위해선 대중들의 무모하고 왜곡된 쾌락을 불식시켜 ‘폐쇄적 대중’에 이르지 않기를 경계해야만 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꽤 이상주의적 관점입니다만 다수 대중의 정보를 팔면서도 현실 정치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거대 SNS 기업의 행태와 자신이 능동적이고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상당히 시스템에 종속된 대중의 출현은 급히 우려할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과거에는 존 듀이의 논법식으로 교육과 자기 절제, 관심사에 대한 꾸준한 의견 제기 등이 현실 정치에 건전한 담론이 될 수 있었으나, 현대의 개인들과 대중은 너무나 복잡한 환경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한 인식은 이 책의 7장과 8장에서 좀 더 자세히 논의되어 있습니다만 단순히 외부로 돌출되어 어리석은 소속감에 몸을 맡겨 다시 자유로운 개인으로 환원되지 않는 대중은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현실 정치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개인의 자유와 건전한 공동체주의가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로 제 역할을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되는 것이며, 앞으로 대중들이 과연 어떠한 역사의 족적을 남기게 될지는 전부 우리 스스로에게 달린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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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봉쇄전략 - 냉전시대 미국 국가안보 정책의 비판적 평가
존 루이스 개디스 지음, 홍지수.강규형 옮김 / 비봉출판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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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에서 저명한 냉전사가이자 세계 패권 전략의 이론가인 존 루이스 개디스는 특이하게도 지금의 관심사와는 달리 현대 철학을 전공한 학자입니다. 그는 미국 텍사스 출신으로 역시 텍사스 대학을 거쳐 영국 옥스포드와 프린스턴과 헬싱키 대학의 방문 교수를 역임하고 1997년부터 예일대의 미 해군사 교수로 재임하고 있습니다. 특히 2005년에는 미국 인문학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내셔널 휴머니티 메달 National Humanities Medal 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현재에도 왕성한 지적인 활동을 하고 있으면서 근래에는 미국의 외교관계사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책은 “Strategies of Containment”라는 원제로 지난 1982년 초도 출간된 이후, 2005년 약간의 증보를 거친 개정판을 국내에서 번역해, 작년인 2019년 9월 국내 독자들에게 선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소위 냉전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조지 F. 케넌이 미국 외교에 전면에 나서고 과거 트루먼 행정부 시기의 중요한 문건인 NSC-68 (미국 국가 안전보장회의 NSC 가 작성한 비밀문건)이 기반이 되어 전체주의를 종식시킨 미국이 어떻게 소련을 가까운 미래의 위험 요소로 여기게 되는지를 시작으로 이후 봉쇄의 완성이라는 레이건 행정부를 끝으로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즉, 프랭클린 루즈벨트 행정부에서 로널드 레이건까지의 미국의 대외 정책과 시대 배경 및 소련과 중국이 동시에 얽힌 국제정치적 치킨 게임 등을 인물과 사실에 기반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각 행정부 별로 미국의 외교 정책을 수행한 인물들과 대통령, 그리고 시대 배경 등을 꽤 상세하게 그리고 있어서 저와 같은 독서인들에게는 노련한 전문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해주는데요. 물론 개디스의 이 책 역시 상당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데 좀 더 수월할 수 있겠습니다.

남에게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에 능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실제로 냉전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고, 실제로도 발생하지 않으리라 믿었다”는 저자의 언급으로 일단 시작하겠습니다. “루즈벨트는 런던과의 관계와는 달리 모스크바와의 관계는 너무 깨지기 쉬워서 그러한 압박을 견뎌내지 못하리라고 우려했을지도 모른다”는 첨언까지 저자는 하고 있는데요. 아이젠하워 행정부 이후로 스탈린과의 얄타회담을 히틀러에 놀아난 체임벌린이 손에 쥐고 귀국한 ‘뮌헨 협정’과 같이 치욕스럽게 생각했다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루즈벨트 대통령 스스로도 스탈린과의 담판에서 꽤 심대한 정력을 소비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곧이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루즈벨트 이후 정권을 승계한 트루먼은 “공산주의든 파시즘이든 이념은 독재 정치를 하려는 구실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스탈린의 소련이 국내 정치에서 어떻게 나아가는지 익히 체험한 미국 관료들에게는 아마도 “모두 다수의 자유와 그냥 있는 그대로 살 권리”를 소련인들로부터 보장받기 위해 그리고 그 자체로 얻게 되는 모스크바와에 대한 원초적인 불신이 일개 개인이 벌인 일이라고 믿을 수 없는 ‘외교 탄원서’를 작성한 케넌의 행동과 맞물려 소련에 대한 관계 재정립이 새롭게 모색된 것으로 글로서도 파악됩니다. 초기 관료 조직에 입성한 케넌은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비슷한 입장으로 윌슨이 주창했던 국제 공동체주의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되는데요. 애초에 소련은 동유럽을 자신들의 위성국화 하는데 그쳤지만, 미국은 자신들의 이익과 안보를 위해 소위 ‘소련에 대한 거점 방어’를 명목으로 필리핀과 일본, 한국 등과 양자 동맹을 구축하게 됩니다. 이후 애치슨의 이해할 수 없는 실언과 대치되는 한국 전쟁 당시 맥아더가 “아시아를 지금 포기하는 것은 서유럽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발언한 것들은 초기 대소 정책 및 대 공산권 정책에 혼란이 있긴 했으나 “동맹국들에 대해 미국이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은 국제 구도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역대 백악관의 주인들이 확언해 왔다는 점은 일종의 일관된 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미국을 필두로 유지해 온 자유진영의 체제가 속내에는 일부 중립국가들이 소련의 마수에 벗어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미국은 무분별하게 개입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기도 하였으나, 지체없는 한국전쟁에 대한 개입과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남베트남 정권에 여지없이 군사력을 지원한 것은 냉전 시기의 대결 구도를 유지하는 것이 핵무기의 균형 만큼 미국의 이익에 중요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실 미국의 외교 정책이 무조건 이런 도덕적 원칙을 표명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플랜 B 라고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소련의 부하라고 여겨졌던 유고슬라비아의 티토가 모스크바와는 다른 공산주의를 시도했고, 그 와중에 반대 세력을 40만이나 죽였음에도 워싱턴은 이에 개의치 않은 점은 미국의 외교 정책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쿠바를 전복 시키기 위해 케네디 행정부 때 개입한 사실이나 도미니카 공화국에 대한 개입, 칠레의 선거로 선출된 아옌데 정부에 대한 키신저의 불편함 등을 봤을 때, 아이젠하워가 “미국의 이익이라는 것이 경제적으로 원유와 텅스텐 같은 자원을 자유롭게 확보하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국가들의 정부에 친미 정권이 들어서는 등의 리스크 관리가 비교적 용이한 환경을 추구하는 것”과 같은 이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이에 아이젠하워는 미국의 이익과 동맹국들의 이익이 같이 가고 수렴하는 것을 보다 원했지만, “미국이 안전하려면 세계가 미국의 형상을 닮아야 했다”는 인식에서 이것이 얼마나 모순된 상황인지 우리는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의 대소 봉쇄는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추구했던 것처럼 소련을 점차 파국적인 공산주의로부터 희석시켜 국제 사회의 안으로 들어오게 하려는 궁극적인 목표를 갖고 있었지만, 핵무기라는 힘을 가진 국가가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 포기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습니다. 결국 흐루시초프의 오판은 쿠바 사태를 만들었고, 아이젠하워 시기의 존 포스터 덜레스가 핵무기와 관련된 벼랑끝 전술을 소련에 선보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미소간의 대결은 대체로 안정적이었습니다. 저자는 이에 케넌을 해석하며, “결국 전쟁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 자체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것은 추구하는 바가 명확해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소련과의 갈등은 첨예화 될 지언정, 전쟁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던 것은 앞선 인식이 배경이 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전임인 아이젠하워 행정부보다 많은 참모를 거느렸던 케네디 행정부와 그의 불의의 사망 이후 등장한 린든 존슨은 두 사람의 사뭇 다른 배경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보는 지적인 틀은 거의 동일”했다고 개디스는 첨언합니다. 이것은 사실상 케네디 대통령의 정책이 고스란히 존슨 행정부에 이어졌다고 보는 해석과 그 궤가 동일한데요. 다만, 전임 행정부에 비해 별로 자신감이 없어보였던 케네디의 백악관은 특히 동맹국들에 대해 “미국이 실제로 동맹국들의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자국의 도시가 위험해지는 상황을 감수하겠다고 미리 증명해 보일 수도 없다”는 맹점을 안고 NATO 동맹국들에 대한 핵우산 및 중거리 핵무기 배치만으로 지역의 안보 불안이 가시질 않았으며, 우리 역시 워싱턴이 서울을 방어하기 위해 샌 프란시스코가 잿더미가 되는 것을 감수할 수 있겠느냐에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단순히 외교 정책과 동맹국들을 방어하기 위한 자신감 문제를 넘어서 현재에도 가까운 베이징의 미사일에 의해 한번쯤 고민해보게 되는 서울과 도쿄에 불안감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은 이미 2008년쯤에 선제 핵사용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인 바가 있으며, 특히 쿠바 사태 이후, 벌어진 핵전쟁의 위협은 당시 동맹국들을 안보 불안에 떨게 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애초에 덜레스와 같이 동맹국들을 배려하지 않는 관료가 존재하는 것은 최근에 조지 W. 부시와 마찬가지로 동맹국에 대한 외교적 배려가 ‘적당히’로 나갈 수 있다는 면에서 우리도 어느 정도 한계지점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닉슨 행정부의 불세출 관료이자 학자인 헨리 키신저는 닉슨이 불명예스런 퇴진으로 하야를 했음에도 후임인 포드 행정부에서도 중용되기에 이릅니다. 그는 과거 백악관의 관료들이 ‘철학’이 없이 외교를 이끌었다고 비판하고 자신은 그런 길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원칙을 세우게 되는데요. 이미 존슨 행정부 시기에 군사비 지출과 군대 동원에 있어서 의회의 의심을 받기 시작했던 백악관은 외교 정책에 있어서 닉슨에게 거의 위임을 받은 키신저가 소위 홍길동식으로 미국 외교를 좌지우지 하게 됩니다. 닉슨은 특유의 다소 조용한 성격으로 인해 자신의 참모들과 약간 거리를 두게 됨으로써, 정상적인 외교 라인에 이어 뒤로 다른 비선 라인을 각 참모들이 지휘하게 됨으로 닉슨이 물러선 이후, 키신저에 대한 비난이 꽤 높았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포드 행정부에도 키신저는 제법 중용되기도 하는데요. 다만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키신저가 딕 체니와 ‘저팬 핸들러’로 유명한 리처드 아미티지에 의해 백악관에서 축출되는데, 이에 대한 설명이 전무해서 조금 아쉽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지독한 현실주의자였던 키신저는 앞서 짦게 언급한대로, 자유 선거로 출범한 칠레 정부에 대해 불신을 갖고 그것이 설사 민주주의 정부라고 할지라도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것으로 파악되면 개입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언급하게 됩니다. “단지 국민이 무책임하다는 이유만으로 나라가 마르크스주의로 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할 이우는 없다”는 칠레에 대한 키신저의 평가는 미국 국익을 위해서라면 내정 간섭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는 암울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물론 미국이 세계 2등국이 된다면 실로 비참한 2등국이라고 비하했던 세간의 말대로 세계의 양대 패권국 중 한 곳의 외교 관료가 저런 자신감을 갖는 것은 이해는 되나, 이후 로널드 레이건에서 보여지는 타국에 대한 군사 개입, CIA를 통한 교란 작전 등과 같은 수많은 불법 행위를 눈감게 하는 어떠한 치부책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닉슨과 키신저가 초래한 ‘데탕트’에 대해 개디스는 1945년부터 1949년 사이에 조지 F. 케넌이 제시한 개념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고 언급하고 적절한 행동에 대한 자유와 위임을 받은 논리적인 외교관이 삼극주의를 기반으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한 것은 역사의 순리인지 아니면 일개 개인의 능력인지는 추측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관해 한가지 곱씹을 만한 부분은 “1960년대 말에 미국의 전략적 역량을 크게 증강시키자는 얘기도 꺼내지 못한 이유는 베트남 사태가 야기한 예산 압박과 반군대 정서 때문이었다”고 언급이 되는 것은 닉슨 행정부 시기에 소련과의 핵무기 격차가 나게 되는 원인으로 꽤 중요한 맥락으로 여겨졌습니다.

끝으로 과거 냉전시기의 미소간의 대결은 다행히 상호 확증 파괴의 핵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천만 다행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미 미국 행정부가 수차례 소련과의 핵대결로 가는 것은 공멸로 이어지는 길임을 재차 확인했고, 이것의 리스크 관리를 위해 다소 변덕스런 모스크바를 다루기 위한 정력적인 노력을 워싱턴이 수십년을 기울여 왔다는 점은 분명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대의적인 측면에서 서유럽과 태평양의 민주주의 동맹들을 물론 자신들의 안보를 위해 후원하기도 하였으나, 우리나라와 같은 빈곤국이 미국의 지원과 경제 발전 단계에서 보여준 시장 개방으로 지금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된 이유임은 분명합니다. 저 역시 이 점은 왜곡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젠하워가 고민했던 것처럼 우리가 미국과의 동맹국이라면 서로의 국익이 같은 통로로 갈 수 있을 정도로 외교관계상의 현명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유의 보은심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냉정하게 보지 못하는 이들도 많지만 우리가 미국 외교의 명과 암을 잘 분석하고 정책 가운데 이를 중요한 기준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약간 우스개와 같은 소리로 과거 닉슨이 모스크바를 향해 “우리가 어떠한 짓도 벌일 수 있는 미친놈이란 걸 알게 해야 된다”는 이 미치광이 이론이 우리 이승만 대통령에게 비롯된 것임을 글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를 상대하든 예측 불가능하게 행동한 남한 대통령 이승만에게 나는 많이 배웠다”는 언급에 실로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1. 이미 이 책 12페이지에는 ‘봉쇄’라는 단어가 스티커로 수정되어 있었습니다.
2. 본문 264페이지에 오타가 있었습니다. ‘인괘철선 trip-wire’이라는 단어였는데, 원래는 인계철선이 맞는 단어겠죠.
4. 본문 382페이지에는 약간 동일 문장 반복이 있었는데, 문장의 흐름상 불필요해 보였습니다.
3. 본문 395페이지에 있는 문장 중에 조사 ‘은’이 빠져 있었습니다. 문장 전체로 봤을 때, 조사가 빠지면 어색하더군요
4. 미국의 탄도미사일인 ‘미니트맨’을 ‘미닛맨’으로 표기했던데, 저는 대체로 대중에게 알려진 용어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고 여기는 사람중에 하나인데요. 한나 아렌트를 해나 아렌트로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5. 헨리 키신저의 평가에 대한 표현으로 ‘무도덕’이라는 단어를 3차례 정도 언급하고 있는데요. 물론 무도덕도 쓰이는 단어이기도 합니다만 과거 다른 책들에서도 “헨리 키신저의 부도덕성, 부도덕한 측면을 갖고 있는 키신저” - 물론 국제 외교 무대에서의 평가로 부도덕을 뜻하는 겁니다. 이것을 굳이 무도덕으로 표현해야 했을까요.

다른 것들은 죄다 억측으로 치부한다 하더라도 오타와 문장 문제를 수정하지 않고 책을 출판한 것은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이 책은 상당한 가격의 책이기도 합니다. 마무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책을 출판한 것에 대해 일개 독서인으로서 실망스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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