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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후사 1945-2005 ㅣ 논형 일본학 5
나카무라 마사노리 지음, 유재연 외 옮김 / 논형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저자인 나카무라 마사노리는 경제학 관련을 전공한 학자로서 특히 메이지 유신 이후의 경제와 역사, 2차대전 이후 전후사 등의 일본에서의 주요한 역사적 이슈를 주제로 글을 써왔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가 현재에는 역사 분석을 하고 있는 것은 나름 특이점이라 할만 하겠군요. 그리고 이 책을 국내에 출간한 출판사 ‘논형’은 국내의 서울대를 비롯해 일본의 여러 지식인들의 글을 꾸준하게 소개해왔습니다. 각 출판사들 마다 중점적으로 다루는 분야들이 있는데요. 여기 논형은 일본학과 관련된 부분에서 수위를 다투는 출판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가 어쩌면 철지난 주제라고 여길 수 있는 전후를 다뤄야겠다고 느끼게 된 책의 말미, “1990년대 초 한국의 종군 위안부가 증언 도중 실신하여 들것에 실려 나가는 장면을 보았을 때, 나는 끝난 줄로 생각하고 있던 ‘전후’가 실제로는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고 소회하며 이러한 입장에서 1945년부터 2005년까지의 일본 역사를 ‘관전사’적 입장에서 상세히 분석하고 있는데요. 2005년은 일본 내에서 출판된 해를 고려하여 정해진 시기라 추측됩니다. 여기서 ‘관전사’란 미국과 일본 학계에서 전후, 전시, 전전의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인데, 특히 이 책에서는 1차대전 이후 2차 대전시기와 종전 이후의 큰 전쟁사적 흐름에서 단절과 연속이 교차하는 구조를 특히 ‘연속성’적인 측면에서 이 시기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시기의 특성을 구분짓는 각각의 사건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속성의 흐름안에 놓여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죠. 썩 설득력이 있다고 느껴지지는 않지만 요근래 미일 학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양입니다.
2차 대전 종전은 전체 세계사적 공간에서 큰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아마도 파시즘적 질서를 붕괴시키고 본연의 세계질서로 회귀한 것이라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미국은 당시 2차대전은 정의로운 전쟁이고, 원폭 투하는 오히려 전쟁의 조기 종결을 가져왔다고 정당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반대로 일본과 일본인들, 특히 다수의 일본인들은 이와는 다르다고 보고 있는데요. 아마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투하, 도쿄 대공습으로 인한 30만명 이상의 희생을 2차대전 당시 미국에게 패전했지만, 더 나아가 중국 내전에서는 지지 않았으며, 대동아공영이라는 틀 안에 전 아시아를 서구 제국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전쟁이라는 식의 해석을 아직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의 글에서도 그러한 현상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인식에 약간 새로운 접근을 발견했는데요. “일본 민중 쪽에서도 천황의 전쟁 책임을 추궁하게 되면 자신들에게 화살이 되돌아 올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졌다”는 언급이 본래의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지 않았나 싶고요. 당시 미국 맥아더 군정이 일본의 일왕체계를 일본 통치에 있어서 협조의 대상으로 여김에 따라 일왕제도가 약간 예상과는 달리 존속하게 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베를린과는 달리 졸속으로 치뤄진 도쿄 재판이 일왕과 일본 민중들을 살리기 위해 소수의 전범들로 마무리 지었다고 여기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미국의 안보 울타리 안에 일본을 집어 넣음으로서, 이러한 과정이 결정된 것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는 매우 불행한 일이 되었습니다.
현재 일본의 역사학계의 ‘수정주의적 입장의 범람’으로 봤을 때, 저자와 이 글의 논조는 대체로 이성적이고 상식적이라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일본 내부의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며 그 시기의 일본 정치의 적나라한 면을 분석하고 있는데 많은 분량이 할애되어 있지만, 박정희가 주도한 한일협정 시도와 관련되서는 한국측의 입장과 일본의 망언을 소개하고 있고, 한국 전쟁이 일본 내수와 경제 발전의 큰 도움이 되었다고 확실하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전범이라 봐도 무방한 기시 노부스케를 인용하고 있는 것은 오도하고 있는 반대편의 입장을 소개하기 위한 성격이라고 해도 이 책의 전체 맥락의 정당성을 고려했을 때, 뭔가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전쟁과 식민지배’의 피해자였던 아시아 여러 나라들 (특히 한국과 중국) 이 역사문제를 자기 생존이 걸려 있는 중심 문제라고 말한 것은 저자의 역사 인식이 어떠하고, 글 전체의 논점이 어떤 방향인지 잘 드러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도표와 사진, 여러 신문 기사들의 배치가 약간 교과서적인 분위기를 풍겨서 중요한 문단을 강조하기 위해 도입된 소제목들 또한 그러해서 약간의 거부감을 느끼실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들을 잘 균형잡혀 있고, 일본의 굵지한 국내 사건들에 대한 소개도 매우 잘 되어 있어 저로서는 꽤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일본인들에게는 이 ‘전후체제’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이 있을 겁니다. 특히 일부 정치인들과 이에 동조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보통 국가가 되는 것이야 말로 전후 체제를 극복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바로 아베 총리가 여기에 속한다고 봐야겠죠. 이러한 말도 안되는 인식말고, 진정한 ‘전후 체제’의 극복은 ‘위안부 사건과 난징 대학살 등’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본토 말고 ‘오키나와’에 미군 부대를 다 몰아넣고 집단 안보 운운하는 행위보다는 더욱더 상식적이고 올바른 ‘전후 인식 및 전후 극복’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내에 불고 있는 ‘수정주의적 입장’과 역사 왜곡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 드리고 싶군요. 얼마간의 인내심과 집중력을 발휘하시면 꽤 즐거운 독서가 되실 수 있다고 단언하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