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제인 오스틴 지음, 최세희 옮김 / 시공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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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5년 12월 16일, 영국 햄스셔주 스티븐턴에서 태어난 제인 오스틴은 스티븐턴과 딘에서 성공회 교구의 목사로 일한 부친과, 세습 작위의 남작 가문이자 유서깊은 리 가문 출신의 모친 밑에서 겸허한 교육을 받으며, 유년 시절을 보냅니다. 1783년이 되자 오스틴과 그녀의 여동생 카산드라는 앤 콜리에게 교육을 받기 위해 옥스퍼드로 보내졌고, 앤 콜리는 그녀들을 사우샘프턴으로 데려갔습니다. 그 해 가을, 예상치도 않게 두 자매는 발진티푸스에 걸리게 되는데요. 이때 제인은 거의 죽을 뻔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후 제인은 집에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1785년이 되어서야 라 투르넬 부인이 운영하는 레딩 기숙학교에서 여동생과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1787년부터 1793년까지 오스틴은 29개의 초기 작품을 집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790년에는 '사랑과 우정'이라는 짧은 분량의 서간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즈음에 오스틴은 스스로 전문 작가가 되기로 마음을 다지게 되었습니다. 1800년이 되어, 그녀의 부친이 은퇴를 결심했고 그동안 머물던 스티븐턴을 떠나, 바스로 온 가족이 떠나게 됩니다. 1804년, 오스틴은 바스에 지내면서 소설 '왓슨 가족'을 쓰기 시작했지만 완성은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많은 여성 작가들처럼 그녀 역시도 익명으로 책을 출판하기에 이르는데요. 동생인 에드워드의 손에 이끌려 이주한 차우튼에서, 그녀의 소위 4대 작품이라고 일컫는 소설을 성공적으로 출판합니다. 이 작품들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었고 당시 젊은 귀족들이 여론을 주도하여 크게 유행을 타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녀는 '이성과 감성'으로 당시로서는 꽤나 많은 수입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816년에 이르러 일시적으로 건강이 나빠졌지만 이를 무시하고 집필활동에 정력을 쏟았지만, 1817년 7월, 그녀는 갑작스레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녀의 유해는 윈체스터 대성당 본당의 북쪽 통로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녀의 비문에는 오빠인 제임스가 글을 작성했고, "그녀의 뛰어난 지성"에 대한 언급이 있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지금 소개할 그녀의 이 작품은 원제, "Emma"로 지난 1816년에 출간되었고, 이 번역본은 2016년 시공사에 의해 출판되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번역본의 추천사에는 주한 영국 대사의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오스틴의 이 작품은 런던 인근의 가상 마을인 하이버리와 그 주변 영지인 하트필드, 랜달, 돈웰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장편의 주인공인 '에마 우드하우스'는 하트필드의 터줏대감인 유서 깊은 우드하우스가의 차녀로, 과거 귀족 가문의 유산을 바탕으로 지역의 다른 여타 인물들과 교류하는 모습을 세속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오스틴의 이 소설은 일종의 '풍속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여기에 더해, 주인공인 에마의 약간의 좌충우돌식 숙녀 성장기와 이 시대의 (성을 가진) 특별한 여성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그려내는 적지 않은 분량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다만, 제인 오스틴이 추구하는 특유의 문학적 방향성과 더불어, 숨기지 않는 현실적 모습을 이어지는 여러 사건들과 절묘하게 배치함으로써, 다양한 서사를 따라가는 일독 그 자체로는 매우 즐거운 편이었습니다.

여느 노인들과 비교해서도 상당히 예민하고 거기에다 건강염려증까지 보이고 있는 부친을 지근거리에서 보살피고 있는 에마는 이 작품에서 특별한 위상을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극 중에서 에마의 외모를 소개하는 오스틴의 묘사 역시도 한 눈에 봐도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었는데요. 그녀 자신의 지위로서 뿐만 아니라, 우드하우스 가(家)의 실질적인 안주인의 위상도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그녀 자신이 지역 내의 상당한 존중을 받고 있음을 드러내는 설명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녀를 하트필드의 주변을 통틀어 마치 '여왕벌'처럼 노골적으로 칭송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중심이 되어 벌어지는 주변 관계들 간의 교류와 그 와중에 과거 테일러 양이었던, '웨스턴 부인'과 안쓰러운 사생아이기도 한 헤리엇 스미스를 배치해, 이들 사이에서 무엇보다 '분별력을 갖춘 숙녀의 위상'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는데요. 특히 이 시대의 '고귀한 여성들'에게 있어, 변함없는 숭고한 애정과 그로인한 가문 간의 혼인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한 화두였으며, 시대를 표상하는 전반적인 결혼관, 그리고 그 실상에 대해. 오스틴은 특유의 관찰자적 시점으로 이를 가감 없이 드러내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기본적 이해는 시대극이 갖는 장점이기도 하며, 각 시대별로 살아간 인물들의 내밀한 모습을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펴볼 수 있게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그녀의 가정 교사였던 '테일러 양'이 인근의 웨스턴 가에 시집을 가게 된 연유에는 바로 에마의 공이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혼기에 이른 훌륭한 여성이 마찬가지로 명예로운 신사에게 향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지난 에마의 행적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는데요. 신분과 사회적 지위에 걸맞는 만남과 관계라는 일종의 구시대적 관습은 여전히 소설 속 사회의 중요한 가치였고, 이는 해리엇 스미스를 통해서도 대비되어 증명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극 후반부에 오스틴 답지 않은 '부실한 결론'을 감안하더라도 해리엇이라는 여성의 인물 조성 자체는 독자들에게 뿌리 깊은 영국 왕국의 신분적 단면을 엿보게 만듭니다. 여기에는 그녀가 사생아라는 측면의 제약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남 부러울 것이 없는 에마가 해리엇의 보호자를 자처하면서 살뜰하게 챙겼던 연유에는 같은 여자로서의 무던한 이해가 배경이 되었을 겁니다. 소녀의 시기를 지나 숙녀의 자태를 드러내고 있던 해리엇에게 지워진 신분상의 제약 만큼이나 '숙녀의 기본 자세'를 중요시하는 에마에게는 무엇보다 그녀를 관리할 스스로의 명분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어설픈 숙녀를 노리고 있는 결격 사유의 남성들이 있을 수 있다고 에마는 믿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로버트 마틴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물론 극 중에서 에마와 해리엇의 우정에 대해 한치도 경멸할 수 있는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데요. 다만, 이 두 사람의 우정이 에마의 경솔한 '사랑의 작대기'로 시험 받았다는 측면과 일전에 경험한 테일러 양의 성공적인 사례로 말미암아, 유독 에마 자신의 결혼 문제는 부친의 존재로 멀찍이 밀려났지만 역설적이게도 작가는 후반부의 극명한 서사로 말미암아, (인물 조성에 공들인) 해리엇을 결국 '조기 결론'으로 이끌게 됩니다. 이 부분 역시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결국 에마를 둘러싼 일종의 소란들이 '겹겹의 풍속'으로 나타나고 이 가운데 이런 숙녀들이 어우러진 통속적 연애 소설로서, 이 이야기 자체로 당시 일부 계층에게는 상당한 교훈이 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작품에서 묘사된 '신분에 걸맞는 결혼' 즉, 에마의 친언니인 이저벨라와 신흥 가문이라고 볼 수 있는 나이틀리 가의 결합은 여기서 중요한 설정이기도 했는데요. 즉, 제인 오스틴이 당시의 풍속을 어떠한 거름망 없이 여실히 묘사하면서도 '신분에 맞는 결합'에 대해선 가타부타 말을 아낀 것은 어느 정도 복합적인 요인에 기반하기도 하는데요. 이것은 시대상 그 자체 일수도 있고 그런 '신분의 보수성'이 당시를 살아간 제인 오스틴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요소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뒤이어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인, 제인 페어팩스 역시, 가볍지 않은 비중으로 에마와 쉽게 비견되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에마와 비교해서 빈한한 가정사(3만 파운드의 유산을 받을 에마와 비교해서는)와 수양 딸과 비슷한 상황으로 인해, 내면이 아래로 침잠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저의 이런 표현이 약간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제인이라는 인물 자체는 에마와 비교해서도 충분히 인정 받을 만한, 훌륭한 숙녀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요. 솔직하고 다양한 루트의 감정 표현을 서슴없이 하는 에마와는 달리 제인은 스스로의 감정과 기분을 타인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 상반된 인물인데요. 이 지점에 있어 어느 정도는 극의 반전을 위해 작가인 오스틴이 설정한 측면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녀 자신은 '타인의 호의'에 본능적인 의심을 내비치는 인물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숙녀들 간의 오고감이 단순히 사교계에서의 질의 응답과 전형적인 화답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소설의 주제와 맞물려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각자가 유명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적절한 예의와 그에 따른 화법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절제된 언어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나름 인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마치 현대의 극단적인 직접 화법과 다름없는 날 것의 '감정 분출'과는 달리, 이 소설의 사회에서 보여지는 적절한 신분을 배경으로 한, 남녀 간의 그 예의의 문답은 어느 정도 고풍적인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이와 별개로 주요 남성 캐릭터이기도 한, 조지 나이틀리와 (웨스턴씨의 사연 많은 아들인) 프랭크 처칠은 서로가 매우 구별되는 인물들입니다. 치안 판사로 재직 중인 조지 나이틀리는 에마의 남편인 존 나이틀리와 친척 관계로 극의 1부 전반에서, 에마에 의해 약간의 '별종'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그는 숙녀들에게 일절 '넉살을 부리지 않는' 신사로, 하이버리에 있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있어, 어느 정도 주변을 맴도는 인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거의 존재감이 없는 상황이었는데요. 극 후반부인 3부에 가서야, 조지 나이틀리의 진정한 인물됨이 드러나게 되는데요. "나는 진실만을 말한다"는 그의 의미심장한 대사와 '견실하고 섬세한 원칙주의'로 설명하는 그의 인생 자세는 몇 마디 말로도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렇게 그와는 다르게 웃는 낯과 언변을 갖춘 프랭크 처칠은 극 전환의 주요 키워드로 읽혔으나 다른 연유로 제게 충격을 준 인물입니다. 그는 꽤나 즉흥적이고 순간적인 열정에 쉽게 사로잡히는 인물로, 극 중에서 "책을 읽고 교양을 쌓는 일반적인 신사들"에 비하면 송곳처럼 대비되는 인사입니다. 극의 중후반부에서 에마와 매우 가까운 웨스턴 부인을 상상의 나래로 이끌고 마는 그의 성급한 감정 기복은 오래지 않아 이 작은 사회에 균열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2부 이후의 큰 두 가지 사건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요. 특히 프랭크 처칠이 관여 되어 있는 그 의미심장한 사건에 있어, 작가인 제인 오스틴이 서사의 장구한 계획이라는 일환에, 개연성을 가히 인질로 사로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비틀린 극의 전개가 그 대목을 읽을 당시에는 쉬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 지점의 프랭크 처칠은 여지없이 여러 숙녀와 얽히기도 했고 오스틴이 극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분별력을 갖춘' 인물로는 설명되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프랭크 처칠의 쓰임새가 바로 이런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이렇게 대립되어 나타나는 조지 나이틀리와 프랭크 처칠의 구분은 마치, 제인 오스틴이 '오만과 편견' 그려낸 이야기와 흡사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누군가의 진정한 인물됨은 그저 몇 마디의 말과 도드라진 행동으로 판단될 수 있는 계재는 아니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얼마전의 자신과 다른 성장한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에마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하트필드의 주변에서 반쯤은 스스로 자초한 일들로 인해, 내면과 가치관이 성장하기에 이르렀고 끝내 진정한 사랑에 대해, 자발적으로 눈을 뜨게 되는데요. 전반적으로 이 작품이 어떤 '맹렬한 주제 의식'을 답보하고 있는 여타의 그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단순한 시대상을 배경으로 삼아 그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세간의 재미 정도로 이해해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은 주인공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을 통해, 신분의 조건과 단순한 삶의 양태를 넘어서는 그 사람의 '순수한 의지'에 대해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단순히 프랭크 처칠이라는 인물을 그저 조소하려는 것이 아닌, 사람의 진정한 내면과 귀감이 될 수 있는 본성 자체는 쉽게 타인에게 드러나지 않는 법이며, 그간 제인 오스틴이 그려낸 다른 소설과는 다르게 이러한 베일 속에, "조급하고 무분별한 애정"에 대한 분명한 의심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꽤나 유쾌하게 이 소설을 일독할 수 있었는데요. 작품 초반에 어설프게 얽혀 있던 조지 나이틀리의 (오해를 방치한) 대사들과 그의 행동됨을 다시금 돌이켜 볼 수 있는 부분은 나름 즐거운 복기였습니다. 그리고 엘턴 부인으로 극대화 된 유일한 희화화를 제외한다면 오스틴이 만들어 놓은 인물들은 대부분 개연성 있는 조성으로 본래의 내면과 그것이 엿보이는 어투와 행위 등이 보다 사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는 제인 오스틴 특유의 생생한 인물 설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극의 결말이 다소 성급하게 마무리되어 이 부분은 논외로 하더라도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끝으로 극 후반부를 이끄는 주요한 두 가지 사건도 따로 언급해야 했으나 이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상세한 분석은 자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엘턴 부부에 대한 서사적 분석 역시, 극중 주요한 사건이 혹여 그 과정에서 드러날 가능성이 있기에 아쉽게도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엘턴 부부에 대한 설정 자체는 제인 오스틴이 거리를 둔, '부분별한 결혼, 무분별한 애정'의 집합체로 이 부부 자체가 편협한 시대상 그 자체에서 젊은 남녀가 경계해야 할, 분명한 경고이기도 했습니다.    


-본문 388페이지에 띄어쓰기 오류가, 본문 626페이지에 오타 한 곳이,

 또한 651페이지에 문장 중간에 뜬금없이 마침표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 개인적으로 보기에 번역은 전반적으로 훌륭하다고 볼 수 있었으나, 편집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렇게 더할 나위 없는 양장본으로 출시된 작품이 저런 오류들을 수정하기 않고 급급하게 내놓은 것은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남편은 그녀가 아름다운 미덕을 발휘해 자신을 사랑해주었으니 그 보답으로 결혼 생활에서 모든 것을 아내애게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할 만큼 마음씨가 따뜻하고 기질이 상냥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대부분의 여자들에게서 예상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자신의 상황에 잘 대처했으며, 작은 곤경과 시련을 잘 참아내고 순조롭게 헤쳐나갈 만한 분별력과 활력과 정신력을 갖고 있었다.

하이버리에서 우드하우스 양의 입지는 대단한 것이었으므로, 그런 사람을 소개받는다는 것은 스미스 양에겐 기쁜 일이면서 동시에 무척이나 두려운 일이었다.

해리엇은 획실히 영리하지 않았지만 다정하고 유순하며 고머워할 줄 아는 성품이었고, 자만심은 조금도 없었으며 다만 자신이 우러러보는 사람을 귀감으로 여겨 따르고자 했다.

"내가 일반적인 원칙으로 삼고 있는 건, 해리엇, 만약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마땅히 그 남자를 거절해야 한다는 거야."

"만약 당신을 비롯한 남자들 대부분이 그런 아름다움과 그런 기질을 여성이 갖출 수 있는 가장 고결한 자격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제 착각이 이만저만이 아닌 거겠죠."

그리고 잦은 사교 활동과, 그런 것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형부의 성향은 다름 아닌 철저할 정도로 가정에 충실한 습성, 자신에겐 가정만으로 족하다고 여기는 태도에 기인한 것으로 어딘지 모르게 존경스럽고 가치 있어 보였다.

에마가 툭하면 혈색이 나쁘다고 흠잡았었던 제인의 피부는 잡티 하나 없이 섬세해서 가히 활짝 피어 절정에 이른 꽃과 같았다. 그런 만큼 에마는 나름의 원칙이 있음에도 도의적으로 찬탄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런 우아함은 용모 면에서나 정신 면에서나 하이버리에선 좀처럼 드문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에마는 자신과 그의 만남에 대해 사람들이 품을 만한 기대, 예전부터 그녀의 마음을 강렬하게 지배해왔던 생각을 그도 한적이 있을지, 그래서 그의 찬사를 동의의 표시로 봐야 할지 아니면 반항의 증거로 봐야 할지 궁금해졌다.

에마는 숙녀를 대하는 그의 정중한 태도에 다소 아집이 섞여 있음을, 그리고 그녀와 춤을 추는 즐거움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그녀에게 반대하는 쪽을 택하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떤 일이 있어서도 아버지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미 확고히 결심하긴 했지만, 사랑의 감정이 강렬하다면 지금의 감정에서 예견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심란해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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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직 언론인이자 전 정권의 고위 관료였던 인물이 자택에서 체포를 당했습니다. 이 사람은 기사에서, 그동안 6차례의 경찰 출석 요구에 불응한 것으로 나왔고, 그로인해 법원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의 다른 혐의도 수사중이거나 곧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아는데요. 그런 것들은 차치하고 최근 대통령 선거에서, 그의 정치적 발언으로 인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위반했다는 취지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과방위 위원들이 고발했던 점이 이번에 수사가 되면서 이어진 일로 위 사건을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예전에 독서 모임에서 만난 어느 국회의원 비서관 분과의 몇가지 대화가 떠오릅니다. 그는 국민의힘이 새누리당이던 당시, 모 의원의 비서관을 하고 있던 분이었는데요. 자신이 생각하기에 국회의원을 비롯, 소위 고위 공무원들, 법조인들에 대한 가장 큰 문제를 거론하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사회에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고 직무가 크다고 볼 수 있는데 사사건건 법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아무리 법이라고 할지라도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신분에 따른 고려가 필요하다."는 식의 '들은 얘기'를 이야기해 주더군요. 저는 앞선 제목처럼 이 '법의 지배'가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아주 중요한 토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위 잘나가는 양반들이 (물론 일부겠지만)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무척이나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고위 공무원이나 요직의 법조인들, 혹은 정치인들의 생리를 전부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사고 과정과 인식의 범위 자체 뿐만 아니라, 소위 '특권'으로 읽혀질 수 있는 문제 의식에 있어 아무런 죄의식이 없다는 것은 엘리트들의 도덕적 기준 및 법의 평등이라는 관념에 대해, 심각할 정도로 문제가 많다는 점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거 존 듀이는 시민 각자가 '정치적 분별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크리스토퍼 래쉬 또한 시민들이 분별에 대한 확고한 이해를 갖고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얼마전에 읽은 지그문트 바우만이 인용하던 크리스토퍼 래쉬의 사례가 문득 떠오릅니다. 사실 저는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 시점부터, 포퓰리즘이 어떤 정치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조로 자리매김하면서, 극단의 정치가 암세포처럼 자양분을 얻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마누엘 카스텔이 예견했던 '온라인의 혁명'이 정치적 발전에 기여했던 것이 아니라, 결국엔 사익 추구로 귀결되었다는 점에서 우리 정치의 음울한 추락을 느끼게 만듭니다. 이런 과정에서 자신들의 발언을 쏟아낼 수 있는 매체들이 기술적으로도 발전했고 심지어 이를 기반으로 경제적 이익 추구가 가능하게 됩니다. 마크 트웨인이 자신의 짧은 단편을 통해, 껍데기에 불과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정치 혹은 사회 전반을 냉소했던 장면도 떠오르는데요. 어떠한 왜곡된 '스피커'를 사회의 정화작용으로 마땅히 도태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발언과 심지어 그 사람의 경제적 이익까지 챙겨주며, 그의 뒤를 봐주는 '분별력을 잃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은 그만큼 이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적 위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앞선 그 사람은 자신의 '예의 발언'이 표현의 자유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개인의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에 있어 매우 중요하죠. 표현의 자유가 없는 사회는 그야말로 죽은 사회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그의 표현이 법이 인정한 '제한과 의무'에 저촉되지 않는지, 한 개인의 위치로서가 아니라, 그가 맡고 있는 직위에 따른 '제한과 의무' 범위에 문제가 있었는지 아니었는지, 이를 법적으로 판단해 보는 것은 체제의 안위와 정치의 온전을 위한 그 대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법정에서 판사가 자리에 들어설 때, 법정의 모든 사람들이 몸을 일으켜 판사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나, 그의 말에 경청하고 그가 조직하는 법정에 기꺼이 수복하려고 하는 것은 그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법의 공정한 대리를 맡고 있는 '대리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판사가 심리하는 법정의 판단을 그 고위직도 아무런 사심없이 응할 의무가 있으며, 이것은 시민의 의무이자, 그야말로 법의 평등을 존중하는 자신의 마음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정치의 범위 안에서 벌어진 일들은 왠만하면 정치의 수단으로 해결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때론 정치의 과정 속에서 일어난 일들은 무엇보다 시민들이 아닌 당사자들의 의견에 따라, 법의 판단을 받게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그 정치적 당사자들이 시민들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아주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또한, 정치에 속한 인사들이 정치적 이익과 경제적 이익 두 양자를 엄격히 분리하고, 도덕적으로 관리하거나, 스스로 그 양자가 협력하게 되는 일은 지양해야 했으나, 실상은 이 모든것이 권력의 행태로 변질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면에서 법의 판단은 더 가혹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심각한 정치적 대결구도에서 프로야구 선수들의 '동업자 의식'처럼 그러한 동조 의식이 결여된, 작금의 정치 무대는 그야말로 정치적 독립이 흔들리는 양상으로 자초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이 당사자들에 의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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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없는 사회 - 무한한 욕망의 세계사
다니엘 코엔 지음, 박나리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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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코엔은 1953년 6월, 튀니지의 튀니스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약사인 어머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프랑스 중남부의 오트루아르 주의 생디디에앙벨레에서 기초 교육을 수료한 후, 1973년에 프랑스에 소재한 그랑 제꼴 가운데 가장 명문이라고 볼 수 있는 노르말 쉬페리외에 입학합니다. 이후 1976년에 수학 전공으로 학위를 수여 받고, 3년 뒤인 1979년에는 경제학으로 프랑스 국립 박사 학위 (DND)를 취득합니다. 또한 그는 1986년에도 파리-낭테르 대학에서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데요. 동시에 1981년부터 1982년, 1983년부터 1984년까지 미국 하버드 대학의 방문 교수로도 재직했습니다. 그는 앞선 교수 이력 이외에도, 1997년부터 2012년까지, 총리와 함께 경제 분석 위원회 (CAE)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그는 국가 부채 전문가로서 라자드 은행의 고문으로 그리스 총리와 에콰도르 대통령에게 국가 부채 협상에 대한 조언으로 유명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프랑스아 올랑드의 지지자로서, 프랑스 내 수많은 경제학자들의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사회적 족적을 남긴 코엔은 2023년 7월, 혈액 질환으로 한창 활동할 나이에 세상을 등지게 됩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Le monde est clos et le désir infini"로 지난 2015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9년 3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일독했던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 현대'에서 다니엘 코엔이 수차례 인용되었기에 이번에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국내에 번역된 그의 논저 가운데, '악의 번영'은 꽤 많은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는데요. 이번에 소개할 이 글은 인류와 함께 시작된 생산과 그 수단의 증대 그리고 그로 인한 비약적 인구 증가를 바탕으로 한 경제사의 개요로, 경제학이 익숙치 않은 독자들이 보기에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비교적 수월한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코엔은 자신의 논증을 위해 '인간의 역사' 가운데 시기 별로 요약하고 있고, 더욱이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와 로베르 카스텔과 같은 많은 학자들의 글을 직접 인용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책을 단순히 광범위한 경제사나 혹은 사회사를 축약한 내용으로만 보기에는 어폐가 있기도 한데요. 단지 인간의 합리성이라는 주제로 경제적 사회발전사에 국한되지 않고, 계몽주의가 어떻게 경제적 인간에 기여했는지를 논하면서, 인간이 이룩한 생산의 발전과 사회적 부의 증대의 과정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상세히 고찰해 보는 것이 주된 출판 의도로 볼 수 있겠습니다.

합리성의 체계적 경쟁으로 말미암아, 저자인 코엔의 분석대로 서양과 동양의 격차는 소위 칭기즈 칸의 제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판단됩니다. 여기서 그는 이 '유목민 제국'의 이상하리 만큼 비정상적인 영토적 야욕과 서쪽으로의 진출이 상대적으로 중국의 경제를 초토화 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단언하고 있었는데요. 그러니까 유목민의 약탈 경제에 그동안 중국 왕조가 구축해 왔던 농경 경제를 비롯, 사회적 경제가 가히 뿌리 뽑혔다고 보는 듯 했습니다. 더욱이 유럽의 경제 변혁을 이끌어 낸 주요 사건들 가운데, 14세기의 흑사병은 당시 봉건제도에 기반한 유럽의 사회 경제를 대혼란에 빠뜨렸다고 진단하는데요. 일종의 흑사병이 유럽의 임금 노동 체계를 아예 재설정하기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급격한 노동 인구의 감소는 그런 여파를 초래할 수 있겠죠. 즉, "흑사병의 위기는 유럽 전역에서 임금 인상을 촉발했고 평균 임금은 평소 수준에 비해 두 배로 뛰어올랐다"고 그는 뒤이어 서술합니다. 또한 저자는 이렇게 수세기에 걸쳐, 인간의 노동 가치라는 소위 임금 상승이 영국의 산업 혁명에 영향을 끼쳤다고 논의를 확장하여,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단편적으로 대부분 당시의 산업 혁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과학 혁명'으로 비롯되었다고 이해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그 이전의 사회에서 인간의 노동력이 생산 발전에 이바지했던 분명한 기여와 이러한 체계적 시스템이 기존의 변화된 신념과 함께, 전세대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급격한 인구 증가에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도 중요하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런 연유로 토머스 멜서스의 기존 연구들이 이러한 맥락에서 한때 주목을 받은 이유일 텐데요. 그렇게 알려진 인식은 뒤이어 등장하는 '서구 유럽의 급부상'과 매우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의 논증은 꽤나 정교해서, 어느 정도 설득력을 답보하고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전통적 자본이 관여하게 되는 막대한 생산물의 증대는 그전에 볼 수 없었던 기계와 그것이 성공적으로 조합된 산업 혁명의 폭발적 확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의 노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흔히 '러다이트 운동'이 영국에서 발생한 극명한 사회 운동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기술 발전에 대한 저항'은 사실상, 러다이트를 끝으로 종말을 맞게 되었습니다. 한정적인 세계사적인 측면에서는 말이죠. 이는 한참 후에 등장하는 포드주의에 이르러, 인간의 노동이 사회적 협상과 기업의 권력 경쟁을 통해, 그 사회적 의의가 점차 축소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많은 사회학자들은 그저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른 문명의 과실과 삶의 조건이 비약적 개선되었던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는 역설적이에도 인간의 원초적 노동력에 대한 하향적 재평가로 수정될 수밖에 없는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차츰 산업 전반에 도입되었던 '기계'들의 존재로 말입니다. 심지어 이러한 이행은 평범한 인간들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파고였고, 이 지점에서 저자인 코엔은 직접 인용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뉴딜 시대의 극적인 사회적 타협을 제외한다면 전통적인 노동 자체는 과하게 말해서, 종속적 지위로 격하당했다고 요약해 볼 수 있겠습니다.

코엔은 자신의 이 글에서 꽤 신중하면서도 특별한 시각을 독자들에게 제공하는데요. 과거 프로테스탄트 혁명을 거치면서, 전유럽 사회는 기존의 종교가 분리되는 세속화의 길을 걷게 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계몽주의가 세속화와 함께, 세계는 그 전과 다른 무언가를 추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분석합니다. 이는 인류에게 있어 본격적인 '진보'의 조건에 대한 사실상 물음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확장된 논증에서 인류가 종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자마자 계몽주의가 존재감을 드러내고, 이러한 변화된 상황이 소위 생산 수단의 발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진보'에 대한 감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종교 혁명이 거의 노예 상태에 다름 없었던, 인간에게 종교의 억압을 걷어내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어쩌면 막스 베버가 인식한 프로테스탄트 혁명의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그럼에도 뒤이어 나오는 "계몽주의는 전반적으로 물질적 진보 개념을 경계하는 태도를 유지했다"는 코엔의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흔히 (경제적) 합리성과 계몽주의와의 상관 관계를 논하는 수많은 학자들의 인식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 분석이기도 한데요. 더욱이 코엔은 후에 등장하는 걸물인, 애덤 스미스가 이 '진보'의 개념을 정신적 의미로 받아들일 생각을 못했다는 평가에 꽤나 신선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애덤 스미스는 일의 전문화가 노동자들의 도덕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판단해, 이들을 향한 도덕 교육이 사회적으로 지원되어야 한다고 여겼는데요. 이처럼 스미스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작은 면에서조차 상반된 인식이 존재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굳이 '도덕 감정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스미스에게는 노동이 인간을 예속하게 만드는 여느 '진보'에 대한 도덕적 쇠퇴를 우려했던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또한 코엔은 일종의 동어 반복일수도 있겠지만 후기 자본주의가 구축한 약육강식, 승자독식과 같은 불평등적인 분배에 대해, 비판을 가하면서,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위기에 놓인 중산층이 과연 '민주주의 이상'에 있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표합니다. 이는 후기 자본주의 이후, 녹록하지 않은 사회 환경에 따라, 점차 중산층의 감소로 이어지고 이들의 지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과연 민주주의는 온전할 것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것과 동일한 맥락으로 여겨지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이런 핵심 사항으로 발전된 후기 자본주의 이후의 모습이, 시장에서 소비를 해나가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식비, 주거비, 의복비, 교통비"가 소비의 대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에 시민이자 소비자인 우리가 어떠한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새삼 깨달을 수가 있었는데요. 이에 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를 인용한, 코엔은 "초고소득을 올리는 소수의 인원이 빈민층의 소비재를 무료로 만들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식으로 만사가 진행된다"는 문장으로 '시장의 구매'가 본질적으로 새로운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은, 실질적 소비에 대한 허황된 전망으로 가늠해 볼 수 있겠는데요. 이처럼 소비에 대한 진정한 차별, 시장에서의 그런 소비들이 단순히 판매를 넘어, 사회의 안정에 기여하는 일자리 창출로 매번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일종의 진실을 드러내게 만듭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허망한 구호에 익숙한 현대 사회와 그 양태에 대해, 저자는 르네 지라르를 인용하며, 소위 이중 구속 double blind 을 바탕으로 분석해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아버지가 아들을 향해 벌이는 모순된 명령 체계로, 우울하게도 이런 측면의 모순은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인간의 욕망과 자아 실현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장치로도 읽힙니다. 아버지나 아들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일방적 상황을 자초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결코 앞선 양자를 만족 시킬 수 없는 현실을 콕집어 냉소하는 것을 넘어, 이러한 진술이 오늘날 사회적 인정을 바라는 개인들의 욕구, 그리고 그것이 기반이 된 정체성 실현에 속지 않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를 달리 언급해본다면, "서구 사회를 가로지르는 정치적, 도덕적 위기는 성장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사실에 많은 빚을 지고 있거니와, 시장이 기반이 된 자본주의의 명백한 한계, 이를테면 돈과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코엔은 덴마크 모델을 일종의 검토할 만한 대안으로 보고 있었는데요. 바로 덴마크에 거울처럼 프랑스를 비춰, 자신의 조국이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고찰해 보고 있습니다. 과거 프랑스는 유구한 역사에서 평등을 중요한 가치로 여겼던 국가였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고 평가하고, 마치 "보수주의자들이 경제자유주의와 동맹을 맺어 좌파에 대항했던 것"처럼, 프랑스 역시 거듭된 세계화의 주축 국가로 나아갔다고 증명하고 있었는데요. 이들 프랑스인들이 남들과 비견했을 때, 스스로 평등하기를 원하지만, 다른 이기적인 측면에서 남들과 진정 평등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역설 자체는 세계화 시대의 개인주의적 욕망과 이기심의 추구가 그리는 세계가 무엇인지, 극명하게 설명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끝으로 저자는 글 후반부에서 프랑스의 퇴직연금제도의 불확실성과 빈민층을 게토화시키는 일련의 사회화 과정, 그리고 '족내혼'이라는 단어로 설명되는 비슷한 계급 간의 동질혼을 개선시켜 나가는 것이 후기 자본주의가 초래한 '사회적 분리'를 타파하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하고 있었는데요. 이런 프랑스의 과제는 서구 선진 국가들의 거의 동일한 (어두운) 유산으로 시민 사회가 계층과 계급으로 분리되는 상황을 더욱 고착화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의 파급은 거의 명백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후 몇 세대에 걸쳐, 그저 자본주의의 당면한 모순만으로는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파국'은 입 밖으로 내뱉는 것조차 두려운 일이지만, 여기서 분명한 점은 정치 또한 한 묶음으로 파멸에 이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앞선 '게토화'와 철저히 분리된 계급 간의 영역 고착은 바로 음울한 전망을 대변하는 소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도래할 진정한 정치의 위기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예측이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최종적으로 코엔이 후반부에 논증하는 소위 '과제들'은 분명 중대한 의미 내지는 의미심장한 전환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즉, "지속적인 고성장을 기대하지 않는 자기암시 요법보다는, 장기간의 성장 변화를 예측하는 일은 단 10년의 단위로도 불가능함을 받아들이고, 경제의 파란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고자 행동해야 한다"는 그의 조언은 우리 모두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과거 68혁명의 여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조르주 바타유에 대한 향수는 흡사 진보적 프랑스 지식인들의 전형으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바타유가 그동안 프랑스 지식인들에게 끼친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지 이 책을 통해서도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 변화에 떠밀려온 인류는 이런 유의 노력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며, 변화의 실질적 의미를 언제나 나중에야 깨닫곤 했다.

18세기 말에 멜서스는 인류 역사를 ‘식량이 풍부할 때 인간은 그 수를 불린다‘는 극도로 단순한 메커니즘으로 요약했다.

수치심의 지배를 받는 사회는 타인의 시선이 가하는 외부적 압력에 속박되기 마련이다.

금리 또한 추락하고, 득을 보는 것은 금융 혹은 부동산 자산뿐이다. 따라서 임금 디플레이션이 자산 가치 상승을 야기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첫 번째 변천은 막스 베버가 말하는, 사회의 주요 조직 원칙으로서 주술 혹은 신앙이 이성에 자리를 내주는 ‘세계의 탈마법화‘에 해당된다.

두 번째 근대성, 탈물질주의적인 근대성을 향한 희망은 더더욱 혹독한 현실에 격파당할 처지에 있었으며, 과거 모욕당했던 산업사회를 향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더는 과거의 권위가 아니라 자신의 미래 계획에 따라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이처럼 스스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순전히 인간만의 능력, 그리고 세상을 개선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리켜 루소는 ‘개선 가능성‘이라고 일컬었다.

경영자와 피고용자 간의 이익 담합을 일체 막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를 제정했다. 경영자를 임금노동자에서 제외한 뒤 그의 보수를 기업의 주식 성과에 연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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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 현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이일수 옮김 / 필로소픽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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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은 1925년, 폴란드 제2공화국의 포즈난에서 유대교를 맹신하지 않는 폴란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939년에 폴란드가 기습적으로 나치 독일의 공격을 받았을 때, 그의 가족은 동쪽으로 이주를 하게 됩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바우만은 소련이 통제하는 폴란드 제1군에 스스로 입대하여 정치 간부로 일하기도 했는데요. 그와중에 바우만은 콜베르크 전투와 베를린 전투에도 참전하게 됩니다. 이런 군사적 공로로 1945년 5월, 바우만은 용맹십자훈장을 받습니다. 폴란드 국가기록연구소 (IPN)에 따르면, 그는 1945년부터 1953년까지 우크라이나 반군과 폴란드 국토군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창설된 군사 정보 부대인 내부 보안대 (KBW)의 정치 장교이기도 했는데요. 이때의 이력은 평생동안 그를 따라다니게 됩니다. 이미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과 그 이후에도 자신이 공산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고 밝혔는데요. 이때의 이력은 어느 정도 베일에 가려져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그가 내부 보안대에 근무하는 동안 부친이 이스라엘로 이주하기 위해 바르샤바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에 접근한 후, 갑자기 불명예 제대에 이르게 되는데요. 바우만은 부친의 시오니즘적 성향을 공유하지 않았고, 실제로 강한 반시오니스트였기 때문에 갑자기 군에서 쫓겨난 이후,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군에서 제대한 이 시기 동안, 그는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1954년에는 바르셔바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68년까지 대학에 머무르게 됩니다. 언급된 1968년에는 폴란드에서 큰 정치적 위기가 발생하게 되는데요. 결국 같은 해, 3월 바우만은 교수직을 잃게 됩니다. 그런 연유로 1968년에 그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에서 강의하기 위해 조국인 폴란드를 떠나게 됩니다. 2년 뒤인, 1970년에 영국으로 건너가 리즈 대학에서 석좌 교수로 임용되고, 몇 차례의 논문 발표로 인해 영국 학계에서는 큰 명성을 얻게 됩니다. 이런 그의 학문 활동으로 말미암아 199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반세계화 운동과 그의 대안으로써의 정치철학적 요구에 바우만은 큰 영향을 끼치기 시작합니다. 바우만은 평생에 걸쳐, 금융 자본주의에 따른 노동자 계층의 붕괴,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 공동체 개념의 공동화, 전반적 사익 추구에 따른 사회의 식민화에 큰 사명을 갖고 연구를 지속해 나갔는데요. 바로 그의 사상적 원류가 된 '액체 근대', 혹은 '유동하는 근대'를 잇게한 이 논저는 원제, "Liquid Modernity"로 지난 2000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도 초도 번역은 같은 해인 2000년에 이뤄졌으나 현재는 절판되었고, 최근인 2022년, 다른 출판사에 의해 개정판이 나오기에 이릅니다. 다만 개정판 역시, 역자는 동일합니다.


2012년에 나온 개정판 서문이 실려 있는 이 논저는,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본질적 고찰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계몽주의적 함의가 포함되었던 예전의 '단단한 근대' 혹은 '고체 근대'가 상실한 사회적 기반 등을 설명한, '액체 근대'라는 설명은 당시 어느 사회학자들조차 개념화하지 못한 이론이기도 한데요. 예전의 근대가 어느 정도 인간 해방의 목적성을 자의반 타의반 갖고 있었다면 보다 추상적이고 복잡해진 인간 해방의 담론과 더불어, 자본주의가 우리 일상으로 녹아들면서, 스스로 노예가 되는 삶에 대한 바우만의 비판적 접근은 충분히 우리 시민들에게 깨달음을 전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이 점은 앞선 자본주의적 이행 내지는 신자유주의적 담론의 구축이 도출한 "모든 책임은 개인의 문제다"라는 전지구적 엘리트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이 원했던 사회 체제적 이행에 이익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전반적 인식은 그 자체로 불행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저는 총체적인 사익화 과정과 그에 따른 개인주의와 개인화가 뉴딜 이후의 복지 국가를 철회하면서 더 많은 자본의 이익을 거두기 위해, 국가에 로비를 한 자본가의 책임인지 아니면 자유주의가 보수주의와 결탁해,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것은 오로지 스스로의 몫'이라는 변형된 자유주의의 맥락 때문인지는 단언을 내릴 수는 없는데요. 다만, 오늘날의 이 첨예한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모순과 이것의 대안이 원천적으로 '개인'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막혀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 말하는 바우만의 집중적이고 누군가 보기에 따라 편집증적으로 느껴지는 대다수의 진술들이 얼마나 설득력을 갖고 있는지 누구나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엘빈 토플러의 축약된 주장처럼, 이런 거대한 흐름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이미 과거의 유산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인식했던 것처럼 근래의 '액체 근대'는 가벼움과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는 뉴딜 시대의 자본가와 노동자의 결합을 유기적으로 더 강화한 큰 정부의 존재도 그렇거니와, 기존의 체제가 차츰 후퇴하게 됨으로써, (경제적 요소를 포함한) 사회적 우위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명확해 졌다고 봐야 합니다. 즉, 바우만의 분석대로라면 부와 권력을 가진, 소위 상위 계층 혹은 지배 계급은 여전히 자신들의 자원을 바탕으로 '딱딱하고 균질한, 거의 흔들리지 않는 근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다른 계급과 일반 시민들은 과거 근대가 약속했던 사회적 이행과 그에 따른 공동체적 이익, 그리고 삶의 온존이 전반적으로 철회된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앞선 엘리트들의 면모는 2장의 '개인성'에서, "자원을 갖춘, 선택의 기술에서는 가히 장인이라 할 엘리트들의 사는 방식"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선택의 자유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던 밀턴 프리드먼이 보기에도 저런 모습은 가히 전형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바우만은 1장에서, "개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당신이 인생을 살고 일을 수행할 때 따를 만한 범례를 다른 개인들에게서 가져올 수 있을 뿐이며, 다른 예들이 아닌 바로 그 예를 신뢰하여 선택함으로써 얻은 결과에 대해서는 자신이 온전하게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고 에둘러 증언하고 있는데요. 바로 이 지점에는 1장에서 주요한 관점으로 논증되어, "오늘날의 현대는 해방 작업을 중간 계층과 밑바닥 계층에게 넘겨주는 의무 말고는, 그 어떤 '해방' 의무도 짊어지지 않은, 일종의 머리가 가벼워진 근대이다."라고 설명하는 이유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오늘날 사회적 지배 계급은 인간 해방에 대해 별반 관심이 없으며, 오로지 철저하게 자신들의 자원을 유지하고 사용하여, 자본주의가 원치 않게 초래할 수 있는 불확실성과 유동성을 방지하는 데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금 여기서 강조할 만한 것은 개인화는 하나의 정해진 운명이지 선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마치 자본주의가 만든 일종의 신념과도 같은 부분입니다. (물론 이 진술은 어느 정도 디스토피아적 결말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이는 "법률상으로 개인이 된다는 것은 그 개인의 비극에 책임을 질 다른 사람이란 없고, 개인의 실패는 오직 그 자신의 방만함과 태만에 원인이 있으며, 죽어라 노력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뼈저린 깨달음"으로 귀결되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개인성과 개인화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합리주의이며, 근본적으로 강고했던 이런 메커니즘은 지금도 역시, 흔들림이 없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뒤이어 나오는 '사익에 의한 공익의 식민지화'라는 표현이 실질적으로 크게 와닿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2장에서 보여지는 액체 현대의 진면목이자 큰 본질인, '마거릿 대처의 저 악명 높은 구호'도 빼놓을 수가 없을 텐데요. 그녀의 '사회 같은 것은 없다'는 말은 바우만의 분석대로, 변화하는 자본주의 속성에 대한 기민한 통찰인 동시에 의도성이 있는 선언이자 자기 실현적 예언이라는 목적에 비로소 이어지게 됩니다. 우스개 소리로 과거 마거릿 대처가 얼마나 루퍼트 머독의 영향력 하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선 논리들을 그저 정치적 풍문으로만 치부될 수는 없을 겁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신념이 대처와 레이건에게 얼마나 가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바우만의 통찰대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결탁'임은 거의 분명해 보이니까요.


이미 슬라보예 지젝도 예견했던 바대로 우리가 지나온 이 시대는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강력한 자본주의적 소비 사회에 포획되어 있습니다. 바우만의 유작으로 여겨지는 '레트로토피아'에서도 그랬고, '소비하는 삶'을 비평한 다른 논저에서도 그렇듯, 이미 시민으로서의 삶과 소비를 하는 개인으로서의 소비 중심주의의 양 경계가 무너졌고 오로지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가치 실현과 소비적 덕목에만 집중하는 오늘날 개인들의 모습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앞서, 침중한 의미의 "공익이 사익의 식민지화'에 이르렀다는 것을 빗대어 말하는 것으로도 여겨지는데요. 이를 다른 시선에서 봤을 때, 콜린 크라우치가 경고했던대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의 시녀가 되었다는 점은 명백하고, 이렇게 도출되는 결론도 앞선 진술과 거의 일맥상통합니다. 이런 소비적 시대의 메타포이기도 한, "소비적 세상에서는 인간에게 가능성이 무한히 열려 있고, 매물로 나와 있는 매력적 목표들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메시아적 일례들과 연결된 이 다음의 논증들은 우리가 얼마나 일방적이고 무비판적인 시대에 몸을 담고 있는지 여실히 깨닫게 해주는데요. 우리가 겪는 삶의 경주에서 소비가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자본주의가 더 강한 권력을 유지한다는 점,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본이 이익을 산출하고 있다는 부분은 앞으로 미래의 수십 세대가 여전히 맞이할 세계로도 읽힙니다. 일전에도 바우만 소비와 개인의 자아 실현이 자본주의 하에서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논증한 바가 있었는데요. 이처럼 사적인 영역에서의 자아 성취가 삶의 주요 목표가 되었으며, 이러한 맥락의 발전 과정은 시대를 넘어 더욱 강화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소비 그 이상으로 말이죠.


이처럼 정복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근대, 그것이 주가 된 근대의 유동성은 그저 외연을 가진 허울 좋은 실체로만 작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수의 개인들에게는 역설적이게도 쫓고 쫓기는 게임이 되는 것은 분명 예정된 일이고, 2장과 3장에 걸쳐, 증명되는 가운데, 소비와 소비주의가 이끄는 일종의 '게임의 룰'이 인간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하는 것을 넘어, 어느새 우리도 모르게 매달리게 된다는 점은 꽤나 두려운 모습입니다. 원칙적으로 이렇게 점철되어 왔던 체제의 확고한 이행은 아마도 정치가 제자리를 지키고 제 역할을 해내었다면 크게 달라졌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공익에 대한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여 인간이 그저 소비 만능주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재교육에 나서는 등의 여러가지 대안을 토론할 수는 여지는 충분했는데요. 그렇지만 지그문트 바우만의 회의적 시선처럼, 심지어 "우리 주변에는 이미 자신의 지갑 사정에 따라 투표를 했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이는 자본주의 하에 놓여진 민주 정치가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 보여주는 지표이자, 액체 근대가 왜 현실 정치를 붕괴시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인데요. 뒤이어 나오는 공동체와 민족주의에 대한 진술에서조차 오늘날 힘을 얻고 있는 '극단주의 정치', 그 예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오늘날 정치가 예전만큼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점도 우리는 주목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바우만의 말대로 개인과 개인주의에 대한 사실상의 교조주의화와 이것을 아우르는 사익 추구와 함께 맞물린 소비주의 전반의 결합이 자본주의의 필연적 요소로 몰고 가는 것은 많은 시민들 사이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사회적 이행이든 간에 비판을 막을 것은 없고, 또한 마땅한 비판이 있어야만 기본적 사회라든지 혹은 공동체에 대한 인식, 더 나아가 공익에 대한 관념이 제자리를 찾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우리가 두 다리를 딛고 서 있는 사회 전반에는 무엇보다 '비판의 성역'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다시금 불행한 모멘텀이긴 하지만, 우리가 동굴 안의 원시인처럼, 스스로 자기 혐오에 빠져 이러한 액체 근대가 초래한 실상에 눈을 감게 된 것은 하나의 비극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대처가 이러한 사회적 현실에 몸을 담고 있는 시민들을 보고 무덤에서 크게 웃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근대가 추구했던 건전한 공동체주의가 근본적으로 내파되었다는 진술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의 엘리트들이 오로지 자신만 잘살면 된다는 이데올로기를 확신하며, 그러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비웃을 수 있는 것은 그 자체로 공동체 관념이 무너졌기 때문일겁니다. 과거 데일 카네기의 언급대로 돈을 가진 부유층들이 도덕의 문제에서 자유로워진다면 그 자신에게는 불행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공감합니다.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이것이 드러나는 일상을 원천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는 일부 계층들의 태도는 순진할 정도로 위험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모르겠습니다 그저 자신이 살고 있는 소수의 지역에 거대한 장벽과 무장한 경비를 세워, 또 다른 사회를 만드려는 계획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안위에 도움이 될지는 거의 자명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러한 행동들이 이미 선진국의 여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고 이렇듯 바우만의 경고대로, 빈민층을 과거 게토로 몰아내는 식의 파시즘이 사회 곳곳에서 대두할 가능성도 그만큼 배제할 수 없을 겁니다. 이는 액체 근대가 드러내는 가장 파멸적인 측면의 모순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어지는 5장의 도입부이기도 한, "결국 민족국가의 성공은 자기 주장을 하는 여러 공동체들을 억압한 덕택이다"는 문장은 액체 근대에서 도드라진 민족주의의 어긋난 면을 드러내는데요. 이에 바우만이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역사의 뒤안길에 놓인 공동체주의는 현대 삶의 가속화되는 '액화'에 대한 지극히 예상 가능한 반응, 개인의 자유와 안정 사이의 깊어만 가는 부조화에 대한 반응"으로 사실상 귀결되었습니다. 그동안 액체 근대화의 상황에서 인간 사이의 유대는 가혹하리 만큼 유리되어 왔는데요. 단순히 같은 이웃인 시민에 대한 책임의 부재를 언급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개인화된 신자유주의 시대에 다시금 공동체주의가 주목 받고 있는 현실 자체는 아이러니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를 캘리니코스식으로 풀어보면, 예를 들어 인종과 종교와 같은 교집합으로 구성된 공동체, 그리고 이를 기조로 확산된 민족주의가 유럽에 이민자들이 증가하면서부터, 심각한 변화를 맞게 되었습니다. 물론 과거 세계 2차 대전 중에 보였던 참혹한 전체주의적 망령은 아니라 하더라도 지금 지속적으로 보여지는 저들의 모습은 우려할 만하다고 여겨집니다. 기존 사회에 이민으로 촉발된 이질적인 공동체의 등장과 더이상 공화주의적인 공동체 담론으로 섞이지 못하는 한 국가 내의 성질이 다른 여러 개별 공동체의 등장은 캘리니코스의 말마따나, 자본주의의 모순이자 심각한 문제였던 경제적 불평등의 분노를 다른 집단에게 돌리게 되는 폭력이 되었는데요. 만약 우리에게 몇 세대에 걸쳐 이식된 근대성이 유동하는 그것이 아니라, 사유하고 행동하는 삶이 기반이 된 고체의 근대성이었다면 어느 정도 조정과 분별이 가능했을 겁니다. 저는 개인주의와 그런 개인화로 촉발된 사회 체제의 변혁이 마치 사익에 의한 공익의 식민지화를 맞은 것처럼, 공동체주의 자체가 철지난 이상주의로 취급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신자유주의자들이 읊듯, 타인을 위한 공동체나 그런 인식 전반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것을 넘어, 자유 시장에 해가 되지 않는 자본의 유연성을 위한 '사회 대개조'에 전자가 확연히 방해가 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일전에 읽은 한스베르너 진의 '카지노 자본주의'의 비평대로 바우만 역시, 소위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카지노 문화'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가볍게 말한다면 인생을 한방의 잭팟에 맡기는 것은 그만큼 위험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 세계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쉽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가 인간을 그저 소비의 주체로 몰아간다면 흥청망청 살아가며 이상을 잃은 삶의 자체는 누구에게는 천국이고, 다른 누구에게는 지옥과 다름 없을 겁니다. 그래서 바우만은 1장 말미에서, "진보주의자를 비롯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그 진정한 해방에 '공적 영역'과 '공적 권력'이 더욱 요청된다고"고 강조했는데요. 이제는 사적 영역 만큼이나 공적 영역을 되살리는 일에 시민들이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요청되고 이를 지원하는 것이 정치의 새로운 사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지리멸렬했던 진보주의를 여기서 새삼 꺼내고 싶지는 않지만, 과거로부터 이어진 진보주의 운동 자체가 공적인 영역의 책임을 잃어버린 점이 진보가 사회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된 연유일 겁니다. 이와는 별개로 바우만은 우리에게 한 가지 경고를 하고 있었는데요. 전세계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약하고 있는 전지구적 엘리트들이 국가의 경계나 사회의 다양성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이 소유한 돈과 권력의 힘으로 세계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는 5장 이후의 현실적 논증들은 중대한 정치적 의미로 여겨집니다. 자유 진영의 필연적인 세계화 운동은 바로 이러한 이면을 애초에 내포하고 있던 게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이처럼 바우만의 핵심 사상이 잘 담겨 있는 이 논저는 문제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파헤치는 동시에, 우리에게 진지한 각성을 요구하고, 이후 정치가 붕괴되어 발생하는 배타적 민족주의 다음의 세계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들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그가 바라보는 현실 인식은 대체로 암울한 측면이 있지만 그만큼 더 많은 시민의 각성과 권력과 시스템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후반부의 요지는 충분히 설득력을 답보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액체 근대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스스로 현실을 숙고하는 수단이 되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설명한, 자본주의적 대안 찾기에 바우만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근본 이유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 점점 더 공급이 부족해지는 것은 우리가 순응하고 안정적 지향점으로 선택할 수 있는, 그리하여 우리 자신을 인도해줄 수 있는 행동 유형들, 규약들, 규칙들이다.

우리는 영토권과 정착의 원리에 가해지는 유목주의의 복수를 목격하고 있다. 유동적 근대 단계에서는 다수의 정착한 사람들이 유목적이고 탈영토적인 엘리트들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그러나 지식인들을 근심케 하는 더욱 암울한 예감은, 자유를 실행하는 데 야기될 법한 여러 곤경을 놓고 볼 때, 사람들이 자유로움 자체를 싫어하고 해방의 전망에 오히려 분노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에밀 뒤르켐은 그러한 홉스주의적 관점을 하나의 포괄적 사회철학으로 발전시켰는데, 그 철학에 따르면 가장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만든, 가혹한 형벌체제가 뒷받침하는 ‘규범‘이, 가장 끔찍한 두려움과 대상이었던 노예 제도로부터 인간을 진정으로 해방시켰다는 것이다.

‘사적인 것들‘을 식민지화하여 ‘공적인 것‘이 시작된다는 말은 이제 옳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사적인 것들이야말로, 사적 관심과 사적 걱정, 사적 추구의 언어로 온전히 표현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내몰아버리면서 공적 공간을 식민화하고 있다.

오늘날 진정한 해방에는 ‘공적 영역‘과 ‘공적 권력‘의 필요성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요청된다. 사적인 것들이 침해하지 못하도록 보호가 절실해진 쪽은 이제 공적 영역이 되었다.

우리는 인간의 합리적 능력이라는 것이 감정적 영향들과 또 그만큼 비합리적인 성향 때문에 끊임없이 침식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목적에 대한 이의 제기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의혹을 던질 수도 있겠다.

정체성의 헐겁고 ‘연합적‘인 위상, ‘쇼핑하고 다닐‘ 기회, 우리의 ‘진정한 자아‘를 고르고 나눌 수 있는 기회,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오늘날 소비자 사회에서는 자유를 의미하게 되었다.

타인의 악의적 의도와 사악한 음모를 탓하며 자신들의 불행과 수치스러운 패배, 삶의 좌절을 설명하는데 열심인 사람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늘 넘치도록 많았다.

동질성에 대한 지향이, 차이를 척결하려는 노력이 효과적일수록, 이방인들에 대할 때 편안함을 느끼기 어렵게 되고 차이는 더욱더 위협적이 되며 이것이 낳는 불안은 더욱 깊어지고 강렬해진다.

사회 분화가 시작된 이래 오늘날 영구적이고 파괴할 수 없게 된 사회 분화의 핵심적 토대는 즉시성에 접근하는 데서의 차별성이다.

계몽주의 유산을 자유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사태를 잘못 파악한 것이거나 오도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은 언제나 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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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20대는 학교와 동기들, 그리고 술 보다는 오로지 '헌책방'에 있었습니다. 1997년부터 2003년까지는 서울에도 제법 많은 헌책방들이 존재했습니다. 제가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좀 특별한 사연이 있는데요. 당시에 헌책방 모임에서 만난 어느 분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서울대 사회학과에 재학중으로 저보다도 그저 몇 살 위였지만 정말로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아주 다방면의 지식을 갖고 있었죠. 그래서 그때는 "저 형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헌책방을 다니기 시작한 초기에는 다 읽지도 못할 정도로 많은 책을 사 모았습니다. 알바비와 용돈의 거의 대부분이 책을 사모으는데 쓰였죠. 덕분에 옷도 면 티셔츠 한장과 면바지 딱 하나로 충분했고, 돈 천원도 귀한 그 시절에 매우 궁핍한 시간을 웃으며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끔찍합니다. 후후.


갓 성인이 된 무렵부터 책을 잡다보니 쉽게 그만 둘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책을 읽으셨던 것도 아니고 가정 분위기도 책과는 거리가 멀었죠. 그때 친구들이 책 좀 그만 읽고 밖에 좀 나가라고 핀잔을 주던 기억도 나고, 군 입대를 했다가 훈련 중 부상으로 군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조정래의 아리랑 전권이 눈에 보여 반가운 나머지 미친듯이 읽었던 기억도 납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그럼에도 책은 항상 저와 함께였습니다.


얼마전 부산 여행을 갔을 때, 보수동 책방 골목을 들르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헌책방은 20대의 젊은 시절을 고스란히 바친, 집보다 가까운 존재였죠. 그렇게 퀘퀘한 냄새와 먼지를 뒤집어 쓰면서 책방의 서가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책 주인장 분들께 몇 권의 책을 보여주며 책값을 여쭤보니, 알라딘 중고서점의 책값과 별반 차이가 없더군요. 보수동을 처음 방문했던 2003년만해도 만원이면 몇권이나 살 수 있었는데, 실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판매하는 책값이 비싸서가 아니라 예전에 경험했던 헌책방의 모습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비즈니스적 측면의 그 자체였기 때문일겁니다. 그러니까 그 돈이면 그냥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주문을 해야겠다는 현실적 절충이라고 해야할까요.


예전에 주변 지인들이 저에게, "그렇게 많은 책을 읽어 너의 삶이 바뀌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제법 받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무엇보다 세상에 눈이 떴다고 해야할까요. 누군가에 이익으로 이용당하는 지식과 그 본질에 대해 이제는 그 실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머리가 명민하고 영리한 자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는지도 익히 알게 되었죠. 무엇보다 어느 사람의 기름칠이 된 언변에 쉽게 넘어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교적 친밀한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중하고 겸손을 표명하며,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일겁니다. 요약하자면 그동한 읽었던 글줄 때문에 저는 그야말로 음흉한 인간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개인적으로 SNS를 하지 않으니 카페에서 책을 읽던 중에, 스치듯 지나가는 생각들이 있어 제 서재에 몇자 적어 보게 되었습니다. 글을 다 쓰고 읽어보니 얼핏 부끄러운 마음도 듭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지금보다 더 낯뜨거운 생각이 들면 글을 없애 버릴 수도 있지만 옛 추억을 떠올리는 기분으로 올려 봅니다. 저의 20대가 따뜻하고 아름다웠는지는 불확실하지만 헌책방을 다녔던 기억 만큼은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기억을 반추하며 오랫동안 단물을 빠는 것이 인간의 고집적인 측면이라고 하지요. 저 역시 그런 범주에 하등 벗어나지 않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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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andante 2025-09-06 0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을 참 좋아하지만 책 좋아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긴 힘들더군요. 책은 읽었으되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의지도 능력도 없으면서 주절주절 말만 앞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적벽의 제갈량 앞에서 넌 무슨 책을 읽고 뭘 배웠길래 그다지도 자신만만하고 오만하냐고 몰아붙이는 백면서생들 보는 느낌입니다.

베터라이프 2025-09-06 15:10   좋아요 1 | URL
간혹 글을 많이 읽는 사람들중에는 오만한 경우도 볼 수 있지요. 그렇지만 책과 가까운 분들은 대부분 겸손한 편이었습니다. 쓰신 내용보다는 현대 사회에서도 부와 권력을 가진 계급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책과 깊은 사고를 경험하는 것을 별로 원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자기들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자유주의적 이행을 수용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뿌리깊은 지식과 그 활용에
대한 폐쇄적 사고가 저들에게 있는 것이죠. 그래서 책을 읽는 사람들과 그런 연유로 통찰에 가까워지는 비권력층에 대한 분노는 단순히 음모론과 같은 것이 아닐겁니다. 저도 우드로 윌슨의 사례를 알고 있어 책만 읽은 편협한 이상주의자들에 대해 연민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과 성찰, 그리고 이 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글을 읽으셨으면 합니다 ^^

Comandante 2025-09-07 12:01   좋아요 1 | URL
전 앞으로도 책을 꾸준히 읽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세상을 단 한치도 낫게 바꿀 순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 장애인, 가난한 사람들, 굶는 사람들, 나이 들어 힘 없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실천이지요. 본인이 뭘 말하고 쓰는지도 모르면서 나불거리는 사람들은 정말 혐오스럽습니다.

베터라이프 2025-09-07 19:24   좋아요 1 | URL
모두가 아는 것을 그대로 실천하며 살았으면 이 세상은 그나마 살만 했겠죠. 인식과 행동의 괴리는 인간의 근원적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내가 남들과 더 많이 알아서 그런 지적 우월 보다는 글이 분명 마음을 두텁게 만들고 눈을 개안시키는 건 분명합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교육한 사람이 더 많아지고 이제는 행동해야겠다는 결심이 많아지면 세상은 좋아지는 거겠죠. 그런 연유로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향해 응원하고 용기를 북돋아야하는 시기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