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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들끓는다 - 전지구적으로 위협받는 민주주의를 위하여
놈 촘스키 지음, 천지현 옮김, 데이비드 버사미언 인터뷰 / 창비 / 2019년 5월
평점 :
전세계 현존하는 지식인들 중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실천적 지식인이자, 언어철학자, 정치운동가 및 사회비평가로서 큰 명성을 쌓은 노엄 촘스키와 아르메니아계 미국 언론인인 데이비드 바사미언의 최근 출간된 대담집인 ‘세계는 들끓는다’를 일독했습니다. 소개할 이 책은 촘스키와 바사미언의 문답집으로 주로 바사미언이 정치, 사회, 외교 등의 질문과 일종의 화두를 던지면 촘스키가 이에 응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난 2017년에 출간된 원제는 ‘Global Discontents : Conversations on the Rising Threat to Democracy’로, 국내에는 최근 번역 출간 되었습니다. 원서와 관련하여 약간 흥미로운 점은 국내 번역된 책의 표지는 촘스키를 전면에 두고 있으나, 2017년에 미국에서 출판된 책은 데이비드 바사미언의 저작으로 촘스키와의 대담이 실린것으로 나타나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촘스키와 바사미언의 이런 작업은 전작인 ‘권력체제’에 이어 두번째로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우선 촘스키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일화 한가지는 그가 오랫동안 CIA의 감시를 받아왔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일일텐데요. 세계 최고라 자부하는 정보기관의 감시와 사찰을 받은 촘스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신을 전혀 굽히지 않았다는 것은 대단할 정도입니다. 쥘리앙 방다가 비판한 지식인들의 행태를 사뭇 유추해 본다면 촘스키라는 사례는 참으로 대단하다고 여겨집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책은 총 12장의 큰 틀로서의 주제로 여러 맥락을 통해 최근까지 일어났던 주요한 사건들과 그것들의 큰 틀과 해석상의 배경이 되는 연관된 문제들까지 두루 살펴보는 장이 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만나서 대담을 나눈 시간적 순서는 2013년부터 최근인 2017년까지입니다.
여기에 중요하게 서술되는 문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이 조장한 것으로 여겨지는 ISIS를 비롯한 시리아, 이집트, 레바논, 사우디 아라비아 등의 중동 문제와 같이 포함되는 이란, 이스라엘, 터키 등의 서아시아의 국제 갈등과 유럽의 난민 문제와 오늘날 대두하고 있는 극우 세력의 문제, 반대로 미국 국내 정치에서 변질된 공화당과 거대한 포퓰리스트 대통령 트럼프, 민주주의, 보편적 투표권리 등을 거의 가감없이 다루고 있습니다.
글의 맨 처음에는 에드워드 스노든이 촉발한 국가 감시 문제로 전면적인 기술 발달로 인한 국가 권력의 다층적인 감시 체계가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는지 고찰해보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시민의 연대와 대화만이 기존의 권력체계가 자신들을 위해 공고화하려는 체제와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정치는 소위 ‘금권정치’로 더 격하게 말하자면 ‘도둑정치’와 다름없다고 말합니다. 1980년대의 ‘신자유주의의 맹공’은 복지국가의 해체를 불러일으켰고, 유럽의 경우에는 진보와 좌파 세력이 사회복지 축소와 시민의 안전 보장 철회에 경제 발전 문제를 결부시켜 종래의 정책을 후퇴함으로써, 오늘날 난민의 극도의 혐오 이슈를 불러일으키는 ‘극우 세력’의 정치 무대 등장을 불러일으켰다고 판단합니다. 촘스키의 입을 빌리자면, “유럽이 겪어온 야만적 경제 프로그램은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손상해 버렸다”고 평가하고 이것은 그동안 성공적인 민주주의의 이행을 지속해 왔다는 기존의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유럽 전체를 민주주의 블럭으로 놓고 봤을 때, 경제 자유화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의 이념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 일으켰는지는 매우 명백합니다.
다시 중동 문제로 시선을 돌려보면, 과거 남아공이 극렬한 인종차별정책은 ‘아파르헤이트’로 인해 국제 무대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을 때, 당시 남아공 외교가는 다른 국가들의 지지는 사실상 필요 없으나, 다만 미국의 공고한 지지는 중요하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문제는 과거 남아공과 미국과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국제 무대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미국의 행태와 과거 남아공에 대한 지지는 유사합니다. 여기에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두고 미국이 벌이는 외교 정책과 우호 관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라크와 이란, 터키의 쿠르드족 문제와 관련해 과거 이들에 이란의 공격과 이라크의 화생방 테러, 지금의 터키 당국이 쿠르드 족에 벌이는 노골적인 견제도 특히 교훈으로 삼을 만합니다. 국제 정치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특히 이 책에서 나온 헨리 키신저의 언급대로 ‘군사 작전과 자선 사업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은 자위력이 없는 민족에게 국제 사회가 어떠한 역할을 해왔는지 과거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사실상 오사마 빈 라덴을 미국이 만들어냈던 것처럼, 쿠르드족도 장기말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오늘날 미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닌 트럼프를 비롯한 ‘포퓰리즘’의 대두에서 촘스키는 현재의 미국 대통령을 뭔가 이데올로기의 현상으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고 밝힙니다. 즉, “트럼프에게 무슨 이데올로기 같은 것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는 그의 판단은 트럼프 내면의 강고한 이념이 존재하고 이것이 과거 히틀러와 같은 전체주의로 갈 가능성을 두고 그를 해석하는 것은 현실을 호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듯 합니다. 즉, 트럼프가 대선 전에 월스트리트에 존재하는 수많은 경제인들에게 ‘금융권력’에 대한 광범위한 경고를 내건 것으로 추측된 것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월스트리트 출신의 금융인들을 자신의 백악관에 들임으로써, 그가 어떠한 사고 체계를 갖고 있는지 판단하게 합니다. 다만, 그는 현시점의 미국 정치에서 문제는 미국에는 계급 정치를 할 만한 정당이 없다는 것이며, 공화당의 정치는 20년전보다는 더 우경화 내지는 금권정치화가 되어 소위 티파티 멤버들에게 ‘이스라엘을 방어하는 것이 신의 자손들이 마땅히 맡아야 되는 책무와 같다’는 종교적이고 교조적인 형태의 정치 변질로 나아가는 현상이 더 위험하다고 보는 듯 했습니다. 아마도 그로서도 포퓰리즘 자체가 전체주의로 발전하는 가능성은 현실에서 희박하다고 보는 거겠죠. 다만, 포퓰리즘 자체가 이런 추세로 간다면 민주주의를 파괴할 가능성이 높고, 그런 측면에서 도널드 트럼프라는 개인보다 미국의 극우 포퓰리즘인 티파티의 구호가 더욱 위험한 것입니다. 티파티는 그동안 진보정치와 좌파를 격멸의 대상으로 여겼던 것처럼 극우 포퓰리즘이 어떠한 문제를 야기할 것인가는 단순한 위험 정도가 아니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촘스키의 건강에 찬사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기도 했습니다. 부부와의 관계가 좋다는 그의 고백도 듣기에 좋았고, 무엇보다 별다른 운동도 하지 않는데 그렇게 잔병치레 없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에 놀랍기도 합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을 떠나 보낸 지금 시점에서 노엄 촘스키가 아직도 생존해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싶습니다. 2010년에 그와 비슷한 양심을 가진 하워드 진이 타계했다고 들었을 때, 꽤 낙심한 바가 있었는데요. 우리에게는 아직도 돌아온 발걸음 뒤를 살펴봐 줄 사심없는 현인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리를 빌어 그의 건강을 빌어봅니다.
“경제 권력이 집중되면 그 자연스러운 결과로 제대로 기능하는 민주주의는 침식을 겪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