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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케넌의 미국 외교 50년 - 세계대전에서 냉전까지, 20세기 미국 외교 전략의 불편한 진실
조지 F. 케넌 지음, 유강은 옮김 / 가람기획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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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미소간의 냉전이 첨예하게 전개될 시기에 소위 ‘냉전의 아버지’ 혹은 ‘냉전의 설계자’ 라는 평가로 유명했고, 미국 외교 역사상 현재에도 중요한 평가를 받는 조지 F. 케넌의 강연록을 엮은 이 책을 일독했습니다. 원제는 American Diplomacy 인데요. 지난 2012년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이듬해인 2013년 가람기획에서 한국어판으로 최초 번역을 했습니다. 저에게는 이 가람기획이라는 출판사가 내심 반가운데요. 제 서가에도 역사와 관련한 이 출판사의 책들이 제법 꽂혀있습니다. 지난 대학 시절에 관심깊게 읽었던 여러 역사물이 이 출판사의 출판물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유명한 존 J. 미어샤이머가 친히 서문을 썼는데요. 케넌의 이 책은 엄밀히 따지면 일종의 연구물일 수는 없지만, 강연록의 형태임에도 꽤나 지난 사반세기의 국제 정치와 관련하여 꽤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얼마전에 리뷰했던 리처드 돕스의 ‘1945’에서도 짧게 이 케넌이 언급되어 나오지만, 과거 헨리 키신저와 같이 국제 정치에서 면밀한 현실주의자로 개인적으로 그를 해석하고 있었는데요.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이와같은 제 생각이 조금 짧지 않았나 싶습니다. 국제 정치를 대하는 이들을 크게 자유주의자와 현실주의자로 나뉜다면 이 책에서 보여지는 케넌은 엄밀히 완벽한 현실주의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글의 1부는 찰스 R. 월그린 재단에서의 강연을 실고 있는데요. 크게 6개의 부분으로 1898년 대 스페인 전쟁과 아편전쟁 즈음에 중국에 대한 서구 열강의 침탈의 시기,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 후의 일본의 대두, 양차 대전, 그리고 짧은 현대 세계의 외교를 담고 있습니다. 찬찬히 소개를 해 드리자면, 1898년 스페인과의 짧은 전쟁 당시 쿠바의 정권 사태와 메인호의 침몰로 인한 신속한 전쟁, 그리고 그 결과로 필리핀을 스페인으로부터 양도 받는데요. 케넌은 이 상황을 적나라하게 서술합니다. 당시 미국인들이 다소 제국주의적 분위기의 열망에서 시급하지 않은 필리핀을 손에 넣고, 아시아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였던 필리핀을 병합한 것이 과연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었는지, 이미 태평양의 거점으로 하와이를 두고 있으면서 앞으로 전개될지 모르는 중국 진출에 대한 거점지로 필리핀을 택하고 그것을 정당화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면이 분명 있다고 보고 있는데요. 하와이를 점령하면서 과거 아메리카 원주민을 나치의 유대인 청소만큼 적극적으로 격멸하고 제거하는 방식으로 답습해 오늘날 “무기력하고 치욕적인. 관광객들의 볼거리로 전락시킨 것”으로 히틀러의 독일과는 달리 민주주의의 미국은 설사 패망하고 좌절하더라도 최소한 반성할 수 있는 기회는 있을 것이다라고 그가 말하는 것은 진정성이 있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서구 열강의 침탈을 받을 찰나에 미국이 개입해 ‘문호개방’이라는 기본적 조건을 설정해 관리한 사실이라든지,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 이후 그 지역에서의 일본의 기득권과 영향력을 인정했지만 미국이 추구하는 아시아 지역에서의 목표는 결국 2차대전 이후 일본을 중국과 만주, 한국에서 쫓아내는 것으로 달성했는데 베를린의 독일과는 어떻게 도쿄가 그 전후처리가 달랐는지에 대해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태평양을 내해로 여기는 미국인들이 일본을 자신들의 영향력에 두고 소련을 상대하는 것이 그들의 이익에 부합되는 것인데, 그것을 굳이 지정학적인 관점으로 이해시키는 것은 뻔히 보이는 것이긴 합니다만 이 부분에서 케넌은 명확히 ‘미국의 전통적인 민주주의의 설계자’의 입장에서 전후의 일본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열강의 공세에서 무력했던 중국을 정당한 무역 권리라는 이름으로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던 미국의 입장이 바로 케넌이 말하는 방식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미국인들에게 보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민주주의적 가치와 옹호가 그러한 사고방식의 근본 같습니다.

그리고 양차대전에 대한 입장에서도 ‘1차대전은 무모한 살육의 한 가운데 있던 파괴적 전쟁’ 이었고, ‘2차대전은 독일을 바꾸기 위한 싸움, 독일의 행동을 바로잡고, 독일인들을 다르게 만들기 위한 것’ 으로 이미 뮌헨 협정 이전에 영국과 프랑스와 미국이 관여하여 ‘역겨웠던 히틀러 정권’을 유하게 만들 수 있었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고, 오로지 무조건적인 항복과 그를 위한 무차별적인 나치 독일과의 총동원적인 전쟁이 ‘무조건 정의로운 전쟁 만은 아니었다’는 케넌의 평가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 전쟁과 케네디 정부 하의 쿠바 사태에서 핵무기 사용을 입에 담았던 ‘커티스 르메이’ 와는 달리 조지 케넌은 원칙주의적이고 도덕적인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이는 키신저와도 다른 부분입니다. 양차대전 이후 소련을 상대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럽고 숙고하는 자세로 봉쇄에 나서야 한다는 것과 처칠에 이어 다음 영국 수상에 오른 ‘사회주의자’ 애틀리가 소련을 극도로 혐오했던 것과는 달리 케넌은 공산주의에 대한 아주 세밀한 분석과 소련 자체를 독재 권력에 준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미국 정부가 적절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도 케넌의 실용주의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글 말미에 아이젠하워와 마찬가지로 ‘군산복합체’에 대한 일종의 우려와 경고, 미국 내부에서 불타오를 수도 있는 막연한 애국주의 등에도 경고를 하는 것에서 그가 원칙주의적 입장에 서 있는 것으로 보여지지만, 반대로 여기에 보이는 도덕과 법치주의에 너무 몰두하지 말고 국익을 고려하고, 너무 이상주의에 몰입하지 말고, 세력 균형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등의 주장들은 그가 기본적인 현실주의자의 표면도 보였습니다. 다만, 과거 태프트-가쓰라 밀약을 일정부분 인정했다는 측면과 세력 안정을 위해 1차대전 이후의 일본의 기득권을 인용한 것은 우리로서는 유쾌하지 않은 부분일겁니다. 개개인에 따라 이 책의 여러 주장들에 대해 호불호나 상반된 평가가 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그림에서 미국의 외교와 정치가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는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곁가지이긴 하지만 케넌이 생각하는 외교와 국제정치에 대한 일면을 또 엿볼 수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저에게는 꽤 정형화되어 있던 그간 케넌의 이미지가 (일정 부분) 제대로 이해되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앞으로 그와 관련된 책들을 좀 더 찾아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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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생각 - 오늘 우리에게 한나 아렌트는 무엇을 말하는가 My Little Library 1
김선욱 지음 / 한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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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에게 한나 아렌트는 무엇을 말하는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이자, 한국아렌트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선욱 선생이 쓴 글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와 관련된 유일하고 고유한 해석과 정치철학과 관련된 통찰력으로 유명한데요. 개인적으로 저에게는 기다란 담배 연기와 함께 흑백으로 잡힌 한나 아렌트의 사진이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대학 시절엔 얼마간 한나 아렌트에 매료되어 있었는데요. 인간의 조건과 전체주의의 기원은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있습니다.

일단 김선욱 선생의 이 얇은 글은 지난 2017년 촛불집회와 전체주의, 정치적인 것 그리고 민주주의에 관한 한나 아렌트의 생각을 여기저기에 버무린 것인데요. 1장부터 15장까지의 소제목들로 이루어진 각각의 주제들은 독립되어 있는 듯 하면서도 서로 연계되어 이해를 돕고, 이러한 지류들은 결국 민주주의라는 본류를 향해 모여집니다. 인간의 복수성이 인간은 개성을 가진 존재이고 인간은 개성을 표현하고 싶어하고, 개성이 억압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을 뜻하는데, 전체주의가 이러한 개인들의 개성들을 억압하고 악화로 일원화시키며, 국민들의 일방적인 복종을 강요해 결국에는 모두가 참혹하게 불행지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아이히만과 같은 기계적 복종의 사례가 ‘악의 평범성 내지는 악의 일상성을 대변하는데 이것은 사회와 국가를 이루는 개인들이 사고를 하지 않음에 기인한다고 아렌트의 말을 빌려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독재나 아주 사악한 현상과도 어울리거나 화해해야 한다는 아렌트의 말은 그런 세계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떤 모습인지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한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더불어 강조합니다. 이것은 끊임없이 이성을 통한 사고로 현상이나 논리를 의심하고 성찰하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전제는 어쩌면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하는 조건이고 왜곡되고 파멸된 민주주의가 막장의 전체주의로 귀결되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거름종이와 같은 것이라고 저는 이해했는데요. 글 중간에 저는 화두라고 느꼈던 것은 우리의 일상에 과연 파시즘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삶을 이행하고 있는 현대 사회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양 다리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면, 자본주의가 경제 논리로 소외시키는 것들에 대한 성찰,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권위적인 독재와 사회를 모순에 빠뜨리는 정치적 평등의 부재, 기회 균등의 왜곡 등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렌트가 주장하는대로 ‘일상의 전체주의’를 극복하고 예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독자들과 시민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데요. 결론에 저자는 “졸렬한 자신의 해석이 들어가 있으니 쓰레기통에 버리고” 본격적으로 한나 아렌트를 경험해 보라는 권유와 함께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약간의 개인적인 소감을 덧붙인다면, 정치적인 것과 정치적 평등을 소개한 부분을 읽어보니, 문득 예전에 읽었던 로버트 달의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가 생각났습니다. 기본적인 정치학의 개념들은 이처럼 유사한 면이 많은 것 같은데요. 더불어 근래 나온 한나 아렌트와 몇몇 글들을 다시 구해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다른 무엇보다 한나 아렌트의 특별한 점은 고안하고 주장했던 개념들을 면밀히 객관화시켜 만든 것이겠죠. 그리고 높은 설득력과 함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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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 20세기를 뒤흔든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6개월 마이클 돕스의 냉전 3부작
마이클 돕스 지음, 홍희범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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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의 베테랑 기자 출신이자, 미국에서 냉전과 관련된 나레이션으로 유명한 마이클 돕스의 ‘1945’를 일독했습니다. 원제는 ‘Six Months In 1945’ 인데요. 부제로는 ‘From World Wat To Cold War’를 달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이 국내에 출간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무척 기대를 했는데요. 주를 포함한 600여페이지 분량을 소화하는데 5일이나 걸렸는데요. 좀체 시간이 나지 않다가 오늘에서야 겨우 완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전사의 측면에서 2차대전사로는 앤터니 비버와 존 키건이 국내외에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이 두 사람의 유명한 저서를 읽었는데요. 마이클 돕스의 이 글은 전자의 글들과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1945년 2월 얄타 회담부터, 포츠담 회담을 거쳐 1945년 8월 히로시마 원폭 투하 시기까지 연합군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영국, 소련의 수뇌부와 각 3개국에 속한 정치인들과 외교관, 고위 군인들의 복합적인 의미의 행적들을 짚으면서 이 시기의 역사적인 의의와 변화 및 전환 등을 아주 상세하게 담고 있습니다. 특히 루즈벨트와 트루먼, 스탈린과 처칠의 사소한 성격과 습관, 말투 등을 꽤 자세히 서술하고 있어서 당시 역사의 방향타를 잡았던 이들의 모습을 보다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었는데요. 또한 마이클 돕스의 친절한 나레이션은 특정한 상황을 독자들이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번역 역시 나무랄데가 없었는데요. 다만, 제가 발견하기로는 한 곳의 오탈자가 있었습니다.

여러 사료나 유명한 학자들의 글들에서 루즈벨트는 소련의 ‘영도자’ 스탈린에게 적잖은 신뢰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달리 말하면 현실적이고 매우 복잡한 정치적 식견 갖고 있던 것으로 유명했던 루즈벨트가 스탈린에게 보인 인간적인 신뢰가 저로서는 흥미로운 부분이었는데요. 처칠은 스탈린에게 ‘전시 동맹이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제국주의 화신이라 할만큼 이념의 적’이라 평가받았던 반면에 루즈벨트와 스탈린은 양자간에 완벽한 신뢰는 아니었지만 꽤나 서로간에 인간적인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돕스의 이 글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스탈린의 교묘한 전술’에 루즈벨트 뿐만 아니라 후임인 트루먼까지 국익과 외교적인 측면에서 정확한 판단을 유지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스탈린은 “영토를 재편하고, 민족 간 마찰을 부추기며, 분리주의 운동을 약화시키거나, 말 안듣는 민족을 강제 이주시키고, 영토 수복 명분을 지어내는 데 이골이 났다”고 평하는데요. 이처럼 스탈린의 가장 두드러진 성격은 불신과 냉소주의라고 루즈벨트 역시 인정하지만, 거대한 파시즘을 제거하는데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의 가치가 중요했던 것 만큼 루즈벨트 역시 이런 점에서 스탈린을 국익과 정치적인 측면에서 또한 배려를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루즈벨트는 쟁점이 되는 부분에서 선의를 갖고 스탈린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3개국 정상 간에 얄타회담이 결정되고 나서 심각한 신체적 문제를 안고 있던 루즈벨트는 주위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의 비행을 무릅쓰게 되는데요. 회담장 안에 소련측의 도청 가능성을 알면서도 당시 중요한 ‘원자폭탄 개발’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정도에서 미국측은 개의치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당시 현실주의를 민감하게 인식하던 루즈벨트와 트루먼이 소련과 스탈린에 대해 낭만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은 오늘날 미국 외교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얄타회담이 진행되기 전, 독일의 대 소련과의 동부 전선이 자국의 2000만을 희생시키는 등의 인명 피해를 감수하고 스탈린은 결국 전세를 역전시켜 독일로의 공세를 전환시킵니다. 미국과 영국의 서부 전선과 소련의 동부 전선으로 이원화 된 독일은 양 전선에서 전력이 붕괴되며 독일 본토로의 진공이 시작되는데요. 여기에 소련은 건장한 독일 민간인 남성들과 포로들을 확보하고 특히 소련군에 의한 약탈과 독일 여성들에 대한 강간이 자행되는데요. 돕스는 그 수치를 최소 200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200만의 민간인 여성이 강간을 당했다는 것에 충격이었고, 체코 지역에서는 독일인은 뜻하는 ‘N’을 가슴에 달고 수용소에 수용되거나 분리되었다고 나오는데요. 저로서는 처음 접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독일 점령 초기에 미영과 소련간에 긴장감이 지속되었고, 소련이 점령한 지역의 민간인들에 대한 약탈과 지속적인 강간에 미영은 크게 항의하지만, ‘희망이 안 보였던 극심한 전투에서 전우들을 뒤로하고 독일군과 치열하게 싸우며 서진했던 소련군들이 독일 여자들을 대상으로 강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하는 당시 고위 소련군 장교들의 그 변명 아닌 변명을 보니 전쟁의 참혹함이 정확히 어떤 건지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얄타회담은 폴란드에 있어서 자유 선거를 통한 정부 수립을 강조했던 미국과 영국의 요구가 사실상 무산되고 소련이 냉전 초기에 동유럽 국가들을 소련 연방 휘하에 두는 위성국가화의 시작이 되었고, 앞서 스탈린의 전술적 측면에 기인하는 거짓과 기만을 서슴치 않는 전략에 미국과 영국 양측이 물리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사할린 남부와 소련의 영유권과는 상관없는 일본측이 주장했던 북방 4개섬을 할양받으며, 오호츠크해를 내해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성공적으로 끝냅니다. 다만 이란에 있어서는 이러한 ‘살라미 전술’이 실패하는데요. 결과적으로 스탈린은 특히 미국의 양보를 많이 얻어내며 영토확장과 세력확장에 성공합니다. 많은 사료와 전문가들의 발언으로는 소련의 일본 진공을 위해 미국이 크게 양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처럼 만주에서도 일제가 만들어놓은 각종 군수 물자 및 시설 기반, 산업 기계 등을 가차없이 징발하고 독일에서도 마찬가지로 자국에 필요한 것이라면 닥치는대로 실어가게 됩니다. 전쟁에 패한 독일이 정말 어떠한 댓가를 치렀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게 되더군요.

전후 질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으로 인해 마무리 되고, 1949년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하기 전까지, 미국은 짧은 핵독점 시기를 지나게 됩니다. 비로소 조지 케넌이 경고했던 냉전이 시작되고 미국의 자유 세계의 리더와 군산복합체가 대두하고, 소련은 더할나위 없이 견고해지는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강회됩니다. 처칠은 특유의 통찰력으로 스탈린에 의해 세워지는 철의 장막을 통해 전후 피도 눈물도 없는 거대한 전세계에 냉혹한 시기가 도래할 것을 짐작한 듯 보입니다. 돕스 역시 수차례 얄타회담 이후의 분위기를 통해 냉전의 시기가 도래한 것으로 평가하는데요. 곳곳에 흥미로운 분석과 차분한 서술이 돋보이는 만큼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접하셨으면 합니다. 다만 600페이지 분량과 약간 부담되는 책 가격이 약간 문제이긴 합니다만 평소에 2차대전의 전사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접근에 대한 내러티브를 기대했던 분들이라면 꽤 즐거운 독서를 충족시켜 드리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런 의미에서 저의 부족한 글은 이쯤에 마무리 해야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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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의 비밀 - 파이낸셜타임스 기자가 파헤친 중국 지도자들의 은밀한 세계
리처드 맥그레거 지음, 김규진 옮김 / 파이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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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 출신의 언론인으로 세계 3대 신문 중 하나인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의 워싱턴 지국장이자 과거 유수의 여러 언론매체에서 기자로 활동한 리처드 맥그레거의 ‘르포’ 형태의 중국 공산당을 파헤친 이 글을 일독했습니다. 특히 맥그레거의 이 책은 여러 중국 관련 전문가들의 글들에서 많이 인용이 되었는데요. 더군다나 중국 현지에서는 당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기까지 했습니다. 매우 당연하게도 중국인들이 읽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으며, 외신이나 해외의 중국 전문가들의 중국 공산당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 당국의 레퍼토리가 이 책에도 동일하게 적용된 결과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책은 크게 8장의 부분으로 되어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당과 정권에 대해 적용되는 부분별로 형식상 그렇게 만들었는데요. 전체적으로 보면 중국 공산당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정치와 경제, 사회 등과 같은 별개의 분야를 제법 조리있게 잘 버무려서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서술하고 있는데요. 번역도 나쁘지 않고, 해당하는 내용들도 장황하지 않고 명료한 편입니다.

우선 이 글의 장점은 후진타오 정권을 배경을 삼고 있지만, 중국 공산당의 현실적인 권력 구조와 어떻게 당이 정권을 유지하고 관리하는지에 대해 제법 소상하게 그 실례들이 소개되고 있는데요. 저자가 일종의 외부인이자 중국과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꽤 객관적이고 실증적이까지 합니다. 좋은 평가를 받을만 하죠. 그리고 중국 공산당에 의한 중국 전체에 대한 관리 체계가 겉으로는 매우 멀쩡해 보이지만, 그 각각의 일면에는 구조적 모순과 다소간의 붕괴 위험까지 내포하고 있어서 사실상 경제 발전으로 억지로 이 틀을 쥐어잡고 있는 현 상황이 경제 문제가 내부에서 폭발해 드러날때에 과연 당이 이러한 문제를 수습할 수 있을것인가에 대해 독자들의 예측을 뒤집지 않는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시카고 대 경제학과에서 수학한 장우창 교수가 “중국은 부패, 허술한 사법체계, 언론과 종교의 통제, 국영도 민영도 아닌 교육과 의료복지, 외환 통제, 일관성 없는 정책과 더불어 연간 수천건의 폭동을 처리해야 했다” 고 언급하며, 이러한 가운데에서 믿을 수 없는 경제 성장을 이뤄냈지만 이러한 내포된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 언제까지 경제로 사회 불만을 막아낼 수 있을지는 저로서도 꽤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사실 각 지방 관리들의 보이지 않는 부패문제와, 매점매석과, 특히 토지 거래에 따른 투기에 많은 중국 관료들이 연루되어 있는 상황에서 중국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실질적으로 모든 고위직들을 감찰 및 수사를 할 수 없는 제한 상황이라는 것을 저자 역시 언급하며, 과거 대외적으로 청렴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던 원자바오 총리 일가 일부의 재산 문제, 후진타오 아들의 부패 문제와 관련해서 당이 조직적으로 나서서 관리하는 것과 같은 인식과 현실의 차이가 너무 극명한 상황은 오늘날 중국 정권과 당의 실체적인 모습이라고 여겨질 만합니다. 또한 당에 의한 실질적인 군 장악과 지배가 마찬가지로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간혹 군 인사들이 당에 불만을 표출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중국의 정치에 있어서 불안한 요인이지만, 외형상으로는 현재 시진핑 국가 주석이 군을 잘 다독이고 있는 것으로 보여 군에 대한 부분은 좀 더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세상을 떠난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시절의 폭력적인 내부 투쟁과 문화대혁명을 겪고 나서 스스로 당내에서 제2인자의 역할을 자임하여 거의 순조롭게 장쩌민에게 대권을 넘겨주었습니다. 이러한 통치 위임 과정은 장쩌민을 통해 후진타오에게 이어졌고, 이어 시진핑 국가 주석의 현 정권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시 주석은 장기 집권을 목표로 당과 권력에 대한 여러 제한 조치들을 무력화 시킨 상황입니다. 당의 권력을 자기 손으로 휘어잡고 끌고 나가려는 시주석의 계획이 어떤식으로 귀결될지는 조금 지켜봐야 합니다만, 부패와 극심한 빈부격차 및 도농간의 소득 갈등 등과 같은 돈과 관련된 제반 문제들을 장치하고 엄격한 부패 감시 체제를 만들어 놓지 않는다면 중국 인민들의 민족주의를 은근 부추기는 형태로 순간만을 모면하려고 한다면 큰그림에서 동아시아 전체의 안보 위협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서방 국가와 중국의 주변 국가들이 보기에 중국이 안전하고 무리없이 체제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 모든 이들의 이익에 부합할 것 입니다. 다만 맥그레거의 이 책을 통해 중국 공산당과 정권, 경제 엘리트간의 구조적이고 폐쇄적인 문제들을 우리가 인식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현실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많은 중국 관련 글들은 단순한 중국 경제 성장에 대한 담론과 중국 공산당의 이력과 분석에만 치중했는데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직접 취재하고 중국의 각 분야를 수렴하는 정보들을 꽤 사실적으로 알려주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유익했던 것 같습니다. 맥그레거가 밝힌 많은 사례들은 여러 중국 관련 글들에서 인용되고 있는 만큼 책이 여러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것이 긍정적인데요, 한가지 아쉽게도 이 책은 현재 절판이 되었습니다. 2012년에 출판된 책이 최근에도 나오지 않는 것은 아쉬운 일인데요. 모쪼록 출판사 측에서 재출간이 결정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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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누아르 1 : 3월의 제비꽃 (북스피어X) 개봉열독 X시리즈
필립 커 지음, 박진세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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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 출신의 법학과 법철학을 전공한 필립 커는 이 베를린 누아르 시리즈로 큰 명성을 얻는데요. 아쉽게도 지난 3월 그는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개인적으로 소설 리뷰는 하지 않으려는 원칙을 갖고 있었는데, 간밤에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고인이 된 작가를 생각하니 키보드에 절로 손이 올라갑니다.

저는 소설 장르에 상관없이 제2차 세계대전 배경의 스토리들은 꼭 찾아 읽었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에 2차대전은 참으로 흥미로운 부분이 많고, 특히 당시 독일 국민이 소위 나치가 내세우는 국가사회주의 체제에 어떤식으로 살아가게 되었는가에 아주 강박한 호기심이 있지요. 그런 저의 요상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데에 이 필립 커의 소설은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아마도 1936년부터 1938년 사이가 아닐까 추측합니다. 폴란드와 체코를 잊는 도로 건설에 관한 내용이 나오고 이 것이 군대가 수월하게 행군을 하려는 목적이 아닐까 하는 대화가 있어서 후에 뮌헨 협정의 원인이 되는 히틀러에 의한 체코 분할 이전의 그 시기인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3월의 제비꽃의 압도적인 주인공인 ‘베른하르트 귄터’의 캐릭터성에 큰 점수를 주시겠지만, 저는 그것보다도 나치 시기의 베를린을 너무나 탁월하게 묘사한 필립 커의 문장력과 역사적인 지식에 더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물론 이런 느와르를 표방한 마초이즘적 스릴러에 귄터와 같은 주인공 겸 화자는 무척이나 중요한 틀이겠죠. 여기에는 그 뿐만 아니라 당시 수상이었던 괴링과 힘러, 하이드리히(로 추측되는) 등 나치 정권의 핵심 인물들과 괴링과 같은 경우에는 작가가 따로 준비를 해서 인물 설정과 묘사가 꽤 사실에 부합될 정도로 잘 되어 있었습니다. 게슈타포와 SS, 각 경찰지부 등과 같은 상세한 입장 설명과 배경의 내러티브 또한 꽤 매력적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주인공인 ‘베른하르트 귄터’는 반골로 낙인 찍혀 경찰에서 타의반으로 나오지만, 당시 유대인 분리를 시작하던 시기의 나치 정책을 혐오하고 그 자신이 터키와의 전선에 참전하지만 그것 또한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든 분위기가 왜곡되어 가던 베를린의 꽤 상식적인 인물이고 그와 전직 기자였지만 같이 파트너로서 일하게 되는 잉게와 파르의 비서였던 마를레네를 제외하면 정상적인 인물이 안보이는 것은 시대의 굴욕과 비겁함이 만든 악화가 양화를 쫓아내는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입에 블랙 유머와 냉소를 달고 사는 주인공 귄터의 심정이 바로 자의와 상관없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의 울분인지도 모르겠네요.

글을 읽다가 중간쯤에 절로 눈을 이끄는 한 문장이 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자 너무나 많은 가짜 속눈썹이 나를 향해 깜빡이고 있어서 바람이 부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짧은 두줄에 정말 감탄을 멈출 수 없었는데요. 근래 수없이 읽었던 문장들 중에 제게 여러 느낌과 감상을 안겨준 하나의 문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필립 커의 베를린 누아르 3부작의 첫 작품인 이 “3월의 제비꽃”은 여러 평단의 호평을 받을 만한 확실한 이유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다만 여주인공이라 봐도 무방한 잉게의 작중에서의 실종이 모호하게 마무리되는데요. 그래서 2부를 손에 잡아야하나 고민입니다. 이 3월의 제비꽃 만으로도 저로서는 충분한 것 같은데요. 여주인공의 실종의 내막을 혹시 2부에서는 그 자초지종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약간의 기대감으로 짐작해보는데요. 잠깐 쉬어가는 타임으로 이 책을 손에 잡은거라 2부인 ‘창백한 범죄라’를 시작할 수 있는 여유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만 올해 안에는 어떻게든 잡게 될수도 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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