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에 대해 문득 이 야밤에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로버트 달에 의하면 오늘날 민주주의는 사실상 엘리트 중심의 정치 체제 위에 선거제도를 비롯한 시민들의 기초적인 주권개념이 결합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사실 직접 민주주의는 추첨 민주주의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간접적으로 우리의 주권을 특히 정치인들에게 위임하는 것이죠. 그는 이 점에서 오로지 다원주의적 실험이 이 엘리트 지배에 대한 견제가 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민주주의하에서 이런 엘리트 지배체제의 반대 사례는 익히 존재합니다. 과거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내각이 엘리트 계층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로 대공황을 비롯한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해리 트루먼 역시 다소 보잘것 없는 학력에 오로지 독서와 사색으로 백악관의 주인이 된 인물입니다

저는 여기서 한 가지 의심을 갖고 있는데요. 과연 전세계 엘리트들이 이 민주주의를 누구보다 신봉하고 있느냐는 부분입니다. 자신들을 보수 우파 엘리트라고 자임하는 많은 이들은 일반 대중에 의한 정치를 ‘중우정치’라 이해하고 이점을 두려워합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오늘날 집단지성이라 불리우는 일반 대중들의 출현이 나타났는데, 이를테면 정치 제안의 단계에서 이 집단지성들이 꽤 쓸모있는 의견피력과 토론 및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등의 놀라운 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점은 토크빌과 듀이와 같은 이들이 개인들의 정치 참여의 당위성이 어떠한가를 드러낸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민주주의 테두리 안의 이 엘리트 지배 체제를 완전히 불식 시키자는 게 아니라면, 신자유주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적 통제로 여겨지는 앞선 이들에 대한 끊임없는 견제와 도덕적 환기를 집단지성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 집단지성은 시민 개개인이 모여 이룩할 수 있는 그야말로 높은 단계이며, 민주주의를 축으로 정치경제 엘리트들과 시민들의 집단지성 및 각 3부의 시스템이 발전적인 균형 체제를 이룬다면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딛고 성공적으로 민주적 통제에 나서 시장-정치-주권이 서로 정상궤도에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앞선 정치-경제 엘리트들의 비밀스런 협조와 이해관계의 심화가 결국에는 과두제에 이르는 등의 민주주의의 쇠퇴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단순한 권력의 속성을 논하기에 앞서, 이 양대 엘리트들이 국가를 비롯한 사회 시스템 및 체제 전반을 자신들의 손으로 재구축하려는 시도를 전혀 배제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이 시점에서 중요한 귀로에 서있는데요.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라는 프레임 내지는 대결구도에 너무나 집중하고 있는 나머지 ‘밀실 엘리트들의 야합’을 시민들이 놓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제 전통적인 주권 위임 상태의 고결한 정치인들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교묘한 자신들의 이익을 여러 수단을 통해 달성하려는 정치경제 엘리트들을 과연 시민들이 적절히 견제할 수 있느냐에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앞으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계급 지배적 정치를 용인하기 힘든 정치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평등과 복지국가 개념을 이상하게 비틀어서 배포한 신자유주의자들이 금권의 저울을 스스로 들기 시작하면서 자본주의하에 돈의 가중으로 더 많은 자유를 보장받고 그것을 공고화하는 작업에 이미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촘스키가 이런 시스템이 결국 더 많은 부자들을 양산하기 위한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하는 것이 허언이 아닙니다. 이미 한번 국가가 시장을 구하는데 나섬으로써 자유시장주의자들에게 고약한 선례를 남긴 건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단순히 위기의 순간에 있다, 어떤 막연한 경각심을 드리려는 것보다 개인의 사적 목적에 의한 적지 않은 행동 만큼이나 공적인 영역에 대한 관심과 또한 필요합니다. 사실 모든 경제 왜곡 문제들은 우리가 정상적인 견제 조치들을 통해 시스템 자체를 바꿔 나갈 수 있습니다. 소위 지식인들이 정의와 양심을 통해 모든 정치 권력을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 옳은 과정이라면 이 지식인들이 다수의 시민들의 입과 손이 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건강한 여론을 형성하고 수많은 토론과 대화를 통해 충분히 이룩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 알라디너들은 책을 공유하고 지식을 서로 함께 하면서 많은 시민들을 같은 길로 인도할 수도 있죠.

아마도 많은 정치학자들이 우리의 연대와 참여를 바랐던 것은 바로 시스템 자체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쯤에서 제가 인용하는 것을 즐겨하는 루소의 말은 적어보고 싶군요. “시민은 마땅히 정부를 갈아치울 권리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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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졸렬하고 부족한 서평이 200편이 넘어가던 즈음에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진 능력이 시원찮아 생애를 보낸 이 사회에 일개 개인으로서 뭔가 흔적이라도 남길게 있나 했는데 여기 리뷰들은 제가 땅에 묻혀도 알라딘이 망하지 않는 이상 남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사뭇 안도감이 들더군요.
각자의 인생이 서로 중요하게 여기는 다른 가치들로 빛난다면 제 인생에 있어서 책등을 마주하고 손으로 끊임없이 책장을 넘겨나가게 해주는 현재 직장의 존재와 가정이 없는 저의 현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만하면 저의 책중독은 심각하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아마도 독서생활자의 삶을 위해 다른 것은 다소 희생시킨 괴랄한 한 남자의 인생이 바로 제가 아닌가 하는 뼈아픈 회고를 끄적여봅니다.
이대로 아픈데 없이 가늘고 길게 살면서 더 많은 책을 보는 것이 이제 제 마지막 소원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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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 2019-02-17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좋은 리뷰 잘 읽고 있습니다. 혹시 집단 지성과 관련해 추천해주실 책이 있으신가요?^^

베터라이프 2019-02-17 11:03   좋아요 0 | URL
아마도 소소하게 집단지성을 다룬 글의 서평을 제 서재에서 보셨겠지요? ^^ 사실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대중과 시민 그리고 네트워크 시대에 집단지성과 관련해 개인적으로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저도 일부 관련된 책을 읽어봤는데요. 일단 집단지성의 인식론적인 출발과 관련해서 지금은 절판된 피에르 레비의 ‘집단지성‘과 베이징 컨센서스 개념을 처음 만든 조슈아 쿠퍼 레이모의 ˝제7의 감각, 초연결 지능‘ 그리고 사회학으로서의 네트워크 시대와 관련된 몇가지 보론으로서의 논저를 먼저 읽어주심 좋을 것 같습니다 ^^ 네트워크 시대와 관련된 것은 마누엘 카스텔의 ‘분노와 희망의 네트워크‘ 추천드리고 싶네요. 제가 앞의 레비의 책은 일전에 일독을 해봤고요. 카스텔의 책은 꽤 근래 현상을 다루고 있어서 조만간 서평을 써보려고 합니다. 레이모도 역시 그렇고요. 저도 이제 집단지성과 네트워크시대와 관련하여 인식으로서 확장하는 단계라 갈길이 아주 멀고 매우 부족한 독서를 갖고 있어서 제가 추천한 글들이 충분히 도움이 되실지 걱정이네요. 일단 유명 독서 블로거들의 서평을 참고해보시고요. 유명서점에 비치된 책을 구입을 안하시더라도 읽어보시는것도 도움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질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aleph 2019-02-17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 흥미로운 책들이네요. 추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