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에티카기하학적 방식으로 다룬 윤리학이란 부제를 가진 책이다. 기하학, 하니 엄밀하고 딱딱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그렇다. 스피노자가 '에티카'에 담은 주된 내용은 사랑, 정동(情動) 등이다. 정동이란 관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감정을 이른다.

 

주지(周知)의 이 사실을 다시 말하는 것은 형식과 내용간의 관계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다. 나는 어떤 유형의 글을 쓸까? 형용사, 부사 등을 많이 쓰지 않는다고, 감성에 호소하는 글을 쓰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소프트한 글을 쓸망정 간결하게 처리되는 글, 접속사를 가능한 한 배제하는 글, 짧은 글을 쓰려고 집중하고 있다. 소프트한 글을 쓸망정 끝까지 논리를 유지하는 쓰기를 지향한다. 신상에 대한 글은 소프트하게 쓰고 리포트나 보고서 등은 드라이하게 쓴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글은 참 어렵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수 밖에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들마다 나름으로 생각하는 비법이 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비법 아닌 비법은 많이 고친다는 점이다. 많이 고쳐 글이 엉망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것이다.

 

매일 쓰지 않으면 수()가 주는 것이 글이다. 관건은 유의미한 글(공적인 의미를 가진 글)을 쓰려고 애써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늘 강조하는 것이 새롭게 쓰기. 이것이 없으면 남의 가치관을 답습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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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강원도 대화재를 하나님의 경고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심하지 않고 말하자면 세상을 형편 없는 자기 수준 정도로 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망발이다.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사태를 두고 보다가 후에(일이 잘못되면) 개입하는 슬로우 스타터이다.

 

또한 잘못한 특정인을 벌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처럼 무고한 사람들을 고난당하게 하는 존재다. 넛지(Nudge)라는 말을 좋아한다. 타인의 행동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의미하는 넛지는 팔꿈치를 툭 치는 것과 같은 작고 가벼운 행위로 타인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왜 신은 침묵하는가, 란 말이 나돌 때 넛지를 생각했었다. 후에 크게 사건을 일으키기보다 사전에 부드럽게 개입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란 생각에서다. 신의 부드러운 개입을 감지하지 못하거나 모른 척 하는 것이 문제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

 

미국 미네소타주는 세금을 내세요라는 메시지보다 주민의 90% 이상이 세금을 냈다는 메시지를 보낸다고 한다. 듣기 좋은 말이다. 나는 지난 번 서울을 다룬 한 책에 나오는 새로운 논리가 설득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무슨 무슨 책에 나오는 모모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고 묻는 형태의 톡을 보냈었다.

 

자평이어서 그렇지만 내가 보낸 글도 넛지에 해당하리라고 생각한다. 의미를 머리에 꽂으면 골때리고 심장에 꽂으면 의미심장해진다는 글을 접했다. 세금을 내세요라는 말은 의미를 머리에 꽂으려는(직선적) 말이기에 골때리고 주민의 90% 이상이 세금을 냈다는 말은 우회적인 표현이어서 의미심장하다.

 

어려운 개념이나 사상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도 넛지다.(난해한 글, 요령부득의 글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글도 그렇게 쓰고 사람을 대할 때도 그렇게 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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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최** 강사로부터 오동은 예부터 권력을 상징하는 봉황이 깃든다고 믿어진 나무로 권력욕을 그대로 드러낼 수 없어 딸을 낳으면 시집 보낼 때 가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오동을 심는 것이라고 둘러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관련 내용을 찾으면 유용할 것이라 생각하고 자료를 찾아 보았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 강사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제가란 말이 가신을 거느린 사람들 즉 대부(大夫)에 해당하는 이야기란 말을 했다.

 

이 부분은 허경진의 '문학의 공간 옛집'이란 책에서 찾았다.(이 책에 중국 고전이 근거로 이야기되었지만 옮겨 적지 못해 지금 기억에 없다. 책도 내게 없고.)

 

최근 나온 한 나무 관련 책에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는 까닭은?'이란 글이 있어 찾아 보았는데 기대와 달리 딸을 낳으면 가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오동을 심은 것이라는 일반적 이야기였다.

 

자료를 찾다 보면 속설이 있을 뿐 문헌적 근거가 있는 정설은 없는 경우를 만나곤 한다. 왕비 침전에 용마루가 없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대표적이다. 해설이나 강의를 들을 때 출처를 물어야 하리라. 강사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을 번역한 조한욱 교수는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란 책에서 인터넷을 통해 무엇이든 볼 수 있는 시대가 열리지 않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역사가들은 원사료를 찾아 문서보관소를 헤매야 한다는 말을 했다.(128 페이지)

 

역사가란 말이 꼭 역사를 전공한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부는 이렇게 해야 한다.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는 까닭에 대해 무슨 새로운 이야기라도 되는 듯 말한 전기한 나무 책의 저자는 자신이 말한 내용의 출처를 생각해 보았을까?

 

문헌이 아닌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여서 근거를 제시하지 않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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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古典), 누구나 읽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정의한 사람은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다. 아무도 안 읽는다는 말은 지나치게 들리지만 일리가 없지는 않다. 클레멘스의 말은 다르게 생각할 여지도 있다.

 

읽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고전을 읽는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클레멘스는 책에 대해 이런 말도 했다. 좋은 침실에서는 책을 펼치지도 않았는데 피부를 통해 그 안에 담긴 지혜가 흡수되는 신비한 방식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클레멘스의 책을 아무도 읽지 않지는 않는다. 아니 꽤 많이 읽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가 만일 자신의 책보다 말이 더 많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을 안다면 어떤 말을 할까?

 

얼마 지나지 않으면 그의 109주기이다. 나는 그가 고전에 대해서나 책에 대해서 한 말보다 인생에 대해 한 말을 더 좋아한다.

 

"20년 뒤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은 일 때문에 더 실망할 것이다. 그러니 밧줄을 풀고 안전한 항구를 떠나라. 탐험하라, 꿈꾸라, 발견하라." 마크 트웨인이라는 그의 필명과 잘 어울리는 말이다. 마크 트웨인은 배가 지나가기에 안전한 두 길 물속을 의미하는 말이다. 탐험에도 안전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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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 성서에 생애를 바친 개혁자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30
도쿠젠 요시카즈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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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젠 요시카즈(德善義和: 1932 - )마르틴 루터는 이와나미 문고로 나온 책이다. 저자는 신학박사이자 목사이다. 루터는 말에 생애를 바친 인물이다.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되고 서로마 제국이 라틴어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하자 그리스도교 교회는 스스로를 로마 카톨릭이라 칭했다.

 

중세 말 내내 교회는 라틴어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고해성사는 민중을 위하는 그리스도교의 대표적 의식 중 하나였다. 이때 언어는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였다. 민중의 마음과 성서의 가르침을 이어준 가장 친밀하며 유일한 접점이었다.

 

고해성사만으로는 불안을 해소할 수 없었다. 성직자가 대신 참회를 해주었다. 여기서 진화한 제도가 면벌부 제도였다. 교회는 이익을 추구하며 돈을 받고 면벌부를 팔았다. 루터가 배운 아이제나흐의 성게오르크 학교는 200년 후 바흐가 배운 곳이기도 하다. 루터는 에르푸르트 법대 학생이 되었다.

 

루터는 고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판 한가운데서 벼락을 맞고 쓰러졌다. 루터는 공포 속에서 성 안나(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수호 성인), 살려주시면 수도사가 되겠습니다.”라고 소리쳤다. 살아난 루터는 서원대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수도사가 되었다.

 

이 수도회는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의 계보를 잇는 프란치스코회 계열이었다. 은둔 수도회가 아닌 도시에서 지내는 탁발 수도회였다. 탁발은 스스로 부족한 존재임을 마음에 새기는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이후 전통으로 자리잡은 행위였다.

 

저자는 루터가 종교 개혁을 추진한 이유 중 하나로 수도원의 타락을 꼽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수도원의 가장 좋은 부분에 잠재한 뿌리 깊은 문제 즉 자기만족과 거만을 깨달은 결과라는 것이다.

 

루터는 개체야말로 실재이며(유명론) 실재는 의지와 능력에 의해 확인된다는 오컴의 논의에 익숙했다. 유명론(唯名論)은 인간 총체(보편)란 이름 뿐이며, 존재하는 것은 개개의 개체라고 보는 입장이다.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들을 읽음으로써 인간이란 죄 있는 존재이며 무()인 존재라서 은혜로운 구원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이는 중세 철학과 신학을 지탱해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1511년 루터는 수도회의 명을 받고 학적을 비텐베르크대학으로 옮긴다. 루터는 이곳에서 신학 연구를 계속했고 이듬해는 신학 박사가 되어 성서 교수로 임명되었다.

 

성서 강의를 하던 루터는 당신의 의로움으로 저를 해방시켜주십시오.”라는 구절(시편 312)에 걸렸다. 신의 의로움을 분노, 심판, 벌이란 맥락에서 파악해온 루터는 신의 의로움과 인간의 구원이란 결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루터는 그리스도가 신의 의로움과 인간의 구원을 매개한다고 이해했다. 신의 의로움이란 신에게서 인간에게로 의로움이 선물로 주어진다는 의미다. 독일에는 네 개의 루터의 도시가 있다. 탄생지 아이슬레벤, 라틴어학교를 다닌 아이제나흐, 수도사의 길에 들어선 에르푸르트, 수도원의 명으로 간 비텐베르크(여기서 그 유명한 95개 반박문이 내걸린다.) 등이다.

 

비텐베르크는 당시 인구 2000명의 소도시였다. 나치 시대에 유대인 학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루터는 인간의 죄에 대해서, 그 죄에서 구원해주는 은혜로운 의로움에 대해서,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는다는 점에 대해서 가르쳤다.

 

루터에게 성서 강의는 성서에 관한 자신의 이해를 학생들과 나누는 활동이었다. 종교개혁이란 기본적으로 성서를 읽은 운동이다. 이는 성서를 혼자 읽는 것에서 나아가 모두와 함께 읽고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나누는 운동임을 의미한다. 그 모두에 해당하는 첫 사람들이 비텐베르크 대학 학생들이었다.

 

루터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 성서 읽기 나눔 활동을 펼쳤다. 성서가 라틴어로 쓰인 시대에 독일어로 말해주자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루터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설교했다는 점에서 차별적이었다. 죄를 강조하는 다른 설교자들은 필연적으로 면벌부 판매로 나아갔다.

 

면벌부는 당시 민중의 요구에 부응한 행동이었다. 문제는 불안해 하는 민중의 요구에 편승해 민중의 영혼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한 것이었다. 면벌부 시스템에는 자기 자신을 체크하는 기능이 없었다. 루터는 이를 지적했다.(75 페이지)

 

7세기경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고해성사는 초기에는 수도사들이 짊어졌던 민중의 죗값을 배려한 진지한 행위였다. 면벌부로 인해 급기야는 몸으로 직접 벌을 필요도, 대리인을 쓸 필요도 없어졌다. 95개의 논제를 통해 루터가 성직자와 신학자들에게 묻고자 한 것은 단순한 교회비판이 아니라 민중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었다.(88 페이지)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은 모두 성서의 말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는가? 루터는 95개조 논제를 통해 그렇게 물었다. 15187월 루터를 60일 이내에 로마로 소환해 이단 심판에 부치겠다는 결정이 내려지자 독일 민중, 제후 등이 맹렬히 반발했다. 루터는 원래 루더였다. 95개 논제를 발표한 시점부터 루터라 이름했다.

 

1518년 아우크스부르크 심문, 1519년 라이프치히 토론, 1521년 보름스 심문이 루터가 맞이한 3대 시련이었다. 보름스 심문은 최고재판소 판결을 의미한다.(106 페이지) 보름스 심문에서 루터는 저의 양심은 신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교황과 공의회를 믿지 않습니다.”란 말을 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칼 5세는 루터에 대해 제국 내에서의 일체의 법적 보호를 박탈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보름스에서 비텐베르크로 가던 중 루터가 자취를 감춘다, 선제후 궁정 고문관들이 벌인 눈속임의 유괴극이었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성에 은닉되었다. 루터는 작은 밧모섬에서라고 발신처를 쓴 편지를 보냈다. 밧모섬은 에개해 남동부의 작은 섬으로 요한이 이 섬에 들어갔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곳이다. 루터는 이 섬에서 저술을 했고 신약성서를 번역했다.

 

루터의 관심 대상은 성서의 문자와 어구를 얼마나 세밀하게 다루느냐가 아니라 성서에 담긴 신의 은혜로운 말 즉 복음이었다.(123 페이지) 루터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종교개혁은 철학이 신학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립적인 학문으로 발전하도록 해주었다. 종교개혁은 근본적으로 교회라는 제작 거점이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회화는 점차 교회 밖으로 나와 시민 예술의 한 축을 이루었다. 음악도 조금 늦었지만 마찬가지였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단순히 교회의 추락을 바로잡는 것이었다면 글자 그대로 리폼이었을 뿐 리포메이션이라 불리지는 않았을 것이다.(152, 153 페이지)

 

그것이 개혁을 넘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은 사람들의 신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찬송가가 그리스도교 예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지만 교회에 모인 사람들이 부르는 찬송가 문화를 만든 것이 루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한다.(175 페이지)

 

민중이 부르는 찬송가를 코랄이라 한다. 루터는 평생 약 50편의 코랄을 작사했고 그중 몇 곡은 작곡도 했다. 성서의 말에 근거한 루터의 개혁은 교회 내부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주목할 것은 학교 교육 개혁이다. 당시 독일 사람들의 문자 해독률은 높지 않았다.

 

초등교육은 교회와 수도원에서 사제와 수도사들이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수준이었다. 루터와 에라스무스의 관계도 흥미롭다. 인간 의지에 대해서 에라스무스는 학문의 문제로 받아들였고 루터는 신앙의 문제로 받아들였다.(197, 198 페이지)

 

루터는 죄에 사로잡힌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는 없으며 신을 따르든 악마를 따르든 의지는 노예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견해를 고수했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을 한층 첨예화한 결과다. 에라스무스는 어느 정도까지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루터의 필생의 작업은 성서 번역이었다. 그는 성서의 말이 가리키는 진리를 평생 추구하고 전파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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