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과 만나다 - 천상과 지상을 비추는 괴물 비아 만나다 시리즈
티머시 빌 지음, 강성윤 옮김 / 비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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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은 요한이 본 환상을 기록한 책이다. 이 경전에 나오는 666은 그리스도교인이 아니어도 잘 아는 숫자다. 666은 공포증을 유발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숫자다. 요한에 의하면 짐승이 모든 사람들의 이마에 낙인을 받게 한 뒤 이 사람들 외에는 물건을 사지도 팔지도 못하게 했다. 사람들은 왜 666을 두려워할까?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한 글자도 읽지 않고도 소설 속 괴물에 대해 많은 것을 알 듯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을 한 글자도 읽지 않고 계시록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는 점이다. 물론 잘못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괴물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다.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이 계시록에 대해 잘못 아는 경우가 많다.

 

저자 티머시 빌이 빈틈없이 파악하기도 어렵고 손에서 놓아버리기도 어렵다고 정의한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령 에개해의 섬 파트모스에서 요한에 의해 기록되었다. 파트모스는 요한의 유배지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예수를 증언한 탓에 파트모스 섬에 갇힌 요한에 따르면 세상이 절멸한 자리에 하나님이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을 세울 것이다.

 

저자는 계시록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다양한 문화가 낳은 작품들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산출해내고 끝없이 다시 만들어진다고 설명한다.(29 페이지) 요한은 주님의 날에 성령 감동을 받고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다. 이 음성은 요한에게 자신이 보는 것을 두루마리로 기록해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에 보내라 했다.

 

계시록은 22장(마지막 장) 20절에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마라나타)란 말을 전한다. 오늘날 대다수 연구자는 계시록 저자 요한이 사도 요한 또는 복음서 저자 요한과 다른 인물이라는 견해를 갖는다.(79 페이지)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손으로 기록한 두루마리와 파피루스 또는 동물 가죽으로 만든 작은 코덱스(손으로 제본한 책)를 베껴 적고 이를 공동체라는 연결망 안에서 공유했으며 예배나 학습을 위해 가정집에 모일 때 소리내어 함께 읽었다.

 

커다란 코덱스라는 새로운 매체와 그리스도교 왕국이라는 새로운 제국 종교는 선을 맞잡고 정경을 확정했다.(170 페이지) 요한계시록은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상호본문성이라고 부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86 페이지) 저자인 요한도 단일하고 통합된 전체로서의 계시록의 저자이자 원천이라기보다 대화가 이루어지는 공간, 온갖 목소리들과 본문들이 교차하는 장소다. 요한은 여러 상상을 했지만 무시무시하고 악마 같은 제국 세력의 절정, 그리스도와 그의 참된 추종자들에게 궁극의 적이라 할 로마가 언젠가 그리스도교의 동의어가 될 정도로 그리스도교와 긴밀한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89 페이지)

 

로마 그리스도교 왕국의 제도화는 우연히 동시에 발생한 일들이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제국과 코덱스가 만나 정경이 나온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계시록의 생애에서 몹시도 위태로운 순간에 등장한 인물이다. 그는 성에 대한 불신, 원죄, 무로부터의 창조, 오직 은총에 의한 구원, 예정론 같은 교리의 틀을 만들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계시록이 근본적으로 다른 역사적 각본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계시록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적어도 몇 세기는 연기(延期)하고 있다.(103 페이지) 힐데가르트는 '스키비아스'라는 작품을 썼다. 그의 첫 저작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저술인 '스키비아스'는 스물 여섯 개의 종말에 대한 환상을 열거한 책이다. 스키토 비아스 도미니의 줄임말인 스키비아스는 주님의 길을 알라는 뜻이다.

 

힐데가르트는 점토를 섞어 자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드는 사람처럼 계시록을 다루었다.(139 페이지) 점토 이야기는 예레미야 18장을 참고하면 좋다. 저자는 말한다. 성경 역사는 창조부터 완성까지 시간에 따라 나아가는(통시적인) 세계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펼쳐지는 선형(線形)의 이야기이고 지리 정보 시스템처럼 여러 겹이 있는 지도 같은 것이어서 이 지도를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가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반영하는 역사의 공간적인(공시적인) 지형을 밝히고 해독하는 도구가 된다.

 

대우주이자 바깥쪽 바퀴인 보편적 역사의 내부에 있는 소우주인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뜻 전체를 드러내 준다. 계시록은 보편적 역사의 색인이자 해석의 열쇠다.(150 페이지) 두 명의 베네딕트회 수도사였던 빙엔의 힐데가르트(1098 ? 1179)와 피오레의 조아키노(1135 ? 1202)는 동시대를 살았지만 서로 알지 못했는데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많다.(119 페이지) 조아키노는 붉은 용 그림을 그렸다. 이 용은 사탄의 상징이지만 과거, 현재, 미래에 교회에 주어지는 시험과 시련의 역사 전체를 상징하기도 한다.(154 페이지)

 

마곡과 함께 계시록의 마지막 전투에서 하나님에게 패하는 악마의 군대 곡은 조아키노의 그림에서 또 다른 적그리스도다. 개신교 종교개혁은 신학의 혁명 못지 않게 매체의 혁명이기도 했다. 여러 측면에서 개신교 종교개혁은 성서 문해력을 끌어올리려는 운동이었고 만인사제직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성경을 가능한 한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려 애썼다.(171 페이지)

 

이와 동시에 인쇄 문화는 성서와 여타 책을 소장 가치 있는 필사본에서 시장성 있는 상품으로 빠르게 변모시켰다. 계시록은 수많은 세월에 걸쳐 누군가를 타자화하는 기계로 이용되었으며 종교개혁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188 페이지) 개신교에서는 계시록을 활용해 로마 가톨릭을 괴물로 만들었고 로마 가톨릭은 계시록을 활용해 개신교를 괴물로 만들었다. 루터는 해석되지 않은 환상과 심상만 제시하며 모호하다는 이유로 계시록을 혐오했다. 물론 루터의 바람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을 읽기 위해 성서의 다른 책들을 건너뛰었다.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에 열광했다. 참 이해하기 어렵다. 열광할 것이 있는가?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세계에 대한 내용이라면 담담히 받아들이면 되지 않는가? 열광한 사람들은 계시록을 감상용으로 즐긴 것이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용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17세기 초에 이르러 유럽인들은 인도 종교를 계시록의 사악한 괴물을 숭배하는 종교로 묘사했다.(205 페이지)

 

다른 종교를 향했던 서구 그리스도교의 괴물 만들기는 지난 세기 서구로 귀환해 뿌리를 내렸다. 1960년대 이래 미국 곳곳에서 그리스도교 우파가 부상한 현상은 여러모로 종교의 다양성이 증가한 것에 대한 반발로 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 우파의 가장 분명한 강령은 낙태 반대와 동성애 반대다. 하지만 이 운동에 속한 구성원들이 초창기부터 가장 열을 올렸던 일은 비그리스도교 특히 불교와 힌두교를 기괴한 악마 숭배 종교로 매도하는 것이었다.

 

나와 세계, 나와 다른 누구 사이에 계시록을 놓으면 그 차이는 악마화한다. 내가 속한 세계와 다른 세계는 악마의 소굴이 되고 나 혹은 우리와 다른 누군가는 악마에 사로잡힌 존재가 되며 나의 하나님과 다른 신은 악마가 된다.(215 페이지) 종말론적 괴물 만들기 과정은 괴물이 되는 대상들 즉 방문자, 이민자, 이방인, 사회 주변부에 있는 구성원들이 현실적으로 취약하다는 사실을 부인하게 만든다. 괴물이 된 이들의 인간성은 부인되고 이들을 향한 폭력은 정당화된다. 더 나아가 이들을 향한 폭력은 선과 악, 하나님과 사탄의 우주적 대결의 일부로 추켜올려져 칭송받기까지 한다.(216 페이지)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복잡한 대칭이 자아내는 효과 중 하나는 그리스도교의 서로 다른 두 시간 개념을 통합하는 것이라 말했다. 두 시간 개념이란 직선적 시간과 순환적 시간을 말한다.(233 페이지) 저자는 휴거(携擧) 이론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계시록에 휴거 이론이 담겨 있으리라고 지레짐작하지만 계시록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서술되지 않았다. 휴거 이론은 이런저런 성서 구절을 꿰어맞춘, 이질적인 부분들을 하나로 엮은 또 하나의 괴물 종말론이다.

 

저자는 계시록은 좁은 의미에서의 본문도 아니며 계속 확장하고 수축하는 다중매체 집합체라 말한다. 종교적이든 비종교적이든 좌파 진영에 속한 인물들도 종말론 각본에 긷들여져 있기는 매한가지다. 이들은 계시록의 언어로 우파의 지도자들을 비난하면서 사람을 기만하고 잔혹한 폭력을 휘두르는 사악한 힘들 그들에게 투사하고 가난한 이들과 억압당한 이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부를 추구하는 그들의 기만과 탐욕을 비판한다.(274 페이지) 종말론 각본은 그리스도교 문화 못지않게 탈그리스도교, 반그리스도교 문화에도 깊게 스며들어 있다.(275 페이지)

 

일부 그리스도교인 비평가들이 악마 숭배자라고 매도한 전설적인 헤비메탈 밴드 블랙 사바스조차 종말론 각본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다는 망상이 무너지고 결코 창조주에게 견줄 수 없는 육체적 취약성과 한계에 직면하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종말론 각본을 찾는다. 우리는 우리가 유한하다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진리대로 살아가기보다는 종말론을 불러낸다. 우리는 우리의 최후를 세계에 투사한다. 그리고는 세계는 엉망진창이라고, 행로를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이렇게 세계가 엉망진창이 된 이유는 궁극적 악을 추종하는 이들 때문이라고, 유일한 희망은 하느님이 이 엉망진창이 된 우리 땅, 세계를 대체할 새 육체, 새 하늘, 새 땅을 주셔서 우리를 구해주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279 페이지)

 

계시록은 탄생부터 기괴했다. 무로부터 혹은 흙으로부터 창조되지 않고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처럼 짜깁기된 계시록은 유대교 경전과 여러 신화들의 다양한 조각과 파편들로 만들어졌고 우리에게는 미지의 것으로 남아 있는 초기 예수 운동의 어두운 한구석에서 생명을 얻었다.(281, 28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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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질량이 클수록 수명이 짧다. 태양 질량의 20배가 넘는 별의 경우 엄청난 자체 중력(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한다. 폭발력이 안으로 향하는 것을 내파(內破)라 하고, 밖으로 향하는 것을 외파(外破)라 한다. 내파를 폭축(爆縮)이라고도 한다. 축(築)이란 말은 당연히 수축(줄어드는 것)을 의미하지만 흥미롭게도 옳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디에 그런 말이 있는가? ‘맹자’에 나오는 자반이축 수천만인 오왕의(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란 말에서 그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스스로 돌아보아 잘못이 없다면 비록 천만인이 가로막아도 나는 가리라는 뜻의 말이다. 자신과 관련된 일도 아니고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닌데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하는 사람 때문에 친구가 조심하자는 말을 한 끝에 결론 삼아 한 말이다.

 

폭축(爆縮)이란 말은 내성(內省)을 떠올리게 한다. 폭축이 폭발력이 안쪽으로 향하는 것이라면 내성은 밖으로 향하던 관심과 지향을 안으로 돌려 제 마음을 성찰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 관심과 지향이 밖을 향하고, 어떤 경우 안을 향하는 것일까? 메타적 능력 즉 자기를 대상화해 바라보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러기도 하고 그러지 못하기도 할 것이다.

 

양적 변화가 쌓여야 질적 변화가 일어나듯 지식도 충분히 쌓여야 메타적 지식이 된다. 프린스턴대학의 천체물리학자 네터 배철(Neta Bahcall)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우리 우주를, 팽창을 막는 데 필요한 질량의 일부만을 지닌 체중 미달의 우주로 정의했다. 별의 행보에 질량이 중요하듯 우리의 행보에는 자기성찰적 지식이 중요하다.

 

공부하지 않으니 숙고하고 점검해야 할 것이 없고, 또 그래서 시간이 남아 남의 개인사에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이다. 물론 그 덕에 나는 오랜만에 나를 돌아보는 계기를 삼았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이 그 자체로 덕스럽지 못한 행동임을 알 것이다. 만일 그것도 모른다면 그는 나이만 먹은 아이 같은 어른에 불과하다. 나이가 들면 존경은 못 받더라도 지탄은 받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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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지켜낸 어머니 - 이순신을 성웅으로 키운 초계 변씨의 삼천지교 윤동한의 역사경영에세이 3
윤동한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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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계는 지금의 경남 합천이다. 이순신의 어머니가 초계 변씨이다. 무인 변수림의 딸 초계 변씨다. 남편 즉 이순신의 아버지는 이정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순신의 어머니, 작은 어머니, 할머니가 모두 초계 변씨라는 사실이다. 이순신은 어머니를 시종 천지(天只) 즉 하늘이라 표현했다. 이순신의 무공(武功)이야 널리 알려진 바이지만 그의 어머니 초계 변씨의 혁혁함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을 지켜낸 어머니‘는 이순신의 어머니에 초점을 두고 쓴 책이다. 부제는 '이순신을 성웅으로 키운 삼천지교(三遷之敎)'다. 삼천이란 건천동에서 아산으로, 아산에서 여수로의 이사를 이르는 말이다. 서울 건천동에서 태어난 이순신이 아산으로 이사한 것은 할아버지(초계 변씨의 시아버지)가 중종의 국상 당시 혼인 잔치를 해 녹안(錄案; 관리의 범죄 사실을 기록한 장부)에 오름에 따라 자식들의 장래를 염려한 어머니에 의해서다.

 

아산은 이순신 어머니의 친정이었다. 이 시절 이순신은 문과에서 무과로 학업을 바꾸어 급제했다. 이순신의 어머니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을 정신적으로 후원하기 위해 아산에서 여수로 이사했다. 과연 이순신의 어머니 초계 변씨는 조선을 지켜낸 어머니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순신은 형 요신으로 인해 동학(東學)을 통해 유성룡을 만났다. 유성룡은 이순신을 정읍 현감, 전라좌수사에 적극 천거했다.

 

이순신의 할아버지 이백록이 기묘사화 때 조광조와 뜻을 같이하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말이 있지만 이백복(이백록의 형)과 혼동한 결과로 보아야 한다. 이순신의 어머니 초계 변씨가 보인 주도적 역할은 당시만 해도 여성의 지위나 발언권이 높았던 시대였음을 감안해야 한다.

 

이순신을 중매 선 사람이 영의정인 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이었다.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에게 사약을 가져다 준 이세좌의 손자였다. 연산군이 내린 처벌로 집안에 남자가 없을 정도였으나 유모가 데리고 달아난 덕에 이윤경, 이준경 형제는 살았다. 이준경은 하성군을 세운 사람이기도 하다.(하성군은 선조다.) 이준경은 붕당의 출현을 이야기했고 왜적의 침입도 예언했다.

 

이준경이 중매를 선 것은 그가 이순신의 조부, 처조부와 같은 해에 과거에 급제한 동기였기 때문이리라. 이순신은 무과 도전 10년만에 급제했다. 이순신의 어머니 초계 변씨에 의해 주도된 아산 이주는 가문에게는 경제적 해결책이 되었다. 이순신의 어머니는 전라좌수사로 임명된 이순신이 찾아오자 가서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으라고 당부하며 이별을 조금도 탄식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어머니의 성격을 그대로 닮았다. 모자 모두 자주, 자립을 원칙으로 여겼고 아무에게나 손을 내밀지 않았다.

 

어머니는 여간해서는 흔들리는 성격이 아니었다. 냉정할 정도로 침착한 사람이었다. 이순신은 이런 인연, 저런 연줄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었던 위치에 있었지만 절제했다. 모자는 애틋한 정을 주고 받았다. 어머니는 78세에 여수행을 결정했다. 아들 이순신이 49세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때다. 이순신은 탐후(探候船)이 오지 않자 '어머니의 안부를 알 수 없다, 걱정이 되고 눈물이 난다.'고 썼다.

 

이순신은 1596년 새해의 결심을 대학(大學)의 구절을 빌어 썼는데 부윤옥(富潤屋)이란 구절은 뺐다. 덕에만 관심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이순신은 예민한 사람이었다. 이순신은 가토 기요마사가 꾸민 간계에 걸렸다. 간계임을 알아차리고 기다렸지만 조정에서 어리석게도 사태를 바로 보지 못하고 이순신을 죽이라고 난리를 쳤다. 이순신을 비호해줄 유성룡은 지방 순시에 나가 있었다. 대신들이 하나 같이 이순신의 죄를 묻는 상소를 올리자 이순신을 질투(104 페이지)하던 선조는 못 이기는 척 이순신의 파직을 명했다.

 

여기서 통제영에 대해 말하자. 통제영은 조정으로부터 한 푼의 지원도 받지 않는 자립, 자영 체제였다. 수만의 군사를 동원할 수 있는 데다가 명나라 장수도 함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위세가 대단한 작은 정부였다. 이순신은 통제영의 원수(元帥)였다. 선조로서는 큰 위협을 느꼈을 수 있었다. 이순신은 순순히 체포되었다. 이순신의 직속 상사인 이원익은 단도직입적으로 왜적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은 뒤 바로 이순신이라 답하며 '지금 그를 죽여 무엇을 얻으시겠습니까? 부디 간언컨대 순신을 살려 전쟁으로 보낸 공을 세우게 하옵소서, 공을 세워 나라도 구하고 죄도 갚게 하소서.'라고 말했다.

 

이순신은 1597년 2월 한산도에서 체포되어 3월 4일 서울 전옥서(典獄署)에 수감되었다. 판중추부사 정탁은 처음에는 순신이 잘못한 줄 알았으나 진상을 들은 뒤 목숨을 걸고 탄원했다. 이에 선조는 특별사면령을 내렸다. 정탁의 상소는 유성룡의 우회적 상소라는 말도 있다. 아들의 하옥 소식을 들은 83세의 어머니는 내 관을 짜서 배에 실라는 말로 아들을 보려 가려는 자신의 건강을 우려해 반대하는 사람들을 물리쳤다. 아들이 풀려났지만 어머니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갔다.

 

저자는 모든 어머니는 자식의 의지처라는 점에서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있었던 이순신도 주요 해전에서 대승의 에너지를 어머니로부터 공급받았을 것이라 짐작한다고 말한다.(230 페이지) 사료를 집요하게 파헤치지 않으면 세세한 것들을 결코 찾지 못할 것이라 말하는(107 페이지) 저자의 집념이 빛나는 책이다. 흥미롭게 읽었다.

 

선조의 치졸함은 역시 안타깝게 읽혔다. 이순신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아서인지 관련이 있지만 직접 자료가 될 수 없는 주변 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다소 많지 않나 싶다. 1944년 중종 국상일(61 페이지), 이 충무공이 활쏘기를 연마하던 곳 한산정(閑山停)(110 페이지).. 신라시대의 지방군 부대를 이르는 한산정(漢山停)을 보고 잘못 쓴 것이 아닌지?(停; 신라의 군영) 등의 오류가 보인다.(한산정은 閑山亭이라 해야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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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동네에 살고 있습니까 - 동대문구 사람들의 소소한 삶과 역사
시민나루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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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동네에 살고 있습니까’는 동대문구의 동(洞)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다룬 동들은 제기동, 회기동, 이문동, 휘경동, 청량리동, 전농동, 용신동, 답십리동, 장안동 등 아홉 개 동이다. 이 동들은 놀라운 역사를 가진 동들이다. 조선 왕조의 출범과 함께 왕이 친히 농사의 모범을 보인 곳, 그 수고를 백성들과 국밥으로 나누며 하늘에 제례를 올리던 신성한 곳, 동부권 물류와 소비의 중심지, 도성의 채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던 공급지, 국가의 전략적 중요 관리대상이었던 목마장이 있던 곳, 노동환경이 열악하던 시절 영상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최고의 복지를 제공하던 촬영소가 있던 곳...

 

제기(祭基)는 조선시대 왕이 제사를 지내던 터를 말한다. 회기동(回基洞)은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의 묘인 회묘(懷墓)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회묘는 고양 서삼릉 영역으로 옮겨졌다. 이 동에 경희대학교가 있다. 신흥무관학교를 이은 학교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그 사실을 감추려 했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 가운데 돈이 있는 사람들이 없어 재력이 있는 친일 경력의 인사들을 영입했기 때문이다.

 

연화사(蓮華寺)는 회릉의 원찰이었다가 회릉이 회묘로 격하되자 일반 사찰이 되었고 의릉(懿陵)이 들어서면서 다시 원찰이 되었다. 이문동(里門洞)은 시골이 연상되는 동이다. 도둑을 단속하기 위해 전국의 마을 입구에 세운 문인 이문은 성문(城門)과 대비된다. 성과 외부를 구분하는 문이 성문이라면 마을과 마을의 외부를 구분하는 기준점이 이문이다. 이문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다. 이런 곳에 설렁탕 같은 음식을 파는 곳이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인다.

 

세조는 야간 치안을 감당한다는 취지로 전국 요지에 방범초소격인 이문을 세웠다. 이문동에는 천장산(天藏山)이 있다. 상술하지 않겠지만 하늘이 숨겨놓은 산이 아니라 권위주의 시대의 정보기관이 숨겨놓은 산이다. 휘경동(徽慶洞)은 순조의 어머니 수빈 박씨의 역사가 깃든 곳이다. 휘경동은 수빈 박씨의 묘인 휘경원(徽慶園)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청량리(淸?里)는 지역의 청량사(淸凉寺)란 절에서 유래했다. 전농동(典農洞)은 임금의 경작지인 적전(籍田)에서 유래한 동이다.

 

청량리가 대중적인 이름이라면 전농동은 유서 깊은 이름이다. 전농동에는 부군당(府君堂)이 있다. 신당(神堂)을 말한다. 조선 개국 공신 조반(趙?; 1341 ? 1401) 대감을 모신 곳이다. 전농동은 화가 박수근의 마지막 생을 기억하는 곳이다. 전농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산이 배봉산(拜峯山)이다. 110m 높이의 낮은 산으로 사도세자의 묘소인 '영우원'과 '휘경원'이 있었다. 정조가 부친의 묘소를 향해 절을 했기 때문이라는 설, 산의 형상이 도성을 향해 절을 하는 형세를 보이기 때문이라는 설 등에서 유래됐다.

 

배봉산 숲속 도서관은 가볼만한 곳이다. 용신동은 용두동과 신설동을 합한 이름이다. 신설동(新設洞)은 구한말 종로의 연장선의 의미로 세워진 신도시였다. 한성부의 숭신방과 주로 겹쳤다. 마을 뒷산의 세(勢)가 용의 머리와 같다고 해서 용두동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한국 전쟁 이후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모여살던 판자촌으로서의 기억이 강하다. 청년 전태일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던 판자촌 중 한 곳이 청계천변 용두동이다.

 

답십리동은 뚜렷한 정체성이 없다. 지금 사람들은 청량리역과의 접근성 때문에 답십리를 청량리와 묶는 경향이 있지만 이 지역의 정체성은 왕십리 지역과 더 잘 묶인다. 왕십리는 조선 전기부터 한양도성에 채소를 공급하는 배후지였다. 당시는 저장시설과 운송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고기나 채소 등 부패하기 쉬운 것들은 먼 곳에서 운반할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청계천 주변의 왕십리 등 인근 지역 일대는 한양도성의 채소 공급지로 기능했다.

 

마장동 일대의 우시장도 그런 연유로 활성화되었다. 청계천의 지류를 활용해 왕십리와 답십리가 순무, 배추 등을 도성에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답십리의 영화촬영소와 고미술상가는 가볼만하다. 장안동은 동대문구에서 인구, 공원, 학원, 사무실이 가장 많은 동이다. 현재 자동차 중고시장이 있는 장안평역 근처는 조선시대에는 말이 쉬어가던 살곶이 목장이 있던 곳이다. 장안동에 공원이 많은 것은 이곳이 군사적 요충지(말 목장, 군사 훈련장)였던 것과 관련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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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2-03-04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돌아다니던 동네가 나오니 신기합니다^^ 마장동 대로 주변에는 90년대에도 한 번씩 말이 다니곤 했는데 말이죠. 그리고 김수영 시인이 10대 시절(6년 정도, 1934-1940) 살았던 곳도 용두동으로 알고 있습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22-03-04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시군요.. 김수영 시인 이야기까지 들려주시고..감사합니다...
 
재미로 읽다가 100점 맞는 색다른 물리학 : 상편 - 교과서보다 쉽고 흥미진진한 물리학 교실 재미로 읽다가 100점 맞는 색다른 물리학
천아이펑 지음, 정주은 옮김, 송미란 감수 / 미디어숲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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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가 없으면 선택받지 못하는 시대다. 물리도 그렇다. 물리를 설명하는 방식도 재미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재미로 읽다가 100점 맞는 색다른 물리학(상권)’은 거북이와 달팽이, 참새의 상대 속도를 재미 있게 설명하는 것으로 테이프를 끊는 책이다. 물리학은 물질 운동의 가장 일반적인 규칙, 물질의 기본 구조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물체의 운동은 공간, 시간, 기준틀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은 운동의 상대성을 이해하게 해주는 고사성어다. 각주구검은 배를 타고 가던 중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자 배에 칼 떨어진 장소를 표시 해놓고 찾으러 간다는 뜻이다. 배는 움직이고 검은 그 자리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책은 1장 운동, 2장 힘과 뉴턴의 운동법칙, 3장 일, 에너지와 운동량, 4장 열현상 등으로 구성되었다. 사람이 걷는 현상도 흥미로운 분석의 대상이다.

 

사람이 두 발로 땅 위에 우뚝 설 수있는 것도 사람의 무게중심으로부터 지표면에 내린 수선(垂線)이 두 발을 지지하는 기저면의 범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앞으로 걸음을 내디딜 때, 가령 왼 다리를 앞으로 내디디면 무게중심의 수선이 오른 다리의 기저면 범위 밖으로 나가므로 앞으로 고꾸라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와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앞으로 내디딘 왼 다리가 이미 앞쪽의 지면을 밟아 무게중심의 수선이 다시 두 다리를 지지하는 기저면 범위 안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걷는 것은 끊임없이 앞으로 쓰러지는 행위인데 넘어지기 전에 하는 동작이 수평면상에서 똑바로 서서 넘어지지 않을 조건을 충족하기 때문에 바닥과의 충돌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은 불가피하게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려야 할 경우 어느 쪽으로 뛰어내려야 좋은가?란 물음도 던진다. 이는 뉴턴의 운동 제1법칙(관성의 법칙)에 관한 단서를 알게 하는 질문이다. 행성운동의 3대 법칙인 타원궤도의 법칙, 면적속도 일정의 법칙, 조화의 법칙을 발견한 케플러는 우주의 입법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책은 배 위에 얹은 석판을 깰 수 있는 이유도 설명한다.

 

책은 고드름에서 피어오르는 김과 끓는 물에서 피어오르는 김은 같을까?란 질문을 던진다. 책 앞 장에 고체처럼 분명하게, 액체처럼 부드럽게, 기체처럼 날렵하게 물리학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는 소개 문구가 있다. 재미 있는 책이다. 현실과의 연결고리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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