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서 brain(두뇌)과 metaphor(은유; 隱喩)를 검색하면 두뇌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들이 뜬다. 뇌는 컴퓨터란 말도 그 중 하나이다.

알랭 드 보통(작가)은 뇌를 결함 있는 호두라 표현했다. 주름진 뇌를 보면 그의 말이 이해된다.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뇌는 하늘보다 넓고 바다보다 깊다는 표현을 했다. 우리의 뇌는 은유나 상징을 이해하고 구사하기 때문에 컴퓨터와 다르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이 컴퓨터와 다르기에 우리 뇌는 컴퓨터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촬영 결과 은유를 구사할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은유적 어조를 들을 때 정보에 의미를 부여하는 기능을 가진 좌측 하측두이랑, 시각정보 처리와 관련된 좌측 하선조 영역, 뇌졸중 후 언어 능력 회복에 작용하는 우측 하측두이랑 등이 유의미하게 활성화된다는 것이다.(2008년 발행 ‘생물치료정신의학‘ 14권 1호 수록 김성훈, 유병국, 김양태, 권도훈, 조성남 씀 ‘정신분열병 환자에서 아이러니와 은유의 이해‘)

한 권의 책 속에 담긴 은유와 상징 등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단어들이 뇌의 다양한 부위를 자극하고 결과적으로 이는 신경세포의 연결을 강화해 두뇌 기능을 향상시켜준다.(양은우 지음 ‘처음 만나는 뇌과학 이야기‘ 중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73 페이지)

자연과학에서 멀어진 채 몇 년을 보냈다. 그 학문에 다시 다가가려는 노고를 기울여야 한다. 힘들다면 뇌과학만이라도 읽도록 해야 하겠다. 바보가 되지는 말아야 하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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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 박사 고미송 님. 내가 처음 읽은 이 분의 책은 2011년 나온 ‘채식주의를 넘어서’이다.

2000년대의 약 30개월(2007년 1월 – 2009년 7월)간 채식주의로 살았던 경험을 반추하며 읽은 책이다.

육식은 잘못이고, 채식은 올바르다는 관점은 교조주의적 사고라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저자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의 뿌리를 같은 것으로 보았으며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대해서는 불편해 하지만 동물의 소비는 불편해 하지 않는 여성주의자들을 문제시 했다.

이 책의 논지에 공감한 나는 이 책 이전에 나온 ‘그대가 보는 적(敵)은 그대 자신에 불과하다‘를 읽게 되었다.

그런데 어렵고 낯선 개념들이 많아 잠시 제쳐 두기로 했었는데 6년이 지난 지금도 완독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던 중 어제 서대문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강의를 듣다가 휴식 시간에 우연히 여성신문(2017년 10월 26일, 1461호)을 보게 되었다.

이 신문에서 접하게 된 칼럼들 가운데 눈에 띈 것이 바로 최형미의 ’책으로 다시 만난 세상’이란 칼럼이고 그 날짜에 바로 ‘그대가 보는 적은 그대 자신에 불과하다’ 리뷰가 게시되어 있었다.

책의 논지를 따르는 한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것인 바 칼럼 제목(‘분노의 감옥에 갇힌 여성운동’)부터 심상치 않게 여겨지는 글이다.

제3의 길을 제시한 것으로 보이지만 논란을 부를 수 있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만이 아니라 남에게 피해를 받았다는 생각 그 자체도 마찬가지로 억압으로서의 효과를 갖는다.”(본문 중에서) 같은 글들을 이야기하기보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읽기를 바라고 두 가지 점을 말하고 싶다.

서평에 저자가 의거(依據)한 중관(中觀), 공(空), 연기(緣起) 등의 불교적 관점(저자는 불교도이다.)이 단편적으로라도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난해하기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내가 책을 읽다 그만 둔 것은 난해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시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난감해서이다. 신선하고 설득력도 있지만 여러 요인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평자(評者)가 저자(著者)의 논지를 비판할 법도 한데 그대로 설명하는 데 그쳤다는 점이다.

그래도 여성운동가들에게 고통을 다스리기 위해서 원인을 외부에서 찾아내려는 집착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한 저자의 논리를 소개하며 그것은 여성주의를 그만 두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인으로 찾아낸 것을 절대화하지 않는 겸손한 성찰을 권하는 것으로 해석한 것 등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대가 보는 적은 그대 자신에 불과하다’, 길게 공부해야 할 이슈의 책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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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다비드 나지오는 ‘카우치에 누운 정신분석가’에서 이끌림(aimance)이라는 단어를 선보인다.(55 페이지)

누군가의 품에 안겨 그에게 의존하려는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사랑한다(aimer)는 단어와 경향성(tendance)이라는 단어를 조합해 만든 단어이다.

나지오에 의하면 정신분석은 전이(轉移)라 부르는 그런 의존관계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바(54 페이지) 전이를 다른 말로 설명하면 환자를 치료자와 연결시켜주는 애정어린 정서와 적대적인 감정들의 총체(57 페이지), 이상화(理想化)된 치료자에 대한 강한 애착이다.(59 페이지)

키워드는 애정어린 정서와 적대적인 감정들의 총체라는 말이다.

내 서가(書架)에 사랑에 대한 책들이 꽤(?) 많다. 강응섭(정신분석학자, 신학자)의 ‘첫사랑은 다시 돌아온다’, 남미영(문학가)의 ‘사랑의 역사’, 주창윤(시인)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미셸 오당(산부인과 의사)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슬라보예 지젝, 레나타 살레츨(편집)의 ‘사랑의 대상으로서 시선과 목소리’...

최근 다비드 나지오의 ‘사랑은 왜 아플까? - 사랑과 고통의 정신분석’, 우에노 치즈코 등의 ‘우리는 왜 사랑을 반복하는가’ 등이 나왔다.

나지오는 ‘사랑은 왜 아플까? - 사랑과 고통의 정신분석’에서 사랑은 선택된 사람을 이상화하는 행위라 말한다.

김종주 박사(정신의학자)는 사랑에 관한 수많은 담론들은 사랑 그 자체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그 무엇의 대체물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사랑에 관한 작품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박사는 그렇더라도 상실된 님을 찾아 헤매는 사랑의 노래로 채워진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덧붙인다.(25 페이지)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할까? 사랑 소설을 찾지 못했기에 그 대체물로 이상화(理想化)의 열정을 말하는 나지오의 책을 ‘들여다보‘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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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다 죽어라‘란 말이 있고 ’죽도록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전자는 죽을 때까지 공부하라 말인 듯 하고 후자는 맹렬(猛烈)하게 공부하라는 말인 듯 하다.

공부하다 죽으라는 말은 공부만 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소득(所得)으로 연결되는 공부를 해야 하지만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공부만 하고 싶은 때가 있다.

열심히 사는 것은 맞지만 관성(慣性)에 빠진 행위가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여전히 필요한 것은 용맹 정진(精進)하는 마음으로 하는 공부, 소득과 연결 짓는 공부, 실지(實地)에 서는 공부다.

배워야 할 것이 참 많다. 욕심이 많은 것일 수 있고 과거에 열심히 배우지 않은 결과일 수 있다.

인문 공부는 후에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실용 공부는 아시혈(阿是穴)에 조치를 취한다는 마음 때문에 떨쳐버릴 수 없다.

탄허(呑虛)기념 박물관에서 올 가을, 겨울 시즌(11월 25일, 12월 2일) 한비자(韓非子) 강의, 내년 봄 주역(周易) 강의를 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늘 그렇지만 아리아드네의 실(thread)이 될 강의이다. 우선 내일 추위 속에 위축되지 않고 가야 할 서대문 강의부터 생각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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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둘째 주 토요일인 지난 11일 늦가을 추위 속에서 우리나라 궁궐들 중 가장 아름다운 창덕궁 해설을 들었습니다. 최신작인 한양 읽기의 저자 홍순민 교수님께서 해주신 직강(직접 강의)의 시간이었습니다.

 

입장을 위해 표를 사려고 길게 늘어선 다른 여러 일행들 때문에 시작 시각을 넘길 수 밖에 없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많은 해설을 들을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해 좋았습니다. 흔히 창덕궁 해설은 정문인 돈화문 바로 앞에서 시작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지만 교수님께서는 사실상 궁궐이 시작되는, 소맷돌로 장식된 임금의 계단이 좌우 계단을 거느리고 있는 바깥 지점에서 해설을 시작하시는 새로운 면을 보여주셨습니다.

 

돈화문은 액자에 그림을 담은 것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 북한산 보현봉에 맞춰 설정한 문이라는 설명부터 예사롭지 않았고 북한산 한강’, ‘응봉(鷹峯) - 청계천’, ‘인정전 뒤의 산 금천교의 물이라는,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프레임을 좁히는 구도로 여러 차원의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설명하신 것을 보며 전체적인 틀을 헤아리도록 길을 제시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별히 인상 깊었던 것은 일제에 의해 훼손된 궁궐을 원래 모습과 다르게 생각 없이 복원시킨 여러 지점을 비판적으로 지적하신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비판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날카로운 것이라는 애드립(?)으로부터도 배웠습니다.

 

고가의 외제 명품이 진짜 명품이 아니라 우리 것이 진정한 명품이고 그런 것을 알아보는 사람이 가치있다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내전(內殿)인 희정당 영역에서는 일제에 부역했던 화가들의 그림이 격에 맞지 않게 배치된 서양식 장식물들과 함께 위화감을 조성하는 현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적절한 유머 속에서 이것이 중요한가 저것이 중요한가 하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점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평소 친숙하게 대하던 창덕궁도 얼마든지 새롭게 볼 수 있음을, 아니 그래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한 시간이었습니다.

 

중요한 내용을 스마트폰 메모장에 기록하느라 놓친 부분이나 전체적인 동선, 답사 방식 등을 다시 눈여겨 보기 위해 해설 답사 기회가 한 번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염치 없는 생각이지요?) 이번 해설 시간은 명강을 듣기 위해서는 듣는 사람도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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