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만난 한국사
김용만 지음 / 홀리데이북스(Holidaybooks)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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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를 전공한 저자가 한국사에서 숲이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말한 책이다. 생태적 관점에서만 주목받았을뿐 문명사의 관점에서는 방치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전제다. 이는 수렵 채집민에 대한 편견을 지양할 필요가 있음을 말하는 대목이다. 간단히 말해 수렵 채집민은 야만인이 아니다. 저자는 진정한 야만 사회는 문명사회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나는 문명사회를 세련된 야만의 사회로 본다. 저자는 삼국시대를 기준으로 보면 전혀 다른 역사가 보일 수 있다고 진단한다. 이렇듯 숲을 키워드로 해 시대를 나누어 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는 사안이 조선 후기에 우리 역사 무대가 한반도에 불과한 반면 삼국시대에는 만주와 연해주를 포함한 드넓은 지역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삼국시대의 무대는 숲이 울창한 무대였다.

 

한편 조선 전기까지 수렵, 채집은 농민들에게도 중요한 생산 활동이었다.(19 페이지) 우리나라에서 숲은 행정 용어 또는 법률 용어로 산림이라 한다. 산이 국토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에서 숲은 대개 산에 조성되어 있다. 그렇기에 산과 숲을 함께 말해야 한다. 물론 산지가 많다고 반드시 숲이 많은 것은 아니다.(28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숲은 배움의 공간이자 종교를 탄생시킨 장소였다. 숲속에서 살려면 엄청나게 많은 지식을 쌓아야 한다. 스톤헨지에 대해 알아보자. 스톤헨지는 영국 남부 윌트셔 주 솔즈베리(Salisbury) 평원과 에이브버리에 있는 선사 시대의 거석기념물에 있는 환상 열석 유적을 말한다. 이는 수렵 채집민의 천문학 지식이 반영된 유적이다. 천문학은 농민만이 아니라 수렵 채집민에게도 중요했다.

 

숲은 도시와 달리 인구 밀도가 낮아 병원균 전파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전염병이 크게 유행할 수 없다. 7세기 지중해 세계를 휩쓸었던 페스트는 산림이 울창했던 중부유럽의 숲을 지나면서 쇠약해졌다. 이는 병원균을 전파하는 쥐들이 숲속에서 이리, 올빼미, 족제비 등을 만나면서 많이 죽었기 때문이다.

 

농경민은 유목민이나 수렵민보다 인구 증가 속도가 빠르다. 수렵민과 유목민은 아이가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출산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 농경은 한 번 시작하면 중도 포기가 어려운 생업 활동이다. 투자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노동력도 많이 필요하다. 집단 노동 과정에서 설계자, 지휘자, 잡일을 하는 사람 등이 구분됨으로써 집단 내에 계급, 신분, 빈부 등에서 차별이 생겨났고 주변 집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자와 패배한 자의 구분이 생겼다. 이는 도시, 그리고 국가 탄생의 시발이 되었다.(40 페이지)

 

권력자들은 통제, 징세(徵稅) 등의 이유로 농경을 권장 또는 강요했다. "국가에서 비록 재인(才人)이나 화척(禾尺)의 무리들로 하여금 유이(流移)하지 못하도록 하더라도 호패가 있지 않은 까닭으로 이사하는 것이 무상하고 농업을 일삼지 않습니다.“란 태종실록의 한 구절이 단적으로 증명하는 바다.

 

저자는 말한다. 장벽 안에만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니며 국가와 문명이 농경민의 전유물도 아니라고. 물론 농업, 유목, 수렵은 고정 불변의 대상이 아니다. 숲에서 성장한 고구려 추모왕에 대해 알아보자. 추모왕은 수렵민 출신이지만 그가 세운 고구려는 농업국가로 발전했다. 수렵민이 국가를 세웠지만 수렵과 채집만으로는 국가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를 보며 생각하게 되는 것은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는 말이다.

 

한 고조 유방이 항우를 격파하고 천하를 통일한 후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고 자화자찬하자 육가(陸賈)라는 유생(儒生)이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고 어찌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을 했다.

 

로마에서 숲이 사라지기 시작한 시점에서 일신교인 크리스도교가 수용되기 시작했다. 조선 후기에 숲이 감소한 원인 중 하나는 산신의 존재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 유교의 이념이 사회 전반을 지배했기 때문이다.(93 페이지) 19세기에 등장한 동학 등 신흥 종교들이 유일신 신앙을 내세우고 일신교인 크리스트교가 조선 사회에 빠르게 수용될 수 있었던 원인의 하나는 숲이 사라져 백성들이 신앙하던 다양한 신성성이 크게 약화되었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정된 과녁이 아닌 움직이는 동물을 맞히는 활쏘기로 인재를 뽑았다. 강궁(强弓)을 빠르고 정확하게 어떤 자세에서도 쏘려면 오랜 세월 연습해야 한다. 물론 평상시 농사만 짓던 농민들이 쉽게 이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닌 것이다. 추모(鄒牟)왕은 한 발에 맹수를 사냥할 수 있었다. 구석기 시대에 주먹 도끼를 잘 만드는 사람이 신랑감으로 인기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삼국시대에도 사냥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인기를 얻었다. 사냥 능력은 가족 부양 능력과 직결되었다. 수렵 채집 사회는 단순 수렵 채집 사회와 복합 수렵 채집 사회로 나눌 수 있다. 단순 수렵 채집 사회는 환경이 예측 불가능하고 가변적이어서 이동을 자주 하고 전쟁이 드물며 노예도 없고 종족간의 경쟁도 없으며 식량을 저장하는 것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다.

 

복합 수렵 채집 사회는 변동이 적고 예측 가능성이 높고 이동을 적게 하고 정주(定住) 경향이 강한 사회다. 숲은 전쟁 때문에 가장 크게 피해를 입는다. 전쟁터로 숲이 선택되는 순간 숲은 크게 훼손된다. 승리하기 위해 숲에 불을 지르고 무기나 목책 등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마구 베기도 한다. 군사들의 숙영(宿營)을 위해 땔감용 나무를 베어내기도 한다.

 

전쟁으로 숲이 파괴된 대표적인 곳이 평양이다. 고구려 후기 수도로 수십만 명이 모여 살았던 평양은 612년, 661 ~ 662년, 667~ 668년 3회에 걸쳐 수당 군의 침략을 받았다. 668년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의 공격에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평양 일대가 크게 황폐해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전쟁이 문명 발전을 촉진한 반면 숲은 빨리 훼손되었다는 점이다. 나무는 무기의 재료나 무기 제작을 위해 땔감으로 사라졌다.

 

7세기 동아시아는 대전쟁의 시대였다. 농사 짓고 평화롭게 살기가 어려운 시대였다. 이 때 필요한 것은 강인한 수렵민 전사였다. 하지만 그들이 야만인 무법자 살인자는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을 지키기 위해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지속하기 위해 활과 창을 든 사람들이었다. 자연을 거스르며 땅을 뒤엎고 세상의 질서를 인간 중심 특히 특정한 개인인 황제 중심으로 바꾸려고 했던 자들이야말로 잔인한 전쟁광, 살인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권력에 아부한 자들이 기록한 역사서에서는 그러한 전쟁광을 성군, 영웅으로 기억하라고 강요해왔다.

 

강철이 등장하자 많은 것이 바뀌었다. 권력자의 힘은 커졌으며 대규모 벌목이 이루어졌다. 거대 국가가 등장했다. 벌목용 도구인 도끼는 권력자의 상징이 되었다. 권력자의 힘이 숲의 신보다 우월해지면서 숲에 대한 경외감이 사라졌다. 과거 소금은 바닷물을 끓여 만들었다.(현재는 바닷물을 햇빛에 말려 소금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나무가 많이 소비되었고 이보다 더 많이 금속 생산을 위해 나무가 소비되었다.

 

숯 생산지는 철산지 가까운 곳에 있다. 철 생산과 숯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목재가 부족해서 3~5세기 가야의 묘제가 나무를 사용한 목곽묘에서 석곽묘로 바뀌었다는 연구도 있다. 숲은 공기부족으로 인해 나무가 불완전연소되어 만들어진다. 숯은 1200도까지 타는 연료다. 기와집이 많아진 것도 숲에 치명적이었다. 기와도 높은 온도에서 구워야 하기 때문에 연료인 나무를 대량으로 소비하게 된다.

 

민둥산은 비가 오면 빗물을 저장하지 못 한다. 산 아래로 빗물이 마구 흘러가면서 흙이 평지로 쓸려 내려간다. 산에서 붕괴된 토사는 농경지를 파괴하고 강바닥을 높였고 결국 강을 범람하게 하여 홍수를 만들고 농사를 망치게 한다. 나무가 없는 숯은 구름을 만들지 못해 비도 적게 오게 하고 내린 빗물도 빨리 고갈시킨다. 이로 인해 큰 가뭄이 발생한다. 외적과 전쟁을 많이 했던 고구려는 초기부터 힘을 과시하기 위해 궁궐 건축에 집착했다.

 

고구려 사람들은 음식은 절약했지만 궁궐 치장은 좋아했다. 조선 중기 이후 백제 미륵사, 신라 황룡사, 고려 광통보제사와 같은 거대한 사찰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불교가 배척되었던 것도 원인이지만 숲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좋은 목재들이 사라진 탓에 거대 사찰이 만들어지기 어려웠다. 이기봉의 '임금의 도시'를 통해 조선의 건축물이 크지 않은 것은 유교의 검소 문화 때문이 아니라는 주장을 접한 기억이 난다.

 

유교 문화는 검소 문화일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조선은 중종 시대를 거치며 사냥 횟수가 급격히 줄었다.(268 페이지) 인종, 명종, 선조는 사냥을 거의 하지 않았다. 왕이 무예를 연마하고 사냥하는 것을 신하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왕이 사냥을 나가지 않은 것은 단순히 신하들의 반대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선 초기에 왕은 간편한 무복(武服)을 입고 소수의 호위 군사들을 이끌고 나갔으나 유교적 예법이 자리를 잡으면서 왕들이 궁궐 밖을 나갈 때 수많은 시종과 호위 군사들이 따라가면서 비용이 점점 늘었다. 사냥에 온갖 격식을 갖추다 보니 사냥으로 인한 피해도 커졌다. 군사 훈련이나 식량 마련을 위한 수렵민의 사냥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269 페이지)

 

고려 시대에 흔했던 2층 건축물이 조선에서 많이 만들어지지 못했던 것은 그 시대에 숲이 훼손되어 기둥으로 사용할 좋은 목재를 구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사찰은 백성들로 하여금 불교를 신앙하도록 하기 위해 만든 인위적 성소다. 사찰이 많이 건립되고 거대화될수록 나무가 많이 잘려나갔다. 전생에 공덕을 쌓은 덕에 현세의 부귀를 얻게 되었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것이 불교의 연기설이다.(179 페이지)

 

흥미로운 점은 불교의 운판, 목어, 범종 등이 새, 물고기, 뭍짐승들에게 불법을 널리 알린다는 표면적 목적이 있지만 숲속에서 동물들의 접근을 막는 기능을 한다는 주장이다. 절에서 피우는 향(香)도 온갖 벌레를 쫓는 역할을 했다.(181 페이지) 사찰은 신도들의 숙박을 위해 원(院)을 만들었다. 다량의 땔나무가 필요했다. 숲이 우거진 곳에 자리한 사찰에서는 나무로 숯을 만들어 팔았다. 물론 스님들은 사찰 주변에 나무를 심어 아름다운 경치를 보존하는 것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여겼다.

 

스님들은 고기를 먹지 않은 대신 과일, 버섯, 잣, 고사리, 칡, 도토리, 밤 등을 주요 식량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서는 산림을 잘 관리해야 했다.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불교 교리는 숲의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않고 생태계를 보존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사찰에 따라 산감(山監) 스님을 두어 도벌꾼과 산불을 감시했다. 신라 말 이후 한반도의 숲이 참나무에서 소나무로 우세종이 바뀌면서 숲에서 돼지를 방목해 키우기가 어려워졌다.(소나무가 고려 시대 이후 우세종인 된 것은 인공 조림의 결과다.)

 

이에 돼지는 밭에서 나는 곡식 등을 먹고 살게 되어 사육 비용이 올라갔다.(도토리는 돼지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다. 도토리라는 단어의 어원은 돼지의 옛말인 돝에서 왔다.) 돼지가 부정적 짐승이 된 것은 이렇듯 숲이 변했기 때문이다.

 

황제국을 자처한 고려는 제후국을 자처한 조선에 비해 건물이 크고 화려했다. 그 만큼 숲을 많이 훼손했다. 산림이 소수에게 편중된 문제를 개혁하려던 공민왕의 정책은 권문세가들의 저항에 부딪혀 실패를 거듭했다. 고려는 모피와 인삼 등의 공물을 잘 납부하는 사람들만의 나라였던 것이 아니라 숲에서 사는 사람들에 의해 굴러갔던 나라이기도 하다.

 

조선에서 나무 심기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 임금은 정조였다. 영조가 청계천 준설 사업을 자신의 치적으로 삼았지만 정조는 준설 작업의 근본은 나무를 심는 것이라 하였다. 소나무의 가장 큰 단점은 생태계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소나무는 다른 식물의 생장을 억제하는 테르펜과 같은 타감(他感) 물질을 만들어 다른 나무들이 숲속에 자리 잡는 것을 막는다. 범과 같은 맹수가 사라지고 숲이 신의 거주지라는 외경심이 사라지면서 숲은 함부로 다루어졌다.

 

조선 후기에 온돌이 크게 보급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산에 먹을거리가 많아서 굳이 화전(火田)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후기는 사정이 달랐다. 17세기 세계적인 기온 저하로 조선에 대기근이 들었다. 1670 - 1671년 경신대기근은 무려 1백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조선 시대 최악의 재난이다. 갑인예송이 일어난 1674년은 경신대기근이 일어난 지 몇 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현종은 기해예송이 일어난 1659년부터 갑인예송이 일어난 1674년까지 재위했다.)

 

조선 후기에 화전이 크게 는 것은 재해 탓만은 아니다. 인구가 늘면서 만성적으로 토지가 부족한 때문이었다. 화전은 국가에서 세금을 걷지 않고 왕실과 종친 소유의 궁방, 주요관청, 개인에게 세금 징수 권한을 떼어주는 절수(折受) 대상으로 적격이었다. 화전을 관아에 신고하면 신고자에게 경작하도록 하고 지세를 지방관청에 내게 된다. 왕실과 종친 소유의 궁방(宮房), 각 군영, 각급 관청 등 권력을 가진 기관들이 절수에 근거하여 화전을 적극 개발했다.

 

19세기 세도가의 권력이 강해지면서 절수 대상 토지는 더욱 늘어나고 숲의 사유화와 화전은 점점 확대되었다. 왕실 재정과 국가 재정이 분리된 조선에서 왕실이 앞장서서 절수를 옹호한 탓에 화전 확대를 막기 어려웠다. 생활이 어려워진 하층 농민들은 광산으로 몰렸다. 광물을 캐내려면 갱도가 필요하고 갱도를 지지하려면 목재가 필요하다. 또한 캐낸 광물을 정제하는 과정에 땔감이 필요하다. 조선은 광산 개발을 억제했다. 그런 만큼 숲의 변화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

 

숲 파괴의 결정적 원인은 경작지 증가, 화전 개발 등이다. 숲이 줄어들자 사냥감이 부족해졌고 수렵채집민의 생활이 빈곤해졌다. 조선 후기에는 땔감을 채취한 곳이 화전으로 개간되며 시장이 차츰 줄어들어 연료 공급이 끊겨 자기 제작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조선은 화전의 악순환을 막을 근본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풍수지리에서 숲은 비보(裨補)와 염승(厭勝)에 이용된다. 비보는 지세의 부족한 점을 인위적으로 보완하는 것으로 연못을 파거나 인공 산을 만들거나 나무를 심어 보완하는 것이다. 염승은 외부의 흉한 기운을 차단하기 위해 장승, 사찰 등을 세우거나 나무를 심는 것이다. 서양인의 눈에 비친 조선은 자원은 풍부하지만 나무를 마구 베어내어 도성 주변에 나무가 없는 나라였다.

 

17세기 유럽 역시 숲이 극도로 파기되어 생태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유럽은 석탄 발견, 신대륙 식민지 획득을 통해 대위기를 극복했다. 조선은 그런 행운이 없었다. 조선의 석탄은 쉽게 불이 붙지 않는 무연탄이다. 연탄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었지만 조선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못했다. 연료는 오직 나무와 풀뿐이었다. 철을 녹이고 선박을 만들고 공장을 돌리고 기선을 움직이고 각종 기계를 만들려면 나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산업화에 가장 중요한 자원인 연료가 조선에 부족했다.

 

조선에서 소수자가 된 수렵민을 산척(山尺)이라 한다. 이들은 외세가 쳐들어왔을 때 나라를 지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조선은 그들을 멸시하면서도 필요시에는 그들의 무력을 이용하고자 했다. 산척 대신 포수(砲手)가 등장했다.

 

숲은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저자는 앞으로도 숲은 인간에 의해 수없이 변화를 겪을 것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류가 아무리 신의 경지에 다가설 만큼 진화해도 인간은 숲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강조한다. ‘숲으로 본 한국사’는 새로운 관점이 돋보이는 책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숲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를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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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분석으로 발견한 상위 5% 리더의 습관
고시카와 신지 지음, 김정환 옮김 / 밀리언서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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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으로 분석한 상위 5퍼센트 인재의 공통점을 밝힌 책이다. 저자는 기업 혁신 컨설팅 회사 설립자인 고시카와 신지다. 저자는 동정(同情)이 아닌 공감(共感), 일방 제안이 아닌 공궁(공동 궁리)을 강조한다. 리더십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의미다. 상위 5퍼센트 사원과 상위 5퍼센트 리더의 차이가 중요하다.

 

개인을 생각하는가, 팀을 생각하는가가 차이다. 회사는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유능한 리더가 이끄는 하나의 팀을 구축한다. 흥미로운 점은 상위 5퍼센트 리더는 걷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다는 점이다. 단 의식적으로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이용했는데 이 경우는 걸음이 빨랐고 사무실이나 복도에서는 천천히 걸었다.

 

천천히 걸으면 육체 건강에는 좋지 않지만 좋은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상위 5퍼센트 리더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더 많이 했다. 그들은 첫 한 마디와 마지막 5분에 집중한다. 그들은 의의와 목적을 선언하고 숫자를 언급하면서 상대방의 기억에 남도록 간결하게 이야기한다.

 

상위 5퍼센트 리더는 팀원보다 뛰어나지 않다. 팀원의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 리더의 역량이다. 그들은 해야 할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에 집중한다. 그들은 무모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그들은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성공하는 공식을 그대로 흉내내서는 성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보다는 과거에 실패한 사례를 깊게 파고들어 원인을 파악함으로써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성공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이성보다 감정을 중시한다. 그들은 팀원들의 감정에 가까이 다가가서 문제가 발생한 메커니즘을 함께 생각한다. 그들은 절대 답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들은 답을 이끌어내도록 지원함으로써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팀원을 만든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연간 목표와 행동 목표는 공유하되 실행 방법은 팀원에게 맡긴다. 그들은 회의에서 최대한 말을 아낀다. 리더가 말할수록 팀원은 침묵한다. 그들은 결과보다 관계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협력 체제를 만든다. 팀원들이 실패한 부분을 들어 질책하기보다 다시 실패하지 않을 방책을 궁리해 다음 계획을 세우고 새롭게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의욕보다 시스템을 믿는다. 그들은 지속적 성과를 이루기 위해 애쓴다. 그들은 이질적 인재를 환영한다. 그들은 업무 처리 능력이 낮은 팀원을 우수한 팀원으로 메우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팀원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 부분을 다른 팀원으로 보완하려 하기도 한다.

 

무작정 열심히 일하는 방식은 오히려 리스크가 더 크다. 리더가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 팀원들은 오히려 압박감을 느끼고 위축된다. 그들은 이런 점을 잘 안다. 그들은 전달하는 것이 아닌 전해지는 것을 지향한다. 그들은 그만둘 일을 결정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 그들은 팀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그들이 맞장구 치는 가짓수는 5가지 이상이다. 말이 끝나지 않았을 때 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시간과 에너지가 유한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늘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자신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영역에 투입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어제의 지식을 과감히 버린다. 그들은 의욕이나 피로감에 좌우되지 않도록 자기성찰의 시간을 통해 몸과 마음을 제어한다. 그들은 우연한 만남을 끌어들여서 자기 성장으로 연결한다.

 

약점을 드러내서 인맥을 넓힌다. 팀원이 어떨 때 일하는 보람을 느끼는지 알고 싶을 경우 “자네는 어디서 일하는 보람을 느끼는가?”라고 대뜸 물어보면 많은 사람이 답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 뒤 “나처럼 일하는 보람을 느낀 적이 있는가?”라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이 답한다고 한다. 의식을 바꾸기는 어려우니 행동을 먼저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은 절대 바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이디어는 틈새 시간에 나온다. 그들은 이것, 저것, 그것 등 지시대명사를 사용하는 빈도가 매우 낮다. 명확히 전달할 필요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들은 형용사나 부사를 많이 사용한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이미지를 전하기 위해 말이나 표정 등을 사용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들은 칭찬으로 에너지를 끌어올린다.

 

그들은 부정적 피드백도 기분 좋게 한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먼저 함으로써 상대가 부정적 피드백을 받아들일 분위기를 충분히 만들 필요가 있다. 고개를 끄덕일수록 대화가 즐거워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상위 5퍼센트 리더는 상대방이 말을 하도록 유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상위 5퍼센트 리더는 열린 질문과 닫힌 질문을 상황에 맞춰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대화가 막힐 때는 닫힌 질문을 한다. 상위 5퍼센트 리더는 설득력이 뛰어나다. 글쓰기기 필요하다. 그들은 상황을 탓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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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는 논어 한마디 - 거친 물결에 흔들리는 삶을 잡아줄 공자의 명쾌한 해답
판덩 지음, 이서연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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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공자가 자신이 겪는 고통과 근심을 겪었다는 데에서 위안을 받았다. 공자는 도(道)와 먹을 것 사이에서, 도에 대한 걱정과 가난에 대한 걱정 사이에서 길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나의 지침이 된 인물이다. 저자는 ‘논어’를 읽고 근심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를 공자의 글에 비추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술처럼 달콤한 사이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구절이다. 청나라 대학사 장정옥은 일 중독에 빠진 황제 옹정제를 보필했다. 그들 사이에서 적절한 거리가 지켜졌다. 장정옥은 황제가 자신을 찾지 않으면 굳이 찾아가지 않았고 옹정제는 장정옥을 공적인 일에만 불렀고 사소한 일로 귀찮게 하지 않았다.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담백하고 소인의 사귐은 술처럼 달콤하다고 한다. 물처럼 담백한 사귐이 필요하다. 물 이야기가 나왔으니 인자요산 지자요수를 보자. 인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는 물을 좋아한다는 말로 알려진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다르게 본다. 어진 사람의 즐거움은 산과 같고 지혜로운 사람의 즐거움은 물과 같다는 말이라는 것이다.

 

사실 어진 사람은 왜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왜 물을 좋아하는지? 누군가 묻는다면 답하기 어렵다. 저자는 인자요, 산.. 지자요, 수라고 읽는다. 어짊을 추구하는 사람은 내면의 덕을 쌓기에 산처럼 중후하고 포용적이며 관대하고, 지혜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배움을 좋아하며 즐기기 때문에 흐르는 물처럼 활달하고 역동적이다. 어진 사람은 안정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행동을 좋아한다. 어진 사람은 오랜 시간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지혜로운 사람은 다양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어짊과 지혜로움은 함께 추구되어야 할 덕목이다. 산과 물이 어우러져야 아름답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상반되는 두 어구 또는 사상을 내세워 주제를 강조하는 대조법을 많이 사용했다. 어짊과 지혜는 함께 추구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군자와 소인은 어떤가? 저자는 군자와 소인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군자와 소인은 완전히 다른 두 유형의 사람이 아니며 단순히 누구는 군자이고 누구는 소인이라고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군자적 면모와 소인적 면모가 두루 존재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에게 소인적 면모가 더 많을 것이다. 공자는 방탕하게 행동하지도 않고 자신을 너무 구속하지도 않는 평온한 중용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중용은 논란이 있는 개념이다. 상론할 수 없고 다만 평온한 경지는 뿌리를 뽑는, 끝까지 하는, 용감한 태도가 없이는 이루기 어려운 덕목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겠다. 군자는 염옹은 남면(南面)을 할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군주가 될 사람이라는 말이다. 반면 자공은 호련(瑚璉)이라 평했다. 호련이란 기장과 피를 담아 종묘에 바치는 제기(祭器)다.

 

이는 자공이 고귀한 인물이지만 아주 비범한 인물은 아니라는 의미다. 공자는 자신이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솔직하게 또는 지혜롭게 말했다. 저자가 든 ‘나를 살리는 논어 한 마디’ 가운데 행불유경(行不由徑)을 빼놓을 수 없다.

 

지름길이 주는 욕망의 유혹에 발을 딛지 말라는 말이다. 군자대로행과 상응하는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바른 길을 가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인지생야직(人之生也直)과도 통한다. 저자의 책은 인자요산 지자요수가 아니라 인자요, 산, 지자요, 수라는 해석에서 가장 빛난다. 의문이 풀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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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만든 세계
션 B. 캐럴 지음, 장호연 옮김 / 코쿤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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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과 창조론을 가르는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우연(을 인정하는가 아닌가)이다. 이를 뒷받침할 말이 “그저 우연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신을 우주의 권좌에서 끌어내리기에 충분”하다는 말이다. 저자 션 캐럴은 ‘우연과 필연’의 저자 자크 모노가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자크 모노는 인간은 셀 수 없이 많은 우발적 사건들이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말을 한 분자생물학자다.

 

저자는 6600만년전 소행성 충돌로 지구에 살았던 종의 3/4이 멸종한 사건을 예로 들며 그 사건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기에 있기 어려웠을 것이라 말한다. 소행성 충돌로 공룡이 멸종했는데 그 사건 이후 포유류 몸집의 평균 및 최대치가 가파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승자와 패자는 우연이 판가름했다. 이 사건을 K - Pg(Cretaceous - Paleogene; 백악기 - 고제삼기; 古第三期) 멸종이라 부른다.

 

우주에서 날아온 거대한 돌이 마지막 1초 동안 5만 피트의 대기를 가르고 지구(멕시코 칙슬루브 총돌구)에 떨어졌다. 이 충돌로 진도 11이 넘는 지진(역사상 기록된 최악의 지진보다 100배 이상 강력한 지진)이 일어났고 유카탄 대륙붕이 내려앉았으며 높이 200미터 이상의 초대형 쓰나미가 멕시코만과 카리브해를 휩쓸었다. 화재로 인해 다량의 그을음이 생겨났고 여기에 충돌로 발생한 먼지, 엄청난 양의 유황 수증기까지 더해지면서 지표면에 도달하는 태양빛이 여러 해 동안 대거 감소했다.

 

그 결과 육지와 바다에서 광합성과 식량 생산이 끊어졌다. 육지의 기온은 금세 영하 7도까지 곤두박질쳤고 최소 수십년 동안 그런 수준이 이어졌다. 탄산염이 풍부한 충돌지에서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방출되는 바람에 바다는 급격하게 산성화되었다. 생명은 뜨겁게 구워졌다가 차갑게 얼고 굶주림에 허덕였다.

 

세(世)와 세(世)의 경계는 일반적으로 암석을 살펴서 바다와 육지에서 생명의 조건이 바뀐 것을 반영하는 변화가 있는지를 보고 정한다.(56 페이지) 중요한 점은 지구 자전 속도(시속 1000마일)를 고려하면 소행성이 30분만 일찍 왔다면 대서양에 떨어졌고 30분 늦게 왔다면 태평양에 떨어져 공룡은 살아 남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람과(호미니드)는 80만년전에서 100만년전 사이에 불을 통제하는 법을 익혀서 그것으로 사냥하고 요리하고 몸을 따뜻하게 했다.(78 페이지) 누구보다 먼저 신의 섭리를 우연으로 대체한 사람이 다윈이다. 비판자들은 우발적 변이가 담고 있는 의미를 물고 늘어졌다. 조물주나 지성이 행하는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다윈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였다.(109 페이지)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여러 이유에서 아무런 영향이 없다. 동물과 식물의 유전체에는 실질적 기능이 전혀 없는 DNA 서열이 많다.(인간의 경우 95퍼센트) 이런 부위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대체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같은 아미노산을 생산하도록 하는 유전 암호가 여러 개 존재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중복성은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난다고 해서 단백질 서열이 바뀌는 것이 아닌 이유다. 단백질 서열을 바꾸는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해도 기능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 수도 있다.

 

창조적 돌연변이는 소수이며 희귀하다. 우연은 창조하고 자연선택은 발명품을 확산시킨다. 포유류와 조류 같은 동물들 사이에서 완전하게 종분화가 일어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200만년으로 놀랄 만큼 일정하다. 생명의 나무에서 가지가 갈라지는 것은 개체군에서 무작위적 돌연변이가 꾸준하게 축적되어 나타나는 불가피한 결과다.(160 페이지) 모든 유기체, 모든 세포에서 DNA(이중나선 구조로 되어있는 고분자화합물)가 복제될 때마다 변화(치환, 삽입, ‘결실; 缺失‘)가 일어난다.

 

돌연변이는 피할 수 없는 필연의 현상이다. 저자는 우연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점은 심오한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맹목적 우연이 생물권에서 일어나는 모든 새로움, 다양성, 아름다움의 원천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212 페이지) 저자는 우리가 신의 뜻이 아니라 우연에 의해 여기 있는 것이라면 무엇을 해야 할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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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뇌르 이야기와 관련해 기억하는 것은 루소와 보들레르의 차이다. 루소는 18세기 사람이고 보들레르는 19세기 사람이다. 보들레르는 루소보다 109년 후에 태어났다. 루소와 달리 보들레르에게 자연은 선하고 순수한 것이 아닌 악으로 더럽혀진 것이자 타락한 것이었다. 루소는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지만 부분적으로만 맞다.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자연을 단순한 향유의 대상으로 삼을 때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파악하거나 이해하고자 할 때는 어려움이 따른다. '사이언스 블라인드(Science Blind)'의 부제가 '우리는 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가?'인 것을 보라. 가령 우리 중에 누가 과학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낮과 밤이 바뀌는 것'을 해가 뜨고 지기 때문이 아니라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것이라 생각하겠는가?

 

저자 앤드루 스톨먼에 의하면 우리의 직관적 이론들은 과학의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스톨먼이 말했듯 자기 성찰만으로는 불멸의 착각(인간은 죽지 않는다는 착각)을 깰 수 없다. 아이들은 인간의 필멸(必滅)의 운명을 외부 환경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미국의 시인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Edna Saint Vincent Millay: 1892 - 1950)는 '어린 시절은 누구도 죽지 않는 왕국(Childhood is the kingdom where nobody dies)'이란 말로 아이들의 죽음관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정신의학 박사 에드윈 풀러 토리는 현생 사피언스가 갖춘 가장 획기적인 것은 자전적 기억이라는 말을 한다. 과거로부터 축적된 경험을 활용해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자신을 미래에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이다. 이는 이점이자 짐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예상하게 됨에 따라 불안을 부산물로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이언스 블라인드'의 논리에 공감, 동의하는 나는 상식은 실제적 관점에서 사물을 보고 과학은 이론적 관점에서 사물을 본다고 생각한 바슐라르를 더 공부할 필요를 느낀다.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는 기쁨을 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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