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청주 교원대 초등교육과(사회 담당) 학생들에게 30분 정도 재인폭포 해설을 했습니다. 개인적인 일로 준비를 하나도 하지 못하고 평소 하던 것과 근래 새롭게 생각하던 것을 엮어 전했는데 의외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특히 함께 공부하는 세 분들로부터는 제가 한 해설 가운데 최고였다는 만장일치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지난 해 5월 고종 손자 이석씨 일행에게 한 재인폭포 해설, 지난 해 11월 공주대 지구과학교육과 학생들에게 한 선사박물관 해설에 함께 해준 분들입니다. 기존 내용에 난이도가 적당한 새 내용을 10% 정도 추가하고 생태, 고고학 등의 인접 영역까지 유기적으로 결합해 전하되 듣는 분들에게 사진 찍고 풍경을 감상할 시간도 주는 여유로운 해설을 해야 괜찮다는 평을 들으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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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창(靑蒼)은 짙고 푸름을 의미하는 말이다. 포천 창수면이 푸를 창자를 쓰는 창수(蒼水)면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면에 청창로(靑蒼路)란 길이 있다는 점이다. 권우 홍찬유 선생님의 글에서 청창이란 말을 보았다. 온산 가득 소나무 곰솔의 그림자 짙푸르니(만산송백청창영; 滿山松柏靑蒼影) 새봄 동산에서도 겨울의 기상 보전할 만하겠네(가입신원보세한; 可入新園保歲寒)... 창(蒼)은 창고가 풀숲에 가려졌기에 어슴푸레하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푸를 벽(碧), 푸를 록(綠), 푸를 취(翠), 푸를 청(靑), 푸를 창(蒼) 등 푸름을 의미하는 글자들이 꽤 있다. 벽도 좋고 취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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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집 - 심산 한국학
홍찬유 지음 / 심산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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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집(券宇集)은 권우 홍찬유 선생의 문집이다. 시(詩), 서(序), 기(記), 발(跋), 비문(碑文), 묘표(墓表), 잡저(雜著), 부록(附錄) 등으로 구성되었다. 짧은 시간도 다투듯 아껴 써야 한다는 의미의 촌음시경(寸陰是競)이란 휘호(揮毫)를 받은 제자 정후수 교수가 ‘책을 펴내면서’란 글을 썼다.“2005월 3월 은사 권우 선생께서 세상을 버리셨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이다. 세상을 버렸다는 말은 연관(捐館)이란 말로 바꿀 수 있다.

 

‘책을 펴내면서’에 의하면 선생은 미좌 정기, 우정 임규 선생 문하에서 배웠고 위당 정인보 선생에게서 인정을 받았다. 연천 출신의 한학자로 유도회 부설 한문연수원을 설립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강좌를 개설하셨다. 미좌 정기 선생에게서 교육 받은 곳이 연천 미산의 미좌 서당이다. 미수 허목 선생께서 많은 곳을 유람한 것처럼 여러 곳을 다닌 뒤 쓴 시들이 많다. 봉황정에 올라란 작품에 나오는 바에 의하면 선생은 눌재(訥齋) 양성지의 외손이다. 송파(松坡)라는 호를 쓰기도 했던 양성지는 세조 - 성종 시기의 학자로 지리학, 역사학에 능했다.

 

가을 강 뱃놀이란 의미의 추강범주(秋江泛舟)란 글에 범범(泛泛)이란 말이 나온다. 중류범범여난수(中流泛泛與亂收)란 글로 중류에 흥겨워 어쩔 줄 모르네란 의미다. 유유범범(悠悠泛泛)이란 글이 있다. 무슨 일을 다 잡아 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글이다. 유(悠)는 한가하다, 멀다, (멀기에) 생각하다란 의미의 글자다. 범(泛)은 뜰 범이란 글자다. 본문에 관수(觀水)란 말이 나온다. 물을 본다는 의미이지만 단지 본다기보다 물의 속성을 배우는 것이다.

 

송언개(松偃蓋)란 말이 나온다. 소나무는 나부끼듯 일산처럼 자신을 덮어(가려)준다는 의미다. 나부낄 언이기도 하고 쉴 언이기도 하다. 언기식고(偃旗息鼓)란 말이 있다. 전쟁터에서 군기(軍旗)를 누이고 북을 쉰다는 뜻으로 휴전(休戰)함을 이르는 말이다. 두보의 시 구절인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닦는다는 만하세병(挽河洗兵)과 같은 말이다. 반암언중신(盤巖偃仲伸)은 너럭바위는 누워 뒹굴기 알맞다는 의미다.

 

연천 한탄강에서 지은 '한탄강에 배 띄움'이란 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삼팔선은 누가 갈라놓은 것이며(산하유선분삼팔; 山河有線分三八)란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는 바다. 정전협정은 누가 주도한 것인가?란 의미의 글이다. 정전협정을 지칭하는 말이 용주(龍酒)다. 용주무단설일쌍(龍酒無端說一雙)에 나오는 말로 화(華)가 이(夷)를 침범하면 황룡 한 쌍을 주어야 하고 이(夷)가 화(華)를 침범하면 청주 한 잔을 주어야 한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화양동을 유람하며(遊華陽洞; 유화양동)란 글을 보자. 숭정 때 벌써 중국이 망했는데 만동묘가 우리에게 무슨 아랑곳이냐 존양 대의라는 게 다 무슨 잠꼬대냐? 가짜 명나라 사람도 이젠 다 지나갔네 자기도 속았고 남도 속았다. 그때 북벌론은 더욱 우스워라.

 

선생은 연천 한탄강에서 시를 지은 데 이어 철원 고석정, 순담계곡 등에서도 시를 지었다. 연천의 명소인 재인폭포를 유람하고 쓴 재인폭포를 구경하며(관재인폭포; 觀才人瀑布)란 시도 있다. 선생은 누구보다 분단을 안타깝게 여겼다. 모름지기 남북이 완전히 하나가 되었으면(수령남북일환전; 須令南北一環全)이란 구절이 있다. 선생은 문치를 숭상하는 귀한 보배를 만인이 머금는 것이 정치에서 가장 급한 일이라고 말했다.

 

선생은 십청원에서 더위를 씻으며(十靑園消暑)에서 우뚝 솟은 용마산 검푸른 기운으로 가렸으나(용수차아옹취미; 龍岫嵯峨擁翠微)란 말을 했다. 비문(碑文) 가운데 미강단소 개수 비명이 눈에 띈다. 미수 허목 선생을 모신 미강서원 자리의 단소(壇所)에 대한 글이다. ”엎드려 생각건대 우리 우의정 문정공 미수 허 선생은 학문은 천(天)과 인(人)을 궁구하셨고 도는 체(體)와 용(用)을 체득하셨으며 예교(禮敎)를 열어 밝혀서 나라의 맥을 굳게 지키셨으니 뚜렷이 백세의 스승이 되신 분이시다.”로 시작하는 글이다.

 

첩설(疊設)이란 말이 나온다. 한 분을 여러 서원에 모시는 일을 말한다. 서원 철폐의 기본원칙은 한 분을 가장 중요한 곳에 모시도록 하고 나머지는 철폐하는 것인데 미강서원이 철폐된 것은 소인배들이 간사한 짓을 하고 그 일을 맡은 신하들이 임금의 명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결과라는 요지의 글이다. 선생은 단소를 설립하려는 것이 다만 제사 드리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언젠가는 시대의 형편을 보아 가며 서원을 복원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라 썼다.

 

“아무리 작은 땅이라도 주인은 있는 것, 여기는 바로 문정공의 터전이다.”란 글이 눈에 띈다. 선생은 “돌이켜 보면 시원찮은 자질로 겨우 몇 글자나 알게 된 것은 모두 선생님께서 잘 가르쳐 주신 결과니 그 은혜를 생각하면 어찌 감히 문장을 못한다고 사양할 수 있겠는가.“라고 썼다. 선생은 매양 베풀기를 좋아하면서도 보답을 바라지 않고 그 의로움이 아니면 비록 만종(萬鐘)으로 녹봉(祿俸)하여도 돌아보지 않으셨다.

 

선생의 아들 사성(思成)은 어머니 단양 우씨에 대해 선생으로 하여금 가정을 돌아보지 않고 학문에 뜻을 오로지 할 수 있게 했다고 썼다. 아들은 부군(府君)께서 20세의 나이에 망국의 한과 신문화의 성황으로 경향 각지로 방황하다가 거벽(巨擘; 학식이나 어떤 전문 분야에서 남달리 뛰어난 사람)인 우정(偶丁) 임규(林圭; 1863 - 1948) 선생을 뵙고 학문의 심오함과 애국의 뜻을 승수(承受)하셨다고 썼다. 아들은 선생께서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좇지 않았으며 그 묻는 것에 따라 답변을 극진히 하는데 미칠 때까지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부군에 대한 대체의 말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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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가 우주에 존재하는가? - 최신 소립자론 입문 대우휴먼사이언스 7
무라야마 히토시 지음, 김소연 옮김, 박성찬 감수 / 아카넷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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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소립자 이론에 의하면 물질은 반드시 자신과 짝을 이루는 반물질과 함께 태어난다. 이를 쌍생성(pair production)이라 한다. 물질과 짝을 이루는 반물질이 만나면 쌍소멸(pair annihilation) 현상이 일어난다. 둘 다 소멸한다는 의미다. 물질로서는 소멸하지만 사라진 다음에는 물질과 반물질의 무게만큼 에너지가 발생한다. 쌍소멸은 물질과 반물질의 무게가 에너지로 변하는 현상이다.

 

쌍소멸로 만들어진 에너지에서는 다른 물질과 그 물질의 반물질이 태어난다. 물질과 반물질의 관계는 나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의 관계와 같다. 물질과 반물질의 전기적 성질은 대칭 관계다. 우주 탄생 직후 물질이 반물질에 비해 10억개 당 2개 정도 많았다. 우리는 학교에서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배웠지만 이 우주에 있는 원자를 모두 모아도 5%도 되지 않는다. 우주의 23%는 암흑물질, 73%는 암흑 에너지다.

 

암흑물질의 유력 후보로 중성미자의 친척을 생각할 수 있다. 중성미자는 태양 같은 별로부터 대량으로 방출되어 1초 동안 수백 조개나 되는 양이 우리 몸을 통과한다. 중성미자는 중력이나 전자기력에 반응하지 않기에 우리 몸을 통과하여 빠져나간다. 우리는 이를 느낄 수 없다. 음전기를 띤 전자를 포함하는 원자가 전기적으로 중성인 데서 양전기를 띠는 양성자의 존재를 알아냈다.

 

베타선(전자)이 방출된 전과 후를 비교해 보니 반응 후에 에너지가 감소했다. 볼프강 파울리는 분명 에너지가 감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겉보기만 그럴 뿐 사실은 에너지가 보존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입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입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으로 예상되었기에 중성자라고 불렀다. 그런데 파울리가 가설을 세운 지 2년 후에 영국의 제임스 채드윅이 원자핵 내부에 양성자 외에 또 다른 입자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도 중성의 입자였기에 그는 그 입자를 중성자라 이름했다. 페르미는 파울리가 예언한 입자를 연구해 논문을 쓰려 했는데 입자의 이름이 없어지면 불가능한 일이 된다. 그래서 중성미자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프레데릭 라이네스와 클라이드 카원이 중성미자를 발견했다. 파울리가 중성미자 가설을 발표한 후 발견되기까지 24년이 걸렸다. 우리 주변의 물질을 일일이 분해하면 전자, 업 쿼크, 다운 쿼크의 세 가지 소립자로 귀결된다.

 

쿼크는 머리 겔만이 아일랜드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經夜)’에 나오는 새가 우는 쿼크라는 소리를 따 이름지은 것이다. 페르미온은 물질을 만드는 소립자, 보손은 힘을 만드는 소립자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마찰력, 원심력, 표면장력, 수직항력 등 다양한 힘을 접하기에 힘에는 많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주에 존재하는 힘은 전자기력, 강한 힘, 약한 힘, 중력 등 네 가지가 전부다.

 

각각의 힘에는 힘을 전달하는 소립자가 존재한다. 전자기력은 광자(빛 입자)에 의해 전달된다. 빛은 파동처럼 행동하지만 미시 세계에서는 입자적 성질이 강해진다. 자석이 못을 끌어당기는 경우에도 미시적 관점에서는 자석과 못 사이에서 캐치볼하듯 광자를 주고받아 전자기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지구 내부는 6000도나 되는 고온이 유지되면서 액체 금속으로 만들어진 외핵이나 맨틀이 대류하는 내부 활동을 지탱하는데 태양으로부터 전달되는 에너지만으로는 이 정도의 온도를 유지할 수 없다.

 

지구 내부로부터 활동을 지탱할 수 있는 정도의 에너지가 공급되고 있다는 의미다. 약한 힘이 관련되어 있다. 자구 내부에서는 많은 방사성 원자가 자연붕괴를 일으키며 열을 방출한다. 이 열이 내부 온도를 유지하는 데 이용된다. 힘은 소립자에 의해 전달된다. 그런 소립자를 보손이라 한다. 네 가지 힘 가운데 전자기력은 광자, 강한 힘은 글루온, 약한 힘은 위크보손 등 각각의 힘을 전달하는 보손이 발견되었다.

 

중력을 전달하는 보손은 발견되지 않았다. 중력자라는 이름은 있지만 아직 발견되지는 않았다. 중력은 다른 세 개의 힘에 비해 현저히 약하다. 소립자의 세계에서는 대칭이 중요하다. 물리학에서는 좌우나 상하를 바꾸어도 물리법칙에 변화가 없는 것을 패리티(반전성) 대칭성이라 부른다. CP에서 C는 입자와 반입자의 교체를 의미한다. P는 패리티 대칭성이다. 물질과 반물질이 완전히 행동을 같이 한다면 이 우주에는 은하도, 별도, 우리도 존재할 수 없었다.

 

반물질이 소멸하고 물질이 남기 위해서는 물질과 반물질 간의 대칭성이 약간 어긋나 있어야 한다. 초신성 폭발시 발생하는 에너지의 99퍼센트는 중성미자로 변해 별 바깥으로 빠져나간다. 초신성 폭발 전에는 수명이 다한 별은 폭삭 쪼그라들며 밀도가 상당히 높아지기 때문에 중성미자조차 별에 갇힌다. 그래서 에너지를 충분히 저장하게 되고 중성미자가 별의 폭발에 도움을 준다. 사실 별이 반짝 하며 밝아지는 것은 몇 시간 후다.

 

이 이론을 중성미자 트래핑(가둠)설이라 한다. 가미오칸데(중성미자를 관측하기 위해 일본 기후현 가미오카 광산 지하 700m에 설치됐던 물리학과 천문학 관측 장치) 관측 자료를 보면 사토 박사의 이론대로 중성미자가 포착되고 몇 시간 후에 초신성 폭발이 관측되었다. 지금까지 우주를 보려면 가시광선을 사용한 광학현미경이나 전파를 사용한 전파망원경 등을 이용했는데 중성미자를 사용해 우주를 관측할 수도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1998년 중성미자에 무게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문제는 표준이론이 중성미자가 완전히 0이라는 전제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중성미자는 지구 내부도 빠져나간다.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한 중성미자는 지구를 통과하는 동안 타우 중성미자로 변했다가 뮤우 중성미자가 되기를 반복한다. 이를 중성미자 진동이라 한다. 중성미자 진동이 일어난다는 것은 시간 경과에 따라 입자가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중성미자가 빛의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는 중성미자에 무게가 있다는 의미다. 지구 반대편에서 오는 중성미자가 다른 것으로 바뀐 것은 다른 것으로 바뀔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는 시간을 느낀다는 것이고 이는 중성미자에 무게가 있다는 의미다. 태양은 1초 동안 40억 킬로그램씩 가벼워지며 우리에게 빛과 열을 보내고 있다. 중성미자는 태양 중심부에서 만들어지므로 중성미자를 사용하면 태양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X선으로 촬영한 것처럼 사진 찍을 수 있다.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열을 받고 있고 우리는 덕분에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동시에 지구도 우주 공간으로 40조 와트의 열을 방출한다. 태양으로부터 받은 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열이다. 지구가 방출하는 열의 양 가운데 태양에서 오는 열의 양은 전체의 절반이다. 지구 내부에서도 중성미자가 만들어지고 있다. 우라늄이나 헬륨 같은 원자가 붕괴하면서 중성미자를 만들고 있다. 나머지 반은 지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중성미자는 가볍다. 전자의 1/100에 불과하다. 중성미자는 전기가 없으므로 반물질도 전기가 0이다. 중성미자는 예외 없이 왼쪽 돌기다. 이는 추월하면 오른쪽 돌기로 보일 것이란 의미다. 그런데 오른쪽 돌기는 볼 수 없었다. 중성미자는 추월해서는 볼 수 없다는 의미다. 이는 중성미자가 우주에서 가장 빠르다는 즉 빛 속도와 같다는 의미다. 광속으로 움직이려면 무게가 있으면 안 되기에 무게가 없다고 여겨온 것이다.

 

중성미자는 모두 왼쪽 돌기, 반중성미자는 오른쪽 돌기다. 중성미자를 추월해 본 오른쪽 돌기 중성미자는 어쩌면 반중성미자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시계 방향 중성미자가 반중성미자라면 우리가 이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반중성미자 덕분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질은 반물질과 만나면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방출하며 소멸해 버린다. 물질과 반물질은 항상 1:1로 짝을 이루어 소멸하면서 에너지로 변하고 그 에너지는 다시 한 쌍의 물질과 반물질을 생성한다.

 

중성미자와 반중성미자의 차이를 알면 우주가 시작되었을 무렵 왜 물질이 남고 반물질은 소멸해 버렸는지 하는 물음에 가까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중성미자 외에 우리의 존재 자체와 관련된 증요 입자가 힉스 입자다. 소립자 표준이론에서는 모든 소립자는 원래 무게가 없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쿼크, 전자, 중성미자 등 대부분의 소립자는 무게가 있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힉스 입자다. 일반적 소립자는 공간을 통과할 때 힉스 입자의 방해를 받아 무게를 얻는다.

 

힉스 입자는 신의 입자라 불린다. 처음에는 리언 레더먼이 30년 이상 열심히 찾아 헤맸지만 모습을 볼 수 없어서 goddamn이라 불렀는데 후에 god particle이 된 것이다. LHC(large hadron collider; 양성자를 충돌시키는 대형 장치)에서는 양성자를 굉장한 속도로 가속 충돌시킨다. 가장 간단하게 양성자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수소 원자에서 전자를 제거하는 것이다. 두 개의 양성자를 충돌시키는 실험에서 흥미로운 것은 충돌 순간 물질이 새롭게 생성되는 현상이다.

 

에너지 질량 등가성에 의해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소립자 물리학에서는 99.7%의 확실성을 3 시그마(표준편차)라 부른다. 아틀라스와 CMS는 모두 힉스 입자를 찾는 실험이지만 그 자체를 찾는 것이 아니라 힉스 입자가 발생한 후에 생기는 흔적 같은 것을 관측하는 것이다. 힉스 입자의 흔적은 몇몇 형태로 나타난다. 그 중 하나가 광자다.

 

조금 이상한 이야기이지만 빛은 빛으로 볼 수 없다. 빛과 빛은 충돌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해도 느낄 수 없다. 최근에는 뮤온을 화산의 분화 예측에 응용하는 연구도 진행중이다. 뮤온은 우리 몸뿐 아니라 거의 모든 것을 통과한다. 사물의 밀도에 따라 붕괴하는 방법에 차이가 난다. 마그마처럼 액체이면서 밀도가 낮은 장소는 많이 통과하고 고체인 바위 부분은 통과하는 양이 적어지기 때문에 마그마가 화산의 어디까지 올라왔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수소원자의 원자핵인 양성자는 핵융합 반응의 원료다. 전기했듯 태양은 1초에 40억 kg씩 줄어들며 우리에게 빛을 준다. 핵융합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에너지뿐 아니라 중성미자이기도 하다. 중성미자가 발생하는 데는 약한 힘이 작용한다. 이 힘은 1 나노미터의 1/ 10억이라는 아주 짧은 거리까지밖에 미치지 못하지만 이것이 무엇인가에 의해 핵융합이나 핵분열에 영향을 미치니 우리도 중성미자의 덕을 보는 것이다.

 

이 약한 힘이 바로 전자기력이다. 전자기력은 거의 무한대라 할 정도로 힘의 영향력이 멀리까지 미친다. 우주 초기와 달리 지금은 왜 위크보손과 광자에 구별이 생기고 약한 힘과 전자기력이 다른 힘으로 취급될까? 이 두 힘 사이에 대칭성이 깨졌기 때문이다. 이 대칭성 깨짐에 힉스 입자가 관련되었다. 원래 같은 힘이었던 약한 힘과 전자기력을 구별하게 하는 것이 힉스입자였다. 힉스입자는 에너지가 낮아지면 자연히 대칭성이 깨지는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힉스입자가 일으킨 대칭성 깨짐은 약한 힘과 전자기력을 구별할 뿐 아니라 소립자에 무게를 부여하는 중요 시스템이다. 힉스 입자에도 수증기, 물, 얼음의 상전이 현상이 일어난다. 우주가 갓 시작되었을 때 주변 온도도 높아 힉스 입자도 고에너지 상태였고 그에 따라 수증기처럼 여기저기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당시는 모든 입자가 이런 상태에서 구별 없이 마음대로 날아다녔기 때문에 대칭성이 유지된 것이다.

 

우주가 식어가자 물이 얼음으로 변했듯 힉스입자도 꽁꽁 얼었다. 이 상태가 되면 얼음의 경우는 개개 물 분자의 자리가 정해져 결정을 만드는데 개별 분자가 구별되어 대칭성이 깨진다. 힉스입자가 얼어붙어 있을 때는 대칭성이 깨져 있으므로 그 영향을 받아 약한 힘과 전자기력이 구별되거나 소립자가 무게를 느끼게 된 것이다. 물이 얼음이 되는 상전이가 발생하는 온도는 0도씨이다.

 

힉스입자가 얼어붙어 상전이가 발생하는 온도는 4000조도씨다. 소립자는 기본적으로 빛의 속도로 날아가려는 존재인데 진공 안에 힉스입자가 가득 차 있어서 앞길이 가로막혀 빛의 속도보다 느려진다. 느려진다는 것은 움직이기 어렵다는 것이고 이는 그만큼 무게를 느껴 무거워진다는 의미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소립자는 얼어붙은 우주 공간에서 가득 차 있는 힉스 입자의 방해를 받아서 멀리까지 가지 못한다. 학자들은 움직이기 어려워진 만큼 무게를 얻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마음에 걸리는 바는 실제 상황이 우리가 이론적으로 생각하는 대로인가, 하는 점이다. 힉스 입자가 진공 중에 가득차 있는 덕에 원자가 그 자리에 정지해 있는 질서가 생기는 것이므로 힉스 입자는 아주 중요한 존재다. 이렇기에 신의 입자라 불러도 좋은 것이다. 다른 소립자와 달리 힉스 입자는 스핀이 없다. 저자는 힉스 입자가 기분 나쁘고 싫어 힉스 리스 이론을 주장한 적이 있는데 발견이 되었기에 사죄한다고 말한다.

 

힉스 입자는 4차원 세계에서는 스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4차원 외의 여분의 차원에서는 돌고 있을 수도 있다. 우주의 시작이라고 알려진 빅뱅 이전에 인플레이션 현상이 있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인플레이션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원자보다 훨씬 작았다. 1초도 지나지 않아 수 밀리미터 크기로 넓어지는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며 단번에 커진 후 빅뱅이 일어나 현재 우주의 모습이 되어갔다.

 

우주가 초고온, 초고밀도의 아주 작은 불덩이 상태로 태어났다고 주장한 가모프는 불덩이 우주의 흔적(우주배경복사)이 마이크로파인 전파로 관측될 수 있다고 예언했다. 우주배경복사는 어느 방향에서도 똑같이 관측할 수 있고 온도는 마이너스 270.3도씨이다. 탄생 초기의 작은 우주는 세탁기에서 이제 막 꺼낸 쭈글쭈글한 상태에 비유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이 일어남으로써 갑자기 다리미질을 한 것처럼 펴져서 에너지가 균일한 상태가 되면서 팽창했다.

 

주름이 펴지고 전체가 평평해진 상태에서 빅뱅이 일어났기 때문에 현재의 우주도 거의 균일한 상태가 된 것이다. 빅뱅 후의 열의 잔해인 우주배경복사가 거의 요철이 없는 상태인 것은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최근 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주요 역할을 하는 것이 중성미자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주름을 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역할도 한다. 열심히 다림질한 곳 옆에 자연스럽게 주름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참 편하게 생각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주 초창기에는 가능한 일이다. 당시의 우주는 원자보다 작았기에 소립자들의 역할이 대단했다. 소립자는 좁은 곳에 갇히면 요동한다. 원자보다 작은 우주에서는 인플레이션으로 주름을 폈지만 소립자가 좁은 곳에 갇혀 있는 효과로 인해 요동이 생긴다. 소립자의 세계에서는 불확정성관계라는 다소 이상한 규칙이 있다. 미시세계에서는 에너지 보존법칙은 조금 무시해도 좋다.

 

우주는 137억년전에 빅뱅을 일으켰다. 당시 우주는 너무 뜨거워 물질과 에너지가 지나치게 한 곳에 밀집되어 있었기 때문에 빛이 직진하지 못하고 갇혀 있던 시기가 있었다. 빛이 직진하게 된 것은 우주 탄생으로부터 38만년이 지난 후였다. 빛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탄생 후 38만년 후의 우주까지다. 우리가 이 우주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어느 순간에 입자와 반입자의 수가 어긋나야 한다. 이때 큰 역할을 한 것이 중성미자다.

 

우주에서 최초로 생긴 원소는 수소와 헬륨이다. 수소와 헬륨 모두 가스이므로 양이 적을 때는 대단히 가볍지만 많이 모이면 무거워져 자기들의 무게로 인해 중심 부분이 꼭꼭 채워진 고밀도 상태가 된다. 어느 정도의 밀도가 핵융합이 시작되어 열과 빛을 방출한다. 처음에 핵융합의 원료로 사용된 것은 수소원자였다. 네 개의 수소원자가 결합되어 하나의 헬륨 원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생기고 열과 빛을 방출한다.

 

수소원자가 없어지자 헬륨 원자가 융합해 탄소원자와 산소원자가 만들어진다. 헬륨이 없어지자 탄소와 산소를 원료삼아 네온, 마그네슘, 규소, 철 등이 만들어진다. 별은 우리 몸의 기본이 되는 원소의 제조기이기도 하다. 별의 핵융합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철까지다. 무게가 태양의 8배 정도까지인 별은 탄소와 산소가 결합됨으로써 핵융합이 멈추고 백색왜성이 되지만 8배 이상인 경우 핵융합은 철까지 진행되어 최종적으로는 초신성폭발을 일으킨다.

 

이 초신성 폭발이 철보다 무거운 원소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핵융합을 끝낸 별은 중심부분이 식어가면서 굉장한 기세로 식어간다. 그러면 중심부분이 초고밀도가 되고 대폭발을 일으킨다. 이 폭발로 많은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진다. 초신성폭발은 새로운 별의 재료가 되는 가스나 먼지를 우주공간에 뿌리는 역할을 한다. 흩뿌려진 가스와 먼지는 중력이 강한 곳으로 모이고 새로운 별을 만든다.

 

우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 같다. 중력이 너무 강하면 별들은 모두 블랙홀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만큼 중력의 강도는 적당하다. 중성자의 무게도 절묘해서 조금만 더 무거웠다면 이 우주에 존재 가능한 원소는 수소뿐이었을 것이며 지구와 인간도 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진공 에너지도 알맞게 작아서 우주가 이만큼 커질 수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완성도가 높다. 실험실에서 빅뱅을 재현하기 위해 소립자 가속기라는 장치를 사용해 보니 에너지에서 물질이 만들어질 때 반드시 반물질이 함께 만들어진다. 불덩이 같은 에너지였던 빅뱅은 물질과 반물질을 똑같이 만들었을 테고 그 후 물질과 반물질은 다 같이 만나 소멸하여 에너지로 돌아갔을 텐데 우주는 텅 비지 않고 우리가 우주에 존재한다. 빅뱅으로 생성된 물질과 반물질의 균형을 살짝 깬 것이 중성미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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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色을 입다 - 10가지 색, 100가지 패션, 1000가지 세계사
캐롤라인 영 지음, 명선혜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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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인 영의 ‘패션, 색(色)을 입다’는 의상과 의복에서 열 가지 색이 지닌 중요성을 탐구한 책이다. 열 가지 색이란 검은색, 보라색, 파란색, 녹색, 노란색, 주황색, 갈색, 빨간색, 분홍색, 흰색이다. 블랙은 물체가 가시적 파장을 삼켜 색 스펙트럼의 모든 빛을 흡수하고 나서야 비로소 눈에 보인다. 블랙이 색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입은 블랙 지방시 드레스를 기억하는가. 또한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그림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에 나오는 검은 옷을 입고 홀로 선 인물을 기억하는가. 그런가 하면 마릴린 몬로는 어떤가. 보라색은 호불호가 갈리는 색이다. 흥미로운 점은 보랏빛이 많이 감퇴한 독특한 모브색이 폐경성 모브라고 칭해진다는 것이다. 모브는 mauve다.

 

이 색은 핑크 - 퍼플 색조를 띤 당아욱 꽃에서 이름을 따온 색이다. 아르누보 운동을 대표하는 보라색은 1960년대 후반 히피 운동의 사이키델릭을 나타내기도 한다. 지미 헨드릭스는 보라색을 스모키 사이키델릭과 연관지어 퍼플 헤이즈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헨드릭스는 자신이 볼 수 있는 색은 보라색뿐이라며 마약 중독을 자백했다. 보라는 민주당의 파란색과 공화당의 빨간색이 섞인, 통합을 뜻하는 색이기도 하다.

 

1774년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짝사랑 때문에 자살을 택한 젊은 예술가의 이야기를 담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출간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베르테르는 파란 연미복을 입고 노란 조끼와 반바지를 입은 캐릭터다. 파란색은 슬픈 감정과 연관성이 있지만 하늘과 바다 사이의 공간을 나타낸다. 충성스럽고 진실하며 차분하게 여겨지는 색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파란색을 자주 언급하는 것이 아닐까?

 

'위대한 유산’에서 기네스 펠트로가 입은 그린색 의상을 기억하는가. 녹색은 우리에게 필수 요소인 물과 생명, 머리를 맑게 하고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식물과 나무에서 나오는 풍부한 산소를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죽음과 부패를 상징하는 곰팡이, 독이나 독성도 보여준다. 압생트는 쑥으로 숙성시킨 녹색의 독주를 의미한다. 녹색은 에덴동산의 뱀이 화와를 유혹하여 사과를 먹게 함으로써 사람을 타락시킨 색이다.

 

모든 함축성과 복잡성을 내포하고 있는 녹색은 현실의 억압으로부터 쉼이 필요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휴식과 같은 색감이다. 노란색은 꽃잎을 활짝 펴고 햇볕을 정면으로 받는 해바라기나 1990년대 광란의 포스터 또는 티셔츠에 인쇄된 형광노랑빛 스마일 페이스와 같이 여름날과 낙관주의를 연상하게 한다. 노란색의 황금빛이 비슷한 색조의 귀금속만큼이나 항상 가치 있게 여겨진 것은 아니었다.

 

중세 시대의 노란색은 온통 부정적 이미지였다. 노란색은 질병, 질환 및 황달을 암시했으며 4대 체액 중 하나인 황담즙과도 관련이 있다. 노란색 직물을 만들 수 있는 수많은 천연 물질이 있었지만 노랑은 오래 지속되는 빨강과 파랑에 비해 빠르게 퇴색했기에 불신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선사시대 동굴 벽화에 사용한 고운 점토와 산화철로 만든 붉은빛이 감도는 황토색 염료를 비롯하여 고대 이집트인들이 무덤에 칠한 유독성 광물 색소 리얼가(realgar) 등 오렌지빛은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다.

 

그러나 오렌지색이 무지개의 공식 색상으로 이름을 가진 것은 최근 일이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을 볼 수 있는 미술관이 오랑주리 미술관이다. 오랑주리는 오렌지 온실이란 의미다. 갈색 천은 사회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남겨둔 저렴하고 거친 직물이었다. 1970년대는 세계적으로 정치적 격변과 불안정의 시기였다. 그래서일까. 자연의 색과 가깝고 전통적이며 인정적인 오렌지와 녹색이 결합된 갈색 톤이 사랑받았다.

 

빨간색은 사이렌, 교통, 정지신호, 영화‘이유 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이 입은 바람막이처럼 경고의 신호를 나타낸다. 구석기 시대에도 빨간색은 보호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에콰도르 북부에서 칠레 남부에 이르는 지역을 지배했던 잉카는 붉은 색을 고대 신화적 기원과 연관지었다. 18세기 암스테르담 염색업자들은 코치닐(Cochineal; 연지벌레 암컷) 염료에 소금과 강황을 첨가하여 짙고 보랏빛이 감도는 진홍색과 밝고 진한 선홍색, 스칼렛 오렌지를 만들어냈다.

 

참나무 수액을 먹고 사는 이 작은 곤충으로부터 염료를 추출하는 것은 무척 힘든 과정이다. 붉은 염료는 암컷에서만 나오는데 알을 낳을 준비를 하는 순간에 포획해야 한다. 햇볕에 말리고 으깨는 과정에서 붉은 즙이 분비된다. 아메리카 대륙의 코치닐과 경쟁할 붉은 염료는 없었다. 가시배 선인장을 먹고 자라는 이 곤충은 가장 밝으며 빛이 바래지 않는 붉은 색을 만들어낸다.

 

연지벌레처럼 미국산 코치닐 역시 암컷만을 사용해 햇볕에 말리고 물에 담가 추출하지만 연지벌레 염료 추출물의 10배를 생성하기에 이내 모든 붉은 염료를 대체했다. 빨강은 혁명의 색이기도 하다. 미국인과 유럽인은 핑크색을 가장 분열적인 색이라 생각하지만 일본에서는 귀엽다는 뜻의 가와이로 인식한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는 포스트 페미니스트 렌즈로 프랑스 왕비의 삶을 펑크적 요소와 핑크의 달콤함으로 표현했다. 섬세한 흰색 직물의 아름다움에는 식민주의, 노예제도, 섬유 산업의 노동자 착취라는 진정한 공포가 비밀리에 숨어 있다. 패션과 얽힌 색의 역사를 알려면 읽을 책이 ‘패션, 색을 입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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