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령 구조곡의 지형 - 2025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이민부.이광률 지음 / 가디언북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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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북에서 2025년 1월 나온 ‘추가령 구조곡의 지형’은 사실상 추가령 구조곡을 총괄하는 유일한 저서다. 추가령은 楸哥嶺이라 쓴다.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북쪽의 육진(六鎭)에서부터 곧바로 삼방곡(三防谷)·추가령(楸柯嶺)으로 달려 평강(平康)·이천(伊川) 사이로 나와서 고랑포에 도달하는 것도 또 3백여리에 불과합니다.” 경기 관찰사 이형규(李亨逵)가 상소한 내용 중 한 구절이다. 추가령 구조곡은 좁게는 북동(북북동)-남서(남남서) 주향(走向)의 원산-서울 사이의 구조선들을 포함한다. 


범위를 넓게 해석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북의 함북 길주, 명천에서 남의 충남 보령까지 단층대로 보는 것이다. 추가령은 철령과 함께 역사시대를 통해 자주 국경으로 사용된 듯 하다. 그러나 삼국시대부터도 남북간의 교류에는 주로 철령이 이용되었으며 추가령 혹은 분수령은 보조적으로 또는 긴급할 때 사용된 것 같다. 일제강점기에 빠른 교통로를 위해 추가령에 신작로와 경원선이 건설되며 주요 통로가 됨에 따라 철령은 쇠퇴했다. 원산- 연천-서울을 잇는 추가령 구조곡은 백악기 또는 신생대 제3기 초에 생성된 우수향(右手向) 단층이 그 이후에 재활된 단층선곡이다. 


연천군과 철원군 사이의 고대산, 지장봉, 보장산 일대의 산지에는 중생대 백악기에 생성된 지장봉 산성 화산암류로 불리는 화산암이 분포한다. 이 화산암류의 대부분은 유문암질 응회암, 용결 응회암으로 담홍색, 담갈색, 회청색의 다양한 암색을 띠며 암편의 함량 변화가 심하다. 구 한탄강의 유로와 현 한탄강의 유로는 대체로 일치하며 추가령 현무암은 구 한탄강을 따라 유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추가령 현무암질 용암류가 만든 용암대지 지형은 형성 이후 하천의 침식 작용에 의해 원 지형이 파괴되는 개석(開析) 작용을 받았다. 


하천에 의한 개석은 주로 현무암층과 기반암 사이의 경계부에서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 용암대지에는 수십 미터의 단애(斷崖)가 형성되었다. 개석이 용암대지 내부에서 진행된 곳에서는 대규모 협곡이 발달하여 한탄강의 특징적인 지형이 되었다. 추가령 구조곡 일대에는 지구조적 연약대를 따라 열하분출한 현무암질 용암이 철원-평강 용암대지로 불리는 대규모 화산 지형을 형성하였다. 이는 제주도와 함께 해양성 지각으로 분류되는 울릉도, 독도와는 다른 경향을 보이며 하와이와도 다른 경향을 보인다.


즉 추가령 현무암은 해양 도서(島嶼)나 호상열도와는 달리 대륙 내에서 구조선과 관련된 열점에서 분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리산과 검불랑 북동 4km 지점의 성산(680m)이 중심이다. 오리산에서 분출한 용암은 주로 구 한탄강 유로를 따라 남쪽으로 흘렀으며 추가령을 넘어 북쪽으로는 흐르지 않았다.(53 페이지) 한탄강 상류인 철원군 철원읍 일대에서 최고 11매, 철원군 동송읍 일대에 최고 6매,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에 4매,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에 1매의 용암이 온 것으로 추정된다.(55 페이지) 


화산 활동에 의한 용암대지 형성 시기는 10만년전, 4만년전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 신생대 제4기에 형성된 대규모 화산체 또는 화산지역으로 백두산 화산체, 한라산 화산체, 울릉도-독도 화산체, 철원-평강 용암대지, 신계-곡산 용암대지 등 모두 다섯 곳을 꼽을 수 있다. 철원-평강 용암대지와 신계-곡산 용암대지는 인접했다. 추가령 구조곡의 용암 대지는 평강 지역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안변, 남쪽으로는 파주까지 분포한다. 그러나 하천이 매우 좁고 깊은 협곡을 이루는 세포와 고산 사이의 남대천 구간과 연천군 부곡리와 포천시 운산리 경계부의 한탄강 하곡 구간에서는 좁은 용암대지 지형면이 하천의 침식에 의해 대부분 사라져서 용암대지가 상류 쪽과 연결되지 못하고 단절된 형태로 나타난다. 


이에 따라 추가령 구조곡의 용암대지는 화산 분출의 중심부인 철원-평강 지역, 하곡을 따라 흐른 용암류에 의해 형성된 북쪽의 고산-안변 지역, 남쪽의 연천-파주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추가령 구조곡 일대에 발달한 용암대지의 총 면적은 약 825.84km²다. 중심부인 철원-평강 구역의 면적은 약 546km², 고산-안변 지역 구역의 면적은 135km², 회양-창도 구역은 약 91km², 연천-파주 지역의 면적은 약 54km²다. 연천-파주 구역의 용암대지는 면적에 비해 둘레가 매우 크다. 이는 한탄강과 임진강의 좁은 하곡을 따라 용암대지 지형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59 페이지) 


철원-평강 용암대지의 평균 고도는 329m, 회양-창도 구역은 454m, 연천-파주 구역은 46m에 지나지 않는다. 회양-창도는 淮陽-昌道로 쓴다. 정리하면 연천-파주 지역은 면적도 가장 좁고 고도는 가장 낮다. 철원-평강 용암대지를 형성한 후 남쪽으로 진행한 용암류는 좁은 한탄강 하곡을 완전히 메우며 흘러내려 한탄강의 곡저에는 30-40m 높이의 두꺼운 현무암층이 형성되었다. 이로 인해 한탄강에 합류하는 지류 하천의 하구에는 수십 m에 달하는 용암댐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용암댐에 의해 지류 하천의 중하류부 하곡에는 용암댐에 막혀 본류로 흘러들지 못한 유수가 정체되면서 거대한 호소(湖沼)가 형성되었다. 


한탄강의 지류 하천 중 차탄천과 영평천에서 용암댐 형성 후 고호소(古湖沼)가 형성되었다. 철원-평강 용암대지를 이루는 우리나라의 철원, 포천, 연천 지역에서 나타나는 주요 화산 지형은 용암대지, 주상절리, 베개용암, 스텝토, 다양한 부정합면, 클링커, 현무암 풍화층, 용암댐에 의한 고호소 퇴적물 등이다. 베개용암은 용암의 성분, 온도, 점성, 냉각 속도, 수온, 수압, 수심, 경사도 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아우라지 베개용암은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1) 한탄강을 따라 흘러온 용암이 지류인 영평천이 한탄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을 막음에 따라 호소(湖沼)가 만들어진다. 어느 정도의 깊이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2) 뒤이어 온 용암류가 (먼저 흘러온 용암류에 의해 만들어진) 호소(湖沼) 속으로 흘러들어 급격히 냉각한다.


평강의 오리산 부근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용암은 고도가 낮은 구 한탄강의 하곡을 따라 흘러내리면서 고결되며 하곡을 모두 메우고 주변으로도 흘러넘쳐 고도가 낮은 평지와 구릉을 메워 현무암 용암대지를 형성하였다. 상대적으로 고도가 높은 봉우리가 용암에 의해 매몰되지 않아 그대로 남는다. 용암대지 내에 섬처럼 고립된 상태로 돌출되어 있는 원래의 기반암으로 이루어진 구릉이나 봉우리를 스텝토라 한다. 클링커는 현무암질 용암이 기반암이나 퇴적층과의 접촉부에서 식어 형성된 불균질한 암석 조각이나 덩어리를 말한다. 철원-평강 용암대지의 하곡은 갑작스러운 용암 피복에 의해 주인 없는 유역분지가 되면서 현재는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으로 크게 양분되었고, 부분적으로 남대천이 잠식했다.


고석정에서 약 2km 떨어진 순담계곡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대부분의 한탄강 협곡과는 달리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다. 순담계곡에서 볼 수 있는 화강암은 중생대 백악기 화강암으로 동송읍 장흥리, 양지리 일대와 김화읍 생창리 일대에 분포한다. 일반적으로 화강암을 이루는 장석은 흰색을 띠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순담계곡의 화강암은 분홍색을 띠는 장석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용암 분출 후 한탄강은 주로 현무암과 화강암의 접촉부를 따라 흘렀으나 순담계곡은 드물게도 한탄강이 순수한 화강암 지대를 관통하면서 형성시킨 계곡이다. 


이로 인해 순담계곡의 하식애는 현무암 주상절리가 아니라 덩어리 형태의 화강암에서 특징적으로 발달하는 판상절리가 주를 이룬다. 한탄강 현무암 협곡에서는 기반암인 화강암이 현무암에 의해 덮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동송읍 장흥리에 자리한 고석정 주변이다. 고석(孤石)이란 한탄강 골짜기에 홀로 솟아 있는 화강암을 가리킨다. 이는 현무암 용암대지와 화강암의 접촉부가 유수에 의해 침식을 받아 드러난 것이다. 이 화강암은 철원이 용암으로 덮이기 이전의 기반암으로 뚜렷한 홍색을 띠어 주변의 흑운모 화강암과 대조를 이룬다. 


이처럼 서로 다른 종류의 암석이 만나는 곳은 다른 곳에 비해 쉽게 침식을 받아 하천이 흐르게 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깊은 계곡을 형성한다. 그 결과 기반암인 화강암 곡벽은 완경사를 이루고 현무암 곡벽은 주상절리에 의해 수직절벽을 형성하고 있어 하천 양안이 비대칭을 이룬다. 고석정 부근에서 한탄강 본류로 흘러드는 대교천은 하천 양안뿐 아니라 하상까지도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현무암과 화강암의 경계에 형성된 고속정의 하천 양안이 비대칭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과 달리 현무암으로만 이루어진 대교천 현무암 협곡은 대칭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재인폭포 폭호(瀑湖) 수면 부근에 위치한 단애면 최하단부 암석의 표면에서는 유수에 의한 굴식(掘蝕; plucking; 빠른 물살이 하천 바닥이나 기반암에 있는 암석의 일부를 뜯어내는 작용), 마식(磨蝕; abrasion), 건습풍화, 동결파쇄 작용 등이 일어난다. 


용암대지 형성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침식기준면과의 고도 차가 크게 발생하여 불안정해진 한탄강은 침식기준면에 가까운 안정적인 하천의 고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침식기준면과 접한 하류 쪽에서부터 하방침식과 두부침식을 진행하였다. 특히 과거 하곡 충적층 부근이나 기반암과 용암대지 사이의 지질 경계부는 풍화침식 작용이 집중되면서 새로운 하도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침식기준면이란 하천이 침식할 수 있는 가장 낮은 높이의 이상적인 면으로 일반적으로 바다의 해수면이 된다. 이런 하방 및 두부침식 과정을 통해 현재의 한탄강 협곡이 형성되었다. 


한편 주변 산지에서 발원하여 용암대지를 흘러 한탄강에 유입되는 지류 하천은 적는 유량으로 인해 침식 능력이 작아 한탄강 본류와 같은 속도로 하방 및 두부침식을 진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용암대지면 부근의 고도에서 하도를 형성하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본류인 한탄강과 지류 하천의 고도 차이로 인해 지류가 유입되는 한탄강 협곡의 단애면에는 폭포가 형성된다.


대부분의 폭포는 두부침식에 의해 위치가 상류 쪽으로 이동한다. 폭포가 형성되어 단애면을 따라 유수가 낙하하면서 기저 굴식과 굴착에 의해 폭호가 단애의 내부로 점점 확장되면 단애면이 점차 불안정해져서 단애 상부가 붕괴하면서 단애의 위치가 상류쪽으로 이동하는 두부 침식(headward erosion)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폭포의 위치가 하천의 상류 쪽으로 점차 이동해가는 폭포의 후퇴(recession)가 일어난다. 용암대지의 하부에는 기저굴식이 용이한 연암(軟巖)의 현무암층이 놓여있어 폭포의 형성조건인 폭호와 노치(notch; V자나 U자형으로 움푹 팬 자리)가 형성되기 유리하고 용암대지 중부의 현무암층은 주상절리가 매우 조밀하게 발달되어 있어 풍화침식을 받아 암석이 붕괴할 경우 수직의 단애면이 형성되고 유지되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가진다.


재인폭포는 후빙기에 이르러 상대적으로 유량이 늘면서 후퇴 속도도 조금 더 빨라졌을 것이다. 아직은 현무암 용암대지 내에 자리하고 있지만 후퇴가 계속되어 중생대 백악기 화산암류 지역까지 도달하면 주상절리에 의한 단애면 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폭포는 사라질 것이다.


추가령 구조곡은 서울 노원구- 의정부 - 양주 - 동두천 - 전곡 - 연천 -철원 - 평강 - 세포 -고산 - 안 변- 원산을 잇는 길이 약 160km의 좁고 긴 직선 골짜기로 지표에 뚜렷한 선형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신생대 제4기에 화산분출이 발생한 구조곡 중앙에 철원, 평강, 세포 남부 일대는 현무암 용암의 열하 분출에 의해 직선상의 추가령 구조곡이 완전히 매몰되어 선형성을 확인할 수 없는 평탄한 용암 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남한의 연천, 동두천, 양주, 의정부 일대와 북한의 세포 북부, 고산 안변 지역은 용암이 및 구조곡을 따라 흐르다가 곡 내부에만 소규모의 용암대지나 현무암층을 형성하였다. 용암류의 이동 경로와 거리가 멀어 용암의 영향이 전혀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북북동 남남서 또는 남북 주향을 이룬 직선상의 구조곡이 현재까지 뚜렷하게 발달되어 있다. 단층선에 발달한 하천을 적종(適從)하천이라 한다. 차탄천, 신천, 중랑천이 대표적이다. 차탄천과 중랑천은 남류하지만 신천은 북류한다. 하천의 남류, 북류는 발원지와 하구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하천의 흐름은 지구의 자전과 관련이 없다. 지형적 의미에서 추가령 구조곡의 폭은 약 3~10km로 다양하게 나타나며 가장 폭이 좁게 나타나는 지역은 연천 일대이며, 가장 폭이 넓은 지역은 덕정 일대다. 이는 기반암의 특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즉 덕정 지역은 중생대 화강암 지질로 풍화작용과 하천에 의한 침식작용이 활발하여 수지상의 하계와 상대적으로 넓은 침식 분지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분수계가 넓게 나타나며 연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암인 중생대 화산암이 분포하며 이 지역을 흐르는 차탄천 하류부에 해당하는 전곡 지역은 현무암 용암 대지로 이루어져 있어 하천이 협곡을 만들며 흐르기 때문에 하천의 형성과정에서 활발한 측방침식과 퇴적 작용보다는 주로 하각을 통한 하천의 발달이 우수하다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상대적으로 좁고 긴 분수계를 형성하고 있다. 


연천 전곡읍 일대와 철원 율리리 지역에는 용암대지가 분포한다. 이러한 용암들은 평강 지역으로부터 한탄강을 따라 흘러내리면서 하곡을 메워 형성된 것으로 현재의 하천은 용암 대지 아래로 깊은 협곡을 형성하고 있지만 용암 대지 형성 직후의 옛 하천의 유로는 용암 대지의 표면을 따라 흘렀거나 넘치면서 한탄강으로 유입되었을 것이다. 하천은 침식기준면에 도달할 때까지 고도를 낮추는 하방 침식작용을 일으키는데 이렇게 하천이 지표를 좁고 깊게 침식하는 하각 작용을 통해 하안 단구가 형성된다. 따라서 하안단구의 형성시기와 하천과의 고도 차이를 알면 하천이 고도를 낮추는 침식 속도인 하각률을 계산할 수 있다. 


철원, 전곡 용암 대지의 형성에 따라 한탄강과 지류 하천의 고도가 급격하게 상승하였고 이들 하천은 원래 또는 이상적인 하천 고도를 회복하기 위해 매우 활발한 하각 작용을 진행하였다. 용암 대지 형성 직후에 용암 대지 표면을 흘렀던 하천은 현재까지 대체로 0.5-0.9미터/ ka의 매우 높은 하각률을 나타내고 있다. 연천 한탄강 유역에서는 신생대 제4기뿐 아니라 중생대 백악기에도 격렬한 화산 분출이 있었다. 


그 결과 일부 화산지형이 남아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좌상바위다. 현무암에는 분급(分級)되지 않은 수cm에서 수십 cm 크기의 화산력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이들 암석이 화구 또는 화도 부근에 퇴적된 것임을 말해준다. 좌상바위 부근의 한탄강 하상은 중생대 응회암질 퇴적암이다. 주로 궁신교 아래의 하천 바닥에서 관찰되는 녹회색 또는 담갈색을 띤다. 이들 퇴적암은 화산 폭발 시 분출한 화산재가 물이나 바람에 의해 이동해 와 쌓인 데다가 둥근 자갈들이 섞인 것이다. 


연천 전곡읍 은대리에는 1999년 9월 18일 천연기념물로 제412호로 지정된 연천 은대리 물거미 서식지가 있다. 물거미는 공기 방울을 이용하여 물속에서 대부분 생활하는 역진화 생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1994년 전곡 용암대지 점토층에 궤도 차량의 바퀴 자국으로 만들어진 식생이 있는 얕은 물웅덩이에서 처음 확인되었다. 물거미 서식지의 기본적인 지형 조건으로는 불투수(不透水)층의 토양과 표면 늪지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물의 보존과 유지에 미치는 지형과 토양 수문 등 생물환경의 안정성도 중요하다. 전 세계 물거미의 서식지 분포는 과거 빙하 지형 또는 주빙하(周氷河) 지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빙하 지형의 작용으로 호소(湖沼)가 형성되어 육상 생태계가 거대한 수중 생태계로 바뀐 지역들이 산재한다. 그러나 한반도는 빙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지역으로 물거미가 수중 생태계로 역진화한 원인은 아직도 알려지지 않았다. 


연천 전곡 용암대지의 용암은 평강에서 남서쪽 3km에 위치한 오리산을 중심으로 열극 분출한 용암이 흘러내린 것이다. 은대리 일대는 선캄브리아대 연천층군의 변성퇴적암류가 기반암을 이루고 그 위에 두께 30~40m의 두꺼운 현무암층이 형성되었다. 이로 인해 전곡리 일대에서 한탄강에 유입하는 지류 하천인 차탄천은 용암댐에 막혀 연천 일대에는 과거에 넓은 호소가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곡리와 은대리 지역의 용암대지에는 홍수시 용암댐을 월류하여 운반된 제4기 운적물들이 분포한다. 이 운적층은 대부분 점토와 실트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입자가 미세하여 토양 공극이 작아 수분의 투과를 억제하여 불투수층을 형성하여 많은 수분을 지표면에 고이게 하여 습지 형성 요인을 제공하는 중요한 지형적 특성을 갖는다. 여기에 유기물층이 형성되면 보수력의 증가로 습지의 물 수지는 더 높아지면서 영구적인 습지로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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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질학에 재미를 붙이게 된 이래 고고학이나 인류학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었다. 지질학과 함께 고고학, 인류학이어야만 하겠지만 당면한 과제 외에는 주의를 계속 둘 여유가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그런 전환은 이상한 일이 결코 아니리라 생각한다.

     

    어떻든 이는 몇 년전 공주대학교 지리학과 학생들에게 50분 짜리 선사박물관 해설을 해 호평을 받기도 했던 사람이 나라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의외일 수도 있는 전환이다. 단 내가 지질학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 것은 기본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정도이고, 고고학이나 인류학에 대한 관심도 기본적이었다.

     

    최근 두 가지 이슈를 계기로 고고학이나 인류학에 대해 다시 흥미를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는 평론가 김나현이 고고학자로 살았던 시인 허수경의 고고학 시에 대해 한 분석이다.

     

    허수경 시인이 고고학을 전공해 관련 시를 쓴 것은 들어 알았지만 평론가가 고고학의 발굴을 수직의 시간으로 분석한 것은 생각하지 못한 구체적이고 획기적이기까지 한 독법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분석은 고고학의 발굴(진행방향)과 일상의 삶(진행방향)을 대비시킨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을 지질학의 탐사와 비교해보고 싶다.

     

    다른 하나는 고구려 병사들이 흑요석 화살촉을 썼다는 글이다. 이런 류의 글은 한 필자의 글 외에는 없지만 흑요석을 백두산과 연결지을 수 있고 고대 문명권에서 흑요석을 화살촉으로 썼다고 말하는 외국 사이트의 글을 확인했으니 중요 시사점을 얻은 것 같다.

     

    이는 호로고루 해설에 쓸 것이지만 그 관심사가 최종적으로는 어디로 갈지 나도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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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의 금강(金剛)이 금강경이 아닌 화엄경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어제 춘천박물관에서 알게 된 내용이다. 이는 오늘 지난 신문을 통해 확인한 바이기도 하다. 금강산은 불교식 이름일 수밖에 없다. 화엄경이 금강경보다 먼저 작성되었다. 금강산은 2018년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이래 올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오른 산이다


    ()보다 화()가 이야기거리가 많다. 오오누키 에미코의 '사쿠라가 지다 벚꽃도 지다'에서 알게 된 내용 중 하나가 산화(散華/ 散花)는 어떤 대상이나 목적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의미하는 한편 꽃을 뿌려 부처를 공양하는 것도 뜻한다는 사실이다. 꽃은 피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도 산화라 한다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에 의하면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산화(散華; 목숨을 바치는 것)는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젊은 학생들의 희생을 부추겼다. 더 나아간 꽃 이야기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김승철의 '벚꽃과 그리스도'를 참고한다. 문학으로 읽는 일본 기독교의 계보를 부제로 하는 책이다.


    이 책에 수록된 엔도 슈샤큐와 물의 성사(聖事)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엔도 문학에 있어서 커다란 분기점으로 평가되는 작품이 바다와 독약이다. 저자는 이 작품에도 액체성의 제목이 붙어 있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 중 규슈대학에서 실제로 있었던 미군 포로를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은 윤동주 시인이 겪은 생체실험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에 의하면 바다는 독을 끝없이 희석해 무화(無化)시킨다. 바다는 생체 해부를 자행하고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신 없는 일본인의 정신풍토의 메타포다


    1114일 서촌 해설이 예정되어 있다. 윤동주 타계 80주년을 중심으로 해설할 생각이다. 서촌에 윤동주 문학관, 윤동주 시인의 언덕, 윤동주 하숙집, 윤동주 시인이 자주 이용했던 보안여관 등이 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로 시작하는 자화상이 눈에 들어온다


    윤동주 시인의 물은 성찰, 고뇌, 극복 의지 등의 의미를 지닌다. 윤동주 시인의 일본식 이름 히라누마 도쥬(平沼 東柱)를 떠올리게 된다. 여기에도 물과 관련된 단어인 소(; 연못, )란 글자가 있다. 그런데 평()은 윤동주의 본관인 파평(坡平)에서 가져온 것이고, ()는 파평 윤씨의 시조와 연관된 잉어 전설이 일어난 장소인 연못을 지칭한다


    윤동주는 일본 유학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창씨개명했다. 창씨개명 5일 전 윤동주는 참회록(懺悔錄)’이란 시를 썼다. 이 시에 구리가 나온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의식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민족의 역사를 비추는 공동체의 거울이다.(이미옥 지음 디아스포라 시인, 윤동주 연주’ 90 페이지


    김현자 교수는 자화상의 이미지를 아청(鴉靑)빛이라 표현했다. 큰 부리 까마귀 아와 푸를 청을 쓰는 아청은 검은 빛을 띤 푸른 빛을 의미한다. 아청은 구리의 이미지와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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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부터 쌀쌀해진 날씨였으나 움츠러들지 않고 미용실에 다녀왔다. 미용사가 의식 있는 불교 신자이기에 이진경 교수의 불교를 철학하다를 소개해드렸다. 집에 돌아와 검색을 해보고 같은 저자의 신간이 나온 것을 알았다. 나온 지 한 달이 채 안된 '불교를 미학하다란 책이다.

     

    요즘은 불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에 한 달 가까이 된 책 출간 소식을 알지 못하다가 아침에 '불교를 철학하다'를 소개한 것을 계기로 지은이 이름을 검색해 알았다. 읽을 책들이 많아지고 있다. '불교를 미학하다'640 페이지나 되는 벽돌책 수준의 책이다. 배울 점이 많은 책으로 손색 없어 보인다. 혹시 불교를 과학하다같은 책도 나올까?

     

    201811불교의 의미를 어떤 전공자보다 래디컬하고 설득력 있게, 그러면서 자유롭게 풀어쓴 책이 이진경의 '불교를 철학하다'이다.”란 글로 시작하는 리뷰를 쓴 기억이 새롭다. 저자가 기울인 지적 노고의 결과물을 2만원~3만원 정도의 금액으로 수고를 기울이지도 않고 얻는 점을 감안하면 독서란 참으로 효율적인 일이고 감사한 일이다. 많이 생각하고 배우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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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쓰는 과학자들 - 위대한 과학책의 역사
    브라이언 클레그 지음, 제효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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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쓰는 과학자들’은 2천 5백년에 걸친 과학책의 역사를 다섯 챕터로 나누어 살펴본 책이다. 저자는 실험물리학과 운용과학을 전공한 브라이언 클레그(Brian Clegg; 1955 - )다. 다섯 챕터란 고대 세상의 기록, 출판의 르네상스, 근대의 고전, 고전을 벗어난 과학책, 다음 세대 등이다. 저자는 글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없애고 궁극적으로 과학을 존재하게 하는 위대한 발명품으로 본다. 로마인들의 사례가 흥미롭다. 그들은 과학 발전에는 거의 기여하지 못했지만 1세기에 코덱스를 개발하여 과학책뿐 아니라 책 전체에 엄청나게 기여했다. 코덱스는 여러 낱장을 한 다발로 묶어서 한 장씩 넘겨 가며 한 쪽씩 수월하게 읽고 원하는 부분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현재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책이었다. 


    코덱스는 두루마리보다 사본을 만들기 좋게 한 발명품이었다. 코덱스에 이어 등장한 인쇄 기술은 책을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한 수단이 되었다. 13세기 영국의 수도사 로저 베이컨은 엉겅퀴에도 만족하는 나귀에게 상추를 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란 말을 했다. 대중이 과학 지식을 접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의 말이었다. 17세기 갈릴레오는 걸작으로 여겨지는 자신의 과학저술을 대중도 볼 수 있도록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이탈리아어)로 썼다. 19세기에 나온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의 원리’는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면서도 이 분야의 관심 있는 일반 독자들을 위해 컬러 삽화를 넉넉히 활용해 지구의 역사가 이전에 추정된 것보다 훨씬 더 오래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중요한 가설 등 당시 지질학의 최신 지식을 전달했다. ‘지질학의 원리’는 다윈이 비글호 항해 중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책으로 유명하다. 


    다윈은 책에 나오는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의 영향을 받고 오랜 지구 역사를 통해 생물종이 변화해왔다는 생각을 발전시켰다. 저자는 과학책을 글의 발명 이래 지금까지 인류가 발전하는 길을 환하게 비춘 등대로 정의하며 앞으로도 과학책이 오랜 세월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 말한다. 점토판의 중요성은 거론할 만하다. 최초의 문자기록이 남은 곳은 점토판이다. 영어로 Clay라 하는 점토(粘土)는 차지다, 끈적끈적하다란 의미의 점과 흙을 의미하는 토가 만난 단어다. 지질학적으로는 2 마이크로(1/ 100만)미터 이하의 무른 흙을 의미한다. 점토판에 임시로 남긴 자국은 점토를 물에 적시고 닦아내면 지울 수 있어서 판을 재사용할 수 있었고 점토판을 가마에 구우면 기록을 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었다.


    고대의 놀라운 건축물 가운데 인류 문명에 오랫 동안 막대한 영향을 준 곳으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빼놓을 수 없다. 이 도서관에 보관된 책은 대부분 파피루스 두루마리 형태였다. 화재를 비롯 여러 차례의 공격을 당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소장본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가 보존된 것은 8세기부터 14세기 사이에 아랍어권 학자들에 의해 번역되어 서구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게오르기우스 아그리콜라는 1556년 ‘금속에 관하여’를 쓴 독일의 저술가다. 순수 과학 도서라기보다 공학 도서에 가까운 책이다. 과학과 공학의 차이는 무엇일까? 1746년 프랑스의 지질학자 장 에티엔 게타르는 지표면에서 지질학적으로 유사한 시대를 나타내는 지도를 처음으로 제작했다. 프랑스의 지질학적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점선과 실선, 다른 기호 등을 이용해 흑백으로 인쇄한 이 지도에는 모래 지대, 이회암 지대, 금속을 함유한 지대 등이 표시되어 있었다. 


    암석과 광물이 드러난 시대보다 암석과 광물의 위치를 추적하는 데 관심을 둔 이 지도는 지질도라기보다 광물도에 더 가까울 것이라는 말을 참고하자. 이 말은 헬렌 고든의 ‘깊은 시간으로부터’에 나오는 글(135 페이지)이다. 고든에 의하면 1800년대 초반에 프랑스의 조르주 퀴비에, 알렉상드르 브롱나르, 영국의 윌리엄 스미스가 최초의 지질도를 작성했다. 이 지도들은 지표면 아래의 암석을 보여주고 그 암석들의 상대적 연대와 퇴적 방식을 기록했다는 면에서 큰 도약이었다. 1810년 퀴비에와 브롱나르가 파리와 그 주변 지역의 지도를 발표했다. 스미스는 1815년 세계 최초로 한 나라에 대한 진정한 비교 지질도를 발표했다. 신사 지질학자들의 시대에 측량사였던 스미스는 부자도 아니었고 귀족도 아니었고 인맥이 좋지도 않았다.


    1796년 스미스는 자연은 경이로운 순서와 규칙성으로 단일 산물들(화석)을 쌓아올렸고 저마다 특유의 지층에 배정했다는 글을 썼다. 조르주 퀴비에는 동일과정설과 상보적(相補的)인 격변설의 주장자다.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갈릴레오 이후 르네상스 시대의 또 다른 비범한 인물인 아이작 뉴턴이 등장하기 전 그 틈새를 채운 인물이다.(149 페이지) 우리는 진공이 당연히 존재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무 물질도 없이 비어 있는 공간을 본질적으로 피해야 할 나쁜 것이라고 선언했고 17세기까지 그런 공간은 존재할 수 없다고 여겨졌다.(156 페이지) 아이작 뉴턴은 자신을 자연철학자보다 수학자로 여긴 듯 하지만(그리고 연금술과 신학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가 수립한 빛, 중력, 운동에 관한 이론이 남긴 영향은 아인슈타인 외에는 비견할 만한 사람이 없을 만큼 엄청났다.(158 페이지)


    뉴턴은 점성술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 그의 서재에 있던 1700여권의 책들 중 점성술에 관한 책은 네 권이었지만 점성술은 뉴턴에게 잠재적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로베르토 트로타 지음 ‘우리는 별에서 시작되었다’ 297 페이지) 뉴턴은 그럼에도 후에 점성술을 허영과 공허함을 특징으로 하는 과학으로 가장한 술(術)로 규정했다. 과학자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scientist가 등장한 것은 1834년이다.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지질학이 대중에게 그렇게까지 큰 흥미를 자아낼 만한 학문이 아닌 듯 하지만 라이엘이 활동한 시대에는 신문 1면을 장식할 만큼 큰 논란이 일어나고 대중의 관심이 쏠린 분야였다. 논란의 주제는 지구의 나이였다. 원래 지구의 나이는 성경 내용을 바탕으로 추정된 결과가 오랫동안 수용되었으나 라이엘이 새로운 이론을 수립하고 확장해 기존의 생각을 뒤집은 것이 발단이 되었다. 


    라이엘의 동일과정설은 산과 계곡이 매우 점진적이고 연속적인 과정으로 형성되었으며 현재의 상태가 되기까지 수백만 년이 걸렸다는 내용이었다. ‘지질학의 원리‘를 읽은 다윈은 지질학적 연대를 생물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는 영감을 얻었다. 지질학이 발전하면서 동일과정설만으로는 지구의 형성 과정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화석 기록에서 현재 우리가 대량 멸종이라고 부르는 현상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발견된 것이다. 물론 대량멸종은 예외적인 현상이다. 다윈은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에서 라이엘의 지질학 연구에서 볼 수 있는 과학적 엄격함과, 가설을 세우지 않고 사실을 수집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접근 방식을 자신의 연구에 적용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을 설명했다. 


    프랑스의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는 시각적인 표현에 주력한 에른스트 헤켈과는 대조적인 접근 방식을 택했다. 곤충이 주제인 그의 책이 큰 인기를 끈 이유는 문체가 독자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228 페이지) 180년 시대를 앞서간 매우 흥미로운 책이 나왔다. 알프레드 베게너가 쓴 ’대륙과 해양의 기원‘이란 책이다. 그의 이론은 그가 세상을 떠난 1930년 이후 적어도 20년은 지나서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단단해 보이는 지구 표면이 실제로는 상대적인 움직임이 일어나는 거대한 암석 판이라는 주장이다. 베게너가 떠올린 위대한 생각은 아메리카 대륙을 아프리카, 유럽 대륙과 나란히 놓고 보면 직소 퍼즐 조각들처럼 가장자리가 서로 맞물리는 듯한 형태임을 알아챈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대륙의 형태뿐만 아니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떨어져 있는 양쪽 대륙에서 발견된 화석 기록에도 두 대륙이 한때 한 덩어리였음을 암시하는 유사성이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했다. 이에 베게너는 각 대륙이 매우 느린 속도로 이동하며 지질학적인 시간 흐름에 따라 새로운 대륙 구조가 생기거나 있던 대륙이 분리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베게너의 이론이 그의 생전에 수용되지 않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는 지질학자가 아닌 기상학자였고 그린란드 탐험가였다. 그는 대륙의 이동 메커니즘을 설명하지 못했고 이동 속도를 1백배나 과대평가했다. 시간이 흘러 지구에 관한 더 많은 사실이 알려진 후에야 베게너의 이론이 실제 가설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세기 초의 물리학 도서들 가운데 일부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두 과학자의 손에서 나왔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마리 퀴리가 주인공들이다. 아인슈타인은 잇따라 쏟아내듯 발표한 네 편의 논문에서 분자의 크기를 결정하고, 양자 물리학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도 힘을 보탰고, 특수 상대성 이론으로 우주와 시간의 연관성을 설명하고, E=mc²을 증명했다. 이어 12년간의 연구 끝에 역작인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다. 물리학자 아서 에딩턴의 글이 좋은 반응을 얻은 이유는 책이 설명하는 내용의 전체적인 맥락을 짚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 이론과 관찰 내용을 그냥 제시하기보다 그것에 담긴 철학적 의미, 때로는 그 시대에 문화적으로 중시되던 신학적 의미까지도 함께 소개했다. 에딩턴은 1919년 직접 탐험대를 꾸려 일식 현상을 관찰하고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한 인물이다. 


    1922년 미국 신시내티에서 태어난 토머스 쿤이 쓴 ’과학혁명의 구조‘는 대중이 아닌 같은 분야 전문가들을 주 독자로 여긴 기존 과학 도서들의 흐름에서 마지막을 장식한, 눈여겨볼 만한 책이다. 쿤의 책을 읽으려면 칼 포퍼의 ’탐구의 논리‘를 먼저 읽을 필요가 있다. 포퍼는 과학적인 탐구의 핵심은 가설의 반증가능성이라 보았다. 반증할 수 없는 가설은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절대적 진실을 도출하는 연역법이 아닌, 최신 근거를 토대로 가장 가능성이 큰 결론을 도출하는 귀납법이 과학의 방식이라는 의미다. 포퍼의 철학은 과학을 점진적인 과정으로 본다. 지질학의 동일과정설이 설명하는 자연의 형성과정과도 비슷한 개념이다. 우주의 구조를 밝힌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과학에 일으킨 것과 같은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도 분명 존재하지만 포퍼는 그런 변화는 새로운 이론이 수립되고, 그 이론을 시험하고, 반증 가능성을 찾는 전체적인 과정의 중심이 아니라고 보았다. 


    쿤은 이와 반대로 지질학의 격변설과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그는 과학적 혁명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인식 체계의 전환이라고 설정했다. 쿤은 인식 체계의 전환이 일어나면 과학자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그 결과 과학자들의 말은 기존의 의미를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쿤은 과학적 관점은 사회적 요소가 반영되므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레이첼 카슨의 책이 가진 매력 중 하나는 기존 대중 과학책들과 달리 시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리처드 파인만은 ’QED(양자전기역학) 강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혹시 여러분은 제 설명을 듣고 나면 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저는 왜 여기서 여러분을 귀찮게 하고 있을까요? 여러분은 제가 설명할 내용을 어차피 이해하지도 못할 텐데 왜 거기에 앉아 계시죠? 왜냐하면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외면하면 안 된다고 여러분을 설득하는 게 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을 제가 가르치는 물리학과 학생들도 이해 못합니다. 저도 이해 못하는 내용이거든요. 이걸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이 책에서 가끔 인용하는 구절이 다이너마이트의 폭발은 전자 패턴의 재배치이고, 원자폭탄의 폭발은 양성자 및 중성자 패턴의 재배치란 말이다. 저자는 자신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었던 1970년대에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를 접했다고 말한다. 대화하듯 설명하는 문체와 방대한 자료를 다른 책들과는 전혀 다르게 제시하는 파인만의 독특한 방식에 매료되었다고 말한다. 일반 교과서들과 차원이 다르다고 말한다. 1970년 작인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이 거론된 것과 달리 1999년 작인 프랑수아 자콥의 ‘파리, 생쥐, 그리고 인간’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자콥은 “우리는 핵산과 기억, 욕망과 단백질의 가공할 혼합물이다. 저물어 가고 있는 이번 세기에는 핵산과 단백질이 우리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 다음 세기의 관심사는 기억과 욕망이 될 것이다. 이러란 물음들에 대해 누가 대답해 줄 것인가?”라는 말을 했다. 


    자콥은 196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다. 자크 모노는 진화를 생물이 낮은 수준에서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는 메커니즘으로 해석하는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진화는 무작위로 일어나는 과정이므로 더 낮은 수준의 생물로 진화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이런 점은 스티븐 제이 굴드의 견해를 연상하게 한다. 레이첼 카슨의 책 중에서는 ‘침묵의 봄’보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가 선정되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다. 카슨은 해양과학자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대중에게 생물이 아닌 유전자의 관점으로 진화를 설명한 최초의 시도 중 하나다. 저자는 과학의 여러 소분야 중에서 이론의 해석에 크게 몰두하는 분야는 양자역학이 유일하다고 전제했다. 그에 의하면 코펜하겐 해석은 닥치고 계산이나 하라는 방식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2014년 나온 카를로 로벨리의 ‘모든 순간의 물리학’은 제대로 설명하면 대중이 과학에 얼마나 더 큰 흥미를 느낄 수 있는지를 멋지게 보여준 물리학 책이다.(317 페이지) 로벨리는 양자중력이론 전문가다. 아인슈타인 이후 물리학은 크게 두 분야로 나뉘었다. 하나는 양자물리학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상대성이론이다. 두 이론은 매우 설득력 있지만 양립할 수 없다. 저자는 과학책은 물리학, 우주학 분야의 책이 대부분이고 다른 분야의 책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한다.(320 페이지)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저자의 궁금증이자 내 궁금증이다. 


    저자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과학책 분야로 화학을 예로 들었다. 지질학은 어떤가? 내가 화학을 잘 모르기 때문인지 모르나 나는 지질학이 훨씬 흥미롭다. 닉 레인의 ‘바이털 퀘스천’이 소개되어 반가웠다. 피터 앳킨스의 ‘우주의 마법 같은 탄생’을 소개받아 감사하다. 저자는 이 책을 에미 뇌터가 개발한 수학의 대칭성 개념을 활용하여 물리학의 여러 기본 원리를 추론한 탁월한 글 솜씨의 책이라 설명했다. 저자는 대중의 참여가 지금처럼 중요한 시대는 없었다고 말하며 일부 정치적 신념과 손잡은 반과학적 관점을 물리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책을 쓰는 과학자들’은 좋은 책은 물론 과학을 보는 시각도 많이 알게 해준 책이다. 지질학만으로 이루어진 비슷한 책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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