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산당화 그늘 (벤투의스케치북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www.facebook.com/anuloma01로 오세요..</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10 Oct 2026 08:59:42 +0900</lastBuildDate><image><title>벤투의스케치북</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63054172149026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벤투의스케치북</description></image><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양자 물리학의 난해함과 기괴함을 경험하기 - [시인을 위한 양자물리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563111</link><pubDate>Fri, 09 Oct 2026 20: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5631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1390511&TPaperId=175631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93/47/coveroff/896139051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1390511&TPaperId=175631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시인을 위한 양자물리학</a><br/>리언 M. 레더먼 & 크리스토퍼 T. 힐 지음, 전대호 옮김 / 승산 / 2013년 05월<br/></td></tr></table><br/><br>리언 레더먼과 크리스토퍼 힐의 [시인을 위한 양자물리학]은 원제도 [Quantum Physics for Poet]로 우리 말 버전과 같다. 본문에 반감기 계산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원자물리학자, 핵물리학자, 입자물리학자의 주요 일거리이지만 특정 우라늄 원자 하나가 언제 붕괴할지는 양자 이론으로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두 저자는 양자 물리학은 언뜻 보면 애매하고 부정확한 듯하지만 실은 실재를 이해하는 올바른 길, 더 나아가 유일하게 올바른 길이라고 말한다.(29 페이지)   &nbsp;  하이젠베르크는 전자들의 경로에 대한 지식은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원자가 방출하는 빛에 대해서는 정확한 결론들을 내놓는 이론을 개발했다. 그가 보기에 궁극적으로는 사건들이 일어날 가능성과 확률만이 본래적인 불확실성을 동반한 채 존재했다. 이것이 신생 양자 물리학이 포착한 새로운 실재였다. 기이하게도 전자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을 때에는 두 경로를 한꺼번에 거치고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지켜볼 때에는 하나의 확정된 경로를 거치는 것처럼 보인다.   &nbsp;  전자는 입자도 아니고 파동도 아니다. 또한 입자이면서 파동이다. 전자는 무언가 새로운 것이다. 전자는 양자 상태다.(33, 34 페이지) 저자들은 우리는 양자 이론을 가지고 놀고 시험하면서 양자 이론에 익숙해지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는 쿼크들로 이루어진 입자에도 파동 개념이 적용된다. 쿼크들은 양성자와 중성자와 모든 핵물질의 기초 재료이다. 막스 보른은 우리가 전자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며 알 수도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nbsp;  엄밀한 원인과 결과 대신 확률을 우주에 지배자로 받아들이는 것을 일부 물리학자들이 반역행위로 여긴 이유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막스 플랑크,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등이다. 두 저자들은 자신들의 목표가 원자와 분자가 주인공인 야릇한 미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개발된 물리학 법칙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라 말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뉴턴적인 언어가 새로운 원자 세계를 기술하는데 실패한 것이 양자 이론이 선택된 원인이라는 점이다.   &nbsp;  저자들에 의하면 이론이라는 단어를 여러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과학자들의 흠이고 실제로 이론은 과학적으로 잘 정의된 단어가 전혀 아니다. 결론이란 데이터를 합리적이고 조직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기 위해 고안된 가설이나 가설적인 생각을 뜻한다.(53 페이지) 살아 남는 이론은 측정 및 관찰과 가장 잘 일치하는 이론이다. 그 이론에 대한 검증은 다양하고 극단적인 조건에서 이루어질수록 더 좋다. 언젠가 그 이론은 최고의 지위에 올라 더 나은 설명이 제시될 때까지 그 지위를 유지한다.   &nbsp;  이론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과학은 통틀어 가장 성공적인 이론이다. 요컨대 양자 이론은 사실이다. 과학의 역사는 기존 지식을 포용하는 혁명들의 역사이다. 양자 물리학을 이해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는 것과 같다. 저자들은 양자 이론의 기괴함은 상당 부분 인간의 조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58 페이지) 갈릴레오와 뉴턴이 제시한 모든 법칙들은 약 300년 동안 정론으로서 지배력을 유지했다. 그 법칙들은 고전 물리학의 아름다움과 합리적 안정성을 대표했다.   &nbsp;  고전 물리학의 황금시대의 운동법칙들은 질서정연했고 보편적인 중력 법칙은 사과와 소행성을 공이 지배했으며 전기 이론과 자기 이론의 바탕에 깔린 경이로운 대칭성이 밝혀졌고 빛이 전자기장의 파동이라는 통찰까지 이루어졌다. 1900년부터 조금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두 저자는 왜 장작불이나 토스터의 열선은 붉게 빛날까?라는 질문이 양자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어젖혔다고 설명한다.   &nbsp;  플랑크의 면밀한 계산에 따르면 소량의 단파장 복사는 같은 소량의 장파장 복사보다 세기(밝기)가 훨씬 더 강해야 한다. 왜냐하면 파란색 빛이 더 작아서(파장이 더 짧아서) 주어진 공간에 더 많이 집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랑크는 맥스웰의 고전적인 빛 이론에서는 모든 뜨거운 물체가 온도와 상관없이 항상 희푸르게 빛나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실험에서 관찰한 낮은 온도의 흑체 복사 곡선에는 파란색 빛보다 빨간색 빛이 훨씬 더 많았다. 아니 파란색 빛은 없다시피 했다.  &nbsp;  플랑크는 두 가지 점에서 고전이론과 극적으로 결별했다. 첫 번째 결별은 복사의 세기(에너지 보유량)와 진동수를 연결한 것이고 두 번째 결별은 덩어리 즉 양자를 도입한 것이다. 맥스웰 이론에서 빛의 세기는 연속적으로 변하며 전자기 파동의 진폭에만 의존한다. 플랑크의 이론에서 특정 진동수의 빛의 세기는 양자의 개수이고 양자 각각이 보유한 에너지는 진동수에 비례한다. 고전 물리학의 토대가 허물어지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기 시작했을 때 광전 효과라는 쓰나미가 갈릴레오와 뉴턴과 맥스웰의 자식이라 할 만한 고전 물리학을 덮쳤다. 광전 효과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을 때에도 광전지 형태로 이용된다.   &nbsp;  광전 효과의 기본 원리는 빛이 들어가면 전기가 나온다로 요약할 수 있다. 광전 효과는 빛이 입자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자 방출 여부는 빛의 밝기가 아니라 빛의 색깔에 좌우된다. 빛의 진동수가 어느 한계 아래이면 전자가 방출되지 않는다. 밝기는 빛의 양(에너지 세기)에 의해 결정되고 빛의 색은 파장에 의해 결정된다. 플랑크의 자외선 파탄 해결과 아인슈타인의 양자 효과 설명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고전 물리학은 20세기 초에 세 번째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그 충격을 건포도 푸딩 모형의 실패라고 부르려 한다.   &nbsp;  원자는 전체적으로 말랑말랑한 건포도 같다고 생각했으나 중심에 단단한 핵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새 모형이 생긴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일로 톰슨의 모형은 러더퍼드의 모형으로 대체되었다. 보어와 러더퍼드가 없었다면 미국 원자력위원회를 상징하는 원자 도안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러더퍼드는 원자핵을 발견했고, 보어는 전자는 핵 주위의 정해진 특정 궤도만을 안정적으로 공전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고전 물리학의 법칙들에 따르면 전자가 원자핵 주위의 궤도를 도는 것은 불가능하다.   &nbsp;  궤도 운동을 하는 전자는 가속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모든 원 운동은 속도의 방향이 끊임없이 바뀌는 운동이므로 가속도 운동이다. 그리고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에 따르면 가속하는 전하는 전자기 복사 곧 빛의 형태로 에너지를 방출해야 한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계산해보면 궤도 운동을 하는 전자는 모든 에너지를 순식간에 방출하고 마치 날개를 다친 새처럼 나선을 그리면서 떨어져 핵에 부딪힌다는 결론이 나온다. 예컨대 전자들의 궤도와 원자 자체가 붕괴할 것이며 그렇게 붕괴한 원자는 화학적으로 생명도 효용도 없는 존재일 것이다.   &nbsp;  이처럼 고전이론에 입각하면 전자의 에너지, 원자, 원자핵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터무니없게 들리므로 새로운 이론 즉 양자 이론을 발명할 필요가 있었다. 보어는 가장 작은 전자 궤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즉시 깨달았다. 그 궤도는 모든 가능한 궤도들 가운데 세대에 가장 가까이 있으며 둘레가 가장 짧다. 그 궤도에 진입한 전자는 더 이상 핵을 향해 떨어지지 않는다. 이 최소 궤도를 일컬어 바닥 상태라 한다. 바닥 상태란 최저에너지 상태이다. 전자가 바닥 상태에 이르면 더 낮은 상태로 옮겨갈 수 없기에 원자는 안정된다. 바닥 상태는 모든 양자 시스템이 지닌 특징이다. 진공은 온 우주의 바닥 상태다.   &nbsp;  물은 육안으로는 연속적이지만 미시적으로는 불연속적이다. 우리는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보어, 보른 등을 거쳐서 지금 어디에 도착했을까? 우리는 확률 파동을 알고 불확정성관계를 안다. 불확정성관계는 입자 관점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때로는 파동, 때로는 입자라는 말로 대변되는 위기는 해소되었다. 전자와 광자는 입자이다. 이들의 행동을 기술하려면 파동 함수를 언급해야 한다. 파동 함수들은 간섭할 수 있고 입자들은 확률 파동 함수에 맞게 나타날 자리에서 고분고분 나타난다. 그들이 어떻게 거기까지 가느냐는 허용되지 않는 질문이다. 이것이 코펜하겐 해석이다.    &nbsp;  코펜하겐 해석의 성취는 확률과 양자적인 기괴함을 받아들이는 대가(代價)다.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드브로이, 플랑크 등은 자연이 원자 규모의 대상들을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한다는 생각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양자 이론이 미봉책에 불과하며 결국 결정론적이고 인과적인 이론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믿음을 고수했다. 그는 불확정성관계를 우회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오랫동안 여러 시도를 했다. 그러나 보어는 그 시도들을 하나씩 차례로 즐겁게 반박했다.   &nbsp;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가시지 않은 실존적 불안과 성취감이 뒤섞인 묘한 감정으로 이 장을 마무리한다. 1920년대가 끝날 즈음 양자역학은 이미 성숙해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성취들과 개량들로 인해 양자역학은 1940년대까지도 뜨거운 논쟁거리로 남게 되었다. 양자 이론은 물리학의 울타리를 넘어 과학 전체에도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다. 생물학, 생화학뿐 아니라 천체물리학, 핵과학, 암호학, 재료과학, 전자공학 등도 양자 혁명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양자 물리학이 없었다면 정보기술은 종이 서류 보관용 장을 설계하는 기술 정도에 머물렀을 것이다.   &nbsp;  베르너 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와 막스 보른의 확률 해석이 없었다면 정보기술이라는 것이 과연 생겨나기나 했을까? 시스템들은 가능한 최저 에너지 상태를 취하려고 한다. 원자의 경우에는 양자 규칙들에 의해 전자가 들어가서 운동할 수 있는 궤도 함수들이 규정되고 각 궤도 함수는 고유한 에너지를 갖는다. 원자를 이해하기 위한 마지막 주요 발걸음은 궤도 함수 각각에 오직 전자 2개만 들어갈 여유가 있다는 또 하나의 놀라운 깨달음이다. 파울리의 배타 원리에 따르면 원자 내부에서 두 전자가 동시에 동일한 양자 상태를 취할 수 없다.   &nbsp;  두 전자가 동시에 동일한 양자 상태를 취할 수 없다는 말은 위치, 모양, 에너지, 회전 방향 등이 100% 같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회전 방향(스핀)만은 달라야 한다. 이 법칙 때문에 전자들이 한곳에 다 뭉쳐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서 다양한 원소들을 만들고 지금의 물질세계를 있게 한 것이다. 우리가 벽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도 파울리의 배타 원리에 의한 결과다. 같은 자리를 공유할 수 없는 전자들이 강하게 반발하기 때문이다. 이 원리가 없었다면 세상의 모든 물질은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푹 꺼져버렸을 것이다. 파울리의 배타 원리가 만든 이 거대한 힘을 물리학에서는 전자 축퇴압이라고 한다. 축퇴압은 빈 자리가 하나도 없이 꽉 찬 것을 의미한다.   &nbsp;  파울리의 배타 원리는 그의 최대 업적 중 하나였다. 그 원리는 원소 주기율표가 왜 그런 모습인지 설명함으로써 우리에게 화학을 선사했다. 파울리의 배타 원리는 주어진 원자 내부에서두 전자가 정확히 똑같은 양자 상태에 있을 수 없다는 간단한 명제다. 두 전자가 정확히 똑같은 상태에 있는 것은 금지된다. 이 간단한 규칙 덕분에 우리는 원소 주기율표에 등재된 원자들의 구조와 화학적 성질을 이해할 수 있다. 원자들의 구조는 파울리  제시한 두 가지 규칙에 따라 결정된다. 1) 전자들의 양자 상태는 다 달라야 한다. 2) 배열은 에너지가 최대한 낮아지도록 이루어져야 한다.   &nbsp;  두 번째 규칙은 왜 중력이 작용하면 물체들이 떨어지는지도 설명해준다. 스핀이 있고 그 하위 범주에 전자 스핀이 있다. 물리학이나 화학에서 흔히 스핀이라고 하는 것은 전자스핀을 지칭하는 것이다. 파울리의 배타 원리는 하나의 양자 상태에는 스핀이 서로 다른 페르미온 입자가 최대 두 개까지 들어갈 수 있다는 원리다. 수소는 헬륨과 달리 채워지지 않은 껍질을 가졌다. 수소가 채워지지 않은 껍질을 가졌기에 결합하려는 욕구를 갖는 것이고 역시 채워지지 않은 껍질을 가진 산소와 결합해 물이 된 것이다.   &nbsp;  수소의 경우 첫 번째 전자 껍질은 방이 하나여서 전자 두 개가 차야 안정적인데 전자 하나 밖에 차지 않아 하나가 부족한 상태다. 산소는 두 번째 전자 껍질이 방이 4개여서 전자 8개가 차야 안정적인데 6개여서 두 개가 부족한 상태다. 산소 혼자서는 수소 한 개만 만나면 여전히 전자 한 개가 만족하지 못한다. 결국 산소의 갈증을 해소하려면 전자 한 개를 보태줄 수 있는 수소 두 개가 필요하다. 원자마다 전자가 들어가는 전자 껍질의 위치와 크기가 다르다. 수소 두 개와 산소 하나가 만나 이루는 구조의 각도는 104.5°다.   &nbsp;  전자는 모두 마이너스 전하를 띠고 있어서 서로 강하게 밀어낸다. 특히 결합에 참여하지 않은 전자쌍들이 수소를 아래로 강하게 밀어낸다. 이 때문에 일직선이 되지 못하고 104.5°로 구부정한 상태가 된다. 산소는 수소보다 전자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힘(전기음성도)이 훨씬 강하다. 분자가 일직선이라면 양쪽에서 잡아당겨 힘이 상쇄 되지만 104.5°로 꺾여 있다 보니 전자가 산소 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전자를 빼앗기다시피 한 수소는 플러스, 전자를 독차지한 산소는 마이너스를 띠는 극성분자가 된다. 물 분자 하나하나가 미세한 자석처럼 작용한다.   &nbsp;  물 분자가 자석이 되었기 때문에 분자들끼리는 서로 끈끈하게 달라붙는 수소결합을 한다. 물이 얼음이 될 때 104.5°의 각도를 유지한 채 서로를 밀어내며 육각형 모양의 빈 공간이 많은 규칙적인 구조를 만든다. 그래서 얼면 부피가 늘어나고 밀도가 낮아져 물 위에 뜬다. 실제로 척력이 작용해 밀어낸다기보다 결합하려면 딱 이 각도와 거리 유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두 전자가 정확히 동일한 양자 상태에 있는 것에 대한 엄격한 금지는 궁극적으로 임의의 두 전자가 서로에게 너무 바투 접근하는 것에 대한 금지로 이어진다.   &nbsp;  전자가 공간에서 360도 회전하면 그 양자역학적 상태를 나타내는 파동함수(Wavefunction)의 부호가 반대로 바뀐다. 원래 상태로 완전히 되돌아가려면 360도가 아니라 총 720도를 회전해야 한다. 우리가 관측하는 물리량(물체를 발견할 확률 등)은 파동함수의 절대값 제곱으로 결정된다. 부호가 +이든 -이든 제곱을 하면 동일한 값이 되기 때문에, 전자 하나만 고립되어 있을 때는 360도 회전으로 인한 부호 변화를 직접 감지할 수 없다. 하지만 두 개 이상의 양자 상태를 겹쳐놓는 간섭계 실험을 통하면 회전한 전자와 회전하지 않은 전자 사이의 부호 차이(위상차)가 간섭 무늬의 변화로 나타나므로 이 현상을 실제로 증명할 수 있다.   &nbsp;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일부 과학자들은 확률 해석과 불확정성관계를 싫어했고 특히 전자가 전자총에서 나와 영사막에 도달할 때까지 잘 정의된 경로를 거친다는 주장을 원리적으로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싫어했다. 그들이 보기에 전자가 마치 정신 분열병 환자처럼 분열하여 서로 독립적인 두 경로 모두를 어떤 혼란스러운 혼합의 방식으로 거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양자역학의 성취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성취가 너무나 컸기에 일부 물리학자들은 화학과 생물학이 가장 깊은 수준에서는 한갓 물리학 분야들일 뿐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확률 해석,   &nbsp;  고전적 실재론과의 결별 즉 원자 수준에서도 대상들은 관찰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잘 정의되어 있든 실재 하는 속성들을 지니고 존재한다는 믿음과의 결별이었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물리학자들은 기본적이고 근본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무작위성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생각의 철학적으로 반감을 느꼈고 뉴턴적인 결정론을 복원할 수 있기를 바랐다. 저자들은 우리는 말 그대로 철학적 수렁에 빠졌다라고 말한다. 세계가 우리의 경험과 얼마나 다른가를 깨달으면 우리의 생각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nbsp;  지난 80년 동안 응용 양자 과학은 더 먼저 고전 시대를 대표하는 뉴턴과 맥스웰의 물리학이 거둔 방대한 성과들을 재현했다. 이제 우리는 확실히 더 깊은 수준에 도달했다. 양자 과학은 고전 물리학을 근사이론으로 포용하면서 모든 과학의 바탕이 되었고 원자, 원자핵, 아원자핵 입자, 쿼크와 렙톤의 행동 뿐 아니라 분자, 고체 구조, 우리 우주의 탄생(양자 우주론), 생명을 정의하는 거대 분자들, 현재 활발히 연구되는 생명공학, 심지어 어쩌면 인간의 의식까지 성공적으로 기술한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얻었지만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불안과 큰 기대를 뒤섞으며 우리를 괴롭힌다.(295, 296 페이지)   &nbsp;  두 저자는 E=mc²은 에너지와 질량이 등가라는 뜻이 아니라 멈추어 있고 질량이 m인 입자는 E=mc²을 만족시키는 에너지 E도 가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300 페이지)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유도한 공식의 진짜 이름은 정지 에너지 공식이다. 만약 두 개념이 완전히 같은 뜻(등가)이라면, 질량이 없는 곳에는 에너지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빛(광자)은 질량이 0이지만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nbsp;  두 저자는 진공이 음(陰)의 에너지 전자들로 가득차 있다는 생각은 비록 기괴하지만 세계가 음의 에너지 심연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듯 했다고 말한다. 이 기괴한 개념은 현대 물리학, 특히 양자역학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된 '디랙의 바다(Dirac Sea)' 이론을 가리킨다. 물리학의 대원칙 중 하나는 모든 입자는 가장 에너지가 낮은 상태(안정된 상태)로 떨어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음의 에너지 상태가 무한히 존재한다면, 우리가 아는 보통의 전자(양의 에너지)들은 순식간에 에너지를 방출하며 끝없이 더 낮은 음의 에너지 상태로 추락해야 한다.   &nbsp;  결과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순식간에 붕괴하여 음의 에너지 심연 속으로 사라져 버려야 하는 끔찍한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디랙은 이 세계의 파멸을 막기 위해 우리가 '진공'이라고 부르는 공간은 사실 이미 음의 에너지 전자로 빽빽하게 가득 차 있다는 기상천외의 가설을 세웠다.   &nbsp;  디랙은 파울리의 배타원리를 적용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전자들은 같은 상태에 중복해서 들어갈 수 없다. 이미 음의 에너지 자리가 전자로 꽉 차 있기 때문에 양의 에너지를 가진 보통의 전자들이 더 이상 음의 에너지 상태로 떨어지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서 떨어질 수 없게 된다. 이 기괴한 음의 에너지 바다 덕분에 전자가 심연으로 추락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물질 세계가 안정되게 유지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 이론은 단순한 궤변으로 끝나지 않았다. 디랙은 만약 이 가득 찬 음의 에너지 바다에 강한 에너지를 주면 음의 에너지 전자가 에너지를 흡수해 양의 에너지 상태로 튕겨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nbsp;  이때 전자가 빠져나간 자리는 바다에 구멍('홀', Hole)으로 남게 되는데, 이 구멍은 주변에 비해 전하가 반대인 '양(+)의 전하를 가진 전자처럼 행동'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전자의 반입자인 양전자(Positron), 즉 반물질(Antimatter)의 개념이다. 얼마 지나지 않은 1932년 칼 앤더슨이 실제로 우주선(Cosmic Rays)에서 양전자를 발견하면서 이 기괴한 상상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물리학적 예측 중 하나로 증명되었다. 당시에는 참으로 기괴하고 기묘한 임시방편처럼 보였던 아이디어가 역설적으로 우리 우주의 안정성을 설명하고 반물질이라는 신세계를 열어준 열쇠였던 셈이다.  &nbsp;  양자이론과 특수상대성 이론이 모두 옳다면 양전자는 존재해야 한다. 특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에너지는 질량과 속도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를 수학적으로 풀면 제곱근 형태가 나타난다. 방정식을 풀면 수학적으로 양(+)의 에너지뿐만 아니라 음(-)의 에너지라는 두 개의 해가 물리적으로 모두 가능해진다.   &nbsp;  두 저자는 입자물리학자들은 거대한 디랙 바다에서 낚시를 하는 어부라고 말한다.(315 페이지) 반물질의 존재는 보손(힘을 전달하는 중개자), 페르미온(형태를 만드는 물질의 기초) 모두에 적용되는 현상이라 말한다. 디랙 바다는 직관적으로 떠올리기가 매우 용이하고 페르미온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리처드 파인만은 디랙 바다를 고찰하는 또 다른 방식을 개발했다.   &nbsp;  본문의 9장은 중력과 양자이론; 끈이란 챕터다.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통해 어느 정도 이해가 된 개념이다. 레너드 서스킨드 등은 우리가 관찰하는 우주가 엄청나게 거대한 초우주의 미세하고 보잘것없는 한 부분이라는 흥미로운 생각을 제기했다. 이 어마어마한 초우주 또는 메가우주를 일컬어 풍경이라고 한다. 우리는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풍경 가운데 거주 가능한 구역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369 페이지)   &nbsp;  양자 마법에서 과거엔 꿈도 꾸지 못한 기술 장치들(레이저부터 훑기 꿰뚫기 현미경)까지 나왔다. 그러나 양자 과학을 창조하고 교과서를 쓰고 기적적인 발명을 해낸 소수의 지적 거장들은 여전히 밤잠을 못 이루며 고민한다. 아인슈타인이 여러 논문에서 지적한 대로 온갖 화려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양자 과학은 불완전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그들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확률이 자연의 근본 원리 중 하나일 수 있을까? 무언가가 배제되었거나 빠졌을지도 모른다.  &nbsp;  실제로 중력은 오랫동안 양자 과학에서 배제된 것의 실례였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하는 일관된 이론을 향한 꿈은 일부 과감한 이론가들을 근본적인 수준의 연구로 이끌었고 그들은 오로지 추상적인 수학에만 의지하여 끈이론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무언가 더 깊은 것이 있지 않을까? 혹시 양자 이론의 논리 구조에 모자란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림 맞추기 퍼즐을 완성하려다가 실패를 되풀이한 아이처럼 우리는 묻는다. 혹시 핵심적인 조각 하나가 퍼즐 상자 밖으로 달아난 것이 아닐까?(372, 373 페이지)   &nbsp;  두 저자는 물리학자들은 양자 이론이 어떤 식으로 유효한지를 훌륭하게 밝혀냈으나 양자 이론이 왜 그런 식으로 유효한가? 라는 질문 앞에서 물리학자들은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는 서기나 조립라인의 노동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381 페이지) 두 저자는 여전히 수많은 철학적 질문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빛은 파동이면서 또한 입자일 수 있을까? 세계는 하나뿐일까? 아니면 여럿일까? 뚫을 수 없는 암호가 존재할까? 궁극적 실재란 무엇일까? 물리학 법칙 자체가 주사위 던지기에 의해 결정될까? 혹시 이런 질문들은 공허할까? 다만 ‘양자 물리학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가 정답일까? 또 이렇게 묻고 싶은 독자도 있을 것이다. 과학의 다음 번 도약은 언제 어디에서 일어날까?   &nbsp;  두 저자들은 이 책을 읽는 일이 보람 있었고 이제 여러분과 우리 물리학자들이 세계의 원대 함과 심오한 신비에 대한 감각을 공유하게 되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 저자들은 이 책에 여러분이 나와서 유명해 출발점에 불과하기를 여러분이 우리의 양자 우주를 구성하는 경이로운 형상들과 겉보기 역설들을 계속 탐구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93/47/cover150/896139051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934714</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로부터,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이후에는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553599</link><pubDate>Sun, 04 Oct 2026 11: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553599</guid><description><![CDATA[<br>루프 중력이론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이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최신작인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를 완독하고 13, 000자의 서평을 썼다. 서평이라기보다 요약하고 내 생각을 덧붙여 내 관점에 따라 정리한 글이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가 내가 읽은 카를로 로벨리의 6번째 책이다. 이 책을 통해 과학, 물리학, 철학은 물론 칸트, 스피노자, 아리스토텔레스 등 개별 철학자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nbsp;  이제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주문할 것이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화이트홀],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을 읽어야겠지만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가 로벨리의 최고의 책이 아닌가 싶다.   &nbsp;  카를로 로벨리는 흥미롭게도 관계는 신학(神學)에서도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면서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고립적이지 않은 세 위격(位格)으로 존재한다. 성부는 성자와 성령의 근원이고, 성자와 성령은 하나의 신적 본질을 공유하며 서로 안에 거하는 관계라는 것이다.   &nbsp;  카를로 로벨리는 수학이나 예술처럼 우리는 과거의 축적된 유산을 바탕으로 살아간다고 말한다. 유클리드, 알콰리즈미(페르시아의 수학자), 브라마굽타(인도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진구소(秦九韶; 친지샤오; 중국 남송 시대의 대표적인 수학자이자 기상학자, 정치가), 가우스 뿐 아니라 사포(고대 그리스의 시인), 무라카미 시키부(일본 헤이안 시대의 궁녀, 소설가, 시인), 제니스 조플린(미국의 록 가수)의 유산 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nbsp;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제니스 조플린이다. 록 음악, 특히 로벨리와 같은 국적의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을 오랜만에 듣고 싶다. ]]></description></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양자역학과 철학에 기반한 카를로 로벨리의 과정, 주체, 세계를 통괄하는 만물 평등론 -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 만물의 평등에 관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553438</link><pubDate>Sun, 04 Oct 2026 08: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55343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1888&TPaperId=175534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36/75/coveroff/k38213188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1888&TPaperId=1755343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 만물의 평등에 관하여</a><br/>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현주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09월<br/></td></tr></table><br/>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인간을 구체적인 존재, 물리적 세계의 일부, 생각과 욕망, 계획과 감정, 그리고 꿈으로 직조되어 있는 존재, 창조하고 해석하는 존재로 본다. 2026년에 나온 그의 최신작인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는 '만물의 평등에 관하여'라는 부제를 가진 책이다. 이 책은 출간 2년 전에 진행한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의 특별 강연을 주요 소스로 해서 만든 책이다. 구체적으로는 양자 현상 및 양자 물리학을 주요하게 다룬 책이다. 저자에 의하면 양자 현상의 발견은 현대 과학에서 가장 놀라운 혁신이다. 실험실에서 관찰된 다양한 현상이 물질에 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양자 물리학은 아주 작은 영역부터 거대한 영역까지 세상의 사실들을 놀라울 만큼 효과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nbsp;  양자 물리학은 오랫동안 세상이 다른 모든 것과 독립적으로 항상 고유한 속성을 지닌 사물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우리의 세계관 전체를 지탱해온 유서 깊은 사고의 틀을 버리도록 요구한다. 양자 물리학의 세 가지 특징은 기이한 맥락성, 확률성, 물리적 변수의 입자성(불연속성)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변수들은 특정한 값(양자화된 값)만 취할 수 있고 다른 값은 취할 수 없다. 입자성이란 우리가 어떤 시스템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유한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개념이다.(70 페이지) 확률성은 어떤 시스템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가 최대치에 도달해도 그에 관해 새로운 유용한 정보를 항상 더 얻을 수 있음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nbsp;  확신을 의심할 수 있을 때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과학의 핵심 메시지다. 과학 문제의 어려움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것보다 당연해 보였던 생각에서 벗어나는 데 있는 경우가 많다. 과학은 확실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틀렸음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저자는 현실 그 자체, 궁극적 존재론, 최선의 체계, 진리 같은 말들을 세계에 관한 확실한 진실로 받아들이는 일이 별로 흥미롭지 않다고 말하며 이러한 말들은 심리적, 문화적 고뇌의 투영 즉 과도하게 발달한 뇌를 가진 포유류인 우리 인간의 두려움에서 비롯된 추론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인다.   &nbsp;  필요한 것은 확률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입자성과 확률성, 이 두 가지 원리는 맥락성과 함께 양자 물리학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강의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현실의 양자적 구조에는 모든 것을 바깥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고정된 기준점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지식이 이루어지는 방식도 이와 똑같은 구조를 지닌다. 저자는 형이상학이든 인식론이든 근본 물리학이든 자신이 흥미롭게 여기는 것은 토대를 세우는 것보다 현재 우리의 지식 수준을 고려해 세상에 관해 사고하는데 가장 적합한 개념적 틀이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이라고 말한다.   &nbsp;  저자에 의하면 우리는 모든 관점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우리는 항상 어떤 관점 안에 있다. 관점들은 서로 소통한다. 일단 우리는 관점의 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의 지식은 현실에 대한 하나의 관점을 담고 있다. 현실은 관점들의 반영이며 우리의 지식은 그 일부다. 오늘날 우리가 알 수 있는 현실, 최대한 이해할 수 있는 현실은 바로 이 경이로운 거울 놀이 같은 관점들의 상호 반사(反射)다. 세상은 사건과 과정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바로 이 변화가 세상의 존재 방식이다. 사건은 시간 속에서 특정한 위치를 가지는 어떤 것이다.   &nbsp;  우리는 세상의 여러 과정을 시간이라는 순서로 배열해 조직한다. 계절의 변화, 낮과 밤의 교대, 시계의 뚝딱거림, 생각의 연속 등을 우리는 시간의 흐름이라고 부른다. 시간의 흐름은 사건들의 연속이다. 저자는 가장 흔한 오류는 우리가 시간이라고 말할 때 그것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포착하는 단 하나의 실체, 단 하나의 구조, 단 하나의 개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간의 본질 같은 것은 없다. 공통된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고도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서로 다른 속도로 이동하는 두 친구는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까지 경과된 시간을 다르게 느낀다. 시간의 흐름은 전 우주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현상이 아니다.   &nbsp;  시간은 장소 또는 궤적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 공통된 현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는 국소적 개념이다. ‘지금, 여기’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 없이 지금이라는 단독의 단어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멀리 떨어진 별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묻는 것은 무의미한 질문이다. 멀리 떨어진 별에는 우리가 망원경으로 관측했을지도 모르는 과거의 사건들, 누군가가 망원경으로 지금 우리를 관측했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사건들, 그리고 그 둘 사이에는 우리의 과거도 미래도 아닌 중간 시간대가 존재하며 별이 멀어질수록 그 시간대는 더욱 길어진다.   &nbsp;  우리들 기준으로 보면 그것은 확장된 현재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과거와 미래에 일어난 사건의 총체로 그들을 현재의 순간과 구분해 생각한다면 현대 물리학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우주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에 의하면 시간은 사건들의 연속이다. 우리의 생각이 흐르는 것도 사건이다. 저자의 관점에서 양자 중첩이란 사물 자체가 가진 절대적인 상태가 아니라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만 정의되는 상대적인 정보의 상태를 말한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떤 물체의 위치를 그 물체를 둘러싸고 있는 물체들 집합의 안쪽 경계라고 정의한 것을 인용하며 공간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관계가 바로 인접성이라고 정의한다.   &nbsp;  이런 의미에서 공간은 사물이나 사건 사이의 관계다. 이런 공간 개념에는 거리 개념이 포함되지 않는다. 두 손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 전혀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이므로 두 손은 닿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공간은 관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체이며 거리를 통해 정의되고 비어 있을 수도 있다고 배운다. 사물이나 사건이 없어도 존재하는 물리적 공간이라는 실체가 가능하다고 상상한 뉴턴은 특유의 겸손하지 않은 태도로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그리고 일반적 상식에서의 공간을 평범한 공간이라 부르고 자신이 창안한 공간을 진정한 공간이라고 불렀다.   &nbsp;  중력장은 질량의 영향을 받으며 질량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결정한다. 중력장이 출렁이면서 퍼져나가는 파동이 중력파다. 이것은 전자기장이 진동하며 퍼져나가는 전자기파와 비슷하다.(101 페이지) 저자가 설명하는 공간은 사물들이 서로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이루는 구조이며 사물들 사이의 인적 관계에 의해 정해진다. 공간이란 사물들 사이의 인적 관계이며 우리는 이 관계를 이용해 사물과 사건의 위치를 파악한다. 절대 운동은 존재하지 않고 상대 운동만 존재한다.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어떤 사물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절대적 장소는 없다. 오직 상대적 장소만 있을 뿐이다.   &nbsp;  저자는 공간의 구조가 어디에서나 똑같은 고정된 유클리트 기하학을 따르고 사물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뉴턴의 공간이 현실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착각이 생겼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현실을 확장된 실체인 장(場)들의 집합으로 묘사한다. 이 장들은 공간에 자리하지 않고 외부 시간 속에서 진화하지도 않는다. 데카르트의 연장(延長) 실체처럼 장들 자체가 공간적 확장을 규정하고 장들의 진화가 시간이다. 저자는 양자 물리학의 관계 구조와 시공간의 관계 구조가 일치한다고 말한다.   &nbsp;  양자 물리학의 개념적 틀은 시스템 사유의 상호작용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양자 물리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 사이에 모순이나 긴장이 존재한다는 흔한 주장과 달리 두 이론은 연인처럼 서로를 감싸안는다고 말한다.(109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두 이론은 자연스럽게 융합되는 관계적 핵심을 공유한다. 두 이론 모두 과정들 사이의 상호작용 네트워크를 다룬다.(123, 124 페이지) 저자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두 이론이 서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성 이론이 깔아준 역동적 시공간이란 무대 위에 양자 물리학의 관계적 속성이 올라타면서 비로소 우주의 진짜 모습이 완성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nbsp;  우주의 진짜 모습이란 시공간이 없는 루프의 그물망을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전체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가 말하는 우주란 물질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을 이동하는 곳이 아니다. 시공간마저 모두 녹아내린 자리에서 많은 미시적 루프들이 쉼없이 얽히고 설키며 관계를 맺고 있는 역동적 그물망 자체가 우주의 진짜 얼굴이다. 사회 역학은 시스템들이 다른 시스템들에 대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설명한다. 이러한 관계들은 시공간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시공간적 관계를 정의한다.(110 페이지) 저자는 양자는 사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양자는 고정된 속성을 가진 사물이 아니라 대상들이 상호작용할 때만 나타나는 사건이자 관계다.   &nbsp;  시간과 관련된 모든 현상은 소산적(消散的)이다. 에너지가 흩어져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뜻이다. 소산작용이 있을 때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엔트로피 기울기 즉 차이가 존재한다. 거시적 변수들에서 미시적 변수들로 넘어갈 때 소산이 일어난다. 이때 이 에너지는 거시적 변수들보다는 더 이상 포착되지 않는다. 저자는 자연을 더 잘 이해하려면 자연을 우리의 기존 개념에 맞추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우리의 개념을 분석하고 수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각은 생물권의 일부인 우리의 뇌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소산적이며 비가역적이다.   &nbsp;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다. 과거의 미래 사이의 차이는 통계적인 것이다. 열역학 제2 법칙은 보편적이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통계적이란 개별 입자의 움직임 수준에서는 과거와 미래의 구분이 없지만 수많은 입자가 모인 거시적인 세계에서는 확률적으로 한쪽 방향 즉 미래로만 현상이 일어난다는 의미다. 저자는 세상의 기본 물리 방정식을 알면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이 헛소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산에 있는 모든 돌을 물리 방정식으로 설명하려면 그 방정식들의 수많은 해(解)를 알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해들을 다 알아내도 별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nbsp;  우리 앞에 놓인 어떤 대상에 관해 유용한 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구체적 상황의 측면들을 포착하는 데 적합한 개념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다양한 관점들이 존재하는 것은 과학이 분열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일부에서 주장하듯 과학의 불통일성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다양성은 과학의 풍요로움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관점들이 일관되게 연결된다는 사실은 과학의 통일성을 보여준다.   &nbsp;  물리학이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관찰하는 모든 현상이 물리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과정이 완전히 똑같아도 우리는 서로 다른 감정을 느끼거나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저자는 복잡한 현상은 단순한 구성 요소에서 생겨나지만 그 구성요소로는 원리적으로 절대 설명할 수 없다는 입장에 집착하는 것은 정신 질환이라 말한다.(171 페이지) 저자는 모든 사물이 평등하다는 증거는 엄청나게 많다고 말한다. 부제가 ‘만물의 평등에 관하여‘인 것이 이해된다.   &nbsp;  불과 몇십년 전까지도 생명체가 물리학의 범주를 벗어난 불가사의한 생물학적 법칙을 따른다고 생각하는 생물학자가 많았다. 오늘날 생화학은 모든 생물학자에게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확신을 주었다. 양자 물리학은 화학의 기본 원리가 물리적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그 장벽을 허물었다. 저자는 물리학은 그 자체로 하나의 노래라고 말한다. 그 노래를 통해 우리는 세상에 말을 걸고, 세상도 우리에게 말을 건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부르는 다양한 노래들은 서로 공명하고 반영하며 서로에게 말을 건다.  &nbsp;  저자는 상대적이란 말과 자의적이라는 말을 혼동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가령 달의 속도는 지구에 대한 상대적 속도로 정의되지만 그것이 달의 속도가 자의적이어서 달이 원하는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도덕적 판단은 판단하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지만 그것이 그 판단이 자의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도덕에 위반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이지 그 자신의 윤리를 어긴 자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nbsp;  모든 지식이 누군가의 지식이라는 사실이 지식을 자의적인 것으로 만들지는 않으며 다른 사람 또는 나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을 막지도 않는다. 과학을 한다는 것은 최종적 진리를 갈망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지 세상을 더 잘 이해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더 빨리 달리기 위해 훈련하지 빛의 속도에 도달하기 위해 훈련하지는 않는다. 도덕적 판단이 중요한 것은 도덕이 우리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가 누구인지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도덕성 붕괴보다 핵전쟁이 문명을 무너뜨릴 가능성이 더 높다며 절대적 진리의 소멸이 문명을 붕괴시킬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nbsp;  도덕성은 우리 존재의 복잡성을 구성하는 실질적 요소다. 그리고 그것은 생물학적, 문화적, 사회적 뿌리를 가지고 있어 우리가 숙고하는 모든 과정의 복잡성과 분리하기 어렵다.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 평등하게 존재하며 그들은 저마다 고유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저자는 흥미롭게도 관계는 신학에서도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면서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고립적이지 않은 세 위격(位格)으로 존재한다. 성부는 성자와 성령의 근원이고, 성자와 성령은 하나의 신적 본질을 공유하며 서로 안에 거하는 관계다.(201, 202 페이지)   &nbsp;  저자는 물리학이 먼저 명확하게 정의된 실체적 바탕을 제공하고 그 위에 관계를 구축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순진한 유물론과 결부된 헛된 희망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사물(실체)이 아니라 관계와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관계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로벨리에 의하면 상호작용하는 관계 속에서만 그 대상의 속성이 정의되고 존재하게 된다. 고정된 물질적 실체가 먼저 있고 그 위에 관계가 쌓인다는 생각은 고전적이고 단순한 물질 만능주의(순진한 유물론)가 만들어낸 착각이자 현대 양자물리학의 본질과 마주하지 않으려는 헛된 희망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핵심 지적이다.(202 페이지)   &nbsp;  전자(電子)에 관한 모든 설명은 전자가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세상에 관한 물리적 기술은 언제나 부분적이고 관점에 따른 것이라 설명한다. 세상의 상태에 관한 모든 설명은 하나의 관점에서 바라본 근사치(近似値)다. 여러 과정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흔적을 남긴다. 이 흔적은 세계의 각 부분이 서로에 관해 가지고 있는 정보다. 따라서 세계는 서로 다른 부분들 사이의 상호(相互) 정보(情報)다. 물리학은 시스템들이 서로에 대해 가지는 상호 정보를 다룬다. 세상에 관한 모든 설명은 상대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상의 상태에 관한 진실은 언제나 주관적이다.((204, 205 페이지)   &nbsp;  저자는 자신이 말하는 주관성이란 진리가 본질적으로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주체가 없는 객관성은 추상적 개념이고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 중요한 점은 관점이 다르다고 해서 소통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관점들은 물리적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접근할 수 있다. 그들에게 숨겨진 것은 전혀 없다. 다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이들에 관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무수히 많을 뿐이다.(210 페이지) 저자는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개별적 자기 성찰조차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접근하게 해주지는 않는다는 말을 했디고 말한다. 저자가 이 말을 인용한 이유는 인간의 의식적 자기 성찰은 만능이 아니며, 우리 뇌와 신체가 자연의 거대한 인과법칙 속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온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nbsp;  저자는 주관성은 현실의 다른 어떤 특성보다 특별히 더 깊이 감춰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저자는 주관성이나 의식을 과학으로 영원히 풀 수 없는 신비로운 무언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는 주관성 역시 자연 현상의 일부이며 세상의 다른 물리적 특성들보다 특별히 더 깊이 감춰진 비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양자역학 해석(관계론적 양자역학)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고 오직 다른 존재와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속성을 가진다. 주관성 역시 뇌라는 물리적 계가 외부 세계 및 자기 자신과 맺는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다.   &nbsp;  주관적 경험이란 결국 계(뇌) 내부의 관점에서 바라본 정보의 처리 과정이다. 물리적으로 측정 가능한 뉴런의 전기 신호와 우리가 느끼는 주관적 느낌은 서로 다른 언어로 표현된 같은 현상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의식을 물리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Hard Problem)로 분류하지만 저자는 이를 거부한다. 그는 과거에 인류가 생명(Life)을 물리화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생명의 기운(생기론)으로 보았다가 과학의 발전으로 극복했듯 주관성 역시 거대한 뇌의 메커니즘이 밝혀지면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는 현상이라고 본다.  &nbsp;  저자는 우리가 객관적 지식이라고 믿는 것 역시 결국 하나의 특정한 관점이자 주관성의 변형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지식의 주체인 인간이 결코 세상 밖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관찰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자연의 한 파편이며 우리가 만든 객관적 이론과 과학적 지식 또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고 탐색하기 위해 신체와 뇌로 구현해 낸 도구일 뿐이다. 우리는 자연의 한 파편이며 우리가 만든 객관적 이론과 과학적 지식 또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고 탐색하기 위해 신체와 뇌로 구현해 낸 도구일 뿐이라는 저자의 말에서 신체와 뇌라는 말은 한계가 있고 제한적인 도구라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인간의 과학과 지식은 우주의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진리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아니다.   &nbsp;  그보다 인류가 가진 제한된 감각 기관(신체)과 처리 능력(뇌)을 통해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생존하기 위해 최적화된 지도에 가깝다. 우리는 우주를 '밖'에서 객관적으로 관조할 수 없다. 우주라는 거대한 계(System)의 안에 속해 있는 작은 파편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세상은 언제나 우리 신체와 뇌라는 필터를 거쳐 들어온 제한되고 주관적인 정보일 뿐이다. 우리의 뇌는 우주의 모든 차원과 법칙을 완벽히 이해하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라 지구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먹이를 찾고 위험을 피하도록 진화했다. 따라서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간, 공간, 객체의 개념조차도 인간의 뇌가 만들어낸 '유용한 도구'일 뿐, 우주의 근본적인 진실은 아닐 수 있다는 의미다.   &nbsp;  과학이 말하는 객관성은 우주의 절대적인 진리 그 자체가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객관성이란 너와 내가 서로 소통하며 조율해 낸, 고도로 공유된 상호 주관적 경험이다. 즉, 수많은 주관적 관점들이 상호작용(실험과 검증)을 거쳐 서로 불일치를 줄이고 합의에 도달한 상태를 우리는 객관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nbsp;  대상의 속성은 오직 다른 대상과 관계를 맺을 때만 드러난다. 지식 역시 언제나 특정한 물리적 위치, 시간, 문화적 배경이라는 관계와 맥락 안에서만 성립하는 시각(Perspectival knowledge)이다. 절대적이고 탈맥락적인 객관성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저자는 객관성을 절대화하는 태도 역시 또 하나의 거대한 착각이자 주관적 집착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는 과학이 위대한 이유는 완벽한 객관적 진리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우리의 지식이 언제나 제한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임을 받아들이는 겸손함에 있다고 말한다.   &nbsp;  저자의 말은 과학적 지식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지식의 본질적인 한계를 겸허히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가 보는 세상 너머의 진짜 리얼리티(관계적 현실)를 더 깊이 탐구할 수 있다는 양자역학적·철학적 통찰을 담은 말이다. 마음 역시 만물의 평등이라는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저자는 우리가 이원론의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면 탁자가 원자들의 집합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일상적 의미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 있듯 영혼과 감정에 관해서도 언제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만물의 평등함이라는 것이다.   &nbsp;  지식은 과정, 주체, 그리고 나머지 세계 사이의 관계다. 지식은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하는 개념적 틀 위에서 형성되는 집단적 현상이다.(223 페이지) 지식은 물리적 현실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관찰하고 연구하고 상호작용하는 세계는 다른 시스템들이 우리에게 투영된 모습이며 현실 자체를 구성하는 상관관계 그물망의 일부다. 우리는 이러한 순환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224 페이지)   &nbsp;  우리의 지식은 다른 모든 정신적, 영적 삶의 측면과 마찬가지로 유한하고 불안전하며 그 무엇도 보장하지 않는다. 계몽주의와 특정한 분석 철학이 소중히 여겼던 순수이성, 궁극적 명료함이라는 이상은 비로소 무너진다. 모든 모형은 포착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놓친다. 우리가 가진 모든 이론은 불완전하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에는 다른 무언가가 간과되어 있다. 우리가 어떠한 질문에 우선순위를 두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228 페이지)   &nbsp;  저자는 모든 지도는 오류를 포함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우리는 무지와 확실성 사이에서 행복하게 살아간다고 덧붙인다. 현실의 관계적 본질과 그로 인한 관점주의를 인식하면 현대 과학과 일관되게 세계를 해석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지가 바로 주관적 관점이다. 진리는 주관적이다. 과학이 많은 질문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해답을 제공한다고 믿지만 이러한 해답들은 타당성과 신뢰성이 높을 뿐 확실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는 과학 지식과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지식들의 차이는 본질적인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nbsp;  우리가 세상에 관해 즉각적으로 설명할 때 쓰는 단어인 탁자와 과학적 차원에서 쓰는 단어인 전자 사이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둘 다 세상을 특정한 수준에서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이다. 그 단어들은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실제를 지칭한다. 저자는 뉴턴의 이론이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통합되었을 뿐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도 잘못된 평가를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의 물리학은 타당성의 범위 내에서 훌륭하고 강력하며 정확하다. 뉴턴 물리학과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 사이의 관계는 뉴턴 물리학의 아인슈타인 물리학과 맺는 관계와 같다.   &nbsp;  과학 이론은 세계를 이해하는 체계의 일부다. 기존 사고의 틀에 덧붙는 도구다. 그러한 틀이 없다면 이론은 표현조차 될 수 없다. 과학 이론은 결코 세계에 관한 완벽한 설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수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어떤 근본적 수정이 일어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기존의 세계관을 벗어남으로써 새로운 이론을 발견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조금씩 변화시켜가며 새로운 이론을 발견한다.   &nbsp;  이 말은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론과 뚜렷한 차이점과 공통점을 가진다. 카를로 로벨리의 관점은 쿤이 말한 패러다임의 존재론(우리가 어떤 틀에 갇혀 생각한다는 점)은 수용하지만 그 틀이 깨지고 바뀌는 과정에 있어서는 쿤의 과격한 단절(혁명) 대신 기존 패러다임 내부에서의 유기적인 확장과 변형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쿤의 패러다임론에 대한 세련된 비판이자 보완이라고 볼 수 있다.  &nbsp;  저자는 신중한 진화 과정에서 과학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밝힌 적이 없다고 말한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과학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정의해 왔다. 과학은 우리가 사고를 조직하고 세상을 경험하는 데 사용하는 개념과 도구를 끊임없이 발전시켜 가는 변증법적 과정이다.   &nbsp;  기초과학의 급진적 도약은 반증된 이론을 버리고 다른 이론을 찾아 나서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혼란 속에서 이미 얻어진 과학적 성과를 신뢰하면서도 방법론적 개념적 틀을 수정하고 축적된 지식이 제기한 수수께끼의 해답이 되는 새로운 종합을 구축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종합은 개념의 변화를 감수한 끝에 얻어진 것이다.(251, 252 페이지) 결국 과학은 기존의 탑을 무너뜨리고 새로 쌓는 것이 아니라 기존 탑의 설계 오류(개념)를 고쳐 더 높고 견고한 탑으로 확장하는 개념적 재구성의 역사라는 것이 저자의 통찰이다.   &nbsp;  개념은 모호한 실체다. 개념의 사용은 항상 모호하고 가변적이다. 물리학에서 가장 풍부한 개념들은 끊임없이 재정의되어 왔음에도 여전히 모호하게 느껴진다. 엔트로피에 관해서는 새로운 정의가 꾸준히 등장하지만 오늘날까지 에너지에 관한 개념이 물리학에서 차지하는 수많은 측면을 모두 아우르는 정의는 없는 것 같다. 개념과 언어의 모호함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다. 모호함에서 또 다른 모호함으로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언어는 적응하고 폭증하고 차별화하고 진화하는 무한한 능력을 지닌다. 바로 이러한 특성 덕분에 오늘은 더욱 미묘한 것들을 표현할 수 있고 그 무한한 과정이 풍요로운 문화의 바탕을 제공하는 것이다.   &nbsp;  우리는 유추를 통해 개념을 구축한다. 유추란 개념의 한 측면을 가져와 다른 맥락에서 재사용하고 그 의미 중 어떤 것은 유지하고 다른 것은 버림으로써 새로운 조합이 참신하고 효과적인 의미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것이다. 입자 물리학에서의 입자, 시공간의 곡률 등이 모두 은유라고 주장하는 저자는 너무 많은 것을 뒤에 남겨두면 앞으로 나아갈 도구가 부족해지고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면 이해에 이르는 길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한다.(259 페이지) 이 역시 훌륭한 은유다. 너무 많은 것을 남겨둔다는 것은 과거의 지식을 버린다는 것이고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진다는 것은 과거의 지식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nbsp;  저자는 과거의 지식을 무조건적인 진리로 숭배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허구라며 완전히 무시하지도 말며 새로운 이론을 구축하기 위한 유용한 은유이자 도구로써 영리하게 쥐고 나아가야 한다는 중용의 태도를 강조한 것이다. 저자는 특수 상대성이론을 예로 든다. 이 이론은 그냥 보기에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갈릴레오의 상대성 원리와 맥스웰 방정식, 두 가지 모두에 관한 아인슈타인의 확신에서 탄생했다. 오늘날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는 포퍼와 쿤의 이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아인슈타인은 맥스웰 방정식을 수정하는데 몰두하거나 고속 체계에서의 속도 상대성 이론을 포기했을 것이다.   &nbsp;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두 이론을 모두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갈릴레오의 생각과 맥스웰 방정식 사이에서 얼핏 모순처럼 보이는 점을 다른 방식으로 해결했다. 바로 개념적 틀 즉 동시성의 의미를 바꾸는 것이었다. 일반 상대성 이론 역시 같은 전략의 선물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특수 상대성이론 관련 영역에서의 뉴턴 중력, 그리고 뉴턴 힘의 동시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형으로서의 맥스웰 이론에 관한 확실을 바탕으로 한다.   &nbsp;  저자는 우리는 이 낯선 세상 속에서 조금밖에 알지 못하는 채로 불안하고 조심스럽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간다고 말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36/75/cover150/k38213188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367577</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기독교 책은 잘 안 읽히고 불교 책은 잘 읽히는 이유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549506</link><pubDate>Thu, 01 Oct 2026 21: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549506</guid><description><![CDATA[기독교는 근대 개발 시대에 중요한 통찰력을 주었고, 불교는 문명의 위기와 맞물려 사람들에게 큰 호소력을 갖는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기독교와 불교는 지향점과 방법론이 다르겠지만 종교적 깊이, 인문학적 수준에서 차이가 난다는 말씀입니다. 오래 전에 [불교와 양자역학], [양자역학과 불교] 등의 책을 인상적으로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이때만 해도 양자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책은 불교만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최근 존 폴킹혼, 러셀 스태나드 등을 통해서도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논의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nbsp;  영국의 성공회 신자이자 물리학자인 러셀 스태나드는 양자역학의 '빛과 전자의 파동-입자 이중성'을 기독교의 '예수의 신성·인성 이중성(기독론)' 및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비유로 사용한 바 있지요. 물론 그럼에도 현대의 많은 물리학자들과 종교학자들은 불교가 양자역학과 훨씬 더 근본적인 구조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린다고 평가하는 반면, 기독교는 양자역학을 통해 교리의 모순을 방증하거나 비유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nbsp;  물론 양자역학, 그리고 그 물리학으로 종교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이 관건은 아니겠지요. 덧붙여 잘 모르지만 불교 성직자들은 이상한 정치적 언행을 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기독교는 그런 경우가 많은 것도 기독교 책이 잘 선택되지 않고, 불교 책이 잘 선택되는 한 요인이겠지요. 저도 기독교인인데 기독교 설교는 수천년 전에 쓰인 경전을 현대적 맥락하에서 어떻게 살려서 가르치고 갈 길을 제시할지에 대해 별 관심도 없고 능력도 없는 것 같습니다.   &nbsp;  약간 죄송한 말씀이지만 모 교회 목사님께서 오래 전에 쓰신 모 기독교 전문 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에서 현상을 분석하고 전개하는 것에는 예리한 구성력을 보이시는 등 충분한 지면을 할애하셨지만 결론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어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는 참 소략한 말씀이었습니다. 큰 상찬을 받은 논문인데도 참 허무하게까지 느껴지는 결론이었습니다. 어쩌면 기독교가 처한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nbsp;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하면 다 된다는 상황이라면 답은 명확하고, 할 바는 별로 없어 그것을 책으로 낼 여지도 없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최근에 안 바이지만 질그릇 이론이 있더라고요. 볼품없고 깨지기 쉬운 그릇이라도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이 친히 빚으시고 그 손에 붙잡아 쓰시면 위대한 역사가 일어난다는 의미를 가진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nbsp;  특정 정치인을 그런 그릇으로 보는 사람들에게서 그의 행동이 성경적이어서 지지하고 그를 하나님이 쓰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지향성이 같아 그를 하나님이 흠이 있어도 쓰신다고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편향이 보인다고 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볼품없고 깨지기 쉬운 그릇과 삿되고 무도한 그릇은 구별해야 하지 않겠는지요?    &nbsp;  적당한 구절이 있으면 그것에 현실을 꿰어 맞추는 경향이 기독교인들에게서 자주 보인다고 말하면 지나칠까요? 수전 손탁이 해석에 반대한 것을 생각합니다. 해석하기 어려우면 놓아 두어야 할 텐데 굳이 해석하고 적용하려 드는 것은 무리한 일이지요.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구절을 읊조리면서 현실을 참고 견디고 기도하고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식으로 설익은 결론을 내고 일을 저질러 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인사들이 기독교 책을 읽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느리게 소통하고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다른 과학이 가능함을 말하는 책 - [다른 과학은 가능하다, '느린 과학' 선언 - 상호의존의 관계를 다시 엮는 과학으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544233</link><pubDate>Tue, 29 Sep 2026 21: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5442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039557&TPaperId=175442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88/95/coveroff/k74203955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039557&TPaperId=175442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다른 과학은 가능하다, '느린 과학' 선언 - 상호의존의 관계를 다시 엮는 과학으로</a><br/>이자벨 스탱게르스 지음, 장하원.김연화 옮김 / 에디토리얼 / 2025년 06월<br/></td></tr></table><br/>과학철학과 교수 이자벨 스탱게르스의 [다른 과학은 가능하다]는 느린 과학 선언이란 부제를 가진 책이다. 저자는 복잡계 과학의 선구자이자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과 비평형 열역학을 바탕으로 한 자연의 비가역성과 '혼돈(카오스)으로부터 어떻게 새로운 질서가 발생하는가'를 공동 연구한 인물이다. 저자는 몇 가지 개념을 제시한다. 1) 다른 과학과 느린 과학(Slow Science); 자본과 산업의 논리에 포획되어 맹목적으로 가속하는 현대 과학(빠른 과학)에 대한 대안적 과학이다. 2) 관심의 문제; 브뤼노 라투르가 제기한 것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객관적이고 고정된 ‘사실(Matters of Fact)’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 얽힌 수많은 행위자들의 연결망, 취약성,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돌봄과 염려의 대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의미다. 저자는 관심의 문제에서 핵심은 단 하나의 정답이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주저하고 집중하면서 세심하게 조사하는 과정이 불가피하게끔 종종 어려운 선택지를 더하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3) 대중지성; 대중을 일방적인 지식 수용자로 보지 않고 과학과 사회적 의제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에 전문가와 함께 대안을 만들어가는 주체적 역량을 의미한다.  &nbsp;  저자는 과학에는 감식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감식가란 맹신과 맹목적 반대를 넘어선 능동적 시민, 산업 자본에 포섭된 과학에 제동을 거는 사람, 사실을 관심사로 전환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정리하면 감식가란 과학이 실험실에서 규명한 닫힌 사실을 사회적 논쟁과 협의가 필요한 공동의 관심사로 끌어내오는 이들이다. 저자는 대중은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는 존재들로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개입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역량과 수단이라는 말을 한다. 저자는 프랑스의 물리학자이자 과학 비평가인 장 마르크 레비 르블롱이 한 ‘과학에는 아마추어가 없다’는 말을 인용한다. 여기서 아마추어는 실력이나 수준이 낮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추어란 원래 라틴어 'amator(사랑하는 사람)'에서 유래한 말로 보상이나 직업에 얽매이지 않고 순수한 열정과 즐거움으로 그 일을 사랑하는 사람을 뜻한다.  &nbsp;  레비 르블롱은 예술이나 스포츠와 달리 과학에는 왜 아마추어가 없는지 질문한다. 예술의 아마추어는 악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어도 음악을 깊이 사랑하고 연주를 즐기는 아마추어 음악가나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작품을 평하는 아마추어 미술 애호가를 말한다. 반면 과학에서는 실험실 밖의 대중이 과학을 취미로 즐기거나 비평하는 아마추어 애호가가 되기 어렵다. 과학계가 고도의 전문 용어, 거대한 자본, 격리된 장벽을 세워 대중의 접근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에 대중은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수단이 없다고 말한다. 레비 르블롱이 아마추어가 전멸했다는 말로 경종을 울렸다면 저자는 그렇기 때문에 의도적으로라도 과학의 감식가(아마추어 애호가, 비평가)를 길러내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현대 과학에서 학문의 구조와 연구 방식을 기준으로 볼 때 가장 개방적인 과학은 지구·우주과학(지구과학, 천문학), 가장 폐쇄적인 과학은 군사·국방과학, 상업용 응용화학, 신약 개발 분야다.  &nbsp;  지구 우주과학은 '인류 공공의 자산'을 연구하기 때문에 데이터 공유와 국제 협력이 필수적이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이나 허블 망원경의 관측 데이터는 일정 기간(보통 1년)이 지나면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공개된다. 우주는 한 국가나 기업이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 지진, 대기 순환을 연구하려면 전 세계의 관측 자료를 합쳐야 한다. 세계기상기구(WMO)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교환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군사·국방과학, 상업용 응용화학, 신약 개발 분야는 국가의 안보나 기업의 생존(특허 및 독점 수익)과 직결되어 있어 극도의 보안을 유지한다. 군사·국방과학 분야는 국가 기밀로 분류되어 연구 결과가 논문으로 발표되지 않거나, 핵심 기술은 철저히 은폐된다. 학문적 교류 자체가 법으로 금지되는 경우가 많다. 응용화학 및 제약·바이오 분야는 수조 원의 가치를 지닌 특허권이 걸려 있다. 논문이 나오기 전까지는 실험실 내부의 레시피를 절대 공개하지 않으며 학회에서도 핵심 노하우는 숨긴 채 발표하는 경향이 강하다.  &nbsp;  저자는 스티븐 제이 골드가 훌륭하게 보여주었듯이 진화 과학의 강건한 성격을 부여하는 것은 증거가 아니라 다윈주의적 관점에서 이해가 가능해지고 흥미로워지는 사례들의 숫자가 다양성이라는 말을 한다. 이는 진화 과학이 단순히 '실험실에서 증거를 하나씩 쌓아 올리는 과학'이라기보다 다윈주의라는 렌즈를 끼고 세상을 보았을 때 얼마나 수많은 생명의 다양성과 현상들이 비로소 이해되고 흥미로워지는가에 의해 그 가치가 증명된다는 뜻이다. (생물의 역사적 우연성과 다양성을 우아한 글로 풀어내며 박테리아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명체들이 다윈주의적 관점에서 어떻게 제각각의 의미를 얻고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이 되는지를 평생에 걸쳐 보여준 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과학이 단순히 딱딱한 진리의 집합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흥미로운 방식을 제공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이자벨 스탱게르스의 관점은 설명력이 곧 과학의 강한 힘임을 말한다.  &nbsp;  저자가 굴드의 말을 인용하는 것은 현대 과학을 지배하는 ‘생산성 중심의 빠른 과학(Fast Science)’에 맞설 강력한 대안으로 ‘느린 과학(Slow Science)’의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증거의 양’보다 ‘설명의 풍요로움’이 가진 힘, 동료 시민을 소외시키지 않는 과학, 통제와 예측에서 ‘관계와 역사’의 과학으로란 말로 요약할 수 있는 바이다. 저자는 건전한 과학이라는 말이 경성과학이란 용어보다 훨씬 더 무례한 용어라 주장한다. 경성과학은 물리학, 화학, 천문학, 생물학 등을 지칭한다. 연성과학은 인문, 사회과학을 지칭한다. 경성과학은 데이터 시각화를 위한 그래프의 사용 빈도가 매우 높고 학계 내의 이론적 합의 수준이 연성과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견고하고 조밀한 편이다. 연성과학이란 말은 다소 서열화된 느낌을 주지만 그것이 학문이 아니라거나 가짜라는 식의 전면적인 부정을 뜻하진 않는 데 건전한 과학의 반대어들은 불건전한, 의심스러운, 가짜의, 사기성 있는 등의 말로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고 척결해야 할 가짜 과학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nbsp;  저자가 건전한 과학이란 말을 극도로 경계하는 이유는 미국 등 주류 정치·경제 권력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연구를 배제할 때 불건전한, 의심스러운, 가짜의, 사기성 있는 등의 말을 쓰기 때문이다. 건전한 과학이라는 용어는 주로 담배, 화학, 기후 변화 등과 관련된 거대 기업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규제나 연구 결과를 방해하기 위해 무기로 사용해 온 말로 겉으로는 객관적이고 확실한 과학을 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업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동료 과학자들의 연구나 시민들의 우려를 불건전하고 비과학적인 것으로 몰아세워 입을 막는 기능을 수행한다. 저자는 경성과학이란 말이 학문 간의 방법론적 차이(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 등)를 나누는 오만한 표현에 그친다면 건전한 과학이란 말은 무엇이 올바른 과학인지를 기득권이 독점하여 판정하려는 더 교활하고 정치적인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본다.  &nbsp;  저자는 프랑스의 전통적인 역사적 인식론학파 특히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핵심적인 관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다. 저자는 바슐라르가 정립한 과학적 합리주의가 현대 과학을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엘리트주의적으로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바슐라르 과학철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일상적인 경험이나 상식(의견)과 과학적 사유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가 있다는 인식론적 단절(Rupture épistémologique)이다. 바슐라르는 의견(Opinion)은 원칙적으로 항상 틀리다며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대중의 상식과 주관적 상상력을 정화해야 한다고 보았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이 과학자와 비과학자(대중, 시민) 사이에 정당하지 못한 이분법적 장벽을 세웠다고 비판한다. 과학을 대중의 무지나 왜곡된 의견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바슐라르 식의 논리가 결국 과학을 사회적 통제나 민주적 토론으로부터 격리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바슐라르가 상정한 과학 모델을 빠른 과학(Fast science)의 전형으로 본다. 바슐라르가 말하는 과학은 실험실이라는 통제된 환경 속에서 고유한 질문을 던지고, 그 외의 다른 복잡한 세계의 맥락(생태적, 사회적 영향)은 과감히 무시(Ignore)하면서 전진하는 과학이다.  &nbsp;  저자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와 고립을 강조하는 과학이 아니라 과학적 결과가 사회와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주변 주체들과 함께 고민하는 느린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바슐라르적 전통은 젊은 연구자들에게 사회의 복잡한 문제나 인문학적 상상력에 관심을 가지면 과학자로서 끝장난다는 식의 강박을 주입해 연구자들의 상상력을 거세했다고 말한다. 바슐라르는 과학이 스스로 오류를 교정하며 진보하는 자율적인 합리성의 영역으로 보았다. 저자는 과학은 결코 진공 상태나 순수한 이성의 영역에서 작동하지 않는다고 본다. 현대 과학은 철저히 자본(산업적 이익) 및 권력과 결탁해 있으며 바슐라르식의 순수한 과학이라는 환상은 오히려 과학이 외부 세력(거대 기업 등)에 의해 포섭되고 도구화되는 현실을 은폐하는 가림막이 될 뿐이라고 꼬집는다.  &nbsp;  저자는 로버트 보일의 순결한 연구자란 개념도 비판한다. 사적 이해관계의 배제, 투명한 관찰자, 의견과 사실의 분리 등을 주지(主旨)로 하는 보일의 순결한 연구자는 과학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발명한 근대적 이상향이지만 오늘날 지구적 위기 속에서는 과학이 사회 및 대중과 단절되는 부작용을 낳았기 때문에 지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과학적 사실은 완전히 순수한 상태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실험실이라는 인위적 공간과 이를 인정해주는 특정 전문가 공동체의 합의를 통해 생산된다고 본다. 저자는 과학을 정치나 사회와 무관한 순결한 영역으로 두는 탓에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환경 파괴, 기술적 부작용 등의 결과물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오직 연구의 진보만을 외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nbsp;  저자는 지식경제가 초래한 피해를 계기로 병적 공포를 지닌 몽유병자들이 마침내 눈을 뜰 것이라 너무 자신만만하게 기다리지는 말자고 말한다. 여기서 몽유병자들이란 자본주의와 지식경제가 만들어낸 시스템 속에서 위기를 인지하면서도 습관적으로 기존의 삶을 반복하는 현대인들을 뜻한다. 몽유병자라 불리는 이유는 기후변화나 지식경제의 폐해(불평등, 경쟁 심화 등)를 머리로는 알지만 시스템이 정해놓은 궤도(생산과 소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관성대로 살아가는 상태를 보이기 때문(무감각한 순응)이고, 위기가 닥쳤을 때 적극적으로 저항하거나 대안을 찾기보다 무력감과 병적 공포에 질려 눈을 감아버리기 때문(마비된 공포)이고, 잠을 자며 걷는 사람처럼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파괴적 결과를 깊이 성찰하지 않고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주체성의 상실)이다.  &nbsp;  저자는 위기가 심각해진다고 해서 이 몽유병자들이 저절로 잠에서 깨어나 행동할 것이라 낙관해서는 안 되며 이들을 흔들어 깨울 새로운 정치적·행동적 자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저자는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사고할 때 쉬운 희망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3기니] 등에서 전쟁과 가부장제, 남성 중심적 엘리트주의가 어떻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날카롭게 직시한 인물로 저자는 울프처럼 우리를 둘러싼 파국의 원인을 적나라하게 응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쉬운 희망이 불가능하다는 선언은 절망이나 냉소주의로의 도피를 뜻하지 않고 오히려 값싼 위로를 버리고 우리가 처한 이 엉망진창인 현실 속에 발을 딛고 버텨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해결책이 즉각 보이지 않더라도 비극적 상황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주체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사유를 시작할 때 비로소 진정으로 유효한 대안과 단단한 연대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철학이다.  &nbsp;  저자는 브뤼노 라투르가 연구실(실험실)에서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했음을 지적한다. 과학적 사실이 인간 과학자 개인의 천재성이나 외로운 고군분투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저자는 질 들뢰즈의 철학을 자신의 학문적 여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자양분으로 평가하며 깊은 경의를 표한다. 저자에게 들뢰즈는 자신을 철학의 세계로 이끈 해방자이자 과학을 단순한 도구가 아닌 마술적이고 생태적인 실천으로 사유할 수 있게 해 준 개념적 나침반이었다. 들뢰즈 역시 생전에 강연에서 저자의 출석을 반가워하며 그녀의 사유를 존중하는 등 두 학자는 깊은 지적 교감을 나누었다. 저자는 들뢰즈가 보인 세 가지 점에 깊이 공감했다. 1. 지식의 도그마(독단)를 깨뜨리는 유머와 해방감, 2. 고정된 본질이 아닌 생성과 배치의 존재론, 3. 정답을 내리는 대신 문제를 발명하는 철학 등이다.  &nbsp;  저자는 근대 과학이 추구해 온 동일성의 과학(하나의 절대적 진리, 보편적 법칙, 환원주의)에 맞서 세계의 복잡성과 이질성을 인정하는 다원성의 과학을 제시한 대표적인 현대 과학철학자다. 저자는 자신이 실험적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이 극도로 엄격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경성 실험 과학이 이미 누리고 있는 특권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자신의 목표는 실험적 성공을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고 그것을 재창조하며 다른 유형의 조건들과 연결함으로써 다른 종류의 성공의 여지를 마련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조건들은 반드시 연성일 필요는 없다. 또한 실험적 조건 만큼 엄격할 수 있지만 단지 상당히 다른 것을 요구할 뿐이라 말한다. 경성과학의 실험실만 엄격한 것이 아니라 대상과 맥락이 바뀌면 엄격함의 기준도 바뀌어야 하며, 그 다른 기준을 통과한 지식 역시 동등한 권위를 가진다는 말로 지식의 다원주의를 역설한 것이다.  &nbsp;  저자의 말들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과학을 느리게 만드는 것 자체가 과학들 사이의 대비를 어떻게 창조할지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아니지만 그러한 해답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말이다. 첫째는 이는 세계를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는 누적적 지식 모델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동료들을 연결할 수 있는 평가 실천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라 말한다. 저자는 느림에 대한 권리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느림은 속도와 마찬가지로 연구자들을 유연성과 경쟁력의 명령이 결국 자신들을 파괴로 몰아넣을 것임을 알고 있는 모든 이들과 연결시킨다. 저자는 우리는 근대과학의 기묘한 모험이 어떤 것이었는지 또는 어떤 것이 될 수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이미 습관적으로 해오던 일을 더 잘 사는 것만으로는 배울 수 없음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nbsp;  속도를 늦춘다는 것은 다시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며 다시 사물들과 친숙해지는 것이고 상호의존의 관계를 다시 엮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사고하고 상상하며 그 과정에서 타자들과 포획의 관계가 아닌 관계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우리 사이에서 그리고 타자와 함께 병든 자들에게 효과적인 종류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타자와 함께, 타자로부터, 타자 덕분에 배우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살만한 삶이 무엇을 필요로 하며 가꾸어야 할 가치가 있는 지식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다. 저자는 패러다임은 공약불가능하다는 토머스 쿤의 주장에 아연실색한 과학철학자들이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패러다임은 공약불가능(Incommensurable)하다는 주장은 서로 다른 두 패러다임이 공통의 척도로 비교될 수 없다는 의미다.  &nbsp;  과학적 패러다임이 바뀔 때는 더 우수한 패러다임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눈' 자체가 완전히 바뀌는 혁명적 전환이라는 뜻이다. 저자의 관점에서 토머스 쿤의 공약불가능한 패러다임은 과학이 상대주의나 비합리주의에 빠졌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실천의 독특하고 까다로운 구체성(situatedness)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 쿤은 과학이 계단을 오르듯 지식이 차곡차곡 쌓이며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이 통째로 바뀌는 혁명(단절)을 통해 변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실제 과학사에서는 옛 패러다임의 핵심 유산이 버려지지 않고 새 패러다임 속으로 흡수되어 발전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새 패러다임)이 등장한 이후에도 뉴턴의 고전역학(옛 패러다임)은 폐기되지 않고, 빛보다 느린 거시 세계라는 특수한 조건 하에서 여전히 유효한 진리로 누적되어 사용된다. 쿤은 주로 천문학(코페르니쿠스), 물리학(뉴턴, 아인슈타인), 화학(라부아지에)의 역사만을 바탕으로 패러다임론을 정립했다.  &nbsp;  다윈의 진화론 이후 생물학은 패러다임의 붕괴와 혁명을 겪었다기보다는 유전학, 분자생물학 등과 결합하며 외연을 끊임없이 확장하고 누적해 온 역사에 가깝다. 쿤의 이론은 복잡하고 다원적인 타 과학 분야의 발전 패턴을 해명하는 데 한계가 크다. 쿤의 패러다임론은 과학의 발전이 점진적으로 누적되는 과정이 아니라 기존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위기를 맞이하고 새로운 틀로 급격히 전환되는 과학 혁명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본다. 이 이론은 지질학의 역사, 특히 판구조론(Plate Tectonics)의 정립 과정을 설명하는 데 가장 완벽하게 들어맞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nbsp;  저자는 사회구성주의를 이야기한다. 사회구성주의는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 지식, 진리가 객관적으로 고정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사회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소통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구성된) 결과물이라고 보는 인식론적 흐름이다. 저자의 관점에서 구성주의는 사실(Fact)은 인간에 의해 구성(Constructed)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가짜라거나 허구인 것은 아니라는 의미를 지닌다. 물리학자들은 전통적으로 구성주의(특히 사회구성주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거나 냉소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물리학자들은 과학적 사실이 정치나 문화적 합의로 결정된다는 사회구성주의에는 강력한 적대감을 보이지만 과학이 자연을 관측하기 위해 이론적 모형과 실험 정교함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는 실천적 의미의 구성에 대해서는 현대 물리학의 발전에 따라 점차 세련된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다. 사회적 구성주의는 현대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했지만 치명적인 허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자벨 스탱게르스, 브루노 라투르 등은 인간들끼리만 말장난하는 사회가 아니라 인간의 언어(사회)와 비인간 존재(자연, 물질, 생태계)가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공존하는 생태적 민주주의(코스모폴리틱스)의 실현을 소망한다.  &nbsp;  빠른 과학은 단순히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속도를 늦추지 말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명령이며 그렇지 않으면 ...과 같은 식의 경고를 의미한다. 저자는 되찾기(Reclaiming)를 말한다. 자본주의의 주술과 빠른 과학 체제에 포획되어 상실한 과학 본연의 가치와 사회적·윤리적 책무를 다시 회복하는 실천적 과정을 의미한다. 저자는 되찾기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병들었기에 치유가 필요함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느린 과학은 이미 완성된 해답을 제공하지 않으며 약이 아니다. 그것은 회복으로 가는 여러 경로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운동의 이름이다. 저자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1000개의 고원]을 인용하자면 자신은 되찾기 작업이 우리에게 모범 사회가 아니라 전달자들로 이루어진 이동하는 민족에 대해 말해준다고 말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가 가이아와 화합할 수 있을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 것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말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88/95/cover150/k74203955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5889562</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난해하고 기묘한 현대의 시간론 - [한 권으로 충분한 시간론 - 시간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거와 미래로의 여행]</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535571</link><pubDate>Thu, 24 Sep 2026 23: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53557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373917&TPaperId=1753557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62/22/coveroff/899137391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373917&TPaperId=1753557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 권으로 충분한 시간론 - 시간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거와 미래로의 여행</a><br/>다케우치 가오루 지음, 박정용 옮김 / 전나무숲 / 2011년 05월<br/></td></tr></table><br/><br>물리학자 다케우치 가오루의 시간론이다. 시간을 측정하는 모든 방법은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운동을 이용하고 있다. 마야의 달력은 특이했다. 1이 아닌 0을 시작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가의 관점으로 계산했기 때문이다. 가오루의 시간론은 저자의 전공인 물리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지 않고 문명의 시간론으로부터 시작된다. 물론 문명의 시간도 물리(학)과 관련이 있다. 철학자 김규영의 [시간론]을 보면 첫 순서에 베르그송의 시간론이 등장한다. 김규영의 책을 이야기한 것은 철학자, 과학자의 책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사람이 베르그송임을 말하기 위해서다. 지속(持續)을 진정한 시간으로 본 인물이 베르그송이다. 지속이란 칼로 자르듯 쪼갤 수 없는 것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하나의 흐름처럼 연속적으로 얽혀 있는 질적인 흐름을 의미한다.   &nbsp;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시간은 본질적으로 비연속적이라는 명제는 소개가 덜한 느낌이다. 베르그송의 연속적인 순수지속(durée pure) 개념을 정면으로 비판한 시간론이다. 바슐라르의 시간론과 양자역학의 양자(量子)는 관계가 크다. 양자역학은 에너지는 연속적으로 흐르지 않고 불연속적인 최소 단위인 양자(Quantum) 형태로만 존재하고 전이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과학자 나름으로 시간에 대해 정의함을 알 수 있다. 다케우치 가오루 역시 자신의 시간론에서 베르그송을 예로 들었다. 물론 칸트도 그렇다. 저자에 의하면 생명의 기본인 의식이 순수지속이다.(68 페이지) 그것은 물리학적 시간과 구별되는 심리학적 시간이다.   &nbsp;  베르그송은 물리학적 시간은 항상 균질하고 측정 가능하며 거꾸로 흐를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를 수 있다는 의미는 거꾸로 시계 태엽을 돌려도 바로 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의미다. 시계 바늘이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기어와 태엽의 물리적 법칙은 똑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주의 모든 원자 운동을 순간적으로 멈추고 시간을 거꾸로 돌려도 물리학 법칙 안에서는 아무런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베르그송은 이를 두고 물리학적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가 이미 공간처럼 펼쳐져 있는 상태와 다름없다고 보았다. 즉, 이미 정해진 길을 앞으로 가느냐 뒤로 가느냐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nbsp;  본문에 시간과 공간의 불가분 관계가 언급되어 있다. 시간은 공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33 페이지) 가장 짧은 시간과 가장 긴 시간이란 제목의 글이 있다. 이는 불교적 의미가 깃든 시간론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공간의 도움 없이는 시간의 존재조차 알 수 없다.(41 페이지) 오직 공간의 변화를 통해서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칸트는 공간과 시간은 인간이 가진 감성의 형식적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65 페이지) 공간과 시간은 세계나 사물 자체에 원래부터 존재하는 독립적인 실재가 아니라 인간이 사물을 인식할 때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마음의 렌즈(인식의 틀)이자 감각을 받아들이는 주관적인 형식이라는 의미다.   &nbsp;  다케우치 가오루는 외부 세계에서 들어온 정보를 시간과 공간이라는 뇌속 필터로 걸러 해석한다는 것이라 설명한다. 뉴턴의 절대 시간과 아인슈타인의 상대 시간의 대비도 흥미롭다.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신은 시간 그 자체도, 공간 그 자체도 아니다. 하지만 지속(持續)하고 편재(遍在)한다. 영겁으로 지속하고 모든 곳에 존재한다. 신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구성한다.”고 말했다. 저자는 뉴턴이 내세운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이란 개념은 전지전능하고 언제 어디에나 있는 신의 존재를 바탕으로 한다고 설명한다. 뉴턴의 절대시간이란 우주의 그 어떤 외적 존재나 물질, 관찰자의 운동 상태와도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스스로 균일하게 흐르는 객관적인 시간을 말한다.   &nbsp;  뉴턴의 절대공간이란 외부의 그 어떤 것과도 무관하게 본질적으로 항상 동일하고 부동(不動)으로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를 의미한다.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적 상대 시간은 심리학의 주관적 시간과 비슷한 듯 다르다. 차이는 시간의 변화가 관측자의 물리적 운동 환경(속도·중력)에 의해 결정되는 실제 시공간의 변형인가, 아니면 인간의 '뇌와 심리 상태'에 따른 감각적 착각인가에 있다. 뉴턴이 말한 신이 만든 유일한 시간이 아인슈타인에 이르면 인간이 가진 여러 가지 시간으로 바뀌는 것이다.(98 페이지)   &nbsp;  아인슈타인 이후 현대 물리학과 철학에서 다루는 시간은 단순히 외부 세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대상도 아니고 인간의 마음속에만 있는 주관적 환상도 아닌 주관과 객관의 중간적 존재(또는 상호작용의 결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상호주관성이라 한다. 시간과 공간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관점에서 물체의 운동을 생각하면 물체가 공간적으로는 정지해 있더라도 시간 속을 움직이고 있는 셈이 된다. 따라서 운동량의 시간 성분이 있더라도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다. 오히려 없으면 곤란하다.   &nbsp;  아인슈타인 이후 에너지란 제1의 운동량 성분 즉 운동량의 시간 성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시간과 공간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우리 자신에 대해서 움직이는 물체는 진행 방향으로 줄어들고 물체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흥미로운 점은 친구가 빛에 가까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내 앞을 지나간다고 가정할 경우 우주선에 탄 친구가 볼 때는 자기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지구에 있는 내가 엄청난 속도로 멀어지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친구가 나를 바라보면 반대로 나의 시간이 느리게 가고 나의 몸이 납작하게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상대성이론에서 서로가 똑같이 느낀다고 해서 시간 지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nbsp;  전자는 왜 지그재그 운동을 할까? 초미시 수준에서 공간에 거품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전자 외에 광자(光子)도 광속운동을 한다. 그런데 전자는 광자와는 달리 광속으로 얼마 움직이지도 못하고 경로를 꺾어 방향을 바꾼다. 엔트로피는 무질서한 정도를 나타낸다. 저자는 엔트로피는 정보의 반대 개념이라고 말한다.(114 페이지) 시간은 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를까? 그 반대일 수는 없을까? 리차드 파인만, 로저 펜로즈, 스티븐 호킹 같은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초기 조건이 우연히도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엔트로피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nbsp;  400캘빈의 방 1과 300캘빈의 방 2가 있을 경우 1200J이 방 1에서 방 2로 빠져나가면 방 1의 엔트로피(온도당 에너지량)는 3(1200/400) 감소한다. 열이 빠져나간다는 것은 분자들의 무질서한 운동 에너지(열에너지)가 줄어든다는 뜻이기에 엔트로피는 감소한다.(-3) 방 2의 엔트로피는 4(1200/ 300) 늘어난다.(+4) 따라서 1(–3+4) 만큼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우주에도 자연적으로 열이 흐르기만 해도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두 방의 온도가 같으면 엔트로피는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 이를 열적 죽음이라 한다. 미묘한 차이를 무시한다면 열에너지라 하도 분자 하나에 대해서는 운동에너지와 다를 바가 없다.   &nbsp;  양전자는 시간을 역행하는 전자다. 세계에 단 하나의 전자만이 있다는 가설도 있다. 물리학자 존 휠러(John Wheeler)가 그의 제자 리처드 파인만에게 전화로 제안한 내용이다.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시간도 흐릿해진다. 가상입자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에너지 보존 법칙을 일시적으로 위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시적인 관점과 계 전체로 보면 결국 에너지 보존 법칙을 철저히 따른다.   &nbsp;  유한온도장 이론이 제공하는 온도의 수학적 고리 구조와 루프 양자 중력이 말하는 공간의 물리적 고리 구조는 초기 우주의 초고온·초고밀도 환경에서 중력이 어떻게 양자역학적으로 작동했는가를 풀기 위해 긴밀하게 결합되어 연구되고 있다. 물리학의 몇몇 현대적 관점과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간보다 속도(특히 광속)가 더 근본적인 물리량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가속도는 중력과 등가다. 이는 밀폐된 공간 안에서는 내가 겪는 힘이 중력 때문인지 우주선이 가속하고 있기 때문인지 절대 구별할 수 없다는 뜻이다.   &nbsp;  어떻든 우주의 근원에 있어서 중력이 기본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가속도가 속도보다도 기본적인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논의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대한 고찰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시간의 본질에 대하여 깊이 파고 들어가다 보면 점차 모든 문제가 숨김없이 드러난다. 우리가 시간에 대하여 고찰할 때 어떤 물리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시간인지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논의 자체가 의미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물리 이론으로 시간의 역할을 논할 수는 없으므로 저자는 자신의 책에서는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단숨에 양자 중력 이론으로 건너뛰어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논의하기로 한다고 말한다.(177 페이지)   &nbsp;  루프 양자 중력 이론(Loop Quantum Gravity; LQG)은 현대 물리학의 주요 양자 중력 이론 중 하나로 '스핀 네트워크 중력 이론'은 별개의 이론이 아니라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의 핵심 수학적 도구이자 공간을 묘사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사물이 스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핀으로 사물이 출현한다. 미시적인 양자의 특성인 스핀은 중력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단지 시공간이 구부러져 있는 상태이기에 스핀은 시공간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철학자 이정우 교수는 현대 과학을 전제하지 않는 시간론은 수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시간은 환영(幻影)이란 말이 있다. 시간을 완전히 해명한 사람은 없다. [한 권으로 충분한 시간론]은 2006년(원서)에 나온 책이고 번역 출판은 2011년에 이루어졌다. 지금 읽어도 참신하게 보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62/22/cover150/899137391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622239</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가를 논한 물리 이야기 - [시간은 되돌릴 수 있을까 - 스티븐 호킹의 마지막 제자에게 듣는 교양 물리학 수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533421</link><pubDate>Wed, 23 Sep 2026 19: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53342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939414&TPaperId=1753342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648/89/coveroff/k07293941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939414&TPaperId=1753342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시간은 되돌릴 수 있을까 - 스티븐 호킹의 마지막 제자에게 듣는 교양 물리학 수업</a><br/>다카미즈 유이치 지음, 김정환 옮김, 김범준 감수 / 북라이프 / 2024년 03월<br/></td></tr></table><br/>우주론을 전공한 저자 다카미즈 유이치(高水裕一; 1980-)는 우주에서는 상식을 뛰어넘는 일, 일상을 초월하는 일이 당연한 듯 일어나기도 하며 인류가 지금 그리고 있는 꿈은 전부 우주 어딘가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다고 말한다.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라는 다카미즈 유이치의 시간론은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론과 대조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서는 운동이 발생하지 않으면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모든 물체가 진공상태에서 계속 정지해 있다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 되지만 물질이 전부 원자와 소립자로 구성되어 있어 끊임없이 여러 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에 완전히 정지한 상태의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nbsp;  우주 규모로 생각하는 시간의 화살을 우주적 시간의 화살이라고 부른다. 시간의 화살이란 시간 흐름의 불가역성을 전제한 말이다. 시간은 1차원이다. 그런데 시간이 만약 2차원이었다면 우리는 타임머신을 쉽게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자연계는 온갖 것을 치우침 없이 균형 있게 배분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 균형 배분의 한 양상이 입자와 반입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아니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를 대칭성이라고 부른다. 물론 입자와 반입자에는 미세한 수의 차이가 있었다. 이 대칭성 개념은 시간의 화살이라는 성질과 정반대다.   &nbsp;  공간은 3차원이지만 파트너인 시간은 1차원이라는 사실은 대칭성의 관점에서는 매우 위협감이 느껴진다. 저자는 물리학이라는 학문의 목적은 자연이라는 신이 만들어낸 이 세계의 규칙을 도려내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모든 방정식은 시간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전제로 삼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난해하게 보이는 이 말은 복잡해 보이는 방정식도 결국 다음 시각에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43 페이지)   &nbsp;  시간에 관한 정보를 표시한 것의 대표가 미분 방정식이다. 뉴턴의 방정식에도 시간의 화살이란 개념은 없다. 저자는 방정식은 일단 탄생하면 발견자의 의도조차 초월해 드넓은 우주 어딘가에서 실현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물리학에서 시간의 불가역성을 믿는 이유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때문이다. 우주에서 엔트로피 법칙의 예외적 존재가 생물인 우리다. 우리가 태어났다는 것은 우리의 신체를 일정 수준의 질서 잡힌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행위를 항상성 유지라고 한다.   &nbsp;  생물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대항해 독립을 쟁취한 것은 아니다. 생물은 끊임없이 외부에서 에너지를 받아들여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저자는 시간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인슈타인의 두 상대성이론을 논한다. 특수 상대성이론의 주인공이 빛이라면 일반 상대성이론의 주인공은 중력이다.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중력은 시공간의 일그러짐에서 만들어진다고 예언했다. 우주에서 일상적인 것은 광속에 가까운 빠른 속도를 생각하는 특수 상대성 이론의 세계다. 일반 상대성 이론이 옳았음은 2015년에 중력이 시공간을 일그러뜨린 흔적인 중력 파가 검출되고 2019년에 블랙홀이 실제로 촬영됨으로써 완전히 증명되었다.  &nbsp;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관측이 따라잡기까지 100년이 걸린 셈이다.(67 페이지) 특수 상대성이론은 빛이, 일반 상대성 이론은 중력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 줄 알았던 시간을 일그러뜨려 늘어나게도 하고 줄어들게도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충분하다. 시간과 관련된 논리가 ‘원인이 있어 결과가 생긴다’는 의미의 인과율이다. 인과율을 끝까지 밀고가면 결국 결정론에 이른다. 아인슈타인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광속 범위로 한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과거와 현재의 순서를 바꿀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nbsp;  저자는 미래에서 과거를 향해 날아가는 빛이 있는지 묻는다. 저자는 양자역학을 좋아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황당함을 즐길 수 있느냐 아니냐에 열려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저자는 쿼크에 이어 양성자, 중성자를 이야기한다. 양성자 가족과 중성자 가족은 이 세계에서 원소를 만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원소는 매우 보수적이어서 끊임없이 안정을 추구한다. 저자는 우리 몸을 이루는 원소는 별에서 탄생했고, 별이 죽으면서 다종다양해졌다고 말하며 흔히 죽는 것을 하늘의 별이 되었다고 표현하는데 이 말을 별이 듣는다면 '반대야, 그 반대야!'라고 바로잡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고 덧붙인다. "우리가 죽어서 너희들이 생긴 거야!"라고.   &nbsp;  소립자의 입자 파동 이중성이 시간의 본질과 관계 있다.(92 페이지) 파동이 보이는 회절은 터널효과라고 한다. 빠져 나온다기보다 스며 나온다에 가깝다. 원자핵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전자도 위치를 확정할 수 없다. 전자가 궤도 주변에 구름이나 안개처럼 자욱하게 존재한다는 것이 현재 물리학자들이 쓸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이다. 양자역학의 황당한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 확률이고 이에 반대되는 말이 결정론이다. 양자역학에도 방정식이 있다. 물론 이 방정식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필연이 아니라 미래가 일어날 확률을 예언한다.   &nbsp;  양자역학에서는 미래가 한 가지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불확정성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출몰해 우리의 직관을 흔들어놓는다. 소립자가 만들어내는 양자역학의 기괴함은 아인슈타인조차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양자역학의 출현으로 온갖 기성관념이 근본부터 뒤집혔고 시간에 관해서도 지금까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황당한 생각이 등장했다. 양자역학에는 불확정성원리가 있고 시간과 무엇인가가 종종 불확정성 관계에 있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값을 갖는지가 어떤 범위 속에서 요동친다는 것이다.   &nbsp;  그렇다면 만약 시간이 플러스 값과 마이너스 값 사이에서 요동치고 있다면 시간의 화살을 따라서 플러스 방향으로만 나아가던 시간이 우연한 계기로 요동을 쳐 마이너스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100 페이지) 결정론에는 단순하고 질서정연한 아름다움이 있다. 저자는 과거를 통해 결정되는 미래보다 불확정적인 미래가 희망을 품을 수 있어서 더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관계에서 시간의 파트너로서 매우 중요한 에너지가 있다. 시간과 에너지는 서로 얽혀 있는 불가분의 관계다. 시간을 정확히 결정하면 소립자가 가진 에너지 양이 결정되지 않으며 반대로 소립자의 에너지 양을 결정하면 시간이 정확하게 결정되지 않는다.   &nbsp;  저자는 에너지가 불연속적이라면 파트너인 시간도 불연속적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면 훌륭한 물리학자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카를로 로벨리는 에너지의 파트너인 시간도 불연속적이라고 생각한 사람이다. 로벨리는 시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고 자신의 저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다. 관측자가 관측함으로써 대상의 상태가 한 가지로 결정된다는 진영과, 관측을 하더라도 다양한 가능성이 소멸하지 않고 동시에 존재한다는 진영이 대립하고 있다.   &nbsp;  우주는 탄생했을 때 인플레이션이라는 급팽창 현상을 통해 급격히 팽창했다. 팽창한 우주는 완전히 균일하지 않고 아주 조금이지만 얼룩(불균일)이 있었다. 이 얼룩이 우주 구조의 씨앗이 되어 은하와 별을 탄생시켰고 우주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우리가 존재하는 건 그 덕분이다. 고전적인 양자역학의 발생에 따르면 얼룩을 누군가가 관측했다. 갓 태어난 우주에서 누가 관측을 했을까? 신이라는 답 밖에 없지 않을까? 저자는 뇌의 소립자의 불확정성 관계로 인해 우리는 연인 사이일까? 아니면 친구 사이일까?라는 흔들리는 마음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nbsp;  열은 자발적으로 저온에서 고온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카르노 사이클에서 일 에너지가 열 에너지로 변환되는 것은 저온의 물체에서 고온의 물체로 옮기는 것이므로 온도의 자발적인 흐름에 역행하게 된다. 방정식은 과거와 미래를 구별하지 않지만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만은 시간이 흐르는 방향을 결정한다. 과거와 미래가 확정적으로 구별되는 것이다. 저자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공을 이야기한다. 지면에 부딪혀 튀어 오르는 공은 위로 다시 올라갈 수도 있다고 말하며 어떤 정지된 순간의 공만 봐서는 위아래 중 어느 쪽이 과거이고 어느 쪽이 미래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120 페이지)   &nbsp;  온도차가 있는 두 물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열의 이동은 명확히 일방통행하는 흐름이다. 클라우지우스는 엔트로피를 나타내는 기호로 엔트로피와 관계없어 보이는 문자인 S를 사용했는데 이는 사디 카르노의 머리글자다. 카르노는 열이 흐르면서 이끌어낼 수 있는 동력의 양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한 과학자다.(115 페이지) 사람들은 분자, 원자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받아들였고 이 세상에는 불가역적 변화가 존재한다는 것도 점차 알게 되었다. 이는 열역학 제2 법칙에 따라 열은 고온에서 저온이라는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고 표현되는데 볼츠만은 이를 분자, 원자의 상태 수는 작은 쪽에서 큰 쪽으로 한 방향으로만 이동한다고 바꿔 표현했다.(126 페이지)   &nbsp;  2019년 고르디 레소비크 박사가 열역학적인 시간에 화살과 반대 방향으로 진화하는 상황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양자 컴퓨터 기술 개발을 진행하는 가운데 시간이 역행하는 현상을 관측했다고 말한 것이다. 양자 컴퓨터는 미시 세계의 양자에서 발견되는 중첩 상태를 이용해 복수의 계산을 병렬로 실시하는 컴퓨터를 말한다. 난잡에서 질서로라는 변화는 당연히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에 위배된다. 이는 시간의 화살이 거꾸로 날아갔음을 의미한다. 커피가 들어 있는 컵은 커피를 다 채우든 아이스크림을 집어넣든 형태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우주라는 그릇은 내용물의 양에 따라 시공간이 팽창하거나 수축하는 등 역동적으로 변화한다. 우주란 내용물과 연동된 그릇이라고 할 수 있다.   &nbsp;  저자는 사고로 죽은 친구를 구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서 친구가 사고를 피하도록 노력한다 해도 이미 친구가 죽는다는 기록이 역사에 적혀 있는 이상 어떤 수를 써도 친구를 구할 수 없도록 온갖 사안이 작용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타임 워프는 시간의 흐름이 왜곡되어 과거나 미래의 일이 현재와 뒤섞이는 일을 말한다. 저자는 이 세계의 시간이 2차원이어서 또 다른 시간 차원이 있다 해도 두 차원의 크기는 대등할 리 없다고 말한다. 또 하나의 미미한 시간 축은 빠른 흐름에 저항하며 큰 강을 수직으로 횡단하려는 작은 배와 같다. 큰 강의 흐름이 너무나도 빨라서 작은 배는 좀처럼 반대쪽 기슭으로 건너가지 못한다.   &nbsp;  이 세상의 자연 현상은 모두 기본이 되는 네 가지 힘 즉 전자기력, 강력, 약력, 중력 중 어느 하나가 일으킨 것이다. 우리가 평소에 느끼는 힘은 중력을 제외하면 모두 전자기력이다. 전자와 원자핵을 결합해 원자를 만드는 힘이나 원자와 원자를 결합시켜 분자를 만드는 힘도 전자기력이다. 강력은 쿼크를 결합시켜 양성자를 만들고 양성자나 중성자를 결합시켜 원자핵을 만드는 힘이다. 시간이 지나면 붕괴하는 소립자는 약력으로 인한 것이다. 중력은 다른 세 가지 힘에 비해 너무나 작지만 우주에서는 중력의 지배력이 전자기력이나 강력을 압도적으로 웃돈다.   &nbsp;  중력만이 일반 상대성 이론을 기원으로 삼고 있고 양자역학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 네 가지 힘 모두를 합치는 이론을 양자 중력 이론이라고 한다. 양자 중력 이론에는 두 가지 후보가 있다. 초끈 이론과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연속적이라고 생각했던 시공간도 불연속적이어서 시간과 공간 모두 띄엄띄엄한 그물처럼 이산적인 구조를 띠고 있다고 생각한다.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이 예언하는 시공 네트워크에서는 스핀이라고 부르는 소립자의 회전 방향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이 네트워크를 종종 스핀 네트워크라고도 부른다.   &nbsp;  스핀 네트워크에는 중력을 나타내는 고리가 있는데 이를 루프라고 부른다. 양자 중력 이론은 시공간을 이산적으로 취급함으로써 공간이나 시간에 그 이상 분할할 수 없는 최소 단위가 있음을 제시하는 이론이다. 그렇게 해서 시공간 자체를 양자화하고 나아가 최소한의 크기를 부여해 0으로 나누는 발산의 문제도 회피한다. 루프 양자 중력이라는 이론은 시공간의 양자화를 지향하며 일반 상대성 이론과도 양자역학과도 다른 띄엄띄엄한 시공간이라는 새로운 시공간 모델을 구축했다.   &nbsp;  루프 양자중력 이론에서 말하는 공간이나 시간의 최소 단위는 플랑크 스케일이다. 1/ 10⁴⁴이다. 로벨리는 시간을 양자화하면 공간은 플랑크 길이가, 시간은 플랑크 시간이 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초끈 이론이 시공간의 본질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루프 양자 중력 이론 쪽에서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과도 일맥상통하는 ‘과격하기까지 한 참신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은 시공간을 양자화해 소립자 규모의 크기가 있음을 제시했을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시간의 존재 자체를 지웠다. 시간이 역행(逆行) 가능한가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nbsp;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이 생각하는 방법은 중력이 전달되는 장(場) 즉 중력장의 양자화다. 일반상대성이론이 설명하는 시공간 그 자체를 불연속적인 최소 단위(양자)로 쪼개어 나타내는 과정을 말한다. 물리학에서는 장이 물질로서 실체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양자역학에 따르면 물질은 전부 소립자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중력장도 소립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중력장은 중력을 전달하는 시공간이므로 공간도 시간도 소립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로벨리가 생각한 시공간의 양자화다.   &nbsp;  로벨리는 시간이란 하나의 사건과 다른 하나의 사건 사이의 관계라 생각한다. 이 시간관은 라이프니츠의 '관계주의(Relationalism)' 철학과 완벽하게 상통한다. 라이프니츠가 말하는 공간은 물체들 사이의 공존 관계(Order of Coexistence)다. 저자는 휠러 – 디윗 방정식을 논한다. 양자세계에서는 ab=ba가 아니다. 양자는 요동치고 있어서 양자의 위치가 확정된 뒤에 속도가 확정된 경우와, 속도가 확정된 뒤에 위치가 확정된 경우를 비교하면 양자의 상태에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192 페이지)   &nbsp;  물리학에서 시간이란 우리가 미시세계를 상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 ‘무지(無知)의 소산’이다. 시간을 양자화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는 시간의 본질과 관련된 수많은 주제가 숨어 있다. 현재 초끈 이론에서는 끈이 아니라 브레인(막; 膜)을 기초적 입자로 생각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은 인간에게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의문이다. 이처럼 모든 것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암흑 물질과 암흑에너지에 도달한다. 빛만으로는 우주를 만들 수 없다.(209 페이지)   &nbsp;  저자는 인플레이션 이후 급격한 팽창으로 잡아 늘여진 양자 요동이 그대로 고정되었다는 것이 우주 탄생 시나리오인데 아직 생물은 고사하고 별 등 구조물조차 없는 우주에서 대체 누가 양자 요동을 관측했는가? 신 같은 초월적 존재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는 듯 하다. 저자는 스타인하트, 투록의 순환우주를 이야기하며 우주 팽창은 익숙하지만 수축은 그렇지 않으나 빅뱅 이전 우주에는 수축이 금지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한다. 우주의 수축은 시간 역행을 의미한다.   &nbsp;  저자는 아인슈타인의 우주상수는 암흑에너지이고 반중력(척력)을 가진 것이라 말한다. 아인슈타인의 우주론을 정적(靜的) 우주론이라 한다. 수축도 팽창도 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정상(定常) 우주론은 팽창하지만 같은 밀도를 유지한다는 이론이다. 중력에는 인력(引力) 밖에 없다는 기묘함은 어쩌면 시간의 화살과 관계가 있는지도 모른다.(230 페이지) 아인슈타인을 후회하게 만들었던 우주상수 즉 암흑에너지가 바로 중력의 척력(斥力)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소립자 물리학에서 말하는 진공에너지의 크기와 우주상수 크기 차이를 논한다.   &nbsp;  중력은 인력뿐이고 우주는 팽창하기만 하고 엔트로피는 증가하기만 하고 반입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물리학자들은 머릿속에서 만약 이런 물질이 있다면?이란 가정을 다양하게 확장해 매일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234 페이지) 저자는 우주를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듯 보이는 시간의 화살과 생명이 지니고 있는 시간의 화살의 방향이 반대인 자연의 절묘한 균형감각에 매우 깊은 흥미를 느낀다고 말한다.(260 페이지) 저자는 생명이 형성되기 이전에 우주의 시간의 화살에 역행하는 또 다른 시간의 화살이 있어서 그것이 생명을 만들어낸 다음 그 안에 깃들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생명을 존속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 라고 추론한다.   &nbsp;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보다 큰 머리를 가진 네안데르탈인에 대해 상상한다. 즉 큰 뇌에 미래의 기억도 보존되어 있어서 회피할 수 없는 미래를 받아 들이고 소극적인 방식으로 살아서 멸종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270 페이지)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뇌 크기가 크지 않았는데 그런 작은 차이로 인해 호모 사피엔스의 뇌에는 미래 기억이 저장되지 않았고 네안데르탈인에게는 저장되어 있었을까?란 의문이 든다. 소립자를 개별적으로 보면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많은 소립자가 모여서 거시적인 계가 되면 개별적인 시간 역행의 효과는 통계적으로 무시되며 결과적으로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게 된다.   &nbsp;  저자는 양자 세계에서는 에너지와 시간 사이에 불확정성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음을 언급한다. 마이너스 에너지의 입자가 시간을 역행하는 것도 이 관계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다.(281 페이지) 저자는 여러 우주 모델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순환우주를 고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292 페이지) 그것은 순환우주가 비교적 수긍할 만하기 때문이다. 저자에 의하면 다양한 자연 상수가 있다. 저자는 거품 우주 모델을 생각하고 있다. 우주에는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 지평선 크기의 우주가 무수히 존재하고 있다. 이를 거품이라 부른다. 무수한 거품 하나하나가 다양한 자연 상수를 가지고 있는 모델이다.   &nbsp;  상수에 따라서는 팽창이 너무 빨라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는 우주도 있고 잘 안정되어 구조를 만드는 데 성공한 우주도 있다. 이른바 거품의 진화 같은 것이 일어난다고 가정한다. 인간에게 딱 알맞은 우주가 생기는 것도 무한히 많은 거품 중 하나가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수긍할 만하다.   &nbsp;  순환 우주는 인류 원리의 수수께끼에 대해 어느 정도의 답을 주는 우주모델인 동시에 현 시점에서 거시적 규모의 시간 역행을 실현할 가능성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모델이기도 하다. 저자는 지금까지의 여행의 의도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리는 것이기보다 시간에 관한 다양한 사고를 즐기면서 우주의 신비를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주에 관해서라면 아무리 기상천외한 생각을 하더라도 자유라고 말한다. 우주는 여러분이 생각해 주기를 지금 이 순간에도 고대하고 있다고 말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648/89/cover150/k07293941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6488900</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사회계약 이상의 자연계약 체결의 필요성을 논하는 철학자의 긴박한 호소 - [자연계약 - 루소의 『사회계약』, 그 이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529334</link><pubDate>Mon, 21 Sep 2026 17: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52933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42131968&TPaperId=175293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30/62/coveroff/k34213196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42131968&TPaperId=1752933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자연계약 - 루소의 『사회계약』, 그 이후</a><br/>미셸 세르 지음, 조현수 옮김 / 그린비 / 2026년 09월<br/></td></tr></table><br/>프랑스의 철학자이자 과학사 연구자인 미셸 세르(1930-2019)의 책이다. 저자 세르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허문 프랑스의 독보적인 통섭 철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식론자)다. 책은 서문, 1부 전쟁, 평화, 2부 자연계약, 3부 과학, 법, 4부 끈과 그 해체로 이루어졌다. 2부 자연계약은 표제작이면서 가장 읽기 쉬운 챕터에 속한다. 저자는 중심과 주변을 전제로 하는 환경이란 말은 상호작용하는 관계에 반(反)하는 용어이기에, 생태라는 말은 법적 결정을 내릴 수 없기에 적절치 못하다고 말하며 책의 제목이기도 한 자연계약이란 말을 사용하기로 한다고 말한다.   &nbsp;  저자는 자연을 법적 주체가 되는 지위로 올리자고 제안한다. 정치는 세계를 신경 쓰지 않으며 자연과 문화 사이의 오래된 구분 역시 똑같은 배제를 반복하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각오로 이 낡은 관습을 뒤엎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쪽에서는 단단한 과학(경성과학)에 의해 세계가 완전히 뒤바뀌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부드러운 과학(연성과학)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지금 우리의 관습과 경제, 정치를 가능한 한 빨리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역사상 전례가 없는 대재앙을 향해 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한다.   &nbsp;  저자는 논쟁도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 합의를 전제로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과거에는 항상 승리자였던 지구가 이제는 피해자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전쟁은 하나의 계약의 성격을 갖는다고 말한다. 역사는 전쟁과 함께 시작된다. 폭력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전쟁이 있고 그 사이에 법적 계약이 존재한다. 저자는 주관적 전쟁과 객관적 폭력을 말한다. 전자는 인간들끼리의 전통적인 갈등과 전쟁을 말한다. 후자는 인간 집단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자 객체인 자연을 향해 가하는 일방적인 파괴와 폭력을 말한다.   &nbsp;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객관적 폭력에 대한 법을 발명해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인간 세계의 객관적 적(敵)인 세계 자체와 체결해야 할 새로운 계약, 새로운 사전 합의를 말한다. 이것이 곧 자연계약이다. 저자는 인간들의 판(板)을 말한다. 저자의 의도는 이 인간들의 판들이 지구의 지각판들 만큼 물리적으로 지구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을 하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인간은 더 이상 어떠한 부피도 없는 한갓 점으로서 허공 속에 삼켜지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집합체로서 존재하며 특정한 장소에 갇혀 있는 것을 넘어 거대한 대양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 공간에서 내려다 보아도 포착되는 거대한 판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확장해가고 있다.(67, 68 페이지)   &nbsp;  저자는 과학의 모든 역사는 나비 한 마리 격인 생각이라는 것에서 거대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결과로 이어지는 극히 낮은 확률의 이 인과관계의 연쇄를 일정하게 만들고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인간은 자연의 근원적인 불확실성과 무작위성에 공포를 느끼고 과학을 통해 인과 관계의 사슬을 꽉 쥐고 우리가 세상을 통제하고자 했다는 확신을 얻고자 했다는 뜻이다. 저자는 우리는 이제 수원지, 우물, 호수로 이루어진 집단과도 같으며 아킬레우스의 작은 강보다 더 거센 물줄기를 이루고 있고 고야의 사막보다도 훨씬 광대한 유동하는 황야 같기도 하다고 말한다. 또는 하나의 대양과 같고 단단하면서도 움직임이 있는 하나의 지각판 같기도 하다고 말한다.   &nbsp;  저자는 객관적 폭력의 상황에 놓여 있는 오늘날 이 계약에 서명하는 것 외에는 다른 출구가 없다고 말한다. 과학자들 사이의 계약도 저 오래된 사회계약을 닮아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과학의 역사는 자주 다양한 학술기관이나 법정 판결의 역사와 중첩된다고 말한다.(77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과학으로 인정되는 앎이란 에피스테모-디케로부터 나온다. 이는 지식을 뜻하는 에피스테메와 정의, 심판을 뜻하는 디케라는 말의 합성어다. 과학의 기원은 인간 사회의 기원과 마치 자매처럼 닮아 있다. 일종의 사회계약인 지식의 계약이 앎의 표현들을 상호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nbsp;  저자는 우리의 이성이 더 이상 아름다움에 대한 생존적 욕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말하며 아름다움은 평화를 요구하며 평화는 새로운 계약을 전제로 한다고 덧붙인다.(84 페이지) 신이 죽은 이후 우리에게 남아 있게 된 것은 오직 전쟁뿐이지만 세계 자체가 각 민족이나 나라의 공동체와 자연계약을 맺는 순간 그것은 평화를 위한 이유를 제공해 주게 되고 동시에 우리가 찾아 헤매던 초월성을 부여해 주게 된다. 저자는 농업이 사라져간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권력을 서로 나누어 가진 이들은 자연을 잊었다. 우리 자신이 사상 처음으로 지구 전체에 물리적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또한 지구 전체가 이에 대해 우리 인류 전체에 틀림없이 반응하기 시작하는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비극적이게도 지구를 소홀히 하고 있다.   &nbsp;  지구를 보존하고 비와 바람이라는 의미에서의 시간을 존중하려면 긴 시간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대양의 물이 서로 섞이려면 대략 5천 년이라는 장기적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한 주기가 다 완성되어야 한다. 우리는 오직 단기적 대답과 단기적 해법만을 내어 놓는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대상은 과학과 실천의 가장 큰 대상 즉 지구 - 행성이라는 새로운 자연이다. 저자는 정밀하게 나뉜 전문 분야들 안에서 살아가는 행정관리들, 기자들, 과학자들이 모두 자신들의 권력의 짧은 시간 속에 흠뻑 빠지고 자신들의 좁은 분야들 속에 갇힌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nbsp;  저자는 긴 시간의 호흡을 가진 사유를 하는 이들에게 발언권을 주어 보자고 말한다. 지배와 소유 바로 이것이 우리 서구의 이성이 우주를 정복하러 나선 과학과 기술의 여명기에 데카르트가 던진 핵심 개념이다. 우리가 우주를 지배하고 그것을 우리 것이 되도록 만든다는 것, 이것이 산업 발달의 추구와 이른바 순수 과학 양자 모두에 공통적으로 내재하는 그 이면의 철학이다. 이 점에서 그 둘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데카르트식 지배는 과학이 세계에 가하는 객관적 폭력을 잘 조율된 전략으로 전환시킨다. 여기서 우리가 객체들과 맺는 근본적 관계는 전쟁과 소유로 요약된다.(98 페이지)   &nbsp;  저자는 동물이 배설행위를 함으로써 흔적을 남기고 더럽히며 자신의 영역임을 표시하듯 인간도 배설적 행위로 다른 종들을 내쫓는다고 말한다. 지구는 인간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인간은 지구 없이는 살 수 없다. 우리는 기생물처럼 세 들어 사는 존재다. 사회계약은 자기 자신 안으로 문을 닫아버린 채 세계를 문밖에 내버려두었다. 사회계약은 사물들의 거대한 세계를 단지 우리가 마음껏 써먹을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수동적 대상들의 지위로 격하한 것이다. 인간 이성은 중심부를 차지하게 되었고 외부 자연은 주변적인 것으로 밀려났다.   &nbsp;  인식과 행위의 주체는 모든 권리를 누리게 되었지만 그 대상들은 아무런 권리도 부여받지 못했다. 이 대상들은 오늘날까지도 어떤 법적 존엄성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과학이 모든 권리를 다 차지하고 있다. 오직 사회적이기만 한 우리의 계약 즉 오직 우리 인간들에게만 초점을 두고 있는 이 계약은 결국 우리 자신의 종의 존속을 위협하는, 우리가 이 지구상에서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위협하는 죽음의 계약이 되고 있다.   &nbsp;  저자는 [인권선언]은 “모든 인간이”라고 말하는 공로를 세웠지만 동시에 ‘오직 인간만이’라고 생각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예전에 세계는 우리의 주인이었지만 얼마 전까지는 우리의 노예였으며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의 숙주이고 이제는 우리의 공생자다. 저자가 말하는 자연으로의 회귀란 자연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이 계약은 객관적 전쟁 속에서 이루어지는 휴전협정이며 공생의 계약이다. 공생의 권리는 상호성에 의해 정의된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만큼 인간도 자연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자연은 이제 권리의 주체가 된다.   &nbsp;  지구는 우리에게 힘과 관계 상호작용이라는 방식으로 말을 건넨다. 그리고 그 정도면 계약을 맺기에 충분하다. 공생하는 두 존재는 마땅히 서로에게 생명을 빚진 자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 따를 것이다.(115 페이지) 저자는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에서는 자기들끼리 다투면 내부의 적을 무찌르기 전에 자신들의 배가 난파당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서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자연으로부터 오는 사회계약을 체결한 선원들을 이야기 한다. 저자는 물러날 곳이 없다는 점에서 지구도 배와 같다고 말한다.   &nbsp;  저자는 이제 정치 지도자는 인문학과 도시의 거리, 그 성벽에서 빠져나와야 하며 물리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물들 없는 인간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들 사이의 관계는 사물들을 매개로 이루어지며 사물들에 대한 우리의 관계 역시 타인들을 경유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바로 이것이 법이 그려내는 더욱 안정적인 공간이다. 저자는 자연계약을 형이상학적인 것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러 국지적 전문 영역의 일상적 경계를 특히 물리학의 경계로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nbsp;  자연계약 역시 명시적으로 체결되지 않은 가상적 계약이다. 자연에 우호의 손을 내미는 것이 자연계약의 하나일 것이다. 실로 중요한 근본적 계약들은 모두 암묵적인 것으로인 듯 보인다. 자연계약은 이 지구 전체의 관계망과 자연계약 그 자신에 의해 이루어진 연결망을 그것들이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루도록 연결한다. 저자는 서로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세계를 사랑하라는 것은 물리적 지구 전체에 대한 보편적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다.(134 페이지) 우리의 두 아버지를, 자연적 아버지와 인간적 아버지, 땅과 이웃을 사랑하라. 인류라는 우리의 인간적 어머니와 지구라는 우리의 자연적 어머니를 사랑하라.   &nbsp;  저자는 기하학과 물리학에 큰 의미를 둔다. 저자는 기하학을 단순히 도형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영역을 연결하고 소통시키는 방법론으로 본다. 저자의 물리학은 고정된 질서를 다루는 고전역학보다는 변화와 무질서를 다루는 현대물리학에 가깝다. 저자는 모방하는 것은 지배하는 것이고 이긴다는 것은 파괴한다는 것이라 말한다. 모방하는 것이 지배하는 것이란 말은 지식이 모방 욕구로부터 나왔기 때문으로 아는 것이 힘이기 때문이다.   &nbsp;  저자는 과학의 역사는 법정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스 과학의 시작의 역사는 적이자 쌍둥이인 두 자매 즉 정의와 정확성, 판단하는(재판하는) 이성과 증명하는 이성의 비극적으로 파란만장한 공동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168 페이지) 저자는 사회과학이 제공하는 정보는 언제까지나 그저 평범한 것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모든 이가 모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반복하는 데 불과하며 자연과학이 제공하는 정보는 계산 가능한 것이며, 그 희귀성에 비례하는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우리는 그것을 지식이라 부른다고 말한다.(175 페이지) 이는 사회과학이란 인간이라는 폐쇄된 울타리에서 말과 글을 주고 받는 재생산에 가깝고 자연과학은 인간 외부의 거대한 실재인 세계와 직접 대화하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nbsp;  우리의 자유는 제한에서 비롯된다. 우리의 자유는 부분적으로 법이 없는 공간들에서 오는 것이다. 바로 이 틈으로 자연이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낙사고라스에게는 공공의 문제보다 자연이 더 큰 관심사였다. 아낙사고라스는 태양이 불타고 있다고 말해 고발되었다. 그가 본 태양은 불타는 돌덩이다. 저자는 자연은 도시의 지옥 또는 문화의 지옥이라 말한다. 저자는 자연을 통제하는 자연과학이 아니라 자연이 보내는 미세한 신호나 소음을 경청하는 자연과학을 사랑한다. 문화는 수천 가지이지만 자연은 단 하나다.   &nbsp;  저자는 과학과 도덕의 차이도 논한다. 도덕은 명령법으로 쓰이지만 지식은 법처럼 직설법으로 쓰이되 법처럼 수행문적이지는 않다. 저자는 과학들은 그 자신들끼리 서로 분리되고 구분되어 어떤 과학도 자신의 고유 영역 밖에서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관할권의 네트워크를 내적으로 제도화한다고 말한다. 이는 경계 짓기(영역 설정)를 의미한다. 과학의 역사 역시 종교의 역사가 그랬던 것만큼 수많은 추방된 자를 남기고 있다. 처음에는 법이 과학을, 재판에 재판을 거듭하며 압도하지만 과학이 점차 법을 압도한다. 모든 판결이 이성의 빛 아래 재검토되기 때문이다.(203 페이지) 물론 법이 다시 과학을 압도하고, 과학이 다시 법을 압도하는 순환이 계속된다.   &nbsp;  저자는 우리 인간 자신이 하는 행위로 인해 크게 변모되는 지구를 흔들리는 지구라 부른다.(216 페이지) 저자는 세계가 책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가운데 책이 세계로 들어오고 있다는 말을 한다. 세계는 담론과 법에 갇혀 있고 가상이 현실을 잠식하고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저자는 오늘날의 현자(賢者)는 영웅들의 시대의 입법자와 엄밀한 지식으로 무장한 현대의 지식 소유자를 자신의 한 몸 안에 뒤섞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현자는 자연과학에 정통하며 사회과학과는 다소 거리를 두는 사람으로서 보고서보다는 직접적 행동을, 조사나 자료보다는 직접적인 인간 경험을 중요시하며 자연과 사회의 여행자이며 강, 모래, 바람, 바다, 산을 사랑한다. 그는 지구 전체를 걷는 자이며 다양한 몸짓 만큼이나 다양한 풍경을 사랑하며 북서 항로를 홀로 항해하는 탐험가처럼 실증적 지식인 인문학과 섬세하고도 드물게 교차하는 그 장소들을 통과해 간다.   &nbsp;  그는 무엇보다 지구와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사람이다. 진정한 교육은 자기 자신의 유한성을 판단할 줄 아는 신중한 존재를 길러내며 참된 이성의 올바른 지적 전수는 이 존재를 무한한 생성 속으로 내딛도록 만든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근원적 대지는 유한하다. 하지만 이 근원적 대지를 발판으로 출발하는 출항은 어떤 끝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세계를 벗어나 이 세계와 비슷한 곳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 이것을 두고 출항한다고 말한다.(247 페이지)   &nbsp;  저자는 인간이 된다는 것은 끊임없이 끈을 풀고 다시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끈울 묶는다는 것일까?라고 묻는다. 우리가 출항하는 것은 오로지 끈을 바꾸기 위해서일까?라고 묻는다. 저자가 말하는 바 계약이란 단어는 본래 조여 매는, 끌어당기는 선(線)이다.(254 페이지) 계약이 반드시 언어를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다. 밧줄 놀이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밧줄로 이어진 것들끼리는 서로 말없이 이해한다/ 아우른다. 어원적으로 볼 때 그리고 그 본성으로 볼 때 계약은 함께 묶이는 것이다.(263 페이지)   &nbsp;  저자는 “밧줄은 나를 형식/ 형태들에, 사물들에, 타인들에 묶고 있으며 그러므로 나를 추상에, 세계에, 사회에 입문시키고 있다.”고 말한다.(264 페이지) 저자가 드는 예는 한 행성 또는 다른 행성의 아주 작은 움직임이라도 지체 없이 다른 모든 행성에 영향을 끼치게 되며 이에 대한 이 행성들의 반응 역시 곧 이 첫 번째 행성들에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일련의 상호 제약들의 총체라 한다,   &nbsp;  저자는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진 이래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소멸 가능성을 우리 자신의 힘 안에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바 이 소멸의 곡선은 계속 수직 상승하고 있다고 말한다.(293, 294 페이지) 추상적으로 되어버린, 더 이상 직접 체험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 현대 인류는 땅에서 발을 떼어내어 기호들을 향해 날아오르고 이미지들과 코드들의 세계를 들락거리면서 도시 속에서 살아가느라 더 이상 삶이나 세계의 사물들과 직접적 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 우리 모두는 발이 완전히 땅에서 떨어진 탈영토화된 상태의 우주비행사가 되었다.   &nbsp;  저자는 우리는 실로 죽어가는 우리의 늙은 어머니를 위한 어머니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자연에게 그것이 우리에게 주었던 탄생을 되돌려준다는 것의 새로운 의미는 대체 어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일까? 동행의 끈들 너무나도 상호적이어서 탄생이 어느 쪽 방향에서 이루어지는 것인지 결정할 수 없게 되는 이 상호 공생의 끈들이 바로 자연계약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저자의 어조는 묵시적이고 시적이며 은유적이다. 흩어지는 듯 하다가도 의미가 연결되고 어렵게 다가오다가도 친절한 면모를 보이는 어조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책은 약 40년 전에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통합적이고 대안적이고 선구적이다. 깊은 사유의 세계에 초대한 저자에게 감사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30/62/cover150/k34213196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306215</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과학을 알기 위한 영화, 영화를 알기 위한 과학 - [과학, 영화와 만나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518221</link><pubDate>Tue, 15 Sep 2026 17: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51822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6865289&TPaperId=1751822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8/13/coveroff/89868652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6865289&TPaperId=1751822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과학, 영화와 만나다</a><br/>레로이 W. 두벡.수잔 E. 모시어.주디스 E. 보스 지음, 차동우.홍주봉 옮김 / 한승 / 2006년 08월<br/></td></tr></table><br/>물리학과 교수 레로이 두벡, 생물학과 교수 수잔 모시어의 [과학, 영화와 만나다]는 물리학과 생물학의 기본 지식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책이다. 20년 전인 2006년에 나온 책이어서 SF를 공상과학영화라고 번역한 것이 눈에 띈다. 그런데 혹성 탈출이라고는 하지 않고 행성 탈출이라고 해 관심을 갖게 한다. 또한 최초의 과학 소설로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를 소개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공상과학영화, 과학 소설이란 제목이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과학 공상 영화라는 단어도 나온다.(129 페이지)  &nbsp;  흥미로운 구절이 하나 있다. 과학적 가설을 거절할 권리가 있지만 어떤 이론이 기술에 적용되고 나면 거절할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원자력 발전과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살 수 있는 선택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책에서 다룬 영화는 스페이스 오디세이, 블레이드 러너, 지구 최후의 날, 지구 온난화가 오면, 에일리언, 쥐라기 공원 등 다앙하다. 영화를 소개하기에 앞서 물리학, 생물학 지식을 별도의 장에 담았다. 물론 이는 영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지만 영화와 별개로 알아둘 만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nbsp;  저자는 뉴턴의 제 3법칙인 작용 반작용의 법칙과 운동량 보존을 위배하는 영화로 [수퍼맨]을 든다. 영화의 끝 부분에서 수퍼맨은 원자폭탄이 폭발해 캘리포니아에 있는 샌안드레이아스 단층이 격렬하게 움직이자 이것을 멈추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이러한 움직임을 감쇄시키려고 수퍼맨은 단층의 일부를 들어 올려 제자리에 놓으려 한다. 암석의 무게는 수백만 톤은 아니더라도 수십만톤은 충분히 된다.  &nbsp;  만약 수퍼맨이 암석에게 위로 향하는 힘을 작용하면 뉴턴의 제3법칙에 의해 암석은 수퍼맨을 아래로 내리누를 것이다. 그러면 수퍼맨은 서 있는 자리의 암반을 뚫고 박혀야만 할 것이다. 여기서 수퍼맨이 얼마나 강한가는 이 문제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가 서 있는 바위가 그를 누르는 암석 수백만 톤에 해당하는 무게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밖에 수퍼맨이 법칙을 위반한 것은 더 있다. 수퍼맨의 아주 작은 손바닥 면적으로 거대한 단층 암반을 밀면 단층 전체가 들리는 것이 아니라 수퍼맨의 손이 닿은 부분만 뚫리게 된다. 또한 단층을 움직일 만한 에너지가 수퍼맨에게서 나올 때 발생하는 열과 충격파만으로도 주변 환경은 초토화되어야 한다.  &nbsp;  지구 주위의 궤도를 회전하는 우주비행사들은 자유낙하 하는 기분을 느낀다. 즉 중력이 없는 것처럼 느낀다. 이것은 우주비행사들에게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우주비행사들을 지구 주위의 궤도에 붙잡아두는데 중력 전체가 사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주비행사들을 지구 쪽으로 잡아당길 중력이나 그들이 중력이 존재한다고 느낄 만한 여분의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 부분은 흥미롭다. 다른 과학책들을 통해서 안 것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nbsp;  AI는 우주 비행사들이 무중력 상태를 느끼는 것은 우주선과 우주비행사 모두 지구를 향해 똑같은 가속도로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책은 명왕성도 행성으로 소개한다. 명왕성이 행성 지위를 잃은 것은 2006년 8월 24일이다. 책의 원서가 나온 해는 2004년이고, 책이 번역/ 출판된 것은 2006년 8월 24일보다 며칠 전이다. 책 출간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명왕성의 행성 지위 박탈이 결정되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nbsp;  토리노 목록이라는 것이 있다. 형성이나 혜성같은 근(近) 지구 천체가 지구에 충돌할 위험성을 나타내는 기준인 토리노 척도를 의미한다. 토리노 목록이 0이면 그 천체가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별로 없거나 크기가 너무 작아서 충돌한다고 해도 별 피해를 입히지 못함을 의미한다. 토리노 목록이 3이면 1% 이상의 확률로 지구에 충돌할 가능성이 있고 제한된 지역이 파괴될 수도 있다. 토리노 목록이 7이면 넓은 지역에 재앙을 일으킬 정도의 지극히 심각한 위협이 되는 충돌을 의미한다. 토리노 스케일이 10이면 지구 전체에 기후변화를 가져오는 재앙을 일으키는 충돌을 의미한다.  &nbsp;  태양계 내부에는 발달한 외계 문명이 없다는 점은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다. 우리는 달의 표면을 걸었고 우주탐사선이 화성과 금성에 착륙했으며 태양계에 속한 대부분의 행성 옆을 통과했다. 지적이든 원시 형태든 어떤 종류의 생명체도 발견되지 않았다. 행성의 대부분은 표면 조건이 너무 나빠서 어떤 형태의 생명체든 생겨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nbsp;  인간이 털이 없는 이유가 바다에서 헤엄치기 유리해서라는 말도 있다. 물론 털이 없는 경우 열이 잘 발산되어서 털을 가진 짐승을 따라잡고 사냥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고대 외계 우주인들이 인류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고 주창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외계의 우주인으로부터 털이 없는 것을 물려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nbsp;  이 책은 내용이 그렇게 쉽게 설명되지는 않은 책이다. 영화에 나오는 과학과 관련된 오류를 설명하는 책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정통 물리학 책, 정통 생물학 책 같다. 책에는 영화의 오류를 설명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과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상식을 지적하는 부분도 있다. 그 하나가 시간 여행에 관한 것이다.  &nbsp;  "시간 지연이 독자들에게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고 결론짓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것은 맞지만 매우 제한적인 일방통행의 시간 여행만 가능하다. 만약 과학자들이 새로운 동력원과 우주비행사를 보호할 방법을 찾는다면 원칙적으로 우주비행사들을 수천 년 후에 돌아올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들을 미래로 보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시간을 거스르며 돌아와 우리에게 미래가 어떻게 생겼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는 여행은 불가능하다. 우주비행사들과 우리의 물리적 접촉은 그들이 목적지로 일진광풍처럼 떠날 때 뿐이다. 승객들이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하는 타임머신을 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172, 173 페이지)  &nbsp;  저자는 하늘을 시간을 거꾸로 바라볼 수 있는 다른 종류의 타임머신으로 정의한다. 지금 하늘에 보이는 사건들은 오래전에 일어난 일인데 바로 지금 우리 눈에 도착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에게서 가장 가까운 별인 센타우르스 자리 알파 별에서 오는 빛은 4.3년 전에 떠난 것으로 저녁 하늘의 그 별을 보면 적어도 4.3년 전을 보는 것이다.  &nbsp;  과거로의 시간 여행에 대해서도 저자는 한마디 한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미래로부터 추가의 물질이 갑자기 과거로 더해지기 때문에 에너지 보존에 위배된다. 과거가 물질의 형태로 에너지를 얻으면 미래는 그만큼 에너지를 잃는다. 간단히 말하여 지금까지 알려진 과학과 논리의 지식에 근거하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불가능하다."(175 페이지) 일반적으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불가능함을 예로 들 때 할아버지의 역설 같은 인과율의 오류를 들지만 우주 전체의 질량과 에너지의 총량이 변한다는 물리법칙을 예로 든 것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nbsp;  8장 열, 온도, 열역학에서 눈에 띄는 구절은 "온도는 물질을 이루고 있는 원자나 분자의 전체 운동에너지가 아니라 평균 운동에너지를 측정하는 척도다. 그래서 끓는 물 10kg은 끓는 물 1kg 보다 분자 운동에너지를 10배 더 많이 갖는다. 하지만 두 경우에 물 분자 하나의 평균 운동에너지는 모두 같기 때문에 온도가 동일하다."는 구절이다.(207 페이지)  &nbsp;  대부분의 물질이 식으면 수축하는 일반적인 규칙의 한 가지 예외가 물이다. 약 4°C 때 부피가 가장 작다. 그래서 물은 그 온도에서 밀도가 가장 크다. 온도가 이보다 더 낮거나 높으면 주어진 양의 물은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4°C의 물보다 밀도가 작아진다. 열은 두 물체 사이의 온도 차이 때문에 한 물체에서 다른 물체로 에너지가 이동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온실효과는 수증기나 이산화탄소, 지구의 대기에 들어 있는 다른 기체에 의해 촉진되는 지구온난화를 일컫는 말이다.  &nbsp;  자연적인 온실 효과에 기인한 온도 상승이 없었다면 지구의 날씨는 지금보다 15°C 정도 낮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정도는 많은 생물체가 살아남기에 너무 추운 날씨이다. 대기권이 얇아서 실질적으로 온실 효과가 없는 화성 표면의 평균 온도는 영하 60°C다. 온실 효과라는 명칭은 유리로 지은 온실 내부에서도 온도가 상승하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붙여졌다.  &nbsp;  온실 효과에 의한 온난화와 유황에 의한 냉각화가 있다. 보면 인간이 생산한 낮은 고도에 머무르는 유황 방출물은 수일 또는 수주일 이내에 지구로 다시 떨어진다. 대부분의 온실 기체는 수백 년 동안에 걸쳐서 대기에 남아 있으므로 온실 효과에 의한 온난화가 결국 유황에 의한 냉각화를 넘어설 것이다. 온실 기체는 하루에 24시간 동안 지구를 덥히지만 유황은 단지 햇빛이 쪼이는 낮에만 지구를 냉각시킨다.(247 페이지)  &nbsp;  이산화황은 물에 잘 녹고 반응이 빠른 시한부 기체다. 이산화탄소는 반응하지 않고 버티는 끈질긴 기체다. 많은 영화가 지구온난화에 대한 개념을 다룬다. 화산이 분출하면 이산화탄소가 이산화황보다 1.5배에서 수배 더 많이 나온다. 이는 화석연료를 연소시키는 경우와 비슷하다. 화석연료를 태울 때든 화산이 분출할 때든 이산화황보다 이산화탄소가 더 많이 나오는 이유는 지구와 생명체를 구성하는 원소의 근본적인 양과 과학적 특성 때문이다.  &nbsp;  모든 생명체는 탄소를 기본 골격으로 하여 만들어진다. 황은 부수적인 원소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탄소를 기반으로 하는 것은 탄소의 압도적인 결합력 때문이다. 탄소는 최외곽 전자 수가 네 개이다. 이를 쉽게 결합의 손이 네 개라는 말로 바꿀 수 있다. 탄소는 스스로 또는 다른 원소들과 결합하여 무궁무진한 형태를 만들 수 있다. 탄소와 탄소 사이의 결합은 매우 단단하고 안정적이어서 생명체의 몸을 구성하는 데 적합하다. 탄소는 양도 충분하다.  &nbsp;  규소도 최외곽 전자가 네 개다. 규소는 원자가 커 결합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복잡한 사슬 구조를 만들기 어렵다. 탄소는 호흡을 통해 기체인 이산화탄소를 내보낼 수 있지만 규소는 산소와 결합하면 단단한 이산화규소(모래/ 유리)가 되어 몸 밖으로 배출하기가 치명적으로 어렵다.  &nbsp;  과학에서 어떤 이론이 설(說)이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뒷받침되는 많은 증거가 있어야 한다. 다윈이 1859년에 [종의 기원]을 출간했을 때 그는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엄청나게 많은 양의 관찰 결과를 제시했고 그 이후에도 과학자들에 의하여 많은 양의 관찰 결과가 다윈의 가설을 지지해 줌으로써 진화설로 자리 잡게 되었다. 지질학자들은 생물체가 생존한 모든 지옥에서 많은 날씨의 변화가 있었음을 충분한 증거를 근거로 단언한다.  &nbsp;  일반적으로 어떤 지역의 날씨 변화가 심할수록 그 지역에서 더 많은 종류의 생물체의 흔적이 발견되곤 한다. 멸종이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현재도 인류는 생물체의 멸종을 경험하고 있고 이를 우려하고 있다. 인류에 의해 발생한 멸종은 단 수백년 만에 일어났다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의 대멸종이 수백만 년에 걸쳐 진행된 것과는 극명하게 비교된다.(358 페이지)  &nbsp;  영화 [쥐라기 공원]은 공룡시대를 관람자가 더욱 실감나게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특수효과를 사용했다. 이 영화에서의 공룡은 너무나 진짜 같아서 관람객들은 시간차 여행을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다. 자료에 의하면 공룡은 약 2억 3천만 년 전에 지구에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해 약 6,500만년 전에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다. 이 시기는 지질학적으로 백악기가 끝나고 신생대 3기가 시작되는 기간이었고 따라서 KPg 경계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nbsp;  영화에서 제시된 조류와 공룡의 관계는 실제로 많은 화석 자료에 근거한 과학적 가설이다. 조류 골격의 특징을 가지는 공룡 화석이 반복적으로 발견됨으로써 공룡이 조류의 조상이라는 가설이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물리학과 생물학에 대한 차원 높은 지식을 제공한 후 저자들은 영화를 차례차례 하나씩 소개한다. 촬영 또는 제작 스태프들을 이야기하고 줄거리를 이야기한다. 꽤 상세하다. 특수효과를 이야기하고 원작 해설을 언급한다. 참고문헌도 언급한다.  &nbsp;  책을 읽으며 지질 또는 지구과학을 소재로 한 영화는 별로 없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단테스 피크, 더 코어, 샌 안드레아스, 더 웨이브, 백두산, 투모로우, 트위스터, 인터스텔라, 돈 룩 업 등이 있다. 본문에 나온 수퍼맨은 제작 년도가 책이 나오기 전인 1978년이고, 샌안드레아스는 책이 나온 해보다 후인 2015년에 나왔다.  &nbsp;  두 영화는 샌 안드레아스 단층을 소재로 한 영화다. 두 영화는 많은 차이가 난다. 전자가 과학에 어긋나는 부분이 많다면 후자는 그렇지 않다. 수퍼맨은 지질학적 단층을 수퍼맨의 위대함과 힘을 증명하기 위한 무대로 사용했고 샌안드레아스는 역동적인 지구의 움직임 자체를 인류가 마주해야 할 거대한 자연재해로 보게 만든다. 수퍼맨이 만들어진 시기는 판구조론이 정립된 후이다. 수퍼맨의 원작 만화는 1938년 작품이다. 이렇듯 [과학, 영화와 만나다]는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다.  &nbsp;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8/13/cover150/89868652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81360</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오크예퀴들 빙하 장례식과 애도, 그리고 앞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512867</link><pubDate>Sun, 13 Sep 2026 09: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51286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736872&TPaperId=175128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790/62/coveroff/k212736872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2019년 8월 18일 아이슬란드 오크예퀴들(Okjökull) 빙하 장례식이 열렸다. 녹아 사라진 얼음 조각을 애도하는 자리를 넘어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기후변화로 인해 소멸한 자연을 향해 치러진 공식 장례식이자 전 세계에 보내는 강력한 경고였다. 과학적으로 빙하는 자체 무게로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두께(약 40~50m 이상)를 유지해야 하는데 오크예퀴들은 2014년 이미 자격을 잃고 '사망 판정'을 받았다.  &nbsp;  "오크(Ok)는 아이슬란드에서 처음으로 빙하의 지위를 잃은 빙하입니다. 앞으로 200년 동안 우리의 모든 빙하가 똑같은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이 기념비는 현재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가 알고 있음을 기록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행동했는지 여부는 오직 당신(미래 세대)만이 알 것입니다."   &nbsp;  오크예퀴들 빙하 추모비에 새겨진 이 '미래로 보내는 편지'의 추모 글을 쓴 사람은 아이슬란드의 유명 작가이자 시인, 환경운동가인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Andri Snær Magnason; 1973 - )이다. 작가는 오크예퀴들 장례식 이후인 2019년에 나온 [시간과 물에 대하여]에서 “2014년 어느 날 아이슬란드의 한 빙하가 사라졌다.”고 썼다.    &nbsp;  마그나손은 ”우리는 신문에서 빙하 해빙, 기록적 고온, 해수 산성화, 배출가스 증가 같은 머리기사 제목을 보면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안다고 여긴다. 과학자들이 옳다면 이 단어들은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서 일어난 그 어떤 사건보다 심각하다. 우리가 제대로만 이해한다면 이 단어들은 우리의 행동과 결정을 직접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하지만 이 의미들의 99퍼센트는 백색잡음으로 흩어져버린다.“고 썼다.  &nbsp;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790/62/cover150/k21273687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7906225</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빙하의 의미에서 빙하 장례식까지, 기후 위기 시대의 묵직한 메시지 - [빙하여 안녕 - 기후 위기 최전선에 선 여성학자의 경이로운 지구 탐험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510029</link><pubDate>Fri, 11 Sep 2026 19: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5100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3929820&TPaperId=175100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842/81/coveroff/898392982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3929820&TPaperId=175100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빙하여 안녕 - 기후 위기 최전선에 선 여성학자의 경이로운 지구 탐험기</a><br/>제마 워덤 지음, 박아람 옮김 / 문학수첩 / 2022년 07월<br/></td></tr></table><br/>빙하(氷河)란 말에서 하(河)는 강물을 의미하는 글자다. 이 단어가 들어 있는 것은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마치 강물처럼 아주 느리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빙하는 거대한 자신의 무게에 눌려 얼음 결정들이 변형되면서 산비탈을 서서히 미끄러져 내려간다. 이는 빙하가 커다란 압력을 받으면 부피가 작은 물이 되기에 영하(1~2도)에서도 녹아 미끄러지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빙하는 조용하고 수동적이며 죽어 있는 것 같지만 수십 년,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쳐 측정한 결과를 보면 빙하기에 확장되었다가 대기 중 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줄어들기를 반복하는 가장 민감하고 동적인 자연이다.&nbsp;  &nbsp;  빙하빙(glacier ice)은 빙하를 이루는 얼음을 의미한다. 빙하빙은 깊은 곳에서 엄청난 압력을 받아 빙하 가장자리로 밀려나오는데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압축되면서 기포가 전부 빠져나간 얼음이 흡수하지 못하는 색이 푸른 색이어서 푸른 색을 띤다. 빙하학자(박사)이자 모험가이자 작가인 제마 워덤(Jemma Wadham)은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고 있는 현실을 주지시킨다. 빙하가 녹아 후퇴한 자리에는 거대한 호수들이 수없이 많이 생겨난다. 이를 빙하호(Glacial Lake)라고 부른다.&nbsp;  &nbsp;  빙하와 함께 있으면 마치 친구와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말하는 저자는 그린란드, 남극대륙, 스발바르, 칠레 파타고니아, 페루 안데스, 히말라야 등 전 세계 극지와 고산지대의 빙하를 가는 원정대를 25회 이상 이끌었다. 저자는 이를 통해 빙하 밑바닥에 수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고 빙하가 녹으면서 바다로 보내는 풍부한 영양소(철분, 인 등)가 해양 플랑크톤을 키우고 지구의 기후를 조절하는 중요한 기작임을 밝혀냈다.&nbsp;  &nbsp;  빙하(Glacier)와 해빙(海氷; sea ice)은 구별된다. 빙하는 육지의 거대한 얼음 강이고, 해빙은 바다 자체가 얼어붙은 얼음판이다. 빙하는 산에서 녹은 물이 다시 얼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녹지 않고 쌓인 눈이 자신의 무게에 짓눌려 단단한 얼음(빙하빙)으로 변한 것이다. 빙하가 바다로 밀려 내려오다 부러져 바다에 떠다니는 조각을 빙산(Iceberg)이라고 부른다. 이 역시 민물 얼음이다.&nbsp;  &nbsp;  해빙은 육지와 상관없이 극지방의 차가운 바닷물 표면이 영하의 기온 때문에 직접 얼어붙은 것으로 소금기가 있어서 0℃가 아닌 보통 영하 1.8℃ 이하에서 얼기 시작한다. 얼음은 유동 속도가 빠를수록 하나의 몸체로 이동하기 어려워 크레바스와 빙폭(氷瀑)이 만들어진다. 지질학에서는 크레바스를 얼음이라는 암석에 가해진 인장 응력(Tensional Stress, 잡아당기는 힘)에 의한 취성 파괴(Brittle Failure)로 분석한다. 크레바스는 빙하가 현재 어떤 지형 위를, 얼마나 빠른 속도로, 어떤 힘을 받으며 흐르고 있는가를 표면에 그대로 찍어내는 지질학적 지문이다.&nbsp;  &nbsp;  빙하는 얼음 결정의 변형(완전히 단단한 고체 상태를 유지한 채 연성 변형), 얼음의 미끄러짐(압력으로 빙하가 녹는 경우), 빙하 아래 퇴적물의 변형 등 세 가지 방식으로 이동한다. 이를 어떤 빙하는 기어가고(creep; 얼음 결정 변형만 일어나는 경우), 어떤 빙하는 걸어가고(얼음 결정 변형과 활동성 이동이 일어나는 경우), 어떤 빙하는 전력질주(얼음 결정이 변형되고 지반 위를 미끄러져 내려가는 동시에 그 아래 퇴적물이 변형되는 경우)한다. 과학계에서는 빙하가 고체 상태로 움직일 때 빙하를 일종의 '고온 변성암'처럼 취급한다. 즉 바위가 열과 압력을 받아 휘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로 보는 것이다.&nbsp;  &nbsp;  빙하의 최상부(0~50m 깊이)는 압력이 낮아 단단하고 부서지기 쉬운 취성 영역(Brittle zone)이다. 이곳에서는 얼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깨져서 크레바스를 만든다. 반면 50m보다 깊은 곳은 위에 쌓인 엄청난 얼음 무게로 인해 가해지는 압력(정수압)이 매우 높다. 이 깊이에서는 얼음 입자들이 서로 떨어지지 않고, 깨지는 대신 연성 영역(Ductile zone)으로 거동하게 된다.&nbsp;  &nbsp;  압력에 의해 얼음이 녹아 물처럼 흐르는가(기저 미끄러짐/압력 융해), 고체 상태로 유연하게 늘어나는가(연성 변형)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은 얼음의 온도와 압력의 크기다. 압력이 가해지더라도 얼음이 녹는점에 도달하지 못하면 얼음은 고체 상태를 유지하면서 서서히 영구적인 형태 변형을 일으킨다. 얼음의 온도가 압력 융해점보다 훨씬 낮은 영하 수십 도 상태(한랭 빙하)이거나 압력이 고르게 분산되어 특정 지점에 압력이 집중되지 않을 때다.  &nbsp;  빙하는 내부 온도와 바닥면(기저부)의 상태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열 체제(Thermal Regime)로 분류된다. 온난 빙하와 한랭 빙하다. 빙하의 거대한 무게는 바닥면에 엄청난 압력을 가한다. 물은 압력이 높아지면 0℃보다 낮은 온도에서도 녹는 성질(압력 융점)을 가지고 있다. 온난 빙하는 두꺼운 얼음의 압력과 지구 내부에서 올라오는 지열 덕분에 바닥면의 얼음이 녹아 얇은 수막(물층)을 형성하게 된다. 이 물이 윤활유 역할을 하면서 빙하가 지반에 붙지 않고 미끄러져 내려갈 수 있게 만든다.  &nbsp;  다시 말해 빙하는 바닥 지반(암반)에 단단히 얼어붙은 채 움직이는 빙하(한랭 빙하)와 지반에 얼어붙지 않고 그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빙하(온난 빙하)로 나뉜다. 빙하를 바라보았을 때 주변에 물이 콸콸 흐르고, 얼음 겉면에 흙돌더미가 잔뜩 섞여 있으며 표면이 거칠게 찢어져 있다면 육안으로도 지반에 붙지 않고 미끄러지는 온난 빙하임을 알아챌 수 있다. 한랭 빙하가 거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은 움직임이 매우 적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느리게 이동하기 때문이다.  &nbsp;  저자는 물이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의사과학인 워터 메모리 가설(감정이나 정보를 물이 기억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빙하와 환경 과학 관점에서 물이 지구의 역사와 환경 변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는 의미다. 1) 수천~수만 년 동안 얼어붙은 빙하(얼음 상태의 물)는 그 당시의 대기 성분, 이산화탄소 농도, 화산재 등의 정보를 그대로 가두어 보존한다. 즉, 물이 과거 지구 환경의 '기억'을 품고 있는 셈이다. 2)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늘어나 물이 산성화되거나, 도로의 염분, 화학물질 등이 녹아들어 유입되면 물은 그 성분 변화(총용존고형물 등)를 고스란히 담아낸다.(과학자들은 이를 센서로 측정해 낼 수 있다. 3) 빙하 아래 녹은 물(융빙수)이 단순한 무생물이 아니라 미생물이 가득한 활발한 생태계이며, 바다로 흘러가며 영양분과 탄소를 전달하는 지구의 생명줄 역할을 한다.  &nbsp;  저자는 현장 탐사는 결코 연구가 주요 목적이 아니라는 것, 주요 목적은 생존이고 운이 좋다면 연구를 겸할 수 있을뿐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빙하 아래의 생명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빙하 아래에는 빛이 닿지 않는다. 부서진 암석과 물이 있을뿐이다. 그렇다면 이 깊고 어두운 지하 세계에서 생물이 생존할 수 있을까?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다시 황철석에 들어 있는 철과 황으로 눈을 돌렸다.&nbsp;두 원소 모두 수십억 년 전 태곳적부터 지구상에 존재했다. 과학자들은 고대 지구에서 빛 대신 화학 에너지를 사용하는 화학합성 영양 생물이라는 미생물이 번성했다고 보고 있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화학반응은 에너지를 방출하며 일부 미생물은 그것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빙하 밑에서 황철석이 산소와 반응한다면 암석의 황은 산화 반응을 통해 황산염으로 전환되고 여기서 생성되는 에너지로 미생물이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미생물이 암석을 소비하면 생존한다는 뜻이다.&nbsp;눈과 빙하의 차이가 있다. 눈의 재료인 얼음 결정 자체는 사실 물처럼 투명하지만 눈송이들은 매우 복잡한 육각 결정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그 사이사이에 무수히 많은 공기 방울이 갇혀 있다. 햇빛(백색광)이 눈 표면에 닿으면 빛은 얼음 결정과 공기 방울의 수많은 경계면에 부딪히며 모든 방향으로 무작위로 튕겨 나가는 난반사(산란)를 일으킨다. 가시광선의 모든 색(빨강~보라)이 흡수될 틈도 없이 고스란히 튕겨 나와 합쳐지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가장 밝은 색인 흰색으로 보인다.  &nbsp;  빙하는 수천~수만 년 동안 눈이 계속 쌓이면서 엄청난 무게로 압축되어 만들어진 얼음이다. 이 강한 압력 때문에 얼음 속에 있던 공기 방울들이 대부분 밖으로 빠져나가고 매우 밀도가 높고 투명한 거대 얼음 결정만 남은 것이다. 공기 방울(반사 유발자)이 사라진 빽빽한 빙하 조직은 빛을 즉시 튕겨내지 않고 얼음 깊숙한 곳까지 통과시킨다. 물(H₂O) 분자는 본질적으로 파장이 긴 붉은색 계열(빨강, 주황, 노랑)의 빛을 잘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햇빛이 두꺼운 빙하 내부를 길게 통과하는 동안 붉은빛은 얼음에 모두 흡수되어 사라지고 파장이 짧아 흡수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은 푸른빛 계열만 빙하 내부에서 산란되어 밖으로 빠져나오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신비로운 푸른색으로 보인다.   &nbsp;  빙하와 구별해야 할 것이 빙상이다. 빙하는 높은 산이나 고위도 지역에서 눈이 쌓여 다져진 얼음이 자체 무게로 천천히 흐르는 모든 얼음 덩어리를 지칭하며 빙상은 그 가운데서 면적이 5만 km²를 넘는 대륙 규모의 초대형 빙하를 말한다. 빙하 구혈(moulin; 溝穴)은 빙하 표면에 수직으로 뚫린 거대한 원통형 구멍으로 표면이 녹은 물이 빙하 바닥까지 흘러 들어가게 만드는 통로로 작용한다. moulin은 방앗간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물이 떨어지는 모습이 방앗간의 물레방아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nbsp;  어떻게 빙하 탐사와 같이 힘든 일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고 말하는 저자는 목표가 리더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실패했다면 다시 시도해라. 다시 실패해라. 더 낮게 실패하라"는 사무엘 베케트의 구절을 인용한다.(116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남극 대륙은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거대한 황무지다. 지금껏 인류가 뿌리내리지 못한 유일한 땅, 우리의 모든 상상을 뛰어넘는 미지의 땅으로 세계 지도에는 인간이 살 수 없는 흰색 공백으로 자리하고 있다.   &nbsp;  저자는 170cm 키에 체중이 54kg에 불과한 자신은 극한의 활동을 즐길 만큼 튼튼해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꽤 체력이 강인한 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남극대륙에서 발견한 가장 의미 있는 것은 표면의 대기 온도가 무려 섭씨 영하 80도에 달하는데도 남극 빙상 하부의 상당 부분이 젖어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166 페이지) 압력이 상당하면 부피가 작은 액체가 되려는 물의 성질로 인한 것, 지구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약간의 열과 빙하 저면의 암석 위로 얼음이 이동할 때 발생하는 마찰열 등이 두루 작용한 경우다.   &nbsp;  2015년 파리 협정을 통해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들이 지구의 평균 온도를 산업화 이전 시대와 비교해 섭씨 2° 이상, 이상적으로는 1.5° 이상 올리지 않겠다는 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 협약은 빙상이나 영구 동토층이 녹을 때 메테인이 야기하는 추가적인 온난화를 고려하지 않은 수치다. 빙상 아래 갇혀 있는 메테인 하이드레이트가 방출될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하며 이를 감안하면 우리는 화석연료 배출량을 훨씬 더 많이 줄여야만 온난화를 파리 협정에서 약속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177 페이지) 흥미로운 점은 남극 깊은 곳에 메테인 하이드레이트가 숨어 있다고 해도 대기로 빠져나오기 전에 덜 해로운 이산화탄소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이다. 빙상 밑에 서식하는 다른 미생물군은 메테인을 이산화탄소로 전환하여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nbsp;  저자는 매일 빙하로 건너 가는 길에 마치 연못에 잔물결이 펴지듯 조이스 빙하 앞으로 퍼져나간 울퉁불퉁한 빙퇴석 지대를 지나갔다고 말한다. 이 빙퇴석들은 이제는 소리도 없고 움직임도 없지만 과거에 빙하 주둥이가 전진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빙퇴석(moraine)은 빙하가 이동하면서 산과 계곡을 깎아내고 운반해온 바위, 자갈, 흙 등이 빙하가 녹은 자리에 그대로 쌓여 만들어진 언덕이나 지형을 말한다.   &nbsp;  저자는 자신이 파타고니아에 간 이유는 기후와 얼음, 물이 복잡하게 얽힌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서였지만 그것만으로는 2016년 한겨울에 슈테펜 빙하 언저리에 소박한 텐트 안에서 오돌오돌 떨며 밤을 지새운 연유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뒤로 저자는 자주 자문해 보았다고 한다. 자신이 파타고니아를 찾은 것일까? 아니면 파타고니아가 나를 부른 것일까?(193 페이지)   &nbsp;  저자는 글로프(GLOF)라는 것을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글로프는 빙하호 범람(Glacier Lake Outburst Flood)의 줄임말이다. 최근 일어난 히말라야 빙하 붕괴에 의한 네팔 대홍수가 하나의 예다. 저자는 자신의 모든 빙하 탐사가 그랬듯 파타고니아에 간 것도 답을 찾기 위해서였지만 자신이 찾은 답은 더 많은 의문을 낳았다고 말한다.(217, 218 페이지)   &nbsp;  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로 눈이라는 뜻의 히마와 거처라는 뜻의 알라야가 합쳐진 이름이며 서로 교차하는 세계의 산맥인 힌두쿠시, 카라코람, 히말라야를 모두 포함하기도 한다. 히말라야와 그 일대의 산맥은 북극과 남극을 제외하고 지구상에서 빙하가 가장 넓게 분포한 지역이어서 제3의 극지라 불리기도 한다. 그린란드와 남극대륙은 높게 솟은 봉우리와 골짜기를 거대한 빙상이 모조리 뒤덮고 있지만 히말라야 산맥에는 5만 개 이상의 곡빙하가 최대 해발 8849m 높이에 이르는 높은 봉우리들에서 슬금슬금 내려오고 있다.   &nbsp;  이 곡빙하들은 이 지역의 중요한 자원, 가장 기본적인 자원을 동결 상태로 저장하는 아시아의 급수탑이다. 히말라야의 빙하들은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며 운동 방식도 저마다 다르다. 겨울에 빙체 위에 내린 눈을 가둬놓는 빙하가 있는가 하면 여름 몬순에 물을 가두는 빙하도 있고 초타 시그리처럼 여름과 겨울에 모두 물을 가두는 빙하도 있다. 육지에서 종결되는 빙하도 있고 호수로 혀를 내밀고 있는 빙하도 있다. 알프스의 많은 빙하와 달리 히말라야 빙하들은 표면이 매우 지저분하고 높은 곳에서 떨어진 거친 암석이 층층이 쌓여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사실과 더불어 이곳의 빙하들은 3,000km 이상을 아우르는 산계에 걸쳐 있기 때문에 혹독한 날씨와 물자 수송을 감수하며 히말라야 빙하들을 탐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233 페이지)   &nbsp;  히말라야에는 암설(巖屑)이 많다. 히말라야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침식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암설보다 훨씬 작게 쪼개진 것을 암분(巖粉)이라 한다. 저자는 빙하와 샘이 정화와 생명 잉태의 힘을 가진 살아 있는 여신의 영역이라는 발상을 더없이 매력적이라고 소개하며 자신은 이런 믿음을 배척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nbsp;  저자는 2013년 여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일주일 뒤 어머니와 기막힌 대화를 나눴다고 말한다. 당시 저자는 슬픔에 잠긴 채로 어둑한 어느 영매의 방에 앉아 있었다. 달콤하고 진한 향냄새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저자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영매에게는 보이는 영혼이 나타나 자신이 저자의 어머니라며 실제 어머니의 이름을 말했고 어머니의 병명과 마지막에 느낀 감정도 정확히 묘사했다. 심지어 저자가 어머니의 결혼반지를 끼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nbsp;  저자는 사람이 죽으면 실제로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옮겨가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곳을 나왔다고 말한다. 저자는 파키스탄 카라코람 북부의 길기트 발티스탄이라는 지역을 소개한다. 이곳에서는 많은 이들이 빙하를 살아 있는 존재로 간주하고 성별로 구분하기도 한다. 어둡고 느리게 이동하며 물을 거의 내주지 않는 빙하(암설 덮인 빙하)는 남성이고 흰색이나 푸른색으로 빛나고 많은 물을 내주는 빙하(깨끗한 빙하)는 여성이다.   &nbsp;  저자는 현장 탐사를 할 때 극심한 불편도 잘 참아내는 습성으로 병을 키워 뇌종양 수술을 받기도 했다. 저자는 자신이 다룬 빙하들은 자신이 빙하 연구를 시작한 25년 전(2019년 기준)부터 지금까지 주변 대기와 바다의 온난화 수준, 그리고 각각의 특성 및 상황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하나같이 계속해서 줄고 있다고 말한다. 2019년 8월 기후변화로 소멸 위기에 처한 첫 아이슬란드 빙하인 오크예퀴들의 장례식이 열렸다. 오크 화산의 빙하라는 뜻을 가진 오크예퀴들은 기후 위기로 지난 10년간 90% 이상이 녹아내려 2014년에 공식적으로 빙하의 지위를 잃었다. 슬픔으로 대해야 할 상징적인 장면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842/81/cover150/89839298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8428106</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적도까지 얼음으로 덮였던 눈덩이 지구와 그것을 끝낸 불, 그로부터 살아나온 생명 이야기 - [얼음과 불의 탄생, 인류는 어떻게 극악한 환경에서 살아남았는가 - 빙하와 화산을 통해 지적인 생명체의 기원을 추적한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98425</link><pubDate>Sun, 06 Sep 2026 19: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984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036359&TPaperId=174984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790/91/coveroff/k90203635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036359&TPaperId=174984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얼음과 불의 탄생, 인류는 어떻게 극악한 환경에서 살아남았는가 - 빙하와 화산을 통해 지적인 생명체의 기원을 추적한다</a><br/>그레이엄 실즈 지음, 성소희 옮김, 최덕근 감수 / 웨일북 / 2025년 02월<br/></td></tr></table><br/>과학은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의심을 따져보는 것이라 말하는 그레이엄 실즈의 책이다. 지질학자이자 동위원소 전문가인 저자가 바라보는 지질학은 궁극의 미해결 사건이다. 지질학 탐정은 마치 사건을 과학적으로 수사하듯 무자비한 시간에 갉아 먹히고 남은 몇 안 되는 자그마한 퍼즐 조각에서 증거를 모아 종합한다. 저자는 최초의 동물 조상은 얼음에서 태어나 불의 품에 안겨서 자랐고 암석의 풍화작용에서 에너지원을 얻었다고 말한다. 이는 눈덩이 지구 이론과 관련 있는 말이다.   &nbsp;  약 7억 년 전 지구는 적도까지 모두 얼어붙는 빙하기인 눈덩이 지구 시절을 겪었다. 저자는 눈덩이 지구 이야기를 하며 소중한 동일과정설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동일과정설은 현재는 과거를 푸는 열쇠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저자의 말은 동일과정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동일과정설을 잠시 보류하라는 것은 현재에는 눈덩이 지구 같은 사건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음(陰; 마이너스)의 피드백이 없었다. 지구는 스스로 기후를 조절하는 음의 피드백 즉 안정화 작용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nbsp;  가령 지구는 더워지면 암석의 풍화작용이 활발해져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기온을 낮추고, 추워지면 풍화작용이 느려져 이산화탄소가 다시 쌓여 따뜻해진다. 그러나 선캄브리아 시대에는 이 마이너스 피드백 시스템이 고장나 얼음이 햇빛을 반사해 지구를 얼게 했다. 이를 현재의 지구 온난화에 적용하면 어떨까? 지구가 더워지면 비가 많이 내리고 화학 반응이 빨라져 암석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바다 저편으로 격리하는 천연 에어컨 시스템이 가동한다.   &nbsp;  하지만 현재 인간에 의해 가속화되는 온난화를 막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시간 규모의 차이 때문이다. 천연 에어컨 시스템은 수십만 년이 걸리고 인간의 작용은 수십 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일어났다. 저자는 믿어지지 않는 상황을 상상하려면 현재는 과거를 열쇠라는 지질학의 전통적 주문을 버리고 레슬리 폴스 하틀리(1895-1972)가 1953년에 발표한 소설 [중개자; The Go-Between] 속의 유명한 대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과거는 외국이다. 과거에서는 사람들이 다르게 산다."라는 말이다.(92 페이지)   &nbsp;  빙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물이 얼음 속에 갇혀서 바다는 염분 함량이 높고 얼음장처럼 차갑고 밀도가 극도로 높은 성질을 보였을 것이다. 지질학자들에게 7억 년 전 지구는 얼음으로 뒤덮이고 바다에 철이 가득한, 완전히 다른 규칙으로 작동하던 외국인 셈이다. 동일과정설의 제창자가 살았던 시대는 7억 년 전 지구 상황이 밝혀지기 전이었다. 7억 년 전 지구 상황이 밝혀진 것은 1990년대 이후다.   &nbsp;  학계는 덮개 돌로스톤이 전 지구적으로 빙하가 후퇴하던 시기에 형성되었다고 뒤늦게 합의했다. 이 합의 내용은 덮개 돌로스톤이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시간을 표시하는 존재이기에 층서학계의 귀중한 보물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97 페이지) 덮개 돌로스톤은 눈덩이 지구의 얼음이 녹아내린 직후 바다 전체에 탄산염 성분이 과포화되어 수천 년에서 수만 년이라는 지질학적 시간 단위에서는 짧은 시간에 급격히 침전되어 형성되었다.  &nbsp;  덮개 돌로스톤은 7억 년 전과 6억 3,500만 년 전 전(全) 지구의 얼음이 동시에 녹으면서 아프리카, 북미, 남미, 아시아, 호주까지 전 세계 모든 바다 밑바닥에 동시에 깔렸다. 저자는 석고를 강조한다. 석고는 지구가 얼어붙었다가 녹아내린 격변의 흔적이자 대기에 산소를 채우고 동물의 뼈를 만들어낸 타임 캡슐이다.   &nbsp;  화산활동으로 이산화탄소가 쌓여 빙하가 순식간에 녹아내리자 지구는 엄청나게 뜨겁고 습한 기후로 변했다. 이때 격렬한 풍화작용으로 암석 속의 칼슘이 대거 바다로 흘러 들어 황산염과 결합해 거대한 석고 퇴적층을 만들었다. 석고층은 지구가 극단적인 추위에서 극단적인 더위로 급격히 변했음을 보여주는 지질학적 증거다. 7억 년 전 눈덩이 지구의 증거는 적도에서 발견된 빙하 퇴적암, 빙하가 떨어뜨린 이국적인 바위, 7억 년 전 퇴적층에서 발견된 호상철광층 등이다.   &nbsp;  퇴적암은 층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두께의 수평층으로 발견된다. 퇴적층마다 위쪽으로 갈수록 입자가 작아지는 상향 세립화(upward fining)가 나타난다. 상향 세립화는 퇴적물을 운반하던 물이나 바람의 에너지가 시간이 지나면 따라 점점 약해질 때 제한적으로 나타난다. 저자는 지질학자는 변호사처럼 정황 증거를 바탕으로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말한다. 자백은 전혀 없고 결정적 증거는 거의 없지만 전 세계의 과학자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개연성이라는 저울을 써서 증거를 숙고한다고 말한다.   &nbsp;  더 많은 증거를 확보한다고 해서 학자들의 해석이 하나로 모이지는 않는다. 가설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통합된 상황 증거의 힘이다.(57 페이지) 지질학에서는 지질 도에 표시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암석의 묶음을 층(formation)이라고 부른다. 보통 층의 이름은 처음 밝혀진 장소를 따서 짓는다. 덮개 돌로스톤은 돌로마이트라는 광물로 이루어진 퇴적암층이다.   &nbsp;  전 지구적 빙하기가 끝난 후 빙하 퇴적층 바로 위에 모자처럼 얹혀서 형성된 백운암 지층을 말한다. 빙하 퇴적층은 빙하에 의해 한데 모인 돌과 진흙 등이 빙하가 녹으면서 땅에 쌓여 만들어진 규칙없이 어지러운 지층을 의미한다. 덮개 돌로스톤은 그 지층 위에 형성된 칼로 자른 듯 매끈하고 깨끗한 탄산염 바위층이다. 최근에 빙하가 녹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빙하 시대를 살고 있다.   &nbsp;  이탈리아 북동부에 돌로미티 산맥이 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지질학자이자 광물학자인 데오다 돌로미외가 이탈리아 산맥을 여행하던 중 일반 석회암처럼 생겼지만 산에 반응하는 속도가 다른 특이한 탄산염 바위를 발견하고 샘플을 채취했다. 마그네숨 성분으로 인해 산에 강하다는 의미다. 돌로미외가 탄산염 바위를 발견한 산맥이 돌로미티라고 명명되었다. 눈덩이 지구 가설은 얼음이 지구 전체를 뒤덮은 탓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극단적인 수준에 이르렀고 마침내 온실 효과가 완전히 얼어붙은 행성의 높은 알베도를 극복했다고 말한다.   &nbsp;  지구가 얼음으로 덮이면 증발이 일어나지 않아 비가 내리지 않는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빗물에 녹아 내리면 육지의 규산염 광물을 화학적으로 녹이게 되고 칼슘 이온과 탄산 이온이 결합해 바다로 흘러가 탄산염이 되어 갇히는데 비가 내리지 않으니 이산화탄소 농도가 계속 올라가고 화산활동으로 이산화탄소가 계속 증가해 농도가 극단에 이른 것이다. 결국 눈덩이 지구를 끝낸 요인은 눈덩이 지구 자체에 있었던 것이다.   &nbsp;  전 지구적인 빙하 작용의 존재를 확실하게 밝히려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지구 물리학의 도움을 빌려야 한다. 열대 지역이 얼음으로 덮였다는 정황 증거가 상당히 많이 쌓이자 크리오스진기의 빙하기를 향한 관심이 마침내 부활했다. 이 부활을 이끈 주역은 지구의 과거 자기장에 관한 연구였다. 이 연구는 저위도의 빙하 작용이 그토록 파멸적이었던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한 눈덩이 지구 가설로 이어졌다.   &nbsp;  눈덩이 지구 가설을 제기한 조 커쉬빙크는 행성 전체가 얼음으로 덮인 후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으리라고 추측했다. 증가한 알베도가 불러온 효과는 온실가스가 수백만 년 동안 점진적으로 축적되어야만 상승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113 페이지) 저자는 요즘 우리는 이산화탄소 배출이 지구 온난화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지만 온실 효과 자체는 본래 해롭지 않다고 말한다.   &nbsp;  저자는 단어의 뜻이 너무도 명백해서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화석연료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탄소 배출과 흡수를 연결하는 고리는 화학적 풍화작용이다. 탄산염 암석의 풍화도 탄산염 퇴적으로 이어지지만 규산염 암석의 풍화와 똑같은 효과를 내지는 않는다. 따뜻한 환경에서는 이산화탄소의 용해도가 낮아진다.   &nbsp;  탄산염 퇴적은 오직 규산염 풍화와 연계될 때만 이산화탄소의 순 흡수원이 된다. 전 지구가 얼음으로 뒤덮였다는 사실을 증명할 퇴적학, 지구 물리학적 증거는 이제 압도적으로 많다. 저자는 규산염 풍화작용과 장기적 탄소 순환은 천천히 정상 상태를 회복했다고 말하며 훈훈한 해안과 얼어붙은 불모지가 정말로 나란히 존재했다고 설명한다.(126 페이지)   &nbsp;  다이아믹타이트와 텍토닉 멜란지가 있다. 외관상 매우 흡사하지만 전자는 퇴적작용의 산물이고 후자는 지각변동의 산물이다. 아주 오래된 퇴적암의 연대를 충분히 정확하게 밝히는 일은 매우 어렵다. 여기서 충분히 정확하다는 말은 오차 정도가 100만 년이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제일 나은 방법은 화석이나 동위 원소 함량을 바탕으로 상대적 연대를 구하는 것이다.   &nbsp;  대상에 포함된 방사성 동위원소의 반감기를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다면 방사성 붕괴를 활용해서 연대를 측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퇴적물에는 이 방법을 적용할 수 없다. 퇴적물을 이루는 성분은 훨씬 더 오래된 암석이 풍화된 후 강물에 실려 바다로 운반된 쇄설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로의 양을 대응 시켜볼 수 있는 독립적 붕괴 계열이 세 개 있는 덕분에 연대를 극도로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고 말한다.   &nbsp;  요즘에는 수억 년 전에 발생한 사건이라도 오차범위를 단 수만 년 이내로 좁혀서 연대를 측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서로 독립적인 세 개의 붕괴 계열은 우라늄 238, 우라늄 235, 토륨 232다. 지구의 나이를 측정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지르콘이라는 단단한 모래 알갱이가 있다. 이 알갱이가 처음 만들어질 때 우라늄 238, 우라늄 235, 토륨 232라는 방사성 원소가 우연히 함께 갇히게 된다. 이들은 각기 독립적이다.   &nbsp;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저자는 우리가 전 지구적인 빙하 작용처럼 터무니없이 혼란스러운 현상도 받아들일 수 있다면 마침내 과거를 진정으로 다른 장소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동일과정설이라는 신성한 신조를 버린다면 새롭고 흥미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말한다. 대체 무엇 때문에 지구 기온이 이처럼 급락했을까? 혹시 눈덩이 지구 시기가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nbsp;  저자는 자주 현재가 과거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선입견을 버려야 할 것이라고 언급한다. 선캄브리아 시대 지구 시스템을 이해하는데 현대의 탄소 순환을 적용해야 할까? 신원생대의 탄소 순환이 오늘날의 탄소 순환과 비슷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빙하 작용이 없던 기간이라고 해도 당시에 탄소 순환이 현재와 비슷할까? 먼 과거에도 생물권에서 탄소의 체류 시간이 고작 10만 년이었다고 굳게 믿을 수 있을까?   &nbsp;  크리오스진기 빙하기는 생명체 진화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물론 확실한 동물 화석은 크리오스진기 이후에 형성된 암석에서만 발견되며 초기 생명체는 대부분 미생물이었다. 그러나 오래도록 이어진 빙하기는 생명을 앗아가는 재앙이 아니라 이후에 복잡한 생명체가 출현하는 기틀이 되었다. 캐나다의 지질학자 레지널드 달리는 빈약한 암석 기록을 비난하는 대신 선캄브리아 시대의 동물이 몸에 화석이 될 만한 단단한 부분이 없어져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고 보았다.   &nbsp;  요즘은 캄브리아기가 가장 오래된 삼엽충보다 2천만 년 먼저 시작되었다고 본다. 대기에는 GOE(Great Oxygen Event)를 통해 23억 년 전에 처음 산소가 공급되었고 해양에는 5억 7천만 년 전 신원생대 산소 발생 사건이 일어났다. 현무암의 높은 인 함량이 해양을 비옥하게 하고 유기물 매장을 촉진해서 한랭화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가설이 있다. 궁극적으로 인산염은 화학적 풍화작용으로 생겨난다. 그러므로 눈덩이 지구 이후처럼 풍화 속도가 높았던 시기는 인 생산이 대폭 늘어난 시기와 일치하리라고 당연히 예상할 수 있다.(275 페이지)   &nbsp;  눈덩이 지구 이후에 풍화 속도가 빨랐던 것은 눈덩이 지구를 끝낸 초온실 효과 때문이다. 저자는 생명체의 급작스러운 확산(다윈의 딜레마)이 조산운동과 산소 모두와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293 페이지) 조산 운동은 대기 및 해양의 산소 농도를 급격히 높이는 기폭제가 되며 이로 인해 확보된 풍부한 산소가 생명체의 폭발적인 진화와 확산을 이끌었다. 지구 시스템은 태양 에너지와 판구조운동에 의해 변해왔다. 새로운 생태 기회에 가장 적합한 생명체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nbsp;  하지만 기후변화와 해양 무산소 조건이 결합해 생물 진화를 되돌려 놓는 바람에 대량 멸종 사건이 생길 때마다 동물은 무수히 타격을 입었다. 23억 년 전 GOE 이후 지구가 변화하고 이런 재앙이 벌어지는 데에는 황 순환과 여러 피드백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빙하 작용은 동물이 진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환경을 마련했다. 화산활동은 지구의 온실 담요를 두껍게 만들어서 눈덩이를 녹였다. 계속되는 풍화작용 덕분에 바다에 영양소와 산소가 풍부해졌고 생명체가 이를 무기로 군비 확장 경쟁에 나선 끝에 캄브리아기 생명 대폭발이 일어났다.   &nbsp;  저자는 우리가 탄 차를 여기까지 안내한 존재는 얼음이었을지 몰라도 그 차의 운전대를 잡은 존재는 태고의 불이었다고 말한다.(364 페이지) 저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지식의 발전은 우연한 천재성과 운 좋은 발견에 달린 데다가 가끔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뒤로 물러서 기도 하지만 지식이 나아가는 궤도는 무작위가 아니라고 말한다. 지식에는 방향이 있다. 괜히 과학 진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생물 진화는 우연과 우발적 사고에 의지하며 눈덩이 지구나 대량 멸종 같은 명백한 좌절을 겪기도 한다.   &nbsp;  하지만 우리 지식과 마찬가지로 더 커다란 복잡성을 향한 외길을 꿋꿋하게 걸어간다. 저자는 크리오스진기의 빙하기는 동물이 더 진화하는 데 필수적이었다고 말한다. 오히려 진정한 생물 재앙은 영하의 기온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환경에 적응한 생명체가 느닷없이 극단적으로 다른 기후를 만났을 때 일어났을 것이라고 말한다. 생명체는 크리오스진기의 얼어붙은 환경에서 확실히 살아남았다.   &nbsp;  하지만 생명체의 에너지 대사가 거의 멈추는 수준으로 아주 느려졌을 테니 당시 지구가 생명체의 이상적인 환경이었다고는 볼 수 없다. 게다가 전 지구를 뒤덮은 빙하에서 벗어나려면 화산활동이 일어나야 했는데 판구조운동이 생명체가 있는 행성에서 지속될 수 있다는 극단적인 견해를 따르지 않는다면 화산활동은 생물이 절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길은 판구조 운동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수많은 지질학자가 지각변동에는 액체 상태의 물이 윤활유로 작용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nbsp;  판구조 운동이 일어난 결과 최초의 높은 산맥이 솟아오르고 오늘날과 비슷한 암석 순환이 시작되었다. 물이 암석과 상호작용해서 수소를 배출하는 과정을 사문석화 작용이라고 한다. 저자는 "대사 반응은 폭포 가장자리에서 회오리치는 소용돌이와 비슷하다. 갓 만들어져 엔트로피가 낮은 오아시스인 소용돌이는 에너지를 방출하는 부모인 폭포 없이 존재할 수 없다. 반대로 폭포는 더 정교하게 구성된 자식의 존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생명체도 마찬가지다."란 말을 한다.   &nbsp;  동물은 얼음에서 태어나 석고 염분에서 나온 산소 덕분에 번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를 점점 더 많이 생산하는 대사의 진화와 더 커지고 복잡해진 생물권을 지탱한 주인공은 펄펄 끓는 화산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양과 타오르는 태양에서 연료를 공급받은 산화력이 갈수록 증가한 현상이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790/91/cover150/k90203635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7909189</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지구의 음악˝ 즉 지질학 이상의 지구과학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책 - [지질학, 지구사 그리고 인류 - 어느 지질학 입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92754</link><pubDate>Thu, 03 Sep 2026 23: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9275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443401&TPaperId=174927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85/coveroff/89704434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443401&TPaperId=1749275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질학, 지구사 그리고 인류 - 어느 지질학 입문</a><br/>장기홍 지음 / 전파과학사 / 1991년 01월<br/></td></tr></table><br/>현대 지질학의 기원은 1788년이다. 이 해는 스코틀랜드의 지질학자 제임스 허턴이 동일과정설을 발표한 해다. 현재는 과거의 열쇠란 개념을 주지(主旨)로 하는 이론이다. 지금 너무도 당연한 이 이론은 나왔을 당시에는 충격적이고도 위험한 이론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 홍수 같은 격변설을 부정한 이론이기 때문이다. 지층누중(地層累重) 이론도 그렇다. 저자는 씨를 심는 자가 있고 추수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말이 있거니와 학문의 세계에 있어서도 자료를 모으는 사람들이 있고 이론 또는 생각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는 일이 허다하다고 말한다. 아이디어가 먼저 있고 자료가 후에 수집되어 그 아이디어를 뒷받침하는 예도 많다고 말한다.   &nbsp;  격변설을 믿은 학자들은 부정합(不整合) 지층을 보면서도 이를 오랜 시간의 흔적이 아니라 대홍수나 지각 변동 같은 거대한 재앙이 순식간에 휘몰아쳐 지층을 뒤틀고 깎아낸 흔적으로 해석했다. 부정합이란 과거 지각변동의 흔적이다. 핵과 맨틀의 화학성분이 아주 다르다는 사실은 지구의 진화를 논의하는데 중요한 출발점이다. 지구가 변화 없이 처음 성분 그대로 뭉친 덩어리라면 내부 성분이 균일해야 하지만 겉을 감싸는 맨틀은 규산염(산소와 규소 중심) 광물로 이루어졌고 핵은 철과 니켈 같은 무거운 금속으로 채워져 있다. 이 극적인 차이는 지구가 태어난 직후 거쳤던 가장 거대하고 역동적인 사건인 지구 분화 과정(Differentiation)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다.   &nbsp;  지구는 약 45억 년 전 수많은 소행성과 우주 먼지들이 충돌하며 뭉쳤다. 이때 발생한 엄청난 충돌 열과 방사성 원소의 붕괴 열로 인해 지구 전체가 완전히 녹아내린 마그마 바다 상태가 되었다. 지구가 액체 상태로 녹아내리자 무거운 원소인 철(Fe)과 니켈(Ni)은 중력에 의해 중심부로 가라앉아 핵을 형성했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산소(O), 규소(Si), 알루미늄(Al), 마그네슘(Mg) 등의 성분은 위로 떠 올라 맨틀과 지각이 되었다. 두 층의 화학 성분이 다르다는 것은 지구가 과거에 완전히 녹았다가 성분별로 분리되는 대대적인 화학적 체질 개선을 거쳤음을 뜻한다. 핵과 맨틀의 성분 차이는 단순한 구조적 특징이 아니다. 지구가 뜨거운 원시 행성에서 1) 스스로 내부를 정렬하고(분화), 2) 자기장을 만들어 생명을 보호하며, 3)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행성(판구조론)으로 진화해 온 역사의 첫 페이지를 열어주는 열쇠다.   &nbsp;  지구는 내부가 고온임에도 고압으로 인하여 맨틀이 완전한 용융 상태에 이른 적이 없다. 지구 내부는 고온임에도 고압이어서 녹지 않는다. 반면 빙하 겉면은 압력을 받지 않고 속은 압력을 받아 녹는다고 한다. 이는 모순되게 보이지만 둘 다 가능한 일이다. 지구 내부를 구성하는 암석(맨틀)이나 금속(내핵)은 아주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규칙을 따르는 물질들이다. 물질은 고체에서 액체가 될 때 부피가 늘어난다. 분자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자리를 더 많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nbsp;  그런데 지구 내부 깊은 곳에서처럼 엄청난 압력으로 사방에서 누르면 물질이 부피를 늘리며 액체로 변하고 싶어도 변하지 못한다. 따라서 녹는점(융점)이 강제로 높아지게 된다.(물질의 녹는점이 강제로 높아진다는 것은 원래라면 액체로 녹아내려야 할 온도에서도 물질이 녹지 못하고 고체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는 의미다.) 지구 중심부로 갈수록 온도가 엄청나게 높아지지만 내핵이 고체이고 외핵이 액체인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내핵에 가해지는 압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기 때문이다. 겉보다 온도가 훨씬 높아도 누르는 힘이 더 강하기 때문에 맨틀의 대부분과 내핵은 녹지 못하고 단단한 고체 상태를 유지한다.   &nbsp;  반면 빙하를 이루는 물(얼음)은 전 우주에서 몇 안 되는 아주 독특한 성질을 갖는다. 얼음은 일반적인 물질과 반대로 고체(얼음)에서 액체(물)로 녹을 때 오히려 부피가 줄어든다. 얼음일 때 빈 공간이 많은 육각형 구조를 가졌다가 녹으면서 그 구조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얼음이 물에 뜨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빙하 깊은 곳에서 거대한 얼음 무게로 꾹 누르면 얼음 입장에서는 압력이 가해지니까 부피가 작은 액체(물)로 변하게 된다. 압력을 가하면 녹는 점이 0도씨보다 낮아진다.(영하에서도 녹는다) 이 현상을 복빙 현상(Regelation) 또는 압력 융해라고 한다.   &nbsp;  빙하 밑바닥은 엄청난 얼음 무게를 받기 때문에 즉 고압 상태이기에 영하의 온도임에도 불구하고 얼음이 살짝 녹아 물(윤활유 역할)이 된다. 덕분에 빙하가 미끄러지듯 이동할 수 있다. 압력을 받지 않는 빙하 겉면은 기온이 영하라면 녹지 않고 얼어 있다. 빙하 자체의 거대한 무게(압력)를 가장 크게 받는 곳은 수백~수천 미터 아래에 있는 빙하의 맨 밑바닥(지표면과 맞닿은 곳)이며 압력 때문에 그곳부터 녹기 시작한다. 암석은 고온의 경우 액체로 변하게 되지만(녹지만) 압력이 높으면 고체 상태가 되고(부피가 작은 상태를 유지하고), 물은 압력이 가해지면 액체 상태가 된다.(부피가 작은 상태를 유지한다.)   &nbsp;  물은 액체일 때 부피가 작고, 물 외의 물질은 고체일 때 부피가 작다. 물 외의 물질이 액체일 때 부피가 큰 것(고체일 때 부피가 작은 것)은 분자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자리를 더 많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물은 액체 상태일 때 부피가 작아 밀도가 높아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얼음은 육각형 구조여서 내부에 빈 공간이 많아져 액체인 물보다 부피가 더 크고 밀도가 낮아서 물 위에 뜨게 된다.   &nbsp;  저자는 달 속의 에너지가 달에 지질운동을 일으키기에 부족하지만 지구는 충분한 에너지를 보유하여 왔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열원은 지각에 농축된 방사성 원소다. 지구의 충분한 에너지는 끊임없는 지질운동을 일으킨다. 맨틀이 대류하고 대륙이 움직이며 화산이 터지는 이 역동적인 과정이 바로 지구를 살리는 축복이다. 지구 내부의 열에너지 덕분에 외핵의 액체 철이 움직이며 지구 자기장을 만든다. 이 자기장이 없다면 태양에서 오는 치명적인 우주 방사선 때문에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전멸했을 것이다.   &nbsp;  화산 운동은 지구 내부의 가스를 뿜어내 대기층을 만들었다. 또한 지각이 맨틀 속으로 말려 들어가고 다시 튀어나오는 과정을 통해 생명에 필수적인 탄소와 영양분이 지구 전체에 끊임없이 순환한다. 지질운동이 멈춘다면 지구의 기후 조절 시스템도 고장나고 말 것이다. 지구는 물, 물 외의 물질, 온도와 압력의 밀고 당기기로 인해 만들어지고 유지된 것이다.   &nbsp;  굳은 부분을 가진 생물이거나 그렇지 않은 생물이거나 그들에게 공통된 화석화의 요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빨리 묻혀 파괴를 피하는 것이다. 육지 생물은 멀리 운반되어서야 퇴적물 속에 묻히고 바다 생물은 죽은 그 자리에서 또는 짧은 운반을 거쳐 묻히는 것이 보통이다. 즉 바다 생물은 빨리 묻힐 기회가 훨씬 많다. 이 때문에 바다생물 화석이 훨씬 많다. 육지는 기본적으로 퇴적물이 쌓이는 곳이 아니라 깎여 나가는 곳(침식 지역)이기 때문이다. 교대 작용은 생물의 굳은 부분이 지하수에 용하여 용해되는 순간 그 지하수에 용해되어 있던 광물들이 그 자리에 침전함으로써 일어나는 작용을 말한다.   &nbsp;  이 교대 작용은 생물 본래의 미세한 구조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극히 점차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로부터 생물체 전부가 녹고 다른 광물이 그 자리를 메우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규산에 의한 교대 작용 즉 규화작용의 경우는 화석 연구에 있어서 흔히 주목할 만한 결과를 가져온다. 첫째로 이런 방법으로 보존된 화석이 흔히 매우 정교한 내부 구조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며. 둘째는 석회암 속에 규화된 화석들이 함유되어 있을 때 석회암을 염산에 용해시키면 훌륭한 화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nbsp;  이 책은 주요 단어들이 한자로 표기되었다. 이 가운데 黑色頁巖 같은 단어가 눈길을 끈다.(91 페이지) 엽암이라고 읽을까 아니면 혈암이라고 읽을까 궁금하다. 한글로 표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셰일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저자는 실제로 포항 지역의 延日 셰일이라고 말한다.(93 페이지) 저자는 왜 동물들이 캄브리아기 초에 껍질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말한다. 대기 중 산소가 충분해야 그 상층에 오존층이 생성되는데 이때는 아직 외계로부터 지구에 쏟아지는 자외선을 막아줄 오존층이 생기지 않은 때여서 보호막으로 껍질이 생긴 것이라는 가설이 있다. 과학자들이 바라보는 캄브리아기의 껍질은 오존층이 없어 쏟아지는 자외선을 막는 방패인 동시에 포식자의 이빨을 막는 갑옷이었다. 지구 내부와 외계의 거대한 환경 변화가 생명체들에게 단단한 외투를 입도록 강제한 셈이다.   &nbsp;  저자는 공룡 멸종이 몸집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115 페이지; 1991년에 처음 책이 나왔다.) 1991년은 소행성 충돌설이 최초로 제안되기는 했으나 과학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100% 정설'로 완전히 굳어지기 직전의 과도기였다. 당시 출판된 책들이 최신 과학 이론을 실시간으로 반영하지 못했거나 저자가 여전히 과거의 고전적인 학설을 지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저자는 우리에게는 고쳐야 할 점도 많고 선진(先進)에게서 배워야 할 것도 많음이 사실이지만 어떤 활동에도 대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우리의 영원한 자원인 마음씨를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 말한다.(175, 176 페이지)   &nbsp;  저자는 사람은 지각변동의 고적(古蹟) 위에서 기거하고 있다고 말한다. 고고학자가 사전사학도(史前史學徒)라면 지질학자는 사전사전사학도(史前史前史學徒)라고 말한다.(181 페이지) 저자는 지질학은 생성과정을 문제삼는 학문이라 말한다. 지질학(Geology)은 지구를 이루는 물질들의 생성과정(Origin and Formation Process)을 규명하는 것을 가장 본질적인 목표로 삼는다. 단순히 현재의 상태를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암석과 지층이 과거에 어떤 환경에서, 어떤 물리·화학적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가?라는 역사적 원인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nbsp;  저자는 석탄은 햇빛의 통조림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돌이 일종의 통조림이라 말한다. 석탄이 고대의 햇빛과 생명 에너지를 담은 통조림이라면 모든 돌(암석)은 그 돌이 만들어지던 당시 지구의 '환경, 기후, 지각 변동의 순간'을 밀봉해 놓은 타임캡슐이자 정보의 통조림이다. 저자는 시간이란 요소는 시험관에 넣거나 기계에 걸 수 없으므로 지질학적 연구대상 가운데는 실험실에서 재현시킬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지질학도는 먼저 현재 지구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상과 과정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그것을 과거에 적용시켜 과거 지질 시대의 일들을 해석하게 된다. 그래서 지질학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현재는 과거의 열쇠라는 표어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 아니라 온신이지고(溫新以知故)다.   &nbsp;  그러므로 지질학도에게 요청되는 제3의 소질은 풍부하고도 건전한 상상력이다. 또한 거꾸로 지질학적 훈련은 매우 효과적으로 사람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준다. 지질학도들 가운데 막대한 수가 판구조의 원리를 응용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실로 지질학에 새로운 활력이 불어넣어졌다. 지질학의 혁명이 일어났다고들 한다. 지질학의 이름마저 지구학으로 바꿀 단계가 왔다는 주장이 유력하다.(189 페이지) 과거의 지질학이 죽어있는 돌을 분석하는 학문이었다면 현대의 지구학은 기후변화, 환경오염, 화산과 지진, 자원 고갈 등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지구 전체의 변화를 다루는 역동적인 학문이 되었다. 돌(地質)이라는 글자에 갇혀있기엔 지구(地球)는 너무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움직이고 있다.   &nbsp;  태평양에는 심해동물군이 있으나 동해에는 심해동물군이 없다. 이는 동해가 태평양의 잔류물이 아니라 태평양과는 별개로 생겨났고 역사가 짧아 아직 심해동물군의 생태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저자에 의하면 온습(溫濕)한 저평지대(低平地帶)에 있어서 강우량의 1/3은 지표수가 되고, 1/3은 증발되고, 1/3은 지하수가 된다.(215 페이지)  &nbsp;  단층이 처음 생길 때도 지진이 일어나지만 멈추었던 단층이 다시 운동할 때도 지진이 일어난다. 우리가 겪는 파괴적인 대형 지진의 대부분은 처음 생기는 단층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단층이 다시 움직일 때 발생한다. 지진은 탄성체만이 일으킨다. 탄성체(Elastic body)란 외부에서 힘을 가하면 모양이 변했다가 힘을 제거하면 원래의 모양과 크기로 완벽하게 되돌아가는 성질(탄성)을 가진 물체를 말한다.   &nbsp;  20세기 구조지질학의 발전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독일의 천재적인 지질학자 한스 클로스(Hans Cloos; 1885~1951)는 지질학은 지구의 음악이란 말을 했다. "황홀했던 여행의 나날 동안 문득 내 머릿속에 떠올라 수년 동안 몇 번이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생각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지질학이 지구의 음악(Geology is the music of the earth)이라는 생각이다."   &nbsp;  한스 클로스는 첼로 연주에 능하고 그림을 사랑했던 예술가적 기질이 충만한 과학자였다. 한스 클로스는 우리가 자연을 사색함에서 기쁨을 맛보는 까닭도 우리 자신의 혼(魂)의 음악과 지구의 음악의 조화 때문이 아니겠는가?란 말을 했다. 한스 클로스에게 지질학이란 단순히 돌의 성분을 외우고 지도를 그리는 딱딱한 학문이 아니었다. 지질학을 통해 지구의 생성과정과 메커니즘을 배우는 것은 지구라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악보를 읽는 법을 배우는 과정과 같다. 한스 클로스는 지구 지각이 찢어지거나 부러지는 거대한 지질학적 과정을 실험실 책상 위에서 완벽하게 재현해 낸 혁신적인 실험인 점토 축소 모형 실험(Scaled Clay Model Experiment)을 실행한 과학자였다.   &nbsp;  "With mind and hammer"라는 말이 있다. 지질학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숭고하게 여겨지는 전통적인 모토이자 라틴어 격언인 'Mente et Malleo'를 영어로 번역한 이 말은 '사색과 망치로' 또는 '지성과 망치로'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저자의 책은 한자가 많고 글씨체가 작아 읽기 불편하지만 읽을 만하다. 한스 클로스란 과학자를 알게 된 것이 수확이고 다행이다. 지질학자는 아니지만 지질공원 해설사로서 감사하고 만족스럽다. 좋은 지질학 아니 지구과학 책을 많이 찾아 읽어야겠다. 야외조사기회도 가끔이나마 만들어야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3/85/cover150/89704434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8519</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Exodus가 난망한 거대한 늪에 빠진 기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87652</link><pubDate>Tue, 01 Sep 2026 21: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8765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12130016&TPaperId=174876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38/96/coveroff/k31213001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글로벌 warming이 아니라 글로벌 heating의 시대로 접어든 것 같다. 현재 지구의 온도 상승 속도는 인류 역사뿐만 아니라 지구 역사 전체를 통틀어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하게 빠르다. 가속 가열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지금의 기온 상승이 인간 때문이 아니라 태양 활동, 화산, 지구 자전축 변화 등 자연적 요인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nbsp;  하지만 자연적 요인만으로는 지금의 폭발적인 온도 상승 속도를 절대 설명할 수 없다. 만일 산업화 이후 인류가 지금과 다르게 마구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순환형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세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nbsp;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수준을 유지함에 따라 폭염, 한파, 초대형 태풍 같은 극단적인 이상 기후가 일상화되지 않고 예측 가능한 계절의 변화가 유지되었을 것이다. 석탄, 석유 대신 수력, 풍력, 조력, 초기 형태의 태양광 기술이 19세기부터 집중 연구되었을 것이다. 가뭄과 홍수로 인한 식량 위기가 적어 전 세계적인 기아 문제가 지금보다 훨씬 덜했을 것이다. 거주지가 사막화되거나 침수되어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수천만 명의 기후 난민이 발생하지 않아 국제 사회의 사회적 비용과 갈등이 크게 줄었을 것이다.  &nbsp;  화석연료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축복이자 문명의 존립을 흔드는 저주였다고 할 수 있다. 1) 전 세계에서 화석연료 연소 및 산업 공정으로 인해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나라는 중국, 미국, 인도 순이다. 2) 누적 순위는 미국, 유럽연합, 중국 순이다. 3) 국민 1인당 배출량을 기준으로 하면 미국, 호주, 대한민국, 사우디아라비아 순이다.   &nbsp;  우리나라는 기후 빌런 국가로 손꼽히고 있다. 그 이유는 1) 재생에너지 비중이 9~10% 수준으로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꼴찌 기록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고, 2) 전력 생산의 60~70% 이상을 여전히 석탄화력발전과 액화천연가스(LNG)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고, 3) 철강(포스코), 반도체·전자(삼성) 등 탄소를 다량으로 배출하는 중화학 공업과 제조업이 국가 경제의 뼈대를 이루고 있어 단기간에 탄소를 줄이는 것이 매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고, 4) 개발도상국의 기후 변화 대응을 돕는 기금(기후 재원) 분담이나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설정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억울한 점도 있을 것이다.   &nbsp;  우리나라가 설령 넷 제로(탄소중립)에 성공하더라도 다른 나라들이 탄소를 계속 배출한다면 우리는 기후 변화로 인한 타격을 거의 그대로 입게 된다. 대기는 국경 없이 전 지구를 하나로 순환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의 약 1.3~1.6% 수준에 불과하다.   &nbsp;  이번에 사고가 난 네팔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극히 미미하지만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실정이다. 네팔은 기후 불평등으로 인한 대표적 희생국이다. 얼마 전 한 탐방객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미국, 중국 등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는 관심이 없고 패권주의적 경향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세계가 암울하다고 하자 탐방객은 (선호하는) 미국을 (“빨갱이 나라”) 중국과 함께 논하는 것이 불편했던지 화난 얼굴을 했다.   &nbsp;  하지만 그 70대 여성 탐방객이 지지하는 트氏는 기후 위기를 사기라고 부르며 전면 부정하는 확고한 기후 변화 회의론자다. 마이클 마니아티스의 [분리수거에 진심인데 왜 지구는 뜨거워질까?]란 책이 나왔다.   &nbsp;  글로벌 기후 연구 기관인 카본 메이저스(Carbon Majors)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파리협정 이후 전 세계에서 배출된 온실가스의 80%가 단 57개의 화석연료 및 시멘트 기업에 의해 발생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   &nbsp;  전 세계에서 분리수거된 플라스틱 중 플라스틱 제품으로 재활용되는 비율은 9~1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기술적·경제적 이유로 매립되거나 소각로에서 불타며 엄청난 탄소를 뿜어낸다. 1970년대 미국의 대형 석유화학 기업들은 플라스틱 규제를 피하기 위해 재활용 마크를 만들고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nbsp;  "플라스틱은 죄가 없다, 분리수거를 제대로 안 한 소비자의 잘못이다"라는 프레임을 씌워 쓰레기 처리 비용과 도덕적 죄책감을 고스란히 개인과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긴 것이다.   &nbsp;  요즘 많이 떠도는 말이 화성 또는 달 테라포밍이다. 아메데오 발비 같은 천체물리학자가 지적하듯 테라포밍은 너무 복잡하고 어렵고 위험하고 비용이 너무 들어가는 일이다. 전 세계의 넷 제로(Net-Zero)를 달성하는 것이 화성 테라포밍보다 압도적으로 쉽고, 비용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적게 든다.   &nbsp;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환경 보호 캠페인이 아니라 문명 전체의 뼈대를 바꾸는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이다. 이번 빙하 붕괴에 의한 히말라야 대홍수는 충격 그 자체였다. 지금의 추세는 비관적인 생각을 갖게 한다. Exodus가 난망한 거대한 늪에 빠진 기분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38/96/cover150/k31213001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389603</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우리의 유일한 가주 가능 행성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가겠다고? - [당신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 - 생명체, 우주여행, 행성 식민지를 둘러싼 과학의 유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84529</link><pubDate>Mon, 31 Aug 2026 22: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845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932007&TPaperId=174845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68/23/coveroff/k2129320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932007&TPaperId=174845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당신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 - 생명체, 우주여행, 행성 식민지를 둘러싼 과학의 유감</a><br/>아메데오 발비 지음, 장윤주 옮김, 황호성 감수 / 북인어박스 / 2024년 08월<br/></td></tr></table><br/>우주에서 독보적으로 아름다운 우리 지구는 아름다울뿐 아니라 지금껏 알려진 유일한 생명의 행성이자 수십억 년 동안 큰 온도 변화를 겪으면서도 생존 가능한 상태를 유지한 기적적인 행성이다. 하지만 지구는 무수한 죽음 위에 핀 행성이다. 지구상에 출현한 모든 종(種)의 99% 이상이 멸종했다. 지금껏 다섯 번의 대멸종이 일어났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천체 물리학자인 아메데오 발비는 지구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구를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지구가 인류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지구에 완벽히 적응하도록 진화했다는 의미다.   &nbsp;  지금은 우주 탐사가 적극적으로 추진되는 시대다. 이 책은 우리 종의 장기적인 생존이 지구를 대체할 수 있는 행성을 찾는 것에 달려 있는지 아니면 다른 전략을 찾는 편이 나을지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책이다. 지구와 생명체에 심각한 기후 이상을 초래할 수 있는 것 가운데 화산 폭발을 빼놓을 수 없다. 약 75000년 전에 발생한 인도네시아 토바 화산이 폭발할 때 나온 먼지와 화산재가 태양 빛을 차단해 몇 년 사이에 지구 평균 온도가 5~15도 떨어졌다. 슬픈 현실은 우리의 생존에 가장 심각하고 즉각적인 위협은 우리 자신에게서 올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nbsp;  우리 시대는 인류가 지구를 자신들의 삶에 맞춰 변형시키는 행위가 매우 빠르고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우리가 이를 통제하기 어려운 시대다. 저자는 기술 진보가 우리 종의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게 할 것이라고 낙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방식의 진보라면 인류를 조기에 종말로 이끌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지구를 떠나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티븐 호킹은 지구를 떠나 우주에 식민지를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고, 마틴 리스는 대규모 우주 이주를 위험한 환상이라 말한다. 지구는 주거 지역으로 남기고 우주는 외곽 산업단지로 조성하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nbsp;  탈출 속도를 감안하면 지구를 떠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지만 아주 어렵다. 물체를 수직이 아닌 지구 표면에 평행하게 자전 방향으로 발사하면 훨씬 오랫동안 낙하를 지연시켜 지구 저궤도로 보낼 수 있다. 약 400km 고도에서 초속 약 7km(시속 약 28000km) 속도로 90분마다 지구 한 바퀴를 도는 국제우주정거장이 대표 예다. 지구 제궤도는 대략 고도 200~2000km 사이의 영역이다. 우주비행사들이 지구 저궤도에서 무중력과 같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중력이 약해져서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있는 우주선이나 우주 정거장이 지구를 향해 자유 낙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직접 지면을 향하지는 않고 대략 원형의 궤도를 돈다.   &nbsp;  지구 저궤도에 있는 우주선들은 여전히 지구 대기의 가장 바깥층인 열권과 외기권에 머물고 있다. 지구 표면으로부터 100km 이상의 고도를 카르만 라인(Karman Line)이라 한다. 우주는 우리가 정의하는 아름다운 곳과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공간이다. 의사이자 공군 비행사인 해리 암스트롱의 이름에서 유래한 암스트롱 한계(Armstrong Limit; 19km 고도)를 넘으면 대기압이 몸 내부 체액의 압력보다 낮아져서 목과 폐의 수분이 증발한다. 35km 지점을 넘어서면 오존층의 보호가 사라진다.   &nbsp;  우주 공간에 도달하면 대기가 사라져 낮과 밤 사이의 일교차가 극단적으로 커진다. 국제우주정거장은 영상 120도와 영하 160도 사이를 오간다. 수성과 금성은 너무 혹독하고 위험한 곳이다. 달에 가는 것은 지구 저궤도에 가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위험하다. 달 환경은 인간에게 매우 적대적이다. 달에는 대기가 거의 없다. 표면 온도 변화는 영상 130와 영하 170도 사이를 오간다. 화성에 가는 것은 달에 가는 것보다 여러 모로 훨씬 어렵고 위험하고 복잡하다. 여러 까다로운 조건을 감안해야 한다.   &nbsp;  흥미로운 점은 화성의 희박한 대기로 인한 극히 낮은 우주선 착륙 저항을 해결하기 위해 우주선의 속도를 줄여줄 충분한 연료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에 비해 대기가 너무 희박해 사실상 온실효과가 일어나지 않아 매우 춥고 척박한 곳이 화성이다. 화성 중력은 지구 중력의 1/3 수준이다. 화성에 물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당장 사용하기에 적합하지는 않다. 화성과 달의 흙을 레골리스(regolith)라 한다. 바위를 덮고 있는 이불 같은 존재다. 이 흙을 경작에 사용하려면 다양한 유기물과 비료를 인공적으로 첨가해야 하며 과염소산염 같은 독성 물질이 고농도로 포함되어 있어 인간과 대부분의 생물체에 해롭다.   &nbsp;  지구에서 가장 살기 어려운 곳조차 화성에 비하면 천국이다. 화성에 인간을 보내는 일은 심지어 몇 년간의 왕복 임무만 하더라도 엄청난 성과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준비 없이 화성으로 떠나는 일은 대규모 자살 만큼이나 미친 짓일 수 있다. 지구를 벗어난 환경에서 지구와 유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복합하고 어려운 일이다. 지구에서 화성은 단지 거리가 먼 정도가 아니라 지구 행성의 궤도 공전 속도 물리법칙이 다르기에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다.   &nbsp;  테라포밍이란 개념이 있다. 이는 의도적으로 전체 행성의 환경을 변화시켜 지구와 유사하게 만들고 인간 생존에 적합하게 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칼 세이건은 이 분야의 선구자다. 화성이 오늘날의 화성이 된 것은 지구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네터 배철은 우주의 팽창을 막지 못하는 지구를 체중미달의 지구라 표현했다. 대기와 물이 있었던 화성이 오늘의 지옥 같은 곳이 된 것은 크기가 작기 때문이니 화성도 체중미달의 행성인 셈이다.  &nbsp;  저자는 화성 토양에 매장된 이산화탄소 양은 온도를 충분히 올려 눈덩이 효과를 일으키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을 한다. 여기서 말하는 눈덩이란 차가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눈덩이가 계속 다른 눈을 흡수해 커지는 효과를 의미한다. 저자는 우리가 화성의 기후와 환경을 마음대로 바꿀 능력이 있다면 지구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더 간단할 것이라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지구 온난화를 제어하는 일은 화성의 기후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간단하다.(172 페이지)   &nbsp;  저자는 현재의 화성은 지구의 대체제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겉보기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지만 화성의 환경은 달만큼이나 적대적이다. 게다가 달과 비교해도 화성에 정착했을 때 얻는 이점이 거의 없다. 유인 탐사선이 언젠가 화성에 도달해 머지 않은 미래에 남극이나 해저 기지와 유사한 소규모 전초기지를 세우겠다는 꿈을 갖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지만 화성에 도시를 세우는 일은 과학 소설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156 페이지)   &nbsp;  오닐 실린더(O'Neill Cylinder)란 개념이 있다. 1976년 미국의 물리학자 제라드 오닐(Gerard K. O'Neill)이 제안한 거대 인공 우주 거주구(Space Colony) 구상이다. 행성 표면에 기지를 짓는 화성 이주가 아니라 우주 공간에 지구와 유사한 환경을 가진 거대한 인공 구조물을 만들어 인간이 살게 하겠다는 아이디어다. 제라드 오닐은 이 거대한 실린더를 설치할 최적의 장소로 지구-달 시스템의 L5(다섯 개의 라그랑주점) 지점을 콕 집어 제안했다. 중력적으로 완벽한 균형을 이루어 궤도 유지 연료가 들지 않고, 달에서 자원(철, 규소 등)을 채굴해 기지를 건설하기 가장 쉬운 명당이기 때문이다.  &nbsp;  오닐 실린더도, 화성도, 지구도 모두 광활하고 텅 빈 우주라는 대자연의 허공 속에 떠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완벽히 같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지구는 거대하고 단단해 보이지만 그저 태양 중력에 묶여 시속 10만 km가 넘는 속도로 허공을 질주하는 우주선일뿐이다. 다만 모두 허공에 떠 있지만 지구란 우주선은 자기장, 대기, 물, 중력 등 인류에게 필요한 모든 생명 유지 장치를 자연적으로 완벽하게 갖춘 단 하나의 기적의 공간이다.  &nbsp;  우주 엘리베이터(Space Elevator)는 로켓을 쏘아 올리는 대신 지상에서부터 우주 정지궤도 너머까지 거대한 케이블을 연결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주를 오가겠다는 혁신적인 우주 운송 시스템 구상이다. 우주 엘리베이터가 반드시 정지궤도(고도 36,000km)까지 도달해야 하는 이유는 그 지점을 넘어야만 중력과 원심력의 균형에 의해 엘리베이터가 쓰러지거나 추락하지 않고 하늘에 팽팽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우주적 균형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오닐 실린더와 우주 엘리베이터는 모두 혹독한 환경의 외계 행성을 지구처럼 바꾸는 테라포밍(Terraforming)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우회하기 위해 제안된 핵심 대안들이다.   &nbsp;  적어도 태양계 내에서 지구 외에 인류에게 현실적인 대안은 없다.(171 페이지) 저자는 생명체에게는 지구 2.0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193 페이지) 우리가 외계 행성을 잠재적으로 가주 가능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인간이 그곳에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아니라 박테리아와 같은 생물이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우리가 새로운 외계 행성을 발견하려는 이유는 그곳에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을 연구하고 우리가 아직 모르는 사실들(생명이 어떻게 시작 됐는지, 우주에 퍼져 있는 생명의 분포가 어떠한지, 어떻게 지구를 더 생명이 살기 좋은 행성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한 행성을 불모지로 만드는 원인이 무엇인지)을 알기 위해서다.(194 페이지)   &nbsp;  우리와 다른 별 사이를 가로막는 거리는 엄청나게 멀고, 여행 시간을 줄일 획기적인 해결책도 당장에 없다. 가장 가까운 행성계의 잠재적으로 거주 가능한 행성에 가는 데만 긍정적으로 봐도 수백 년이 걸릴 것이고, 더 현실적으로는 수천 년이 걸릴 것이다.(215 페이지) 1톤의 화물을 광속  대비 1/10까지 가속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현재 전 세계 에너지 생산량과 맞먹는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223 페이지) 물리법칙과 우주의 작동 방식이 지닌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빛보다 빠른 속도로 여행할 수단과 가능성을 집요하게 모색했다.(225 페이지)   &nbsp;  저자는 지구 바깥에 또 다른 지구는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이 행성의 생물이며 이들을 다른 곳에 옮기려면 그들이 태어난 세계의 일부를 떼어내는 밀봉된 거품 안에 가둬야만 한다. 인간이라는 단어가 흙을 뜻하는 부식토와 같은 라틴어 뿌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우리가 사는 세계와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몸의 일부를 잃고 살아남을 수 있지만 우리를 지탱하는 풍경과의 연결 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 우리는 이 작은 젖은 바위에 불과한 지구가 우리 은하 변두리의 별 주위를 돌고 있는 한 절대로 그 인연을 끊을 수 없다.(244 페이지)]]></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68/23/cover150/k2129320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3682348</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지질학을 진정한 과학이 되게 한 판 구조론이 정립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한 책 - [내가 사랑한 지구 - 판구조론, 지질학자들이 밝혀낸 지구의 움직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66699</link><pubDate>Sun, 23 Aug 2026 11: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6669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627972&TPaperId=174666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687/75/coveroff/895862797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627972&TPaperId=1746669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가 사랑한 지구 - 판구조론, 지질학자들이 밝혀낸 지구의 움직임</a><br/>최덕근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04월<br/></td></tr></table><br/>‘판 구조론, 지질학자들이 밝혀낸 지구의 움직임’이란 부제가 달린 [내가 사랑한 지구]는 최덕근 교수의 책이다. 저자는 삼엽충 전문가이다. 저자가 판구조론이란 말을 처음 들은 것은 1971년으로 일본의 이와나미(巖波) 신서(新書) 중 한 권인 우에다 세이야(1929-2023)의 [새로운 지구관; 新しい 地球觀]이란 책을 통해서였다. 4년의 지질학 수업 시간에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개념이었다고 한다. 판구조론이 과학계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시기가 1970년 무렵이니 대단히 빨랐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구과학은 400km 정도까지의 얕은 부분을 다루는 판구조론과 2900km까지의 깊은 부분을 다루는 플룸 구조론이 함께 통용되는 무대다.   &nbsp;  우에다 세이야는 지진 예측이 가능하다고 본 학자이기도 하다. 본문에 지각평형설이 나온다. 저자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대륙지각이 가라앉을 수 없음을 말하는 이론이라 설명한다. 추가로 설명하면 이는 무게 변화에 따라 지각이 끊임없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균형을 맞추는 것을 의미하는 이론이다. 본문에 찰스 라이엘의 동일과정설이 시간이 흐르면서 신랄한 비판을 받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현대 과학이 라이엘의 동일과정설을 비판하는 것은 그가 이룩한 지질학의 기초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nbsp;  성경에서 말하는 기적을 반박하기 위해 설정한 극단적 점진설에 갇혀 지구 역사의 역동적인 격변과 진화적 증거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라이엘이 자연법칙의 균일성으로부터 그와 무관한 속도의 균일성과 상태의 균일성을 도출해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찰스 라이엘은 추운 극지방에서 석탄층이 발견된 것을 보고 육지와 바다의 분포가 달라지면 기후가 달라졌을 것이고 그러면 그린란드에도 석탄이 쌓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라이엘은 그린란드가 언제나 극지방에 고정되어 있었다고 생각했다.   &nbsp;  대륙은 절대 옆으로 이동하지 않으며 단지 주변의 육지와 바다 모양이 바뀌면서 극지방인 그린란드의 기후가 열대로 변해 석탄이 쌓였다고 본 것이다. 사실은 따뜻한 곳에서 석탄이 생긴 뒤 대륙 자체가 극지방으로 이동해간 것이다. 찰스 라이엘은 대륙이동설이 나오기 100년 전 학자였다. 이 이야기를 통해 내가 사는 연천이 예전에 얕은 바닷가였던 곳이 아니라 적도 지방의 얕은 바닷가였다가 대륙이동으로 지금의 자리로 온 것을 연상하게 된다.   &nbsp;  단층에 의해 중첩된 암석을 식탁보를 접어놓은 것 같다 하여 프랑스어로 냅(nappe)이라 한다. 대륙이 이동한다는 아이디어를 현대적인 과학 가설 형태로 처음 공식 발표한 사람은 프랭크 버슬리 테일러(Frank Bursley Taylor)다. 그러나 테일러는 대륙이 이동해 부딪히면서 산맥이 생겼다는 놀라운 직관을 가졌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를 수집하지 않았고 자기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크게 노력하지 않았다.   &nbsp;  이에 비해 베게너는 단순히 대륙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화석 일치, 멀리 떨어진 대륙 간의 지질 구조 연속성, 고생대 빙하 흔적 등 전방위적인 증거를 모아 [대륙과 해양의 기원](1915)이라는 거대한 과학적 체계를 완성했다. 저자는 테일러는 대륙이동을 단순히 빙하의 움직임처럼 다루었고 지구 내부와 연결시키지 않았다고 말한다.(85 페이지)   &nbsp;  베게너는 대륙을 이동하게 하는 힘과 산을 형성시킨 힘은 같기에 대륙이동은 단층, 지진, 화산 등 자연현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알렉산더 뒤 토아(Alexander du Toit; 1878-1948)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천재적 지질학자로 베게너가 사망한 이후 전 세계적인 비판 속에서도 대륙이동설을 끝까지 지키고 한 단계 발전시킨 가장 강력한 옹호자였다. 알프레트 베게너가 과거에 모든 대륙이 하나로 뭉쳐 있던 하나의 초대륙 판게아(Pangea)만을 주장한 반면 뒤 토아는 남반구 지층을 정밀 연구한 끝에 이를 수정·발전시켰다. 북반구의 로라시아, 남반구의 곤드와나, 그리고 그 사이에 테티스해(Tethys Ocean)라는 거대한 바다가 있었다고 명확히 구분지은 것이다.  &nbsp;  뒤 토아가 베게너의 하나의 초대륙(판게아) 개념을 깨고 북반구의 로라시아와 남반구의 곤드와나라는 두 개의 거대 대륙으로 양분한 이유는 북반구와 남반구 지층에서 나타나는 암석과 화석의 성격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뒤 토아는 남반구 대륙들은 남극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고 북반구 대륙들은 적도나 중위도 부근에 별도의 덩어리(로라시아)로 존재했음을 밝혀냈다. 베게너는 대서양 양쪽을 보며 원래 하나였다고 외친 대담한 이론가였고, 뒤 토아는 남북반구의 지층 차이를 보며 남쪽과 북쪽은 원래 따로 놀던 두 개의 세계라고 정교하게 수정했다.   &nbsp;  현대 판 구조론은 두 사람의 시각을 수용하여 대륙들이 수억 년 주기로 뭉쳤다(판게아) 흩어지기를 반복한다는 초대륙 주기(Supercontinent Cycle)를 정립했다. 리처드 필드는 “현재 지질학의 최대 약점은 땅만 연구하는 것이며 지구 표면의 1/3만을 차지하는 대륙만 연구하여 지구에 관한 내용을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역설했다.   &nbsp;  영국의 해양지질학자이자 지구물리학자인 프레드 바인(Fred Vine; 1939~2024)은 해저 암석의 자기(磁氣)가 현재의 지구자기장과 같은 방향으로 배열된 경우에는 그 세기가 강하게, 반대 방향으로 배열된 경우에는 그 세기가 약하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바인과 매슈스의 논문은 발표 당시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당시 과학자들은 지구 자기장이 뒤바뀐다거나 해저가 확장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주저했기 때문이다.  &nbsp;  변환 단층이란 판이 만들어지지도 소멸하지도 않으면서 판이 서로 스쳐가며 운동 형태가 유지변환된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바인은 바다 밑 얼룩말 줄무늬를 발견한 사람이다. 고지자기 대칭을 의미하는 얼룩말 같은 줄무늬는 판 구조론의 결정적 단서다. 판이 해령 축에서 멀어질수록 암석의 나이가 많아지며 줄무늬가 대칭을 이룬다는 것은 해령에서 새로운 지각이 끊임없이 태어나 양쪽으로 밀려 나가고 있음을 설명하는 결정적 증거였다.   &nbsp;  와다치대, 베니오프대, 자바리츠키대 등의 명칭이 있다. 이는 연구자인 와다치(일본), 베니오프(미국), 자바리츠키(러시아)의 이름을 딴 명칭이었다. 판구조론에서 판이 소멸하는 구체적인 현장을 지칭하는 용어들이었는데 지금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섭입대라 부른다. 자바리츠키는 지진 데이터를 통해 경사 지진대를 물리적으로 처음 발견한 인물이라기보다 와다치, 베니오프가 발견한 지진대 데이터를 바탕으로 화산과 섭입 메커니즘의 유기적 관계를 세계 최초로 완벽하게 정립해 낸 인물이다.   &nbsp;  과학사의 관점에서 와다치, 베니오프의 섭입대 발견은 미적분학(뉴턴과 라이프니츠), 산소(프리스틀리와 라부아지에), 해왕성(아담스와 르베리에)의 사례와 궤를 같이하는 완벽한 '공동 발견(Multiple discovery)'으로 보아야 한다. 공동 발견이란 이전의 연구나 서로의 연구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완벽하게 독자적인 상태에서 동일한 진리를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nbsp;  판(Plate)이라는 용어 자체를 전 세계에서 아예 처음 쓴 사람은 1965년 변환단층을 제안한 존 투조 윌슨이었다. 윌슨은 지구 표면의 거대한 껍데기를 Plate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윌슨의 '판'이 단순한 지질학적 기술(묘사)에 가까웠다면 댄 맥켄지의 '판'은 수학적 법칙과 강체(Rigid body)의 물리학을 덧입힌, 진정한 의미의 '이동하는 단위'로 격상된 개념이었다. 이 때문에 과학계는 맥켄지의 1967년 논문을 기점으로 현대 판구조론(Plate Tectonics)이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평가한다.   &nbsp;  판은 지각과 다르다. 판은 지각보다 규모면에서 더 크다. 맨틀 바닥에 도착한 차가운 덩어리가 핵 주변의 뜨거운 물질을 옆으로 밀어내면 밀려난 뜨거운 하부 맨틀의 물질은 상승한다. 이처럼 물질이 상승하는 통로를 플룸이라 하며 플룸은 지표면에서 열점으로 표현된다. 하부 맨틀에서 올라오는 물질의 상승류는 규모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이를 특히 거대한 상승류라 한다.(229 페이지) 판구조론(Plate Tectonics)은 한 명의 천재가 하루아침에 완성한 것이 아니라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학자들의 독립적인 발견과 연구가 쌓여 완성된 현대 지질학 최고의 ‘공동 합작품’이다.  &nbsp;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687/75/cover150/895862797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6877507</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우리 근현대사의 가슴 아픈 사건들을 만나다 - [울게 되는 한국사 - 머리에 새기고 마음에 남기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64387</link><pubDate>Fri, 21 Aug 2026 21: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6438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834463&TPaperId=1746438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981/2/coveroff/k852834463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834463&TPaperId=1746438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울게 되는 한국사 - 머리에 새기고 마음에 남기는</a><br/>김재원 지음 / 빅피시 / 2023년 07월<br/></td></tr></table><br/>자신을 저잣거리 지식 중개상으로 소개하는 김재원은 대중서 한 권이 나오려면 수십, 수백 명 연구자의 연구 성과에 기대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근대사와 현대사이다. 저자에 의하면 근대라는 개념은 대단히 논쟁적인 말이다.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근대를 개항 전후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본다. 저자는 글의 초반부가 조금 복잡하고 어려워 보여도 인내심을 가지고 읽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보인다. 책의 제목은 [울게 되는 한국사]이다. 부제는 '머리에 새기고 마음에 남기는'이다.   &nbsp;  저자는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결말보다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우리는 결말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고 교훈을 위해 과정을 되살펴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가슴 아픈 사건은 동학도(東學徒)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조선 조정이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한 것이다. 갑신정변으로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 맺어진 톈진 조약에 의하면 일본은 조선에 대해 청과 동일한 파병권을 갖는다는 조항이 있다. 청나라 군대가 인천에 상륙한다는 소식이 일본에 전해졌다. 조선에서 청과 일 양국 군대는 동시에 철수하고 동시에 파병한다는 톈진 조약을 핑계로 일본군 1만 명이 조선에 파병되었다. 저자는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한 조선 조정이 농민군과 교섭을 벌이려 했지만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 없었다고.(47 페이지)   &nbsp;  청나라가 조선에 군대를 파병한 것은 농민군 진압이라는 명분에 의한 것이지만 내심은 일본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일본 역시 다르지 않았다.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이자 농민군의 전투 대상이 조선 관군에서 일본군으로 바뀌었다. 협상 대상인 조선 조정이 일본과 뜻을 함께하는 모양새가 된 까닭이었다.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자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선이 자주권을 가진 중립국이기를 바랐던 것일 뿐 그 이상의 군사적 충돌은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의 입장은 달랐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삼국(프랑스, 독일, 러시아) 간섭으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고 요동 반도를 포기하는 대가로 기존 배상금 2억량의 추가로 3천만 냥을 얻어내고는 치욕적으로 물러나야 했다.   &nbsp;  일본은 러시아와 연결된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사건을 벌이고 만다. 조선이 가장 치욕스러웠던 부분은 사건을 추적할 만한 단서가 많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대원군이 일본인 낭인들을 시켜 민비를 살해했다는 루머가 떠돌았다. 살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숨 가쁘게 내달리던 조선은 다시 한반도에서의 열강 간의 균형추를 맞추려고 시도했다. 기울어진 일본으로의 추를 러시아 쪽으로 돌려놓기 위한 노력이었다. 고종은 변화하는 세계정세에 적응하기 위해 홀로서기를 강행했다. 대한제국이라는 얇디얇은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말이다.(60 페이지)   &nbsp;  저자는 동학도와 농민들이 세상을 바꾸자며 죽창을 들었고, 이들을 진압한다는 핑계로 일본과 청나라가 조선 땅에서 전쟁을 벌였다고 말하며 승전 과정에서 일본이 조선에서의 영향력을 높였고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우다 조선의 왕후가 암살당하는 초유의 사건까지 벌어졌다고 말한다.(61 페이지) 여기서 문장을 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운 것은 일본이고, 암살당한 것은 왕후다. 주체가 다른 것이다. 그러니 일본이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운 끝에 조선의 왕후를 암살했다고 말해야 자연스럽다.   &nbsp;  일본이 왕후를 암살한 을미사변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 아관파천으로 개화파 인사들 내부의 세력 균형이 재배치되었다. 개화파 내부의 친일 인사들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독립 협회라는 새로운 거대 정치세력이 탄생했다. 1895년 을미사변, 1896년 아관파천, 1897년 대한제국 수립이라는 큰 분수령이 만들어졌다. 1898년 독립 협회가 서울 종로 광장에서 한국 역사상 최초의 근대적 대중집회인 만민공동회를 개최했다. 만민 공동회는 아관파천 이후 심해진 외세의 이권 침탈을 막아내고 백성들의 권리를 지키며 나라의 정치를 개혁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집회였다.   &nbsp;  황국 협회는 독립 협회가 왕을 쫓아내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황국협회는 고종 황제의 황권 강화와 보수파 정부를 지지하기 위해 결성된 친 정부 성향의 어용 단체다. 고종은 군대를 동원해 독립 협회를 강제 해산시켰다. 독립 협회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조직이 아니었다. 하지만 투쟁 과정이 너무도 독선적이고 급진적이었다. 1904년 1월 23일 러일전쟁 직전 고종은 느닷없이 중립을 선포했다. 하지만 곧 전쟁터로 변해버린 한반도 땅에서 중립화 선언은 의미가 없었다.  &nbsp;  일본은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다. 그나마 일본을 견제하던 미국도 일본이 필리핀에서의 자국의 확고한 이권을 보장해주자 대한제국의 침략을 허용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고종은 나라를 위해 순직할 의지가 털끝만큼도 없었던 황제였다. 1907년 헤이그 특사단이 파견되었다. 평화회의 의장국이던 러시아가 대한제국의 참가를 일본에 알렸다. 일본은 현실적인 방법으로 대한제국의 평화회의 참가를 무력화하려 했다. 통감부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대한제국 법부는 이상설에게 사형을, 이준과 이위종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nbsp;  1910년 8월 22일 창덕궁 흥복헌에서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었다. 1905년 덕수궁 중명전에서 을사늑약이 체결된 지 5 년만의 일이었다. 3.1 만세운동 직후인 1920년까지 신흥 무관 학교는 1천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3천여 명의 독립군을 양성했다. 이들은 간도 더 넓게는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행해진 독립전쟁의 지도자로 성장했고 바로 1920년대에 피 터지는 독립전쟁의 주인공이 되었다. 울게 되는 한국사라고만은 할 수 없는 내용이 청산리, 봉오동 전투다. 한 때 대첩(大捷)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그 표현이 무색하게 이후 독립군의 무장투쟁에 침체를 가져왔다.   &nbsp;  농토를 잃고 일자리를 잃은 조선인들은 일본으로 건너가야 했다. 재일 조선인 대부분은 잡부나 일용직 노동자와 같은 하층 노동자로 살아가거나 탄광 노동자와 같은 위험한 일을 일본인 대신 도맡았다. 1911년 2500명에 지나지 않았던 재일 조선인은 1920년 3만 명을 넘어섰다. 일본이 조선을 강제 병합한 후 조선인을 향한 멸시적 시선에 조선인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덧붙여졌다. 이 상황에서 1923년 간토(관동) 대지진이 일어났다. 지진 발생 직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빠르게 일본 사회에 퍼졌다.   &nbsp;  우물에 독을 탔다는 작은 거짓은 자연재해를 틈타 조선인들이 일본인을 집단으로 폭행하고 약탈하거나 심지어 폭탄을 던지거나 부녀자를 겁탈하고 있다는 소문으로까지 번졌다. 일본인 자경 단원들에 의해 조선인을 향한 집단학살이 자행되었다. 1929년 미국발 세계 대공황으로 경제가 무너지면서 조선인들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이 차마 살 수 없는 곳에 움집이나 판잣집을 짓고 살아야 했던 조선인들은 1930년대 30만 명을 넘어섰다. 1930년 후반 중국 침략이 본격화하면서 중일전쟁이 시작되었고 1938년 국가 총동원법, 1939년 국민 징용령이 공포되면서 조선인에 대한 강제징용이 시작되었다. 강제징용에 의해 일본의 탄광이나 광산, 군수공장 등에서 노동해야 했던 재일 조선인은 100만 명 이상이었다. 식민지 조선인들은 일본에서 학살 대신 학살에 준하는 고강도 강제 노동을 만났다.  &nbsp;  급격한 세계사적 변화 속에서 새롭게 바라본 중국인을 향한 조선인의 감정은 혐오였다. 근대라는 새로운 세상 속에서 중국인은 조선인에게 야만이었다. 어쩌면 일본과 상대적 우월 의식을 공유했다고도 볼 수 있다. 문제는 노동시장에서 조선인들이 중국인들과 경쟁했다는 점이다. 중국인들이 값싼 임금으로 노동시장을 잠식해 가자 조선인은 박탈감을 느꼈다. 박탈감과 혐오는 비인도적인 테러와 학살로 이어졌다. 그리고 중국인에 대한 혐오감정이 노골화된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배화(背華; 화교를 배척한다는 뜻) 폭동으로 불리는 반 중국인 폭력사태다.   &nbsp;  식민당국은 1910년대까지 조선인들의 생업 유지를 핑계로 중국인 노동자 입국을 제한해 왔다. 하지만 1920년대가 되자 기존의 중국인 이주 정책을 수정했다. 싼 가격의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제국과 식민지 사이에 왜곡된 경제 체제가 본질적 문제였지만 당시 언론은 오히려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 간의 대립을 부추겼다. 1920년대 말 세계 경제 대공황이 일어났다. 후발 제국주의 국가가 공항을 이겨낼 손쉬운 선택지는 전쟁이었다. 일본은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그들의 1차 목표는 만주였다.   &nbsp;  대공황으로 인해 영국, 미국, 일본의 제국 협조 체제에 균열이 발생했고 경제 불황으로 돌아선 일본 민심은 군부의 대륙 침략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였다. 1931년 9월 일본군은 조선 국경을 넘어 만주를 침략했고 이로써 만주국이 탄생했다. 일본 군국주의의 확장은 그 자체로 조선의 독립운동의 엄청난 후폭풍으로 다가왔고 1930년대로 접어들면서 독립운동은 거대한 암흑기에 접어드는 듯했다. 임시정부가 있던 상해는 일본의 점령 위기에 놓였고 신간회(1927년 창립된 좌우합작단체)는 해산되었다. 국내 사회주의 계열의 노동운동은 탄압받기 시작했고 조선인들의 독립 의지도 꺾여가고 있었다.   &nbsp;  이봉창은 김구에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육신의 쾌락은 대강 맛봤습니다. 이제 영원한 쾌락을 꿈꾸며 독립 사업에 헌신할 겁니다."라는 말을 했다. 일왕 저격에 실패한 이봉창은 32세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윤봉길은 계몽 운동만으로는 독립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고 무장 투쟁의 길을 걷기로 했다. 윤봉길은 무장투쟁을 이끄는 독립군이 될 수 없다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의거라고 생각했다. 거사 직후 윤봉길은 일본 헌병에게 연행되었고 상하이 파견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아 우편선에 실려 오사카 육군 형무소에 수감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나자와 육군 구금소를 거쳐 1932년 12월 19일 군작업장에서 향년 24세로 총살형을 당했다.   &nbsp;  일본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장준하도 1944년 일본군 학병에 강제 징집되어 중국 쑤저우 지구에 배속되어 있었다. 여느 학병처럼 강제로 일본군에 끌려간 장준하는 부대에서 조선인 학병을 규합해 친일파 총살을 요구하던 중에 부대에서 탈출해 중국군 유격대에 합류했다. 일본 게이오대학 문학부 재학중 학병으로 끌려온 김준엽도 마찬가지였다. 부대에서 탈출한 김준엽은 1944년 7월 9일 중국군 유격대 휘하에 있던 장준하와 역사적인 만남을 갖는다. 그런 저항이 쌓이고 쌓여 일본 제국주의는 패전하고 우리는 해방이라는 역사적인 결과를 맞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일본제국의 식민이 아닙니다라고 힘겹게 외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해방은 힘겹게 우리 손으로 찾은 결과물이었다.   &nbsp;  1945년 2월 얄타(러시아) 회담과 7월 포츠담(독일) 선언을 거치며 적절한 시기에 한국을 해방시킨다는 내용이 국제무대에서 합의되었다. 1945년 9월 2일 일본이 서명한 항목 문서에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확약한다는 내용이 삽입되면서 한국의 독립이 공식화되었다. 한국인들은 식민지배에서 벗어났음을 깨닫고 환호했지만 이 환호는 다시 더 큰 아픔과 슬픔으로 다가왔다. 한반도의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선 즉 38선이 생겼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논의된 한국의 해방에는 적절한 시기라는 조건이 있었고 이 조건을 핑계로 연합국의 두 축이었던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양분한 것이다.   &nbsp;  분단은 시작됐고 1945년 8월 11일 소련이 북한 땅에 들어왔고 9월 8일 남한 땅에는 미군이 들어왔다. 1945년 12월 소련, 미국, 영국 대표가 모스크바 3상 회의를 통해 한국의 독립에 관한 문제를 논의했고 여기에서 신탁통치안이 결정되었다. 여수와 순천 지역 주민들이 반란군이 아닌 좌익 중심의 인민위원회에 동의했던 것은 폭력적이고 친일적이었던 경찰 세력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더불어 경찰과 같이 친일행위를 일삼던 이들이 행정을 이끄는 상황, 게다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무능에 대한 반감이었지 반란군의 주장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지역민들에게 반란군의 사상이나 이념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문제는 그저 생존이었다.   &nbsp;  제주 4.3 사건과 여순 사건을 통해 대한민국에는 새로운 존재가 탄생했다. 바로 빨갱이다. 물론 빨갱이는 여순 사건 이전에도 존재하던 표현이었지만 이승만 정권은 여순 사건을 계기로 공산주의자는 빨갱이라는 공식을 넘어 빨갱이는 악마라는 등식을 완성했다. 빨갱이란 언제 죽여도 상관없는 존재라는 의미였다. 그 누구도 사상과 이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제 한국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사상은 반공이었다. 1948년 5월 31일 남한은 선거를 통해 제헌국회를 구성했다. 안타까운 것은 반민특위가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었다. 정부 수립 이후 대다수 국민의 관심 대상이자 염원이었던 친일 청산은 그야말로 허무한 실패로 끝이 났다.(165 페이지)   &nbsp;  전쟁은 학살이 일어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다. 한국 전쟁 때 벌어진 학살의 문제점은 학살의 주체였다. 학살을 일으킨 장본인이 남북의 국가 권력이었기 때문이다. 남한은 빨갱이 사냥에 혈안이 되었고 북한은 흰 패 사냥(공산주의에 동조하지 않는 자들을 사냥하는 것)에 열을 올리며 이념에 따른 정치적 학살을 자행했다. 남북한은 데칼코마니처럼 각자의 이념과 지향을 폭력으로 관철하며 상대방을 피로 굴복시켰다. 북한은 1948년 2월 조선인민군을 창군하고, 1948년 9월 정부를 수립했다. 창군(創軍)이 정부 수립보다 먼저였다. 군 조직은 남한보다 먼저, 정부 수립은 남한보다 늦게 단행한 것이다. 이는 분단의 책임을 남한에 미루고자 한 북한 정권의 노림수였다. 남한이 먼저 정부를 수립했으니 자신들은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정부를 만들었다는 논리였다.   &nbsp;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정부를 수립한 시점부터 둘은 적이었다. 서로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임을 주장해야 했기 때문이다. 3.8선은 사실상의 국경선이었지만 남과 북 모두 이를 국경선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양측에게 3.8선 너머의 땅은 그저 언젠가 되찾아야 하는 땅이었고 그래서인지 그 주변에서 끊임없이 싸웠다. 인민군이 급박하게 후퇴하는 과정에서 우익 인사들은 지역에 남은 좌익 인사를 보복할지 모를 위협 세력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인민군은 빨갱이 사냥에 최전선에 있던 경찰이나 우익 청년단원들을 학살했다. 이 보복 학살이 더욱 가슴 아픈 이유는 인민군이 우익 인사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보도 연맹 사건의 피해자 유가족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가족과 친지를 학살로 내몬 이들을 또 다른 학살의 피해자로 만든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우리와 타자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nbsp;  일본이 패망한 이후 한국에 남은 일본 재산은 어떻게 처리되었는가. 한국은 이를 적산 즉 적의 재산이라 명명했다. 이때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긴 미국이 등장했는데 일본 행정이 미군에 넘어갔으니 일본의 재산은 곧 미국의 재산이었다. 이후 1945년 12월 6일 한국에 있는 일본 재산은 국유와 사유를 막론하고 미군정청에 귀속되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9월 대한민국 정부 및 미국 정부간의 재정 및 재산에 관한 최초 협정에 의해 한국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일본 재산에 대한 권리를 이양받았다. 처음부터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화해하기를 바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냉전이라는 새로운 국제 관계 때문이었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소련과 중국의 확장을 막을 든든한 동맹국을 원했다. 그런데 한국은 너무나도 약했고 일본만으로는 부족했다.   &nbsp;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한일 회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만족스러웠을지 모를 이 회담 결과 누군가는 또 다른 상처를 입었고 진짜 피해자들은 아직도 아무런 사과와 보장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217 페이지) 1960년 후반부터 시작된 한강변과 강남의 성장은 서민 더 정확하게는 도시 빈민의 희생을 강요했다. 사실상 서울시 개발의 로드맵에서 도시 빈민이 설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 경제가 무너지면 정권은 흔들린다는 말이다.   &nbsp;  저자는 유신 정권은 어처구니없게도 내부의 권력다툼으로 종말을 맞이했다고 말한다. 어쩌면 유신 정권의 이 황당한 마무리야말로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비극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시민들의 손이 아닌 유신의 1, 2인자 사이의 술자리 다툼으로 종결되었기 대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부의 권력 다툼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술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대국적인 정치를 하라는 말을 했음을 감안하면 단순한 권력 다툼이라 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저자는 유신 정권이 우발적 총탄으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로 인해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황당한 마무리라는 말과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로 인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nbsp;  울게 되는 정도가 아니라 가슴 아프고 비참한 사건들이 우리 역사에 너무 많았다. 마지막 챕터는 ‘한강의 기적이 무너진 1997년의 겨울’이다. 구제 금융을 받아야 했던 사건을 말한다. 현대사는 거의 동시대이기에 생소함이 덜하다. 책이 다룬 근대사에 집중한 이유다. 우리에게 비극이 아닌 때는 없었다. 책이 다룬 부분은 정치, 군사, 경제와 관계된 역사다. 저자는 식민 청산과 통일이라는 화두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2026년 5월 [세대X 한국사 - 혐오를 멈추고 시대를 읽는 현대사 수업]이란 책을 냈다. 혐오를 멈추는 것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만하다. 이 책은 오랜만에 읽은 역사 책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다음에는 어떤 역사책을 읽어야 좋을지?]]></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981/2/cover150/k852834463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9810286</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전이의 대상인 지질학, 그리고 새로운 전이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화성학(火星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62313</link><pubDate>Thu, 20 Aug 2026 20: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6231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42138035&TPaperId=174623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12/39/coveroff/k64213803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팝콘 브레인이란 용어가 있다. 프라이팬에서 톡톡 터지는 옥수수처럼 빠르고 강렬한 디지털 자극에만 뇌가 반응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컴퓨터 학자 데이비드 레비(David M. Levy) 교수가 스마트폰과 디지털 멀티태스킹에 중독된 현대인의 뇌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비공식 용어다.&nbsp;<br>책을 오래 읽어왔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팝콘 브레인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물론 팝콘 브레인 상태를 면하는 것이 관건은 아니리라. 긴 호흡의 글, 양질의 글을 계속 꾸준히 읽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글에 공감하고 익숙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전이(轉移)의 한 종류가 아닐까? 생각한다.<br>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전이란 과거 부모나 주(主)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감정, 기대, 관계 패턴을 현재의 다른 대상에게 투사하는 것을 말한다. 내 입장에서 전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 글, 깊은 서사를 가진 긴 호흡의 양질의 글을 읽는 행위를 통해 안정감을 다시 경험하(려)는 것일 수 있다. 글은 나를 조급하게 재촉하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깊은 존재감으로 나를 맞아주는 안전한 대상이다.&nbsp;<br>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이학사에서 나온 내러티브 총서(叢書) 2번 [일꾼과 이야기꾼; 서사적 주체]에 나오는 장태순 교수의 진단을 접하고나서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해 박사가 된 장태순은 좁은 의미의 전이는 정신분석이라는 상황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전이는 우리가 이야기를 교환하는 모든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한다.&nbsp;<br>지질(地質) 공부에서도 전이가 있을 수 있을까? 지질학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 땅속 깊은 곳의 역사와 비밀을 과학적으로 추적하는 학문이다. 이는 정신분석가가 환자의 겉모습 아래 숨겨진 무의식의 억압된 상처를 파헤치는 과정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nbsp;<br>프랑스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가&nbsp;자신의 자전적 회고록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에서 자신의 사상적 뿌리이자 평생의 세 가지 뮤즈(Three Mistresses)로 지질학,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를 꼽은 것이 기억난다. 이 학문들은 표면 아래의 거대 심층 구조와 역사를 파헤쳐 본질을 규명하는 학문들이다.&nbsp;<br>레비스트로스는 20대 초반에 지질학을 독학하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지평선을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왜 이 바위는 여기에 있고, 저 골짜기는 왜 깎여 나갔는가?“ 같은 질문들을 던지며 눈에 보이지 않는 세월의 흔적과 법칙을 읽어냈다. 이는 정신분석으로 이어진다. 정신분석 역시 환자가 겉으로 횡설수설하는 말(표면)을 넘어, 그 아래 도사린 무의식의 지층(본질)을 분석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nbsp;<br>마르크스주의 역시 사회의 화려한 이데올로기 뒤에 숨은 경제적 하부구조를 분석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지질학 공부가 전이의 한 형태가 아닐까?란 생각을 한 것은 스콧 솔로몬의 [비커밍 마션]을 만나고서다. 본문에 지진해일이 남긴 퇴적층이란 말이 나온다. 영어로는 Tsunami deposit라고 한다.(모쿠다이 구니야스는 [그림으로 배우는 지층의 과학]에서 쓰나마이트란 말을 썼다.)&nbsp;<br>쓰나마이트라는 용어를 둘러싼 논쟁은 활발하다. 눈앞의 뒤틀린 지층(표면)을 보고 쓰나미의 흔적이라고 단정 짓고 싶은 열망과, 단순한 폭풍우의 흔적일지 모르니 철저하게 의심해야 한다는 과학적 회의주의가 격렬하게 부딪히는 것이다.<br>그럼에도 구별의 요령은 있다. 쓰나미로 인해 만들어진 지층은 파도의 파장(길이)이 수십~수백km에 달해 에너지가 줄지 않고 해안선에서 수km 내륙 깊숙한 곳까지 모래를 밀고 들어간다. 지형의 굴곡을 그대로 따라 부드럽게 덮듯이 쌓이는 경향이 있다. 폭풍으로 인해 만들어진 지층은 파장의 한계 때문에 아무리 강한 태풍이라도 해안가에서 보통 300m 이내까지만 퇴적물을 남긴다. 언덕 같은 거대 지형을 넘지 못하고 그 앞에 막혀 쌓인다.&nbsp;<br>쓰나미는 워낙 유속이 빠르고 강력해서 내륙이나 갯벌을 통째로 뜯어내며 전진한다. 이때 부서진 진흙 덩어리(진흙 포획암)가 모래층 사이에 그대로 박힌 채 굳어버린다. 폭풍의 경우 오랜 시간 서서히 물이 차오르고 빠지기 때문에 진흙처럼 약한 덩어리들은 파도에 반복해서 씻기며 다 녹아버리므로 진흙 덩어리가 거의 없다. 이런 단서들을 세밀하게 분별하는 것은 심층을 파헤치는 것이고 전이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겠는가.&nbsp;<br>모쿠다이 구니야스는 [그림으로 배우는 지층의 과학]은 내가 지질 해설사가 된 첫 해인 2020년에 나온 책이고 바로 사서 읽은 책이다. 6년이 지난 지금 보니 다시 읽어야 할 필요가 느껴진다. 단 [비커밍 마션]을 읽은 후에 읽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탈(脫) 지구 및 화성(火星) 안착을 논한 책이다. 아무리 지질학이 전이의 대상이어도 위기에 처했다면 떠나야 한다는 말에 저자는 어떤 말을 할까? 성공한다면 화성이 새로운 전이의 대상이 되는 것이리라.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12/39/cover150/k64213803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123951</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기후, 인간과 정책, 불의 관계를 화염세(火炎世)의 관점으로 정의/ 정리한 책 - [불의 시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59140</link><pubDate>Wed, 19 Aug 2026 08: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591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7501778&TPaperId=174591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53/24/coveroff/894750177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7501778&TPaperId=174591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불의 시대</a><br/>스티븐 J. 파인 지음, 김시내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5년 07월<br/></td></tr></table><br/>세계적으로 유명한 화재 역사학자인 스티븐 파인의 [불의 시대]란 책이다. 저자가 만든 용어인 Pyrocene은 화염세(火炎世)를 의미한다. 번역본 제목은 [불의 시대]다. 저자는 세 가지 불을 이야기한다. 자연적인 불, 인위적인 불, 암석 경관을 태우는 불 등이다. 화석 기록에 따르면 불은 약 4억 2천만년전 관다발 식물이 번성하던 실루리아기 초반에 최초로 등장했다.(42 페이지) 실루리아기에 처음으로 자연발화한 것이라면 200만년전 처음 인공으로 불을 붙이기까지 상당히 긴 공백이 있었다. 세 번째 불인 암석 경관을 태우는 불은 화석 연료를 태우는 불로 첫 번째, 두 번째 불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nbsp;  저자는 지금은 불이 더 많은 불을 만드는 시대로 인간이 자신도 모르게 연 불의 시대를 제대로 살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어떤 곳인가? 유일하게 불이 있는 행성이다. 지구에서는 해양생물에서 산소 대기가, 육상 생물에서 불이 잘 붙는 탄화수소(테르펜, 송진)가 등장했다. 저자는 불이란 물질이 아니라 반응이라고 말한다. 즉 환경이 받쳐줘야 불이 난다는 것이다. 허리케인, 홍수와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다. 불은 허리케인, 홍수와 달리 생물과 별개로 일어날 수 없다.   &nbsp;  지질 시대가 이어지면서 대기 중 산소 농도는 오르내리며 14~16%를 유지했는데 이것보다 적으면 생물군을 태우기 어렵고 30~35%가 되면 불길을 잡기 어렵다. 불이 빠른 연소라면 호흡은 느린 연소다. 인류는 200만 년 이상 불을 이용했고 불 없이 존재할 수 없었다. 불이 나는 곳에서 번성했고 건/우기가 없어 불이 나지 않는 암석 사막, 습한 우림, 그늘진 숲에서는 생존하려 고군분투했다. 지구가 결빙과 해빙 사이에서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요동치며 온갖 변화를 일으킨 탓에 육상 생물이 살기 어려워졌다. 서식지가 바뀌고 늘었다가 줄어들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숲이 초원으로, 초원이 사막으로 변했다.   &nbsp;  해안가는 경사를 드러내며 확장하다 얼음 아래로 가라앉았다. 계곡물은 호수를 채웠다가 잠깐 생겼다 사라지는 플라야로 흘러 들어갔다. 아한대 지역이 얼음 속으로 사라졌다. 언제나 그랬듯 적응하는 종이 있는 반면 아닌 종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멸종에 가속이 붙었다. 홍적세는 260만년간 이어지면서 지구의 5대 멸종 중 최후의 막을 열었다. 홍적세는 거대 동물의 시대였다. 대륙 만한 빙상, 차디 차게 얼어붙은 환류를 일으킨 해양, 거대한 호수, 광활한 사막 그리고 온 세상을 점령한 거대 동물을 자랑했다. 홍적세 내내 결빙과 해빙, 멸종과 출현이 계속되다가 흐름이 멈췄다.   &nbsp;  인간이 돌본 경우를 제외하면 거대 동물을 비롯한 여러 생물은 되살아나는 일 없이 계속 스러져 갔다. 얼음 없이 돌아오지 않고 녹아 없어지기만 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모든 호미닌처럼 빙하기에 등장했다. 그러나 불을 다룬 덕에 지구상에서 유일한 호미닌으로 등극했다. 그들은 불쏘시개를 지렛대 삼아 아르키메데스처럼 지구를 움직였고 때마침 유리한 환경이 그 받침점으로 작용했다. 불은 지형, 기후, 초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 마지막 빙하기가 찾아오자 화재 친화적 환경이 펼쳐졌다. 홍적세가 화염세로 넘어간 것이다.   &nbsp;  스스로 불을 붙일 수 있었던 호미닌은 훨씬 더 유리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질학적 시대를 열어젖혔다. 지구가 유일한 불의 행성인 것은 지구가 유일하게 생명체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호미닌은 불을 발명하지 않았고 주변에서 발견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불은 도구인 동시에 동반자였지만 무엇보다 힘이었다고 말한다. 불을 다루는 생명체가 화재 친화적 시대와 만난 시점은 매우 의미 있는 변곡점이다. 그래서 식물이 대륙을 장악한 이후로 지구상에서 불이 보여준 가장 큰 변화로 생각해야 한다.  &nbsp;  요리는 중요한 기술이자 화염 기술의 근본이었다.(102 페이지) 이는 모든 화염 기술의 표본으로 자리 잡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모래, 광석, 점토, 진흙, 석회암, 나무, 석유를 요리하듯 가공해 유리, 금속, 도자기, 벽돌, 시멘트, 타르, 테레빈유를 생산하는 방식을 터득했다. 저자는 인간이 길들인 최초의 존재를 불이라 정의한다. 불은 생태계의 야생적 존재를 인류의 통제하에 두고 공생을 시작한 길들이기의 대상이었다. 돌은 통제의 대상, 불은 길들이기의 대상이었다. 돌은 일방적인 변형의 대상이다. 사용후 방치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불은 지속적인 양육과 관리가 필요한 길들이기의 대상이다. 잘못 관리하면 인간 거주지를 태워 없앨 수 있다.   &nbsp;  불만 있으면 생태계에서 무엇이든 모으고 뒤쫓고 포획할 수 있는 꿈같은 일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삼림과 이탄 지대를 베는 동시에 바싹 말리고 습지에서 물기를 없애며 가축을 풀어 덤불이 우거진 땅을 다지고 관목을 다듬으면서 불이 붙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후 화재 이후 환경에 적응한 식물을 도입해 식량을 재배할 수 있었다. 거의 어디서나 농경지를 넓혀주는 불 덕분에 범람원 바깥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불이 불답게 타오르려면 연료가 충분해야 했다.(116 페이지) 동물은 느린 연소를 하는 존재이고 불은 빠른 연소를 하는 존재이다. 동물은 느린 연소를 위해, 불은 빠른 연소를 위해 똑같이 풀, 잔가지 등 미세 연료를 두고 경쟁했다.(120 페이지)   &nbsp;  화염 기술이라고 해서 모두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방화는 불로 공들여 이뤄낸 것을 파괴할 수 있었다. 불과 검(劍)은 전쟁의 줄임말이었다. 화력은 군사력을 나타냈다. 사람들은 불을 통제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었지만 만족할 줄 몰랐다. 과학적 화염 기술은 연료 유무에 따라 제약을 받았다. 당시 연료원이던 자연경관의 제약을 받은 것이다. 생물학적 화염 기술은 자연경관의 특성에 따라 벽에 부딪혔다. 때마침 물리학적 화염 기술이 실용적인 목적에 무한히 쓸 수 있는 화석연료라는 신세계를 발견했다.   &nbsp;  인간은 여러 활동을 하며 이미 정해져 있는 밀란코비치 주기를 느리게도 빠르게도 바꿀 수 있다. 저자는 불이 기후에 딸린 부수 현상에 그치지 않고 인류의 손끝에서 기후변화를 진두지휘하는 선동가였다고 말한다.(134 페이지) 새롭게 등장한 세 번째 불은 자신의 연료처럼 무한(無限)했다. 게다가 자연적인 기후 양상을 조금씩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뒤엎을 정도로 거대했다. 연기는 하늘을 가득 메웠다가 비에 녹아 해양에 녹아들었고 화염은 보이든 안 보이든 지구를 채우고 있다. 연소(燃燒) 변이(變異)라고 하는 변화는 석탄, 석유, 가스로 대표되는 화석 생물량이 화로, 단조(鍛造), 용광로 등 불을 이용하는 다양한 기구에서 나무, 이탄(泥炭)과 같이 살아 있는 생물량을 선택적으로 대체하면서 시작되었다.(143 페이지)   &nbsp;  저자는 에너지원이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이 시대를 인류세 대신 화염세라 명명하는 편이 올바를 것이라 말한다.(149 페이지) 멀고 먼 지질 시대 속 연료를 캐다가 당대에 태우고 앞으로 맞이할 먼 미래를 향해 폐기물을 뿜어내는 것, 이것은 불이 그리는 새로운 서사이자 지구 역사상 중요한 표식 중 하나다. 인류가 일궈낸 주거지에 몰고 온 변화를 생각하면 연소 변이에도 좋은 점이 많다. 부엌과 마을에 연기가 자욱하지 않고 가연성 재료로 집을 짓고 도시를 조성한 탓에 자나 깨나 화재 걱정을 하던 시절이 지났으며 계속 장작을 구하러 다닐 필요도 없다. 세 번째 불은 사회 구성원의 끊임없는 관심과 손길이 필요한 어린이나 두 번째 둘과 다르다.   &nbsp;  그러나 이 변화에는 대가가 따른다. 어느 지역에서나 어떤 종류든 불이 존재하고 불의 성질은 지역 내에서 바뀐다. 마찬가지로 농업에서는 다루기 까다로운 화염을 피하려 화학물질을 사용하다 보니 오염이라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지역의 변화가 전 세계적 변화로 확대되기도 한다. 그래서 대체로 이목을 끄는 것은 불꽃이다. 불꽃은 인간이 딛고 선 대지를 똑같이 딛고 타오른다. 인간이 헤아릴 수 있는 크기만 하다. 그러나 불에서 훨씬 더 거대한 것은 가장 높은 산보다 더 높이 솟구칠 수 있는 연기 기둥이다.   &nbsp;  화재적운(pyrocumulus cloud)이란 것이 있다. 산불, 화산 폭발 또는 대형폭발로 인해 발생한 강한 열기와 연기가 대기 중에서 급격히 상승하며 형성되는 구름이다. 이는 세 번째 불이 대기와 상호작용하면서 어떻게 자연경관에 더 많은 불을 일으키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불이 불을 먹고 살며 더 많은 불을 일으키는 환경을 형성하는 것은 언제나 진실이다. 그러나 자연경관에는 불이 모든 것을 다 삼켜버리지 못하도록 막는 화재 방지벽이 있다. 암석 경관에는 없다. 그 대신 불이 연료를 재배치하고 기후를 바꾸며 또 다른 불을 일으켜 하늘 위로 연기를 피어 올린다.   &nbsp;  처방화입(處方火入; Prescribed burning)은 무엇인가? 산불 예방과 생태계 관리를 목적으로 날씨, 시간, 장소, 기상조건 등을 미리 정해 계획적으로 불을 놓는 임업 기술을 말한다. 대형 산불로 번지지 않게 연료가 될 만한 물질을 미리 태워버리는 역발상적인 조치다. 홍적세에 전 세계가 빙상에 파묻히진 않았지만 얼음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은 거의 없었다. 화염세의 불도 마찬가지다. 지구는 오랫동안 불의 행성이었고 이제 더 깊은 불의 시대로 향하고 있다.(233 페이지)   &nbsp;  저자가 내리는 처방을 보자. “우리는 땅속에 화석 바이오매스를 저장해야 한다. 오늘날 열기를 무섭게 뿜어대는 인류라는 존재를 식히는 것은 물론이고 미래에 귀환할 얼음을 물리치기 위해 비축해야 한다. 전략적으로 석유를 매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가올 추위를 대비한 방책이기도 하다.”(238 페이지) 저자는 불이 없으면 안 되는 우리와 달리 불은 우리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잊지 말기를 주문한다. 우리 인간만이 갖는 화력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도 명심하라고 말한다.   &nbsp;  그간 우리는 화력을 이용해 세상을 다시 열고 여섯 번째 태양을 띄웠다. 그러나 이제는 지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화염을 재분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지구의 미래가 곧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태양은 지구와 자연의 불(Fire and Earth), 두 번째 태양은 인간과 농경의 불(Fire and Water), 세 번째 태양은 식민지 개척과 유라시아 문명의 결합으로 불의 용도가 확장된 시대인 두 번째 자연, 네 번째 태양은 산업과 철의 불(Fire and Iron), 다섯 번째 태양은 현대와 공기의 불(Fire and Air), 여섯 번째 태양은 화석연료와 화염세(Pyrocene)를 의미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53/24/cover150/894750177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7532454</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소운(逍雲) 이정우 교수의 문학, 과학, 철학 유목(遊牧), 가로지르기 - [탐독 - 유목적 사유의 탄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52824</link><pubDate>Sat, 15 Aug 2026 22: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5282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055579&TPaperId=174528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892/11/coveroff/899205557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055579&TPaperId=1745282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탐독 - 유목적 사유의 탄생</a><br/>이정우 지음 / 아고라 / 2016년 12월<br/></td></tr></table><br/>탐독(耽讀)이란, 책을 즐겨 읽는 것을 말한다. 유목적 사유의 탄생이란 부제를 가진 [탐독]은 철학자 이정우 교수의 책이다. 정확히 20년전인 2006년 아고라 출판사에서 나왔다. [탐독]은 내가 구입한 저자의 첫 번째 책이 아니다. 첫 번째 책은 1997년에 나온 [가로지르기]이고 두 번째 책은 1994년에 나온 [담론의 공간]이다. 순서대로 읽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저자는 자신이 책의 세계, 지성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중학교에나 가서였다고 말한다. 목차는 문학, 철학, 과학의 3부로 이루어졌다. 이 순서는 아마도 일반적인 사람들이 읽는 순서가 아닌가 싶다. 물론 저자는 철학자이기에 세 분야의 책을 두루 읽을 것이고 특히 과학과 철학을 함께 읽으리라 생각한다.&nbsp;  &nbsp;  나는 문학 애호 시기를 지난 지 오래다. 그럼에도 평론에 대해서는 마음이 열려 있다. 저자는 에밀 졸라의 [목로 주점]을 철학과의 관계 하에서 이야기한다. 저자는 먼 훗날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 매료되었을 때 [목로주점]을 역사적으로, 철학적으로 재발견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궁금한 것은 저자는 문학을 여전히 사랑하는가?다. 저자가 중요하게 거론하는 책이 [삼국지연의]다. 유비, 조조 등이 등장하는 책이다. [주름, 갈래, 울림]에서 저자가 라이프니츠 철학을 이야기할 때 유비, 제갈량 등을 이야기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익히 알고 있는 소설과는 다른 갈래의 인물들을 상상해보자는 것이다.&nbsp;  &nbsp;  저자는 [연의]를 읽는 시간을 늘 행복했다고 말한다. 특히 제갈량은 자신에게 하나의 꿈이요 이상이요 낭만이었다고 말한다. 마지막까지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갸륵한 마음과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면서 삶이 다할 때까지 온몸을 살라 쟁투하는 모습이 삶의 한 모델이 되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이제 그 시간으로 아득한 저편으로 사라져 갔으니 시간이야말로 누구도 대적하지 못할 절대적 힘이 아니던가라고 말한다.&nbsp;  &nbsp;  저자는 베르그송의 말처럼 시는 우리에게 새로운 형태의 지각을 준다고 말한다. 저자는 시는 우리에게 이미 드러나 있으나 우리의 둔한 지각이나 때묻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저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이야기한다. 이틀 또는 사흘이란 빠른 시간에 침식을 잊고서 몰두한 소설은 그 전에도 또 그 후에도 없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지적인 성향으로 말한다면 자신은 과학적 성향보다는 인문학적 성향이 더 강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저자의 부모님은 저자가 의사가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러나 병원에 몇 달씩 입원했을 때 의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고단한 것인가를 알게 된 어머니 덕분에 의사에의 길을 일찍 접을 수 있었다고 한다.&nbsp;  &nbsp;  찰스 다윈의 사례와 비슷한 듯 다르다. 다윈은 1827년 에든버러 대학교 의대에 진학했으나 마취 없이 진행되던 당시 수술 장면과 끔찍한 시체 해부에 큰 충격을 받고 2년 만에 중퇴하고 의사의 길을 포기했다. 그 후 다윈이 간 곳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였고 전공은 신학이었다. 나는 어떤 유형일까? 2020년 지질해설사의 길에 들어선 이래 과학에 집중하고 있지만 문득 문득 인문에의 향수 같은 것을 느낀다. 이는 아직 내가 과학과 함께 인문을 공부하는 단계에 들어서지 못했음을 의미한다.&nbsp;  &nbsp;  저자는 과학의 세계에 접근하면서 세계의 또 다른 차원을 볼 수 있었고, 그런 경험이 자신의 사유를 아니 어쩌면 자신의 감성과 가치관까지도 상당히 바꾸어 놓았던 것 같다고 말한다. 과학을 공부하면서 그리고 훗날 철학을 공부하면서 저자는 예전과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 되었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고 말한다. 한 인간은 직업, 전공, 계층을 비롯해 자신이 속해 있는 장(場)의 영향을 결코 벗어날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장과 장 사이에는 거의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의 간극(間隙)이 패여 있고, 한 인간의 삶도 옮겨 다니는 장들에 따라 뚝뚝 끊어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훗날 저자는 가로지르기의 개념과 실천을 통해서 간극들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nbsp;  &nbsp;  [가로지르기]는 교보문고에서 우연히 보고 매료되어 산 책이다. 출간 연도인 1997년의 일이니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간 구입해 소장하고 있는 그의 책은 [가로지르기]에서 [세계철학사 1, 2, 3, 4]까지 모두 27권이다. 그간 서평을 한 권도 쓰지 못했다. 저자의 '가로지르기'는 기존 학문의 격자와 고정된 담론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적인 사유를 펼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저자는 가로지르기는 인간의 문제로 귀결되는 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은 아니고 그것을 통해 기존 담론 체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새유를 창조했을 때 의미 있는 작업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230 페이지)&nbsp;  &nbsp;  저자는 가로지르기를 하는 데 이공계 학문을 공부한 것이 큰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서울대학교에서 공학, 미학을 공부했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물리학, 생물학, 독일 문학, 역사학 등 담론 세계를 가로지르는 긴 유목(遊牧)을 시작한 저자는 30대 중반까지도 그것이 힘들었고 어딘가에 정착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유목이 자신의 사유라는 것을, 그때까지 힘겹게 했던 가로지르기가 자신의 사유의 본질이고 스타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정처 없이 유목하던 저자는 결국 유목 자체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되었고 역설적으로 표현해서 유목에, 가르지르기에 안착하게 되었다고 말한다.&nbsp;  &nbsp;  저자의 유목 분야 중 물리학이 눈에 띈다. 나는 내가 관계하는 지구과학보다 더 물리학 책을 많이 읽는 때도 있다. 저자는 [주역(周易)]에서 늘 관심 있게 생각했던 지도리(기; 機)란 개념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의 책 가운데 [시간의 지도리에 서서]가 있다. 저자는 전파과학사에서 나온 작은 문고본 책들을 통해 비로소 넓은 안목에서 과학을 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오로지 교과서들만을 가지고서 과학 공부를 하는 것은 결코 좋은 방식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nbsp;  &nbsp;  저자에 의하면 양자(量子)가 진동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에너지의 불연속을 함축하며 이것은 에너지를 연속적인 무엇으로 파악했던 이전의 생각을 무너뜨렸다. 이것은 물질에 대한 사유의 역사에서 중요한 하나의 지도리를 형성한다.(212 페이지) 주역(周易)에 나오는 지도리는 세상을 움직이고 인간의 삶을 바꾸는 가장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핵심 기틀을 의미한다.&nbsp;  &nbsp;  저자는 파(波)는 물질이 아니라 에너지를 이동시킨다고 말하며 입자들이 파를 전달시킨다고 말하는 것과 입자들이 파(波)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덧붙인다. 루이 드 브로이의 물질파 개념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저자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삶 죽음 운명]에도 그 이야기가 나온다. 내게 특별히 재미 있게 느껴진 부분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나오는 데미우르고스, 파라데이그마, 코라, 아낭케를 논한 부분 등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를 다시 읽을 필요를 느낀다.&nbsp;  &nbsp;  저자는 한국에는 유독 하이젠베르크의 책들만이 많이 소개되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최근 여러 물리학자들의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눈에 띄는 것은 이탈리아 물리학자들의 책이다. 특히 카를로 로벨리의 책이 그렇다. 이라크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짐 알칼릴리도 내가 즐겨 읽는 물리학 책 저자다. 저자는 양자역학과 더불어 열역학에 깊은 흥미를 가졌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열역학은 열이라는 존재를 한 계의 부피, 압력, 온도의 개념을 통해 다룬다.(233 페이지) 이는 열역학이 열 현상을 철저하게 외부적 시선으로, 객관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것이라고 한다.&nbsp;  &nbsp;  여기에 뜨겁다는 감각적 사실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몸의 차원에서는 현상학적으로는 열이란 무엇보다 뜨거움을 통해 지각된다. 저자에 의하면 기하학은 색도, 맛, 냄새, 촉감도, 또 인간도, 의미와 가치, 역사도 없는, 오로지 형태만이 존재하는 추상성을 다룬다.(189 페이지) 그러나 이 추상성의 세계에 입문해야만 비로소 과학의 세계에 들어설 수 있다. 이를 지구과학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지질학은 지구를 위도와 경도, 판의 경계, 변환 단층이라는 기하학적 선과 도표로 파악한다. 지진을 릭터 규모나 진도(震度) 같은 추상적인 숫자와 에너지 단위로 다룬다. 그러나 인간에게 지진은 대지가 흔들리고, 서 있는 발밑이 무너지며,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절대적인 공포와 감각의 경험이다.&nbsp;  &nbsp;  과학은 지구를 선과 도형으로 단순화(추상화)하여 규칙을 찾아내지만, 그것이 현상학적 몸과 만날 때 재난의 역사가 된다. 저자가 말했듯 나이가 든다는 것은 관심이 점차 좁아진다는 것을 뜻한다.(249 페이지) 나의 경우 문학에 관심이 거의 사라진 것은 관심이 좁아진 것을 반영한다. 저자는 생물학은 꾸준히 공부해온 담론이고 앞으로도 평생토록 많은 시간을 바칠 영역이라 말한다.(250 페이지) 나의 경우는 어떤가? 생물학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리 쉽지는 않다.&nbsp;  &nbsp;  저자는 물질, 에너지, 정보가 생명체 이해의 근간을 이룬다고 말한다. 2001년 무렵 기(氣) 수련을 하며 기(氣)를 물질, 에너지, 정보로 놓고 보려했던 것이 생각난다. 생명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진화다. 저자는 진화의 과정이란 결국 생명체들이 시간에 처해서, 차이의 운동에 처해서 스스로의 동일성을 계속 바꾸어 나간 역사 이외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263 페이지) 상당히 인상적인 말이다.&nbsp;  &nbsp;  2부 ‘과학의 세계’편에 특이하게도 계급 투쟁의 역사와 정치경제학 이야기가 나온다. 다음 말을 보라. “갈릴레오는 진공상태 및 마찰이 없는 바닥을 가정하고 역학적 법칙을 세운 후 거기에 실제 현실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들을 부가해서 물체의 운동을 위한 함수를 세웠다. 이런 인식 방법은 근대 과학의 인식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고 주류 경제학 역시 이런 방법을 구사한다. 주류 경제학이 우선 전제하는 완전 경쟁 시장의 모델이 그것이다. 이 시장에서 이기성과 합리성을 본질로 하는 개인들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물건을 사고 판다.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개인은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개인이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는 자유주의 정치철학과 주류 경제학이 맞물려 있음을 간파하게 된다.”(273 페이지)&nbsp;  &nbsp;  과학과 경제학 또는 사회과학이 맞물려 있음을 알게 하는 글이다. 주류 경제학(신고전파 경제학)은 갈릴레오의 진공 상태를 사회과학에 그대로 가져왔다. 복잡한 인간의 감정과 윤리를 모두 지워버리고 오직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완벽하게 합리적인 존재(Homo Economicus)’만을 가정한 것이다. 마찰이 없는 바닥처럼 독과점이나 정보의 비대칭이 전혀 없는 완전 경쟁 시장이라는 가상의 실험실을 만들었다. 이 진공 상태에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라는 수학적 균형 함수를 세우고, 현실의 왜곡(정부 규제, 독점 등)은 나중에 고려해야 할 사소한 변수로 취급한다.&nbsp;  &nbsp;  저자의 맥락으로 돌아가면 갈릴레오의 이 선택은 생생한 현실(마찰이 있는 세상)을 배반하고 오직 형태와 수식만 존재하는 추상성의 세계로 진입한 사건이다. 역설적이게도 현실을 그대로 관찰하기를 포기하고 ‘가상의 진공’을 상상했기 때문에 인류는 근대 과학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얻을 수 있었다. 저자는 지적 유목을 시작한 후로 자연과학, 사회과학, 역사, 문학 등 여러 담론의 세계를 유랑했지만 결국 철학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후에도 과학 철학, 그리스 철학, 프랑스 철학, 동양 철학 등 철학 세계 내에서의 유랑은 계속되었고 지금은 결국 철학의 테두리에서도 벗어나 버렸다고 말한다.&nbsp;  &nbsp;  물론 오랜 기간 동안 철학에 몰두했기 때문에 철학이 자신의 사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긴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철학자라고도 또는 다른 무엇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저 사유하는 사람, 저작 활동과 교육활동을 하는 사람 정도라고 생각할 뿐이라고 말한다. 오랜 시간 동안 유목을 해왔기 때문에 이제는 유목이 특별히 유목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신의 사유가 흘러가는 대로 사유하고 글을 쓸뿐이며 그런 가로지르기의 사유, 유목의 사유가 자신에게는 오히려 더 편안하고 친숙하다고 말한다.(285 페이지)&nbsp;  &nbsp;  저자는 과학도 예술도 다른 모든 것들도 현실과 상관적으로 이루어질 때 우리 삶으로부터 괴리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메를로 퐁티의 존재론적 환원주의는 거부해야겠지만 우리로 하여금 지각된 세계의 의미를 계속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현상학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무엇인가에 매료되었던 적이 없는 사람이 그것에 대한 의미 있는 비판을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299 페이지)&nbsp;  &nbsp;  저자는 항상 철학, 과학, 문학 세 가지가 혼효(混淆)되어 있는 사유를 원했던 지금도 그렇다고 말한다. 혼효(混淆)란 서로 다른 성질의 것들이 뒤섞여 하나로 합쳐짐을 뜻하는 말이다. 저자가 철학적 개안(開眼)을 하게 된 것은 박홍규 선생의 베르그송 강의를 들으면서부터다. 저자는 자연과학을 공부하면서 가지게 된 물질, 생명, 정신에 대한 형이상학적 관심사에 대해 말한다. 베르그송은 결정론과 자유의지 논쟁이 한참 절정에 올랐을 때 사유를 시작했다.(313 페이지)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는 성인을 모델로 한 편협한 개념일 뿐이라 말한다.&nbsp;  &nbsp;  3부 ‘철학 마을 가로지르기‘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나 자신의 사유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래 한동안 몰두했던 작업은 베르그송과 바슐라르의 비교였다.”(321 페이지) [담론의 공간]에 관련 이야기가 나온다. “현대 철학은 베르그송의 철학이 대전제로 삼고 있는 연속의 원리를 포기함으로써 성립했다. 바슐라르, 캉길렘, 알튀세, 푸코, 세르 등의 인식론, 다양한 구조주의적 인간과학들, 카타스트로피 이론, 분자생물학, 아날학파, 게르의 철학사 등등 우리는 오늘날 도처에서 불연속의 개념을 만난다. 불연속은 현대사회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275 페이지)&nbsp;&nbsp;  &nbsp;  저자는 맹목적 탈주도 시대착오적인 회귀도 아닌, 탈주와 회귀 사이에서 근대성을 제고한다는 것, 그로써 전통 – 근대 - 탈근대가 모두 균형 있게 성찰되는 사유를 시도한다는 것, 그것이 자신의 목적이었다고 말한다. 이런 과정에서 자신이 발견한 인물이 바로 다산 정약용이었다고 말한다.(338 페이지) 저자는 자신이 다산에게서 발견한 것은 자본주의적 주체와 대비되는 도덕적 주체였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실학이라고 통칭하는 담론들이 대체적으로 실사구시의 성격을 띤 담론이었던 데 비해 다산만은 동북아 전통의 핵을 형성하는 경학(經學)의 세계를 정면 돌파하려 했다고 말한다. 바로 여기에 철학자로서의 다산의 위대함이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때의 경학은 좁은 의미의 경학만이 아니라 사서(四書)까지 포함한다. 사서를 편찬한 것이 주자이고 보면 다산에게 사서의 새로운 독해는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를 띤다고 하겠다.&nbsp;  &nbsp;  2025년 11월 나온 한형조 교수의 [두 개의 논어]를 감명 깊게 읽은 기억이 새롭다. 두 개의 논어란 주자가 본 논어, 다산이 본 논어를 말한다. 이정우 교수에 의하면 다산은 주자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을 한평생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는 [두 개의 논어]의 많은 부분에서 다산의 해석에 공감했다. 이런 대립 구도는 주자와 다산의 맹자 이해로 이어진다. 다산은 [맹자요의]를 통해서 도덕적 주체를 다루고 있거니와 그가 맹자의 해독을 통해서 말하려 했던 것은 주자와 상반된다. 주자와 다산의 맹자 이해 - 사실 맹자는 두 가지의 해석을 다 허용한다고 생각한다 - 는 칸트와 스피노자의 대립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nbsp;  &nbsp;  칸트가 현실적인 좋음과 나쁨으로부터 아예 단절을 이루는 도덕을 세우려 했다면 스피노자는 기독교적인 선악을 넘어서 현실 내재적인 윤리를 세우려 했다. 이와 유사하게 다산은 주자의 본질주의 및 초월적 도덕주의를 비판하고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윤리를 세우려 했던 것이다.(341 페이지) 나는 이런 대립 구도를 좋아한다. 저자에게는 레비스트로스의 투명한 초합리주의보다 클라스트르의 이야기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클라스트로의 [폭력의 고고학]도 꼭 읽어보길 바란다고 저자는 말한다. 클라스트로의 인류학은 과거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한다.&nbsp;  &nbsp;  나는 고고학보다 인류학에 마음이 간다. 저자는 라이프니츠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관심이 있었다고 말한다. 들뢰즈는 서구 존재론의 용광로다. [차이와 반복]이 세계의 심층을 다룬다면 [의미의 논리]는 표층을 다룬다. 전자가 잠재성의 세계를 다룬다면 후자는 현실성의 세계를 다룬다. 저자에게 [차이와 반복]은 기(氣)의 사유로, [의미의 논리]는 역(易)의 사유로 다가왔다. 세계의 잠재성은 기(氣)이고 기화(氣化)의 결과로서의 생성이 역(易)이기 때문이다.(358 페이지)&nbsp;  &nbsp;  심층과 표층은 본래 지질학 및 지형학에서 쓰이는 용어이지만 질 들뢰즈의 철학에서는 이를 인간의 존재와 의미의 발생을 설명하는 공간적 은유의 의미를 지닌다. 저자는 프락탈 이론을 처음 접했을 때 무릎을 쳤다고 말한다. 역(易)과 라이프니츠를 읽으면서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주름 개념이 그야말로 시각적으로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프락탈의 주름이 구상적인 주름, 기하학적인 주름이라면 역(易)과 라이프니츠의 주름은 훨씬 추상적인 주름, 존재론적인 주름이라는 점에서 즉물적으로 동일시할 수는 없다.(363 페이지)&nbsp;  &nbsp;  나는 라이프니츠의 주름 논의의 핵심인 접힘과 펼쳐짐론을 보며 접힘을 지구 내부의 단층에 의한 스트레스 축적으로, 펼쳐짐을 스트레스가 한계를 넘을 때 에너지가 급격히 표출되는 것으로 설명하다가 그만 두었다. 라이프니츠 철학에서는 겉으로는 복잡하고 무질서해 보이는 세상의 이면(裏面)에 엄격한 수학적 질서가 있다. 단층론에는 종잡을 수 없는 현상 이면에 엄밀한 물리학적 질서가 있다.&nbsp;  &nbsp;  모나드론이 한 개체에 다른 개체들이 반영된 채 세계의 시간이 그물망처럼 접혀 있다고 보듯 단층에 의한 지진론 역시 프랙탈 같은 구조로 엮여 있다고 본다. 물론 모나드론은 형이상학적이다. 이 세계가 신이 창조한 가능한 최선의 세계라는 라이프니츠의 사상을 예전에는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이라고 그런 거부감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세상의 메커니즘이 절묘하다는 생각은 더해진 느낌이다.&nbsp;  &nbsp;  책의 결론격의 이야기는 이렇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자연과학적 관심을 인간과 문화에까지 확장시킬 때 늘 불만족스럽고 나아가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결과들이 나오곤 한다. 자연과하기 사회과학, 인문학을 가로지르면서 종합적 사유를 하는 것은 매혹적인 일이다. 문제는 자연과학에서 세운 어떤 관점이나 이론을 사회과학, 인문학을 가로지르는 과정 없이 곧바로 확장해서 인간과 문화를 이야기하는 경우다. 그럴 경우 늘 조야(粗野)한 결과로 이어진다. 그것은 문학적 자연관을 자연과학 공부를 거치지 않은 채 그대로 자연에 투사해서 얻게 되는 결론이 우스꽝스러운 것과 똑같이 우스꽝스럽다.”(368 페이지) 철학을 다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과학과 함께 하는 철학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892/11/cover150/899205557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8921178</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2026년 여름 폭염에서 빙하 이야기까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51148</link><pubDate>Fri, 14 Aug 2026 21: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5114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3929820&TPaperId=174511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842/81/coveroff/898392982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 &nbsp;2026년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던 시간이었다. 기억으로 뜨겁고 건조한 고기압이 하늘을 덮어 낮 기온이 극단적으로 치솟는 형태였던 1994년 여름도 숨막히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뜨거워진 바다가 막대한 수증기까지 공급함에 따라 낮에는 폭염, 밤에는 역대급 열대야가 동시에 타오르는 양상을 보인 올해는 1994년 더위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기후학자들은 2026년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를 했다. 2026년이 실제로 시원했다는 뜻이 아니라 가속되는 지구온난화 때문에 다가올 여름은 올해보다 무조건 더 뜨거울 수밖에 없다는 절망적인 선언이다.  &nbsp;  이럴 때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분화로 빚어진 풍경을 그리게 된다. 당시 화산 분화로 엄청난 양의 이산화황이 성층권에 퍼져 다음 해 지구 평균 기온이 0.5°C~0.7°C 떨어졌다. 이산화황이 산소, 수증기 등과 화학 반응을 일으켜 미세 액체 방울 또는 입자 형태의 황산염 에어로졸을 형성해 지구로 들어오는 햇빛을 우주로 반사한 결과다. 1991년의 피나투보 대분화는 1980년대 후반부터 이어지던 지구온난화 흐름을 약 2년 동안 완전히 멈추게 했다. 1992년을 기점으로 약 2년이 정점이었던 냉각 효과는 1994년 피나투보 화산의 우산 효과가 완전히 끝나며 지구온난화 열기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nbsp;  이산화탄소는 상온·상압의 지구 대기 환경에서 액체나 고체 입자로 뭉치지 않고 오직 안정된 기체 상태로만 존재해 햇빛을 반사할 수 있는 알갱이(입자) 상태가 되지 못한다. 화산재는 짧은 기간 빛을 가리고, 이산화황은 성층권에 오래 머물며 기후 변화(냉각)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맨틀 깊은 곳의 유황 성분이 풍부한 해양 지각이 섭입하면 지각이 녹으면서 안산암질이나 유문암질 마그마가 생성된다. 이런 화산대에서 이산화황이 많이 나온다. 석회암 등 탄산염 암석이 많은 대륙지각을 뚫고 올라오는 화산에서 이산화탄소가 많이 나온다.   &nbsp;  화산재가 많이 나오는 화산은 이산화규소 함량이 높은 화산이다. 안산암질(중성), 유문암질(산성)이 그것으로 마그마가 너무 끈적끈적해 가스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내부에 갇힘에 따라 마그마가 지표면으로 올라올수록 가스 주머니가 팽창하며 압력이 극도로 높아진다. 압력을 견디지 못한 끈적끈적한 마그마가 지상으로 나오는 순간 내부의 가스 주머니들이 풍선처럼 일제히 펑펑 터지며 마그마 전체를 잘게 찢어놓는다. 찢어진 마그마 파편들이 공기 중에서 급격히 식으면서 유리에 가까운 미세 돌가루가 된다. 이것이 화산재다.   &nbsp;  지각 밖에서 식는 중성 마그마가 안산암질이라면 내부에서 식는 중성의 마그마는 섬록암질이다. 지각 밖에서 식는 산성 마그마가 유문암질이라면 내부에서 식는 산성 마그마는 화강암질이다. 지각 밖에서 식는 현무암은 이산화규소 함량이 낮은 염기성으로 분류된다. 내부에서 식는 염기성 마그마는 반려암이다. 지질에서 말하는 염기성, 중성, 산성은 이산화규소 함량에 따른 분류다.(52%까지; 염기성, 52~66%; 중성, 66% 이상; 산성)   &nbsp;  미래의 여름은 올해보다 무조건 더 뜨거울 수밖에 없다는 경고는 1) 온실 가스 누적 효과와 풍선 효과, 2) 한계에 다다른 바다라는 온수매트, 3) 역설적인 '맑은 하늘'의 부작용 등에 근거를 둔 경고다.   &nbsp;  우리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에 최소 수백 년에서 수만 년 동안 축적된다. 이산화황 대방출처럼 일시적으로 햇빛을 가려 기온을 낮춰주는 자연의 우산이 매년 생겨주지 않는 한 대기 중에 켜켜이 쌓인 온실가스는 매년 지구 밖으로 나가는 열을 더 촘촘하게 가두게 된다. 다음 해의 온실가스 농도는 올해보다 높을 것이므로 지구가 머금는 열에너지의 총량은 매년 늘어나게 된다.   &nbsp;  지구 지표면의 70%를 차지하는 바다는 그동안 인류가 만들어낸 열의 90% 이상을 대신 흡수하며 방패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 한반도 주변 및 전 세계 해수면 온도가 관측 사상 최고치를 매년 갈아치우고 있다. 바다가 뜨거워지면 대기 중으로 엄청난 양의 수증기(열을 품는 온실가스 역할을 함)를 뿜어내며, 기온이 쉽게 내려가지 않는 '거대한 온수매트'로 돌변한다. 이 가열된 바다는 단기간에 식지 않기 때문에 다음 해 여름의 기초 온도를 더 높여 시작하게 만든다.   &nbsp;  수증기의 짧은 생명은 별 의미가 없다. 개별 수증기 분자는 비나 눈으로 쉽게 내려오기 때문에 생존 기간이 평균 약 10일로 매우 짧다. 하지만 바다에서 끊임없이 리필되는 데에 문제가 있다. 즉 개별 분자는 잠시 머물다 사라지지만 뜨거운 바다가 공급하는 전체 시스템 관점에서는 수증기의 총량이 계속 유지되거나 늘어나면서 강력한 보온 효과를 낸다. 이산화탄소의 생존 기간은 수백 년에서 수만 년에 달할 정도로 매우 길다. 즉 한 번 배출되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nbsp;  자가디시 슈클라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바다가 거대한 열 흡수원으로서 지구 온도를 방어하는 동안 육지 표면 역시 기후 체계를 조절하고 예측하는 데 있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핵심 인자임을 평생의 연구를 통해 입증했다. 바다가 양적인 방패(90% 이상의 열 흡수)라면 슈클라 박사가 주목한 육지는 기후의 방향과 변동성을 결정하는 질적인 조절자에 가깝다. 슈클라 박사에 의하면 육지 역시 토양 속 수분을 통해 기후를 기억하고 조절한다.   &nbsp;  슈클라 박사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인도 등 아시아 지역의 몬순(계절풍) 예측을 현대화한 것이다. 몬순은 대륙(육지)과 바다가 햇빛을 받았을 때 데워지는 속도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육지 표면이 얼마나 뜨거워지느냐에 따라 바다로부터 습한 바람을 끌어당기는 흡입력의 강도가 달라지며 이는 수억 명의 생존이 걸린 비의 양을 결정한다. 육지의 상태가 기후 예측의 핵심 경계조건이 되는 것이다. 슈클라 박사의 논의에서 지질학적 의미도 길어올릴 수 있다. 지각의 가장 바깥층(토양과 식생)은 멈춰있는 돌덩이가 아니라 대기층과 동기화되어 실시간으로 지구의 기후와 환경을 조절하는 거대한 지질학적 기관(Organ)이라는 것이다.   &nbsp;  2026년 우리는 그래도 유럽보다 나았다. 유럽의 여름 기후는 기상 관측 사상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잔혹한 '다섯 차례의 살인 폭염'과 초대형 산불로 얼룩졌다.   &nbsp;  자가디시 슈클라는 나비 효과에도 불구하고 계절 예측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방적인 우상향(지구온난화) 추세 속에서도 자가디시 슈클라의 계절 예측은 여전히 매우 강력한 의미와 실용성을 갖는다. 기후변화로 인해 평균 기온이 계속 오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절 고유의 '오르락내리락(변동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준선이 올라간 상태에서도 여느 해보다 더 혹독한 폭염이 오는 여름이 있고 온난화 중에도 일시적으로 지독한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이 있을 수 있다.   &nbsp;  슈클라의 계절 예측 덕분에 올해 장마철에 비가 너무 안 와서 가뭄이 들지, 폭우가 쏟아져 홍수가 날지를 몇 달 전에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수억 명의 식량 생산과 직결되는 문제다.   &nbsp;  올해 유럽을 덮친 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알프스의 거대 빙하가 폭포수처럼 녹아내리는 재난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유럽이 유독 폭염이 심한 것은 주변의 북극 해빙과 대륙의 눈(Snow) 커버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육지의 햇빛 반사율(알베도)이 무너진 결과다. 하얗게 빛을 반사해 주던 눈과 얼음이 사라진 자리를 어두운 맨땅과 바다가 채우면서, 유럽 대륙 전체가 태양열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nbsp;  빙하가 녹는 현상은 단순히 물이 늘어나는 것을 넘어 지구의 고체 땅을 움직이고 전 세계 바다의 높이를 비틀며 거대한 지형을 순식간에 바꾸는 연쇄적인 지질학적 폭주를 일으킨다. 빙하가 녹으면 지진이 나기도 하고, 주변이 아닌 다른 지역 수위가 올라가기도 하고, 폭포가 되기도 한다. 빙하, 하면 프랑스의 빙하학자 클로드 로리우스 생각이 난다. 1965년 남극 탐사 당시 위스키에 빙하 얼음을 넣어 마시다 탁탁 소리를 내며 터지는 기포를 보고 이 기포가 수십만 년 전 지구의 대기를 그대로 간직한 타임캡슐임을 직감한 인물이다.   &nbsp;  [빙하여 안녕]은 지구 기후 시스템의 거대한 브레이크이자 인류 문명을 지탱해 온 안녕(Peace)의 시대가 종말을 고했음을 뜻하는 슬프고도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을 읽어야겠다.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는 마지막 기후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nbsp;    &nbsp;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842/81/cover150/89839298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8428106</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파도칠 때 물은 공회전하고, 하루에 한 번만 밀물 - 썰물이 일어나는 곳도 있다면 - [파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 경이롭고 유쾌한 파동의 과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45971</link><pubDate>Wed, 12 Aug 2026 08: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4597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32030906&TPaperId=1744597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807/31/coveroff/k63203090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32030906&TPaperId=1744597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파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 경이롭고 유쾌한 파동의 과학</a><br/>개빈 프레터피니 지음, 홍한결 옮김 / 김영사 / 2025년 07월<br/></td></tr></table><br/>달의 인력으로 인해 지구에 밀물과 썰물이 생기며 바닷물이 부풀어 오른다. 지구가 자전하면서 이 바닷물과 해저면 사이에 강한 마찰이 일어나 지구 자전이 느려진다. 이때 발생한 에너지가 달로 전달되어 달의 공전 궤도가 넓어진다. 이 때문에 지구와 달의 거리는 매년 약 3.8cm씩 멀어진다. 개빈 프레터피니의 [파도 관찰자를 위한 가이드]는 조석파(潮汐波)를 세상에서 가장 큰 파도라 정의한다. 그것은 달과 태양의 인력(引力)이 작용해 지구 전체의 바다를 이동시키는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nbsp;  여기서 크다는 것은 외형의 크기를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니라 범위와 스케일이 그렇다는 것이다. 쓰나미가 가장 큰 파도라면 조석은 지구 반 바퀴에 달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범위에 작용하기에 크다는 것이다. 개빈 프레터피니는 [구름 관찰자를 위한 가이드]란 책을 쓴 저자이기도 하다. 구름과 파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두 현상은 파동이 본질이라는 점에서 하나다. 파도와 구름은 물질 자체가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가 매질(媒質)을 타고 흐르며 만들어내는 형태다. 또한 두 현상 모두 물과 공기의 역동적인 상호 작용의 산물이다. 두 현상 모두 끊임없이 변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nbsp;  에너지가 앞으로 나아갈 때 물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파도가 칠 때 물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원운동을 한다. 저자는 구름관찰자(cloudspotter)는 파도관찰자(wavewatcher)이기도 하다고 말한다.(11 페이지) 흥미롭게도 spotter은 숨겨진 것을 찾아내거나 포착한다는 의미가 강하고, watcher는 시간을 두고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본다는 의미가 강하다. 저자는 파도를 갓난 아기기(잔물결), 아동기(풍랑), 성인기(성숙한 파도), 원숙기(너울), 종말기(쇄파) 등으로 분류했다.   &nbsp;  에너지는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꿀 뿐이다. 파도가 자갈에 밀려와 부서질 때 에너지가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꿔 소리를 내는 것으로 변하게 된다. 소리도 파도처럼 일종의 파동이다. 다만 물이 오르내리는 파동이 아니라 기압이 변동하는 파동이다. 저자는 파도가 지구에 가하는 맥동이라는 이름의 진동을 지진으로 발생하는 충격파의 미약한 버전으로 본다.   &nbsp;  보이지 않지만 파동임에 분명한 것은 소리다. 반사, 굴절, 회절은 파동이 방향을 바꾸는 세 가지 방식이다. 파동은 무엇인가에 부딪히면 튕겨 나온다. 이것을 반사라고 한다. 파동은 한 물질에서 다른 물질로 들어갈 때 방향이 바뀌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굴절이라고 한다. 굴절은 파동이 가진 비장의 무기다. 파동이 방향을 바꾸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파동이 경계면에 직각이 아닌 비스듬한 각도로 도달해야 한다. 둘째 파동이 두 물질에서 자연적으로 진행하는 속도가 서로 달라야 한다.   &nbsp;  빛 같은 것이 한 물질에서 다른 물질로 들어갈 때 파동의 방향이 바뀌는 현상과 속도 차이는 관련이 있다. 속도가 바뀌기 때문에 방향이 바뀌는 것이다. 결합 구조가 단단할수록 소리의 속도가 빨라진다. 금을 통해서는 초속 3240m, 다이아몬드를 통해서는 무려 초속 12000m에 이른다. 저자는 파동 관찰자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파도를 바라보는 것에서 충분히 낙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최고의 명상법이 될 수 있지만 더 넓은 의미의 파동 관찰자란 종류가 전혀 다른 파동 즉 해변의 파도처럼 눈에 잘 보이는 파동과 소리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 사이에서 연결고리와 유사성을 찾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119 페이지)   &nbsp;  파동은 작은 장애물을 만나면 장애물이 없는 것처럼 완전히 감싸며 돌아 나간다. 좁은 틈을 통과할 때는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간다. 회절은 파동의 이치 중 하나이지만 소리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회절의 효과는 온갖 종류의 파동에서 나타난다. 날카로운 낚시꾼이 눈으로 수면의 파문을 읽어 물고기의 위치를 파악하듯 우주 학자들은 마이크로파를 감지하는 우주탐사체를 이용해 과거의 중요한 우주 교란에 관한 증거를 찾는다.   &nbsp;  탐지된 마이크로파 덕분에 우주의 기원과 구성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으며 수십 년간 이어졌던 우주의 기본 성분에 대한 논쟁이 종결되기도 했다.(137 페이지) 자신이 만든 파동 탓에 존재를 들키는 것은 물고기뿐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움직이는 교란체여서 본의 아니게 늘 이런저런 형태의 파동을 발산하므로 감지할 줄 아는 상대에게 정체를 들키고 만다.(139 페이지)   &nbsp;  뜻하지 않게 발생한 파동 신호 탓에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는 것은 참 불운한 일이다. 하지만 동물이 파동을 만들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진화의 막다른 길 끝에서 굉장히 외롭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번식이란 본질적으로 협력이 필요한 일이니 모종의 소통은 모든 종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nbsp;  책의 원제인 [The wavewatcher's companion]에서 wavewatcher은 파도 관찰자라기보다 파동 관찰자라고 해야 더 좋을 것 같다. 파도뿐 아니라 파도의 상위 범주인 파동 일반을 다룬 책이니 [파동 관찰자를 위한 가이드]라 해야 좋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책에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아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재미 이상의 의미도 느낄 수 있다.   &nbsp;  파동과 진동의 관계에 대한 내용도 그 중 하나다. "파동과 진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진동이 파동을 만들지만 그 관계는 단방향이 아니다. 파동 역시 진동을 만든다. 특히 주기적인 파동은 결국 진동의 움직이는 패턴이기에 더욱 그렇다."(149 페이지)는 글이 그 중 하나다. 지진 역시 진동-파동-진동의 순서로 진행된다. 진행파를 progressive wave라 하고 정상파(定常波)를 standing wave라 한다.   &nbsp;  정상파는 한 자리에 머무는 파다. 저자는 풍성 지형학자를 찾아 나섰다. 영국 런던 킹스 칼리지 자연 지리학과의 안드레아스 바스 교수가 주인공이다. 저자가 안드레아스 파스 교수를 찾은 이유는 물살이나 바람 속에서 나타나는 모래의 움직이는 굴곡이 비록 느리고 입자 형태이긴 해도 파동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nbsp;  안드레아스 바스는 "저희 지형학자들은 사구(沙丘)를 파동으로 간주하기를 항상 아주 꺼려합니다. 왜냐하면 사구의 형성 메커니즘 자체가 바다의 파도와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란 말을 했다. 저자는 불변하는 존재를 찾는 과정에서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에너지라고 말한다.(211 페이지)   &nbsp;  충격파는 무엇인가? 어떤 종류의 파동이든 너무 격심해져서 평소의 순한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작용할 때 우리는 그것을 충격파라 부른다. 판구조론에 따르면 지구 표면은 여러 개의 거대하고 단단한 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판들의 상대적 위치는 계속 서서히 변한다. 지진은 판들이 맞닿은 경계에서 엄청난 마찰력이 갑자기 해소되면서 주로 발생하며 이때 판들이 격렬하게 엇갈리면서 발생하는 충격파는 지구의 겉과 속에 울려 퍼진다.   &nbsp;  지진 피해의 대부분을 일으키는 것은 실체파가 아니라 표면파다. 지진이 나면 빠른 P파가 도착해 작게 위아래로 덜컹거리고, 뒤이어 S파가 도착해 좌우로 흔들린다. 그 직후 가장 느리지만 가장 거대한 에너지를 품은 표면파가 도달하면서 본격적인 지상파괴가 시작된다. 표면파의 하나인 러브파는 파동이 좌우로 흔들리고, 레일리파는 위아래로 출렁인다. 레일리파는 바다의 파도와 비슷하다.   &nbsp;  표면파는 지각 내부를 통과하던 실체파가 지구 표면과 부딪혀 굴절하고 반사되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상호작용하여 새롭게 합성하여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하루에 두 차례 밀물과 썰물이 일어난다. 하지만 하루에 한 차례 밀물과 썰물이 일어나는 곳도 있다. 멕시코만과 남중국해 등이다. 일반적인 바다는 하루에 두 차례 밀물과 썰물이 생기지만 대륙으로 꽉 막혀 입구가 좁아진 만 형태의 바다에서는 지형과 물의 출렁임 주기가 맞물려 하루에 한 번만 밀물과 썰물이 일어나는 독특한 현상이 생긴다.   &nbsp;  일반적인 파도는 해안에 다가오면서 심해파에서 천해파로 바뀐다. 파도 속의 물은 원래 원운동을 하지만 수심이 얕아질수록 원운동을 하기가 어려워지므로 찌그러져 타원이 되고 결국엔 왕복 운동만 남는다. 이것이 우리에게 친숙한 해변에 밀려왔다가 쓸려 나가는 파도의 움직임이다. 수심이 파장의 약 20분의 1 이하로 얕아지면 심해파가 천해파로 바뀐다. 일반적인 파도는 바다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서로 겹치기 때문에 해안에 상당히 불규칙한 패턴으로 도달하는 경우가 많다.   &nbsp;  반면 조석파는 철저하게 태양과 달의 규칙적인 운동을 따르므로 훨씬 더 규칙적이다. 조석 현상이 거의 없는 바다도 있다. 이유는 바다 자체가 크지 않아서이다. 조석이란 달과 태양의 인력과 지구의 자전 및 공전으로 인해 발생하는 원심력이 합쳐져 일어나는 해수면의 주기적인 상승 및 하강을 의미한다.   &nbsp;  조석이 지구의 생명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약 45억 년 전 지구가 형성되던 시기에 화성 정도의 크기인 테이아라는 행성이 지구에 날아와 충돌했다고 본다. 이른바 거대충돌 가설로 크게 퍽 후려침 정도를 뜻하는 빅 웩(big whack)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바닷물이 대륙을 휩쓸며 땅을 깎아내려 미네랄을 바닷가로 운반한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nbsp;  책은 빛이 가진 파동 입자 이중성과 양자역학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자연스럽게 전자현미경 이야기도 다루어진다. 전자현미경은 전적으로 전자들의 흐름이 갖는 파동성을 이용한 방법이다. 주사(走査) 전자현미경(SEM: Scaning Electron Microscope)은 가늘게 집중된 전자빔을 시료에 쏘아 시료 표면에서 반사되거나 튀어나오는 전자들을 검출하는 방식으로 상을 얻는다.&nbsp;투과 전자현미경(TEM: Transmission Electron Microscope)은 비교적 굵은 전자빔을 극히 얇은 시료에 쏘아 상을 얻는다. 전자현미경이 엄청난 배율로 확대된 상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입자의 흐름에 따른 파동인 물질파 덕분이다. 모든 미세한 입자는 충분히 빠르게 가속하면 파동처럼 행동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807/31/cover150/k6320309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8073112</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지진, 화산, 홍수, 허리케인 등의 실상과 우리의 대응 자세 - [재난의 세계사 - 미래의 자연재해에 맞서기 위한 과거로부터의 교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38009</link><pubDate>Fri, 07 Aug 2026 20: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3800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32639480&TPaperId=1743800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846/43/coveroff/k53263948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32639480&TPaperId=1743800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재난의 세계사 - 미래의 자연재해에 맞서기 위한 과거로부터의 교훈</a><br/>루시 존스 지음, 권예리 옮김, 홍태경 감수 / 눌와 / 2020년 04월<br/></td></tr></table><br/>지질학 박사 루시 존스의 [재난의 세계사]는 지진, 화산분출, 홍수, 허리케인 등의 재난을 다룬 책이다. 저자는 지진을 말해주는 여성(Earthquake Lady)이라는 별명을 가진 지진학자다.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이기도 한 저자는 지진학과 지질학 연구에서 얻은 방대한 수치 데이터를 음악의 음정(Pitch)과 선율로 바꾸는 작업을 해왔다. 저자에게 비올라 다 감바 연주는 지구의 진동인 지진과 기후 변화를 인간의 언어와 감성으로 번역해내는 또 다른 형태의 재난 연구이자 대중 강연인 셈이다.   &nbsp;  저자는 지진은 피할 수 없는 지구의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것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재난이 될지 아닐지는 우리 공동체의 준비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재난 관계를 말해주는 것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거대한 원뿔 모양의 산이다. 이는 용암이 침식 작용으로 깎이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흘러나온다는 뜻이므로 활화산이라고 한다. 땅이 침식작용으로 깎여 없어지는 속도보다 단층이 땅을 밀어 솟아오르게 하는 속도가 더 빠를 때 생기는 것이 산이다.(100 페이지) 땅이 솟아오른다는 것은 아래에서 주기적으로 강력한 압축력이나 비트는 힘이 누적되다가 지진을 통해 방출되고 있음을 뜻한다.(화산활동을 통해서도 땅은 솟아오른다.)   &nbsp;  산은 중력의 중심 방향과 반대로 높게 솟아 있는 거대한 흙과 암석의 덩어리다. 단층 운동으로 산이 가팔라질수록 중력이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에너지도 극대화된다. 지질학적 시각에서 산은 정지된 풍경이 아니라 단층의 솟구치는 힘과 중력의 끌어내리는 힘이 격렬하게 싸우는 전쟁터다. 화산이 분출하면 화산재, 용암, 돌멩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nbsp;  이때 물질들은 무한정 멀리 퍼지지 않고 중력과 돌멩이들끼리의 마찰력으로 인해 특정 경사각을 이루면 멈춰 선다. 중심점에서 사방으로 똑같은 힘이 작용하여 물질이 쌓이므로 위는 뾰족하고 아래로 갈수록 넓은 원뿔형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nbsp;  이렇게 화산이 분출하는 곳에서는 원뿔 모양의 산이 만들어지지만 지진이 일어나는 곳에서는 거대한 성벽이나 계단 모양의 산이 만들어진다. 화산이 만들어지는 곳은 세 가지다. 1) 중앙 해령, 2) 섭입대, 3) 열점이다. 폭발만 하지 않는다면 화산은 무척 살기 좋은 환경이다. 화산토는 투과성이 높아 물이 잘 빠지고 새로운 영양소가 많아서 작물이 잘 자라는 기름진 경작지가 된다. 화산 주변의 변형된 암석은 천연 요새가 되어 방어에 유리한 골짜기를 만들어준다. 폼페이는 활화산 베수비오에서 남동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위험한 곳에 세운 도시였고 결국 멸망했다. 베수비오는 변함 없는 활화산이다.   &nbsp;  지진파에는 두 가지가 있다. P파와 S파가 그것이다. P파는 지각을 압축시키고 S파는 지각을 비튼다. 지각은 비트는 힘에 더 약하다. 단단한 콘크리트 건물이 맥없이 무너지는 것도 S파 때문이다. 압축할 때는 암석 내부의 미세한 틈새나 균열들이 서로 단단히 맞물려 닫힌다. 힘이 분산되어 버티는 힘이 강해진다. 비트는 힘은 암석의 내부 균열을 찢어 열어 젖히는 인장력을 발생시킨다. 균열이 쉽게 벌어지며 파괴로 이어진다.   &nbsp;  비트는 힘이 발생시키는 인장력은 정단층과 깊은 관계가 있다. 지각이 양옆으로 잡아당겨지는 인장력으로 인해 지각이 벌어지면서 쪼개지고 중력의 영향으로 한쪽 블록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정단층을 형성한다. 정단층의 정(正)은 물체를 지구 중심으로 잡아당기는 중력을 기준으로 볼 때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에 정상이라는 뜻이다.   &nbsp;  역단층을 발생시키는 힘은 압축력이다. 암석이 양방향에서 강한 압축을 받으면 약 30° 정도의 완만한 경사를 가진 대각선 모양의 단층면(파괴면)이 생긴다. 경사면 위에 얹혀 있는 암석 블록이 양옆에서 밀어붙이는 힘에 의해 중력을 거슬러 경사면을 타고 위로 밀려 올라간다. 이 강력한 압축력은 대륙판끼리 부딪히는 수렴형 판 경계에서 생긴다. 역단층의 역(逆)은 중력을 거슬렀다는 뜻이다.   &nbsp;  P파와 S파의 시간차는 두 지진파가 8 km를 이동할 때마다 1초씩 벌어진다. 어느 지점에 P파가 도착하는 시각과 S파가 도착하는 시각의 차이가 30초라면 지진이 시작된 곳이 240km 떨어져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1990년대에 대기의 수분 함량을 직접 측정할 수 있는 인공위성들이 쏘아 올려진 결과 놀라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nbsp;  대기 중에 좁고 긴 수분 기둥(대기의 강)이 있어서 적도 근처의 열대지방에서 중위도로 수분을 운반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보통 길이는 수천에서 수만 km, 폭은 수백 km에 이른다. 이런 대기의 강이 캘리포니아주 연안으로 넘어오면 폭우가 내린다. 폭우는 대개 하루나 이틀이면 지나간다. 그런데 어쩌다 한 번씩 대기 조건 때문에 폭우가 더 오래 머물고 홍수가 난다.   &nbsp;  저자는 인간은 포식자와 기근의 위협과 같은 단기적 위기에 대한 신속한 반응이 생존의 필수적인 세계에서 진화했다고 말한다. 위험은 도처에 만연해 있었고 임박한 위험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성공적으로 후손을 남겼다. 우리 대다수는 홍수를 급박한 위험으로 여기지 않는다. 직접 경험한 적이 있거나 부모나 조부모가 기억하고 있었다거나 하는 등의 개인적인 의미가 없다면 자연재해가 불러일으키는 격렬한 감정은 금세 사그라들고 만다. 그리고 위험을 가늠할 때 인간은 이성보다 감정의 좌우된다.   &nbsp;  홍수는 큰 인명 피해와 경제적 피해를 야기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홍수의 근원인 비를 친숙한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에 비를 다른 자연재해보다 온건하다고 여긴다.(117 페이지) 우리는 땅 위에서 살기 때문에 수면 위로 드러난 것과 강, 호수, 바다 밑에 잠겨 있는 것이 애초부터 다르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강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땅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nbsp;  강 기슭을 이루는 흙을 땅의 흙과 특별히 구별할 수 없고 강바닥의 지각에도 독특한 점이 전혀 없다. 다만 주변의 땅보다 고도가 낮을 뿐이다. 물은 중력이 잡아끄는 곳으로 흘러내리므로 고도가 낮은 곳에 고인다.(154 페이지)   &nbsp;  저자는 물과 땅 사이, 강물이 흐르는 곳과 흐르지 않는 곳, 강의 액체 상태와 땅의 고체 상태 사이에 절대적인 경계선을 그을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릴 것을 주문한다. 강에 물만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흐르는 물에는 많은 것을 품고 운반할 수 있는 힘이 있다.자연이 작고 가벼운 물질일수록 운반하기 쉽고 물의 흐름이 빠를수록 더 많은 물질을 운반할 수 있다. 미시시피 강의 별명이 빅 머디(Big Muddy; 거대한 흙탕물)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모든 강이 그렇듯 미시시피 강의 강물은 이동하면서 모래알과 흙을 침식해 바다로 가져간다.  &nbsp;  물의 흐름이 느려지면 품고 있던 퇴적물의 일부를 바닥에 떨어뜨리는데 크고 무거운 모래알이 먼저 떨어진다. 이 두 원리를 종합하면 자연 제방이 어떻게 생기는지 이해할 수 있다. 물이 중력에 의해 강으로 흘러갈 때 종종 다량의 진흙과 실트를 운반해 간다. 눈 녹은 물과 비는 강의 특정 구간의 수위를 높인다. 그곳의 고도가 하류보다 높아졌으니 낙차가 심해진다. 그러면 수량이 증가해서 더 많은 실트를 운반할 수 있게 된다. 강 기슭을 넘어설 정도로 수위가 높게 올라가면 물은 여전히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이제는 바다를 향해서 뿐만 아니라 강 바깥으로, 강을 둘러싼 땅으로도 흘러내린다.   &nbsp;  어느 정도 흘러내리면 경사가 원만해져서 물의 흐름이 느려지고 물에 떠 있던 실트 알맹이가 바닥에 퇴적된다. 큰 알갱이일수록 강에서 가까운 쪽에 먼저 쌓이고 대부분 알갱이는 원래 강바닥에서 더 먼 곳에 쌓인다. 그 결과 큰 모래알로 이루어진 자연 제방이 형성된다. 이 자연 제방은 강기슭을 높여 미래의 홍수 가능성을 낮춘다. 하지만 수백년의 미시시피강 홍수 내륙이 보여주듯 자연 제방 또는 인공 제방 위로 넘치는 홍수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155, 156 페이지)   &nbsp;  일본 열도는 네 개의 판 사이의 계속되는 충돌로 형성되었다. 서쪽의 유라시아 판은 북동쪽으로 태평양판, 남동쪽으로 필리핀 해판과 충돌하고 있고 그 사이에 북아메리카 판의 작은 부분이 끼어 있다. 네 개의 판이 서로 충돌해 유라시아 판과 북아메리카 판을 서쪽 위로 밀어 올렸다. 물론 마그마도 솟아올라서 후지산과 같은 화산이 만들어졌다.   &nbsp;  여러 종류의 판 경계 중에서도 이런 섭입대에서 지진이 가장 자주 일어난다. 판끼리 멀어지거나 옆으로 스치는 대신에 서로 밀면서 생기는 강한 변형력 때문에 마찰력도 더 크고 쌓인 에너지의 상당 부분이 지진을 통해 발산된다. 네 개의 판이 충돌하는 복잡한 구조 때문에 일본의 지진은 판 경계에 국한되지 않고 열도 전역에서 일어난다.(132 페이지)   &nbsp;  하나의 지진이 일어나면 추가로 지진들이 더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단층의 움직임은 주변의 모든 곳에 힘을 가하고 변형력을 집중시켜 지각의 울퉁불퉁한 부분들을 새로 만든다. 이 새로운 변형력을 해소하기 위해 잇따라 지진이 일어난다. 이런 지진들은 바로 전에 일어난 본진의 직접적인 결과이므로 그 지진의 여진으로 분류한다.   &nbsp;  단층의 움직임은 에너지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변 지각의 힘의 균형을 깨뜨리기에 새로운 불균형이 생기고 바로 이것을 해소하기 위해 지진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거대한 본진 이후 몇 차례 여진이 발생하지만 결국 그치는 것은 지각이 새로운 역학적 균형점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nbsp;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서쪽 해안에서 일어난 규모 9.1의 남아시아 지진은 움직인 단층의 길이가 1,500km가 넘었다. 파열면이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이 무려 9분이나 되었다. 지질학 박사 케리 시(Kerry Sieh)는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을 예측한 사람이다. 저자는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야기를 하며 이런 말을 한다. '의식적이든 아니든 피해자를 탓하는 경향은 자연재해 앞에서 너무나 흔한 반응이어서 거의 불가피한 것처럼 느껴진다.   &nbsp;  인간은 고통이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힘에 의해 유발된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안심하기 위해 피해자를 책망한다. 이 본성은 자선을 베풀려는 충동 만큼이나 인간답고 따라서 없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이를 인식함으로써 우리도 그런 욕망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아차리고 적어도 다음 재난이 닥쳤을 때 같은 오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256, 257 페이지)   &nbsp;  인간은 무작위성을 무척 싫어하고 예측 가능한 패턴을 만들기 위해 종종 극단적인 수단을 이용한다. 인간은 패턴을 찾기 원하는 강한 욕구와 확증 편향 때문에 패턴에 부합하는 사례를 강렬하게 기억하고 부합하지 않는 사례를 무시하기 쉽다.(261, 262 페이지) 1920~1930년대에 지진 데이터를 처음 수집하고 패턴이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지자 대다수 과학자는 지진을 예측하는 대신 지진이 왜 발생하는지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적어도 1975년 중국 랴오닝성 하이청 지진에서 뭔가가 맞아떨어져 예측에 성공해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전까진 말이다.   &nbsp;  그때 미국, 일본, 소련 정부는 마침내 이 수수께끼를 풀겠다는 희망을 품고 공식적으로 지진 예측 연구를 다시 시작했다. 당시 본진이 있기 전 규모 5.0 안팎의 미소(微小) 지진들이 수일 동안 연속적으로 발생했고, 한겨울임에도 뱀과 나비 등이 땅으로 나와 얼어 죽었고, 거위들이 날아다니고, 우물 및 지하수의 수위가 급변하거나 흙탕물이 되는 등의 이상 현상이 있었다. 행정력의 신속한 조치가 이루어져 안전지대로 대피한 주민들이 목숨을 건졌다. 그런데 다음 해인 1976년 7월 가까운 탕산 지역에서 아무 전조 현상도 없이 규모 7.5의 강진이 일어나 25만 명이 사망했다.   &nbsp;  지진 예측은 여전히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지진의 절대적 강도를 나타내는 릭터 규모(리히터 규모)를 고안한 미국의 지진학자 찰스 릭터는 오직 바보, 거짓말쟁이, 그리고 사기꾼들만이 지진을 예측한다(Only fools, liars, and charlatans predict earthquakes.)란 말을 했다.   &nbsp;  지진에는 한참 동안 꽤 규칙성을 갖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결국 예측할 수 없다는 본성이 있다.(268 페이지) 저자는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지금도 지진의 작동 메커니즘을 연구할 지진학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도 인간은 왜 어떤 지진의 단층은 수m를 미끄러지다가 멈춰서 규모 1에 그치고 어떤 지진의 단층은 수백 km를 미끄러져 규모 7의 지진이 되는지 모른다.   &nbsp;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지구 내부에서 일어난 일의 결과인지 아니면 지진이 일어난 중에 무언가에 부딪히거나 부딪히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모른다. 후자라면 지진학자는 사람들이 원하는 종류의 예측을 영원히 제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과학자가 지진에 관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지식은 전진, 여진, 그리고 지진이 다른 지진을 유발하는 현상뿐이다.(283 페이지)   &nbsp;  남아시아 지진은 도호쿠 지진보다 7년 앞서 일어났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바다에서 발생하는 지진의 가장 큰 피해는 육지의 흔들림이 아니라 해저면의 이동에 의해 일어난다. 도호쿠 지진에서는 400km 길이의 암석 덩어리가 최대 80m 미끄러졌으므로 막대한 양의 물을 이동시켜 필연적으로 쓰나미를 초래했다. 일본에서 쓰나미는 지진처럼 삶의 일부이고 대부분의 마을에 대비 시설이 세워져 있다. 원자력 발전소는 우라늄처럼 질량 수가 큰 원자의 핵을 붕괴시킬 때 발생하는 엄청난 열을 이용해서 증기를 만든다.   &nbsp;  이 증기로 전기 터빈을 돌리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생산한다. 그런데 이런 핵 반응에서 생성된 열은 핵연료에서 재빨리 분리시키고 주의해서 관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핵연료가 녹고 핵연료가 담긴 원자로가 폭발한다. 따라서 핵연료의 열을 식혀주기 위해 그 둘레에 냉각수를 순환시킨다. 냉각을 쉽게 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는 항상 물이 많은 곳 종종 바다 가까이에 짓는다. 그리고 냉각 체계가 중단되지 않도록 여분의 예비전력을 갖춘다.   &nbsp;  지진과 쓰나미가 항상 일어나는 일본에서 바다 근처에 원자력 발전소를 세울 때에는 발생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쓰나미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로스엔젤레스는 지진 덕분에 존재하는 도시이다. 무척 건조한 미국 남서부에 위치한 로스엔젤레스는 도시를 둘러싼 산들이 없었다면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으로 남을 수도 있었다. 활성 단층들이 밀어 올려 생긴 산들은 바다에서 온 구름에서 비가 내리게 한다. 이 단층들은 또한 지하수를 가둔다. 초기 정착민들은 그 덕분에 생긴 샘에서 물을 내서 농사를 지었다. 20세기 초 석유가 발견되면서 로스엔젤레스는 현대적인 도시로 번창하기 시작했다. 석유 역시 단층 때문에 고인 것이었다. 단층은 로스엔젤레스를 존재할 수 있게 하지만 언제라도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자산이기도 하다.   &nbsp;  저자는 여섯 가지를 제안한다. 1) 더 많이 배운다, 2) 정부가 알아서 보호해줄 것이라고 안심하지 않는다, 3) 지역 지도층과 교류한다, 4) 공동체와 함께 일한다, 5) 자연재해는 일어난 순간에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6) 스스로 생각하라 등이다. 인상적인 말은 ‘다른 사람들이 정보를 주면 우리는 온 힘을 다해 그 정보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행동은 우리 스스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은 자연재해 발생 시점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무작위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337 페이지)]]></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3846/43/cover150/k53263948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8464312</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밈, 이기적 유전자로 신(神)을 오독하는 리처드 도킨스 - [도킨스의 신 - 리처드 도킨스 뒤집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29432</link><pubDate>Mon, 03 Aug 2026 04: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2943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002958&TPaperId=174294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0/54/coveroff/898900295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002958&TPaperId=1742943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도킨스의 신 - 리처드 도킨스 뒤집기</a><br/>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김태완 옮김 / SFC출판부(학생신앙운동출판부) / 2007년 11월<br/></td></tr></table><br/>리처드 도킨스는 케냐에서 태어난 영국 혈통의 진화생물학자다. 도킨스는 진화를 바라보는 가장 상상력 넘치는 방법, 그리고 진화를 가르칠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인 방법은 진화의 전 과정을 유전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전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소유하고 실어 나르는 신체를 교묘하게 조작하며 감독한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자신의 저작을 통해 유전자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화법을 발전시켜 오고 있다. 단순히 개체의 수준에서가 아니라 세계 전체를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nbsp;생물체들은 모두 유전자로 환원되고 유전자들은 다시 디지털 정보들로 환원된다. 도킨스는 동물을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시키기 위해 모든 동력을 사용해 자신에게 부여된 지시 사항을 실행해 나가는 기계로 보았다. 도킨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사상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다. 본문에 찰스 다윈과 윌리엄 페일리 이야기가 나온다. 1743년에 태어나 1805년에 사망한 페일리는 영국 성공회의 성직자였다. 페일리는 저서 [자연신학](1802년)에서 시계공 비유(Watchmaker Analogy)를 주장했다.&nbsp;길을 가다 정교한 시계를 발견했다면 그것을 만든 시계공이 있음을 당연히 알 수 있듯 눈(Eye)이나 심장처럼 정교한 생명체를 보면 이를 설계한 위대한 설계자(하나님)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캠브리지 대학교 시절 신학을 공부했던 젊은 다윈은 페일리의 이 정교하고 합리적인 복음주의 논리에 완전히 매료되어 “페일리의 책들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으며, 그의 서술 방식은 나에게 유일하게 유익했던 학문적 경험"이었다고 고백했다. 다윈은 그러나 비글호를 타고 세계를 탐험하며 자연을 관찰한 끝에 생명체가 정교한 디자인을 가진 것은 맞지만 그것이 신의 일시적인 창조가 아니라 수억 년 동안 일어난 변이와 자연선택의 결과라 주장했다.&nbsp;저자 맥그래스는 서문에서 자신은 도킨스의 진화생물학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맥그래스는 도킨스가 진화생물학으로부터 도출시키는 종교와 지성의 확장된 결론들을 다루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진화생물학에서 자연선택을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진화의 가장 기본적이자 중심적인 단위가 유전자다. 멘델로부터 유전자의 현대적 개념과 유전 법칙의 토대가 도출되었으나 멘델 자신은 유전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멘델은 유전이 특정한 단위 또는 인자(因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nbsp;그렇다면 이 단위 또는 인자는 과연 무엇인가? 이 질문은 우리에게 유전자의 발견을 가져다 주었으며 발견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유전자의 발견은 다윈주의 세계관에 대한 도킨스의 설명에 있어서도 근간(根幹)이 될 만큼 중요하다. 유전자라는 용어를 전 세계에서 가장 처음 사용한 사람은 덴마크의 식물학자이자 유전학자인 빌헬름 요한센(Wilhelm Johannsen; 1857~1927)이다.&nbsp;유전자와 DNA의 관계를 알 필요가 있다. DNA가 책의 종이와 글자라면 유전자는 책 속에 적힌 하나의 이야기(챕터)에 해당한다. DNA는 세포핵 속에 들어 있는 길고 긴 화학 물질의 사슬 그 자체다. 하나의 DNA 분자가 수개월 이상 생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DNA는 자기 복제 능력을 통해 이론상으로 사본의 형태로 1억 년 이상 살 수 있다. 이에 반해 생물 개체 또는 집단은 짧은 시간을 살기 때문에 오랜 기간 천천히 축적되는 변화를 영속시킬 수 없다.&nbsp;맥그래스는 "유전적 변화는 어떻게 발생하게 되는가? 우선 보자면 도킨스가 강조하는 복제자의 충실한 복제와 변화의 발생 사이에는 명백하고도 치명적인 모순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복제자가 그렇게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한다면 어떻게 변화가 나타날 수 있겠는가? 충실한 전달은 동적인 상황이 아니라 정적인 상황 아니겠는가?"라고 말한다. 도킨스는 유전자를 성공적인 복제자(Replicator)로 정의하며, 세대를 거쳐도 정보가 깨지지 않고 완벽하게 전달되는 높은 복제 충실도(Fidelity)를 생명의 핵심 속성으로 간주했다.&nbsp;이에 맥그래스가 만약 유전자가 100% 완벽하게 정보를 복제하고 전달한다면 세상은 처음 태어난 생명체의 상태 그대로 멈춰 있어야 한다고 반론을 편 것이다. 정보의 변동이 없으므로 새로운 형질이나 종이 탄생하는 진화(동적 상황)는 불가능해진다. 즉 '완벽한 복제자'와 '진화의 발생'은 논리적으로 정면충돌한다는 것이다. 도킨스를 비롯한 진화생물학자들은 이 모순을 완벽을 지향하지만 물리적 한계로 인해 발생하는 불가피한 오류로 해명한다. 유전자는 우수한 복제 메커니즘과 오류 수정 기능을 가지고 있어 복제 충실도가 극도로 높으나 100% 완벽한 복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nbsp;맥그래스는 도킨스가 유전자를 마치 스스로 살아남으려 애쓰는 능동적인 주체처럼 묘사한다고 비판하며 이는 도킨스가 물리적 화학 물질에 불과한 유전자를 신격화(의인화)하는 것이라 결론 짓는다. 맥그래스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주어지더라도, 우연히 발생한 타이핑 실수의 반복이 단백질의 정교한 상호작용과 인간의 의식 같은 '고차원적 질서'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기에는 논리적 비약이 크다고 본다. 맥그래스는 페일리의 기계적 지적설계론(시계공 유추)을 그대로 옹호하지 않고 '유신진화론(창조적 진화론)'을 지지한다.&nbsp;맥그래스에게 신은 완벽한 시계를 만들어 세상에 던져둔 시계공이 아니라 진화라는 역동적인 과정을 가능하게 만드는 자연 법칙과 환경을 창조한 존재다. 도킨스로부터 확장된 표현형이 도출되었다. 빌헬름 요한센이 생물체가 가진 유전 정보가 겉으로 드러나 실제 관찰 가능한 모든 물리적, 생리적, 행동적 특성을 뜻하는 표현형을 제안했고, 도킨스가 확장된 표현형(Extended Phenotype)을 제시했다. 논점은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과 복제를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물리적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다.&nbsp;도킨스는 요한센이 만든 전통적인 표현형 개념을 생물 개체의 몸 바깥 영역으로 확장시켜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자신만의 혁신적인 이론을 도출해 낸 것이다.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 출판 6년 만인 1982년 확장된 표현형이란 개념을 제시한 이유는 진화의 진짜 주인공은 개체(생물 몸)가 아니라 유전자라는 자신의 핵심 주장을 완벽하게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도킨스는 유전자가 의식적으로 이기적이지는 않지만 그들의 다양한 모습은 의식적으로 이기적인 행위자를 닮았다고 말했다.(88 페이지)&nbsp;유전자는 뇌나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의식적인 목표나 의도를 전혀 가질 수 없지만 진화와 자연선택의 결과로 나타난 유전자의 작동 방식은 마치 치밀하고 영리한 독재자가 오직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모습과 완벽하게 똑같아 보인다는 뜻이다. 도킨스가 유전자를 이기적이라고 부른 것은 유전자의 마음 상태를 말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자신의 복제본만을 세상에 남기려 드는 유전자의 기능적 결과를 문학적으로 비유한 것이다. 유전자는 아무 생각이 없지만 진화의 냉혹한 법칙은 유전자를 가장 완벽한 이기주의자의 모습으로 빚어냈다.&nbsp;맥그래스는 ”도대체 우리가 왜 태어나는가? 다윈주의의 대답은 자연선택이다. 사실 이것이 모든 것에 대한 다윈주의의 유일한 대답이다.“라고 말한다.(92 페이지) 맥그래스는 도킨스 같은 강경 다윈주의자들은 인간의 존재, 도덕, 예술, 종교까지 '자연선택과 유전자의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만 설명하려 든다고 비판한다. 맥그래스는 다윈은 갈림길을 만든 사람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극단적으로 다른 두 가지 사유 방식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도킨스는 다윈 이전에는 세계는 신이 설계한 어떤 곳으로 볼 수 있었지만 다윈 이후에 설계를 내세우는 것은 모두 환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nbsp;맥그래스는 도킨스의 세계에서 진화의 과정은 신을 위한 개념적 공간을 전혀 남겨두지 않았다고 말한다. 신적인 창조자에게 호소함으로써 설명될 수 있었던 것들이 이제 다윈주의의 틀 속에 자신의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므로 다윈 이후에는 신을 믿을 필요가 없다.(104 페이지) 맥그래스는 다윈의 [종의 기원]과 이후 저작들은 18세기의 생각(당시의 지도적인 기독교 저자들이 이미 거부했던)에 대한 19세기의 논박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것이 기독교 전체에 대한 논박일 수는 없고 단지 영국 국교회가 잘못 선택한 것에 대한 논박일 뿐이라고 말한다.(137 페이지)&nbsp;맥그래스는 다윈의 진화론이 기독교 자체를 무너뜨렸다는 도킨스식의 프레임을 정면으로 거부하며 다윈은 단지 당대에 유행했던 생명이 다한 18세기 영국식 신학을 논박했을 뿐으로 기독교 역사 전체의 관점에서 진화론은 얼마든지 수용 가능한 과학적 사실이라는 논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맥그래스는 다윈이 1840년대의 어느 시점에서(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이른바 전통적 기독교 신앙을 거부했다는 것은 여지가 없지만 정통 기독교 신앙의 거부와 무신론의 수용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이론적인 틈이 있다고 말한다.(143 페이지)&nbsp;다윈이 정통 기독교 신앙을 떠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기독교를 떠난 다윈의 종착지는 신은 절대 없다고 확신하는 적극적 무신론이 아니라 인간의 지성으로는 알 수 없다는 겸손한 불가지론이었다. 맥그래스는 이 지점에 착안해 현대 무신론자들이 다윈을 무신론의 교조로 해석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맥그래스는 도킨스가 다윈주의를 무신론으로 가는 지적 고속도로라고 본다고 말한다.&nbsp;도킨스가 세밀하게 계획을 잡은 궤도는 불가지론에서 그 바퀴 작업을 멈추는 것 같다. 그리고 거기서 자리를 잡고 계속 머물고 있다. 다윈주의와 무신론 사이에는 근본적인 논리적 틈이 있다. 도킨스는 이 틈을 메우기 위해 증거가 아닌 레토릭으로 다리를 놓으려 하고 있다.(156 페이지) 도킨스는 우리가 세계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유일하게 신빙성 있는 지식은 과학적 지식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도킨스의 입장을 확장시켰을 때 철학자, 변호사, 신학자 등은 과학적 지식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거짓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된다.&nbsp;맥그래스는 공격적 무신론의 선봉에 섰던 인물이었으나 종교적 회심을 거쳐 신학박사가 된 분자생물학 연구자다. 맥그래스에 의하면 도킨스는 증명될 수 없는 것을 거짓으로 간주한다. 도킨스는 불가지론이 지적으로 나약한 입장이라고 주장한다. 맥그래스는 도킨스의 생물학적 논증이 논리적으로 최대한 갈 수 있는 곳이 결국 불가지론 뿐이라고 말한다.(180 페이지) 맥그래스는 누구도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고, 누구도 신의 존재를 반증할 수 없다고 말한다.&nbsp;이어 그 어느 누구도 확실성을 가지고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188 페이지) 맥그래스는 도킨스가 불가지론에서 무신론으로 비약을 했다고 말한다.(188 페이지) 맥그래스는 신의 존재에 대한 문제는 지구가 평평한지 또는 DNA가 이중나선의 형태를 취하는지 등의 질문과는 다른 범주에 속한다고 말한다. 그런 문제는 오히려 민주주의가 전체주의보다 나은지와 같은 문제에 더 가깝다. 이런 문제는 과학적 수단을 통해서는 해결이 안 된다. 하지만 과학적 수단을 통해서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이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아니다.&nbsp;그리고 이런 문제에 대한 그들의 결론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맥그래스는 "아마도 도킨스는 요즘 종교에 반대하는 책을 쓰기에 바빠서 종교에 관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것 같다. 가끔 고전 신학자들을 인용할 때 보면 2차 텍스트를 사용하는 것 같고 그래서 위험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라고 말한다. 맥그래스는 화학자이자 저명한 과학 철학자인 마이클 폴라니가 자연과학자는 후에 거짓으로 드러날 것을 알면서도 무언가를 믿어야 하는 사람들(현재의 믿음들 가운데 어떤 것이 거짓으로 드러날지도 모르는 채)이라고 말한 것을 상기시키며 도킨스는 무슨 자신으로 자신의 믿음에 대해 참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204 페이지)&nbsp;이런 말을 하고 싶다. 과학적 지식만이 진정한 지식이라고 한 도킨스에게 불가지론은 무신론이라는 주장은 과학적 주장인가, 과학 외적 주장인가? 전자라면 과학은 잠정적이라는 전제를 무시하는 것이고 후자라면 진정한 지식이 아닌 것이 된다. 맥그래스는 자신은 과학에 완전히 비현실적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자연과학은 오직 증거로만 말한다고 생각했던 맥그래스는 자신은 여전히 과학을 사랑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어떤 자연과학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용 가능한 한계를 넘는 수준까지 레토릭을 사용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특히 자신의 전공 영역을 넘어설 때 또는 실험 증거가 부족해서 그 부분을 가리고자 할 때 더욱 그러하며 문화 비평이 텍스트에 숨어 있는 교묘한 술책을 보여주기 위해 문학과 함께 자연과학 논문부터 읽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놀랄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nbsp;맥그래스는 무신론은 진화론을 포함하는 어떠한 과학에 의해서도 결코 증명될 수 없다고 말한다. 맥그래스는 다른 모든 인간의 활동과 생각처럼 종교도 개혁 되어야 하고 재평가받아야 하고 수정되어야 하지만 제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226 페이지) 도킨스는 문화 복제자란 의미의 밈(meme)이라는 용어를 도입한 과학자다. 도킨스는 종교를 가장 중요한 밈의 사례나 간주한다.&nbsp;도킨스는 자신이 염두에 두고 있는 밈의 사례들로서 음악의 선율, 생각, 유행어, 패션, 건축 양식, 노래 등을 들고 있다. 그리고 신 역시 여기에 포함시켰다. 도킨스는 사람들이 신이 없는데도 신을 믿는 이유를 신이라는 밈이 인간의 마음속에서 자신을 복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e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237 페이지) 맥그래스는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는 유사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작동 메커니즘은 상당히 다른 것 같다고 말한다.(245 페이지)&nbsp;맥그래스는 유전자는 처음에 이론적 필요에 의해 생겨났지만 후에 완전한 증거에 의해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받았으나 밈은 어떤가?라고 묻는다. 맥그래스에 의하면 유전자는 생물학적 수준, 화학적 수준, 그리고 물리학적 수준에서 잘 정의되어 있는 관찰 가능한 실체다. 생물학적으로 유전자는 염색체의 특정 부분이며, 화학적으로 DNA로 구성되어 있으며, 물리학적으로는 읽을 수 있거나 번역될 수 있는 유전자 코드를 표현하는 뉴클레오티드 서열로 구성되어 있는 이중나선 구조다.(247, 248 페이지)&nbsp;맥그래스는 유비 논증은 심각한 오류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양자 이론이 아무데나 적용되는 식의 잘못된 유비로 인해 생겨난 문제들 때문에 낭패를 겪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라. 맥그래스는 모든 인간문화는 이미 동시대인과 후속 세대에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명확한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맥그래스는 책, 의식, 제도, 구전 등이 그것으로 이렇게 유전자와의 유비를 통해 방어되고 있는 밈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필요 없는 잉여물일 뿐이라고 설명한다.(254 페이지)&nbsp;맥그래스는 밈이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모델을 통해 모두 설명이 가능하다며 밈만이 설명할 수 있는 그런 복잡한 현상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맥그래스는 도킨스가 제기하는 신이라는 바이러스를 문제 삼기 위해 바이러스는 탐색될 수 있고 그래서 엄격한 경험적 조사의 대상이며 유전자 구조 역시 정밀하게 분석 가능한데 마음의 바이러스는 가설적이라고 비판한다.(260 페이지) 맥그래스는 매우 용감하게도 도킨스가 지지하고 있는 과학과 종교의 전투라는 대중적 신화는 이미 그 수명을 다했다고 말한다. 그의 대중과학 저서는 현재 학문의 동향을 빨리 따라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267 페이지)&nbsp;18세기 영국에서는 종교와 과학 사이에 눈부신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 뉴턴의 천체역학은 조화로운 우주의 창조자인 신에 대한 기독교의 견해와 최소한 양립 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최대한은 그 견해에 대한 영광스러운 확장으로 이해되었다.(269 페이지) 맥그래스는 기독교 신학은 세계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대한 인식을 결코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도와준다고 말한다. 기독교 신학이 자연 현상을 설명하면 신적 의미가 제거된다는 생각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한다.(286 페이지)&nbsp;맥그래스는 신비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해하려는 인간 이성의 능력 너머에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비가 이성과 서로 반대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291 페이지) 신비를 다루는 영역은 신학만이 아니다. 자연과학도 신비를 다루기에 적절하다. 양자역학이 신비의 범주에 딱 들어맞는 탁월한 과학 영역의 사례라고 말하는 맥그래스는 과학 공동체와 종교 공동체 모두 우리의 사유 방식에 영향을 끼치는 증거의 역할 때문에 생기는 지적 난제를 인정하면서 관찰된 것에 대한 최선의 가능한 설명으로 수용된 것을 제시하며 경험의 모호함과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다는 말을 한다.(292, 293 페이지)&nbsp;프린스턴 대학의 과학 철학자인 반 프라센은 "삼위일체, 영혼, 개별성, 보편성, 제1 질료, 잠재성의 개념들 때문에 당혹스러운가. 닫힌 시공간, 사건 지평, EPR 역설, 붓스트랩 모형이 보여주는 기상천외의 낯설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프라센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경험 세계와 현상 세계에 대한 경험적 참여는 간단하지 않은 이론적 개념들을 만들어내며 그 현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도킨스의 신]은 도킨스가 26살 때이던 1979년 처음 제안받고 25년이 지난 2004년 완성한 책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0/54/cover150/898900295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05484</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곽내혁의 [기론 -입자에서 장으로]을 읽어야겠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21601</link><pubDate>Thu, 30 Jul 2026 15: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2160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02135854&TPaperId=174216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54/31/coveroff/k00213585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폭염과 가뭄 때문에 경북 포항 형산강에 바닷물이 역류해 와 수돗물에서 짠맛이 난다고 한다. 형산강의 감조(感潮) 구간은 포항 송도동 하구(영일만 유입부)로부터 상류로 약 10~12km 내외 구역이다. 독일의 세계적 지리학자 헤르만 라흐텐자흐(1886-1971)는 [코레아](1945년 출간)에서 형산강을 남한의 동해안 유일의 가항하천(可港河川)으로 보았다.([코레아]는 라흐텐자흐가 한반도 전역을 직접 답사하고 남긴 방대한 지리서다.)<br>가항하천은 수심이 충분히 깊고 폭이 넓어 배가 안전하게 통항하며 여객이나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는 하천을 말한다. 서두에서 말한 바닷물 역류는 내가 사는 연천의 주요 두 강 중 하나인 임진강과도 관련이 있는 현상이다. 임진강의 실질적 감조구간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 앞 하구(교하)로부터 상류로 약 40km 구역까지다.&nbsp;그곳보다 더 상류쪽인 연천 호로고루 아래의 고랑포는 수위만 상승, 하강하고 염도(鹽度)는 변함없는(바닷물이 직접 유입되지 않는) 감조 담수(淡水) 구간이다.&nbsp;<br>폭염과 가뭄으로 강의 수량이 줄어 바닷물이 역류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자연은 모든 물질이 맞물려 연속적으로 운동하는 공백(진공) 없는 세계라는 데카르트의 와동(渦動; 볼텍스; vortex) 이론이 떠오른다. 25년전 氣 수련 당시 내가 들은 말 가운데 아리조나주 세도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가 강한 곳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물론&nbsp;내 기 수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중단되었다.&nbsp;<br>지질 해설을 한 지 6년이 넘은 지금은 세도나의 사암(砂巖) 지대는 약 2억 7천만 년 전 페름기 지구의 역동적 환경 변화가 층층이 쌓여 만들어진 세계적인 자연의 걸작이자 기(氣) 학문과 지질학이 완벽하게 교차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할뿐이다. 세도나의 거대한 바위산과 절벽들은 강렬한 주황색과 붉은빛을 띤다. 사암 속에 포함된 적철석(Iron Oxide; 산화철) 성분 때문이다.&nbsp;<br>당시 읽던 책이 곽내혁 저자의 [내 안의 우주에 이르는 길]이고 氣 수련 종료 후 같은 저자의 [내가 열리면 세계가 열린다]를 읽었다. 신간 검색을 하다가 곽내혁 저자가 올해 초 [기론 –입자에서 場으로]이란 책을 낸 것을 확인했다. 정독해야 알겠지만 이번에 나온 [기론- 입자에서 場으로]는 내가 읽기에 버거울 것 같다. 앞의 두 권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흥미롭게 읽었다.&nbsp;<br>아침에 AI와 베르그송과 바슐라르의 대립에 대해 대화를 했었다. 그것은 세상을 지속(持續)으로 본 베르그송과 불연속으로 본 바슐라르의 대립이다. 베르그송의 지속은 시간을 시계 바늘처럼 쪼갤 수 있는 공간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결코 단절될 수 없는 ‘질적인 흐름이자 변화 그 자체’로 보는 사유 방식이다. 바슐라르의 불연속은 베르그송의 물 흐르듯 이어지는 연속적 지속에 정면으로 맞서는 개념이다.&nbsp;<br>과학은 과거의 상식, 일상적 경험, 잘못된 전통을 과감하게 부수고 단절(Rupture)할 때만 진보하다는 바슐라르의 과학사 및 인식론의 불연속인 인식론적 단절(Rupture épistémologique)이야말로 가장 핵심적이다. 우리가 과학을 이해할 때도 인식론적 단절이 필요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끼는 일상적 경험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지만 현대 과학은 이 일상적 상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nbsp;<br>바슐라르는 우리가 과학 개념을 마주할 때 친숙한 이미지나 비유에 의존하려는 무의식적 습관을 경계했다. 가령 우리는 원자를 이해할 때 흔히 태양 주변을 도는 행성들의 모습(보어의 원자 모형)을 떠올린다. 그러나 현대 양자역학에서 전자는 정해진 궤도를 도는 알갱이가 아니라 확률적 구름 형태로 존재한다. 뉴턴 역학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해서 저절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과학적 지식을 이해하는 것은 역사책을 읽듯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연속적인 과정이 아니다.&nbsp;<br>나는 베르그송의 지속에 매력적인 요소가 있음에도 바슐라르의 불연속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자 이정우 교수는 “과거와 미래가 현재와 얽히는 베르그송의 철학에서 한 행위의 시작, 진정한 의미의 시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베르그송에게 어떤 근원적인 창조의 순간들 - 예컨대 베르그송이 회상한 바 있듯이 어느 화창한 봄날 그의 뇌리 속에서 지속의 개념이 홀연히 떠올랐던 그 창조의 순간은 그의 지속 이론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1999년 출간 [담론의 공간])<br>1999년 [담론의 공간]을 읽고, 2001년 [내 안의 우주에 이르는 길]을 읽고, 2006년 [내가 열리면 세계가 열린다]를 읽던 때가 내가 인식적으로 가장 활발하던 때다. 흥미롭게도 곽내혁의 [내가 열리면 세계가 열린다]에 바슐라르의 [초의 불꽃]이라는 시적인 에세이집이 소개되어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바슐라르는 물리학자, 시인, 철학자다.&nbsp;<br>바슐라르는 [초의 불꽃]에서 ”나는 촛불을 통해 세계와 내가 하나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일체감을 노래합니다. 나를 가두던 현실의 불연속적인 벽들이 허물어지는 치유의 순간입니다.“란 말을 했다. 곽내혁은 ”기의 감각이 있다면 누구라도 우주를 상식과 다른 내용으로 만날 수 있다. 이는 그동안 우리에게 상식이 된 우주가 좌뇌로 인식된 것일 뿐 우주의 실체는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우주를 우뇌로 떠올릴 때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란 말을 했다.([내가 열리면 세계가 열린다] 159 페이지)<br>바슐라르의 ’불연속적인 벽들의 허물어짐’과 곽내혁의 ‘좌뇌와 우뇌의 통합’은 같은 맥락이다. 최근 나를 가장 우선적으로 규정하는 지질학이야말로 인식론적 단절이 필요한 학문이다. 지질학은 단단하고 고정된 사물(바위, 대륙)의 이미지와 단절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시간과 역동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이성적으로 재구성해 낸 학문이다. 가장 단단하고 고정된 사물(지구)을 마주하고서 가장 유연하고 역동적인 불연속적 도약(시간과 판의 이동)을 사유해야 하는 학문이라는 의미다. [기론]을 읽어야 하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54/31/cover150/k00213585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543169</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지구물리학 박사 수잔 호프가 안내하는 지진의 핵심 포인트들 - [지구를 흔드는 과학 - 지진에 대해 우리가 아는 혹은 모르는 것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21213</link><pubDate>Thu, 30 Jul 2026 10: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212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04904&TPaperId=174212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5727/27/coveroff/897180490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04904&TPaperId=174212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구를 흔드는 과학 - 지진에 대해 우리가 아는 혹은 모르는 것들</a><br/>수잔 엘리자베트 호프 지음, 김성욱.김인수 옮김 / 경북대학교출판부 / 2018년 07월<br/></td></tr></table><br/>지구물리학 박사 수잔 호프(Susan Elizabeth Hough)의 책이다. 저자는 이 책 이후인 2009년 나온 [지진 예측 과학(Predicting the Unpredictable: The Tumultuous Science of Earthquake Prediction)]에서 “우리는 지금 지진을 예보할 수 없다. 어쩌면 영원히 그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원제의 정확한 뜻은 [예측 불가능을 예측하기: 지진 예측의 격동적인 과학]이다.   &nbsp;  저자는 지진을 예보하고 재해를 평가하는 일은 까다롭고 복잡하지만 발도 들여놓을 수 없는 정도는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지구과학에서는 다소 복잡한 개념이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학술적 용어나 까다로운 수학을 사용하지 않고 설명할 수 있고 또 이해할 수 있다. 책에 나오는 유명 과학자 중 한 사람이 찰스 다윈이다. 그는 대륙 이동 대신 해수면 변화를 주장했다. 다윈은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적 변화가 지구의 모습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다윈은 분명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었다.   &nbsp;  판구조론의 진짜 로제타 스톤은 돌에 적힌 상형 문자를 해독하는 것보다 간단했다. 그것은 바로 해저에 새겨진 자기(磁氣) 줄무늬였다. 이는 해양 지각이 자석처럼 자성을 가진다는 의미다. 현무암은 마그마로부터 고화(固化)될 당시 지구 자기장 방향을 기록하여 보존하는데 이 방향은 그 후 지구 자기장이 다르게 변하더라도 그대로 유지된다.   &nbsp;  판구조론이라는 용어는 1969년에야 처음 나왔다. 대륙 이동과 해저 확장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인 캘리포니아주 아실로마에서 열린 작은 지구 물리학 발표회에서였다. 군사 작전으로서의 지구 물리학과 순수 학문으로서의 지구 물리학, 이 양자의 오래된 공생관계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판구조론 혁명을 통해서 지구과학에서는 새롭고 거시적인 기본 패러다임(근간 법칙)이 명확히 자리 잡았다.   &nbsp;  지구과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으로 꼽히는 해저 확장설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잠수함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현대 지진학이 전 지구적인 정밀 데이터를 갖추게 된 배경에는 냉전기 핵전쟁의 공포가 있다. 전쟁 지형을 분석하고 군사 시설을 짓는 기술은 현대 지반 공학 및 엔지니어링 지질학의 기반이 되었다. 저자는 GPS 자료는 판의 운동과 판의 내부 변형에 관한 문제에서 매우 유효하게 활용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지진 예보는 미해결 문제다.(47 페이지)   &nbsp;  저자는 맨틀은 대류하는데 열점은 왜 대류하지 않는가? 묻는다. 대류는 상부 맨틀에서 일어나고 열점은 하부 맨틀의 엄청난 압력 때문에 암석이 꽉 눌려 있어서 상부 맨틀처럼 빙글빙글 도는 수평 대류가 거의 일어나지 못하고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다. 하부 맨틀의 최하단 즉 지하 약 2,900km에 위치한 핵-맨틀 경계(CMB)에는 거대한 열점의 뿌리가 존재한다. 과학자들이 눈으로 볼 수 없는 이 깊은 곳의 구조를 알아낸 유일한 방법이 바로 지진(Earthquake)이다.   &nbsp;  지구 내부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지진파가 지구 전체로 퍼져나간다. 이 지진파가 핵-맨틀 경계의 뜨거운 열점 부근을 통과할 때 속도가 급격히 느려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핵-맨틀 경계의 뜨거운 열점 부근을 통과할 때 속도가 급격히 느려지는 이유는 극도로 높은 온도와 물질의 부분적인 용융 때문이다. 지진파(특히 전단파인 S파)는 매질이 단단하고 밀도가 높을수록 빠르게 이동하고 부드럽고 액체에 가까울수록 느리게 이동한다.   &nbsp;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일반 맨틀)을 달릴 때는 발걸음(지진파)이 빠르지만 뜨거운 열 때문에 반쯤 녹아내린 끈적한 아스팔트나 진흙탕(열점 부근)을 지날 때는 발이 푹푹 빠지며 속도가 느려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약권(弱圈)에서 서서히 움직이는 대류 작용이 판을 움직이는 힘의 근원이라면 지진은 그 힘의 전달자다.(53 페이지) 확장축 지진들의 운동량을 전부 더해 보면 관련된 판의 전 운동량보다 적게 나온다. 이를 지진 모멘트 결손(Seismic Moment Deficit) 또는 낮은 지진 결합도(Low Seismic Coupling)라 부른다.   &nbsp;  이는 지진 없이 미끄러지는 운동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확장 작용이 섭입과 달리 큰 마찰 저항을 수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1) 암석은 온도가 높아지면 부서지기보다 진흙이나 고무처럼 끈적하게 늘어나는 연성(Ductile) 성질을 갖는다. 이로 인해 판이 양옆으로 벌어질 때 에너지를 모았다가 쾅 하고 터지는 지진을 일으키지 않고 암석이 소리 없이 천천히 늘어나거나 미끄러지는 비지진성 변형(Aseismic Deformation)으로 판의 이동을 대부분 소화한다. 실제 확장축에서는 전체 변형의 약 90% 이상이 지진 없이 조용히 일어난다.   &nbsp;  2) 확장축에서 판이 갈라지는 힘은 오직 암석의 단층 운동(Tectonic faulting)으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갈라진 틈 사이로 지하의 뜨거운 마그마가 끊임없이 주입되며 공간을 채우고 판을 밀어낸다. 이 마그마 주입 과정은 거대한 지진을 일으키지 않고도 판을 양쪽으로 확장시키는 핵심 메커니즘이기 때문에 지진계에 기록되는 운동량의 총합을 크게 줄인다.   &nbsp;  3) 한편 지진이 발생하려면 암석이 차갑고 단단하여 깨질 수 있는 지진원성 층(Seismogenic Zone)이 두꺼워야 한다. 하지만 확장축은 고온의 마그마 환경 때문에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단단한 상부 지각의 두께가 보통 수 킬로미터(대개 5km 이내)로 매우 얇다. 응력을 버텨낼 수 있는 암석 층 자체가 너무 얇다 보니 대규모 지진(모멘트가 큰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원천적으로 부족하다.   &nbsp;  4) 바닷물이 갈라진 지각 틈새로 침투하면 뜨거운 맨틀 암석과 만나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사문암(Serpentine) 같은 광물을 만들어낸다. 사문암은 일반 암석에 비해 마찰력이 매우 낮고 매끄러운 특성을 갖는다. 단층면에 이 광물들이 형성되면 판이 걸려 부러지지 않고 부드럽게 미끄러지기(Creep) 때문에 지진 에너지 방출이 억제된다. 요약하면 확장축은 뜨겁고, 마그마가 틈을 채우며, 암석이 부드럽고 매끄럽기 때문에 판이 이동하는 전체 에너지 중 극히 일부(약 1%~10% 수준)만 지진으로 전환되고, 나머지는 소리 없는 변형과 마그마 활동으로 해소된다.   &nbsp;  이와 대조적으로 변환 단층의 경우에는 단층의 운동량이 지진으로 미끄러진 운동량 전부를 합친 것과 같다. 확장축은 뜨겁고 마그마가 도와주어 지진 없이 부드럽게 벌어지지만 변환 단층은 차갑고 단단한 암석이 마그마 없이 서로 꽉 맞물린 채 수평으로 비벼지기 때문에 판이 움직이려는 모든 에너지가 지진의 형태로만 100% 방출되기 때문이다. 마그마는 판의 운동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어 대형 지진을 억제한다. 주로 판이 양갈래로 찢어지는 확장축(해령)이나 열곡대에서 발생하는 정단층은 사방에서 잡아당기는 인장력 때문에 단층면이 수직에 가깝게 비스듬히 떨어지는 구조다.   &nbsp;  이 환경에서는 판이 벌어지면서 단층면에 가해지는 수평 압력이 낮아진다. 이 틈을 타 마그마가 아주 쉽게 위로 솟구치며 단층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단층 암석이 서로 비벼지며 지진을 일으키기 전에, 마그마가 틈새를 부드럽게 채운다. 이 때문에 정단층 지역에서는 판이 멀어지는 거대한 운동량에 비해 지진의 크기가 매우 작고 미소 지진 형태로만 유발되는 억제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nbsp;  대륙과 해양판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섭입대(예: 일본 해구, 칠레 해구)에서 주로 발생하는 역단층은 두 판이 서로 엄청난 힘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단층면이 강하게 압착된다. 역단층면은 엄청난 압력으로 꽉 맞물려 있어 판이 움직이지 못하고 거대한 에너지가 쌓인다. 이때 단층면 깊은 곳에 마그마나 뜨거운 열수가 침투하면 마그마의 압력이 단층을 양옆으로 밀어내는 힘으로 작용한다. 이를 유체 유효 응력 감소라 한다.   &nbsp;  꽉 맞물린 단층을 살짝 띄워주는 역할을 하여 판이 대지진 없이 스르륵 미끄러지는 비지진성 슬로우 슬립을 유도한다. 하지만 정단층과 달리 역단층은 사방에서 누르는 힘이 너무 강해 마그마가 쉽게 틈을 뚫고 분출하지 못하고 갇히기 쉽다. 만일 마그마가 단층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지 못하고 특정 구역에 계속 갇혀 압력만 높아지면 단층면의 마찰력을 순간적으로 완전히 붕괴시켜 오히려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초거대 지진(Megathrust Earthquake)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nbsp;  요약하면 정단층에서는 마그마가 빈 자리를 채워주는 평화로운 건설자 역할을 하여 지진을 효과적으로 지워버리지만 역단층에서는 꽉 막힌 단층면 사이에서 마찰을 줄여주는 아슬아슬한 윤활유 역할을 하다가 압력이 제어되지 않을 경우 오히려 거대 지진을 터뜨리는 야누스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1) 2004년 수마트라-안다만 대지진(규모 9.1)과 2) 2011년 동일본 대지진(규모 9.0)의 경우다.   &nbsp;  1) 토호쿠 대학교 연구진 등의 시뮬레이션 연구(2022년)에 따르면, 30만 명의 사상자를 낸 수마트라-안다만 대지진은 단층대 깊은 곳에 갇힌 초고압 유체(Pore-fluid pressure)가 단층의 마찰력을 순간적으로 완전히 붕괴시키면서 대규모 단층 미끄러짐을 촉발한 대표적인 케이스로 입증되었다. 2) 태평양판이 일본 열도 밑으로 파고들 때 포함된 물과 마그마 성분이 섭입대 틈새에 갇혀 극도의 과압(過壓)을 형성했고 이 압력이 브레이크를 부수고 터지면서 단층이 무려 50m 이상 수평 이동했고 역사적 대재앙으로 이어졌다.  &nbsp;  판 내부 지진은 지각을 이루는 거대한 판의 경계가 아니라 판의 한가운데서 발생하는 지진을 말한다. 판 내부 지진을 일으키는 힘의 근원은 여러 가지다. 멀리 중앙 해령으로부터 대륙을 가로질러 전달되는 압축력, 대규모 빙하가 물러난 후 다시 지각을 서서히 융기시키는 힘 등을 열거할 수 있다. 판 내부 지진은 판 경계 지진보다 발생 빈도가 훨씬 낮은 것에 비해 인명피해는 훨씬 클 수 있다. 이는 파괴적 지진에 대한 대비가 훨씬 미흡하기 때문이다.   &nbsp;  단층은 광산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다. 단층이란 암석의 연속성이 중단되는 곳으로 이를 통해 광산 내부로 물이 들어오는 일이 많았다. 지구과학자들은 과거에 운동이 발생했던 암석면 즉 불연속면에 대해 단층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단층면은 실제 완벽한 평면은 아니다. 단층은 단단하고 손상 없는 지각 내에 존재하는 약한 접합면이다. 지진은 지각의 약대(弱帶)인 단층과 연관되어 발생한다.   &nbsp;  일반적으로 단층에는 잘게 갈린 물질로 된 일정 크기의 비지대(gouge zone; 단층 깊은 곳에서 암석이 짓이겨져 만들어진 진흙·광물 가루 지대)라는 것이 있다. 비지라는 것은 반복적으로 운동하는 단층 작용으로 암석이 갈려 작은 가루가 된 것이다. 단층이 오래되고 잘 발달할수록 비지대가 두꺼워진다. 단층도 진화한다. 단층은 지역적 특성과 스트레스 상황을 고려하여 생겨나고 발달해 간다. 이렇게 단층이 생겨나고 진화하는 과정은 매우 느리다.   &nbsp;  지각의 여기저기에는 과거 함께 활동했던 단층들이 자리잡고 있다. 단층 중 어떤 것은 판 경계라는 중요한 약할을 하는 반면 어떤 단층은 어쩌다 한 번 움직이는 사소한 균열대로 그친다. 저자는 지구는 단순한 그림으로 표현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말한다. 얼른 보아 한 개로 쭉 뻗은 것처럼 보이는 단층도 자세히 보면 여러 작은 직선들 즉 더 작은 단층 분절들로 되어 있다.   &nbsp;  직선으로 보이는 각각의 분절들도 또 확대하면 더 작은 분절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졌음이 나타난다. 각 분절들을 또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여러 분절의 집합으로 되어 있다. 마치 나무에서 가지 하나를 꺾고 자세히 보면 그 전체적 생김새나 복잡한 모양이 다시금 나무처럼 생겼음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반복적 성질은 수학적으로 프랙탈 즉 자기 유사성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단층이 분열된 것 - 작은 꺾임과 갈라짐 - 이 거친 돌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70, 71 페이지)   &nbsp;  단층이 움직이면 마찰력이 감소하지만 증가하는 경우도 있다. 단층은 시계처럼 정확하게 지진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또한 한 단층에서의 지진 발생률은 장기적으로 그 단층에 작용한 응력의 축적률과 단층이 미끄러진 비율에 따른다. 현대 과학이 실전에서 쓰는 것은 지진을 미리 맞추는 예측이 아니라 지진이 이미 땅속에서 발생한 순간 무선 전파가 지진파보다 빠르다는 점을 이용해 몇 초는 또는 몇 십초 전에 대피 명령을 내리는 조기 경보 시스템이다.   &nbsp;  샌 안드리아스 단층대는 복잡한 모양을 하고 있다. 태평양판과 북미판 사이의 경계는 왜 이리 복잡한가? 그 답은 판 구조운동이 공 모양의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서부에는 가장 긴 판 경계 구조가 펼쳐져 있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캘리포니아 북부와 중부의 동편에서는 광대한 지각 덩어리가 지속해서 늘어 당겨지고 있다. 이 확장 작용이 샌 안드리아스 단층계가 생겨나기 전부터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전개되던 섭입 작용에 기인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nbsp;  샌 안드리아스 단층계가 생겨난 후 확장 작용은 샌 안드리아스 단층계의 북쪽 3분의 2 부분을 서쪽으로 밀어냈다. 몇 백만 년이 지나면 샌 안드리아스 단층계의 일원인 몇몇 단층들이 직접 판 경계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과학자도 있다. 이런 진화는 시간이 지질학적 단위로 흘러야 가능하다. 샌 안드리아스 단층계는 당분간 이 땅에서 가장 중요한 구조선의 하나로 남아 있을 것이다.   &nbsp;  저자는 지질학과 지진학을 아우르는 하나의 중요한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열쇠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때로 지진 재해는 엉뚱한 데서 생긴다. 섭입대 지진에서처럼 해양 지각이 갑자기 내려앉으면 해저에서 파도가 생겨난다. 이런 파도를 쓰나미라고 한다. 이것은 지진 발생지 바로 인근의 해안으로 달려든다. 이런 파도는 시속 수백km의 속도로 해저 바닥을 따라 소리 없이 전파된다. 그러다가 연안의 수심이 얕은 곳에 이르러서는 에너지가 수직으로 집중되어 엄청난 진폭 증가가 일어난다.   &nbsp;  즉 공해에서는 보이지 않던 파도가 갑자기 커다란 물의 장벽으로 변하는데 때에 따라 그 높이가 수십m나 된다. 쓰나미는 근원지 바로 근처의 해안지대에 엄청난 재해를 가져온다. 또 수천 km 떨어진 해안지대도 마찬가지다. 쓰나미 경보 체제가 없던 예전에는 멀리서 지진이 일어난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맹렬하게 연안으로 돌진하는 물의 장벽에 당하기도 했다. 알래스카 쓰나미의 대부분은 그 지역 지진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지진 발생 후 바로 뒤에 쫓아온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5727/27/cover150/897180490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57272711</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실록의 여백을 채운 세종대왕 이도(李裪)의 가슴속 기록 - [이도 다이어리 - 세종 33년 간의 기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17632</link><pubDate>Tue, 28 Jul 2026 20: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1763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930932&TPaperId=174176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921/89/coveroff/k602930932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930932&TPaperId=1741763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도 다이어리 - 세종 33년 간의 기록</a><br/>김경묵 지음 / 새움 / 2024년 05월<br/></td></tr></table><br/>이도(李裪)라는 이름을 가졌던 조선 4대 임금 세종(1397- 1450)의 33년(1418-1450)간의 재위 기록을 담은 책이다. 중국은 정치 제도를 우선시하는 발정시인(發政施人)의 정치를 택할 수밖에 없었고 조선은 사람을 먼저 헤아리는 시인발정(施人發政)의 정치를 택할 수 있었다. 세종은 그것을 했는데 그렇지 않은 임금들이 많았다. 정조는 시인발정과 발정시인의 면모를 모두 갖춘 인물이다.  &nbsp;  세종이 아내 소헌왕후의 공식 이름을 검비(儉妃)라고 정하려 했으나 부왕 태종이 반대해 공비(恭妃)라 정했다는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이는 하나의 예이다. 태종은 세종의 길을 만들어주는 과정에서 세종에게 스승 같은 존재였던 한편 세종을 고뇌케 한 존재이기도 하다. 악역을 자임한 것이다. 세종은 장인 심온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을, 바른 말을 습관처럼 하는 자신의 입버릇에서 시작되었다고 자책했다. 장인이 자신에게 남의 허물을 말하는 것을 아버지에게 그대로 전한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15, 16 페이지)  &nbsp;  고뇌 또는 자책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왕이 되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밖으로 돌아다니지도, 병이 들지도 않았을 것이어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고 말한 것이다.(31 페이지) 이는 태종이 충녕대군(세종)을 마음에 둔 반면 원경왕후는 양녕대군(폐세자된 아들)을 깊이 아낀 데서 비롯된 일이다. 세자(世子)란 왕의 자리를 잇는 사람을 말한다. 세종은 아버지는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희생했다고 말한다.(17 페이지)  &nbsp;  세종은 "나는 지금까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선비와 같이 살아오지 않았는가...", "내가 아는 것은 책에서 익힌 지식이 전부이기에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아버지의 말과 행동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해서 배우고 또 익히고 있다.." 같은 말을 했다. 책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매일 아침 조회를 마치고 나서 특별한 일이 없는 날에는 어김없이 경연을 연다. 신하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공부하고 나라 안팎에서 일어난 현안 이슈를 토의한다. 경연(經筵)을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장소라고 부르는 이유다.  &nbsp;  태종은 아들 세종에게 국방이 최우선이라고 가르쳤다. 태종은 유련(流連)을 경계할 것을 가르쳤다. 유는 물의 흐름을 따라 내려가서 돌아올 줄 모르는 것을 말하고, 연은 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서 돌아올 줄 모르는 것을 말한다. 세종은 수령에게 지배당하는 소민(小民)을 사랑하라고 지시했고, 정부에는 국민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대책을 최우선으로 마련하라고 매일 같이 닦달해 왔기에 수령들이 왕에게 거짓 보고를 하는 상황이 오랫동안 누적된 것만 같다고 여겨 마음 아파했다.  &nbsp;  자식의 신분을 노비인지 아닌지 결정하는 종부법과 종모법을 보자. 종부법은 아버지의 신분을 따르는 것이고, 종모법은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는 것이다. 종부법에서 종모법으로 지금 당장 바꿔야 한다고 역설한 사람이 이조판서 허조였다. 이는 허조뿐 아니라 다수의 신하가 여종을 첩으로 들여서 아이를 낳고 노비 즉 재산을 늘리고자 한 수법이었다.  &nbsp;  강무(講武) 이야기도 나온다. "3월에 경기도 연천으로 군사훈련을 다녀오며 메마른 논과 밭을 직접 보고 왔다."(87 페이지) 강무란 왕이 직접 전국의 군인을 모아서 사냥하며 훈련시키는 제도로서 농사일 전의 초봄과 추수를 마친 늦가을, 이렇게 두 번 한다.(111 페이지) "왕은 국민의 배고픔을 보고 지나칠 수는 있어도 국민의 목숨을 지키는 일은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임무를 부여받은 왕의 태도다." 이 말은 태종이 아들 세종에게 한 말이다.  &nbsp;  태종은 세종에게 이 한마디를 전해주기 위해서 군사훈련을 할 때면 언제나 세종을 모질게 다루었다. 세종이 그토록 싫어하던 돌 싸움을 맨 앞에서 지켜보게 했고 군대의 기강이 해이해 졌다고 판단되면 바쁜 농사 철에도 군사훈련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처럼 훈련 중에는 냉정한 왕이었지만 훈련을 마친 뒤에는 다친 군인을 치료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세종이 지켜보게 했다.(143 페이지)  &nbsp;  재위 13년인 1431년 세종은 18세의 세자 향과 함께 첫 군사훈련을 했다.(149 페이지) 조선의 농부는 꽤 어려운 위치의 사람들이었다. 농부가 가을에 추수를 마치면 정기 군사훈련과 성을 쌓는 중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때로는 무기 창고에 보관된 무기를 수리하는 일도 해야 하고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해야 한다. 이처럼 농부는 나라에서 부르면 노동자가 되기도 하고 군인이 되기도 하는, 고단한 신분의 사람이다.(223 페이지)  &nbsp;  자책을 많이 한 세종은 군사훈련 중 추위에 얼어 죽은 군인들이 나온 것에 대해서도 자책했다. 재위 8년인 1426년 세종은 강원도에서 한창 군사훈련을 하던 중 서울에 큰 불이 났다는 긴급 보고를 받는다. 화폐개혁이 방화의 원인이라고 말해줬다. 전년도부터 나라에서 하루아침에 조선통보로만 거래하라고 명령해 법을 어기고 물물거래를 하다 적발되면 재산을 몰수하고 감옥에 가둔 결과 가족까지 졸지에 길거리에 나앉는 거지로 전락했기에 국민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황망한 일들이 불과 몇 달 사이에 벌어진 것이어서 그 가족들이 명화(明火) 강도를 본떠 화적 집단으로 뭉친 것으로 짐작된다.  &nbsp;  명화란 횃불을 밝혀 들고 다니던 것을 말한다. 세종은 군대를 통솔하는 것은 명령으로 가능하지만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반드시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깊이 깨달았다고 말한다. 곡식의 생산량이 늘면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먹고 남은 곡식을 화폐로 바꿨다가 필요할 때 곡식으로 다시 바꾸게 될 텐데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화폐개혁을 서두른 것이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nbsp;  세종은 이 사건으로부터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유; 流) 그것을 알아채면 빨리 돌아올 줄 아는 사람이 왕이어야 한다는 태종의 유언을 되새겼다. 세종은 경기도와 강원도의 군사훈련을 위한 사냥터 몇 곳도 농경지로 개관하도록 허가 했다. 다만 군사훈련을 할 때도 있으니 사냥을 금지하는 것은 유지했다.(123 페이지) 세종은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말을 타고 활을 쏘며 노는 것을 즐기는 젊은 사람들을 상대로 국가고시에서 공부와 말, 활로 구분되는 문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125 페이지)  &nbsp;  재위 12년인 1430년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동시에 지진이 발생했다. 4월말인데 서리만 내리고 비는 내리지 않고 햇볕만 쨍쨍한 날이 이어져 농작물 파종에 지장을 주는 이상기후 이야기도 전한다. 세종은 "우리나라에는 지진이 없는 해가 없고 하삼도(충청, 전라, 경상)에 매우 많다"는 말을 했다. 새롭게 알게 해주는 사실이 많은 것이 [이도 다이어리]의 특징 중 하나다. 국가 고시 시험에 노비 신분은 응시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 중 하나다.  &nbsp;  이 사실 자체는 세운 것이 아니다. 노비의 자식이 국가 고시에 합격해 고위직까지 승진하면 노비가 양반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그렇다.(161 페이지) 세종은 금수저 청년은 자유분방하게 살지만 가난한 부모를 만난 청년을 평생 흙수저로 살게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방법으로 범죄자의 자식이라도 재주가 있거나 착한 청년이면 권리로 채용할 수 있게 법을 보완한 것이다.  &nbsp;  조선은 중국이라는 나라를 빼놓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나라다. 여진족과 생존을 위한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되어 당장이라도 오랑캐 무리를 몰살시킬 군대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지만 중국 땅에 조선 군대를 들여보내는 것은 황제와 사전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것이 대표적이다.(171 페이지) 두 여진족 부족인 오랑캐는 강가의 사람이라는 뜻이고, 우디 캐는 숲속의 사람이라는 뜻이다.(189 페이지) AI는 둘 다 숲속의 사람이라고 말한다. 오랑캐는 몽골, 퉁구스족 계열의 부족인 우량카이에서 유래했다.  &nbsp;  세종은 변역(變易) 방식의 정치를 지향했다. 내가 먼저 바뀌는 것이 변이고 남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행동이 역이다. 여기저기가 다 문제다. 북쪽 국경을 넘나드는 여진족 만큼 남쪽의 항구를 드나드는 왜인(倭人)의 상황 또한 좋지 않다.(194, 195 페이지)  &nbsp;  세종은 정초(鄭招; ? - 1434)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6월 2일 나보다 더 나를 닮았고 언제나 왕을 사랑으로 돌봐주던 신하 정초가 죽었다. 내가 왕이 되고 가장 좋아하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코 경연이고, 정초가 없는 경연은 상상할 수 없다. 그만큼 정초는 내게 특별한 사람이다. 정초는 내가 왕이 된 해에 장인이 역모에 몰려 죽임을 당할 때 경연에서 지금은 보고도 못 본 듯 행동해야 한다며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고 새로 임명한 수령은 반드시 가까이 불러서 소민을 사랑하라고 당부하라고 알려주었던 인물이다.“  &nbsp;  소민은 지배당하기만 해서 힘이 없고 움츠러드는 작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197 페이지) 정초는 문학, 농업, 천문, 과학, 음악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기틀을 닦는 모든 핵심 사업을 주도한 세종대왕의 핵심 참모이자 만능 천재 학자였다. [농사직설]의 저자이기도 한 정초는 이천, 장영실 등 기술자들이 과학 기구를 만들 수 있도록 과학적 이론을 정립하고 작업을 총지휘한 인물이기도 하다. 정초는 언제나 배우고 묻기를 좋아한 인물이었다.  &nbsp;  세종은 세자 향을 어떻게 대했을까? 다음의 구절을 보자. "3월 28일 이른 아침에 세자 향을 데리고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건원릉에 가서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아버지와 추억이 많은 광진구에 있는 낙천정에 들러서 점심을 먹고 강을 건너서 송파구의 나루터 부근 편평한 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저녁을 먹고 불을 쬐며 아들에게 선대왕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다음 날 돌아오는 길에 부모가 잠들어 있는 서초구에 있는 헌능에 들러서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렸다. 이틀 동안 아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나라가 탄생하고 유지되는 기본을 일러줬다. 아버지가 나에게 해준 것에는 못 미치지만 나도 내 방식으로 아들에게 전해주고 있다"(199 페이지)  &nbsp;  흐뭇한 정경이다. 세종은 대다수의 집현전 학사들이 언론, 감찰, 인사, 국방을 다루는 힘 있는 기관으로 옮겨가고자 한다고 말한다. 세종은 태만한 마음을 잡고 종신토록 집현전에서 공부하고 경연을 준비하라고 단호하게 명령했다. 그러나 세종은 최악의 가뭄이 닥치자 집현전 인원을 32명에서 20명으로 줄이는 결단을 내렸다.(229 페이지)  &nbsp;  세종의 책 이야기는 계속된다. 예전에 아버지가 방에 틀어 박혀 지내는 아들의 건강을 염려해 아들 주변에 있던 책을 모두 치웠던 적이 있는데 그때 구소수간(歐蘇手簡) 책 한 권만 방에 덩그라니 남아 있었다.(205 페이지) 문(文)과 무(武) 또는 중앙과 변방의 갈등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있다. 부모가 죽어도 아내가 죽어도 장례를 치르러 집에 다녀오기가 쉽지 않은 것이 국경을 지키는 장수의 숙명임에도 국경을 지키는 장수가 조그만 사건 사고라도 저지르면 서울의 관리들은 트집을 잡고 죄인처럼 대하기 일쑤였다.(211 페이지)  &nbsp;  해괴(駭怪)한 일을 없애기 위해 해괴제(解怪祭)를 지냈다고 한다.(219 페이지) 세종은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세종은 왕이 되고 나서 신하에게 한 첫 말이 "더불어 의논하자"였는데 세 정승이 자신의 뜻을 읽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고 마침내 그들이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게 되어서야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갖췄다고 말한다.(234 페이지) 물론 세종은 법을 바로 세우는 것은 결국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324 페이지)  &nbsp;  재위 18년인 1436년 세종은 국민 한 사람이 1년에 내는 세금이 쌀 70석에 이르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계속되는 흉년에 세종은 처음으로 왕으로서 한계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다.(231 페이지) 무엇이 문제일까? 산업, 기술이 부족한 때문일까? 이때 세종은 눈병이 심해져서 문서를 제대로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나빠졌다고 말한다. 수개월 동안 적지 않은 문서를 읽어가며 일하고, 밤에는 잠을 줄여가며 자치통감훈의 책 원고 작업을 하며 눈을 혹사시킨 후유증인 듯하다고 말한다.(234 페이지)  &nbsp;  본문에 오랑캐 이만주 이야기가 나온다. 세종과 세조 시대에 조선 북방을 끊임없이 위협했던 건주여진의 대추장이다. 4군6진을 개척하도록 촉발한 인물이다. 재위 21년인 1439년 이런 기록이 있다. 국경에서 성을 쌓고 있는 소민에게 밥을 가져가면 물고기가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로 모여드는 것 같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그것을 지켜보기가 괴롭다는 평안도 군사령관의 편지글이다. 세종은 밥이 배고픔을 해결하지만 성은 목숨을 지켜줄 것이라고 말한다.  &nbsp;  평안도 벽단, 함경도 원성 등지에 행성과 바리케이트 공사를 했는데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여름 장맛비에 휩쓸려 많은 곳이 허물어졌다. 현장을 조사하고 온 관리가 주먹으로 내리쳐도 허물어졌을 정도였다고 보고했다. 눈에 보이는 성의 바깥만 돌로 쌓고 보이지 않는 곳은 모래와 흙으로 대충 메운 부실공사였기 때문이다. 세종은 문제의 핵심이 성을 쌓는 기술 차원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목표를 달성하려고 재촉했던 데에 있다고 말한다.(300 페이지)  &nbsp;  다양한 여진족들이 귀화해왔다. 대부분은 국경 가까운 지역의 좁은 땅에서 부대끼며 살았다. 세종이 당뇨병을 비롯한 여러 병으로 인해 ”작은 일처리는 세자가 맡는다”라고 통보하자 신하들은 왕이 아직 젊어서 병이 곧 나을 것이라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를 보며 세종은 요즘 신하들의 말과 행동은 지금까지 왕에게 당했던 것을 되갚아주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동안은 자신이 늙고 병이든 신하를 퇴직 시키지 않았던 것처럼 왕도 죽을 때까지 일해야 마땅하다고 압박하는 듯하다고 말한다.(317 페이지)  &nbsp;  신하들은 세자로 하여금 군사훈련을 지휘하게 하려는 세종에 극구 맞서기까지 했다. 세종은 찬바람이 불면 온천이 간절해진다고 말한다. 이런 구절이 있다. "1442년 3월 3일 아내와 세자를 포함한 온 가족이 강무를 겸해서 강원도 이천(伊川) 온천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러고 보니 강무장에 아내와 함께 온 것도 처음이다. 강무는 세자가 지휘하게 했고 나는 틈틈이 세자와 더불어 사냥을 하며 아이들과 정을 쌓았다. 아홉 살 막내 이염(영웅대군)은 여행이 지겨운가보다."(319, 320 페이지)  &nbsp;  세종은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이는 어떤 사건의 현상이 아닌 배경을 헤아리는 데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가령 고의 방화 사건에 대해서도 세종은 해당 지역의 수령을 처벌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며 문제의 핵심은 왕 때문에 주민이 길을 내고 건물을 짓는 등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재위 25년인 1443년 47세의 세종은 12월 마지막 날 우리나라 사람의 말을 듣고 글자로 적을 수 있는 훈민정음이라는 세상에 없는 새 문자를 만들었다고 세상에 알렸다.(335 페이지)  &nbsp;  세종은 오랫 동안 비밀리에 새 문자를 만들어 왔다. 온천에 가서 틀어박혀 지낸 이유도, 군사훈련을 취소한 이유도 모두 훈민정음 연구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세종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감정과 소통에 섬세했다. 요즘 말로 정동(情動)의 사람이라 해도 될 것 같다. 정동은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몸들과 만나며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한다. 정동 이론의 핵심은 의식 이전의 거친 감각들이 어떻게 구체적인 언어와 의미로 전환되느냐에 있다.  &nbsp;  세종은 자신이 한창 젊었을 때는 신하의 보고를 받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너의 말이 아름답다. 그러나"라고 말하고 나서 자신의 생각을 차근히 설명하는 열정이 넘쳤었다라고 한다. 그런데 몸이 약해지자 자신의 지시대로 하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내뱉을 때가 있다고 말한다.(354 페이지) 세종은 몸이 낫기 전까지는 이런 마음의 병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다.  &nbsp;  재위 28년인 1446년 50세의 세종은 아내를 보내야 했다. 세종은 "아내 이름은 소헌(昭憲)이라 정했다. 아내가 살아서 불리던 이름이 공비(恭妃)였다. 겸손하고 예의 바른 아내의 모습을 보고 태종이 지어준 이름이다. 죽은 뒤에 불릴 아내의 이름을 내가 직접 정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소헌은 밝음을 일깨워주는 사람이란 뜻이다. 실제로 아내는 왕인 나보다 더 아랫사람을 믿어주던 왕비였다."(373 페이지)라고 말한다.  &nbsp;  "9월 9일 세자가 영릉(英陵)에 가서 어머니 제사상에 밥 한 그릇을 올렸다. 그리고 띠로 벽과 지붕을 이은 한 칸 넓이의 임시 거처에 들어가서 밥을 먹다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목이 메이도록 울었다고 한다. 나도 그립고 보고 싶은데 큰아들이 오죽했을까? 어머니와 함께했던 날들이 주마등 같이 스쳐났을 것이다. 내가 추억하는 아내는 평소에 믿음을 주는 말로 정을 쌓으며 살았고 나에게 모범을 보이던 사람이었다. 잔소리도 잘난 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왕이 처신하는 도리의 바탕이 되는 정을 아내에게 배웠다'라고 누구에게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374, 375 페이지)  &nbsp;  세종은 정(情)이란 글자는 마음(心)을 고요하게(靑) 하는 뜻을 가진 글자라 말한다. 세종은 훈민정음이 백성의 한(恨)을 풀어내고 정(情)을 쌓는 글자라고 말한다. "왕은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아야 하늘이 준 기쁨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병이 들고 늙으니 쉽게 피곤해지고 게을러진다. 내가 지금 그렇다."(390 페이지)  &nbsp;  재위 32년 즉 마지막 해인 1450년 54세의 세종은 소민(小民)과 더불었던 소여왕(小與王)으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태종은 신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통치하는 권도의 왕이었고 세종은 신하와 대화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즐겼던 정도의 왕이었다.(421 페이지) 부모를 잘 만나서 자신의 이성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고 말한다. 물론 세종의 이성은 감성을 잘 헤아리는 바탕 위에 세운 이성이다. 여주 영릉(英陵)에서 해설을 하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세종 시대의 과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싶다. 정초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더 알아보고 싶다.&nbsp;  &nbsp;    &nbsp;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921/89/cover150/k602930932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9218943</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힘의 신기한 속성들을 찾아 - [물리적 힘 - 세상은 우리를 밀어내고, 당기고, 붙들고, 놓친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11259</link><pubDate>Sat, 25 Jul 2026 18: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112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834416&TPaperId=174112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176/19/coveroff/k32283441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834416&TPaperId=174112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물리적 힘 - 세상은 우리를 밀어내고, 당기고, 붙들고, 놓친다</a><br/>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이충호 옮김 / 서해문집 / 2023년 08월<br/></td></tr></table><br/>세상에는 밀거나 당기는 물리적 접촉 없이 작용하는 힘들이 있다. 그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중력이라는 불가사의한 힘이다. 중력은 우리를 지구 표면에서 둥둥 떠올라 멀리 벗어나지 않게 하는 반면 아이가 쥐고 있는 끈 위의 풍선이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 지구의 중력에 붙들려 살아간다. 사업자와 과학자는 우주정거장 내부 조건을 무중량 상태나 무중력 상태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신 미소 중력(microgravity)이라고 부른다. 이는 중력이 실제로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이다.   &nbsp;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자 혁명이 일어나면서 전화기 내부가 전기 기계적인 것에서 전자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전기 기계는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부품이 필수적이다. 다이얼을 돌리면 테엽과 기어가 맞물려 돌아가고 내부의 금속 접점이 실제로 부딪히며 전기 신호를 끊었다 이어주었다. 전자식에서는 움직이는 부품이 없다. 트랜지스터, 반도체, 집적회로 같은 고체 소자 내부에서 전자가 이동하며 신호를 처리한다.   &nbsp;  간밤에 내가 잠을 잘 자는 데에는 중력이 한몫했다. 내 마음은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꿈을 꾸었을지 모르지만 내 몸은 지구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마찰은 순간적으로 작용하여 파악하기 힘든 힘이다. 그것은 꼭 필요한 힘과 잠재적 조건이 갖추어질 때에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반드시 필요한 잠재적 조건은 1) 접촉면, 2) 누르는 힘, 3) 미세한 거칠기의 세 가지다.   &nbsp;  접촉면이란 두 물체의 표면이 맞닿아 있어야 한다. 누르는 힘은 표면끼리 서로 밀어붙이는 힘이 있어야 한다. 꽉 누를수록 마찰력의 잠재적 최댓값이 커진다. 미세한 거칠기란 아무리 매끄러워 보이는 표면도 분자 수준에서는 울퉁불퉁하며 이 접촉점들이 서로 엉겨 붙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물체가 가만히 있을 때는 마찰력이 0이다. 물체를 밀기 시작하는 순간 그 미는 힘과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마찰력이 작용한다.   &nbsp;  미는 힘을 계속 키우면 마찰력도 같이 커지다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힘인 최대 정지 마찰력에 도달한다. 접촉을 포함한 모든 행동은 궁극적으로는 밀고 당기는 힘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지지만 그것들이 혼란스러운 조합으로 일어나 해석하거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마찰력은 걸어갈 때 디딤돌 역할을 하는 벽과 같다. 발을 밀었을 때 뒤에 단단한 벽이 있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듯이 마찰력이 있어야 발이 미끄러지지 않고 전진할 수 있다.   &nbsp;  길을 걸으면서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저자는 서로 대응하는 한 쌍의 뉴턴의 힘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자신의 발이 땅을 누르는 힘은 작용으로, 땅이 자신의 발을 미는 힘은 반작용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끄러운 얼음판이라고 해서 뉴턴의 작용 반작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분자 수준에서 발을 잡아줄 마찰력이 없기 때문에 발이 뒤로 미끄러져 나가며 앞으로 가기 위한 수평 방향의 작용을 땅에 전달하지 못한다.   &nbsp;  땅을 밀지 못하니 몸을 앞으로 밀어줄 반작용도 생기지 않는 것이다. 마찰력이 없으면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전에 세상의 모든 물체에 초강력 윤활유를 바른 것 같은 상태를 넘어 제대로 서로 붙잡아두는 결속력이 사라지게 된다. 지구 전체가 거대한 액체처럼 흘러내려 형태를 잃어버리는 종말이 찾아온다. 물질 자체를 만드는 것은 화학적 결합력이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물체들이 서로 미끌어지거나 흩어지지 않고 쓸모 있는 형태로 존재할 수 있게 묶어주는 실질적인 결속력은 마찰력이다.   &nbsp;  인류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문명적인 것이든 야만적인 것이든 모든 것을 항상 힘에 의존해 해결해왔다.(126 페이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우리는 늘 접촉하는 모든 것에 힘과 운동을 가하고 그 효과를 되돌려 받는다. 이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물리 세계와 그 방식에 익숙해진다. 경험의 도서관 밖에 존재하는 힘과 운동을 맞닥뜨릴 때 우리는 크게 놀라게 되는데 거기서 해를 입기도 하고 이득을 보기도 하며 즐거움을 얻을 때도 있다.   &nbsp;  힘을 천연자원으로 이용하는 것은 실험실의 과학자나 사무실이나 현장의 공학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다. 누구든지 재미로 힘을 이용할 수 있으며 그런 짓은 아름다운 행동이 아니라는 생각은 정신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일만 하고 놀 줄 모르는 어른은 따분한 부모가 되고 만다.(173 페이지)   &nbsp;  저자는 19세기의 박학다식한 지식인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이 힘의 과학과 기계의 과학이라고 부른 역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윌리엄 휴얼은 과학자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이다. 저자는 바로 그 힘의 과학과 기계의 과학이라는 분야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공학자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 중 하나는 거의 모든 기술 분야는 나머지 모든 기술 분야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리학 중에서 가장 오래된 분야인 역학은 일종의 패러다임 역할을 한다.   &nbsp;  저자는 힘은 자신이 배운 화학공학, 전기공학, 심지어 핵공학 분야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고 말한다. 아주 큰 힘 앞에서 부러지는 것은 분필 뿐만이 아니다. 모든 것은 부러지는 지점이 있다. 하지만 휴얼은 모든 실패는 성공을 향한 발걸음이라고 말했다. 이는 저자가 얻은 교훈 중 하나였다.(189 페이지) 역사는 힘에 관한 감각과 감수성의 한계를 보여주는 교훈으로 가득 차 있다.   &nbsp;  이와 관련이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1986년 1월 28일 폭발한 우주왕복선 챌린지호의 사고 원인을 조사하던 대통령위원회와 관련이 있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이론 물리학 교수였던 리처드 파인만과 한 위원은 공청회 도중 탁자 위에서 단순한 실험을 보여주었다. 실험 장비 중에는 얼음물이 든 컵과 C형 클램프가 있었다. 파인만은 C형 클램프로 O링이라는 작은 고무 개스킷을 조였다. O링은 우주왕복선 부스터 로켓의 핵심 부품 중 하나였다. 그 결함이 사고 원인으로 의심받고 있었다. NASA 관리자 들은 챌린지호 부스터에 쓰인 O링이 탄성이 매우 뛰어나 팽창하면 어떤 틈도 메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nbsp;  파인만은 이 실험으로 발사 당시의 혹한 상황에서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었는지를 보여주었다.(혹한이란 플로리다주 지역 역사상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한파와 강풍이 몰아 닥친 순간을 말한다.) 얼음물에 담겨 있던 O 링을 꺼내 클램프로 힘을 가하자 고무는 변형된 상태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실제 로켓에서도 O링이 제 역할을 못하는 바람에 틈을 통해 가스가 뜨거운 가스가 빠져나오면서 결국 폭발사고가 났다. 이렇게 간단한 실험을 통해 복잡한 현상을 명료하게 밝힐 수 있었다.(193, 194 페이지)   &nbsp;  힘이라는 개념은 쉽지도 않고 명백하지도 않다. 그 개념이 발전하기까지 수천 년이 걸렸고 일부 물리학자들은 지금도 그 개념이 계속 진화하고 있다고 믿는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모든 물질은 어느 정도 탄력성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일종의 용수철이라고 볼 수 있다.(249 페이지) 이 말은 세상에 완벽하게 딱딱한(강체) 물질은 없다는 공학적 진리를 꿰뚫는 멋진 비유다. 우리 눈에는 돌, 콘크리트, 강철 등이 전혀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nbsp;  하지만 원자나 분자의 미시 세계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모든 물질을 이루는 원자들은 전자기적 힘으로 묶여 있다. 이 원자 사이의 결합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스프링으로 연결된 것과 같다. 물체에 힘을 가하면 이 미세한 원자 스프링들이 아주 미세하게 압축되거나 늘어난다. 이는 탄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물체가 용수철처럼 작동한다는 것은 외부에서 가해진 충격 에너지를 잠시 변형 에너지로 저장했다가 방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모든 물질이 용수철처럼 힘에 비례해 늘어나다가 한계를 넘으면 영구적으로 변형되고 결국 부서진다.   &nbsp;  압축력의 반대는 인장력이다. 우리가 줄다리기를 할 때 경험하는 힘이다. 여기서 우리는 돌기둥이나 강철들과 달리 강성이 없는 물체가 인장력과 압축력을 받을 때 다른 행동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양팀이 잡아당길 밧줄에 다가가기 전에 밧줄은 대개 땅 위에 헝클어진 정원용 호스처럼 구불구불하게 놓여 있다. 하지만 양팀이 밧줄을 집어들면 밧줄은 곧 강철 케이블처럼 곧고 뻣뻣해지는데 단 양쪽에서 충분히 강한 힘으로 끌어당길 때에만 그렇다.   &nbsp;  상대팀이 없더라도 끈이나 치실을 손가락 주위에 감고 양손은 서로 멀어지게 함으로써 끌어당기는 힘과 밧줄의 모양을 만들 수 있다. 그러면 손가락에 실이나 끈이 파고드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 힘의 세기와 우리가 통증을 견디는 내용에 따라 것을 끊을 수도 있고 끊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윌리엄 휴얼이 역학에 기초해서 지적했던 수평 방향으로 아무리 세게 잡아당긴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결코 완전히 똑바른 직선으로 만들 수 없다. 항상 약간 처진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nbsp;  어떤 구조에서 모든 부분이 인장력이나 압축력은 똑같이 받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런 경우는 예외에 속한다. 공학자는 외력에 의해 구조물질 내부에 생기는 단위 면적당 힘의 세계를 응력이라고 부른다. 같은 힘이라도 표면 전체로 확산되느냐 좁은 부분에 집중되느냐에 따라 응력이 작아지거나 커질 수 있다. 지진이 구조에 손상을 입히는 또 한 가지 방법은 건물은 내버려둔 채 그 아래에 있는 지반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것은 식기가 놓인 식탁에서 식탁보를 갑자기 홱 잡아당기는 것과 비슷하다.(411 페이지)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176/19/cover150/k32283441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1761934</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리뷰</category><title>인간의 역사를 꿰뚫어 보는 고생물학자가 제시하는 현실적 대안 - [인간 제국 쇠망사 - 우리는 왜 멸종할 수밖에 없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08190</link><pubDate>Thu, 23 Jul 2026 21: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081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8822&TPaperId=174081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46/44/coveroff/897291882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8822&TPaperId=174081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간 제국 쇠망사 - 우리는 왜 멸종할 수밖에 없는가</a><br/>헨리 지 지음, 조은영 옮김 / 까치 / 2025년 09월<br/></td></tr></table><br/>헨리 지의 책이다. 저자는 [지구 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로 알려진 고생물학자다. 저자는 데이지 커터처럼 모두에게 동일한 방식이 아니라 종이 처한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수준으로 일어난다고 말한다. 데이지 커터는 목적지에 투하되어 넓은 지역에 큰 피해를 주는 초강력 폭탄의 일종이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들의 위대한 성공담 밑에서 예전보다 오래 버티고 있을 뿐 덤으로 주어진 수천 년이 끝나고 이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말한다.   &nbsp;  저자에 의하면 사피엔스는 어디를 가든 파괴를 자기 표식처럼 남기는 존재들이다. 호모 사피엔스(이하 사피엔스)는 홀로 살아 남은 호미닌이다. 호미닌이란 유인원에서 갈라져 나온 초기 인류 조상과 현생 인류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사피엔스는 지구의 자원을 과도하게 착취해왔다. 역사상 인류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두 차례 이주를 감행했다. 약 200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최초의 호미닌으로 아프리카를 처음 떠났고 약 10만년 전을 시작으로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마침내 아시아와 유럽의 모든 다른 호미닌을 대체하게 되었다.   &nbsp;  이 두 차례의 이주는 모두 구체적인 의도나 목적지 설정 없이 이루어졌다. 인구 압박이나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또는 사냥감 무리를 뒤쫓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향을 떠나서 살게 된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호미닌이 가끔씩 내킬 때만 두 발로 걷던 생활을 청산하고 이족보행을 기본적인 보법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모른다. 물론 이족보행은 유리한 방식이다. 인류사 전체를 통틀어 호모 사피엔스는 언제나 극도로 희귀했다. 한 끼의 식사로 아사를 면하고 또 한 끼로 멸종을 피하며 아주 작은 무리가 지구 표면으로 아슬아슬하게 퍼져나갔다.   &nbsp;  사피엔스가 희귀했던 것은 1) 역사 속에서 급격한 기후 변화나 가뭄 등을 겪으며 몇 번이나 멸종할 뻔한 인구 병목 현상을 겪었고, 2) 다른 영장류에 비해 유전적 다양성이 턱없이 낮고, 3) 거대한 지구 대륙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인류는 수십 명 단위의 아주 작은 무리를 지어 흩어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을 비교한다. 왜 다른 호미닌 특히 네안데르탈인 같은 종족이 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버티지 못했을까? 핵심은 집단에 크기에 있다.   &nbsp;  현생인류가 조금 더 밀집된 공동체를 이루었고, 또 멀리 떨어진 무리끼리도 서로 교류했을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약 1만 년 전 일어난 농업혁명을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이자 전환점으로 설명한다. 농업혁명은 인류(종)의 개체 수를 늘리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인간(개인)의 행복과 건강이라는 관점에서는 영양실조, 전염병, 과도한 노동을 선물한 재앙이나 다름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 헨리 지의 통찰이다.   &nbsp;  주목할 개념이 창시자 효과(Founder Effect)라는 말이다. 커다란 집단에서 극소수의 개체들이 떨어져 나와 새로운 지역에 정착할 때 유전적 다양성을 잃어버리고 고립되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이 개념은 저자가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퍼져나간 과정을 설명할 때 핵심 이론으로 제시한 개념이다. 아프리카에 살던 수많은 사피엔스 중 아주 일부만이 고향을 떠나 중동으로 이동했다.   &nbsp;  이때 아프리카에 남은 본(本) 집단이 가지고 있던 풍부한 유전자 중 극히 일부분만 새 정착지로 배달되었다. 중동에 자리 잡은 소수 집단에서 또다시 더 적은 무리가 떨어져 나와 유럽으로 가고, 그중 또 일부가 아시아로, 다시 아메리카로 이동했다. 아프리카에서 멀어질수록 인류는 '창시자 효과'를 연속으로 겪으며 유전적 다양성이 처참할 정도로 복사, 축소되었다. 창시자가 된 소수의 무리는 필연적으로 아주 좁은 유전자 풀(Pool) 안에서 번식해야 하므로 극심한 근친교배를 겪게 된다.   &nbsp;  큰 집단에 있을 때는 묻혀서 나타나지 않던 해로운 열성 유전 질환이나 유전적 결함들이 소수 정착지 안에서는 서로 유전자가 겹치면서 후대에 폭발적으로 발현되기 쉽다. 저자는 이를 유럽 왕가들이 근친혼으로 인해 혈우병 같은 유전병을 앓았던 것에 비유하며 초기 인류 무리 역시 이러한 유전적 결함 누적을 피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유전적으로 다양하다는 것은 어떤 전염병이 돌 때 누군가는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nbsp;  하지만 창시자 효과 때문에 모두의 유전자가 비슷해진 인류 집단은 치명적인 전염병,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집단 전체가 한 번에 전멸할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게 되었다. 네안데르탈인의 멸종도 창시자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저자는 인류의 유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우주 식민지 개척 등을 제시한다. 아프리카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창시자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는 저자의 창시자 효과에 의하면 아프리카에서 아주 먼, 내가 사는 연천 전곡리에 살았던 에렉투스들은 어땠을까?   &nbsp;  전곡리 주변에 살던 에렉투스는 많아야 수십 명 단위의 아주 작은 씨족 무리였을 것이다. 대륙은 너무 넓고 다른 무리는 없었기에, 이들은 수만 년 동안 그 좁은 무리 안에서만 짝을 짓는 극심한 근친교배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전학적으로 근친교배가 지속되면 해로운 열성 유전병이 고착화된다. 전곡리인들은 겉으로는 뼈가 튼튼하고 주먹도끼를 잘 만드는 강인한 사냥꾼이었을지 몰라도 유전적으로는 뼈나 장기, 혹은 면역계에 치명적인 약점을 공유한 약한 집단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nbsp;  전곡리 유적에서 뛰어난 주먹도끼가 8,500여 점이나 나왔지만 인골 화석은 단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화석이 만들어져 전해지기가 어렵기도 한 점도 작용했겠지만 그들이 매우 적은 수로 살다가 흔적 없이 사라졌음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들이 남긴 전곡리의 주먹도끼는 위대한 유산이지만 머나먼 타향에서 외롭게 버티다 사라져 간 인류 조상들의 슬픈 흔적이라 할 수 있다.   &nbsp;  약 20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던 호모 에렉투스 중 기후 변화로 사바나 초원이 확장되면서 먹이(동물 미트)를 추적하던 일부 사냥꾼 무리가 우연히 중동을 거쳐 유라시아로 넘어왔다. 이때 대다수의 에렉투스는 기후가 익숙하고 살기 좋은 아프리카 본토에 그대로 남아 진화를 이어갔다. 이 남겨진 본가 집단이 훗날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를 거쳐 우리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게 된다.   &nbsp;  저자의 관점에서 200만년전 아프리카를 벗어난 무리들은 검치호랑이가 먹다 버린 고기 찌꺼기를 찾아, 그리고 이동하는 초식동물 무리를 따라 초원 길을 걷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국경을 넘어버린 외로운 사냥꾼들이었다. 지리학 박사 박정재 교수에 의하면 200만 년 전 빙하기가 오자 아프리카는 예전보다 추워지고 건조해졌다. 이 변화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사냥감을 따라 아프리카를 탈출한 무리들은 역설적이게도 아프리카보다 훨씬 더 춥고 혹독한 유라시아의 진짜 추위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nbsp;  고향에 남은 이들은 예전보다 살기 팍팍해졌을지언정 얼어 죽을 일은 없는 온화한 피난처에서 버틴 셈이다. 정리하면 200만 년 전 에렉투스는 아프리카가 추워지고 건조해져서 먹이를 찾아 쫓기듯 탈출해 유라시아의 추위에 고생하다 멸종했고, 10만 년 전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와 중동이 따뜻하고 습윤해져서 초록 사막 고속도로를 타고 편하게 탈출했으나 기후가 다시 건조해지며 대부분 정착에 실패했다.   &nbsp;  6만 년 전 사피엔스는 가뭄과 인구 압박을 뚫고 획기적인 언어와 상상력(인지혁명)을 무기로 탈출을 해 현대 80억 인류의 진짜 조상이 되었다. 유전적인 결함과 질병, 농경생활에도 불구하고(사실은 농업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는 거침없이 성장했다. 지구에 존재한 대부분의 시간 동안에 호모 사피엔스는 야생이 제공하는 것만으로 근근히 살았다. 그런 방식으로 이 땅에 살 수 있는 인간은 고작 천만 명 정도였다. 농경은 이 땅이 인간을 부양할 수 있는 수용 능력을 키웠고 그렇게 인구의 수와 밀도가 증가했다.   &nbsp;  환경을 파괴하고 자원 부족을 낳고 결국 세계 경제를 악화시켜 생활의 질을 떨어뜨리고 아기를 낳으려는 여성의 수, 아빠가 되고 싶은 남성의 정자 수를 감소시키는 인구 과잉의 뒤에 기후 변화라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고 설명하는 저자는 이주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이주는 인류의 자연스러운 행보(173 페이지)이지만 모두가 이주를 선택하지는 않는다(174 페이지)고 결론짓는다. 저자에 의하면 인간의 출생률 감소에는 기후변화라는 위협에 대한 사람들의 내재적 인식이 반영되었을 수 있다.   &nbsp;  저자에 의하면 지구의 다른 모든 호미닌의 멸종과 마찬가지로 호모 사피엔스의 존재가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궁극적인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는 현생인류가 그들보다 월등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보다 더 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네안데르탈인들은 떼로 몰려든 새 이웃에 밀려났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우주 식민지 개척이다.(198 페이지)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우주 식민 개척의 전제 조건은 지구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변하는 것이다. 이유는 현재 상태의 인류는 유전적으로 너무 취약해 우주라는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nbsp;  저자는 생명은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저 당장 죽지 않고 굴러갈 정도의 어설픈 땜질만으로도 40억 년을 버텨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광호흡에 대해 들어보자. 광호흡은 식물이 이산화탄소 대신 산소를 잘못 먹어 에너지를 낭비하는 현상이다. 광합성을 돕는 핵심 효소인 루비스코가 문제였다. 이 효소는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 과거 지구에는 산소가 없어서 구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nbsp;  날씨가 덥고 건조해지면 식물은 수분을 지키려 숨구멍(기공)을 닫는다. 잎 안에 산소만 가득 차자 루비스코가 산소를 덥석 붙잡는다. 그 결과 영양분 대신 독성 물질이 만들어진다. 식물은 이 독을 없애려고 여러 세포 기관을 돌며 오히려 에너지를 낭비한다. 루비스코의 오류는 광합성 오류다. 식물은 루비스코를 바꾸는 대신 오류가 나면 뒷수습을 하는 보조 공장(페록시좀, 미토콘드리아)을 옆에 새로 지었다. 저자는 식물의 광합성이 40억년에 가까운 어설픈 땜질의 결과라 말한다.(227 페이지)   &nbsp;  저자가 광합성이 어설픈 땜질의 결과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그 메커니즘을 설명하려는 것은 아니리라. 저자는 1) 완벽한 설계자(마스터플랜)는 없다, 2) 우연은 비극과 기적의 양면성을 낳는다, 3) 인간도 어설픈 땜질의 결과물일 뿐이다 등의 말을 한다. 광합성을 하던 남세균(시아노박테리아)이 지구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전자를 얻기 위해 주변에 흔한 물을 분해하다 보니 우연히 치명적인 독성 가스인 산소(O₂)가 뿜어져 나왔다.   &nbsp;  이 어설픈 시스템 부작용으로 당시 지구 생명체의 99%가 전멸하는 대산화 사건(Great Oxidation Event)이 일어났고, 지구 전체가 얼어붙었다. 우리가 누리는 산소 호흡은 그 재앙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돌연변이들이 만들어낸 '우연한 부산물'일 뿐이다. 각 종(種)은 자기의 생태적 지위를 창조하거나 건설한다. 생태적 지위는 아주 작을 수도 있고 아주 거대할 수도 있다.   &nbsp;  저자는 우주 식민지 개척을 원하는 이유로 옹호론자들이 제시하는 것들에는 실질적인 이유보다는 감상적인 이유가 더 많다고 말한다.(262 페이지) 왜 우주에 정착하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비합리적인 이유로 우주에 가려는 사람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은 아주 특별한 시간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길은 두 갈래다. 호모 사피엔스의 개체수가 급감하여 1만 년 이내에 멸종하거나 우주행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우주로 확장해 잠재적으로 수백만 년을 살거나.   &nbsp;  이것은 다음 세기, 늦어도 200년 안에 내려야 하는 결정이다. 만약 호모 사피엔스가 우리 종의 장기적인 미래를 심각하게 고민한다면 지금 당장 시작해도 이르지 않다.(266, 267 페이지) 모두(冒頭)에서 말했듯 저자는 [지구 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 책을 어떤 이유에서인지 읽지 못했다. [인간 제국 쇠망사]를 읽은 후 이후 가장 먼저 할 일은 [지구 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를 읽는 일이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단백질에 대한 책을 읽어야겠다.  &nbsp;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46/44/cover150/89729188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2464482</link></image></item><item><author>벤투의스케치북</author><category>페이퍼</category><title>지질학에서 유래한 개념들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07052</link><pubDate>Thu, 23 Jul 2026 09: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3054172/17407052</guid><description><![CDATA[“...습관으로 인해 다양한 가능성이 묵살되고 변화에 대한 저항이 커지게 된다. 습관은 일정한 시기의 문화적 생태를 떠받치는 두꺼운 지층으로 굳어지기도 한다. 위대한 창조는 그 묵직한 습관의 지층에 습곡과 변동을 일으키는 용암의 분출과 같다. 문제는 그런 분출이 일어나는 조건과 논리적 형식을 추론하는 데 있다.”(김상환 교수 [이야기의 끈] 244 페이지)  &nbsp;  “...하나의 산맥이 융기한 뒤에도 지각판은 끊임없는 활동 속에서 다른 산맥들을 만들어낸다. 산맥과도 같은 책들의 수직적 구조는 조각들을 연결하는 중심의 힘이 강력해 우리에게 커다란 세계를 열어준다. 지각의 중심적 힘이 모든 파편에 깃들어 있듯, 이런 책들은 일부만 읽어도 전체를 읽는 것과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이은혜 글항아리 대표 2026년 7월 22일 중앙일보)  &nbsp;  상당한 수준의 지질학적 지식을 문학 또는 이야기에 응용한 수준 높은 글이다. SF를 공상과학 소설이라고 말하는 한 문예평론가와 비교하면 한 눈에 수준을 알 수 있다. 픽션을 허구라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과학이란 말과 함께 쓰면 공상이라 말하는지 궁금하다. 지층이란 말은 지각변동, 화석화,&nbsp;빙하기, 진앙지, 샌드위치 구조 등과 함께 지질학에서 유래해 다른 분야에 쓰이는 개념들이다.   &nbsp;&nbsp;]]></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