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이 내 삶에 스며들 때 - 우리는 나다움을 찾으며 코치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김리은 외 지음 / 렛츠북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칭을 어떻게 이해하고 풀어나가야 할까? 누군가에게 유용한 지식을 전달해 발전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할까? '코칭이 내 삶에 스며들 때'를 접하며 한 생각이다. 각자 자신의 일을 가지고 있으며 차원이 다른 전문 분야인 코칭계의 구성원들이 코칭 이론을 자신에게 적용한 바를 담은 '코칭이 내 삶에 스며들 때'는 20인의 공저자가 둘로 나뉘어 한 부류는 코칭을 만난 후 체험한 자기 발견과 성장에 대해 기록하고 다른 한 부류는 10년 후 실현되기 바라는 바를 기록한 책이다.

 

소통과 리더십 전문 강사 김리은은 스토리텔러에서 스토리 마이너로란 소제목의 글을 선보였다. '스토리를 전하는 사람에서 스토리를 캐내는 사람으로'란 의미일 것이다. 이는 ‘읽는 사람에서 쓰는(짓는) 사람으로의 전환’이라는 모토를 닮았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읽기만 하는 사람에서 읽고 쓰는 사람으로 전환하는 것이라 해야 더욱 정확할 것이다.

 

금융 공기업 종사자 김만석은 코칭이 일상이 되는 세상을 꿈꾼다. 달리기 경험에 근거해 쓴 글이어서인지 이 분의 글이 나에게는 가장 역동적으로 다가왔다. 이 분이 언급한 코칭의 역사(스포츠 분야에서 시작해 라이프 분야로, 비즈니스 분야와 모든 커뮤니케이션 영역으로 확대)는 핵심이라 할 만하다.

 

Bloom Grow 연구소 대표 전백근은 독서의 힘을 언급한 데서 나아가 코칭이 자신의 삶 속에 소리 없이 스며들어와 변화와 성장이라는 선물을 주었다고 썼다. 책의 제목이 이 글에서 비롯되었으리라 보인다. 물론 모든 필자의 글이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그런 취지가 담긴 글일 것이다.

 

독자들은 본문 곳곳에서 코칭을 배운다는 표현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어떤가? 꾸준히 읽어오고 간혹 전문적으로 쓰지만 구체적이지 않았다. 두 분야(문화, 지질)에서 해설을 하는 나는 해설사가 된 지난 2016년 이래 꾸준히 주위의 지인들에게 해설은 어떻고 글은 어떻고 등의 말을 하곤 했다. 그런데 그런 나를 돌아보며 책을 읽고 나니 코칭은 어엿한 전문 분야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짓수 하는 코치/ 임상 심리사라는 흥미로운 프로필의 당사자 최인복은 코칭을 통해서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경험을 수없이 했고 내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떤 방식으로 다가서는지도 알게 되었다.’고 썼다. 코칭의 취지를, 코칭이 자신의 삶에 스며들 때의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

 

나는 이를 보며 정신분석가 카렌 호나이의 책을 떠올렸다. '내가 나를 치유한다'와 '나를 다 안다는 착각'이다. 미세한 차이를 염두에 두어야 하리라. 정신분석까지는 아니고 심리 상담과 공명하는 것이 코칭이 아닐지? 상담 역시 코칭처럼 대화(를 통한 소통과 약속, 신뢰, 기대)가 필수다. 그렇기에 벼랑 끝에 있던 나에게 희망을 주셨다는, 힐링이 되었고 길을 찾게 해주었다는 말을 들었다는 글(N게임사 HR 담당 국지혜의 글)은 상당히 희망적이다.(HR consultant 8 coach 박혁순이 쓴 코칭함에 있어서 주의할 점은 주목할 만하다. 1. 경청, 2. 판단하지 않기, 3. 마음 알아 차리고 공감하시, 4.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 믿어주기)

 

아우름 코칭 연구소, 동네 코칭 고현희의 글은 가장 문학적인 글이다. 존 던의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인용되어서만은 아니다. 필자는 17세기 영국 런던의 종(鍾) 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를 코치의 종이란 화두로 이어갔다. 마을에서 사람이 죽으면 치는 종 소리를 들은 하인이 귀족에게 누가 죽었는지 고하면 귀족은 장례식 참석 여부를 결정했다는 이야기다.

 

하인이 종 소리의 실상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고 고하는 것은 귀족의 부름을 받아서이거니와 존 던은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지니 그것은 그대를 위해 종이 울리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다. 필자는 코치는 삶의 어려움에 부딪힌 누군가가 도움을 구하는 심정으로 치는 종 소리를 듣고 그의 어려움에 동참하여 객관적, 수평적으로 함께 하는 '응원과 위로와 지지와 도움을 담아 치는 소리'의 종을 쳐야 한다고 썼다. 좋은 코치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필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기업교육 컨설팅 뉴브릿지에듀 대표 한유정은 가진 것을 나누는, 코치를 양성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썼다. 공동 프로젝트로 꾸린 책이 주는 역동성과 다채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로 수렴하는 주제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열정과 전문성이다. 진실된 개인의 삶의 면면들을 들은 것은 덤이었고. 코치 되는 법을 비롯 본문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비결을 전하는 부록을 통해서까지 많이 배울 수 있는 책이‘코칭이 내 삶에 스며들 때’다.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임에 갇힌 역사, 프레임을 깨는 역사
신유아 지음 / 혜안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레임(frame)은 틀, 액자 등을 의미한다. 프레이밍(framing)이란 사진을 찍을 때 대상을 파인더의 테두리 안에 적절히 배치해 화면을 구성하는 일을 의미한다. 이는 신유아의 '프레임에 갇힌 역사 프레임을 깨는 역사'를 읽을 때 필요한 최소의 앎이다. 저자는 역사는 어떤 시각으로 어느 면을 보느냐에 따라 허구를 섞지 않은 사실만 가지고도 전혀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32 페이지) 이는 저자가 우리 역사를 우리의 눈으로 보자는 취지로 한 말이다. 우리 눈으로 우리 역사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이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 하다.

 

저자가 제시한 바에 따르면 국사에는 우리 시각으로 보았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한계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이는 저자가 15년간 고교 역사 교사로 근무하며 국사와 세계사를 복수로 가르친 결과 알게 된 사실이다.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었다. 제목 그대로 프레임에 갇힌 역사와 프레임을 깨는 역사다. 개인적으로 목차에서 흥미롭게 보게 된 것이 몇 있다. 객관과 실증에 대한 강박, 성리학의 역할, 당쟁, 예송(禮訟), 골품제도의 위력, 과거시험의 위력, 역사 발전의 의미와 동력 등이다.

 

책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것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역사를 전근대와 근현대로 나누는 것은 문제라는 사실이다. 저자에 의하면 근대에 대한 맹신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부작용의 최고봉은 식민지근대화론이다. 근대가 지체된 것에 대한 우리의 과도한 죄책감은 식민지와 근대화라는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만나게 했다.(55 페이지) 책은 저자의 경력(국사와 세계사를 함께 가르친)을 반영하듯 세계사와 우리 역사를 넘나드는 방식의 서술로 일관한다. 물론 중심은 우리 역사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바른 길을 제시하는 데에 놓여 있다.

 

저자는 개인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과거에 근거 없는 한계를 설정하여 서양과 똑같은 역사를 갖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역사교육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67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랑케식의 실증과 객관에 대한 강조는 우리나라의 역사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73 페이지) 이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역사학자들이 우리에게 전파한 것일 수도 있고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유교적 합리주의가 랑케의 객관적 실증주의를 만나 시너지를 일으킨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나라 역사 기록의 성격과 유럽의 그것이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유럽의 역사 기록 가운데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전언과 구전에 의한 기록, 음유시인들의 노랫말에 상상을 더한 기록이 많았지만 그들은 이런 기록을 바탕으로 해서라도 과거의 일을 최대한 밝힐 수밖에 없었다.(73 페이지) 랑케가 객관적 사실만을 기록하라고 강조한 것은 이런 사정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사실(史實)의 객관성과 정확성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대의 기준에 비추어 합리적이지 않다거나 중국 등 다른 나라의 역사 기록과 차이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불신하고 우리의 역사 기록을 믿지 않으려는 태도는 재고해 보아야 한다.(76 페이지)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실증에 대한 강박에 의해 우리 역사 연구에서 역사적 상상력이 사실상 퇴출된 것이다. 저자는 신라의 삼국통일을 한계로 보는 시각에 대해 재고할 것을 요청한다. 저자에 의하면 신라가 당과 손잡고 대동강 이북 영토를 당에게 넘겨주기로 한 것은 (중국의 사서를 통해 증명되지는 않지만) 역사적 사실일 것이다. 저자가 말했듯 신라가 당과 손을 잡지 않았다면 아마도 신라는 망했을 것이며 본래 신라의 영토도 아니었던 대동강 이북의 땅을 잃지 않기 위해 당과의 동맹을 고려하지 않고 자국을 멸망으로 이끄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81 페이지)

 

저자는 우리가 우리 역사를 박(薄)하게 보는 것의 배경을 논한다. 유교적 합리주의와 실증주의 역사학의 잘못된 만남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일제가 강요한 식민사관(타율성론, 정체성론, 당파성론)에 상당한 혐의가 있다고 말한다.(85 페이지) 저자가 말했듯 역사 인식에 있어서 자가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모든 인류를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역사를 누구의 시선에서 보려고 노력해왔는지에 대해 돌아볼 때도 되었다.(87 페이지)

 

저자는 성리학에 의해 조선이 창업되었으니 성리학에 의해 망했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성리학에 의해 백성들의 실생활과 상관 없는 논쟁이 벌어지고 그로 인해 정파가 갈려 무익한 정쟁을 일삼으면서 조선이 줄곧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는 시각은 익숙하다. 서인에 의한 반정(反正)이 과연 명(明)에 대한 의리와 폐모살제를 규탄하는 성리학적 명분 때문에 일어난 일인지 광해군의 대북(大北) 정권에 반발한 서인들이 이러한 명분을 이용하여 정권 탈환에 나선 것인지는 잘 따져 보아야 한다.(90 페이지)

 

한 마디로 서인세력은 광해군을 내몰기 위해 적절한 명분을 이용했을뿐 단순히 성리학적 사고에 사로잡혀 반정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91 페이지) 저자는 서인 정권이 인조반정 이후 명에 대한 의리를 무리하게 주장하여 병자호란이라는 위기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도 서인이 사대주의의 화신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입장을 달리 함으로써 반정의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하게 되면 정권을 지킬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결과로 본다. 저자에 의하면 성리학은 인간의 선악과 시비에 대한 분별력이 왜 차이가 나는지에 대해 알고 인간의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교화하는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고 생각했다.

 

성리학은 현실에 존재하는 무수한 사회문제를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또 그 해결을 지향했던 학문이었다.(95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주기론(主氣論), 주리론(主理論)은 식민사관을 주장했던 다카하시 도루가 조선의 성리학을 깎아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한 잘못된 용어다. 이황은 이(理)가 스스로 동(動)할 수 있다고 보아 인간 스스로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보았고 이이는 그렇지 않다고 보았다. 이런 전제하에서는 인간 심성이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하게 믿었고 이황의 학맥을 이은 동인(東人; 후에 남인과 동인으로 분기)은 군주에 대한 기대가 크고 마음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큰 편이었다.(외형적 제도나 물질적인 측면의 변화보다 인간 심성의 변화에 의존하는 정도가 더 클 수밖에 없는 인간관을 가졌다.)

 

이이에게 인간의 선악은 기질의 차이에서 비롯된 당연한 것이었고 인간이 도덕적이지 않다는 사실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이의 학맥을 계승한 서인은 인간을 성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 자체의 도덕적 변화 가능성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고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황과 이이는 모두 선조에게 성인이 될 것을 주문했다. 사람이 마음먹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군주의 심술(心術)에만 의존하려는 성향은 남인의 패인이었다.(102 페이지) 남인은 왕권을 견제하기보다 강화하는 쪽에 서는 경우가 많았다. 남인 가운데 실학자로 분류되는 인물들은 뒤늦게나마 다방면에 걸친 제도 개혁을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부정하지 않았다.(104 페이지)

 

저자는 예송에 대해 중종 이후 줄곧 수세적 위치에 있었던 왕권이 효종 대의 북벌, 현종 대의 예송을 통해 다시 성장하기 시작해서 숙종 대의 환국을 통해 크게 강화됨으로써 영조와 정조 대의 중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역사적 사실에 더 가깝다고 썼다.(125 페이지) 역사를 편견 없이 읽으려 한 결과 예송에 대해 긍정적 시각을 제시한 모범 사례로 기록될 부분이다. 물론 저자의 시각은 왕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중세사회에서 왕의 위상에 대해 신하들이 왈가왈부했다는 것 자체가 역사의 발전인 바 그 부분에 예송의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쓴 ’한국사 속의 한국사 2; 조선왕조 500년‘과 비교할 만하다.

 

긍정적인 시각이라는 점은 같지만 전자는 왕권 강화에 초점을 두었고 후자는 신하들이 왕권에 대해 왈가왈부했다는 점이 발전이라는 말을 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관건은 짧게 제시된 저자의 글을 내 나름의 근거와 논리로 보강해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재미 있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효종과 현종대에 있었던 서인과 남인의 충돌이 계기가 되어 국왕의 역할이 계속 확대되었다고 썼고(126 페이지) 숙종 대에는 왕권이 강화되었고 황해도와 평안도까지 대동법이 전국적으로 실시되었으며 인구와 경지 면적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였으며 국경 수비 시설에 대한 보수 공사도 활발히 진행되어 말 그대로 부국강병이 이룩된 시기였으며 신분 상승 가능성도 효종 대의 19%보다 높은 30%대로 뛰어오른 시기라 썼다.(128 페이지)

 

또한 영조는 쌍거호대(雙擧互對) 원칙을 내세워 하나의 부서에 노론과 소론, 때로는 남인까지도 고루 등용하는 정책을 폈다고 썼다.(129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영조는 무신란(戊申亂;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노론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같은 소론 온건파에게 진압을 맡김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탕평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129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정조 대에는 경지면적과 인구, 신분 상승의 가능성이 더욱 확대되었다.(136 페이지) 덧붙여 저자는 정조 대의 발전은 정조의 치세에 독자적으로 이루어진 정치 개혁의 결과라기보다 현종 대부터 시작되었던 역사의 상승 국면이 꽃을 피운 결과라는 말도 했다.

 

저자는 정조 말년의 수원 화성 축조 등으로 인한 재정 부담이 그의 사후 세도정치의 단초가 된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논의할 부분은 ’인간의 역사에서 정치, 사회, 경제, 문화는 서로 분리되어 움직였던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다. 모두 상호작용을 해 왔고 어느 한 가지 요소도 절대적인 원인으로서 선행하지 않았다.‘(8 페이지)는 말이다.

 

책에는 흥미로운 부분이 꽤 있다. 정조가 말년에 시행한 수원 화성 축조 등으로 인한 재정 부담 가중으로 그의 사후 세도정치의 단초가 되었다는 글(136 페이지)이 그렇다. 현실인식이 잘 된 광해군이 아무 이유 없이 궁궐 공사 등으로 재정을 낭비했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고 보며 당시 광해군은 모문룡에 대한 지원 등 명의 과도한 요구를 물리치기 위해 궁궐을 지어 국가재정을 다 써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는 글(91 페이지)도 그렇다.

 

저자는 ’인간의 발전을 물질적 측면의 변화로 판단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라고 묻는다.(139 페이지) 저자는 ’산업과 과학기술의 발달은 풍요로운 삶의 토대일뿐 인간의 삶을 진정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은 처음부터 인간 자신일 수밖에 없었던 것을 아닐까?’라고 묻는다.(141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역사 발전의 동력은 인간이 자유를 더욱 확대하고자 하는 욕구로부터 제공되고 자유의 확대는 이성과 합리가 더욱 증대된 시스템에 의해 가능하다.(143 페이지) 욕구 실현의 기회가 오직 혈통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지배층으로 태어난 이들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대다수의 피지배층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계급 또는 신분을 세대마다 새롭게 실력 대결을 통해 결정하려고 하면 그 집단은 몇 세대 이상 존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기들끼리의 경쟁으로 인해 외적의 침입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147 페이지) 부모의 능력이 자손에게 고스란히 유전될 가능성이 많지 않다. 절대 다수의 인간들은 유전자가 보증하는 것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여간해서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신분 세습을 내면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종교가 제시하는 전생 또는 내생에 대한 믿음이다. 국가 권력을 장악한 지배층은 자신들의 특권적 지위를 계속해서 누리기 위해 어떻게든 국가의 수명을 늘려야만 했고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제공하는 것이 학문의 역할이었다.(149 페이지)

 

능력이라는 개념으로 고려(高麗)라는 국가에 대해 풀어보자. 광종 대에 과거 제도를 도입한 고려(163 페이지)의 건국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려 왕조의 건국은 흔히 고대사회에서 중세사회로의 전환이라고 평가된다. 골품제도가 폐지되고 능력에 따라 출세할 수 있는 사회로 한 단계 발전하였기 때문이다.(163 페이지) 과거(科擧)는 송(宋)에도 변화를 초래했다. 과거제가 세습적 특권을 단절시키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게 되면서 송의 지배층은 더 이상 귀족이 아닌 유교 경전을 공부한 사대부(士大夫)로 바뀌었다.(162 페이지) 송의 과거는 황제가 최종시험을 직접 주관함에 따라 황제권이 크게 강화되었다.

 

송 대의 과거제가 초래한 결과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철저한 관료제의 확립이 황제권을 비대하게 만들어 환관에 의한 측근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 기회를 가진 모든 구성원이 신분 상승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송 대에 화약과 나침반이 발명되고 과거 시험의 수험서를 인쇄하는 과정에서 인쇄술이 크게 발전하는 등 문화가 융성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212 페이지) 귀족 출신에게 유리했던 과거제가 송 대에 들어와 더욱 합리적으로 바뀐 것은 당말 5대 10국의 항쟁 과정에서 귀족 세력이 대부분 몰락했기 때문이다. 가문의 영향력이 배제된 상태에서 오직 개인의 실력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완전한 형태의 과거제가 시행될 수 있었고 국가의 중심세력도 귀족이 아닌 사대부 계층으로 바뀌었다.(211 페이지)

 

과거제의 시행은 왕건에게 협조하여 나라를 세운 호족세력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태어나는 동시에 보장되었던 여러 가지 특권들이 시험을 통과해야만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바뀔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164 페이지) 광종은 쌍기를 지공거(知貢擧)에 임명했다. 쌍기는 그가 주관한 두 번째 과거 시험에서 서희를 진사 갑과로 뽑았다.(165 페이지) 서희는 소손녕과의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은 인물이다. 강동 6주가 고려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서희가 거란에 땅을 떼어주기보다 소손녕과 담판을 할 것을 주장한 것은 그가 광종 대에 과거에 합격하여 송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거란과 송의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했기 때문이다.(166 페이지)

 

소동파가 고려 사람들을 미워한 데에도 고려, 송, 거란의 역학 관계가 깔려 있다. 거란의 3차 침입 때 강감찬이 대승을 거둔 곳도 강동 6주에 속한 귀주성이었다.(168 페이지) 13세기 세계 대제국을 건설한 몽골과의 수십 년에 걸친 전쟁에서도 강동 6주는 고려에게 빛나는 승리를 안겨주었다. 광종 대에 처음 제정된 과거제는 현종 대에 이르러 더욱 체계적으로 정비되었다. 지방의 인재들도 넓게 응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관직에 진출하는 것이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로 여겨지면서 고려는 빠르게 문관 위주의 사회로 재편되어 갔다. 서희, 윤관, 강감찬, 김부식은 모두 문관 출신으로서 군사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했다.(170 페이지)

 

이런 이유 때문인지 고려 정부는 전시과를 개정하여 무관들에 대한 대우를 조금 개선하는 것 외에 무관 출신이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후 고려 조정은 무관 출신에 대한 홀대로 인해 무신정변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고려에서 무관에 대한 대우가 문관에 비해 낮았던 데에는 송의 문치(文治)적인 정치문화의 영향도 있었다. 과거제는 개인의 실력으로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으나 폐단도 낳았다. 과거시험을 주관하는 지공거가 자신이 합격시켜준 사람들과 좌주(座主) - 문생(文生) 관계를 이루면서 이들이 정치세력화한 것이다.

 

거란의 1차 침입 당시 활약한 서희, 여진족을 막은 윤관, 묘청의 난을 진압한 김부식, 공민왕 대 정치 개혁의 주역인 정몽주와 정도전, 권근, 조준 등은 모두 과거 급제자 출신이었다.(172 페이지) 정도전은 혈통에 의해 세습되는 왕이 직접 정치를 하는 것보다 무수한 경쟁을 뚫고 자신의 실력으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온 재상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왕조국가 체제하에서 나오기 힘든 대단히 합리적인 발상이었다.(181 페이지) 조선 개국은 단지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가 무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 급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합리적 개혁을 통해 사회경제적 모순을 해결함으로써 민심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했다.(180 페이지)

 

사회경제적 모순이란 과거제도는 지공거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고 토지는 권문세족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탈점(奪占)되어 있었음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178 페이지) 인재 선발과 관직 승진 제도에서 조선이 고려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인재를 등용할 때 출신 가문보다 개인의 능력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 데에 있다. 가난한 농민들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과거 시험에 합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도 조선이 양반 중심의 사회였다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일종의 편견에 가깝다.(183 페이지)

 

당시 피역(避役) 수단으로 치부되기도 했지만 조선시대 지방의 공립학교였던 향교에는 일반 양인 출신들이 다수 등록되어 있었고 향교에서는 국가의 비용으로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학비가 별로 없었다. 농사철에는 방학을 하고 추수 뒤에 개학했기 때문에 농민의 자제도 충분히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런 사정 때문에 향교에서는 일반 농민의 자제가 많이 다녀서 지방 양반들은 자제를 서원에서 별도로 교육시키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 후기에 서원이 남설(濫設)된 데에는 이런 사정도 있었다.

 

조선이 중농억상(重農抑商) 정책을 취해 제도적으로 농민만 우대하였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농민의 경우 농한기에 과거에 합격하는 경우가 많아 잠재적 관료 후보군으로 여겨져서 사회적으로 우대받았던 것이고 상업과 수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응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에 사회적 인식이 농민과 달랐던 것이다.(184 페이지) 현종 대는 예송 말고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이 없는 시기인데 신분 상승의 가능성과 인구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193, 194 페이지)

 

과거제도를 더욱 합리적으로 정비하려는 노력은 조선왕조가 지속된 전 기간에 걸쳐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과거 시험을 시부(詩賦)에서 유교 경전과 정치 현안에 대해 의견을 묻는 대책(對策)으로 바꾸어 나가려는 시도는 이미 고려 말 이제현에 의해 시작되었다. 원의 간섭으로 국가가 어려운 상황에서 옛 고전 문학작품을 시험 쳐서 인재를 뽑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196 페이지) 한영우 교수는 조선왕조가 500년 이상 장수한 비결은 지배 엘리트인 관료를 세습적으로 보장하지 않고 능력을 존중하는 시험제도인 과거로부터 부단하게 하층사회에서 충원했기 때문이라고 하며 조선 정부가 공부를 열심히 하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탄력적인 사회를 유지하려 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신분제 사회에서 조선왕조에서 소위 개천 용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왕조가 지속된 전 시기에 걸쳐 평균 30%를 훌쩍 넘고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에는 40-50%를 넘나들었다는 것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적인 사실이다.(202 페이지)

 

저자는 역사 발전은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기 위한 사회적 합리성이 확대되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적 합리성을 확대하는 길의 전부는 관직 등용의 기회를 넓히는 것이 아니다. 세제의 합리적 개선을 통해 경제적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것도 구성원들의 자유 획득에 대한 의지를 제고하는 좋은 방법이다.(221 페이지)

 

저자는 개인의 실력에 의해 경쟁하는 시험이 폐지되고 경제력에 의해 개인의 미래가 좌우되는 제도가 점점 더 늘어나고 그것이 더 발전한 제도인 척 우길 수 있는 까닭은 서양에서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225 페이지) 우리는 경제적으로 궁핍해도 개인의 능력만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주었던 시대를 이미 거쳐왔다. 재산 축적의 기회가 보장된 사회단계보다 한 단계 더 진전되어 경제력이 없어도 개인의 실력만으로 더욱 포괄적인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었던 역사적 경험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다.(225 페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근 몇 해 사이에 산 과학책들 가운데 아직 읽지 못한 것들이 꽤 있다. 찰스 코겔의 생명의 물리학, 김우재의 과학의 자리, 박문호 박사의 빅 히스토리 공부, 로버트 비숍 외의 기원이론, 랠프 스티얼리 외의 그랜드 캐니언, 오래된 지구의 기념비 등이다. 이렇게 목록을 작성하는 것은 콜린 스튜어트의 시간 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물리학을 읽은 자신감에 기인한다. 친구가 루이스 다트넬의 오리진(지구는 어떻게 우리를 만들었는가)을 읽고 있으니 기원이론을 읽어야 할 것 같다. 


제리 코인의 지울 수 없는 흔적, 임택규의 아론의 송아지 등 노아 홍수론(격변론)의 오류를 파헤친 책을 읽었으니 노아 홍수가 그랜드 캐니언을 설명할 수 있을까?란 부제를 가진 그랜드 캐니언, 오래된 지구의 기념비를 읽어야겠다. 그런데 역사 책은 언제 읽고 지질학 책은 또 언제 읽지? 기도도 해야 하고 잠도 자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간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물리학 - 세계적인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알려주는 시간에 대한 10가지 이야기
콜린 스튜어트 지음, 김노경 옮김, 지웅배 감수 / 미래의창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문학과 물리학을 주제로 글을 쓰고 강연하는 세계인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쓴 책이다. 시간 여행을 주제로 참신한 문학적 비유와 새로운 과학 지식을 선보인 인상적인 책이다. 저자에 의하면 시간은 과학계의 가장 오래된 불가사의이며 가장 오래된 신비다. 물리학자들은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9 페이지)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하루의 기준인 지구 자전도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가령 2011년 태평양에서 일어난 진도 9.1의 지진으로 일본에서 가장 큰 섬인 혼슈섬 전체가 2미터 이상 움직였다. 이 사건으로 지주 자전 속도가 빨라져 180 만 분의 1초만큼 하루가 줄어들었다. 4억 3천만년전에는 하루 길이가 채 21시간이 안 되었다. 1년은 420일이었다. 이는 나무의 나이테라 할 산호의 성장선을 보고 알아낸 바이다.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면서 모든 컴퓨터가 같은 시간 시스템을 사용할 필요가 생겼다. 현재 1초는 우주를 구성하는 작은 요소인 원자를 기준으로 산출한다. 탄소를 활용한 연대 측정법이 유명하다. 탄소 12는 양성자 6, 중성자 6개로 구성되었다. 이는 안정적이다. 탄소 14는 양성자 6개, 중성자 8개로 구성되어 불안정하다. 탄소 14는 중성자 1개를 양성자로 바꾸어 안정적인 질소 14(양성자 7개, 중성자 7개)가 된다. 이를 붕괴라 한다.

 

탄소 14 원자들 중 절반이 질소 14로 붕괴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 이를 반감기라 한다. 5730년이다. 너무 먼 과거의 것들은 남아 있는 탄소 14의 양이 적어서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없다. 탄소 함량이 높지 않은 무생물의 나이는 측정할 수 없다. 지구 자체의 나이를 측정하려면 탄소보다 훨씬 느리게 붕괴하는(반감기가 훨씬 더 긴) 원자가 필요하다. 우라늄이 제격이다.

 

소행성은 행성이 만들어지고 남은 구성물이다. 이를 측정한 결과 소행성의 나이는 지구 나이와 비슷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주에서 빛은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빛이 이동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이는 지금이라는 개념을 일관되게 정의할 수 없다는 의미다. 우리는 항상 과거만 볼 수 있을뿐 현재는 절대 볼 수 없다.

 

저자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이야기한다. 즉 우리가 보는 무려 250만 광년 거리의 안드로메다의 빛은 250만년전 인류의 먼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처음으로 돌로 도구를 만들기 시작할 때 출발했다. 최초의 인간 종인 호모 하빌리스는 30만년전에 나타났다. 저자는 양동이 비유를 한다. 망원경이 하나의 양동이라면 별은 빛이라는 공을 모든 방향으로 발사한다. 그 별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다면 아주 큰 양동이가 없어도 많은 공을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으나 별에서 멀어질수록 물체를 보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서 더 큰 양동이가 필요하다.

 

물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방정식은 어느 방향이든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공이 공중에서 직선으로 날아가는 영상의 경우 촬영된 순서대로 재생되는 것인지 거꾸로 재생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반면 바닥에 머그잔이 부딪히는 영상이라면 원 방향인지 아닌지 바로 알 수 있다. 깨진 잔은 스스로 고쳐지지 않고 깨진 머그 컵은 저절로 다시 붙지 않는다. 깨진 계란은 원래 모양으로 돌아갈 수 없고 사람은 젊어지지 않는다. 시간은 화살처럼 흐른다.

 

우주가 정확히 어떻게 엔트로피가 매우 낮은 상태로 시작되었는지는 천문학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미스터리다.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 이야기도 주목할 만하다. 1919년 그는 서아프리카 프린시페섬으로 여행을 떠났다. 일식을 사진으로 찍어 태양에 가까운 별의 위치를 측정하기 위해서였다. 태양이 별빛을 휘게 하는 중력렌즈 효과를 관측하기 위해서였다. 일식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간 것은 태양이 매우 밝기 때문에 평소에는 태양과 가까이 있는 별을 볼 수 없어서였다. 다시 말해 달이 태양 빛을 차단하는 일식 기간에는 태양 가까이의 별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은 태양의 중력이 주위의 먼 별빛을 휘게 할 것이라 예측했다. 이 때문에 태양 바로 뒤의 별이 태양 옆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에딩턴의 촬영으로 별들이 정확히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에딩턴은 시공간이란 개념을 만든 학자다.

 

침대 시트는 시공간, 중앙의 볼링공은 태양이라 가정하자. 볼링공은 시트를 눌러 움푹 파이게 한다. 이 볼 위에 테니스공을 추가하면 공은 파인 곳의 가장자리로 굴러간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처럼 테니스공으로 하여금 볼링공 주위를 돌게 할 수 있다. 매우 중요한 점은 이 두 공 사이에 뉴턴이 말한 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은 공이 큰 공에 의해 당겨지는 것이 아니라 시트에 생성되는 곡선 경로를 따라 갈 뿐이다. 이것이 중력의 원리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직관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돌멩이를 물에 던지면 연못에 잔물결이 일어나는 것처럼 시공간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바깥쪽으로 움직이는 파동을 생성하리라고 예측했다. 이것이 중력파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이론을 처음 발표한 지 정확히 100년이 지난 2015년 발견되었다. 중력파는 시공간 자체를 주름지게 한다. 공간과 시간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공간이 구부러질 수 있다면 시간도 구부러질 수 있다. 공간뿐 아니라 시간도 여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래로의 시간 여행은 시간 지연(시간 팽창) 효과에 달려 있다. 이 효과 때문에 속력을 높일수록 미래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다. 우리는 시간 지연 효과에 의존하고 있다. GPS가 그 예다. 한 번에 원자 시계가 탑재된 여러 위성을 사용하여 신호가 돌아오는 시간을 비교하면 GPS가 우리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다. 위성의 원자시계는 국제 우주 정거장의 절반이라는 엄청난 속도로 지구 주위를 돌기에 시간 지연 현상이 생겨 우리 핸드폰의 시계와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GPS의 원자시계를 조정하여야 한다.

 

단 시간 지연은 편도 승차권이다. 우리가 머물렀던 과거의 장소와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시간 지연을 통한 미래 여행은 시간의 화살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빨리 감기 버튼을 눌러 미래에 더 빨리 도달하는 것일 뿐이다.(92 페이지) 볼링공으로 인해 움푹 패인 침대 시트 부분을 중력 우물이라 한다. 시공간은 중력 우물 바깥보다 안에서 더 구부러지고 왜곡된다.(96 페이지)

 

젊은 별(항성)은 별을 무너뜨리려는 무지비한 중력과 그 반대 방향으로 맞서고 있는, 중심핵에서 생성되고 방출되는 별빛 사이의 섬세한 균형으로 존재한다. 별은 언젠가는 결국 비축된 연료를 모두 소진하고 빛을 내는 것을 중단한다. 이는 항성 물질이 매우 조밀한 물체로 수축되는 결과를 낳는다.

 

중성자별을 떠올릴 수 있다. 중성자별의 깊은 중력 우물 속에서 무사히 밖으로 빠져나오려면 빛의 속도의 절반에 가깝게 빨리 여행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작은 면적에 더 큰 질량이 있을수록 시공간이 더 크게 휜다. 무한히 작고 조밀한 점인 특이점에서 시공간은 무한히 작은 점으로 뭉쳐 있고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은 잘 어울리지 않는 사이다. 두 이론이 조화하기 어려운 원인의 핵심은 매끄러움에 대한 근본적인 불일치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공간은 매끄럽고 연속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 반면 양자물리학은 모든 것은 비연속적인 덩어리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가령 빛은 광자라는 에너지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책을 예로 들어 설명을 한다. 가령 책은 양자물리학의 규칙을 따르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책을 허공에서 놓으면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설명한 대로 바닥에 떨어진다. 웜홀로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 시공간을 종이에 비유하자. 시공간이 조작되고 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종이를 반으로 접으면 갑자기 목적지가 상당히 가까워진다. 종이의 양 끝을 연결하는 터널이 있다면 순식간에 갈 수도 있다. 웜홀이 바로 그 터널이다.

 

저자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정의의 이름으로 히틀러를 죽일 수 있을까? 묻는다. 어린 시절의 히틀러를 처형하면 그는 나치 지도자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러면 히틀러는 그런 끔찍한 일들을 할 수 없게 되고 우리는 학교에서 그에 대해 배우지 않게 되므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저자는 예정 역설에 대해 논한다. 만일 당신의 집에 불이 나서 화재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과거로 가서 조사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조사를 하던 도중 당신은 실수로 촛대를 넘어뜨려 커튼을 불태웠다. 놀라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다가 불현듯 무언가 깨닫는다. 바로 당신이 화재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촛대를 넘어뜨리지 않으면 화재가 발생하지 않고, 그러면 화재의 원인을 조사하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도 없다. 따라서 당신은 그 촛대를 반드시 넘어뜨려야 하는 운명이었다.

 

미래는 정해져 있고 그것을 막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불가능해진다. 둘 다 가질 수는 없다. 저자는 중력은 실제로는 끌어당기는 힘이 아니지만(구부러진 시공간의 결과다) 대부분 그런 식으로 상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시간은 유용한 환상이 아닐지?

 

저자는 시간이란 그저 우리 머릿속에만 존재했던 것으로 밝혀질 수 있다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이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책이 우주 속의 여러분의 위치를 조금 다르게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이 책은 뒤로 갈수록 어려워지는 책이다. 아니 종결 부분에서 다소 어렵다.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읽어야 할 것 같다. 사이토 가쓰히로의 ’머릿속에 쏙쏙! 상대성이론 노트‘를 읽어야 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울 수 없는 흔적 - 진화는 왜 사실인가
제리 코인 지음, 김명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꽤 진지하면서도 흥미롭고 유익한 진화생물학 책이다. 저자 제리 코인은 초파리를 주된 연구 대상으로 하는 진화생물학자다. 리처드 르원틴의 제자다. 부제는 ‘진화는 왜 사실인가‘다. 저자는 자신의 책에서 유전학, 고생물학, 지질학, 분자 생물학, 해부학, 발생학 등 현대의 여러 연구를 하나로 짜깁기할 것이라 말한다.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이 책은 10년전부터 서재에 꽂아두고서도 읽지 않았던 또는 못했던 책이다. 읽지 못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한 기독교인이 쓴 창조론과 지적설계론 등 반진화론 진영의 주장을 가차 없이 공격한 책에 소개된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상적이게도 진화론을 인정한다고 해서 자포자기하는 허무주의자가 될 필요도 없고 삶의 목적과 의미를 빼앗길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진화가 반드시 무신론을 진작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의 책은 무신론, 하면 생각나는 리처드 도킨스 등과 생각의 결을 달리 한다.

 

대륙 이동설의 메커니즘이 판구조론이듯 진화의 메커니즘은 자연선택이다. 저자에 의하면 진화의 특성인 점진주의가 종이 늘 일정한 속도로 진화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 종도 진화적 압력이 강해졌다 약해졌다 함에 따라 진화 속도가 빨라졌다 느려졌다 한다. 종은 유전자를 교환하는 집단을 말한다. 따라서 종이 분화한다는 것은 유전자를 교환하지 못하는 집단이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진화, 하면 다윈을 빼놓을 수 없다. 다윈 이전에도 진화는 있었다. 다윈에게는 유전적 지식이 없었다. 다윈과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는 자연선택 이론을 같은 시기에 생각했다. 다윈은 선택의 개념을 상술하고 증거를 대고 여러 의미를 탐구했다. 월리스는 찰스 라이엘과 같이 진화 개념은 승인하면서도 자연 선택이 인간의 고차원적인 정신적 재능을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은 믿지 않았다.(273 페이지)

 

인간의 고환 발생 프로그램은 어류와 가까웠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자연선택은 이처럼 완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전 것을 개량한다. 같은 차원에서 저자는 진화적 변화는 거의 언제나 옛것을 새것으로 개조하는 과정이라 말한다.(89 페이지) 생물학자들은 진화를 인정했으면서도 그것의 원인이 다른 데 있을 것이라 생각하다가 한참 후 자연선택을 인정했다. 저자는 과학에서 이론은 사물의 방식에 대한 하나의 추론 그 이상이라 말한다.(41 페이지) 그것은 수많은 엄밀한 진술들의 집합이다.

 

생물학 진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석이라 할 수 있다. 화석 생성 과정은 단순 명쾌하지만 굉장히 특수한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한다. 동식물의 유해가 물에 빠져 바닥으로 가라앉아야 하고 금세 침전물에 덮여야 한다. 유해가 묻히면 골격의 단단한 부분에 용해 미네랄이 침투한다. 또는 아예 미네랄이 그 자리를 대치한다. 결국 생물체의 주형(鑄型)만이 남고 계속 그 위에 쌓이는 침전물의 무게에 짓눌려 주형은 돌로 굳는다. 생명 역사에서 80 퍼센트가 넘는 기간은 모든 종이 부드러운 몸을 가지고 있던 시기였다. 화석은 끊임없는 지각 이동, 접힘, 열기 압력을 견디고 살아 남아야 하고 사람에게 발견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화석은 땅 속 깊숙이 있어 우리 손이 닿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최초에 화석 기록을 순서대로 정렬한 사람은 진화론자가 아닌 창조론자인 지질학자들이었다. 어려운 점은 화석은 보존되지만 환경은 보존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어떤 두 집단이 공통 선조에서 유래했음을 보여 주기 위해 반드시 그 공통 선조의 화석을 찾아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한다.(67 페이지) 중요한 점은 그 화석이 지질학적으로 올바른 연대에 등장했음을 말해주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같은 차원에서 우리와 유인원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가 발견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 말한다.(275 페이지)

 

저자는 많은 종들의 불완전한 설계는 전능한 설계자의 표시가 아니라 진화의 표시라 말한다.(93 페이지) 진화 이론은 흔적 기관의 속성에 아무런 기능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기능이 없어서 흔적 기관이 아니라 원래 진화의 목적이었던 그 기능을 더는 수행하지 않아서 흔적 기관이다. 인간의 꼬리뼈는 대표적 흔적 기관이다. 기능하지 않는 유전자를 유사 유전자라 한다. 인간의 유사 유전자 중 가장 유명한 것은 GLO다. 거의 모든 포유류는 비타민 C 합성 경로를 가지고 있다. 모든 영장류의 선조가 비타민 C 생성 능력을 망가뜨리는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자손들에게 전달되었다.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기니피그, 과일 박쥐 등이 비타민 C를 체내 합성하지 못한다. 인간도 그렇다.

 

인간의 GLO 유전자 서열은 침팬지와 굉장히 비슷하고 오랑우탄과는 차이가 있다. 기니피그의 서열은 영장류와는 전혀 다르다. 먼 친척끼리보다 가까운 친척끼리 DNA 서열이 더 비슷하다. 인간은 다른 종의 죽은 유전자도 품고 있다. 바이러스가 그것이다. 내생성 레트로 바이러스는 자신의 게놈을 복사한 뒤 숙주종의 DNA에 끼워넣는다. 바이러스가 정자나 난자를 만드는 세포를 감염시키면 미래 세대에게 전달될 수 있다. 인간의 게놈에는 그런 바이러스가 수천 개 존재한다. 대부분 돌연변이로 무해하게 변했다. 이는 고대에 우리 선조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흔적이다. 일부는 인간과 침팬지의 염색체에서 정확하게 같은 위치에 존재한다. 만일 바이러스가 두 종에 독자적으로 삽입되었다면 정확히 같은 위치에 끼어들 확률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공통 선조를 강하게 암시하는 증거다.

 

우연성과 법칙성의 독특한 상호 작용을 파악하지 않고는 진화를 이해할 수 없다.(161 페이지) 우연성은 중요하다. 동식물의 확산은 바람, 해류, 이주 기회 같은 예측불허의 변덕스러움에 달렸다. 하지만 법칙성도 있다. 진화 이론이 예측하는 바 새롭고 텅 빈 서식지에 도착한 동식물은 그곳에서 진화하며 번성할 것이고 새로운 종을 형성할 것이고 빈 생태 지위(Niche)를 메울 것이다. 자연 선택에 의한 적응이 이루어지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시작 집단에 변이가 존재하기. 둘째, 변이의 일부는 유전자 변이에서 기인하기. 셋째, 유전적 변이 때문에 개체의 후손을 남길 확률이 바뀌기 등이다.

 

유전적 변이는 돌연변이에 의해 생긴다. 이는 DNA 서열이 우연히 바뀌는 것으로 보통 세포 분열 도중 DNA 복사에서 실수가 생겨 일어난다.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이다. 무작위적이란 개체에게 주는 유용성과 무관하다는 의미다. 진화에서 모든 것은 우연히 벌어진다는 생각은 틀렸다. 진화가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만으로 굴러간다면 종들은 금세 퇴화하여 멸종할 것이다.(174 페이지) 우연만으로 개체의 경이로운 적응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자연선택은 명백히 무작위적이지 않다. 자연선택은 강력한 형성력이다. 다른 유전자에 비해 전수될 가능성이 높은 유전자만을 축적함으로써 개체가 환경에 더 잘 대응하도록 만들어준다.

 

생물체의 적응 메커니즘은 돌연변이와 선택 - 우연성과 법칙성 - 의 독특한 조합에서 읽어낼 수 있다.(174 페이지) 자연선택이 진화의 유일한 과정은 아니다.(178 페이지) 진화의 한 종류인 유전자 부동(浮動)은 유전자 빈도가 무작위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유전자 부동은 어떤 속성이 보유자에게 유용한지 아닌지와 무관하게 대립 유전자의 빈도를 바꾼다. 선택은 늘 해로운 대립 유전자를 없애고 이로운 대립 유전자의 빈도를 높인다.(179 페이지)

 

종 분화가 없다면 생물 다양성도 없다. 스티븐 핑커는 '언어 본능'에서 언어와 종(種) 분화의 놀라운 유사성과 차이에 대해 논했다. 지리적 종 분화 이론은 지리적 격리가 종의 기원의 첫 단계라는 생각을 말한다. 격리된 상황이 아닐 경우 집단들을 다른 방향으로 몰아가려는 선택의 힘이 그와는 달리 개체들을 계속 만나게 하여 유전자를 섞는 상호 교배의 힘과 맞서야 한다. 격리를 추동하는 힘과, 만남을 계속 하게 하는 힘은 중력과, 별의 복사압의 대결을 떠올리게 한다. 제리 코인에 의하면 지리적 격리는 흔하다. 산맥이 솟고 빙하가 확산하고 사막이 생기고 대륙이 움직이고 한 덩어리였던 숲이 가뭄 때문에 둘로 나뉘고 그 사이에 초원이 생긴다.

 

저자는 생물학자들이 종의 형성 과정을 발견하는 방법은 천문학자들이 별의 진화 과정을 발견하는 방법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두 과정은 너무도 느리다. 창조론자들은 우리가 생애 내에 종이 진화하는 장면을 목격하지 못한다면 종 분화는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는 잘못이다. 우리가 하나의 벌이 완전한 생애 주기를 다 겪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으니 별은 진화하지 않는다는 주장 또는 우리가 새로운 언어가 생겨나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으니 언어는 진화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다름 없다.(259 페이지)

 

저자가 말했듯 인간은 다른 유인원들에서 유래한 유인원이고 우리의 가장 가까운 사촌은 침팬지이고 우리의 선조와 침팬지의 선조는 수백만년전(7백만년전)에 아프리카에서 갈라졌다는 사실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이는 우리의 인간성을 훼손하기는커녕 만족과 감탄을 안겨주어야 마땅하다.(270 페이지)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라 명명한 뒤 해부학적 유사성에 근거해 원숭이 유인원과 한데 묶은 사람이 스웨덴의 생물학자 칼 린네다. 인간은 현대 유인원의 진화에서 홀로 튀어나온 외톨이다.(276 페이지) 다른 유인원들은 사람을 닮기보다 자기들끼리 더 닮았다. 최근의 화석으로 넘어올수록 사람의 속성을 조금 가지고 있던 선조는 뇌는 상대적으로 더 커지고 송곳니는 더 작아지고 치열은 직사각형에서 자세는 점점 직립해야 한다. 화석은 실제로 그런 패턴을 보여준다.

 

인간 선조가 침팬지와 갈라져 나온 뒤 사람쪽 계통수에 존재했던 모든 종을 호미닌이라 한다.(278 페이지) 호미닌 중 가장 유명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일명 루시)는 20에서 30세 사이의 키 1미터, 몸무게 27kg 정도의 여성이다. 라에톨리 발자국은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발자국으로 루시의 친족이 낸 발자국이다.(283 페이지) 루시의 발자국은 320만년전 것, 루시의 친족이 낸 라에톨리 발자국은 360만년전 것이다. 루시는 반(半) 포물선 치열과 작아진 송곳니로 유명하다. 루시는 목 위로는 유인원이고, 몸통 중간은 유인원과 호미닌의 특성이 섞여 있고 허리 아래로는 거의 현대 인류다.

 

큰 뇌가 진화한 후 직립한 것이 아니라 직립한 후 큰 뇌가 진화했다. 허리 아래가 현대 인류와 거의 같다는 말은 넙다리뼈가 골반에서 내려오다가 서로를 향해 굽어 있는 데서 나온 말이다.(282 페이지) 화석을 이 이름으로 부르느냐 저 이름으로 부르느냐는 뇌 크기에 따라 나뉜다. 600 세제곱 센티미터가 기준으로 크면 호모, 작으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부른다.(286 페이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루돌펜시스는 뇌 크기가 중간이어서 과학자들 사이에서 호모라고 불러야 할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불러야 할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도구를 쓴 첫 인간은 호모 하빌리스였다. 호모 하빌리스란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란 의미다. 이들 가운데 어떤 뇌 주형에서는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에 해당하는 부위가 부풀어 오른 것이 확인되어 이들이 말을 한 첫 인류가 아닌가 하는 가설이 제기되었다. 호모 하빌리스의 하나인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는 별명이 호두까기 사람이고 110만년전에 멸종했고 자손을 남기지 않았다. 파란트로푸스 로보스투스, 파란트로푸스 아이티오피쿠스도 호모 하빌리스에 속한다. 호모 하빌리스는 호모 에르가스터, 호모 루돌펜시스, 호모 에렉투스 등 다른 호모속 종들과 공존했을지도 모른다.

 

호모 에렉투스는 150만년전쯤 생존했고 30만년전부터 화석기록에서 사라졌다. 아종(亞種)은 서로 구별되지만 교배가 가능한 집단을 말한다. 약 6만년전에 모든 호모 에렉투스 개체군이 갑자기 사라졌고 해부학적으로 현대 호모 사피엔스 화석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상의 모든 호미닌을 떼밀어 냈다.(289 페이지)

 

저자는 인간의 진화 방식에 수수께끼가 있다고 해서 인간이 진화했다는 엄연한 사실까지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설령 화석이 없더라도 우리에게는 비교 해부학. 발생학, 흔적 기관, 생물 지리학이 제공하는 인류 진화의 증거들이 있다. 저자는 사람 게놈에는 단백질 생산 유전자가 25,000개쯤 있으나 그 중 20,000개 이상이 침팬지와 서열이 다르다는 말을 한다. 사람과 침팬지는 해부 구조는 물론 생리작용, 행동, 언어, 뇌 크기와 구조도 다르다, 우리가 영장류 사촌들과 유전적으로 닮긴 했지만 그래도 유인원을 닮은 선조에서 사람으로 진화하는 과정은 상당한 유전적 변화가 필요했을 것이다.(296 페이지)

 

어느 한 유전자로 좁혀서 그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사람/ 침팬지의 차이를 생성했다고 증명하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떤 유전자가 사람/ 침팬지 차이를 일으킨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하려면 그 유전자를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옮겨 어떤 차이가 빚어지는지 관찰해야 하는데 누구도 그런 실험은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제리 코인의 스승인 리처드 르원틴의 생각을 읽게 된다. 같은 차원에서 저자는 우리 스스로를 진화의 끈에 묶여 춤추는 꼭두각시 인형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321 페이지)

 

저자는 유전자는 운명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금도 새상에는 이기주의, 부도덕, 부정이 판을 친다. 그러나 친절하고 이타적인 행동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양쪽 모두에 진화적 유산에 해당하는 요소가 담겨 있겠으나 이런 행동들은 대체로 선택의 문제이지 유전자의 문제가 아니다.(322 페이지) 저자는 우리가 어떤 유전적 유산을 물려받았든 그것은 우리를 짐승다운 선조의 방식에 영원히 가둬두는 구속복이 아니라 말한다. 진화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말해줄뿐 우리가 어디로 갈 수 있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323 페이지)

 

저자는 우리는 진화의 최종 산물이 아니라 진행형의 작품이란 말을 한다. 진화는 과학적 사실이다.(311 페이지) 진화의 허위성을 입증할 가능성이 있는 관찰도 무수히 떠올릴 수 있지만 그런 것은 실제로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312 페이지) 선캄브리아 암석에서 포유류가 발견된 일은 없고 사람과 공룡이 같은 지층에서 발견된 일은 없으며 진화적 순서에서 어긋난 화석이 하나라도 발견된 일은 없다. 물론 진화생물학에는 의문과 논쟁이 북적거린다. 진지한 생물학자들은 진화 이론의 주요 요점들에 대해 전혀 이견이 없다. 진화의 세부 방식이나 다양한 진화 메커니즘들의 상대적 역할에 대해 의견 차이가 있을뿐이다.(313 페이지)

 

저자는 요즘은 심리학자, 생물학자, 철학자 사이에 인간의 모든 행동을 다윈주의로 설명하려는 심란한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고 말한다.(317 페이지) 다른 동물들의 상황을 확장하여 우리에게 적용할 때는 무척 조심해야 한다. 남성은 여성을 두고 경쟁하기 때문에 몸집이 커진 것이 아니라 노동 분업 때문에 그렇게 진화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진화적 적응 환경에서 아마도 남자들은 사냥을 했을 것이고 여자들은 아이를 돌보며 식량을 채집했을 것이라 말한다. 이는 여성도 남성 못지 않게 적극적으로 사냥에 참여했을 것이라는 가설과 다른 방향의 진술이다.

 

우리 섹슈얼리티의 모든 측면을 진화로 설명하려는 것은 상당한 정신적 곡해를 낳는다. 책의 끝부분에 중요한 철학적 통찰이 제기된다. 즉 진화가 목적 없고 물질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 사실이라도 그렇다고 해서 우리 인생에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뜻은 아니라는 말이다.(323 페이지) 우리는 종교를 통해서든 세속적 철학을 통해서든 삶의 목적, 의미, 도덕을 만들어 간다. 진화는 도덕적이지도 비도덕적이지도 않다. 진화는 존재할뿐이다. 우리는 방대한 진화 계통수에서 하나의 잔가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주 특별한 동물이다.

 

우리는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을 헤아릴 만큼 복잡한 뇌를 자연 선택에 의해 갖게 된 유일한 생물이다.(325 페이지) 이 구절이 책의 대단원(大團圓)이다. 이 책은 프랑스의 분자생물학자 자크 모노가 ’우연과 필연‘의 결말에서 선보인 글과 결이 아주 다른 듯 공명하는 글이다. “옛날의 결속은 깨어졌다. 인간은 마침내 그가 우주의 광대한 무관심 속에 홀로 내버려져 있음을, 그가 이 우주 속에서 순전히 우연에 의해서 생겨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우주의 그 어디에도 그의 운명이나 의무는 쓰여 있지 않다. 왕국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궁리 출판사 출간 자크 모노 지음 ’우연과 필연‘ 257 페이지)

 

자크 모노의 결론은 차갑지 않다. ’지울 수 없는 흔적‘의 저자 제리 코인은 “진화에서 모든 것은 우연히 벌어진다는 생각은 틀린 것이다. 진화가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만으로 굴러간다면 종들은 금세 퇴화하여 멸종할 것이다. 우연만으로 개체의 경이로운 적응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지울 수 없는 흔적‘은 저자 제리 코인의 스승인 리처드 르원틴의 ’DNA 독트린‘을 읽은 지 10여년만에 읽은 책이다. 2008년 출간된 장대익의 ’다윈의 식탁‘에서 접하고도 기억하지 못한 코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2008년은 우리나라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번역되기 전이다. 그래서인지 ‘다윈의 식탁’에 나오는 다른 대화자들의 책들은 원서까지 소개되었지만 제리 코인의 ‘Why Evolution is True’(‘지울 수 없는 흔적’의 원서)은 소개되지 않았다.

 

코인이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은 탓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출간 연도를 보니 ‘다윈의 식탁‘이 나왔을 때 코인의 '지울 수 없는 흔적'은 출간되지 않은 상태였다. ‘다윈의 식탁’을 읽은 후 어떤 경로로 ‘지울 수 없는 흔적’을 구입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연도를 보니 코인은 1949년생으로 올해 75세다. 우리나라에는 ‘Why Evolution is True’가 ‘지울 수 없는 흔적’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 이전에 ‘Speciation’(2004년), 이후에 ‘Faith Versus Fact’(2015년)가 출간되었다. 이제 두 책 가운데 한 권이라도 번역되기를 바랄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