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시대 - 제5회 창비청소년도서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고 17
강창훈 지음 / 창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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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철과 함께한 시간은 약 4천년이다. 인간은 강함을 상징하는 철을 이용한 욕망 실현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의 19%에 달하는 철은 산소(50%)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중요 물질이다. 지구 전체 질량 중 34%에 이르는 철은 중량면에서 단연 으뜸을 차지한다. 철은 별의 온도가 40~60억도일 때 만들어진다. 빅뱅 후 10억년 후의 일이다. 철 이후 27번 원소인 코발트에서부터 92번 원소인 우라늄까지의 66종의 원소가 만들어졌다. 철까지는 핵융합으로 즉 별이 살아 있을 때 만들어지고 그 이상은 별이 죽으면서 만들어진다. 철의 원자핵에 있는 일부 중성자가 붕괴해 양성자로 변함에 따라 구리, 은, 금 등의 새로운 원소가 만들어졌다.


철을 비롯한 원소들은 우주 곳곳으로 튕겨져 나갔다. 원소들은 모여 성간 매질이라는 이름의 기체 구름을 형성했다. 성간 매질은 조건이 맞는 곳에 이르러 서로 뭉쳐 수많은 별을 만들었다. 그렇게 생성된 별들 중 주위에 행성을 거느린 별도 있었다. 태양도 그 중 하나다. 철은 인간이 생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원소다. 지구는 태양을 이루는 물질들로 이루어졌다. 태양에서 떨어져 나온 물질들은 서로 부딪히고 뭉치면서 점점 커졌고 결국 현재와 같은 크기의 지구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지구 온도가 올라갔다. 작은 천체들과 충돌했기 때문이고 크기가 커지면서 내부 압력이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온도가 올라가자 지구 내부가 녹아내렸다. 철과 같은 무거운 금속 물질들이 중심부로 내려앉아 지구 핵을 이루었다. 지구 외핵은 액체여서 구성 성분 중 무거운 철은 아래로 가라앉고 규소 등 가벼운 물질은 맨틀과의 경계인 위쪽으로 떠오른다. 이런 현상을 대류현상이라 한다. 이로 인해 지구는 자석 같은 상태가 되어 자기장을 발생시킨다. 자기장은 태양풍을 막는 역할을 한다. 태양풍은 대부분 지구 자기장에 막혀 흩어지지만 일부는 지구 자기장에 이끌려 대기권으로 진입해 빛을 낸다. 이를 오로라라 한다. 


철에게는 산소라는 친구가 있다. 자연 상태에서 철은 늘 산소와 붙어 지낸다. 산소와 결합한 철을 산화철이라 한다. 산화철의 색은 붉다. 산화철은 녹슨 철이다. 인간은 산화철에 열을 가해 산소를 떼어냄으로써 유용한 철을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철은 다시 산화된다. 철과 산소 사이에는 남조류(시아노박테리아)라는 중매(仲媒)가 있었다. 남조류는 바닷물을 빨아들여 수소를 먹고 산소를 뱉어내는 최초의 광합성을 했다. 이 결과 지구에 산소가 엄청나게 만들어졌다. 당시 바다에는 철이 무수히 떠돌았다. 남조류가 만든 산소가 철을 산화시켰다. 산화철은 물과 분리되어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 


철을 산화시키고 남은 산소는 오존층을 만들었다. 생명체가 더 이상 바다에 갇혀 살 필요가 없게 되면서 육상 생물이 출현했다. 원래 육상에는 태양에서 오는 자외선을 막아주는 오존이 없다가 위의 작용을 거쳐 육상 생물이 출현한 것이다. 철의 산화가 끝난 것은 18억년전이다. 인체에는 평균 3그램 정도의 철이 있다. 이 가운데 60%가 혈액에 존재한다. 혈액이 붉은 것은 철 때문이다. 혈액의 주요 구성 성분인 적혈구 속에는 헤모글로빈이 있다. 헤모글로빈의 철 원자 4개가 산소와 결합하여 몸 구석구석으로 산소를 나른다. 


약 6천년전인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불로 흙을 구워 토기를 만들다가 발견한 것이 구리다. 구리는 약 1,084도에 녹는다. 가마의 온도가 1,100도 가까이에 이르자 구리가 녹아 토기 표면에서 흘러나왔고 온도가 내려가자 구리끼리 뭉쳐 고체 덩어리로 굳었다. 좀 더 강한 재료를 바라던 인간 앞에 나타난 것이 청동이다. 청동도 우연의 산물이다. 구리를 제련하는 과정에서 어쩌다가 주석이 조금 섞인 합금 즉 청동이 만들어졌다. 청동은 철보다 약하지만 쉽게 산화하지 않는다. 철은 토기에서 청동기까지 기나긴 기술 축적 과정이 있었기에 인간과 만날 수 있었다. 


철기 시대 이전에도 인간은 철을 알고 있었다. 바로 운철(隕鐵)을 통해서다. 운철은 운석 중 철광석이 많이 포함된 것이다.(우주를 떠도는 작은 암석들 중 지구 인력에 끌려 대기권으로 떨어지는 것을 유성이라 한다. 유성은 대부분 불에 타 없어지지만 땅까지 도달하는 것이 있다. 이를 운석이라 하고 운석 중 철광석이 많이 포함된 것을 운철이라 한다.) 운철은 돌보다 물러 변형이 잘 되지만 두드릴수록 단단해졌다. 우주에서 온 운철의 성분은 지구의 지각에 존재하는 철과 성분이 다르다. 운철의 철은 산화철이 아니다. 대기권을 통과할 때 높은 마찰열을 받아 산소가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운철은 힘들게 달구지 않고 두드리기만 해도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 운철이 인류에게 곧바로 철기 시대를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원한다고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토기를 굽다가 구리를 발견했듯 청동기를 만들다가 우연히 철을 만났다. 산불로 인해 철을 발견했다는 가설도 있다. 히타이트가 서아시아에서 강자가 된 것은 메소포타미아 민족이 잘 모르는 철 생산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히타이트는 물론 철기를 처음으로 생산한 민족이 아니다. 철기 시대가 시작된 것은 기원전 1000~500년경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철기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히타이트가 몰락하고부터다. 


이집트는 철을 제련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부족했다. 산화철에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철을 생산하려면 불의 온도를 최대한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땔감이 많아야 하는데 이집트는 목재가 풍부하지 않았다. 철에 대한 욕망이 크지 않은 점도 작용했다. 이집트는 토양 특성상 철제 농기구가 없어도 농사를 짓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중국에서 철기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춘추시대다. 한반도에서 철, 하면 생각나는 나라가 가야다. 


철을 제련하는 것은 재료의 성질을 바꾸는 일이다. 산화철을 제련하는 데 필요한 높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충분한 땔감이다. 인간은 처음에 나무를 썼고 후에는 석탄을 사용했다. 철 생산이 늘어날수록 숯 사용량도 늘어났다. 이 때문에 곳곳에서 삼림이 사라졌다. 철 생산은 대규모 삼림 벌채를 초래했다. 삼림 감소는 동식물의 다양성 상실, 토양 침식, 기후 변화 등 다른 환경 문제를 야기했다. 인간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더 많은 곡식을 얻기 위해 철을 깨웠다. 그리고 철을 이용해 권력을 차지하고 나라를 세우고 제국을 건설했다. 


철기 시대가 시작된 이래 인간은 계속 철의 혁신을 꿈꾸었다. 철 덩어리를 불로 달구고 망치로 때리기를 반복하면 산화철이나 불순물이 많이 제거되어 그럭저럭 순수한 철에 가까운 덩어리를 얻을 수 있다. 이를 연철(軟鐵)이라 한다. 철기 시대가 되었다고 철기가 곧바로 다른 도구를 압도한 것은 아니었다. 옛사람들은 운철뿐 아니라 철광석에도 신성한 의미를 부여했다. 운철은 하늘의 신이 준 선물, 철광석은 대지의 신이 준 선물이라 생각한 것이다. 


부국 및 강병을 실현시켜주는 가장 좋은 수단은 철이었다. 풀무 덕에 액체 상태의 철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철을 선철(銑鐵)이라 한다. 선철을 한 번 더 녹여서 거푸집에 부었다. 이것을 주철이라 한다. 선철이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은 전쟁에서였다. 중국의 철 생산량이 최고조에 이른 것은 송나라 때인 11세기였다. 수력 풀무가 발명되고 천년 가량 지났을 때였다. 송나라 때 철 생산량이 급증한 것은 땔감으로 숯 대신 석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소동파도 석탄에 대한 글을 남겼다. “팽성에는 과거 석탄이 없었다. 1078년 12월에 비로소 사람을 보내 백토진 북쪽에서 석탄을 찾아냈는데 철광석을 녹이고 특별히 날카로운 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송나라 사람들은 석탄을 코크스(석탄에서 유황 성분 등을 제거한 순수 덩어리)로 만들어서 땔감으로 사용했다. 코크스는 불을 붙이기 어렵지만 숯보다 발열량이 훨씬 커서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송나라는 철을 주로 군사적 용도로 썼는데 이는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와 관련이 있다. 송은 개국 이래 여진, 거란 등에게 시달렸다. 송나라는 제철 기술은 뛰어났지만 철제 무기를 개량하는 역량은 부족했다. 오히려 제철 기술이 거란과 여진으로 새어 나가 두 나라의 군사력 강화를 돕고 말았다. 칭기즈칸은 중국 대륙에서 들여온 철로 무기를 개량하여 몽골 초원을 통일하고 사방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그 첫 번째 희생자는 여진이었다.


인간은 연철과 선철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혁신에 목말라했다. 연철은 부드러워 좋고 선철은 단단해서 좋다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연철은 걸핏하면 휘고 선철은 툭하면 깨진다는 불만을 품었다. 이런 불만 때문에 생긴 것이 강철이다. 엄밀히 따지면 연철과 선철은 모두 철과 탄소의 합금이다. 순수한 철은 심지어 알루미늄보다 무르다. 숯이나 코크스를 이용해 제련하는 과정에서 탄소가 철에 들어가 비로소 단단해지는 것이다. 철에 탄소가 얼마나 포함되느냐에 따라 녹는점, 강도, 연성, 탄성 등 성질이 천차만별로 변화한다. 


탄소 함유량은 철의 종류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연철은 탄소 함유량이 0.01 퍼센트 미만인 철이다. 선철은 탄소 함유량이 3.0~4.5 퍼센트인 철이다. 연철처럼 무르고 선철처럼 단단한 철이 강철이다. 탄소 함유량을 0.02~2.0 퍼센트로 조절하면 강철(鋼鐵)이 된다. 옛사람들이 지금처럼 철과 탄소의 관계를 이해하고 계획적으로 탄소 함유량을 조절한 것은 아니다. 연철, 선철, 강철의 순서로 철을 발전시킨 것은 더더욱 아니다. 철 생산 초기에 세 가지 철이 뒤섞여 있었다. 점차 경험을 축적해 원리를 터득하면서 철의 종류를 체계적으로 파악했다. 


대항해 시대에 망망대해를 항해하던 점선에는 작지만 매우 중요한 철이 있었다. 나침반이 그것이다. 나침반은 철이 없었다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발명품이었다. 나침반은 중국에서 발명되었다. 나침반을 항해에 이용한 것은 송나라 때부터다. 그 전까지만 해도 항해사들은 주로 별과 바람을 읽어 자신의 위치와 방향을 파악했으나 구름이 낀 날은 읽기 자체가 어려웠다.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중국에는 장작처럼 불이 붙는 검은 돌이 있다. 장작보다 화력이 훨씬 강하고 때로는 이튿날이 되어야 불이 꺼진다.”고 썼다. 


사람들이 석탄에서 유황을 제거하는 데 몰두한 시기가 있었다. 송나라는 코크스 제조법을 알아낸 나라다. 철이 더 강해지고 많아지면서 인간은 새로운 욕구를 갖게 되었다. 상품을 빠른 시간에 대량 생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팔고 원료와 노동력을 가지려는 것이었다. 철은 증기기관을 탄생시켰다. 철 생산을 늘리려면 석탄을 더욱 확보해야 했다. 광산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문제는 갱내에 생기는 물이었다. 산업 혁명을 이끈 증기기관은 광산에서 만들어졌다. 산업혁명은 광산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증기기관은 산업용 동력 장치로도 이용되었다. 그 결과 산업혁명이 궤도에 올랐다. 증기기관은 대량 생산 시대를 열었다. 


상품을 운송할 교통수단이 필요했다. 트레비식이라는 기술자가 증기기관을 철도 동력으로 활용하는 데 성공했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혁명으로 불리는 것은 기계를 이용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을뿐 아니라 상품을 실어나르는 새로운 교통수단 즉 철도와 증기선의 발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철도 역시 광산에서 만들어졌다. 갱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지하수만이 아니었다. 갱도가 길어질수록 채굴한 광물을 밖으로 나르는 일이 어려워졌다. 광산업자들은 갱도에 레일을 깔 생각을 했다. 나무 레일에 이어 철제 레일을 떠올렸다. 증기기관이 그랬듯 철제 레일도 새 욕망을 자극했다. 철제 레일을 갱도 밖에서 사용할 수 없을까? 철제 레일을 이용해 철광석과 석탄을 제철소로 운반할 수 없을까?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기관차가 필요했다. 


증기기관차가 발명되었다. 증기기관을 만든 트레비식이 증기기관차를 개발했다. 증기 기관차가 등장하면서 영국은 철도 시대에 돌입했다. 헨리 베서머가 강철을 대량 생산했다. 선로의 내구성 문제가 해결되었다. 철기 시대가 시작된 이래 인간이 철을 가장 많이 활용한 곳은 전쟁터였다. 휴전선은 철책으로 되어 있다. 철조망의 역사는 가시철사에서 시작된다. 가시철사는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대륙 횡단 철도가 개통되고 수많은 사람이 이주하면서 미국 서부의 드넓은 땅에 목장이 속도로 늘어났다. 농부들은 이웃 목장의 가축 떼로부터 작물을 지켜야 했다. 가시철사가 발명되었다. 


이내 철조망은 전쟁에서도 쓰이게 되었다. 1898년 미국 ? 스페인 전쟁, 1899년 보어 전쟁, 그 이후 1차 세계대전 등에서 요새 방어를 위해 철조망을 사용했다. 철조망은 2차 대전 이후 포로수용소를 만드는 데 아주 효율적인 재료가 되었다. 철은 냉전을 상징하게 되었다. 철은 여러 번 재활용이 가능한 물질이다. 철 스크랩이란 말이 있다. 고철을 재활용하는 것이다.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는 방법의 하나다. 


인간이 철을 만들며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 중 하나다. 철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어떻게 철을 효율적으로 쓰는가가 관건이다. 철은 지구 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철은 바닷속에 살고 있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성장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성분 가운데 하나다. 철이 풍부하면 식물성 플랑크톤의 수가 급증해 광합성으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감소하게 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으면서 철이 바다로 유입된다. 이로 인해 식물성 플랑크톤이 증가하면 대기 중 많은 이산화탄소가 흡수되어 지구 온난화가 저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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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의 삶과 양자역학으로 본 주자학
주종옥 지음 / 동방문화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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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朱熹)의 존칭인 주자에서 이름이 유래한 주자학(朱子學)은 공자의 유학(儒學)을 중심으로 노장(老莊) 사상 및 불교사상을 통합한 동아시아 철학의 정수이며 생활 패턴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새 학문이다. 주희는 1130년에 태어나 1200년에 타계한 사상가이자 개혁가였다. 송(宋)은 북송(960년-1127년)과 남송(1127년 -1279년)으로 나뉜다. 송이 이렇게 두 시기로 나뉘는 것은 여진족이 이끄는 금나라의 침공으로 인한 것이다. 주희의 부친은 주송(朱松)이고 모친은 축오랑(祝五娘)이다. 축(祝)은 빌다, 축원하다, 베를 짜다 외에 박수 무당을 뜻하기도 한다. 


병중의 주송은 주희에게 적계(籍溪) 호헌, 백수(白水) 유면지, 병산(屛山) 유자휘 등 자신의 세 친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으라고 당부했다. 유면지는 주희를 친자식처럼 교육시켰고 자신의 딸(유청사; 劉淸四)을 주희에게 출가시켰다. 유자휘는 주희에게 과거 공부를 하도록 독려했다. 조광윤(趙匡胤)이 세운 송(宋)의 수도는 개봉(開封)이었다. 남송 시대의 유학은 진시황의 분서갱유로부터 당나라, 오대 십국시대를 거치면서 쇠퇴할 대로 쇠퇴하였고 오랜 내우외환으로 빈곤과 사회의 불안감이 쌓이고 쌓여 도덕은 사라지고 욕망만이 넘쳐나고 있었다. 


중원이 함락되고 전쟁과 농민봉기로 백성들은 이리저리 피난을 다니면서 전통유가의 문화적인 가치와 규범을 상실한 채 새로운 시대정신과 문화를 주도해줄 성인을 고대하고 있었다. 송은 과거제도를 활성화하고 과거제도를 통해 선발된 관료들에 의한 문치주의를 실시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 시작하였다. 1147년 주희는 우수한 성적으로 과거를 통과했다. 과거의 수석 합격자뿐 아니라 대부분의 상위 합격자들은 금나라와의 강화조약 체결을 지지했으나 주희는 강화에 반대했다. 주희는 19세에 과거 시험을 통과한 후 20대 초반에 여러 지방의 명유(名儒) 및 현자(賢者)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가르침을 쉽고 빠르게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불교와 도교를 넘나들며 폭과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경지에 도달했다. 


유교 경전을 비롯해 불교 경전, 도교 경전들을 탐독하며 푹 빠져 지냈다. 주희의 학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연평(延平) 이통(李?)이다. 주희 부친 주송과 수십년 교제한 이통은 몇 구절의 가르침으로 주희를 불교와 도교로부터 유학으로 돌아오게 이끌었다. 주희가 이통으로부터 받은 가르침 중 이일분수(理一分殊)를 빼놓을 수 없다. 일에는 크고 작은 것이 있지만 이치에는 크고 작은 것이 없다는 의미, 천도의 본말은 하나로 관통한다는 의미(26 페이지)다. 


주희는 사회의 부패와 모순을 일소하기 위해 애썼다. 주희는 주부(主簿) 직무를 수행하며 틈나는 대로 학문의 진흥에 심혈을 기울였다. 주희는 학생들에게 의리로 마음을 기르고 과거 공부에서 벗어나 도를 배우고 뜻을 세우며 장구(章句)의 학문에서 성의 정심을 추구하도록 지도했다. 이러한 리학 교육의 종지를 살려 학교에 법제를 제정하였으며 강의하고 토론하는 방법을 수립하여 시행하였다. 아울러 친히 재생들에게 강의하고 감독하며 재생들을 격려하였다. 주희가 경학을 전수하고 학문을 강론하자 수십 명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배출되어 새로운 학파를 이루게 되었다. 


당시는 한(漢), 당(唐)의 장구(章句)를 위주로 한 훈고학과 불교와 도교의 흥행으로 공자, 맹자가 인(仁)을 중추로 삼아 세웠던 극기 복례와 인본적 윤리체계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주희의 리학은 공자 맹자의 인(仁)으로 돌아가는 것으로서 리를 중추로 삼아 격물치지의 인식론, 성의 정심의 도덕관, 수제치평(修齊治平)의 인생관을 삼위일체로 하는 인본 윤리 체계였다. 주희는 계속되는 사회 혼란으로 무너진 풍속을 바로잡는 근본이 예(禮)에 있다고 보고 주례, 의례 등을 참고로 제례와 혼례의 표준을 만들어 가르쳤다. 


1163년 11월 6일 주희는 등대(登對)하여 황제에게 격물치지와 현실에 대응하는 방안에 대해 이통의 리학을 바탕으로 상세히 설명하면서 효종이 군주로서 저지른 허물을 지적하고 조정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주자가 효종의 면전에서 세 차례 차자(箚子)를 읽어 내려가면서 강화 논의를 강하게 비판하자 황제가 얼굴에 노기를 띠면서 언짢아 하였다. 11월 12일 주희를 몹시 달가워하지 않던 효종은 결국 주희를 무학박사(武學博士)에 제수(除授)하였다. 무학박사는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국자감에서 병서, 궁마, 무예를 가르치는 직책으로 유학자를 이 직책에 임명하였다는 것은 조정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했다.


효종은 주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164년 11월 금과의 관계를 숙질로 하고 매년 세공을 바치는 것으로 강화를 맺었다. 주희는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효종이 유학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분명해지자 그 해 12월 12일 도성 임안을 떠났다. 그때 마침 스승 이통이 별세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에 핑계를 대고 서둘러 떠났다. 1175년 7월 주희는 노봉(蘆峰) 운곡(雲谷)에 새로운 거처인 회암(晦庵)을 짓고 저술에 몰두했다. 주희는 세 성인 역 즉 복희(伏羲)의 역, 문왕(文王)의 역, 공자(公子)의 역을 탐구하여 역의 역사를 거꾸로 올라가 본래의 뜻을 밝히고 정이(程?)의 의리역과 소옹(邵雍; 소강절)의 상수역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였다. 


1193년 무렵 주희가 큰 선비라는 명성이 금나라에까지 전해졌다. 북방의 금나라 통치자와 조정에서는 유학을 높이면서 주희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남송은 매년 원단을 축하하는 사절단을 금나라에 보냈다. 그해 초에도 사절단이 금 나라로 갔다. 금나라 조정에서 남송으로부터 파견된 대신에게 뜻밖에 남조 주선생님께서는 요즘 어떤 일을 하시느냐고 물었다. 그 대신이 이를 조정에 보고하자 조정 대신들이 앞 다투어 주희를 천거하여 산중에서 내려오게 하였다. 1193년 11월 주희는 지담주 호남 안무사에 제수되었다. 주희는 담주에 도착하자마자 병비를 정돈하고 지방행정을 맑게 하고 학풍을 바로잡는 세 방면의 개혁을 전개하였다. 


이어서 악록서원을 복원한 후 서원의 규모를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주학을 선풍처럼 일으켰다. 1194년 즉위한 영종은 간사한 신하들의 권력농단을 폭로하고 황제에게 성의정심의 공부가 부족하다고 책망하는 주희에 대해 분노해 주희를 40여일만에 도성에서 쫓아내버렸다. 반도학파들은 조정에 있던 도학자들을 온갖 죄상을 씌워 유배 보내고 마침내 1197년 정월 도학의 영수인 주희도 여러 가지 죄상을 나열하여 탄핵한 후 파직하였다. 1198년 반도학파들은 주희를 포함한 위역당적(僞逆黨籍) 59인의 명단을 열거한 후 도학을 위학으로 규정하고 위학을 금지한다는 조칙을 세상에 공포하였다.


당적에 포함된 도학자들은 정신적인 억압과 곤경 속에 울화병이 들어 하나씩 죽었다. 주희가 그토록 아끼던 채원정(蔡元定)도 유배지에서 화병으로 죽고 말았다. 주희 사후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우상화와 신격화 운동이 일어났다. 1209년 문(文)이라는 시호가 하사되어 주문공(朱文公)으로 높여졌다. 주희의 사서집주가 국학으로 채택되었고 태사(太師)에 추증되었으며 주돈이, 장재, 정호, 정이와 함께 다섯 도통의 성인의 지위에 올랐다. 1335년 주희를 제국공(齊國公)으로 봉하고 문묘(文廟)를 세우게 하여 공자와 같은 반열에 올리고 봄, 가을로 공자와 같이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1712년에는 강희제(姜熙帝)가 조서를 내려 주희를 공묘십철(孔廟十哲)의 반열에 배사토록 승격시키고 주희의 위패를 대성전 안으로 들였으며 주자전서, 성리정의를 편집한 뒤 전국에 반포하게 했다. 주희가 구축한 방대한 인본주의 주자학 체계는 선(善)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윤리이성으로 동양의 정신문화와 전통을 대표하고 현재까지도 우리들 마음속에 깊이 흐르고 있다. 1175년 주희는 여조겸과 함께 송나라 성리학자인 주돈이, 장재, 정호, 정이의 어록과 문집에서 정수가 되는 말을 편찬하여 근사록(近思錄)을 만들었다. 근사록이란 논어 자장 편에 나오는 널리 배우고 뜻을 돈독히 하여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부터 생각하면 인(仁)은 그 가운데 있다(박학이독지 절문이근사 인재기중의;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주희는 그 중 모든 학문사변의 일인 박학, 독지, 절문, 근사에 종사하면 마음이 밖으로 달아나지 않고 존양할 수 있어 자연히 인(仁)이 그 가운데 있게 된다고 했다. 주자학은 위진 남북조 시대 이래 도교와 불교의 현실탈피 정신을 비판하고 현세에 가치를 두며 유교 본래의 예교주의를 부활시키는 것을 기치로 내걸고 일어났다. 주자학은 도교사상이 지닌 우주론과 불교의 심오한 심성론 등 철학 이론을 흡수하여 종전의 유교에는 없던 우주론, 존재론, 심성론, 인식론 등을 갖춘 종합적인 철학 체계를 확립하였다. 주자학은 도교나 불교처럼 내면주의 단계에 머물러 있지 않고 사물에 대한 주지적이고 합리적인 탐구를 중시하며 존덕성(尊德性)과 도문학(道問學)의 구체적인 실천 방법인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제시하였다. 


명은 원(元)대를 거쳐 한족이 다시 천하를 통일하여 민족주의 고취와 함께 중국 고유의 사상을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주자학은 그에 가장 적합한 학문으로 여겨졌다. 송대 주자학에서 형이상학이 발전하게 된 것은 불가의 공(空)과 도가의 무위(無爲)에 답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우주론과 형이상학을 건설해야 했으므로 태극(太極), 리(理), 기(氣) 등의 새로운 개념을 창출하였다.(99 페이지) 그러나 명초에는 불교나 도가의 도전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문제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고조되지 않았다. 


주자학적 자연법의 특징은 존재와 당위를 일치시켰다는 점이다. 즉 존재가 당위가 된다. 이것을 주자학적 용어로 말하면 존재의 근거 또는 원리인 소위연지고(所以然之故)는 존재의 규범적 양태 또는 존재가 실현해야 할 규범인 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과 등치라는 것이다. 이것을 주자는 모두 리로 나타내었다. 그러므로 주자학에서 리는 이중 구조를 갖는다. 청대의 대표적인 도학자인 안원(顔元)은 송의 도학자들이 한(漢), 진(晉)의 불교, 도교의 집대성자일 뿐 요순, 주 공, 공자의 전통 계승자는 아니라고 여겼다. 


안원은 기를 우주의 근본으로 여기며 만물의 성은 리가 부여된 것이고 만물의 기질은 기가 응결된 것이라고 하면서 리와 기는 하나로 융합되어 있어 천명지성과 기질지성으로 나눌 수 없고 도심과 인심을 나눌 필요도 없다고 보았다. 주자학은 군자와 성인을 논하고 천하를 논하지만 그 출발점은 자기 자신의 일상생활에 둔다. 일상생활에서 자기 자신의 삶을 꾸준히 향상시키는 가운데 자신의 인격이 완성된다. 자신의 삶이 완성되면 저절로 가족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로 확충되어가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문이다. 


또한 주자학은 경험적 반성을 통해 올바른 삶의 방향을 인식하고 반드시 실천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문이다. 뿐만 아니라 주자학은 국가의 전례와 사회와 가정의 종법제도, 관혼상제 등 제반 의식과 절차를 개량하고 건전한 풍속을 조성해 나감으로써 조선시대 전반의 생활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다. 주자학은 조선에서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정치체제와 개인의 사유체계에서 제일의 동력원이 되었고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알게 모르게 그 영향이 지속되고 있다. 


상(商) 나라 때부터 유자(儒者) 계층이 비로소 육체노동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독립적으로 전문화되어 갔다. 그들은 각종 의례를 주관하면서 복잡하고 번거롭고 산만했던 기존 의례의 수준을 높이고 규범화했다. 상당수의 유자들은 장례만 주관하던 천민이었지만 이때부터 전문 지식계층으로 신분 상승했다. 나아가 단순히 상례, 장례, 제례 사무만 보던 유자들이 국가의 중요한 전례와 종교 행사 및 민간의 각종 문화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에 따라 국가에 없어서는 안 되는 특수한 계층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주(周) 나라에 와서 천(天)은 상나라 때의 권위적인 천인관계를 넘어 윤리적 색채가 더해져서 화복(禍福)을 관장하는 존재가 되었다. 천은 화복을 집행하는 권위자일뿐 아니라 덕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도덕적 존재이기도 했다. 기원전 1046년경에 상을 멸망시킨 주나라는 호경(鎬京)으로부터 낙읍(洛邑)으로 도읍을 옮기고 봉건제도를 실시하였다. 서주 초에 주공(周公)이 예악을 정하였다. 이는 주례라는 엄격하고 치밀한 예절규범으로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강화되었다. 의식주를 비롯해 모든 생활방식이 신분에 따라 정해진 절차와 제약을 따르게 하는 독특한 중국의 예문화가 만들어졌다. 


유교를 창시한 공자는 주나라의 관제와 예법을 꾸준히 공부하면서 학생을 받아 제자로 가르쳤다. 시(詩), 서(書), 역(易), 악경(樂經), 예기(禮記), 춘추(春秋) 등 6경을 정리하였고 상, 주 이래 전통적인 고대의 천명사상을 계승, 발전시켰다. 고대 유학에서도 부분적으로 태극이나 음양이론에 대해 논하였지만 이를 우주론이나 존재론으로까지 천의무봉하게 엮어내지는 못하다가 남송의 주희에 이르러 비로소 치밀하게 다듬어져 이론화되었다.


자연현상을 근거로 탄생한 음양개념은 노자에 이르러 도와 함께 존재의 근원을 설명하는 개념이 되었다. 복희씨 팔괘도는 대립적 위치에 있는 괘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늘과 땅이 서로 교감하여 만물을 낳고 못의 기운이 산으로 올라가 구름과 비가 되며 물과 불은 상극관계이면서도 서로 감응하여 유기적인 관계를 상징한다. 복희씨 팔괘도는 주역이 그리는 이상적인 자연계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 현실세계의 모습과는 다르다. 현실세계는 언제나 조화, 부조화, 균형, 불균형이 공존하기에 이런 현실을 반영하여 나타낸 것이 문왕 팔괘도다. 


이 괘도에서는 감괘(坎卦)와 리괘(離卦)를 제외한 모든 괘가 서로 부조화 상태에 있다. 복희씨 팔괘도가 자연세계의 공간적인 구조를 설명한 것이라면 문왕 팔괘도는 자연의 시간적 변화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복희씨 팔괘도가 현실화되기 이전의 이상세계를 그린 것이라는 의미에서 선천도라 할 수 있고 문왕 팔괘도는 현실 세계를 그린 것이라는 의미에서 후천도라 할 수 있다. 복희씨와 우임금이 팔괘를 만들고 문왕이 64괘로 나누고 괘사를 붙였으며 그의 아들 주공이 효사를 지어 완성하였고 공자가 십익(十翼)을 붙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음양이 우주 발생의 기원을 설명하는 추상적 개념이라면 오행은 자연과 우주를 이루는 다섯 가지 원소를 인간생활과 밀접한 구체적인 물질로 설명하는 개념이다. 한(漢)의 동중서는 천(天)이 말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지만 음양오행의 자연적 요소로 재변을 일으켜 인간에게 상벌을 주는 존재라는 천인감응설을 주장하여 의지의 천, 주재자로서의 천 개념을 부활시켰다. 황노(黃老; 황제, 노자) 계열 학맥을 잇는 회남자(淮南子)의 저자들은 도의 무위의 특성을 강조하여 자연감응설을 제기하였다. 


서주(西周)가 몰락하고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자 크고 작은 수많은 나라들이 출현하였고 그들 간의 전쟁 횟수가 1,200회를 넘는 등 전쟁으로 인하여 사회가 극도로 혼란에 빠져 고대에서 이어져온 오랜 천관의 변화를 재촉하였다. 주희는 북송 오자 각자가 조금씩 연구한 개념들을 종합하고 다듬어서 주자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틀을 제시하였다. 주희는 인의 개념을 정성스럽게 다듬어서 사람의 마음이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덕성이며 사랑의 리라고 정의하고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성선설까지 연결시키면서 윤리 도덕의 원천으로까지 높였다. 


지구는 시속 1,700km 속도로 자전하면서 시속 107,000km 속도로 공전한다. 태양계는 시속 80만 km의 속도로 은하중심을 한 바퀴 도는데 2억년 정도가 소요되고 지금까지 23번 정도 돌았다고 한다. 우주가 폭발한 지 30만년쯤 되었을 때 우주의 온도가 내려가고 전자들이 원자핵과 결합하면서 우주가 투명해졌고 빛과 물질이 분리되면서 빛이 빠져나왔다. 시간이 흐르고 우주가 계속 팽창하면서 이 빛은 매우 약하지만 우주 전체를 채우고 있다. 이 빛의 온도는 영하 273도 정도다. 이 빛은 마이크로파여서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다. 이 빛을 우주배경복사라 한다. 


우주배경복사는 빅뱅의 가장 강력한 증거이자 우주 초기의 여러 정보를 알려주는 가장 귀중한 유물이다. 우주가 팽창을 거듭함에 따라 온도가 내려갔고 우주에 남아있던 빛의 파장이 길어져 적외선이 되면서 우주가 캄캄해졌다. 이 빛의 스펙트럼은 에너지를 전부 흡수하거나 방출할 수 있는 흑체 스펙트럼과 같다. 온도 차이는 위치에 따라 10만분의 1 정도다. 현재까지 우주의 팽창을 고려한 우주의 크기는 420억 광년 정도다. 공간은 물질이 있는 곳에, 시간은 사건이 있는 곳에 존재한다. 물질과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의 시간과 공간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시간과 공간이 얽혀 있다는 의미의 시공간을 이야기한다. 장회익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 ‘우주는 138억년전에 빅뱅으로부터 급격한 팽창과 함께 출현했는데 이 최초의 순간에 공간과 시간을 포함해 모든 것이 크기를 헤아릴 수 없는 아주 작은 점에서 출발했다. 그 안에는 어떤 것도 구분할 수 없고 대칭 상태이며 완전한 혼돈 상태로 이러한 상태를 무극(無極)이라 부르는 것이 가능하다. 한편으로 그 안에 앞으로 우주만물을 생성시킬 수 있는 기본원리와 소재 원형이 분화되지 않은 상태로 잠재되어 있는데 이를 태극(太極)이라 한다. 무극이면서 태극이란 말이 가능하다.’(‘자연철학강의’ 503 페이지) 


닐스 보어는 동양의 태극과 음양이론이 양자역학과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선언했다.(155 페이지) 조셉 니덤은 ‘아마도 가장 현대적인 유럽의 자연과학의 이론적 기초는 노장과 주돈이, 주자와 같은 인물들의 은혜를 입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이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란 말을 했다. 아인슈타인, 칼 세이건, 호킹, 파인만 등은 우주의 구조를 심도 있게 연구해보고 그 신비로움에 경의를 표하면서 우주 자체는 신이라고 언급했다. 


무극은 기가 무한대로 펼쳐져 있는 상태 즉 물리학에서 허용하는 측정범위를 넘어선 양자요동이 끝없이 펼쳐진 상태라 보면 좋다. 태극은 우주를 운행시키는 모든 리(理)의 총화이다. 무극과 태극은 절대 분리될 수 없는 단일체로 이것이 바로 우주라는 의미다. 무극과 태극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주희는 동정무단(動靜無斷), 음양무시(陰陽無始)의 우주를 말하였다. 리(理)는 원래 옥(玉)에 나타나는 무늬를 이르던 말로 후에 철학적 개념이 부여되어 사물에 내재하는 원리, 우주의 근본 도리 등을 지칭하게 되었다. 


주희가 언급한 태극은 천지만물의 리다. 주희의 이일분수 사상은 이통의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주희의 핵심 개념은 이선기후(理先氣後)다. 주희는 인간도 우주만물이 유행하는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유기체적 세계관을 제시했다. 그는 이런 세계관에 윤리적 의미를 부여하여 자연과 인간의 윤리를 통합시키는 독창적인 철학을 개발하였다. 유기체적 세계관에서 리는 우주 만물을 통합적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망이면서 네트워크망에 있는 조직의 패턴이다. 


주자학의 리는 음양오행의 기를 능동적으로 주재하여 우주 만물을 운영하며 존재론적 당위성과 윤리적, 도덕적 의미까지 부여하였다. 데카르트는 신으로부터 철학을 독립시켜 자연의 실체를 사유(思惟)의 실체와 연장(延長)의 실체로 나눔으로써 근대철학을 열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사실 환영(幻影)에 지나지 않는다. 잠재의식의 보강작업을 거쳐 조작된 것이란 의미다. 두뇌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하여 시야에 들어오는 정보 중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은 스쳐 지나가고 저장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저자는 현대 양자역학적 용어로 주자학의 기는 넒의 의미에서 에너지로, 리는 정보로 정의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의존할 수 있는 기가 없으면 리가 발현될 수 없지만 리가 없으면 기도 무용지물이 된다. 주희는 정이가 말한 성즉리(性卽理)의 관점을 받아들여 성을 형이상의 도덕본체로 설명한다. 형이하의 측면에서 심은 기의 핵심이지만 심 가운데 부여된 리는 형이상의 심이다. 주희는 성(性)은 태극과 같고 심은 음양과 같다고 말했다. 텅 비어 있고 밝으면서도 만물에 감응하는 것이 심이고 만물에 감응할 때 그 속에 들어 있는 도리가 성이며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정이다.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아직 발동하지 않은 상태를 중(中)이라 하고 이미 발동하였지만 모두 정당한 법도에 들어맞는 상태를 화(和)라 한다. 주희의 성즉리 체계에서 성은 천리가 사람과 사물에게 품수(稟受)된 것이다. 리일분수는 전체 또는 일반을 가리키며 세계의 통일성을 대표한다. 분수(分殊)는 부분 또는 개별을 가리킨다. 세계의 다양성을 대표한다. 전자 크기의 10만배 크기가 원자핵 크기이고 원자핵 크기의 10만배 크기가 원자 전체의 크기다. 


몸의 다른 세포는 다 바뀌어도 뇌세포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197 페이지) 핵심은 뇌세포는 변함없이 존재하므로 항상 나는 나라는 것이다.(김대식 지음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95 페이지) 우리의 뇌는 진화적 계층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고고학 박물관이다. 아래로부터 뇌간(파충류의 뇌), 해마(현재의 뇌), 대뇌피질(미래의 뇌)의 구조다. 나의 본질은 정보다. 생명은 정보 자체가 유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주자학뿐 아니라 중국 고대철학에서 우주와 자연은 천(天)이라 불렸다. 천은 무극이자 태극을 달리 부르는 명칭으로 태극이 음양을 낳는 까닭을 도(道)라 하고 자연의 이법과 모든 사물들에게 부여하는 속성을 리(理)라 하였다. 


주희가 태어나기 전 북방에서 일어난 거란이 성장하여 국호를 요(遼)로 바꾸고 송을 압박했고 여진 세력도 금(金)을 세우고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송은 금과 연합하여 요를 멸하였으나 금에게 송의 수도 개봉(開封)이 함락되고 황제 휘종과 흠종이 금에 끌려갔다. 1127년 5월 남경에서 고종이 즉위하면서 남송시대가 시작되었다. 남송은 주화파 진회의 주도로 금에게 막대한 공물을 바치는 조건으로 화친하며 명운을 연장하고 있었다. 주희는 백약이 무효한 관료들의 부패로 썩어빠진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고 황제를 교육하면서 백성들의 도덕을 바로잡아 북방의 옛 강토(疆土)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실천을 바탕으로 한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새로운 학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주희는 법가를 공리주의에 빠진 형이상학이 없는 사상으로 보았다. 주자학이 다른 철학이나 학문과 확연하게 다른 부분은 학자는 국가나 사회 또는 백성들을 위하여 도심을 실현하고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한 데 있다.(223 페이지) 양자역학에서는 파동함수를 통하지 않고서는 양자들의 행동을 알 수 없다. 양자들은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다가 우리가 관찰하거나 측정하면 파동함수가 붕괴해 한 가지 상태로 결정된다. 


주자학은 1313년 원나라 인종 때부터 1912년 청나라 말까지 600년간 중국의 관료선발 기본교재 및 교육과정으로 지정되었다. 주희는 고종, 효종, 광종, 영종 등 네 황제에게 국가 당면 현안을 해결할 정책을 제안하는 봉사(封事)를 수차례 올리고 시강을 하고 직접 주대하여 직언을 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관직에 있을 때는 토지 경계를 바로잡았고 조세제도를 개혁하였고 재난이 닥쳤을 때 부세를 경감하였고 사창(社倉)을 지어 백성들을 구제하였고 지방 호족들의 탈세를 막고 불법을 탄핵하는 등 과감한 개혁정책을 펼쳤다. 각종 의례가 인간의 감정을 솔직하고 적절하게 표출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간략하게 하고 음식을 검소하게 하는 등 풍속을 바로잡았다. 항상 거친 음식과 의복으로 검소한 생활을 몸소 실천하였다.(246 페이지) 


주자학의 유기체적 세계관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주자학의 유기체적 세계관에서 리는 우주만물을 통합적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이면서 이를 유지하고 운영해나가는 정보다. 유기체적 세계관을 양자역학적으로 장(場)이론이라 할 수 있다. 우주 전체는 힉스장 즉 부단(不斷)한 양자요동으로 춤춘다. 우주 공간 자체는 소립자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부단히 역동적으로 생성, 소멸한다. 도덕은 단순한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하는 것, 헌신하는 것이다. 주자학은 정신, 육체의 일원론이다. 주자학은 실천을 우선하는 실용주의다. 주자학이 우리 시대에 유용하게 활용될 여지는 크다. 이런 점에서 주종욱의 책은 주목할 만하다. 궁금증은 주자학을 근본으로 한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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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이는 세상 : 물리 편 - 사진과 그림으로 단번에 이해하는 81가지 친절한 물리 안내서 아는 만큼 보이는 세상
송경원 옮김, 가와무라 야스후미 외 감수 / 유노책주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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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은 왜 붉을까?란 제목의 챕터에 하늘의 색은 무지개 색 순서대로 변한다는 글이 있다. 빨주노초파남보가 아니라 보남파초노주빨이리라. 하늘의 색깔은 빛과 공기의 조화에 의해 나타난다. 공기가 없는 우주에서는 빛이 산란하지 않아 검은색이다. 빛은 파장이 짧을수록 산란이 잘 일어난다. 구름은 물 등의 수많은 입자가 모여 만들어진다. 물 입자는 공기 입자보다 크기 때문에 태양 빛이 구름을 통과하면 모든 색의 빛을 다 산란시킨다.(Mie Scattering) 미에는 발견자인 구스타프 미에에서 온 이름이다. 이 때문에 하얗게 보인다. 파란색 빛이나 보라색 빛은 파장이 짧아 산란하기 쉬워 다른 색빛들보다 훨씬 많이 흩어진다. 그래서 우리 눈에 하늘은 물론 하늘이 비친 바다도 파랗게 보인다. 


바닷물이 파란 또다른 이유는 빨간색, 노란색, 주황색 빛 등은 바다에 닿는 순간 물에 흡수되지만 빨간색 계열과 반대되는 파란색 계열의 빛은 바닷물을 통과해 바닷속 물질이나 플랑크톤 등에 부딪히며 반사, 산란되어 바다가 파랗게 보이는 것이다. 박명은 태양이 지평선 아래에 있더라도 일부 빛이 상층 공기층에서 반사, 산란하여 발생하는 현상이다. 일출 전이나 일몰 후 얼마 동안 태양이 보이지 않아도 하늘이 희미하게 밝은 것을 박명(薄明)이라 한다. 빛은 평평한 면에 부딪힐 때의 각도(입사각)와 반사될 때의 각도(반사각)가 같다. 물체가 빛을 받을 때 반사하는 정도인 반사율이 높으면 거울처럼 실물을 비춰낸다. 입사각이 70도를 넘으면 반사율이 급격하게 높아진다. 호수 수면을 바라보는 각도가 수평에 가까워질수록 거울에 가까운 상태가 된다. 


등대의 불빛은 전구 앞에 놓인 프레넬 렌즈를 통해 한곳에 모인다. 이렇게 모인 빛은 일직선으로 나아가므로 멀리까지 전달된다. 프레넬 렌즈는 두껍고 무거운 볼록렌즈 대신 볼록렌즈의 표면 부분만 모아 조합한 것이다. 빛은 공기 중에서 물속이나 유리 등 다른 물질로 들어갈 때 꺾이는 성질이 있다. 빛은 색에 따라 꺾이는 각도가 다르다. 비 갠 직후 공기 중에 물방울이 떠다닐 때 태양을 등지고 서면 태양 빛이 물방울에 부딪혀 일곱 가지 색으로 나뉜 무지개를 볼 수 있다. 태양 빛이 물방울 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여러 색으로 분해되기 때문이다. 무지개는 지면에서 위로 42도 부근에서 보인다.(빛은 색에 따라 꺾이는 각도가 다른 점 참고) 아침에는 서쪽 하늘, 저녁에는 동쪽 하늘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태양이 머리 위에 떠 있는 낮에는 지면과의 각도가 42도를 넘어 무지개를 보기 어렵다. 무지개는 원래 원형이지만 아랫부분이 지면에 가려 반원 형태로 보인다. 


비행기를 타거나 등산 중 절벽에 서면 아랫부분까지 둥근 무지개를 볼 수 있다. 사막이나 한여름의 고속도로 등에서 땅바닥에 물이 고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땅거울이라 한다. 땅거울은 실제 위치보다 아래에 사물이 보이는 아래신기루의 하나다. 바닷물은 거의 이동하지 않고 바람에 의해 생긴 해수면의 진동이 주위로 퍼져나가면서 에너지만 전달된다. 어떤 한곳에서 생긴 진동이 주위로 퍼져나가는 현상을 파동이라 한다. 영하 10도 이하의 기온이 지속되면 호수 표면은 얼어붙는다. 밤이 되어 기온이 내려가면 낮 동안 얼어 있던 호수 표면의 얼음이 수축하면서 균열이 생기고 그 틈으로 물이 들어가 얇은 얼음이 생긴다. 낮이 되어 기온이 오르면 얼음이 팽창하여 밤에 만들어진 얇은 얼음이 깨지면서 솟아올라 얼음길이 생긴다. 


얼음 위가 미끄러운 이유는 신발과 얼음의 표면 사이에 생기는 얇은 물막 때문이다. 얼음은 압력을 받으면 물로 변하는 성질이 있다. 얼음은 압력을 받으면 녹는점이 낮아져 물로 변하다가 압력이 사라지면 다시 얼음으로 돌아간다. 강의 상류는 경사가 급하고 흐르는 물의 속도가 빠르므로 침식 작용이나 운반 작용이 더욱 활발하다. 이렇게 오랜 시간 침식 작용과 운반 작용이 반복해서 일어나면 좁고 길게 파인 V자 형태의 계곡이 만들어진다. 


높은 곳에 있는 폭포 물은 위치 에너지(포텐셜 에너지)를 갖는다. 이 물이 중력을 받아 아래로 떨어지면 물의 위치 에너지가 운동 에너지로 바뀐다. 폭포 아래에 있는 웅덩이에 부딪힌 다음에는 운동 에너지가 열 에너지로 전환되어 물의 온도를 높이는 데 사용된다. 연잎이 물을 튕겨 내는 것을 연잎 효과라 한다. 이슬은 기온이 낮아지는 새벽에 공기 중의 수증기가 응축하여 생긴 물방울이다. 이 물방울이 동그란 모양을 유지하는 것은 표면 장력의 작용 때문이다. 액체는 형태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지만 어느 정도 뭉치려는 성질이 있다. 각 물질의 분자들이 서로 끌어당기는 분자간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체처럼 움직이는 물질은 분자간 힘이 표면의 면적을 되도록 작게 만들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 힘을 계면장력이라 한다. 액체일 때는 표면 장력이라 한다. 물은 액체 중에서도 표면 장력이 크다. 


난류(亂流)로 인해 유체 마찰을 줄이는 구조를 리블렛이라 한다. 공기에도 무게가 있다. 기압은 위에서 아래로만 작용하는 힘이 아니다. 아래에서든 옆에서든 똑같이 작용한다. 공기 중에서 낙하하는 물체에는 중력과 공기 저항력이 작용한다. 무거운 쇠구슬에는 공기 저항력보다 중력이 훨씬 크게 작용하므로 쇠구슬은 가벼운 나뭇잎보다 빨리 땅에 떨어진다. 낙하산처럼 무게에 비해 면적이 넓은 나뭇잎에는 중력이 작게 작용하고 공기 저항력은 크게 작용하므로 낙하 속도가 느려진다. 나뭇잎은 떨어지면서 방향을 바꾸기 때문에 공기 저항력도 그때마다 달라진다. 


오로라는 북극이나 남극 주변 지역에서 관측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 현상이다. 오로라가 생기는 원리는 지구의 자기장 및 플라스마와 관련이 있다. 지구는 북극과 남극에 자극을 가진 하나의 커다란 자석이다. 북극과 남극 사이에는 자기력이 작용한다. 자기력이 작용하는 공간을 자기장이라 한다. 태양에서 우주 공간으로 방출된 플라스마(전기를 띤 입자)의 흐름을 태양풍이라 한다. 지구는 보호막 역할을 하는 자기장이 둘러싸고 있어서 태양풍은 지구를 피해 휘어진 형태로 지구 뒤쪽으로 흘러가 플라스마 덩어리를 만든다. 그 후 플라스마 속의 전자가 지구의 자기력선을 따라 가속되어 극지방으로 쏟아져 내린다. 이때 전자는 대기 중의 원자나 분자와 부딪혀 빛을 낸다. 이를 오로라라 한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전기를 띤 입자가 지구 상공에서 대기와 부딪혀 빛을 내는 현상을 말한다. 


전자는 부딪히는 원자나 분자의 종류에 따라 색이 다르게 나타난다. 모래사장과 바닷물은 똑같이 뜨거워지지 않는다. 비열 차이 때문이다. 비열이란 물질 1그램의 온도를 1도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이다. 물의 비열은 다른 물질보다 훨씬 크다. 모래의 비열은 바닷물보다 작기 때문에 온도가 빨리 올라가 금방 뜨거워진다. 밤에는 낮과 반대로 모래사장보다 바닷물이 더 따뜻하다. 모래는 비열이 작아서 금방 식는 데 비해 바닷물은 비열이 커 온도가 잘 변하지 않는다. 


GPS는 인공위성을 이용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시스템이다. 고도 약 20,000km 상공에서 약 30대의 GPS 위성이 지구 주위를 돈다. 천연 다이아몬드는 약 10-33억년전 지하 약 200km 부근의 맨틀 내 깊숙한 곳에서 생성된 탄소 결정체다. 맨틀 내에서 만들어진 다이아몬드는 수억년 전 화산이 분출할 때 마그마와 함께 지표면 근처까지 빠르게 이동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상승하면 다이아몬드도 흑연으로 변하기 때문에 단시간에 올라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만들어진 화성암을 킴벌라이트라 한다. 때로 다이아몬드가 들어 있다. 남아프리카 등에 분포한다. 


지구의 공전 운동에 따라 별의 위치가 달라지는 현상을 시차(視差)라 한다. 국제우주정거장은 왜 떨어지지 않을까? 매우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속 약 2.8만 km의 매우 빠른 속도로 지구 주위를 돌기에 떨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1만년 이상 시간이 흐르면 생물의 뼈는 주변의 돌과 거의 같은 성분을 지닌 화석이 된다. 화석 중에는 동물의 피부 무늬나 깃털의 흔적, 발자국, 식물의 잎맥 등이 도장이 찍히듯 진흙에 각인된 뒤 오랜 시간에 걸쳐 진흙이 단단한 암석으로 변하면서 만들어진 생흔화석도 있다.


맨틀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고체이지만 오랜 시간에 천천히 움직인다. 지하 200km 정도에 있는 상부 맨틀은 온도가 약 1,500도에 달한다. 특히 주변보다 온도가 더 높은 부분은 위로 이동한다. 위로 올라갈수록 주변의 압력이 점차 낮아지므로 지하 100km 부분에서 맨틀은 끈적끈적한 액체가 된다. 이것이 마그마다. 마그마가 더 위로 올라가면 지하 1-10km 부근에서 많은 양의 마그마가 섞여 있는 마그마 방이 만들어진다. 지표면에 가까울수록 주변의 압력이 더욱 낮아지기 때문에 마그마에 녹아 있던 물이나 이산화탄소는 거품으로 변한다. 압력이 낮아지면 녹는점이나 끓는점이 비교적 낮은 물질은 액체나 기체로 변해 밖으로 빠져나온다. 거품을 포함한 마그마는 주변 암석보다 가벼워서 지표면의 갈라진 틈을 통해 지상으로 뿜어져 나온다. 이를 분화라 한다. 


태고의 지구는 자전 주기가 약 다섯 시간이었다. 달이 미치는 인력의 영향으로 서서히 속도가 느려져 지금과 같은 주기가 되었다. 지구의 자전은 조석(潮汐) 마찰로 인해 조금씩 느려진 것으로 추측된다. 달과 지구는 서로 인력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달과 가까운 쪽에서는 달이 바닷물을 끌어당겨 밀물이 된다. 지구가 달과 지구의 공통 질량 중심을 회전하면서 나타나는 원심력 때문에 달 반대쪽의 먼바다에서도 바닷물이 부풀어 올라 밀물이 된다. 이때 중간에 있는 바다는 바닷물이 쪼그라들어 해수면이 낮아지는 썰물이 된다. 


유성의 정체는 대부분 우주 공간을 떠도는 티끌이나 먼지다. 이 티끌이나 먼지가 지구 중력에 이끌려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것이다. 크기가 큰 티끌이나 먼지는 다 타지 않고 지상으로 떨어진다. 이것을 운석이라 한다. 태양보다 30배 이상 질량이 큰 항성이 수명을 다하면 초신성 폭발을 일으킨 뒤 계속 수축하다가 블랙홀이 된다. 딸기처럼 붉은빛 또는 분홍빛 달이 뜨는 이유는 아침 해나 석양이 붉게 보이는 것과 원리가 같다. 지평선 가까이에 달이 있을 때 달빛 중 빨간색 빛이 대기에 흡수되지 않고 우리 눈에 도달하기 때문에 붉게 보인다. 수퍼문의 반대는 마이크로문이다. 


달과 태양은 지구에서 바라볼 때 겉보기 크기가 거의 같지만 달이 지구에 가까이 왔을 때는 달의 겉보기 크기가 조금 더 크다. 이때 일식이 일어나면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이 일어난다. 평소에는 태양 빛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개기일식 때면 관측할 수 있는 태양의 대기층을 코로나라 한다. 달이 지구에서 멀어졌을 때 일식이 일어나면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지 못해 태양의 가장자리가 반지와 같은 모양으로 빛난다. 이를 금환일식이라 한다. 6,600만년전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충돌한 운석은 지름 약 160km의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양초는 심지에 불을 붙이면 양초의 재료인 왁스가 녹아 액체가 되고 이 액체 왁스가 심지를 타고 올라가 불이 붙은 심지에 가까워지면 기체로 변한다. 그 기체(왁스 증기)가 공기 중의 산소와 만나 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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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미션 이야기 - 인공위성 만드는 물리학자 황정아 박사의
황정아 지음 / 플루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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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宇宙船)은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로 나가는 모든 인공적 물체다. 우주선 중 지구 주위를 주기적으로 도는 모든 물체를 인공위성이라 한다. 400km 고도에서 지구 주위를 도는 우주정거장도 인공위성의 일종이다. 540km 고도에서 지구 주위를 돌며 먼 우주를 관측하는 허블우주망원경도 인공위성의 일종이다. 화성, 목성 등 태양계의 다른 천체 주변까지 멀리 나가 비행하는 우주선은 우주 탐사선 또는 탐사선이라 불린다. 


발사 후 원하는 목표 지점으로 유도하는 기능이 있으면 미사일, 없으면 로켓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방향을 유도하는 기능이 있는 로켓들이 개발되고 있다. 인공위성을 우주로 실어나르는 데 필요한 로켓을 제작하는 기술은 군사용 대륙간 탄도 미사일 제작 기술과 같다. 미사일의 로켓 꼭대기에 인공위성을 실으면 우주용 로켓이고 미사일을 실으면 군사용 로켓이 된다. 작은 나사 같은 것, 또는 작은 기술이라도 인공위성과 로켓 개발과 관련된 기술은 국가간 이전이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한미 미사일 지침 같은 불공정한 규제가 생겼으나 2021년 5월 21일 폐지되었다. 


액체연료는 고체연료보다 다루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액체연료로만 발사체를 만드는 나라는 거의 없다. 고체 연료를 사용하는 로켓은 원하는 궤도에서 추력(비행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 조절이 불가능하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단순하게 비유하면 인공위성은 승객이고, 로켓은 버스나 택시다. 인공위성은 특수 목적을 위해 우주로 보내는 물체다. 위성을 원하는 궤도로 보내려면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로켓이 필요하다. 로켓은 연료와 화학 반응물 등 추진체를 연소하여 인공위성을 목적지인 궤도에 올려놓는다.


위성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연소를 끝낸 로켓은 일반적으로 분리되어 지상으로 떨어진다. 이때 분리된 로켓의 잔해물들은 대부분 해상으로 떨어지도록 설계한다. 인공위성은 임무, 형상, 궤도, 무게에 따라 나눌 수 있다. 위성이 갈 수 있는 자리를 임무 궤도라고 한다. 이 궤도에 따라 위성이 움직이는 고도가 달라진다. 임무가 지구 관측인지, 통신이나 기상인지 등에 따라 저궤도(250~2000km), 중궤도(2000~36000km), 정지궤도(36000km)로 달라진다. 궤도는 위성이 우주에서 다니는 길이다. 지구의 자전 속도와 같은 속도로 지구 주위를 돌 수 있는 36000km의 정지궤도가 주목된다. 


모든 위성이 원궤도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위성체의 궤도가 완벽한 원에서 벗어나 있는 정도를 수치화한 것이 이심률(離心律; eccentricity)이다. 이심률이 0이면 완벽한 원이고 0~1 사이면 타원궤도고 1은 포물선 탈출궤도이고 1보다 크면 쌍곡선 궤도다. 타원궤도에서 초점에서의 거리가 가장 먼 지점이 원지점이고 가장 가까운 지점이 근지점이다. 이 두 지점을 연결한 선이 궤도의 장축선이다. 지구 정지궤도는 적도상의 원궤도를 말한다. 정지궤도 위성은 지구 반지름(6400km)의 6.6배에 해당하는 고도 36000km 정도에서 움직인다. 


정지궤도의 단점은 궤도면이 적도로 제한되어 있어 자리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이다. 이를 우주영토 경쟁이라 한다. 몰니야궤도는 이심률이 매우 커서 원지점이 39400km이고 근지점은 1000km다. 한번 발사한 인공위성은 지구로 돌아올 수 없다. 우주 공간에서 계속 살아남아야 하는 인공위성은 태양전지판을 통해 전력을 공급받는다. 인공위성은 태양이 내뿜는 복사열을 쉬지 않고 받는다. 지구가 미치는 중력의 영향도 끊임없이 변한다. 다른 행성이나 혜성처럼 지구 바깥에서 작용하는 힘도 인공위성에 영향을 미친다. 


위성의 자세는 중력과 복사압 때문에 계속 흔들리고 틀어진다. 다시 원래 자세로 돌아와야 임무를 오래 수행할 수 있다. 인공위성이 살아가는 우주는 환경이 극한적인 곳이다. 인공위성은 크게 버스(본체)와 탑재체로 나뉜다. 별이 수명을 다해 폭발하면 고온 가스가 발생하는데 이 가스는 식으며 새 별을 탄생시킨다. 고온가스를 규명하면 우리 은하의 진화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원자외선 분광기는 초신성 폭발과 그 주변에 분포하는 성간물질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실도 많이 발견했다. 원자외선 분광기는 오로라를 광학적으로 관측하는 동시에 자외선 영역에서 우주 전체를 관측하는 우주망원경 역할을 한다. 


우주 환경 시험이 중요하다. 이는 위성체가 극한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고 그보다 먼저 발사 과정에서 지구의 중력을 벗어날 때 급격한 중력가속도 변화와 충격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성이 우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지상에서 미리 확인해야 한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에 맞게 가능한 한 많은 시험을 해보는 것 외에는 우주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진동 시험은 위성체의 임무나 모양에 관계 없이 필요하다. 이 시험은 발사체에 실린 위성체가 지구 중력권을 벗어나 우주로 갈 때 발생하는 강한 진동과 충격을 견딜 수 있는지, 부품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진동 시험에도 종류가 있다. 위성체에 가해지는 다양한 진동 중 주기적인 진동을 가정하는 시험을 정현파 진동 시험이라 한다. 정현파는 같은 파형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외부 자극을 의미한다. 주기적 신호의 시간 간격을 주파수라고 한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주파수가 공교롭게도 위성체 고유 진동수와 일치하면 공진(共振)이 나타날 수 있다. 공진이란 물체의 고유 진동수와 외부 환경의 진동수가 비슷하거나 일치하여 물체의 진동이 커지는 것을 말한다. 소리가 만들어내는 음파에도 물리력이 존재한다. 음파의 주파수에 해당하는 외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최대 음향 진동 환경은 발사체가 지구 표면을 출발하는 이륙 개시 순간과 속도가 높아지면서 음속을 통과하여 초음속으로 넘어가는 순간 발생한다. 지속 시간은 최대 10초 이내다. 발사 과정에서 변화하는 음향 진동은 기계적으로 발생하는 진동과 함께 위성체 부품에 심한 랜덤 진동 형태로 전달된다. 우리나라의 로켓 발사장은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다. 다양한 로켓을 발사할 수 있는 기술을 아직 확보하지 못한 까닭에 대부분의 위성을 해외 발사장에서 해외 발사체로 발사하고 있다. 애지중지 소중하게 만든 인공위성을 인천국제공항까지 보내 비행기에 실어서 운송하고 이후 해외 공항에서 발사장이 있는 외딴 지역까지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발사 센터는 주로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과 동떨어진 해안에 있다. 


인공위성이 우주로 나가기 위해서는 지구의 강한 중력 영향권을 벗어나야 한다. 지구가 잡아당기는 중력을 이겨내고 대기권 밖으로 나가려면 매우 큰 운동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운동에너지를 만들어주는 것이 로켓이다. 로켓은 뉴턴의 운동 3법칙 중 세 번째인 작용 - 반작용 법칙에 따라 중력을 이기는 힘을 얻는다. 로켓의 엔진이 연료를 태우고 가스를 지구 표면 방향으로 분사하면 그와 같은 힘으로 가스 분사의 반대 방향인 우주로 날아간다. 


많은 나라가 인공위성을 우주로 보내는 데 결정적 변수는 발사 비용이다. 중대형 로켓의 경우 1kg당 2,000만원의 비용이 든다. 인공위성을 만들고 우주로 발사했다고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인공위성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인공위성과 지상의 통신이 마지막 고비다. 위성을 힘들게 우주로 보내는 데에는 목적이 있다. 


과학위성이라면 과학적 이론을 입증할 관측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고 상용위성이라면 산업체에 꼭 필요한 정보가 있어서 우주에 보내는 것이다. 위성은 지상국과의 교신이 가능해지면 우주에서 획득한 날것의 자료를 그대로 보낸다. 이렇게 방대한 분량의 1차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이 지상국의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다. 우주 탐사는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정말 너무 늦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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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가 남다른 과학고전
조숙경 지음 / 타임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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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 박사 조숙경의 ‘클래스가 남다른 과학 고전‘은 20세기 과학 고전 12권에 대한 설명을 씨줄로 삼고 저자가 해당 책 또는 저자들과 이룬 접점을 날줄로 삼아 써내려간 책이다. 저자는 개별 고전들에 각각 제목을 붙였다. 가령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에 대해서는 과학자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란 제목을 붙였고,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대해서는 과학은 유토피아를 가져오는가?란 제목을 붙인 것이다. 각 고전에 얽힌 이야기를 쓰고 별도의 편성으로 짧게 원저를 소개했다. 저자는 책을 쓰면서 책의 내용을 얼마나 그리고 어느 정도 깊이로 다루어야 하는지 가장 많이 고민했다고 말한다. 가령 저자는 자신이 읽은 방식으로만 기술하다 보면 신선하다는 평가는 있겠지만 일부 독자의 흥미를 잃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20세기 과학 고전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소 고색창연할 수 있지만 문제의식이 분명하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책을 고른 것이다. 하이젠베르크가 보어를 만나지 못했다면 과학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란 궁금증을 표한 저자는 사람(과의 만남), 사건(과의 만남)을 주요 주제로 삼아 책을 서술하였다. 저자는 자신이 갖가지 난관을 헤치며 과학사 학도로 변신해 간 것은 파인만이 말한 것처럼 과학이 자신에게 아주 재미있고 즐거운 일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게 가장 흥미 있는 책은 제이컵 브로노프스키의 인간 등정의 발자취다. 이 장의 제목은 누가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가져왔는가?다. 저자는 앨런 차머스의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접하고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이해되지 않아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지만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을 실천하기로 하고 다섯 번쯤 읽으니 내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말을 했다. 브로노프스키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 요인에 대해 탐색했다. 그 중 하나로 브로노프스키는 인간은 어떻게 동물과 다른 여러 가지 손재주와 관찰력을 갖추었으며 깊은 사고를 하는 존재가 되었는가?를 들었다.


브로노프스키는 손은 정신의 칼날이라는 조각가 헨리 무어의 말을 인용한 인물이기도 하다. 브로노프스키는 특이한 존재인 인간을 동물과 달리 풍경 속의 한 형상이 아니라 풍경을 만들어가는 주체라고 설명하며 인간을 그런 주체가 되게 한 요인으로 상상력, 이성, 정서적 예민함, 강인함을 들었다. 브로노프스키는 이 네 요인을 키워드로 책을 서술했다. 브로노프스키는 원자폭탄이 가져온 엄청난 비극과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일어난 참혹한 폐해는 과학적 연구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과 지식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으며 행동한 인간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를 보며 나는 조선이 망한 것은 성리학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교조적으로 수용한 조선 집권층의 경직성과 폐쇄성 때문이라는 생각을 반추해 보았다. 브로노프스키의 책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다윈이 규명한 시간적 순방향으로 흐르는 생물학적 진화와 대비되는 시간적 역방향으로 흐르는 문화적 진화다. 저자가 다룬 세 번째 책은 과학의 조건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설명한 칼 포퍼의 과학적 발견의 논리다. 포퍼는 과학이 다른 어떤 학문보다 끊임없이 발전한 것은 반증가능성 때문이라고 설명한 인물로 그에 의하면 어떤 과학 이론도 참임을 보장받을 수 없으며 반증될 수 있을뿐이다. 


사람과 사건을 논했거니와 저자는 우리나라에 과학사를 도입한 김영식 교수와의 만남을 인상적으로 풀어냈다. 즉 왜 공부를 계속하려고 하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오라는 김영식 교수의 말에 저자는 학자란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고, 제대로 된 글을 쓰려고 계속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제시했다. 이런 사연과 함께 소개된 책은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다. 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 패러다임이다. 언어학에서 가져온 개념인 패러다임은 한 시대가 공유하는 과학적 사고와 이론, 법칙 등 연구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쿤의 패러다임 이론의 주요 특징은 과학 발전이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이고 혁명적이라는 점이다. 


과학자들이 한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옮겨가는 것은 충분히 심사숙고하고 실험 결과를 해석했다기보다 게슈탈트 전환과 같은 상당히 돌발적인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도 주목할 만하다. 쿤의 주장은 과학 지식이 관찰과 실험을 거쳐 누적적으로 축적될 뿐 아니라 진보한다는 귀납주의적이고 실증주의적인 과학관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패러다임의 근본적 창출을 이루어낸 사람들은 기존 패러다임에 익숙하지 않거나 그것에서 이익을 취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기존 패러다임에서 자유롭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안을 볼 수 있는 젊은 세대와 이방인들이라는 쿤의 말로부터 용기와 희망을 가졌다고 말했다. 


저자는 스스로를 삶의 대부분을 경계인으로 산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관찰은 객관적인가?란 제목으로 노우드 러셀 헨슨의 과학적 발견의 패턴을 설명한다. 저자는 남편과 함께 헨슨의 책을 1년 안에 번역 해내리라는 자신감을 가졌지만 5년이 걸렸다고 했다. 헨슨은 과학철학이 없는 과학사는 맹목적이고 과학사가 없는 과학철학은 공허하다는 말을 했다. 헨슨의 책은 꼭 읽을 필요가 있다. 저자에 의하면 헨슨은 현대물리학의 본질적 특성인 소립자 묘사 불가능성과 개별성, 파동 - 입자 이중성, 불확정성 원리, 상보성 원리 등의 기본 개념을 설명하고 이들 개념을 얻는 과정은 철학자들이 제시하는 단순한 귀납 과정이나 가설 연역 과정이 아니라 훨씬 더 복잡하고 역동적이며 심오한 지적 투쟁의 과정인 귀추라고 주장했다.


헨슨은 관찰에서 이론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찰이 이론 의존적이라는 주장을 한다. 헨슨에 의하면 과학자들은 실험으로 얻은 데이터를 이해할 수 있는 개념적 패턴에 짜맞출 수 있기를 열망하며 기존 지식 안에 유형화하거나 통합시키려 한다. 저자는 박사 논문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건은 독창성이라 말한다. 누구도 제시하지 않았던 새로운 이론이나 설명 또는 해석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 장에서 저자는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를 다룬다. 제목은 과학자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다. 이 장은 하이젠베르크와 보어의 만남을 다룬 장이다. 원자폭탄 투하 소식을 듣고 커다란 충격에 빠진 하이젠베르크는 과학자의 발견이 대참사로 이어졌을 때 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라고 물었다. 하이젠베르크는 과학 발전이 선한 방향으로 향하고 지식 확장이 인간의 복지를 위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지만 과학적 결과가 어떻게 사용될지 아직 모르는 과학자가 과학 연구물 사용 결과에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자는 하이젠베르크가 자신에게 진정한 전문가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분명한 답을 제시해주었다고 말한다. 전문가란 그가 관계하는 분야에서 매우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전문으로 하는 분야에서 사람들이 범할 수 있는 가장 큼직한 오류도 알고 있어서 그 오류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는 전문가란 좁은 분야에서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이라는 보어의 말과 결이 다르다. 


DDT의 문제점을 널리 알린 레이첼 카슨이 공산주의자일 것이라는 추측까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일곱 번째 장에서 그 유명한 침묵의 봄을 만난다. 제목 자체가 시적이거니와 카슨은 작가가 되려 한 인물답게 환경 고발서임에도 소설처럼 부드럽게 읽히는 책을 썼다. 개인적인 일이지만 나에게 카슨은 우리를 둘러싼 바다의 저자로 더 유명하다. 카슨은 침묵의 봄을 암 투병 중에 썼다. 


찰스 스노의 두 문화는 낮에는 과학자들과 실험실에서 지내고 밤에는 문학 동료들과 어울리던 저자의 이력이 낳은 문제작이다. 두 진영인들은 어울리지 않았다. 서로 몰이해한 결과다. 아홉 번째 책으로 왓슨의 이중나선을 다룬 저자는 최후 승리자로서 성공 스토리를 담고 있는 이중나선이 로잘린드 프랭클린이라는 사라져 간 과학자의 존재를 다시 부각했고 프랭클린의 성과를 세상에 널리 알렸다고 썼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과학 고전에 든 것이 재미 있다. 저자는 왜 SF(사이언스 픽션)를 미래 사회학이라고 말하는지 십분 이해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brave는 ’멋진‘이라고 하기보다 용감한, 무모하면서 무지한 등이라고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용어는 세익스피어의 템페스트(폭풍우)에서 따온 것으로 미래 과학 기술이 폭풍처럼 인간 사회의 모든 것을 휩쓸 것이라는 무서운 메시지를 전하는 경고나 마찬가지다. 등장 인물 존이 이 문장을 사용한 것은 소마(정신안정제)를 배급받으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말할 때다.


다소 생소한 책이 열한 번째 장에서 다룬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다. 인류는 계속 발전할 수 있는가?를 주제로 설명한 책이다. 흥미로운 점은 리프킨이 스티븐 제이 굴드에게서 심각한 과학적 오류를 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엔트로피는 물리적 현상에 방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리프킨은 과학과 기술이 더 질서 있는 사회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고 기존의 에너지가 새로운 에너지로 대체되는 데 사용되는 기술은 사실 에너지 전환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마지막 열두 번째 책은 로이 포터의 2500년 과학사를 움직인 인물들이다. 제목은 과학에서도 만남은 중요한가?다. 포터는 과학자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들이 처한 환경과 상황, 시대와 문화를 이해해야 할뿐 아니라 그들의 장점은 물론 한계까지도 다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포터는 역사를 위인론으로 쓰던 시대는 지났으며 과학의 진보를 영웅적 정신의 승리로 보는 것은 천박하다고 말했다. 


과학자의 개별 업적은 그가 살았던 시대정신의 총합이지 과학적 천재의 두뇌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이를 풀이하면 위대한 과학자가 위대한 성과를 낸 것은 시대와, 사람과 만났기 때문이라는 말이 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궁금증이 생긴다. 저자에게 책 또는 저자와 연관된 바가 많지 않았다면 어떤 과학 책을 썼을까?란 궁금증이다. 책에 대해 비판할 부분이 아예 없었을까?란 궁금증에서 나오는 아쉬움도 든다. 그럼에도 이 책은 알기 쉽게, 저자 자신의 경험과 관련지어 수준 높은 책들을 논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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