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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 역사지리학자와 함께 떠나는 걷기여행 특강 1
이현군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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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간을 그 자체로 느끼지 못한다. 공간에 남겨진 흔적을 통해 시간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의 저자 이현균은 장소에 남아 있는 시간의 흔적을 보기 위해 떠나는 것이 역사지리 답사라 말한다.

그의 말을 듣고 흔적의 의미를 생각한다. 저자는 역사는 계속 상상으로 이야기를 이어가야 하기에 어떤 면에서는 공허한 반면 지리 답사는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저자에 의하면 답사는 두 가지로 나뉜다. 책에서 본 내용을 확인하는 것과 장소 자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접하는 것이다.

저자는 문화를 인간이 자연에 변화를 주는 것, 인간이 자연에 어떻게 그리고 왜 손을 댔는지를 찾는 문제로 설명한다.(12, 13 페이지) 문화사는 결국 왕조사, 시대사, 연대기별 역사 해석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 수단이 될 것이다. 답사에서 중요한 것은 장소가 하는 말에 귀기울이는 것이다.(15 페이지)

답사의 첫 걸음은 스스로 답사 경로를 짜는 것이다. 저자가 권장하는 답사는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시간을 발견하는 방식이다. 답사하는 과정에서 현대부터 거슬러 올라가 고대까지 자연스럽게 접하는 방식이다.(16 페이지)

저자는 개별 장소보다 도시나 지역 전체를 조망하는 경로를 짜볼 것을 추천한다. 전체를 조망한 후에는 지역의 범위를 나누어 소규모 지역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을 추천한다. 또한 산을 중심으로 한 답사, 하천을 따라 걷는 답사,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적합한 장소를 찾는 답사를 추천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도성을 쌓은 기준에 대해 서술된 부분이 있다. 조선 초 한양 정도(定都) 후 어디에 성곽을 쌓을까를 고민하고 있던 터에 어느 겨울날 눈이 녹은 쪽과 녹지 않은 쪽이 선명하게 나눠진 것을 보고 그것을 하늘의 계시로 보고 그 경계를 따라 성을 쌓았다고 한다.

기준이 된 산은 백악(북악), 인왕, 목멱(남산), 타락(낙산) 등이다.(대학로 뒤쪽의 나지막한 산이 낙산이다.) 저자는 좌향(坐向)이란 개념을 이야기한다. 내가 앉아 있는 쪽이 좌(坐), 바라보는 쪽이 향(向)이다.(31 페이지)

진산(鎭山)은 진호(鎭護)하다는 의미 즉 마을 뒤에 진을 치고 있어 그 지역을 보호한다는 의미이다.(31 페이지)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는 1장 조선의 심장부, 궁궐과 종로 답사, 2장 서울을 가르는 물길 청계천 답사, 3부 한양 읽기의 하이라이트, 도성 답사, 4부 성문 밖 이야기로 구성된 책이다.

저자는 도성(都城)은 군사적으로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상징적 의미를 지녔었다고 말한다.(40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조선시대의 궁(宮)은 왕이 사는 곳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국왕이 즉위 전에 살던 집, 왕위를 물려준 은퇴한 왕이 살던 곳, 국왕의 생모가 살던 곳, 왕과 왕세자의 결혼식 때 신부를 맞이하던 집 등이 모두 궁으로 불렸다.(49 페이지)

종로는 동대문과 서대문을 이어주는 중심축이다. 교보빌딩 동쪽 출입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종각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혜정교라고 적힌 표지석이 있다.(64 페이지) 이 다리는 중학천 위에 놓였던 다리로 탐관오리들을 공개처형하던 곳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왕조실록에는 '주례'의 '고공기'를 참조해 도성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한 군데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71 페이지)

저자는 한양의 경우 남대문과 북대문이 마주하지도 않고 경복궁에서 남대문으로 나가는 길이 일직선이 아닌 사실 등을 들어 조선이 '주례'의 '고공기'를 받아들였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고 말한다.(72 페이지)

개천(開川)이라 불렸던 청계천은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 조선왕조실록과 옛 지도에는 청계천이란 말이 없다. 백악, 목멱, 인왕산 계곡의 물이 모두 모여 개천이 된 것이니 지금 복원된 하천은 개천의 극히 일부이다.(82 페이지) 개천이 도성 밖으로 빠져나가는 문이 오간수문이다. 개천의 최상류는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이다.(82 페이지)

삼일교에서 동쪽을 보면 수표교가 있다.(94 페이지) 그런데 이 자리는 조선시대 수표교가 있던 곳이 아니다. 수표교는 원래 청계천 2가에 있었는데 1959년 복개공사 때 지금의 장충단 공원 입구쪽으로 옮겨졌다.

세종이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 수표석을 세워 수표교라 불리게 되었고 영희전을 다녀오던 숙종이 장희빈을 처음 만난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의 도성 안을 나누는 기준선은 종로와 청계천이다. 종로는 동대문과 서대문을 연결한 도로이고 청계천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하천이니 종로와 청계천에 의해 도성 안이 남북으로 양분된다.(105 페이지)

종종 북촌과 남촌의 구분선을 두고 종로다, 청계천이다 논쟁하는데 실제로 걸어보면 몇 분 걸리지 않는 곳이니 큰 의미가 없다. 종로와 청계천에 의해 남북으로 양분되는 도성의 북쪽 동네를 북촌, 남쪽 동네를 남촌이라 한다. 북촌, 남촌 등의 말은 황현의 '매천야록'에 나온다.(106 페이지)

저자는 숭유억불의 조선의 정체성을 거론하며 조계사는 어떻게 도심 한복판에 있는지를 묻는다. 답은 조계사는 일제 강점기에 세워졌다는 것이다.(113 페이지) 인사동 부근의 옛 지명은 관인방(寬仁坊)이다. 현재의 인사동(仁寺洞은 관인방의 인(仁)과 사동(寺洞)의 사(寺)를 합쳐 만든 지명이다.(113 페이지)

경복궁 동쪽에 팔판동(八判洞)이 있다. 여덟 명의 판서가 배출된 동네라서 붙은 이름이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임용시험이 아니었다. 과거시험과 실직(實職; 실제 벼슬)을 얻는 것은 별개였다.(115 페이지) 조선시대에는 북촌이 높은 사람들이 살던 지역이었고 남산에는 딸깍발이 선비들이 살았다.

일제 강점기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북촌은 조선시대 양반세력이 강해서 일본인들이 진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본인들은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한 남촌 쪽을 노렸다. 을지로와 명동 쪽에 근거지를 확보한 것이다.(119 페이지)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에 창의문, 인왕산과 남산 사이에 서대문, 서소문, 남대문이 있다.(126 페이지)

남산과 낙산(대학로 뒤쪽의 나지막한 산) 사이에 광희문과 동대문, 낙산과 북악산 사이에 혜화문이 있다.(126 페이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이후에도 백악을 주산으로 할 것인가, 인왕산을 주산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무학대사의 인왕산 주산론, 정도전의 백악산 주산론이 그것이다. 정도전의 견해가 받아들여졌는데 왕은 남면(南面)해야 한다는 논리가 이긴 것이다. 강북삼성병원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정동(貞洞)이 나온다. 태조(이성계)의 둘째 왕비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인 정릉(貞陵)이 있던 곳이다.

태종(이방원)이 즉위한 후 이 능을 지금의 정릉(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겼다. 정동은 덕수궁의 서쪽에 해당한다. 북한산은 진산, 북악산은 주산, 남산은 안산(案山), 관악산은 조산(朝山)이다.(159 페이지) 조선시대의 금산(禁山)은 현재의 그린벨트에 해당한다.(178 페이지)

도성 안이 유학 이념과 도성으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들 즉 종묘, 사직, 궁궐 등이 배치된 계획된 공간이라면 도성 밖은 실생활의 공간이다.(193 페이지) 도성 안 사람들이 지배층에 해당한다면 성 밖 사람들은 피지배층이다. 성 밖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았다.(196 페이지)

저자는 역사지리학의 궁극적 목표는 현재와 미래를 보는 것이라 말한다.(212 페이지) 저자는 조선시대 한양이 현재 서울과 다른 도시이듯 21세기의 서울은 20세기의 서울과 다른 도시가 되지 않을까? 라고 말한다.(220 페이지)

미래는 현재가 가진 현실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다. 저자는 미래를 생각할 때 시간의 관점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 공간과 장소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보길 바란다는 말을 전한다.(22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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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damn Particle‘에서 ‘God Particle‘로 바뀐 것이 리언 레더먼(Leon Lederman)의 ‘신의 입자‘이다.

빌어먹을, 제기랄 등을 뜻하는 ‘Goddamn‘의 부정성을 우려한 출판사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이다.

레더먼은 중성미자(neutrino)를, 우리들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관측할 수 없으면 이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겨우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레더먼은 뮤온 뉴트리노와 바닥 쿼크(bottom quark)를 발견한 물리학자이다.

레더먼은 언어의 마술사라 할 만하다.

대표작인 ‘신의 입자‘도 언어적 감수성이 빛난다.

‘시인을 위한 양자 물리학‘에서 레더먼은 ˝최선의 시는 존재하지 않고 위대한 시에 대한 해석은 더더욱 존재하지 않는다˝(381 페이지)는 말을 했다.

레더먼은 양자 물리학을 시와 같은 반열에 두는 듯 하다.

레더먼은 양자 물리학에 대한 최선의 기술(記述)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덧붙여 최선의 기술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도 말한다.

로버트 프로스트, 에밀리 디킨슨, 에드가 앨런 포, 오스카 와일드, 윌리엄 셰익스피어,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등의 시를 인용하며 양자 물리학을 친근하게 대하도록 애쓴 레더먼의 노고는 칭찬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물론 ‘시인을 위한 양자 물리학‘은 시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한 책이기보다 양자 물리학과 시의 연관성에 초점을 둔 책이다.

레더먼은 아이스킬로스에서부터 토머스 핀천에 이르기까지 축적해온 시와 문학을 총동원해도 모든 개인의 경험을 다 아우르지 못한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런 점을 거대한 원자 집단들의 행동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엄격한 물리학 체계가 20세기 벽두에 완전히 무너진 것에 견준다.(25 페이지)

학 음악학자가 과학적 사실에 가장 무지한 사람으로 시인을 들었다.

어떻든 그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시인을 위한 양자 물리학‘은 가장 시적인 양자 물리 교양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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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7월 이후 올 2월까지 ‘양재시민의 숲’역을 네 번 찾았다.

인근에 윤봉길의사 기념관이 있어 매헌(梅軒)역이라고도 불리는 이 역에서 내려 세 번 모두 3번 출구를 통해 밖으로 올라왔었다.

서울을 찾으면 강북 그 중에서도 종로 일대에 머물곤 하는 내게는 이례적인 일이다.

한 숲 해설사는 ‘양재시민의 숲‘역에 내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3번 출구로 나와 숲을 찾는다는 말을 한다.

이 분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출구는 8번 출구이다. 이 출구를 통해 찾는 숲이야말로 양재동의 진짜 멋진 숲이라는 것이다.

물론 내가 3번 출구를 이용한 것은 모두 어떤 출판사에 가기 위해서였다.

어떻든 나는 (출판사 송년회를 위해 한 번 모인 것을 제외한) 출판사를 찾은 세 번 모두 택배를 통해서든 직접이든 스무 권이 넘는 책을 얻어가지고 왔었다.

그러니 ’양재시민의 숲’역에 대한 내 기억은 좋을 수 밖에 없다.

말했듯 ‘양재시민의 숲’ 역 인근에는 숲이 있지만 와인바와 이색 맛집들도 즐비하다고 한다. 서울의 이색지대라 할 만하다.

이곳 ‘양재시민의 숲‘ 역 8번 출구는 사람들로 넘치는 인근의 강남역과는 너무도 다르게 한가롭다.

당연히 양재시민의 숲 역시 한가롭다.

그리고 자생하는 나무들 가운데 고요한 명상을 생각하게 하는 나무가 있다.

메타세쿼이아의 사촌급에 해당하는 낙우송(落羽松)이다.

메타세쿼이아(metasequoia)는 세쿼이아 다음(meta)에 발견된 나무이다.

지난 해 12월 정독 도서관 독서진흥과에 들렀을 때 직원 두 분이 내게 명함을 요구했었다.

그 중 한 분이 자신이 사는 곳이 바로 ’양재시민의 숲‘역 인근의 서초구 강남대로라는 말씀을 하셨다.
서울 강남이 계획도시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지만 양재마을은 더디게 강남권에 편입되었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택지로 조성됐지만1980년대 초만 해도 버스 2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였던 그곳에 양재 시민의 숲이 들어선 것은 1983년이었다.

그 이후 8차선 도로가 뚫려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땅값이 올랐지만 강남에서 그나마 집값이 낮아 20~30대 직장인이 많아 자고 나면 생기는 것이 커피점과 24시간 편의점이었다고 한다.

나도 처음 출판사에 전화를 해 길을 물었을 때 직원으로부터 출판사가 있는 곳이 준 5도씨 인근이라는 말을 들었다.

준 5도씨가 June 5 도(度) C(centigrade)라는 카페라는 사실을 안 것은 나중이었다.

현재 논현동 청호불교문화원의 상좌불교 한국 명상원의 대표이신 묘원(妙圓) 법사님을 모시고 명상을 하던 지난 2002년 우리가 모이던 곳이 양재동 강남 여성회관이었다.

당시 함께 명상에 참여하셨던 여(女) 원장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몇 년 후였다.

그 이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명상이라 했지만 숲길을 산책하는 것도 좌정(坐定) 못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와인바와 이색 맛집보다 먼저 찾아야 할 곳이 숲길이 아닌가 싶다.

궁(경복궁, 창덕궁)과 능(선정릉), 그리고 서점 외에 내가 찾을 서울의 새 명소로 만들고 싶다.

다음 주 수요일 만남 프로그램에 양재시민의 숲 모임을 넣는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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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한 대학 생활 - 경제적.정치적.심리적.성적인 측면, 특히 지적인 측면에서의 사유와 치유 방법들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스트라스부르대학교 총학생회 지음, 민유기 옮김 / 책세상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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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비참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재정을 좌지우지하는 권력과 교육 관료들의 눈치를 보며 발전 방향이나 미래상을 설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학은 사회를 선도하는 가치관을 제시하지 못하고 취업 기관의 역할에 그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 한하는 일은 아닌 듯 하다.

 

1957년에 결성된 단체로 프랑스 68운동의 슬로건인 반권위주의와 반관료주의, 소외의 극복과 지겨움의 탈피, 놀이를 통한 억압적 사회질서의 전복, 자주관리와 노동자평의회 등의 슬로건과 일치하는 이념을 표방했던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 그리고 스트라스부르대학교 총학생회가 함께 지은 '비참한 대학생활'은 대학생들이 처한 경제적, 정치적, 심리적, 성적, 지적 측면에서 비참함을 논하고 치유 방법들을 제시한 책이다.

 

이 책은 나온 지 반세기가 지났고 내용도 유럽과 미국 등의 것에 대한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마치 현재진행형의 사태로 들린다. 저자들은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외와 같은 길을 따라가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유를 알아야만 비판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저자들은 갈수록 많은 청소년이 노골적 착취 관계 속으로 더욱 빠르게 진입하기 위해 도덕적 선입관과 가족의 권위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는 시대를 이야기한다.

 

저자들은 소외를 만족스럽게 소비하려는 불건전한 대학생의 성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들은 대학생을 스토아철학의 노예라 부른다. 저자들에 의하면 그들은 권위의 사슬들이 얽어맬수록 자유롭다고 믿는다. 스토아철학이란 세상의 일에 초연하며 순수하고 보편적인 사상의 체계에서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철학이다. 사토리(さとり) 세대라는 말을 연상하게 하는 말이다.

 

일본에서 기원한 사토리 세대는 미래가 절망적이라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깨달음을 얻은 듯 행동하는 세대를 말한다.

 

저자들은 대학은 제도화된 무지의 기구로 전락했고 고급문화 자체는 몇몇 교수들이 지식을 대량생산하는 가운데 사라져간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일상생활에서 대학생이 겪는 실제적인 비참함은 문화상품이라는 중요한 아편에서 직접적이고 환상적인 보상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대학생들을 슈퍼마켓에서 셀로판지로 포장되어 판매되는 얼어붙은 예술시체의 가장 탐욕스러운 소비자로 규정한다.(38 페이지)

 

저자들은 대학생들이 갖는 잘못된 믿음 즉 허위의식 같은 생각을 집중 비판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루신이 폭로한 정신 승리법을 생각하게도 한다. 저자들에 의하면 대학생들은 순진하고 어리석고 진부하다. 예술시체의 소비자로 규정된 대학생들은 어느덧 신의 오만한 시체를 숭배하는 무리들로 규정된다.

 

저자들은 대학생은 사회 전체에 대항 저항을 통해서만 극단적 소외에 대한 저항에 나설 수 있지만 이런 비판은 결코 대학생의 영역에서는 제기될 수 없다고 말한다.(46 페이지) 저자들은 청춘은 저항하는 반면 어른들은 매우 체념적이라는 통념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프로보타리아란 말이 있다. 이는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의 합성어로 세기의 모든 얼간이들이 알맹이 없이 잘난 체하는 말이다.(55 페이지) 저자들은 승리한 패배가 존재하고 패배보다 더 수치스러운 승리도 존재한다는 카를 리프크네히트(Karl Liebknecht)의 말을 인용한다.(70 페이지)

 

저자들은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첫 번째 위대한 패배인 파리코뮌을 실제로는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로, 프롤레타리아의 첫 번째 위대한 승리인 볼셰비키 혁명을 결국 가장 무거운 결과를 초래한 패배로 규정한다.

 

저자들은 볼셰비키 당이라는 잘 맞지 않는 대상에 적용하긴 했지만 게오르크 루카치가 정확하게 파악한 것처럼 혁명 조직은 이론과 실천 사이에서, 인간과 역사 사이에서, 노동자 대중과 계급으로 뭉친 프롤레타리아 사이에서 필요한 중재자라 말한다.(79 페이지)

 

저자들은 상품 물신화는 총체적 해방과 삶의 자유로운 구성에 저해되는 본질적인 장애물이라 말한다.(83 페이지) 저자들에 의하면 상품 생산의 원칙은 자신의 창조자에게서 완전히 벗어나는 세계를 무질서하고 무의식적으로 창조하면서 자기 자신을 상실하는 것이다.(84 페이지)

 

저자들은 급진적 비판과 소외된 현실이 부과한 모든 행동들과 가치들의 자유로운 재구성이 프롤레타리아의 최대 강령이고 삶의 모든 순간과 사건들의 구성 속에서 해방된 창조성이 승인할 수 있는 유일한 시, 모두에 의해 쓰인 시이며 혁명적 축제의 시작이라 말한다.

 

저자들에 의하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오로지 축제일 뿐이다. 혁명들이 안내할 삶 자체가 축제의 신호 아래에서 창조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놀이는 이런 축제의 궁극적 목적이며 승인할 수 없는 유일한 규칙들을 무의미한 시간 없이 살아가기 그리고 제한 없이 향유하기이다.(89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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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사람의 감정을 크게 기쁨과 슬픔으로 나누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기쁨은 좋고 슬픔은 나쁜 것인가?

스피노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스피노자는 사랑과 증오를 예로 들어 기쁨과 슬픔을 설명한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사랑의 기쁨은 작은 완전성에서 큰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감점이다.

반면 증오의 슬픔은 큰 완전성에서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감정이다.

물론 스피노자는 기쁨과 슬픔을 모두 능동적인 것 즉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것 즉 비주체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정념(情念)이라 정의했다.

중요한 것은 기쁨이든 슬픔이든 그 양이 이전보다 많아졌는가 적어졌는가, 이다.

그래서 즐거움 속에도 슬픔이 숨어 있고 슬픔 속에도 기쁨이 숨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김수우 시인의 시집 ‘몰락경전’에 실린 시들을 읽다가 두 가지 점을 발견했다.

유명 시인인 저자에게도 시 쓰기란 쉬운 일일 수만은 없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슬픔에 예민하다는 사실이다.

“...시의 턱뼈를 잃었다 자꾸 시가 우그러진다 자꾸 뭉그러/ 진다 문법의 발톱도 은유의 꼬리도 썩은 동아줄이 된다 바/ 닥으로 가라앉는다...”(‘다시, 訥’ 중에서),

“...흩어진 자음과 모음의 흰 알갱이들은 천정으로 스며들고/ 그물에 걸린 가시복어처럼/ 새벽안개에 끌려나온 몇 낯 국어들이 떨떠름해 한다...차라리 존엄해라 당당해라/ 결코 문장이 되지 않는 고통이여...”(‘사라진 詩’ 중에서)

시인은 “..난독증 환자가 되기에도/ 아홉 개 전생을 기억하는 고양이가 되기에도/ 우리는 아직, 슬픔이 부족하다..”고 말한다.(‘슬픔이 부족하다’ 중에서)

‘단풍든다는 것은’에서 시인은 “..물든다는 건 모든 삐걱이는 슬픔에게 저벅저벅 돌아가/ 는 일..”이라 말한다.

‘천수천안’에 표현된 “..슬픔의 늑골 사이로 천천히 발효되는 산제사..”란 구절이 눈에 띈다.

슬픔을 보는 힘으로 천천히 시를 발효시키는 시인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구절이다.

그리고 “.. 저, 부지런한 슬픔들..”이란 표현(‘부러진 날개’ 중에서), “..매일 빨아 입는 슬픔도, 자주 빨아 입지 못하는 절망..”이란 표현(‘빨래’ 중에서),

슬픔이란 말은 없지만 “.. 밥그릇 안에서 굴절되는 영혼처럼 눈물은 봄비로 굴절/ 되었다..”는 ‘굴절의 전통’과 “..나무는 무수한 몰락으로 자란다..”는 ‘몰락을 읽다’까지..

그리고 “..진리와 동떨어진 슬픔, 그 틈/ 슬픔과 동떨어진 진리, 그 틈..”(‘나팔꽃, 떠내려가다’)까지..

나무가 무수한 몰락으로 자라듯 시인은 슬픔으로 시를 쓰고 “부족한 슬픔”을 염려하고 슬픔이 진리와, 진리가 슬픔과 동떨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

슬픔들... 힘이 되는 슬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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