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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 1 -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 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 1
천위안 지음, 이정은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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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는 침략자 천 위안이 쓴 명저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라는 부제가 달린 책이다.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었다. 1부 조조의 승리의 기술, 2부 조조의 마음 다스리기, 3부 조조 리더십의 원칙, 4부 조조의 위기 관리 기술 등이다. 후한말의 정치가 조조(曹操)는 400년 한나라의 마지막 승상이자 최초의 위왕(魏王), 그리고 삼국시대 위나라의 추존 황제이다.

 

맹세보다 요구가 신뢰를 얻는다고 한다. 맹세는 의구심을 부르지만 요구는 자신을 증명해 보이는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의 절대적 상징을 요구하면 확실한 각오나 다짐을 보여 줄 수 있다. 제 발이 저리는 도둑은 금방 잡히게 마련이다. 자신의 잘못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그러기에 양심의 덫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심리적 압박이 몸의 세포와 정신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선견지명이란 이미 벌어진 상황을 귀뚫어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앞날은 누구도 얘기할 수 없다. 비나 눈처럼 과학적 경로를 통해 관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상대의 심리, 사회윽 변화로 짐작하고 예측할 뿐이다. 나는 옳다라는 생각은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 자기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자신을 믿는 믿음이 행동과 생각을 결정한다. 옳다고 결정한 일에 망설일 사람은 없다. 당당함과 자신감이 옳다는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때로는 친구보다 적이 성공을 돕기도 한다. 적을 이용하라. 의견대립이나 어떤 결정에 있어 당신의 반대편에 선 사람을 예의주시하라. 그의 의견과 생각의 성공에 해답이 있다. 자기 비하는 자신에 대한 편견이다. 자신의 능력이나 한계를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 알기 때문에 미리 난 안돼라고 선언하는 것다.

 

이는 더 잘 나가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자기비하보다 도전과 인정이 자신에게 이롭다. 이상이 1부 조조의 승리의 기술이다.

 

우리는 사회적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와 제약과 규제가 자유를 억압한다고 느낀다. 당신 뿐만이 아니다. 누구나 다 그렇다.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 선에서 더불어 사는 사회의 범주 안에서 이를 어떤 방법으로 해석할지 고민해 보자. 일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실적이 없으면 상도 없다 당연한 이치다. 다른 이의 성과를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마라.

 

다음은 당신 차례이다. 그러니까 당장 목표를 향해 출발하라. 진실은 언제나 가면을 쓰고 있다. 가면을 들추려 하면 할수록 더 꽁꽁 숨는다. 그래서 진실을 왜곡하고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진실을 가리기 위해 언제나 가면을 들고 다닌다. 표면적 진실에 속아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쉽게 믿는 사람이 의심도 많다. 쉽게 믿은 사람에게 상처받거나 위기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믿음을 확신하지 않는다. 일단 믿는 척 하지만 상대를 거듭 확인하려 든다. 과도한 하소연은 뭔가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넋두리는 절대로 상대에게 환호 받을 수 없다. 호감을 잃어버리는 지름길이다. 상대는 이야기를 듣는 것조차 부담을 느끼며 빨리 자리를 피하려고 한다. 하늘이 당신은 속이는 것은 당신을 아끼기 때문이다. 믿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어려움에 처하거나 일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당신의 장점을 먼저 떠올려라. 신은 자신이 준 재능이 활용되기를 기다린다. 단번에 끊지 못하면 문제는 더 커진다. 미적거리지 말라.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단호함은 냉정해 보이지만 미련을 두지 않도록 만드는 열쇠이다. 우유부단함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문명의 순응하는 것도 운명에 맞서는 한 가지 방법이다. 무작정 고개 숙이고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자는 말이 아니다. 순응은 불만을 품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거기에서 대안이 생성된다. 불평하고 맞서면 싸우는 길 밖에 없다. 오기와 집착만 남는다. 편한 길을 걷다 보면 일탈이라는 오솔길과 마주치게 된다.

 

순조롭고 평탄한 길이 가끔 지루하고 지겨울 때가 있다. 새로운 자극을 꿈꾸게 된다. 그러나 그 자극이 당신의 인생을 뒤흔들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일상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라. 적은 늘 당신 주위에 있다. 언제나 말 조심, 행동 조심이 기본이다. 지금 모두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상대가 언제 돌아서서 당신의 목에 칼을 들이댈지 모른다. 늘 조심하라. 예의와 존중은 삶의 미덕이다. 행복과 불행은 모두 기대에서 비롯된다.

 

기대에서 파생되는 기쁨과 불만이 행복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기대는 자기의 기대치다. 그 척도를 조금 낮추어 보자. 지금보다 훨씬 즐거울 수 있다. 이상이 2부 조조의 마음 다스리기이다.

 

생각지 못한 성과를 얻으면 친구는 기뻐하고 적은 경계한다. 함께 좋아해줄 친구를 만나라.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많지 않더라도 한 두명의 친구가 당신 인생을 풍요롭게한다. 상사의 말에 무조건 따르다가는 속죄양이 되기 쉽다. 자신의 주관이나 관점을 표현하라. 때로는 거침없이, 때로는 조심스럽게 행동하라. 위계질서에 의한 맹목적인 순종은 결국 화를 부른다.

 

스스로 정한 한 계 때문에 더 많은 기회를 잃는다. 자기만의 원칙이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 한계에 그친다면 오히려 없는 것만 못하다. 자기 한계 너머를 수용하고 한계 너머로 도전하는 모습은 매력적이다. 남의 성과를 가로채려는 것은 일종의 본능이다. 다만 이성을 가지고 조절하고 조정해 자신을 더 발전시키려 할 뿐이다. 탐욕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를 과하게 드러내고 키우면 야욕이 된다. 그 결과는 참담할 것이다.

 

과거가 쌓여 나를 만든다. 하루아침에 자라는 나무가 없고 삽시간에 지어지는 건축물이 없다. 하루하루가 모여 역사가 완성된다. 지나가는 시간에 담긴 자신의 의미를 확인하면 내일의 당신 모습이 그려진다. 원하는 사람을 움직이려면 꼬리표를 달아라. 친구나 가족처럼 관계 꼬리표도 좋지만 상대의 의미를 부여하는 꼬리표는 더 좋다. 의리 있는 친구라는 꼬리표를 달면 절대 배신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달린 꼬리표는 무엇인가?

 

이성은 감정에 무릎을 꿇는 경우가 많다. 객관적이고 냉철한 판단은 이성적이다. 사랑이나 행복, 불안과 불행은 감정이다. 이성의 작용은 감성이 앞서는 순간 무기력해진다. 감정이 당신 몸의 세포 하나까지 지배하기 때문이다. 재는 눈이 내릴 때 그 가치를 발한다. 재는 눈을 녹이고 미끄러지는 일을 방지한다. 평소에는 쓸모 없어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소에 관리를 잘해 두어야 한다. 이상이 3부 조조 리더십의 원칙이다.

 

사람이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가지 많은 나무는 바람 잘 날 없다. 무수한 말들이 오가고 수많은 이견이 생긴다. 거기서 중심 잡기란 어려운 문제이다. 많은 사람보다 현명한 사람 한두 명이 당신 곁에 있는 것이 낫다. 희망은 괴로움의 원천이다. 당신에게 채찍을 가하며 달리라고 종용 하기 때문이다.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는 좌절하게 된다. 가능하지 않은 꿈을 좇아 희망을 품지마라. 당장 한 걸음 옮겨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유익하다.

 

때로는 거짓말이 진실을 밝힌다. 상대의 의중을 알지 못할 때 진실을 먼저 공개하면 안 된다. 바람보다 태양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지 않던가. 감춰진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우회 작전을 펼쳐야 한다. 권력은 거짓말할 권리도 부여한다. 그러므로 감정에 호소하거나 인간적인 면모를 추구해서는 진실을 밝힐 수 없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들이대는 것이 효과적이다. 상대에 대한 과도한 칭찬은 간접적인 자화자찬이다.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는 상대가 결국 당신에게 그 덕을 돌리도록 하는 것 아닌가. 넘치는 백 마디 칭찬 보다 합리적인 언행이 상대를 기쁘게 한다. 모함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다. 구성원은 물론이고 조직을 공중분해시킨다. 더 중요한 점은 그 파괴력이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바르고 옳은 정도를 걷자. 그 길이 더디더라도 온전한 승리를 안겨준다.

 

당황하면 누구나 엉뚱한 소리를 하게 마련이다. 이런 일로 흉보거나 놀리지 마라. 상황과 환경이 바뀌면 누구라도 당황한다. 그때 그의 본성이나 본심이 드러난다. 당신에게는이를 간파할 절호의 기회다. 상대에게 이익을 제시하면 반드시 설득할 수 있다. 실현 불가능한 이익의 제시는 안 된다. 그에게 실익이 되고 유효한 제한이라야만 가능하다. 자신의 이익만 구하고자 일을 하면 안 된다. 내가 속임수를 쓸 줄 안다면 상대 또한 그렇다.

 

작전과 묘수는 당신에게만 있는게 아니다. 언제나 상대의 수를 읽고 파악하는 경계가 필요하다. 방심하다 허를 찔리는 낭패를 당하지 말자. 이상이 4부 조조의 위기관리 기술이다.

 

조조는 난세의 간웅이다. 한 왕조가 멸망한 후 천하의 주인이 없는 혼란 속에서 제갈량이라는 막강한 상대에 맞서 수많은 위기를 넘기며 자신의 왕국을 세우는데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생명이 백척간두 끝에 매달려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선택을 내리고 결단해야 했다. 그 속에는 결국 자신에게 유리한 판세를 이끌어내고 승리를 쟁취하는 영웅 조조의 심리전략이 숨어있다. 저자는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와 관련된 수많은 에피소드 속 영웅의 심리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독자에게 깨달음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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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보는 문화유산 - 유물의 표정을 밝히는 보존과학의 세계
신은주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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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의 한계를 보완하는 OSL(optically stimulate luminescence) 연대측정법이 문화재는 물론 지층의 나이를 아는데 요긴한 방법이라고 들었다. 신은주의 ‘과학으로 보는 문화유산’은 그런 앎의 연장선상에서 구입한 책이다. 1부 금속, 2부 토지, 도자기, 유리, 3부 목재, 4부 지류, 직물, 회화, 벽화, 보존환경, 5부 석조, 6부 미래에 남겨줄 우리의 유산 등으로 구성되었다.

 

서두의 방법론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저자는 주기율표 설명으로 책을 시작한다. 금(金)을 이야기한 챕터에서는 암석이 화성암, 퇴적암, 변성암으로 나뉘듯 광상(鑛床)도 화성 광상, 퇴적 광상, 변성 광상으로 나뉜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온다. 산금(山金)이 묻힌 곳은 화성 광상이고 사금(砂金)이 묻힌 곳은 퇴적 광상이다. 광상은 유용 광물이나 자원이 묻힌 곳이고 광산은 그것을 채취하는 장소다.

 

저자는 어쩌면 지금 당신이 끼고 있는 금반지는 신라 귀족이 사용하던 금귀걸이였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금으로 만든 물건은 기능을 상실해도 녹여서 다른 형태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구리는 녹이라는 특별한 면모를 갖는다. 산소를 만난 청동이 보호막으로 만드는 것이 녹이다. 이 녹은 새로운 부식의 진행을 막아준다. 좋은 녹은 놔두고 나쁜 녹만 선별해 제거해야 한다.

 

일전 내가 선사박물관 해설에서 지질과 고고학을 연결시켜 화산탄과 모양이 비슷하다고 한 비격진천뢰는 시한폭탄이다. 둥근 무쇠 속에 화약, 철 조각, 죽통이 들어 있다. 나선형의 홈을 판 목곡이라는 장치에 감는 도화선(화약선)의 길이에 따라 폭발 시점이 조절된다. 철은 탄소 함량에 따라 수철, 연철, 주철, 강철로 나뉜다. 강철은 탄소가 2% 미만인 철로 강도가 좋고 충격에 잘 견딘다.

 

유리는 투명하고 단단하지만 잘 깨지며 물과 공기는 통과하지 못하지만 빛은 통과한다. 유리는 결정 구조가 없는 액체이되 점성이 높아 고체처럼 형태를 유지한다. 베개용암에 유리질이 있다. 용암이 차가운 물에 잠겨 급속히 식는 과정에서 생기는 비결정형의 검은 물질이다. 나주 오량동 옹관(甕棺) 가마터 이야기에서 저자는 점성이 좋은 점토, 석영, 장석, 운모, 활석 등의 광물을 비짐(첨가물)으로 넣는 태토(胎土; 바탕흙) 준비 과정을 이야기하며 암석, 광물, 토양, 점토 등에 대해 설명한다.

 

석영은 규소와 산소만으로 이루어진 광물로 화성암, 퇴적암, 변성암에서 모두 확인된다. 장석은 지각에서 60%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광물이다. 상감(象嵌)기법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려만의 독창적 기법이다. 저자는 고려청자를 인간이 만든 보석이라 설명하며 최고의 찬사를 받는 고려청자는 당대는 물론 지금도 가치와 아름다움이 더해지는 도자기로 신석기시대부터 토기를 만들던 이들의 손에서 시작된 셀 수 없는 도전과 노력에 의한 것이라 마무리짓는다.

 

1200도 이상의 고온에서만 일어나는 류사이트(leucite)화(化)는 숨쉬는 그릇이라는 말로 언급할 수 있다. 공기는 드나들지만 물은 차단되어 빚어지는 현상이다. 류사이트는 화산암의 일종이다. 책에는 김원룡 교수 이야기도 나온다. 저습지 유적인 광주 신창동 유적 발굴을 위해 일본 나라문화재연구소에서 관련 정보와 기술을 배워와 발굴을 한 이야기다.

 

목재는 수침(水浸) 목재와 건조 목재로 나뉜다. 목재는 수분이 15~18%면 썩지 않는다. 수침목재도 세포 내부에 물이 채워지고 산소와 차된되어 썩지 않는다. 다만 발굴되어 땅 위로 나오는 순간 목재 내부에 함유되어 있던 수분이 증발하면서 형태가 갈라지고 뒤틀리는 등 수축, 변형이 생긴다. 그렇기에 신속하게 물이 담긴 용기에 담아 고정한 후 보존처리실로 즉시 옮긴다.

 

목재는 물이 이동하는 도관, 목섬유 등 세포의 집합체로 벌집처럼 속이 비어 있다. 세포와 공극(空隙), 수분(水分)으로 이루어졌으며 내부는 셀룰로오스, 헤미셀룰로오스, 리그닌 등의 성분으로 채워져 있다. 수침 상태가 되면 내부 성분들이 썩어 없어지는데 그 자리를 물이 차지하는 것이다. 셀룰로오스는 철근, 헤미셀룰로오스는 골재, 리그닌은 시멘트에 비유된다.

 

고대인들은 나무에 왜 옻을 칠했을까? 답은 옻을 칠하면 표면에 얇은 막이 생겨 물이나 곰팡이 등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고 특유의 광택을 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으니 천장이나 벽에서 스며 나온 석회동굴 내부의 습기가 벽화의 표면에 맺힌 뒤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굳는 과정이 오래 반복되면 벽화 표면에 견고한 얇은 막이 되는 현상이 떠오른다.

 

대장경(大藏經) 목판은 주로 산벚나무로 만들었다. 대장경은 큰 그릇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산벚나무를 수년 동안 바닷물에 담갔다가 소금물에 찌고 오랜 시간 그늘에 말려 일정 크기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수분 분포가 일정해지고 나뭇결이 부드러워진다. 궁금한 것은 조상들은 그런 방법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다. 신라의 대형 고분들이 도굴되지 않은 것은 돌무지덧널무덤 구조 덕이다. 도굴을 시도하는 순간 돌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천마총은 다른 유적에서는 볼 수 없는 천마도가 출토된 것으로 유명하다. 천마도의 정식 명칭은 백화 수피제 천마문 말다래다. 말다래는 말을 타는 사람에게 진흙이 튀지 않게 해주는 마구(馬具)다. 백화 수피는 백화 나무 껍질이라는 의미다. 자작나무를 백화나무라 한다. 종이나 직물이 아닌 자작나무 수피에 그린 그림이다. 천마총은 능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무덤이다. 종이는 중국 후한 시기의 환관 채륜이 만들었다. 뽕나무 껍질, 삼베 등을 두드려 만든 채후지(蔡侯紙)에서 시작되었다.(채륜의 종이보다 앞선 삼으로 만든 종이가 발견되었다.)

 

과거 시험은 보통 합격자에게는 답안지를 돌려주었고 불합격자의 것은 되돌려주지 않고 재활용했다. 불합격자의 답안지를 낙폭지(落幅紙)라 한다. 공정한 평가를 위해 채점자가 특정인의 필체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응시자의 답안을 서리가 베껴 썼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의 전통 종이 명칭은 다르다. 중국은 선지(宣紙), 일본은 화지(和紙), 우리는 한지(韓紙)라 한다. 조선 태조는 청색 곤룡포를 입었다. 명나라 황제 홍무제가 권지고려국사(權知高麗國事)라는 직책만 내렸기 때문이다. 권(權)은 임시란 의미, 지(知)는 (나랏일을) 맡았다는 의미다.

 

영조는 우리나라는 동쪽에 있으니 마땅히 청색을 입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모두 흰옷을 입으니 문제라고 말했다. 종이(宗彛)는 종묘 제례용 술잔이다.(彛는 떳떳할 이, 술잔 이라는 글자다.) 구장복(九章服)에 놓는 수(繡)는 보, 불이라고 한다. 보는 도끼를 상징하고 불은 신하와 군신의 도리를 상징한다. 구장문에 쓰인 채색 안료를 에너지 분산형 형광 분석기로 분석한 결과 황, 적, 녹, 청으로 크게 구분되었다.

 

문화재의 보본 처리는 재료가 시간과 환경적 요인에 의해 기능과 상태가 변하는 열화(劣化) 현상이 일어나기 쉽다. 보존과학에 X선이 있다면 고고학에는 지하 투과 레이더가 있다. 2013년 네덜란드의 반고흐 미술관에서 황색 안료가 LED 램프에 의해 변색된 사례가 있었다.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돌은 주먹도끼(전기), 흑요석(후기)이다. 전기 구석기 시대는 주먹도끼나 찍개 같은 크고 무거운 돌을 쓰던 시대였다. 빙하기가 끝나고 시작된 후기 구석기 시대의 흑요석은 날쌘 동물들을 잡기 위해 돌날, 찌르개 등의 작고 날렵한 석기들을 제작하게 되는 과정에서 탄생한 신소재였다.

 

유물은 외부 공기와의 노출을 최대한 피하고 보존처리실로 옮기는 것이 급선무이지만 봉안 순서 자체는 학술자료이기 때문에 그 어느(보존, 순서) 쪽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화유산에 대한 보수와 복원은 유물이 제작되었을 때와 동일한 재질과 기법으로 시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암석의 종류와 원산지를 찾는 연구가 그 시작이다. 첨성대를 두고 지진 시뮬레이션을 하는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한반도는 유라시아 판 내부에 있어 일본 등 판 경계에 위치한 나라의 비해 상대적으로 지진 발생 빈도가 낮고 규모도 작지만 주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두 번의 큰 지진에도 흔들림이 없었던 첨성대도 시간을 거스르는 재주는 없다. 정밀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 손상의 원인과 정도를 파악하여 향후 보존 처리가 필요한 시점을 준비하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면 새김 기법, 손 새김 기법, 면 새김과 손 새김 기법이 혼합된 기법이 사용되었다.

 

신석기 말기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오랜 시간 차례로 새겨진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반구대 암각화가 그려진 암벽은 중생대 백악기의 암갈색의 역암, 셰일 또는 이암으로 퇴적암이 주를 이루고 있다. 체질적 특성을 분석하기 위해 시료를 수습하여 편광현미경으로 관찰했더니 미정질의 석영, 정장석, 사장석, 방해석, 녹니석 운모류 및 불투명 광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풍화된 면과 신선한 면이 뚜렷한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주사 전자 현미경을 이용하여 미세조직의 변화를 관찰한 결과 신선한 면에는 석영, 장석, 방해석 등이 치밀한 조직을 보이나 풍화된 면에서는 방해석이 빠져나가 토양 입자 사이에 틈이 생긴 공극이 남아 있었다. 이는 풍화작용으로 방해석이 수분과 반응하고 용출되면서 풍화층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재 방재의 핵심은 철저한 예방 중심의 시스템이다. 문화재 복원에 기술과 성능이 좋은 신소재보다 전통 재료를 적용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유산의 보존 ,복원에 가장 적합한 것은 당시 사용했던 재료이다. 하지만 한국은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발전으로 전통적인 재료를 제작하는 장인들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현재 전통 장인 몇몇에 의해 우리나라의 문화재 보본, 복원이 간신히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전통 재료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현대 재료도 쓸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오늘날 수 많은 현장에서 쓰이는 에폭시 접착제도 전통 재료가 아니다. 과거에 썼던 접착제로 손상이 심한 문화재의 원형을 지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원형을 보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현대 재료를 적용해야 할 경우 이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이유를 담아내는 것도 보존처리의 역할이다. 주기율표에서 원자번호 6번 탄소와 14번 규소는 위아래에 있다. 이는 비슷한 화학적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탄소와 규소가 쓰이는 것은 전혀 다르다. 탄소는 생명체의 가장 중요한 원소로, 규소는 생물과는 거의 상관없는 암석으로 존재한다. 이 두 원소의 만남으로 만들어진 것이 실리콘이다. 현대 반도체 시대라고 불러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지금을 규소의 규자를 붙여 규석기 시대라 부르는 것은 그만큼 반도체로 만든 도구를 많이 사용하는 시대라는 뜻이다. 여담이지만 플라스틱으로 만든 최초의 물질은 당구공이라고 한다.

 

저자는 보존 과학은 현재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과학기술과 함께 진일보하기에 미래의 학문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더 나은 기술이 나오면 나올수록 더욱 안전한 방법으로 조사하고 분석할 수 있어 우선 최소한의 조치만을 취하고 나중을 기약하는 경우도 있다. 역사에서 보존 과학의 역할은 문화유산의 제작 기술과 그 속에 담긴 가치를 조명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과학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라져 버린 시간과 공간을 우리 앞에 생생하게 보여 줄 수 있다. 그 역사를 통해 나를 이해하고 우리를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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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과 기독교 신앙 스펙트럼 : 과학과 신앙 4
한국교회탐구센터 지음 / IVP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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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P의 스펙트럼; 과학과 신앙 시리즈의 한 권이다. 머리말, 인터뷰, 특집, 성경 속 과학의 수수께끼, 북 리뷰로 구성된 책이다. 지질과 기독교 (신앙)의 관계를 다룬 책이다. 인터뷰는 스펙트럼 편집위원인 정지영이 창조과학자에서 회심한 물리학 교수 출신의 창조론자 양승훈과 대화한 내용이다.

 

창조과학은 홍수 지질학의 뒷받침을 받는 젊은 지구론이다. 홍수 지질학은 창세기 6-8장에 나오는 “전지구적 홍수” 내용을 근거로 지구의 지질학적 특징을 해석하고 조화시키려는 학문이다. 젊은 지구론 진영에서 주장하는 지구의 나이는 6000년이다.

 

양승훈은 창조과학 진영을 정서적으로 이단과 비슷한 면을 지닌 매우 전투적이고 선명성이 강한 그룹으로 정의한다. 자기 단체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만나지 못하게 하는 등 정보를 차단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양승훈은 성경에 대한 문자적 해석에는 강력한 드라이브가 있다고 전제한 뒤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는 것도 하나의 해석이라고 덧붙인다.(이 부분은 대안인 셈인데 자세한 설명이 없어 아쉽다.)

 

양승훈은 생물학이나 지질학은 데이터들간의 연결에서 건너뛰는 부분이 많다는 말을 한다.(35 페이지) 논리적 비약이 많다는 것으로 물리학이라면 그곳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출 것이라고 한다고 말하는 그가 추천하는 책은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책들이다.

 

양승훈은 진행적 창조론, 진화 창조론 등을 구분해 설명한다. 전자는 창조주가 생물종의 발달 과정에 특별한 능력으로 개입했다고 보는 입장이고, 후자는 창조주가 자연선택에 개입해 진화를 인도한다고 보는 입장이다.(이 부분은 특별히 감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현대 지질학과 진화론을 믿는 것과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은 모순적인 것이 결코 아니며 그 둘은 오히려 공존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전자공학, 사학, 과학사 전공의 기독교인문학 연구소 연구원인 박희주의 글에서는 중세 사상가들이 태양빛이 지상의 생명을 성장시킬뿐 아니라 지면을 파고들어 화석을 탄생시키고 성장시킨다고 믿었다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박희주는 방주(方舟)에서 나온 동물과 사람이 노아 홍수 이후 지금까지 길지 않은 시간에 어떻게 바다 저편의 아득히 먼 대륙을 다시 채울 수 있었는지 자연스럽게 의문에 제기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55 페이지)

 

박희주에 의하면 대홍수가 끝나고 물이 지하의 심연으로 급속히 빠져 들어가면서 급류에 깎여 계곡이 형성되었다는 알렉산더 캣코트의 이론은 단시간의 급류가 부드러운 퇴적암 계곡의 형성을 설명하는 대는 적절할지 몰라도 단단한 화강암으로 구성된 계곡에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에 의해 난관에 봉착했다.(67 페이지)

 

박희주의 글에서 주목할 부분은 지질학의 역사다. 16, 17세기에 지구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암석에 관한 것이었고(56 페이지) 기독교 우주관의 틀 속에서 추구되던 지구 연구가 경험적이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선회한 것은 18세기였다.(63 페이지) 광물자원 탐사가 활발해진 결과다. 19세기에 들어 지구와 관련된 지식의 폭발적 증가로 지질학은 독자적인 학문으로 확립되었다.(72 페이지)

 

17, 18세기에 지질학은 일반인들도 따라갈 만한 학문이었지만 독자적 학문으로 확립된 19세기에 들어서서는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내용의 학문이 되었다.(71, 72 페이지) 박희주는 성경과 지질학을 조화시키려 한 약 300년의 시도는 결국 지질학계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다고 말한다.

 

“믿음이 좋은 크리스천 지질학자”(41 페이지)인 지질학 박사 이문원 교수는 고지자기학이 대륙이동설 등 지질학의 여러 분야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88 페이지) 물론 대륙이동의 원동력은 아직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는 상태이며 관련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90 페이지)

 

1980년대 들어 맨틀 하부까지 전체 지구를 얇게 쪼개 열적 구조를 연구하는 컴퓨터 단층촬영 결과 섭씨 6000도의 핵 부분에서 지표로 흘러나오는 거대한 열 흐름의 기둥(플룸 또는 열기둥)을 발견했다.(95 페이지) 생물 대멸종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수퍼플룸이다. 판구조론과 플룸구조론이 현대 지질학의 주요 두 흐름이다.

 

지질학 박사 조석주는 45억년이라는 지구의 나이는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모든 과학의 영역을 동원해 얻은 수치이며 최소한 지난 반세기 이상 큰 수정 없이 유지되고 있다고 말한다.(123 페이지) 조석주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있었던 방사선과 방사성동위원소의 발견이 오늘날 에너지의 이용과 핵물리학을 꽃피우고 지구와 태양계의 연령을 계산하는 데 사용된 것 같이 미래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과학 연구 결과가 지구의 나이를 오늘날 과학에서 생각하는 바와 다르게 제시할 수 있다면 과학자들은 지난 수세기 동안 그래 왔던 것처럼 새 가설을 검증하고 이를 기존의 이론과 비교해 새 가설을 받아들이고 기존 이론을 폐기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 말한다.(123 페이지)

 

종교사회학 교수 정지영은 진화론은 그 자체로 무신론을 지지하지도 않고 유신론을 지지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정지영에 의하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무오설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성경에 뭔가 과학적으로 틀린 내용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 내용을 일일이 과학적으로 입증하려고하기보다 성경이 구속사(救贖史)적 메시지를 중시한다고 해서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143 페이지)

 

리뷰에서는 존 월튼의 ‘창세기 1장의 잃어버린 세계 ’와 김경렬 외 지음 ‘지구인도 모르는 지구’, 신재식 외 지음 ‘종교전쟁’, 랠프 스티얼리, 캐럴 힐 등이 지은 ‘그랜드 캐니언, 오래된 지구의 기념비(부제; 노아 홍수가 그랜드캐니언을 설명할 수 있을까?)’, 존 H. 월튼의 ‘창세기 1장의 잃어버린 세계’, 양승훈의 ‘그랜드 캐니언 정말 노아 홍수 때 생겼을까?’, 데이비스 영 등이 지은 ‘성경, 바위, 시간’등이 다루어졌다.

 

이학 박사인 진명식은 서평에서 ‘그랜드캐니언, 오래된 지구의 기념비’를 열한 명의 지질학자인 저자들이 수십년간 그랜드 캐니언의 주요 탐방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각자의 전공 분야에 따라 수많은 사진과 그림을 곁들여 아주 간결하고 쉽게 비교하고 설명한 책으로 소개한다.

 

진명식은 자신은 아직 그랜드 캐니언에 가보지 못했지만 책을 읽고 그랜드 캐니언을 다녀온 사람들보다 더 정확히 그곳의 규모, 생성 과정, 생성 연대 등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199 페이지)

 

진명식에 의하면 현대 과학으로 발전한 암석연대 측정법으로 측정한 연대가 믿을만하며 측정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 연대가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지구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지구의 암석 나이를 정확하게 밝힐 수 없는 것은 그간 암석들이 너무 많은 지각 변동과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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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 우주.지구.생명.인류에 관한 빅 히스토리
월터 앨버레즈 지음, 이강환.이정은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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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은 빅히스토리 관점으로 쓴 역사서이다. 러시아사를 전공한 데이비드 크리스천(David Christian; 1946 - )이 제안한 빅히스토리에 대해 저자는 우주, 지구, 생명, 인류 등 네 영역의 결합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주 전공이 지구 역사이지만 대멸종 덕분에 생명 역사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리학과 화학(인간이 현실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의 배경에 물리학과 화학이 있다고 말한다.)을 넘어 지질학, 고생물학, 생물학, 고고학, 천문학, 우주론과 같은 역사과학을 살핀 후 인류사를 다룰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이 놓인 현실의 모든 부분과 관련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전문화된 역사는 우리의 전체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기에 빅히스토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빅히스토리가 재미 있는 이유는 연구에 뚜렷한 방향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286 페이지) 저자는 지구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인간 현실의 역사를 매우 광범위하면서도 구체적으로 기술하기보다 지질학자의 관점에서 인류가 놓인 조건을 보려 한다고 말한다.(32 페이지) 이 말은 빅히스토리의 목적은 인류사를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는 것이라는 저자의 다른 말(41 페이지)과 들어맞는다.

 

저자는 우리의 세상이 가능하게 한 자연의 세 가지의 마술을 논한다. 그것은 1) 별을 만든 것, 2) 별 내부에서 새로운 원소들을 융합한 것, 3) 그 중 일부의 별을 폭발시킨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자연은 연금술사들이 결코 가진 적이 없는 별의 중심부라는 실험실을 가지고 있다. 그곳에서 핵반응에 의해 새 원소가 만들어진다.(59 페이지)

 

별 내부에서는 양성자를 두 개 가지는 헬륨부터 스물 여섯 개를 가지는 철까지 만들어진다. 여기에는 암석(지구)의 네 가지 주요 성분도 포함된다. 지구에는 산소, 마그네슘, 규소, 철이 월등히 많다.(76 페이지) 이 가운데서도 가장 결정적인 것은 규소다.(79 페이지) 규소는 우리 행성을 구성하는 광물 대부분과 암석의 근간이다. 탄소가 생명의 기본이라면 규소는 암석의 기본이다.(78 페이지)

 

인간이 석기를 만들고 그로 인해 뇌가 발달하고 지성이 발전한 것은 지구가 규질암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도구를 만들기에 가장 좋은 물질은 흑요석이라 불리는 화산유리와 규질암 또는 부싯돌이라 불리는 퇴적암이다.(용암이 급속도로 식어 결정이 만들어질 시간이 없을 때 만들어지는 흑요석은 이산화규소가 풍부하지만 너무 희귀하다.)

 

규소 원소는 산소와 쉽게 결합해 석영과 감람석 같은 규소 광물들을 만든다. 자연에서 산소와 결합하지 않은 천연 규소 금속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88 페이지) 화학공학자들은 컴퓨터 칩을 만들 때 사용되는 규소 금속을 위해 이산화규소에서 산소를 제거해 순수 규소 금속을 얻는 제조 과정을 개발했다.

 

지구 깊숙한 곳에 있는 암석들은 약 44%의 이산화규소를 포함하는 반면 해양 지각은 약 50%, 소멸 지역 위에 위치한 화산은 약 60%, 그리고 대륙 충돌에 의해 만들어지는 화강암은 약 75%의 이산화규소를 포함한다.

 

75%의 이산화규소는 석영이 결정화되기에 충분하며 실제로 화강암에서는 석영이 보통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그래서 이제 인간은 석영 결정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 저 아래에서 단단한 화강암에 갇혀 있다. 지구는 어떻게 그것을 밖으로 빼내어 순수한 석영 모래로 전환 시킬까? 화강암 덩어리가 포함된 산의 깊은 뿌리조차 표면까지 서서히 올라와서 침식에 의해 드러나게 된다.

 

그 결과 화강암은 고대에 만들어진 산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암석이 됐다. 판의 이동으로 인환 과정과 거친 풍화작용을 거치면서 처음에는 행성에 존재하지 않던 석영이 지구에서 만들어졌다. 점토 광물은 입자가 매우 작아서 석영만 남겨 놓고 물이나 바람에 쉽게 휩쓸려가 버린다.

 

석영 입자들은 지극히 안정적이어서 모래 언덕이나 강의 수로, 그리고 해변에 쌓여 거의 영원히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은 이런 모래 퇴적을 사암이라 불리는 암석으로 굳힌다. 가장 순수한 사암은 거의 100%에 이르는 이산화규소 성분으로 이루어져 석영을 제외한 어떤 것도 포함하지 않는다. 이렇게 유리와 컴퓨터 칩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다량의 석영 모래 퇴적을 생성하기 위해서 지구는 수십 억년이 필요했다.

 

1960년 프린스턴 대학의 지질학자 해리 헤스는 대륙이 양옆으로 갈라져 멀어짐에 따라 그 사이에서 해양 바닥이 새로 자라서 넓어진다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해양이 대륙보다 젊고 지질학적으로 단순한 이유를 설명했다.(117 페이지) 지질학을 공부하며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이원적 대립(binary opposition)의 관점을 취할 것이 많다는 점이다.

 

화성암 중 지구 속에서 식어 만들어지는 심성암과 지표 밖에서 식어 만들어지는 화산암이 있다는 사실도 그 중 하나다. 그런데 본문에 의하면 강과 산도 그런 관점으로 대할 수 있다. 가령 산맥이 솟아 오르는 것은 지구 내부 과정에 의한 것이지만 침식은 강이나 빙하처럼 태양에서 오는 열로 진행되는 외부 과정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도 그렇다.

 

이는 어렵지는 않지만 생각하기 쉽지 않은 앎이다.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에는 이런 예가 몇 있다. 햇빛이 전혀 닿지 않는 깊은 바닷속 생물들은 광합성을 할 수 없어 뜨거운 물에 녹은 황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는 사실(203 페이지)이 대표적이다. 광합성은 지구의 생태계를 심하게 교란했다. 초기 미생물들에게 광합성의 부산물인 산소가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산소에 적응하는데 성공한 미생물의 후손이다. 산소 혁명은 인류에게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다. 우리가 산소로 숨을 쉬기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의 산업 문명이 크게 의존하는 엄청난 양의 철광석을 만들어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약 5억 4천만년 전부터 생명체의 화석 기록이 풍부해졌다. 생명체의 단단한 부분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달팽이나 조개껍데기, 우리의 뼈와 이(tooth) 등이 그런 것이다. 지질학자들은 이런 화석의 등장을 캄브리아기의 시작으로 잡는다. 이는 자연의 무기경쟁으로 인한 것이다. 단단한 부분을 만들어낸 동물들이 생존과 번식에 더 유리해졌다. 화석 기록에 나타난 결과는 극적이다.

 

갑자기 퇴적암 층에 조개가 나타났다. 부드러운 조직보다 단단한 부분이 바위에 훨씬 더 잘 보존되기 때문에 초기 지질학자들에게 이것은 생명이 갑자기 등장한 것으로 보였다. 이제는 5억 4천만년 이전에도 많은 생명체가 있었다는 것을 알지만 그 증거를 발견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저자는 지구에서 불이 언제 처음으로 나타났을까 하는 질문은 산소와 연료가 언제부터 있었냐는 질문으로 옮겨간다고 말한다.(266 페이지)

 

언급했듯 지구에 가장 많은 원소 네 가지는 마그네슘, 규소, 철, 산소다. 하지만 지구에서 거의 모든 산소는 지구의 지각과 맨틀에 광물로 묶여 있다. 지구의 맨틀에 가장 많은 광물인 감람석에 네 원소가 고체로 묶여 있어 산소가 대기 속 기체로 존재할 수 없다.

 

청동의 요소인 구리는 열수공의 현무암 지대에서 얻고 주석은 대륙의 산맥에서 발견되는 화강암에서 얻는다. 전편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과학혁명이 코페르니쿠스가 천문학과 물리학 혁명을 한 1543년보다 100년 앞선 15세기 포르투갈의 항해가 가져온 지질학 혁명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견해다.

 

당시 포르투갈 탐험가들은 과학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던 중세 시대의 사람들이었지만 오늘날 과학자들이 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들이 살던 세상에 대해 질문하고 밖으로 나가서 그 답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지금의 지질학자들이 하듯 지구에 의문을 가졌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현대 지질학자들이 하는 것처럼 바람, 해류, 자기 나침반의 편차, 해안선 구성을 체계적이고 정량적으로 측정했다. 그들의 지도는 점점 더 정확해졌다.

 

그리고 그 결과 현대 지질학자들이 자신들의 분야에 속하는 것으로 여길만한 발견들이 이루어졌다. 이 발견에는 대기와 해류의 대순환, 자기장이 약화되는 경향, 지구의 7가지 기후 벨트(두 개의 극지 벨트, 두 개의 온대 벨트, 두 개의 저위도 사막지대, 그리고 초목이 풍성한 적도 벨트), 나중에 대륙 이동과 판구조론으로 이어지는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해안선의 일치가 포함된다.

 

만일 이것이 최초의 과학 혁명이었다면 그것은 지식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 즉 선원들과 작은 배의 선장들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점에서 코페르니쿠스의 과학 혁명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우주와 지구 영역에서의 우연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령 암석과 같은 고체가 부서지는 것도 자세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미세한 균열과 흠집 또는 원자 단위의 위치 차이에 민감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결정적 사건이 하찮은 비본질적 사건에 의해 일어난 예는 많다. 우주, 지구, 생명, 인류가 하나의 문제틀로 엮이는 빅히스토리의 문제작인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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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 인간성의 기원을 찾아가는 역사 수업
닐 올리버 지음, 이진옥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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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의 책이다. 제목만으로는 문학책 같다. 저자는 닐 올리버. 이야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책이다. “이야기는 세계라는 직물 안에서 구성원이 제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붙들어주는 실과 같다.” 오래된 이야기들은 시간의 파도가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릴 때 운 좋게 남은 화석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야기란 한때 온전히 전체를 이루었던 것들의 파편이다. 바로 거기서부터 우리는 무엇이든 짜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책은 1 챕터인 가족부터 마지막 12 챕터인 죽음까지 이어진다. 메리 리키가 발견한 라에톨리 발자국은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 인근 라에톨리의 화산재 위에 찍힌 사람 발자국이다. 이는 그들이 날카로운 날을 만들거나 주먹도끼를 만들겠다는 마음을 먹기 훨씬 이전부터 두 발로 걸었음을 알게 한다. 360만년전 vs 260만전년이 답이다. 전자는 직립을 말해주는 연도이고 후자는 도구 제작을 말해주는 연도다.

 

올두바이 협곡은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루돌펜시스,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 등의 화석이 발견된 고인류 화석의 보고(寶庫)다.(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에서 최초로 고인류 화석을 발견한 사람은 한스 렉이다.; 91 페이지)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형태인 크로마뇽인의 크로마뇽은 동굴 또는 바위 그늘을 뜻하는 크로와 그 땅의 주인을 의미하는 마뇽의 결합어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네안데르탈인)는 약 40만년전부터 2만 5000년전까지 살았던 고인류다. “사랑과 보살핌은 현생인류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보다 수십만년 앞서 지구상에 등장한 인류는 삶과 죽음의 자리에서 동료를 보살폈다.” 저자는 땅을 밀고 솟아나 깎이고 닳아 바다로 씻겨 내려갔다가 되돌아오는 것, 돌과의 연결, 돌에 대한 믿음이 자신에게 필요한 유일한 불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라지겠지만 바위들은 언제까지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인류학자 헨리 번은 약 200만년전의 고인류들이 저녁거리를 신중하게 고르는 미식가들이었다고 말했다. 헨리 번 이전까지 초기 인류는 사자와 하이에나가 포식을 끝내고 고기와 골수를 발라 먹는 쓰레기 처리꾼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번은 그들이 저녁거리를 신중하게 고르는 미식가들이었음을 입증하는 증거를 찾았다.

 

올두바이의 한 도살 유적에서 번은 180만년전의 인간 사냥꾼들이 남긴 영양, 가젤, 누의 뼈를 발견했다. 턱뼈에 남은 치아를 관찰하여 동물들의 나이를 추정한 결과 닥치는 대로 사냥했던 사자나 표범과 달리, 호미닌 사냥꾼들은 오직 다 자란 동물들만 골라 사냥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른 영장류들은 긴 소화기관에 적합한 채식 위주의 식단에 만족했지만 인류는 영양이 풍부한 고단백 육류를 안정적으로 섭취했다. 그 결과 인간의 두뇌는 점점 더 커졌다. 1931년 영국의 고인류학자 도널드 매킨스는 올두바이에서 고인류 뼈와 석기, 동물 뼈, 둥그렇게 놓인 돌 무더기를 발견했다.

 

메리 리키는 누군가 은거지를 만들기 위해 그 화산암 무더기를 의도적으로 배치해놓은 것이라 설명했다. 190만년전의,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집이다. 저자는 당시 인류는 식량을 집으로 가져와 기다리는 이들과 나눠먹을 줄 아는 존재였다고 말한다. 여성이 육아를 전담하고 남성이 먹을 거리를 구해와 가족을 부양하는 성별 분업설을 러브조이(오웬 러브조이가 주장) 가설이라 한다. 물론 그의 주장은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책에는 스카바 브레 이야기도 나온다. 스코틀랜드의 폼페이라 불리는 그곳은 5000년 동안 모래에 파묻혀 있다가 1850년에 몰아친 또 다른 사나운 폭풍으로 마법처럼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낸 유적이다. 이 부분에서 탄자니아 라에톨리 발자국을 생각하게 된다. 응고롱고로 화산 폭발 때 생성된 화산재에 비가 내린 덕에 바닥은 진흙처럼 질척였다. 그래서 발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연이은 화산 폭발 때 생성된 화산재가 그들의 발자국을 덮었고 그 발자국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계곡을 흐르는 물에 의해 차츰 모습을 드러냈다. 조지아 공화국 드마니시에서 발견된 두개골 유적은 아프리카 대륙 밖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호미인 화석이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다섯 개체분의 호모 에렉투스 화석이 발견되었다. 호모 에르가스터, 호모 가우텐겐시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루돌펜시스 등이 명명되었다.

 

그런데 드마니시에서 각양각색의 생김새를 지녔으며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다섯 개체 분이 발견되었다. 이는 생김새가 다르다고 무조건 다른 종이 아니며 이들 모두가 하나의 종 즉 호모 에렉투스일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초기의 호모 에렉투스는 시간상으로 우리보다 우리의 친척이자 아프리카의 작은 유인원으로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더 가까웠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사람처럼 두 발로 걸을 수 있었던 첫 번째 부류였다. 그들은 아직 인간 즉 호모라고 할 수 없었지만 유인원과는 달리 팔로 물건을 든 채 먼 거리를 달릴 수 있었다. 오랫동안 고고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를 원숭이 같은 인간, 야만적인 멍청이로 치부했다. 그러나 최근 일부 학자들이 호모 에렉투스가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존재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찾아냈다.

 

호모 에렉투스는 구대륙의 끝까지 뻗어나갔다. 남아프리카에서 출발해 수십만년 뒤에는 에티오피아까지 이르렀다. 그들 중 일부는 지부티의 해변에 서서 아덴만(아라비아 반도의 예멘과 동아프리카의 소말리아 사이의 만) 너머를 응시하다가 해협을 건너 아라비아 반도에 당도했을 것이다. 빙하기였던 플라이스토세 동안 간혹 해수면이 낮아지면 걸어서 해협을 건너기도 했을 것이다.

 

이들은 아라비아부터 구대륙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오늘날에도 아프리카를 떠나는 이민자와 난민들은 200만년전 호모 에렉투스가 개척한 그 경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120, 121 페이지)

 

인간의 외모는 왜 이렇게 다양한 것일까? 유전학자들은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현생인류가 같은 유전자를 나눠 가졌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하고자 했다. 규모가 크고 건강한 집단에서 무작위로 발생하는 돌연변이는 바다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처럼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유전학자들에 따르면 화산 폭발 같은 재난이 일어나 어떤 종의 개체 수가 급감하면 인구의 병목현상이 발생한다.

 

인류 개체 수가 급감하여 가임 인구가 몇 남지 않은 상황은 돌연변이에게 자기 유전자를 널리 퍼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130 페이지) 현대 아프리카인의 살과 뼈에는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유래한 DNA가 없지만 유럽인에게는 많게는 4%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있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마주쳤을 때 울려퍼진 메아리는 강철에 부싯돌이 닿을 때처럼 불꽃 같았을 것이다. 그 혼합물에서 한없는 창조성이 마법처럼 피어났다.

 

마지막으로 빙하가 물러난 시기는 약 1만 2천년전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등장했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그들은 그 광활한 대륙을 떠나 이동을 시작했고 중동을 거쳐 아시아, 유럽, 마지막으로 약 2만 5000년전 오늘날의 베링해협을 따라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했다.

 

저자가 처음 고고학 발굴에 참여한 것은 18세이던 1985년이다. 장소는 스코틀랜드 에이셔주 댈멜링턴에 있는 둔 호수가였다. 석기시대 사냥꾼들이 쓰던 플린트의 부스러기와 처트(규산을 함유한 퇴적암)의 흔적이 발견된 곳이다. 고고학자들은 석기시대인들이 돌로 도구를 만들 때 생기는 그런 부스러기들을 데비타지(debitage)라 한다.

 

다른 고인류들처럼 호모 사피엔스도 탐험가였고 방랑자였다. 그들의 여정은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중동으로 이어졌고 이전부터 사용되던 동쪽 길을 따라 아시아와 호주, 베링해협을 통과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어졌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금으로부터 약 4만년전에 유럽대륙에 입성했다. 그러나 그들이 유럽에서 멀지 않은 이스라엘 땅에 닿은 것은 무려 17만 7000년전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 가르멜산에 있는 미슬리아 동굴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네안데르탈인에 비해 좁은 얼굴, 좁은 이마, 전체적으로 덜 건강한 인상, 뚜렷한 턱)을 가진 젊은 성인의 왼쪽 위턱뼈 일부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175 페이지)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 대륙을 코앞에 두고도 건너가지 못한 것은 이미 그곳에 호모 에렉투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쇠닝겐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들의 창은 그들이 생각보다 더 현대적이며 지혜로웠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독일 뒤셀도르프 근처의 네안데르 계곡에서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을 발견한 것은 1856년이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이긴 사실을 장막에 거주하는 조용한 사람인 야곱이 꾀와 속임수를 써서 능숙한 사냥꾼인 에서를 이긴 성경 이야기에 비유한다.(176 페이지)

 

인류 발달 역사에서 엄지손가락의 진화는 커다란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엄지손가락에 다른 손가락과 맞닿는 움직임이 가능해지면서 도구를 집는 힘이 늘고 손재주도 향상되었기 때문이다.(264 페이지) 갓난아기는 270개의 뼈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몇몇 뼈들은 성장과정에서 하나로 붙게 되고 어른은 총 206개의 뼈를 갖게 된다.(357 페이지)

 

우리 종은 지구상의 다른 모든 종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 차이를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손이었다. 인류는 손으로 도구를 만들고 온갖 기술을 탄생시켰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지고 잡고 움켜쥐었다.(268 페이지) 인도학자 프리츠 스탈 교수는 인간에게 말보다 의례가 먼저 등장했다고 믿는다.

 

의례를 이루는 패턴화된 행위,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몸짓은 새들의 짝짓기 춤이나 곤충의 분봉 행위를 본뜬 것일 수 있다.(296 페이지) 저자는 우리의 첫 조상들은 의식이라는 것이 생기기 전에 그저 걸었고 창조했고 살고 죽었다고 말한다.(297 페이지) 이는 우리 조상들이 날카로운 날을 만들거나 주먹도끼를 만들겠다는 마음을 먹기 훨씬 전에 두 발로 걸은 사실을 연상하게 한다.

 

본문에 중석기 시대(Mesolithic)라는 말이 나온다. 마지막 사냥꾼이 살던 시대를 일컫는 고고학 용어다.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중간을 의미한다. “우리 종은 20만년 동안 지구상에서 살아왔다. 그 시간 동안 인류의 생리나 지능이 근본적으로 변했을 리는 없다. 우리는 그들과 같다. 다른 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과 우리의 선택이다.”(325 페이지)

 

저자는 성소(聖所; sanctuary)의 동굴 벽화란 말을 한다. 프랑스 남서부의 트루아프레르 동굴의 성소라 불리는 방에 매머드, 곰, 말, 야생 염소, 들소, 순록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것은 1만 5000년전의 그림이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전율하게 한다. 저자는 그 벽화를 만들어낸 힘이 상상력이었을 것이라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상상력이라는 얇은 막을 걷어내면 우리는 여전히 사냥꾼이다.

 

“우리 종의 동맥에는 보랏빛 세쿼이아보다 고귀한 생명선이 살아 숨쉬고 있다. 우리의 생명선, 그것은 바로 지혜다. 원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 지혜는 환기하고 회복하는 힘을 우리에게 준다. 우리 조상들이 익히고 알게 된 모든 것이며 현대적 자아를 지닌 우리의 깊은 뿌리에 있는 무엇이다. 수십억년 동안 이어진 삶의 유산, 원시로부터 온 생명력이 우리의 DNA 가닥 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 지금도 조용히 눈을 감으면 그것을 느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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