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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기계 vs 생각하지 않는 인간 - 일과 나의 미래, 10년 후 나는 누구와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홍성원 지음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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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 인간의 대결은 흥미로운 일일까? 궁금하면 ‘생각하는 기계 vs 생각하지 않는 인간’을 읽으면 된다. 사실 답은 명약관화하지 않을까? 점점 생각하지 않는 인간으로 하여금 생각하는 기계에 맞서 이길 수 있도록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는 산업화를 넘어 놀라운 기계들이 등장하는 시대가 우리에게 기회가 될지 새로운 분열과 고통의 시간이 될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기계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것인가? 패배할 것인가? 현재 내가 하는 일의 본질은 무엇이고 미래의 기계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나의 미래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하는가? 생각하는 힘을 위해 우리가 일상에서 준비하고 실천할 것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이 중요하다. 저자는 이제 책은 내용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닌 행간의 의미와 다양한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매개라 말한다.

 

과학자 에드워드 프레드킨은 우주의 탄생, 생명의 출현, 인공지능의 출현을 세 가지 위대한 사건으로 보았다. 인간에게는 인공지능이 구현해내지 못하는 메타인지 능력이 있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의미다.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인간과 기계가 벌인 대결의 5라운드다. 사회학자 조지 리치가 만든 말 가운데 맥도날드화가 있다. 이는 사회가 효율성, 측정 가능성, 예측 가능성, 통제성 등에 의해 움직인다는 의미다. 현대는 기계의 인간화가 진행중이다. 지능형 로봇, 휴머노이드, 사이보그, 로봇 사피엔스 등이 등장한 지 오래다.

 

1890년대 말똥 대위기 사건이 런던, 뉴욕 등에서 일어났다. 말은 짐을 나르는데 열 사람 이상의 몫을 하고 속도도 빠르다. 하지만 말은 차지하는 공간과 먹어치우는 식량 문제 말고도 배설물을 양산하는 문제의 주인공이었었다. 그런데 이 난제는 자동차가 만들어짐으로써 해결되었다. 기술이 이긴 것이 아니라 말이 일자리를 빼앗긴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날 기계의 발달로 인간이 일자리를 잃는 것을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기술은 상상보다 느리다고 말한다. 인공 지능 분야의 대가 토비 월시는 인공 지능의 발달을 4단계로 나누었다. 1단계는 약한 인공 지능, 2단계는 일반 인공 지능, 3단계는 초지능, 4단계는 강력한 인공 지능이다. 저자는 일자리 감소도 없을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무섭게 변하는 기술 발전에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기보다 낯설지만 새로운 길을 찾는 기쁨을 맛보라고, 가지 않을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말한다.

 

이는 당신이 미래의 주인공이 되는 길이라는 것이다. 신기술이란 결국 기존 분야에서 조금 달라지는 것일뿐이라 말한다. 눈에 띄는 말은 감성이 공감을 이끈다는 말이다. 최근 뇌과학 분야에서 강조되는 것이 감성임을 감안하면 타당한 말이다. 공감과 배려는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졌다.

 

현대의 일터에서 요구하는 창의성은 에디슨이나 갈릴레이처럼 세상을 뒤집는 발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늘 아래 새것을 만들어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조직이나 구조 속 창의성의 본질은 무심코 지나간 것을 새롭게 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기존의 많은 창의적인 작품에서 공통 패턴을 찾아내고 모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면 된다.

 

저자는 직관의 의미를 강조한다. 직관이란 본질을 꿰뚫어 큰 그림을 보는 힘의 원천이다. 개인의 감인 직감과 다른 직관은 순간에 발현될 수도 있고 오랜 기간의 숙고 끝에 나올 수도 있다. 호모 파베르는 도구를 다루는 인간을 의미한다. 이 단어를 처음 만든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인간은 도구 외에 자신을 만드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보았다.

 

생각의 힘은 정보의 양에 따른 지식이 아니라 생각을 운용하는 지혜에서 나온다. 지식은 기존 정보에 좌우되고 지혜는 기존 정보들을 새롭고 독창적으로 활용하는 데서 나온다. 어느 정도의 아니 충분한 정보가 필요하지만 그것을 새롭게 배치하고 연결하고 낯설게 바라보는 능력이 관건이다.

 

현대 사회의 패러독스 가운데 하나는 사고와 정보의 패러독스다. 이는 정보량이 늘어날수록 점점 더 사고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생각하는 힘을 단련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줄이고 사유 행위를 늘려야 한다. 시대에 맞는 인간으로 거듭 날 필요가 있다. 사고력이 관건이다. 생각에도 근력이 필요하다.(저자는 스마트폰은 유용하지만 그것은 집중력과 사고 능력을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책에 무한 신뢰를 보내자. 책에는 세상을 바꿀 힘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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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 - 대청 외교와 『열하일기』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 서가명강 시리즈 16
구범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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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과 조선은 사대자소(事大字小) 관계였다.(‘자; 字’에는 자애롭게 보살핀다는 의미가 있다.) 1619년 사르후 전투, 1627년 정묘호란, 1636년 병자호란이 있었다. 사르후 전투는 조선이 대명(對明) 전쟁을 선포한 후금을 칠 군사를 파견하라는 명의 압박에 못 이겨 강홍립 군대를 파견한 전투를 말한다. 강홍립은 투항했다. 광해군이 적당히 싸우는 척 하고 돌아오라는 밀지를 내렸다는 말은 전체 파병 수 13000 중 희생자가 8, 9천이니 설득력이 없다.

 

광해군의 중립외교는 실현하지 못한 바람에 불과하다. 파병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정묘호란은 조선이 아닌 조선 서북부의 명군을 공격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저자는 홍타이지의 칭제(稱帝)식에서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를 완강하게 거부한 조선 사신들을 흙탕물을 끼얹은 것이라 표현했다.(32 페이지) 병자호란은 이 흙탕물 사건을 일으킨 조선을 응징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꿇어앉을 궤)

 

고려는 조공 대상을 여러 차례 바꾸었다. 한족이 세운 송나라,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 한족이 세운 명나라,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등이다. 연천 미산면에 고려 4왕(태조, 현종, 문종, 원종)과 16공신을 모신 숭의전이 있다. 16공신을 모신 곳이 배신청(陪臣廳)이다.(陪; 모실 배) 배신(陪臣)이란 신하를 모셨다는 의미보다 제후의 신하가 천자에 대하여 자기를 일컫는 말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대보단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원병을 파견한 명나라 황제 만력제에 대한 제사를 거행하기 위해 창덕궁 후원에 설치한 제단이다. 저자는 1704년에 세워진 대보단이 보통 조선이 명나라에 대한 사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상징하는 시설로 여겨지지만 명 황제의 후손이 아닌 조선의 임금이 명 황제의 제사를 모시는 것은 명의 회복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전제로 한 행동이었다고 말한다. 즉 조선이 명나라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과거의 존재로 정리했다는 것이다.

 

1704년은 명나라가 무너진 1644년 이후 60년이 지난 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가 재위한 60년은 조선의 영조, 정조 재위기와 거의 겹치는 시기다. 1780년 건륭제는 자신의 칠순 생일(만수절; 萬壽節)을 대경(大慶; 큰 경사)으로 기념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는 수사적 표현이었다. 건륭제는 자신의 생일(음력 8월 13일)을 열하의 피서산장에서 지냈다.

 

당시 가을 사냥은 황제의 연례행사였다. 가을 사냥을 연례행사화한 첫 황제는 강희제였다. 목란위장(무란웨이창)은 사슴 사냥을 가리키는 만주어 muran을 음차한 목란(木蘭)과 관설(官設) 수렵장인 위장(圍場)의 합성어다.(圍는 사냥하다, 포위하다, 에워싸다는 의미다.) 면적은 1만 제곱킬로미터로 경기도 정도의 크기였다. 이 안에 72곳의 사냥터가 있었다.

 

1780년은 정조 재위기였다. 진하(進賀)란 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 때 신하가 군주에게 특별히 축하의 뜻을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 박명원(박지원의 8촌형)이 열하의 건륭제의 칠순 만수절 하례에 참석하게 되었다. 조선의 진하 특사 파견은 건륭제도 기대하지 않았던 이례적 성의 표시였다.(진하 특사 파견은 의무가 아니었다.)

 

베이징이 아니라 열하에서 잔치를 연 것은 천연두와 관련이 있다. 건륭제는 천연두 면역이 없는 몽골 등의 왕공 귀족을 위해 매년말 베이징으로 오는 대신 팔월 중순 자신의 생일에 맞춰 열하로 오게 했다. 진하사, 사은사는 되도록 가까운 종친이나 부마를 임명하는 것이 관례였다. 적당한 종친을 찾을 수 없었던 정조는 부마 가운데 금성위 박명원, 창성위 황인점을 선택했다.(박명원은 정조의 고모 화평옹주의 남편이었다. 황인점은 영조의 딸 화유옹주의 남편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정조의 고모부였다.)

 

정조는 ’열하일기‘를 꼭 집어 비판했다.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통속적인 글들과 비슷한 문체를 구사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조선 사신단은 외교 사절의 성격만을 띤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상(隊商)과 다를 바 없었다.(88 페이지)

 

베이징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원래 청나라의 수도는 선양(瀋陽)이었다. 1644년 명나라의 수도 베이징이 이자성이 이끄는 농민 반란군에게 함락되고 숭정제가 자살한 기회를 타 청나라는 베이징을 점령하고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겼다. 이 사건을 청의 입관(入關)이라 한다. 천하제일관이라 불렸던 만리장성 동쪽 끝의 산해관 안쪽으로 들어왔다는 의미다.(68 페이지)

 

압록강을 건너 선양까지는 옛날 거리 단위로 540리에 불과했으나 베이징까지는 무려 2000리가 넘었다.(69 페이지) 원래 박명원 일행이 목적한 곳은 베이징이었다. 박명원 일행이 베이징에 도착하자 베이징 예부에서 이 사실을 황제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건륭제는 조선에서 만수절을 축하하는 사신이 도착했으면 곧장 열하로 보냈어야지 왜 그곳에 붙잡아두느냐고 역정을 내면서 당장 열하로 보내라는 명령을 내렸다.(162 페이지)

 

이때 사신들이 베이징을 떠나면서 이 사실을 서울에 장계(狀啓)로 알렸다. 수행 무관 중 몇 명을 뽑아 역관과 함께 사신의 장계를 들고 먼저 귀국하는 사람들을 선래군관(先來軍官)이라 한다.(163 페이지) 저자는 박명원 일행이 베이징을 떠나며 서울로 보낸 장계를 9월 17일 장계라 칭한다.(164 페이지)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박명원의 이 장계는 당일인 9월 17일 서울에 도착했다.(편찬자의 실수다.) 건륭제는 칠순 잔치를 열하에서 벌일 계획을 세우고 박명원 일행이 서울에서 출발할 무렵 이미 베이징을 떠나 줄곧 열하에 머물고 있었다.(161, 162 페이지)

 

청나라는 베이징과 열하 간에 매우 신속하고 효율적인 연락 체계를 운영하고 있었다. 1년에 몇 달씩이나 베이징을 떠나 있었음에도 황제가 정무를 처리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박명원 일행은 금불 사건을 겪었다. 황제의 진노에 따라 허둥지둥 열하에 도착한 박명원 일행은 황제의 명을 칭하는 예부 관원들의 요구를 이기지 못하고 판첸을 만난 자리에서 판첸이 준 금불을 받는다. 판첸 라마라 하는 판첸은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에 버금가는 종교적 권위를 지닌 전생활불(轉生活佛)이다.(251 페이지)

 

황제의 명이라고만 하고 왜 만나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듣지 못한 박명원은 모든 것을 황제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박명원은 성균관 유생들의 규탄에 직면했다. 배불(排佛)의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박명원은 황제가 정조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금불을 선사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연의 산물이었을뿐이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 판첸과의 불상 관련 일을 자세하고 치밀하게 기록(해명)했다. 이 책 곳곳에는 봉불지사(奉佛之使)라는 비난의 표적이 된 박명원을 변호하는 내용이 숨어 있다. 저자는 박지원이 강조한 내용들이 정말 그해 8월 11일에 그가 직접 목도한 바에 근거한 것이었을까?란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박지원이 공식 수행원 신분도 아닌 자제군관의 하나였음을 고려하자. 1780년 이후 3년만인 1783년 정조는 박명원을 동지겸사은사행의 정사로 임명했다. 그러나 박명원은 부담을 느끼고 명령을 거두어줄 것을 요청했다.

 

1790년 정조는 건륭제 팔순 진하(進賀) 특사를 보냈다. 정사는 창성위 황인점, 부사는 서호수였고 박제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1784년 박명원은 영조에게 존호를 올리기 위해 설치된 상호도감의 제조(提調) 중 하나로 임명되었다.

 

’열하일기‘가 문학적으로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참신한 문체의 책이라지만 문학적 감별 능력은 없고 그저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기도 벅찬 역사학도의 입장에서는 무엇을 보고 새로운 문체라 하는지 알 모르겠다(152, 153 페이지)고 한 저자는 문학 작품으로서 ’열하일기‘의 가치는 오히려 단순한 여행 견문록에 머물지 않는다고 평하며 다만 ’열하일기‘를 사료로 취급할 때에는 저자의 집필 의도를 염두에 두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결론짓는다.(260 페이지) ’열하일기‘에 오류가 있지만 그것은 학자적 양심을 버리면서까지 사실을 왜곡한 것이 아니다.

 

정조는 대청(對淸)외교에 전에 없던 정성을 기울였다. 1780년 정조의 건륭 칠순 진하 외교는 예외적 우연이 아니다. 정조는 사신 파견에 수반되는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누차에 걸쳐 사은사를 특파했다.(275 페이지) 조선과 청은 사대와 자소의 관계를 맺었기에 조선이 성의 표시를 할 때마다 청 또한 그에 상응하는 우대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291 페이지) 건륭제는 1780년 열하를 무대로 칠순 만수절 이벤트를 거행했다.

 

건륭제는 이 자리에 두르베트, 우량하이, 토르구트, 회부의 무슬림 벡, 금천 지역의 토사 등을 참석하게 했다. 이들은 모두 건륭 연간에 이르러 비로소 청에 완전히 복속된 집단이나 지역의 수장들이다. 천자 건륭제에게 이들을 대거 한자리에 모은 칠순연은 자신이 평생 이룬 업적을 상징하는 이벤트였다. 이를 외번필집(外藩畢集)이라 한다. 건륭제는 조선에만 사상 초유의 특은을 베푼다는 혐의가 일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즉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을 베푼다는 일시동인의 원칙을 확고하게 지키는 모양새를 갖추면서 3대 연회의 문호를 외국 사신들에게 개방했다.(325 페이지)

 

저자는 1663년 겨울 청나라에서 파견한 칙사가 서울에 왔을 때 홍문관 수찬 김만균이 칙사 접대 업무를 맡긴 왕(현종)명을 거역한 사건을 이야기한다. 그의 조모는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가 함락될 때 오랑캐에게 욕을 당하지 않으려고 자결한 분이다. 부모가 죽으면 3년상을 치르고 조부모가 죽으면 1년상을 치르는 것처럼 관계가 멀어지면 사의에 입각한 도덕적 의무의 강도도 약해져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김만균은 파직되었으나 후에 주자를 인용하면서 복수오세설을 주장한 송시열로 인해 김만균에 대한 처벌을 주장한 사람이 오히려 파직을 당했다.

 

저자는 영조는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은 인조의 4대손이지만 정조는 6대손이라는 말을 한다. 굳이 복수오세설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관계가 멀어지면 사의에 입각한 도덕적 의무의 강도도 약해져야 하고 시실 그렇겠지만 김만균의 경우 병자호란으로부터 30년 정도 지난 시점이었고 당사자가 조모였으니 원한을 모두 떨쳐버릴 수 없지 않았을까? 영조는 4대손이고 정조는 6대손이어서 차이가 났다고 보기는 어려운 듯 하다.

 

저자는 1776년 25세의 젊은 나이로 등극한 정조가 마주친 것은 청나라의 전무후무한 성세(盛世)라고 말한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열하일기‘를 더 깊이 이해하려는 의도는 물론 정조에 대한 관심 때문에 접한 구범진의 책은 열하일기를 소재로 사대자소, 존주대의 등의 이야기를 들려준 참신한 책이다. 열하일기의 배경을 알 수 있었으니 이제 문제의식을 박지원의 ’연암집‘으로 이어가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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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배우는 지질학 1 쉽게 배우는 학문 1
성종규 지음 / 잼난인연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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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지름은 6,400km다. 이를 저자는 지구 중심까지는 6,400km라고 표현했다. 반면 그것을 알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겨우 10km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것을 알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10km라니? 인간은 6,400km인 지구 반지름의 0.15%인 10km 정도를 알아냈을뿐이라 하면 좋을 것을...

 

지각은 암석으로, 암석은 다양한 광물로 이루어졌다. 가장 비중이 큰 산소부터 규소, 알루미늄, 철, 칼슘, 나트륨, 칼륨, 그리고 가장 작은 마그네슘에 이르는 주요 8 원소들이 지각을 이룬다. 1순위인 산소 두 원자와 2순위인 규소 한 원자로만 이루어진 광물이 차돌이라 불리는 석영이고 이 가운데 특징을 가진 결정형으로 보석으로 사용되는 것을 수정이라 한다.

 

저자는 암석, 광물, 지질학을 쉽게 배우는 지름길은 작은 돌 하나라도 천천히 아주 자세히 관찰해 보는 것이라 말한다. 다이아몬드는 ’정복되지 않은(untameable)‘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adamas에서 왔다. 금강석이 들어 있는 암석을 킴벌라이트, 램프로아이트라 한다.

 

다이아몬드는 고압과 고온(1500에서 2000도에 이르는)에 의해 만들어지기에 우리나라에서는 발견하기 매우 어렵다. 암석을 이루는 광물을 조암광물이라 한다. 석영, 정장석, 사장석, 흑운모, 각섬석, 휘석, 감람석 등이 주요 조암광물이다. 화강암, 섬록암, 반려암은 심성암이고 유문암, 안산암, 현무암은 화산암이다.

 

마그마는 특별한 환경에서만 만들어진다. 현무암은 녹색 편암, 각섬암 단계를 거쳐 에클로자이트가 된다. 열점(熱點; hot spot)은 맨틀 내부의 특정 위치에 고정되어 있으며 주위보다 온도가 높아 마그마가 형성되어 화산활동이 일어나는 곳이다.

 

“마그마는 암석의 일부가 녹은 것이다. 녹는 지역의 암석을 감람암이라고 한다.”(33 페이지) 이 문장(두 번째 문장)도 이해하기 어렵다.(내 내공 부족 탓이겠지만...) 설명이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유동성 마그마가 지층 속에 침입하여 굳는 현상을 관입이라 한다.

 

지하에서 그대로 식는 현무암질 마그마는 반려암이 되고 안산암질 마그마는 섬록암이 되고 유문암질 마그마는 화강암이 된다. 지표로 나와 식는 현무암질 마그마는 현무암이 되고 안산암질 마그마는 안산암이 되고 유문암질 마그마는 유문암이 된다. 유문암질 용암은 현무암질 용암에 비해 점성이 크다.

 

안산암질 용암은 현무암질 용암과 유문암질 용암의 중간 정도의 성질을 갖는다. 그래서 어떤 때는 흘러나오고 어떤 때는 폭발한다. 암석에서 끊어진 것이 어긋나면 단층이라 하고 금만 나 있으면 절리라 한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급하게 식을 때 만들어진다. 주로 현무암에서 나타나지만 유문암이나 안산암에서도 나타난다.

 

하나의 용암이 흘러서 생긴 주상절리의 경우 대개 기둥 모양의 상부와 하부가 자리하고 그 사이에 경사가 져 있으며 기둥 굵기가 기둥 모양의 것에 비해 가는 엔타블러쳐가 있다. 저자는 판이 1년에 약 10cm 움직일 경우 산출되는 초당 0.000003mm라는 지극히 느린 속도가 과연 지진을 일으킬까 묻는다.

 

저자에 의하면 지진은 땅의 순간적인 변형에 의해 생긴다. 단순히 충돌하기 때문에 지진이 발생한다면 지진은 항상 발생해야 한다, 판에 쌓이는 변형력이 한계를 넘을 경우 어느 부위가 깨지거나 뒤틀리며 에너지를 내놓는 현상이 지진이다.

 

바닷물, 나무뿌리 등은 암석의 풍화(암석이 물리적 작용이나 화학적 작용으로 인해 점차 토양으로 변해가는 현상)를 일으키는 대표 요인이다. 풍화에 강한 부분은 침식(깎여나감)이 더디고 약한 부분은 빠르다. 궁금한 것은 흙이 되는 것을 토화(土化)라 하지 않고 왜 풍화(風化)라 했는가, 이다.

 

침식 정도가 다른 것을 차별침식이라 한다. 산 정상에 따로 솟은 바위 덩어리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절리를 따라 나무나 풀이 자라고 풍화가 된다. 풍화된 부분의 흙이 없어지면 크고 둥근 바위가 정상부에 홀로 또는 무더기로 나타난다. 이런 지형을 토르라 한다.

 

벌레가 파먹은 것 같은 구조의 바위를 타포니라고 한다. 강물이나 바닷물은 암석을 침식시킬 수 있고 암석 알갱이를 이동시킬 수 있다. 암석 알갱이는 강이나 바다의 바닥에 퇴적되기도 한다. 모래가 쌓이는 곳은 계속 모래만 쌓이고 석회질 물질이 쌓이는 곳은 석회질 물질만 쌓인다. 계속 쌓이면 위의 퇴적물이 누르는 힘으로 인해 물이 빠져나감에 따라 더욱 단단해진다.

 

물속에 녹아 있던 석영, 방해석, 점토광물, 철 등의 광물질이 퇴적물 알갱이를 붙여주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이로써 퇴적물은 암석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바위를 퇴적암이라 한다. 점토암 중 퇴적된 방향으로 납작하고, 납작하게 잘 부서지는 암석을 셰일이라 하고 덩어리진 모습의 점토질 암석을 이암(泥巖)이라 한다.

 

석회질 물질이 퇴적된 것을 석회암이라 한다. 한때 바닥이 갈라진 모습이 드러나는 퇴적 구조를 건열(乾裂)이라 한다. 얕은 물에서 찰랑거리는 물이 만들어낸 퇴적 구조를 연흔(漣痕)이라 한다. 비스듬하고 층리와 비슷해 편의상 사층리(斜層理)라 하고 그렇기에 거짓 위자를 써서 위층리(僞層理)라 한다.

 

자갈, 사암, 이암 등 무거운 것에서 가벼운 것 순서로 쌓인 것을 점이층리(漸移層理)라 한다. 드물게 순서가 반대인 경우도 있다. 과거에 살았던 생물의 유해나 흔적이 돌로 변하거나 돌에 새겨진 것을 화석이라 한다. 과학자들은 화석의 연구를 통해 지구사를 밝힌다.

 

절리(節理), 단층(斷層), 습곡(褶曲)은 암석에 작용한 힘을 기억하고 있다. 한꺼번에 두 방향의 절리가 만들어진 것을 공액(共; conjugate) 절리라 한다.(액은 멍에 액이다.) 스타이롤라이트(stylolite)도 있다. 톱날 같은 구조를 말한다.

 

정단층은 바깥쪽으로 서로 멀어지는 힘이 작용했을 경우 절리면을 따라 한쪽이 벌어지는 형태의 단층이다. 역단층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미는 힘이 작용했을 경우 절리면을 따라 한쪽이 밀려 올라간 형태의 단층이다. 수직 이동 없이 수평 방향으로 이동이 일어난 단층을 주향이동단층이라 한다. 암석층이 끊어져서 생긴 틈에 암석이 채워진 것을 암맥(dike), 광물이 채워진 것을 광맥(vein)이라 한다.

 

지층이 휜 것을 습곡이라 한다. 온도와 압력의 변화에 견디기 위해 암석도 변한다. 암석을 이루는 광물들이 서로 얽혀 있는 형태가 바뀌거나 더 안정된 광물로 변하거나 원래의 암석의 형태와 조직이 바뀌는 것을 변성작용이라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바위를 변성암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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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이주, 생존 -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인류는 끊임없이 이동한다
소니아 샤 지음, 성원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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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환경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는 인류 이야기를 다룬 소니아 샤(Sonia Shah)의 ‘인류, 이주, 생존’은 자연과학적 성찰을 반영한 사회과학적 메시지가 돋보이는 책이다. 저자는 일상적인 것은 정주(定住)가 아니라 이주(移住)이고 이동(移動)이라고 강조한다.

 

문장이 빠르고 메시지에 힘이 있어 읽는 재미가 크다. 가령 “산비탈에 매달린 히말라야 소나무들이 바위 투성이 정상의 상층부에서 갑자기 작아지더니 수목한계선으로 알려진 천연 경계를 만들어냈다. 그 선 위로 가는 폭포가 물길을 남겨놓은 민얼굴의 벼랑이 솟아 있다"(24 페이지) 같은 표현은 문학적으로도 돋보이는 문장이다.

 

사람들은 홍수, 폭풍, 지진 등의 이유 때문에 이동하고 불안정한 사회에서 겪는 폭력과 박해 때문에 나라를 탈출(27 페이지)하고 사막이 확장되고 삼림이 줄어들면서 겪게 된 자포자기의 가난 때문에 이주한다.(53 페이지) 아랍의 봄 역시 유럽으로의 대이동을 촉발했다.(56 페이지) 값싼 농지, 공장 일자리, 사금 광산, 유혈 혁명도 이주를 촉발했다.(123 페이지)

 

저자는 이주가 혼란을 초래한다는 일반적 믿음에 의혹을 품고 전 세계의 이주 경로를 추적했다. 그 결과 생명은 늘 움직인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저자는 인도 서해안 구자라트 주 출신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미국인이다. 그의 부모가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었던 것은 1965년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1965년 사회보장법을 통해 마련된 노인 및 저소득층 의료보장제도) 시행으로 극심한 의료인력 부족 현상이 빚어지자 미국 정부가 아시아, 아프리카, 남유럽, 동유럽 출신자들에 대한 입국 금지를 되돌린 결과다.(저자는 1969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당시 미국은 우생학의 논리를 근거로 아시아, 아프리카, 남유럽, 동유럽 출신자들에게 정신적 결함과 생물학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자는 이주자들로 인해 범죄가 늘었다고 할 근거가 없음을 찬찬히 언급한다. 저자는 자연은 변화하지 않고 경직된 질서를 따른다고 본 칼 폴 린네와 자연은 변이 가능하고 역동적이라고 본 조르주 루이 르클레르 드 뷔퐁의 차이를 논한다.

 

린네가 세분파였다면 뷔퐁은 병합파였다. 뷔퐁의 자연관은 기원전 6세기의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고대적 사상을 부활시켰다. 암석의 견고함, 물질의 윤곽, 살아 있는 피조물들의 습관은 근원적으로 변치 않는 물질적 자연을 나타나는 게 아니라 고정된 실체가 전혀 없는, 흐름의 상태를 일시적으로 표현할 뿐이었다. 영속성은 환상이고 실재하는 것은 변화였다.(98, 99 페이지)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유전(流轉)한다고 말했고 파르메니데스는 변화란 없다고 말했다. 파르메니데스는 무(無)는 없고 존재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뷔퐁은 자신의 자연관을 바탕으로 모든 인간은 어디에 살든, 피부색이 어떻든 같은 혈통에서 비롯된 한 가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린네와 뷔퐁은 지구상의 모든 물질과 생명이 위계적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생각(존재의 거대한 사슬론)을 공유했다.

 

책 중간쯤에 적소(適所) 이야기가 나온다. niche의 번역어인 적소는 야생의 생명이 사는 장소를 말한다. 보금자리를 만든다는 의미의 중기 프랑스 단어인 nicher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원래 조각상을 넣어두기 위해 움푹 파낸 벽 안의 우묵한 장소(‘벽감; 壁龕’)를 가리켰다. 동물학자들은 야생동물 각각의 적소는 이와 비슷하게 고유하고 독특한 곳 즉 그 장소를 점유한 그 한 종에게 맞춰진 장소일 것이라 생각했다. 각각의 종은 자기만의 자연 공간 속에서 살고 그 주위에는 생물학적 경계가 그어졌다고 본 것이다. 적소는 한 종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들이 갖춰진 폐쇄된 장소다.(162, 163 페이지)

 

20세기 동물학자들은 생태계와 사회에 생명을 불어넣는 생물학적 문화적 다양성의 매개체인 이주를 죽음의 매개체라 생각했다.(169 페이지) 책에는 찰스 엘턴 이야기가 나온다. 1924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동물학을 공부하던 대학생이었던 그는 떼를 지어 북극의 벼랑을 향해 돌진한 뒤 바다로 뛰어들어 죽은 레밍이라는 동물에 대해 이야기한 사람이다. 그는 자연은 언제나 정적인 상태로 존재하고 지리는 영구불변의 것으로 보았다.

 

전쟁 이전 엘턴은 대부분의 종이 각자의 자리에서 지낸다고 생각해 이주자들이 일으키는 생태적 위협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았으나 군부대가 새로운 수송 기술의 도움을 받아서 유럽을 가로지르자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엘턴은 이동하는 생물을 침략자로, 그리고 그들의 영향을 재난이라고 묘사하기 위해 새로 유입된 종의 가장 파괴적인 면만을 취했고 새로운 종 때문에 발생한 비용만 고려했을뿐 그들을 통해 얻게 된 이익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181 페이지)

 

엘턴은 동물생태학의 창시자이자 생물학의 거장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레밍이 바다로 이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184 페이지) 레밍에 대한 진실이 드러난 것은 생물학자들이 레밍의 영토에서 눈 아래를 들여다보았을 때였다. 알고 보니 레밍은 얼음장 같은 북극해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굴을 파고 눈 밑으로 들어가 눈이 녹은 따뜻한 지면과 그 위의 눈이 만들어낸 작은 틈(‘서브니비언 공간; subnivean space’)에서 이끼를 먹고 새끼들을 돌보았다.

 

자살 성향이 있는 레밍의 이주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일련의 오해(다른 사람의 편파적인 책을 보고 주장)에서 비롯되었지만 그것이 대중화된 것은 한 방송국의 의도적 사기(연출, 조작)의 결과였다.(185 페이지) 책에는 앨리효과도 나온다. 클라이드 앨리가 제안한 개념으로 개체가 함께 모여 있을 때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협력이 빚어지고 이는 개체의 생존과 번영에 이익이 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효과다.(217 페이지)

 

다윈은 모든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고 말했지만 이주 자체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과학자들은 아프리카 밖으로의 이주는 사람이 살지 않는 거대한 허허벌판으로의 확산이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고대의 DNA에서 얻은 새로운 정보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이 아프리카를 떠나 새로 이주한 땅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지금은 멸종한 고대인들이 약 180만년전에 아프리카를 떠나 이주해서 우리보다 먼저 거기에 와 있었던 것이다.(253, 254 페이지)

 

우리는 꾸준히 이주자로 살았다.(257 페이지) 대륙별 인구집단을 상징하는 독립적인 가지가 달린 나무 이미지는 대륙별 인구집단이 갈라져서 점점 거리가 생기면서 서로 독립적으로 진화를 거쳤다는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유전학자들은 이런 분기(分岐)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 오늘날 대륙별 인구집단이 동질적으로 보이는 것은 같은 조상으로부터 오랫동안 계보가 이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이주, 차별화, 다시 뒤섞임이라는 지속적 과정의 일시적 결과일뿐이다.(257 페이지) 인류의 조상은 이주했고 만났고 뒤섞였다가 다시 이주했다.

 

린네는 슬기로운 사람을 의미하는 라틴어를 가지고 인류에게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그보다 더 적합한 이름은 호모 미그라티오인지도 모른다. 20세기 대부분 린네의 정착설과 다윈의 장거리 확산 이론이 충돌했지만 갈등은 본질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1970년대에 이 충돌을 해소한 생물지리학 이론인 분단분포론이 나왔다.

 

드 케이로스에 의하면 이 이론은 생물학 버전의 관성을 회복시켰다.(273 페이지) 야생의 생명체는 자기 힘으로 대양이나 산맥, 사막 같은 지리적 경계를 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야생 생명체가 이동한 것은 스스로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구조판이 움직인 결과라는 것이다. 이는 이주를 부정하는 이론이다.

 

분단분포론에 의하면 원숭이가 신세계 종과 구세계 종으로 나뉜 것은 대서양이 열림에 따라 타의에 의해 갈라진 결과다. 하지만 분자생물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주 오래전 숱한 장거리 이동이 있었다.(286, 287 페이지) 야생생물은 과학자들이 규정한 경계를 상습적으로 넘어서 돌아다닌다.(289 페이지) 그간 과학자들은 동물들이 생리적으로 얼마나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지 과소평가했다.

 

위치 이동은 침략생물학자들이 예측한 규모로 일어나지 않으며 새로운 종의 유입은 생물다양성을 향상시킨다. 변화가 진행될 때마다 움직이는 종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이런 기회가 도래했을 때 이주자들이 왔다. 자연이 언제나 경계를 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300 페이지) 엘턴을 비롯한 생물학자들은 이주자를 자살 성향이 있는 좀비이자 가차 없는 침략자로 일축했으나 이주자의 행동을 제대로 검토해본 적도 없고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깊이 들여다본 적도 없다.

 

이주자들은 태어난 서식지의 익숙한 편안함을 뒤로하고 미지의 장소로 떠난다. 눈 덮인 산을 돌아디니는 늑대에게 왜 어디로 가는지 물어볼 수는 없지만 인간의 이주 열망을 간접적으로 탐구할 수는 있다.(314 페이지) 호모 사피엔스는 이주자의 왕이다. 고고학자 데스몬드 클락은 최초의 이주는 인간이 야생동물을 따라가다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317 페이지)

 

저자는 이주 패턴을 구직의 산물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318 페이지) 기후 변화가 아프리카 밖으로의 이동을 추동했을 것이라는 이론도 있다. 저자는 이주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의 시기에 강력해지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319 페이지) 저자는 사막이었다가 거주 가능한 녹색 회랑으로 바뀐 곳을 찾아 이주하는 것을 예로 든다.

 

하와이대학교의 컴퓨터 모델 전문가들이 지구 궤도 변화에 따른 기후 변화가 아프리카를 떠나는 인간 이동의 파동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주목할 일이다.(320 페이지) 야생의 생명이 그렇듯 이주가 인간의 몸 안에 암호화되어 있음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인간의 몸도 주위 환경에 따라 발달방식이 바뀐다. 자궁 안에서의 흔들림과 뒤척임 패턴이 우리의 지문의 고랑과 이랑을 결정한다.(325 페이지)

 

인간의 몸은 고정성보다 유동성이 더 크다. 정적이고 변화가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동성이 없는 생명체에게는 환경에 따른 변형 가능성이 진화하지 않는다. 우리의 몸은 변형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329 페이지) 인간의 역사라는 폭넓은 관점에 의하면 우리는 각자가 사는 모든 장소에서 아프리카를 떠나온 이주자다.

 

몇 세대에 걸쳐 꾸준히 그곳에 거주했다는 이유로 토착민과 이주자를 가르는 것은 자의적이다.(335 페이지) 과거에는 한 장소에 붙박힌 채 살았다는 신화가 증발하자 전에는 잘 드러나지 않던 질문이 등장한다. 사람들이 어째서 이주하는가 묻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주가 어째서 공포를 촉발하는가 묻는 것이다.(363 페이지) 이동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이주는 위기가 아니라 해법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늘 이동을 꿈꾼다.

 

책을 쓰기 위해 생물지리학, 유전학, 인류학, 과학사에 이르는 방대한 분야의 학자들에게서 전문지식을 빌려왔다고 말하는 저자는 오늘날의 정치 상황에서 반이주 과학의 증거를 발굴하려면 깊이 파고들어야 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주를 반대하는 수사(修辭)와 정책이 전면으로 솟구쳐 오르면서 필요했던 증거가 매일같이 뉴스에 등장함으로써 기대가 어긋나 기술적으로는 쓰기가 한결 쉬워졌지만 심리적으로는 무척 힘들었다고 말한다.(383 페이지)

 

실존적 문제, 인류사회학적 성과, 자연과학적 지식들을 적절히 어우러진 '인류, 이주, 생존'은 강한 의지가 반영된 역작이다. 재독할 가치가 있는 책으로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총해 식물의 천이(遷移)에 대해 공부할 동인을 제공받았다. 감사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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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9-11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21-09-11 15:13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2021-09-11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21-09-12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 뇌가 당신에 관해 말할 수 있는 7과 1/2가지 진실
리사 펠드먼 배럿 지음, 변지영 옮김, 정재승 감수 / 더퀘스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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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은 쉼없이 발전하는 학문 분야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그뿐 아니라 이렇게 과학적이고 유려하게, 어느 면에서는 수행자처럼 뇌과학을 설명할 수 있는가, 하고 놀라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로 우리에게 알려진 신경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존 학설과 다른 부분을 많이 주장한다. 가령 인간 뇌는 생각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 점차 크게 진화하는 몸을 유지하기 위한 과정에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던 몇 개의 세포가 점점 더 복잡해져 뇌로 진화했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는 것을 신체 예산이라 하고 영어로는 allostasis라 한다. 

 

이는 항상성 즉 homeostasis를 더욱 발전시킨 개념이다. 항상성이 국소적인 메커니즘에 따라 특정 피드백 사이클 내에서의 음성(陰性) 또는 양성(陽性) 피드백에 의한 균형 회복만을 의미했다면 알로스타시스는 자극에 대해 자율신경계, 시상하부 뇌하수체 부신 축, 심혈관계, 신진대사, 면역계 등을 포함한 전신의 모든 체계가 협응하여 자극에 대한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가는 역동적인 조절과정을 말한다.

 

정리하면 뇌의 가장 중요한 일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벌레에서 진화해 아주아주 복잡해진 신체를 운영하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思考)는 커진 몸의 결과물이다.(31 페이지) 이 말을 들으며 베르그송의 말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커진 육체는 영혼의 보충을 기다린다는 말을 했다.

 

어떻든 동물들의 몸이 커지기 시작한 것은 사냥 즉 포식 행위가 등장한 캄브리아기다. 이전에도 동물들은 서로 먹었지만 캄브리아기에 목적의식을 가지고 먹게 된 것이다. 기존 학설과 다른 또 하나의 주장은 뇌는 생존본능을 담당하는 파충류의 뇌, 감정을 주관하는 포유류의 뇌 즉 변연계, 이성(理性) 활동을 담당하는 신피질 등 삼위일체 구조가 아니라 하나라는 말이다.

 

저자는 신피질은 사실 말이 신(新)자가 들어갈뿐 새롭지 않다고 말한다.(‘초신성; 超新星’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별이 아니라 폭발해 소멸하는 별이듯.) 뇌의 3 구조설은 20세기 중반 내과 의사 폴 매클린이 공식화했는데 이는 다윈의 진화에 대한 생각과도 일맥상통한 생각으로 후에 칼 세이건에 의해 널리 유포되었다.(플라톤은 인간 마음을 파충류의 뇌, 변연계, 대뇌피질이 싸움을 벌이는 전쟁터로 비유했다.)

 

과학자들은 최근 모든 포유류의 뇌가 단 하나의 제조계획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파충류와 다른 척추동물들도 같은 계획대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46 페이지) 인간 뇌에 새로운 부분은 없다. 우리 뇌에 있는 신경세포들은 다른 포유류의 뇌에도 들어 있고 다른 척추동물들에서도 찾아낼 수 있다. 신피질은 없다는 의미다.(49 페이지)

 

저자의 서술을 통해 감정은 비합리적이고 이성은 합리적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관념임을 알게 된다. 인간 뇌는 복잡성이 높다. 이런 점 때문에 우리는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있다. 뇌는 컴퓨터에 파일을 저장하는 식으로 기억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와 소용돌이치는 화학물질을 사용해 필요할 때마다 재구성한다. 우리는 이 과정을 기억이라 부르지만 사실 조합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을 불러올 때마다 매번 다른 신경세포 덩어리들이 그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이를 축중(縮重; degeneracy)이라 한다. 이는 타락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다른 요소들이 같은 기능을 하거나 같은 결과를 내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뇌는 고도로 복잡하지만 진화의 정점은 아니다. 우리 뇌는 우리가 거주하는 환경에 잘 적응했을 뿐이다.(75 페이지)

 

구석기 시대의 우리 조상들이 바윗덩어리를 집어들고 거기서 미래의 손도끼를 상상해내기 위해서는 복잡한 뇌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과학자들이 뇌와 그 상호작용에 관해 더 많이 알아낼수록 우리는 뇌의 구조와 기능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뇌를 복잡한 네트워크로 이해하면 이성적인 특대형 신피질 같은 것 없이도 우리 뇌가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만드는지 숙고할 수 있다.

 

저자는 유전자와 환경은 격렬하게 탱고를 추는 연인처럼 서로 너무 깊게 얽혀 있어 본성이나 양육 같은 별개의 이름으로 불러봐야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아기에게는 세심하게 돕는 양육자와 충분히 풍족한 환경이 필요하다. 시각에 가장 중요하게 관여하는 뇌 영역은 아기의 망막이 정기적으로 빛에 노출될 때만 정상적으로 발달한다.

 

어린 뇌에게 역경과 빈곤은 극복하기 힘든 고통이다. 아기에게는 눈을 맞추고 말을 걸고 수면시간을 일정하게 설정해주고 체온을 유지해주는 양육자들로 채워진 적소(適所; niche)가 필요하다. 우리의 뇌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몸을 제어해 잘 살아 있게 하는 것이다. 뇌는 모호한 감각 데이터 조각들을 맞닥뜨리면 어떻게 해서든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기억은 뇌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추가 정보원이다.

 

마르셀 뒤상은 예술가는 창작의 절반만 수행할뿐이라 말했다. 절반은 보는 사람의 뇌 안에 있다. 우리가 보는 것(듣는 것, 다른 감각, 신체 내부의 현상)은 세상에 있는 것과 우리 뇌가 구성한 것의 조합이다. 우리의 일상적 경험이란 외부 세계와 우리의 신체가 주는 제약을 받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뇌가 구성하는 주의 깊게 제어된 환각이다.

 

저자는 파블로프의 개가 소리에 반응해 침을 흘린 것이 아니라 개들의 뇌가 먹이를 먹은 경험을 예측(자신과 대화)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미리 몸을 준비시키는 것이라 설명한다. 뇌는 정확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배선되었다. 뇌는 우리가 인식하기 전에 행동들을 개시하도록 배선되어 있다. 뇌는 예측기관이다.

 

신의 행동은 당신의 기억과 환경의 제어를 받는다. 저자는 자유의지 논쟁을 이야기하며 당신은 생각보다 더 많은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행동을 개시하게 하는 예측들은 난데 없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콤달콤한 맛에 길들여지지 않았다면 트위즐리를 그렇게 먹어치우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지금 당장 수고를 들이면 앞으로 뇌가 예측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

 

오래전부터 자유의지가 없다는 논의에 고개를 끄덕였으나 저자의 설명을 들으니 참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크다고 느끼게 된다. 뇌는 스스로 신경세포를 세부조정하고 가지치기한다. 우리는 무엇에 자신을 노출시킬지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의 뇌가 단순히 세상에 반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세상을 예측하고 배선까지 바꿀 수 있다면 나쁜 행동을 했을 때 책임 당사자는 당신이다.

 

당신이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바꿀 유일한 사람이 당신이기에 당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오늘의 행동은 내일 뇌가 내놓을 예측이 되며 그것들은 자동으로 당신이 앞으로 할 행동을 이끌어낸다. 당신에게는 새로운 방향으로 예측하는 뇌를 길러낼 자유가 있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당신이 져야 한다.

 

앞에서 말했듯 이 책은 이렇게 과학적이고도 문학적으로, 종교 차원의 무진 연기를 가르치는 수행자처럼 뇌과학을 유려하고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하고 놀라게 하는 책이다. 가령 이런 구절. “뇌의 안무에 따라 우리는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춤을 추면서 상대방의 움직임을 반영한다. 우리 중 하나는 이끌고 다른 사람은 따라 한다. 그리고 때때로 그 역할이 바뀐다. 반대로 좋아하지 않거나 믿지 않는 사람과 함께 할 때 우리 뇌는 상대방의 발을 밟는 댄스 파트너와 같다.”

 

인간의 말은 물리적 힘이 되어 몸에 영향으로 작용한다. 지속적인 자극을 받을 경우. 뇌에서 언어를 처리하는 많은 영역이 몸 내부도 제어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경계는 좋든 나쁘든 타인의 행동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인상적인 말을 들어보자.

 

"당신의 마음은 당신의 뇌와 몸 간의 거래로부터 생겨난다. 그리고 당신의 뇌와 몸은 물리적 세계에 몰두하는 동시에 사회적 세계를 구축하는 다른 몸에든 뇌들에 들러싸여 있다."(149 페이지) 저자는 정동(情動) 이야기를 한다. 이는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다. 정동은 감정이 아니다.

 

당신의 뇌는 당신이 감정적이든 아니든, 당신이 알아차리든 아니든 항상 정동을 만들어낸다. 정동은 당신의 모든 기쁨과 슬픔의 근원이다. 정동은 어떤 것을 심오하게 또는 신성하게 만들고 또 어떤 것들은 사소하거나 사악한 것으로 만든다. 당신이 종교적인 사람이라면 정동은 당신이 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당신의 뇌가 매 순간 당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요약하는 것을 당신은 정동으로 느낀다.

 

신체 신호가 정신적 느낌으로 전환되는 것은 의식의 위대한 미스테리다. 어떤 마음도 그 자체로 더 낫거나 나쁘지 않다. 환경에 더 잘 적응한 변이가 있을 뿐이다. 필요한 것은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에 스스로를 연결시키는 매우 복잡한 두뇌뿐이다. 저자의 시각은 넓고 유연하다. 가령 다섯 개의 C가 필요하다고 설명하며 그 중 하나인 copying 즉 모방에 대해 저자가 모든 사람이 모방 없이 스스로 알아내야만 했다면 인간이라는 종은 이미 멸종했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라.

 

저자가 드는 마지막 C는 압축(Compressing)이다. 이는 다른 동물 뇌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복잡한 능력이다. 압축이란 중복되는 것을 줄이고 요약하는 능력을 말한다. 언급 안된 세 개의 C는 창의성(Creativity), 의사소통(Communication), 협력(Cooperation) 등이다.

 

저자가 2장에서 말한 복잡한 두뇌와 함께 필요한 것은 추상화 능력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난생처음 보는 것을 인식하게 해준다. 대뇌피질의 배선은 압축을 가능하게 한다. 압축은 감각통합을 가능하게 한다. 감각통합은 추상화를 가능하게 한다. 추상화는 유연한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이 창의성이다.

 

저자의 결론은 5C에서 드러난다. 우리가 설정해놓고 자연적인 것으로 착각해 차별을 정당화하는 현실에 대해 우려하는 저자의 시선은 참 바람직하고 따뜻하다. 우리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상생의 현실을 만드는 것이 책임감 있는 행동이다.

 

앞에서 뇌과학은 쉼 없이 발전하는 학문이라고 했다. 이는 아직 알아야 할 것이 많은 분야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뇌에 관해 배워야 할 것이 여전히 너무 많지만 최소한 우리 뇌의 환상적인 진화 여정의 개요를 설명하고 이것이 우리 삶의 가장 중심적이고 도전적인 측면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숙고할 수 있을 정도로는 충분히 알게 되었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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