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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재인폭포에 태고종 소속의 비구니께서 오셨지요. 첫 대면임에도 반가워 오랜 인연인 것처럼 이런저런 말을 나누었습니다. 두서 없게도 운수납자라는 말이 생각나 말씀드렸었지요. 雲水衲子인데 저는 납을 막연히 회색을 뜻하는 것으로 알았었어요. 찾아보니 구름처럼, 물처럼 떠도는 수행자를 뜻하는데 납자(衲子)란 기운(수선한) 옷을 입은 사람 즉 승려를 의미하네요.

 

수선한다는 의미의 한자가 두 가지 있지요. 선(繕)과 선(敾)입니다. 두 번째 선은 잘 아시듯 겸재 정선(鄭敾)의 선이기도 하지요. 요즘 세태와는 맞지 않지만 승려란 납의를 입은 사람이지요. 동료 이선생님은 비구니 스님과 헤어지며 포옹을 했어요. 언니 같이 느껴져서 그랬을까요? 아버지를 여읜 지 얼마 안 된 마음이 그런 의식(儀式)을 하도록 했을까요?

 

최신작인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가 생각났습니다. 동물의 의례와 인간의 의례는 다르지 않다며 저자(코끼리 연구가 케이틀린 오코넬)는 인사, 집단, 구애, 선물, 소리, 무언, 놀이, 애도, 회복, 여행 등 열가지 의례를 언급했어요. 동료 이선생님과 비구니 스님의 만남, 짧은 대화, 포옹, 헤어짐은 하나의 의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면 어떤 의례들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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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송어회를 먹었다. 설 당일에 밖에서 음식을 먹은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송어의 송이 소나무 송(松)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왜 소나무 송자를 쓰는 것일까? 송어의 속살이 소나무의 붉은 속살 같다고 해서 그렇다. 겉 껍질은 거북등처럼 갈라진 검은색이고 속살은 송어처럼 붉은 소나무는 참 특별한 듯 하다.

 

소나무는 특별한 위상을 차지한다. 그런 점을 헤아리게 하는 단어가 의송산(宜松山)이란 말이다. 의송산이란 소나무가 잘 자라는 산을 말한다. 조선 시절 이런 곳은 당연히 금산(禁山)으로 지정되었었다. 금산이 곧 소나무를 베지 못하게 조치를 취한 산인 것은 아니지만 금산의 대종(大宗)을 이루던 것은 소나무다.

 

소나무, 하면 고산(孤山) 윤선도가 떠오른다. 고산의 후손인 윤위가 고산 윤선도의 보길도에서의 행적을 기록한 ‘보길도지(甫吉島誌)’에는 소나무 이야기가 빈번하다. 1616년 권세가 이이첨을 고발한 병진소로 인해 최북단인 함경북도 경원(慶源)으로 유배를 가게 된 고산은 1618년 최남단격인 경상남도 기장(機張)으로 이배(移配)되었다.

 

이동에만 1년이 걸렸다는 이 조치를 추위와 더위를 고루 겪게 하려는 의도라 말하는 이도 있다.(고미숙 지음 ‘윤선도 평전’ 98 페이지) 윤선도가 소나무를 가리켜 ‘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가‘라고 말했지만, 그리고 우리는 습관적으로 소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다고 말하지만 소나무에게도 위험 요소는 있다. 그것은 추위이라기보다 온난화일 것이다.

 

검을 현(玄)자를 써서 송현(松玄), 현송(玄松) 등의 아호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검을 현자와 바위 암자를 쓰는 현암서원(玄巖書院)도 있다. 현암(玄巖)과 현무암(玄武巖)의 차이는 무엇일까? 내 주된 관심거리는 소나무도 아니고 거북도 아닌 바위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새해(음력 1월 초하루)가 간다. 송어회로 육의 양식은 물론 생각 거리까지 준 친구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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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성찬이란 말의 한자 표기를 처음 확인했다. 산해진미가 아닌 산해진수라고 쓴 글을 읽고 진수가 무엇인지 궁금해 찾아 보니 진수는 珍羞였다. 문제는 수(羞)가 부끄러울 수로 많이 쓰이고 음식 또는 음식을 내놓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는 잘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수성찬은 珍羞盛饌이다. 리(理)가 기본적으로 나무, 구슬, 돌의 무늬를 의미하는 한편 이성(理性)이나 이치(理致)를 의미하는 것은 큰 단절이라 볼 수 없지만 羞가 부끄러움을 의미하기도 하고 음식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은 진폭이 너무 크게 보인다. 비보(裨補)란 말의 반대격인 염승(厭勝)이란 말도 그렇다. 승(勝)은 이긴다는 의미, 좋은 경치의 의미 외에 넘치다/ 지나치다를 의미하기도 한다. 염승은 지나친 부분을 누르는 것을 의미한다. 한자의 매력이라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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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도우실(左圖右室)의 배치로 살고 싶다. 왼쪽에 도서관, 오른쪽에 연구실이 있는 곳이다. 연구실이라 했지만 우리 소그룹이 함께 모여 책 읽고 담화를 나눌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말하는 것이다.(’도; 圖‘는 그림을 의미하기도 하고 도서관의 도이기도 하다.) 좌묘우사(左廟右社)에서 힌트를 얻어 왼편에 지도, 오른편에 역사책을 놓고 공부한다는 의미의 좌도우사(左圖右史)를 말하는 사람을 보고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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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커칸들이란 이름은 상당히 특이하다. 아니 희소하다고 해야 할까? 닐 슈빈의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에서 주커칸들이란 이름을 만났다. 생물학자가 여러 생물학자들의 이름을 인용한 책에서 만난 것인데 정확히 30년젼 읽은 ‘소리와 상징‘의 저자인 주커칸들이라 착각한 탓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주커칸들은 나 같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음악계에서뿐 아니라 생물학계에서도 활약하는 사람이구나란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소리와 상징‘의 저자는 빅토르 주커칸들이고 닐 슈빈이 인용한 저자는 에밀 주커칸들이다. 과학철학자 케빈 엘리엇의 최신간 ’과학에서 가치란 무엇인가‘에서 소니아 샤란 이름을 만났다. 2021년 읽은 ’인류, 이주, 생존‘의 저자다.

 

’과학에서 가치란 무엇인가‘의 저자는 소니아 샤가 지난 수백년 동안 런던 인근의 늪이 많은 지역에서 말라리아로 죽은 사람들의 비율이 현대 아프리카 사하라 남쪽에서 죽은 사람들의 비율과 견줄 만한 정도였다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인류는 끊임없이 이동한다’는 부제를 가진 ‘인류, 이주, 생존’에서 소니아 샤는 이런 말을 했다.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있는 것 같은 기분 속에 살아온 나 같은 사람들에게 지난 몇십 년간 부상한 만물은 유전(流傳)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자연관은 역설적으로 소속감을 제공한다(335 페이지)는 말이다.

 

소속감이란 말이 안도감으로 다가온다. 이 책의 서평을 쓴 나는 당시 어떤 생각으로 이 구절을 받아들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서평을 들춰보니 당시 나는 소속감과 관련해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파르메니데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대표 발언은 만물은 유전한다는 말의 반대 격인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말이지만 나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말에 주목하고 싶다.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해지고 사유되지만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파르메니데스는 그런 말을 했다. 있음(존재)은 가능하지만 없음(무; 無)은 불가능하다는 차원이다. 이에 대해 이정우 교수는 존재와 사유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떤 맥락에서는 존재가 사유를 넘쳐 흐르고 어떤 맥락에서는 사유가 존재를 넘쳐흐른다. 전자의 경우 존재에는 우리가 사유하는 것 이상의 차원들이 있다는 점을 말할 수 있고, 후자의 경우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사유한다는 점을 말할 수 있다.”(이정우 지음 ‘세계철학사 1’ 129, 130 페이지)

 

기승전 연천 글이냐 할지 모르겠지만 재인폭포를 비롯 연천 지질공원과 역사 유적들에 대해 나는 존재가 사유를 넘쳐흐르지도 않고 사유가 존재를 넘쳐흐르지도 않는, 양자가 대체로 일치하는 글을 써야 한다. 이런 생각 속에 1월의 11번째 날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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