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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에 참여한 필진이 공개되었다. 내 궁금증은 내가 읽은 역사책의 저자와 참여 필진들이 얼마나 겹치는가, 이다. 단 한명이고 근현대사가 아닌 조선사를 담당했지만 기분은 좋지 않다.

조선사 담당 필진은 세 사람이다. 한 기사는 현대사 집필을 맡은 7명 중 순수 역사학자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에 참여해 역사 왜곡(이 말이 거슬린다면 편향된 역사의식 표출이라 하자)을 한 것이 순수 역사학자가 아니어서는 아님을 감안하면 문제 있는 기사가 아닐 수 없다.

역사관에 문제를 보이는 것은 계급의식 때문이다. 어떻든 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조선사 부분을 맡은 사람의 책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유연하게 처신할 것이다.

그리고 역사 책들을 읽는 것 못지 않게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 글쓰기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논한 책들을 읽을 생각이다. 그래서 역사에 담긴 숨은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애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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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宮闕)에 대한 관심이 압도적 크기의 건축물에 대한 관심으로 전이(轉移)되고 있는 듯 하다. ‘생의 철학과 건축이론‘이란 책을 샀고 ’건축을 위한 철학‘을 다시 읽고 있다. 공포에서 비롯되는 감정인 칸트의 숭고(崇高)라는 개념으로 압도적 크기의 건축물을 보려는 생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난 24일 경복궁 단청(丹靑) 시연 때 나는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을 크기가 압도적인 건물이라 설명했는데 이는 아마도 무의식 차원에 자리한 숭고(崇高)에 대한 관념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초기 불전(佛典)인 소연경이 말하는 집의 기원에 대해 더 상세하게 알려는 마음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경전은 마음으로 이루어진 신체를 가지고 밝게 빛나면서 자유로이 허공을 떠다니던 중생들이 감천(甘泉)이라는 거품 맛에 빠진 결과 신체의 광명이 사라지고 해, 달, 별, 낮과 밤, 계절 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때부터 탐욕이 생기고 성의 분화가 생겼다.

 

그리고 중생들은 자신들의 성행위를 숨기기 위해 집을 짓기 시작했다.(안성두 외 지음 ’붓다와 다윈이 만난다면‘ 34, 35 페이지) 캐롤 던컨의 ’미술관이라는 환상‘과 백상현 교수의 ’라깡의 루브르‘에서 공통적으로 다루어진 루브르가 생각난다.

 

백상현 교수의 ’라깡의 루브르‘에서 설명된 루브르는 신경증, 히스테리, 강박증, 멜랑꼴리 등의 증상이 드러나는 미술품들을 전시한 공간 즉 정신병동이다. 캐롤 던컨의 ’미술관이라는 환상‘에서 설명된 루브르는 공적인 국가의례의 장이다. 한겨레 신문의 건축 담당 기자로 활약했던 구본준 저자의 2주기를 맞아 나온 ’세상에서 가장 큰 집‘이 나를 붙든다.

 

베르사유 궁전은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이다. 베르사이유는 권력을 과시하는 극장이다. 구본준 기자의 책은 경복궁도 포함되어 있어 다루어져 더욱 관심을 끈다. 문제는 이해와 수용이다. 고통스럽지만 즐거운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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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의자 -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정도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프로이트의 영향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정신분석, 무의식, 꿈 분석, 자유 연상 등의 낱말들로 설명할 수 있는 프로이트의 사상은 난해한 면이 있다.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의인 정도언 박사의 ‘프로이트의 의자’는 프로이트의 난해한 사상을 쉽고 친절하게 설명한 책이다. ‘프로이트의 의자’가 쉽게 읽히는 것은 비유들을 적절히 활용한 저자의 필력 때문이다. 프로이트 사상의 주요 요점들을 설명한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주의를 끄는 단어는 정신(精神) 역동(力動)이다.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던 것이 움직여 의식으로 나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틀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처음에 제시한 것은 의식, 전의식, 무의식 등으로 구성된 지형이론(28 페이지)이고 후에 제시된 것은 이드, 에고, 수퍼에고 등으로 이루어진 구조이론(34 페이지)이다. 물론 프로이트는 두 이론을 함께 사용했고 현대 정신분석가들도 두 이론을 모두 쓴다.(78 페이지)


‘프로이트의 의자’를 읽으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적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 에너지(性慾: 에로스), 공격욕(타나토스), 양심, 초자아, 자아, 불안, 분노 등등..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내가 강한 자아를 가지고 있는지 약한 자아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적절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것이 나에 대한 것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저자는 이성보다 비합리적인 기분이나 느낌이 더 강하다고 말한다.(40 페이지) 이는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무의식의 욕동에 종속되어 살아간다는 말(52 페이지)과도 통하는 진술이다.


저자는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에는 검은색과 흰색의 중간인 여러 채도(彩度)의 회색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83 페이지) 공격성을 억압해야 하는 사람일수록 유머 감각이 좋은 경우가 많다는 사실(54 페이지)도 흥미롭다. 방어기제의 하나인 억압은 무의식 차원의 것이고 억제는 의식 차원의 것이다.(57, 58 페이지) 슬픈 감정을 숨기고 태연한 듯 있는 것도 방어기제의 하나인 격리(隔離)이다. 물론 격리가 지나치면 퇴행이 되기 쉽다.


신경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과정보다 결과에 초점을 맞추다가 생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나는 자기 실현 욕구가 강한 사람은 솔직한 사람이며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설명(47 페이지)을 귀담아 듣는다. 나는 내가 이런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말 자신이 있는 사람은 화를 잘 내지 않는다는 말(140 페이지)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자신감이 있으면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말(266 페이지)도 그렇다.


나는 저자의 책을 읽으며 우리 사회가 왜곡, 부정, 투사(投射) 등의 방어기제가 유독 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스톡홀름 신드롬을 반동형성으로 본다.(73 페이지) 저자는 방어기제 중 가장 심각한 것으로 왜곡을 든다. 저자에 의하면 자신의 마음을 잘 알려면 자신이 무엇을 억압하는지 잘 알아야 한다.(74 페이지) 나는 저자의 책을 읽으며 정신분석의 듣기 치료를 보며 조선 왕조의 청정(聽政)을 떠올렸다. 청정은 정치란 듣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


저자는 정신분석은 해석학(解釋學)이라 말한다. 치료에서 해석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귀기울여 들어야 할 중요한 지적을 보자. 프로이트가 주장한 정신성 발달 이론(구강기, 항문기, 오이디푸스기, 잠복기, 성기기)은 빛을 많이 잃었고 에릭 에릭슨의 정신사회적 발달 이론이 더 활용도가 높다는 것이다.(79 페이지) 지금은 성적 갈등이 큰 문제가 되는 시대가 아니다. 성적 욕구를 억압해 생긴 히스테리 신경증 환자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된 것이다. 오히려 이제는 타인과의 관계가 문제인 시대이다.


이런 관계의 문제를 다루는 정신분석 이론 기반 중 하나가 애착이론이다. 어릴 적 부모와의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론이 대상관계 이론이다. 자아 심리학은 욕망을 우선시하고 관계는 부수적인 것으로 본다. 반면 대상관계 이론은 관계를 우선으로 치고 욕망은 관계의 부산물로 본다.(81 페이지) 자기심리학 이론에서는 인간이 발달하는 과정이나 정신분석에 의해 일어나는 변화에서 성적 욕구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83 페이지)


불안의 어원인 라틴어 angere의 의미는 목을 조른다는 의미이다.(92 페이지) 다음 글을 참고하자. “불안이란 ‘좁은‘이란 뜻이 있다. 인간은 산도(産道)라는 좁은 통로를 통해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불안을 감지하게 된다. 아기가 탄생하는 순간부터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박지영 지음 ‘욕망의 꼬리는 길다’ 3 페이지)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을 자유가 경험하는 현기증이라 표현했다.(92 페이지)


정신분석은 불안을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올라오는 성적 욕구나 공격성에 대한 반응으로 본다.(94 페이지) 저자는 불안을 내 마음에 잠시 세들어 사는 사람으로 생각할 것을 주문한다. 저자는 고독(孤獨)과 외로움을 구분할 것을 주문한다.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이다.(121, 122 페이지) 정신분석의 입장에서 보면 외로움은 타인과 나의 관계가 아니라 내 속의 나, 나와 현실 사이의 소통이 끊어진 상태이다.(124 페이지) 고독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여유와 능력과 재미를 의미한다.


정신분석의 입장에서 보면 성격, 방어기제, 대처방식이 모두 운명에 해당한다.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운명은 사실은 어려서의 경험에서 시작되고 자라면서 스스로 굳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되풀이하면서 그 결과를 피동적으로 운명이라 생각하는 것이다.(144 페이지) 망설임은 정신분석적으로 보면 양가감정이다.(146 페이지) 우리는 완벽하기 위해 망설인다.(149 페이지) 나에게 망설임은 버릇 같다. 완벽하게 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면 행동하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다만 완벽에 대한 소망, 환상, 때로는 망상이 존재할 뿐이다.


시샘은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세는 기술이라 한다. 누구나 시샘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지식, 지혜 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시샘을 하는 편이고 그나마 능력도 안 되면서 성공한 다른 사람의 것을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노력하는 것을 권한다. 시기심은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남이 가지고 있을 때, 질투는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할 때 나타난다. 시기심은 2인극, 질투는 3인극이다.(166 페이지) 가벼운 시기심은 정상 반응이다.


시기심이 너무 커지면 나를 집어삼키게 된다. 그러나 달라져야 한다. 덮어놓고 시샘하기보다 시기의 대상을 동일화해서 나도 그렇게 되도록 닮고 배울 수 있다.(171 페이지) 나를 외적 기준으로 비판하지 말고 내적 기준으로 키워가는 것이 필요하다. 대상관계이론에서 대상은 사람을 의미한다.(81 페이지, 177 페이지) 정신분석적으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늘 대상을 찾으려 한다는 말이다. 정신분석 시간에도 대상을 찾아헤매는 행위는 계속된다.


나는 내 분석가와 나의 관계에 항상 신경을 쓴다.(179 페이지) 어떤 때는 정신분석가가 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느껴진다. 연인처럼 느껴지면 얼굴이 달아오른다. 저자는 행복하지 않은 관계는 끊어진 관계보다 더 불행하다고 말한다.(195 페이지) 정신분석학은 환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모든 인간의 생각, 느낌,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심층심리학이다.(197 페이지) 저자는 개인이든 집단이든 집착을 버려야 이해 능력을 키우고 오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하며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대화를 하기 전에 말을 잘 골라야 한다고 조언한다.


잘 설명해야 하고 분위기에 따라 단어 선택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197 페이지) 내가 늘 하는 일이다. 관계라는 것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다. 끝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면 끝내야 한다.(199 페이지) 전이는 정신분석에서 매우 중요한 치료 도구이다.(202 페이지) 스테판 츠바이크는 전이와 더불어 정신분석적 상황이 주어진다는 말을 했다. 전이를 하지 못하는 환자는 이 치료에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프로이트를 위하여‘ 138 페이지) 왠지 모르게 좋다거나 어쩐지 싫다는 느낌은 무의식에서 오는 전이의 영향이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만하다. 열정적 사랑의 세 요소는 이상화, 성, 공격성이다.(208 페이지) 성숙한 관계로 오래가기 위해서는 마음 속의 작은 파도로 만족하고 거센 파도로 변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열정적 사랑은 결국 실패로 끝난다. 정신분석의 눈으로 보면 모든 사랑은 과거가 현재에 덧입혀지는 전이현상이다.(전이를 과거가 현재에 덧입혀지는 것이라 설명하는 것은 절묘하다.)


인연은 불확실하며 사랑은 달아나기 쉽다. 그래서 사랑은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210 페이지) 저자는 사랑한다는 말에 쉽게 속지 말고 사랑한다는 말로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고 말한다.(211 페이지) 꼭 사랑이 없어도 아주 가까운 관계는 가능하다. 관계가 충분히 만족스러우면 된다.(212 페이지) 어려서부터 쌓인, 좌절에 대처하는 방식이 복수의 방식도 결정한다.(218 페이지) 대상관계이론(81 페이지)으로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어려서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람은 늘 사랑에 굶주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예민하게 반응한다(244, 245 페이지)는 말도 그렇다. 어려서 엄마에 대해 믿음보다는 불안감을 지니고 자랐다면 커서도 남들과의 관계가 어렵다(248 페이지)는 말도 그렇다. 아이가 자라서 부모의 슬하를 벗어나도 어렸을 때 자신과 부모가 맺은 관계를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과 되풀이하다가 다시 상처를 받는다(252 페이지)는 말도 그렇다.


평소 ’진짜 나’를 잘 지키고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마음의 틀로 현재의 사물을 보고 판단한다.(230 페이지) 이는 모든 사랑은 과거가 현재에 덧입혀지는 전이현상(209 페이지)이란 말을 참고하게 한다. 저자는 느낌을 그냥 받아들일 것을 주문한다. 느낌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일어난 일에 꼭 동의하거나 찬성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233 페이지) 정신분석이 힘을 발휘하는 동력은 분석을 받는 사람의 자유로움에서 나온다.(237 페이지)


관계의 문제가 되풀이되면 우울증에 빠진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린다. 자기가 어떻게 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죽는 것이 아니라 내 부모의 아이가 죽는 것이니 신경 안 쓴다.(253 페이지) 저자는 정신분석이란 심판이나 용서를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며 분석가가 분석 받는 사람의 내적 진실을 주의 깊게 들어주고 그것이 외적 진실과 통합되어 정리되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 말한다.(256 페이지)


정신분석가 지망생들은 마음 속 응달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수년 동안 정신분석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자신도 잘 모르고 분석 받는 사람도 잘 이해하기 어렵다.(264, 265 페이지) 저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갈등의 심리학이라 규정한다.(272 페이지) 저자는 저항 분석, 방어 분석, 전이 분석은 정신분석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274 페이지)


저자는 21세기인 지금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프로이트 생전의 관점 중 일부인 리비도 이론만을 가지고 공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 말한다.(275 페이지) 자아심리학, 대상관계이론, 자기심리학 등에 의해 정신분석학의 영토는 넓어졌다. ‘프로이트의 의자’는 쉽고 친절한 책일 뿐 아니라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대한 오해를 바로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영토가 넓어진 정신분석학을 일별이라도 할 필요가 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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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납일까지 넘기며 붙잡아 두었던 단청과 조선왕조 책 스무 권을 도서관에 돌려주고 오는 길입니다. 새벽 세시 무렵 들린 카톡음을 듣지 못한 채 잠결에 어설프게 시연 내용을 외운 것도 같고 시연 꿈을 꾼 것도 같은 밤을 보내고 실제 시연까지 마치고 나니 조금 허무합니다. 스무날을 함께 한 책들을 돌려주고 나니 무언가 머릿 속에서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나의 책들은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그것’들은 나의 몸 속으로 스며들어 와 일단 쓰인 뒤 내 몸을 빠져나간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공허한 기분에 빠져 몸 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 그분의 심경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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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는 손에 닿을 수 없는 보물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이 단어를 아이디로 하는 블로거에게 내 글에 대해 물었다. 늘 쉽게 쓰지 못한다는 자책감, 그리고 그런 까닭에 재미도 없다는 난감함에 시달리는 나를 그는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경복궁 단청에 대해 쓴 내 글에 그는 시작 부분이 너무 흥미가 떨어진다는 말, 듣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내 관심사에 따라 쓴 글이라는 말 등을 했다.

듣는 사람에게 추억을 만들어줄 이벤트성 멘트가 필요하고 설명은 잘 하지만 듣는 사람의 흥미를 이끌 요리를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글을 오래 지켜보아온 그의 진단이다. 흥미를 이끌 메뉴를 내놓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흥미 있는 메뉴를 잘 내놓지 못한다기보다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히는 글이다.

최근 내가 읽고 있는 정도언 박사의 ‘프로이트의 의자‘(개정판)를 추천하고 싶다. 쉽고 친절하게 풀어 쓴 정신분석 책이어서 개념을 익히는데도 유용하고 비유가 풍부해 설명 능력을 키우는데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최근 나는 짧게 쓸 시간이 부족해 긴 글을 썼다는 파스칼의 말을 응용해 쉽게 쓸 시간이 부족해 어려운 글을 썼다는 말을 했다.

재미로 한 말이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쉽게 쓰는 것은 의지, 능력, 시간 등이 모두 필요한 과제이다. 절대적으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쉽고 친절해야 한다. 심찬이시(深撰易施)가 답이다. 깊이 연구해 쉽게 베풀자는(풀어내자는) 내 슬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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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11-22 1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벤투님 정도로 글 쓰시는 분도 자기 글에 대해 고민이 있으시군요..... 글 쓰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써도 자기 글이 마음에 드는 날 같은 건 오지 않는다는 말을 어디서 듣긴 했지만요.

그렇지만 저는 항상 벤투님의 기품있고 단정한 글을 좋아합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6-11-22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감사드립니다. 늘 고민입니다. 서툴고 어설프지요... 힘이 되는 격려 잘 간직하겠습니다... syo님의 글, 저도 잘 읽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