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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필귀정이란 말이 있지만 드라마틱한 8대0 전원일치의 탄핵 인용은 놀랍다.

탄핵 축하 파티가 곳곳에서 무수히 많이 열리리라. 탄핵은 국민의 수치이자 영광이란 말이 가장 크게 눈에 띈다.

탄핵은 수많은 이슈를 가로챈 블랙홀 같은 역할을 했지만 해피 엔딩이어서 아주 다행스럽다.

물론 탄핵에 이르기까지의 혼란과 갈등은 환멸을 느끼게 하기에 족했다.

정치란 너무도 근본적인 이슈이기에 잡음과 혼란 등이 없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현명한 비판과 감시의 눈이 필요하다.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인지 모르지만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은 대체로 환상에 빠져 소중한 표를 아깝게 버린 사람들이다.

아니 버렸다기보다 악의 세력에 힘을 실어준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어떻든 5월 대선을 보게 된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날씨가 투표율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 궁금하다.

진짜 봄(봄 다운 봄)을 맞고 있지만 가는 길이 꽃길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기쁘기 한량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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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소개로 알게 된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

1948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베르네유쉬르아브르에서 태어난 작가이다.

음악가 집안 출신의 아버지로부터 음악적 감수성을, 언어학자 집안 출신의 어머니로부터 언어적 감각을 익힌 작가라는 점이 흥미를 부른다.
그러나 키냐르는 비극적이게도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라틴어 등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집안 분위기로 인해 자폐증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18개월의 일이었다.

외삼촌의 기지로 사탕을 빨면서 자폐증에서 벗어났던 키냐르는 17세 무렵 재차 자폐증을 앓는데 이를 계기로 작가로서의 소명을 깨달았다고 하니 전화위복의 한 사례라 할 만하다.
물론 전화위복이란 평가가 비인간적이고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부를 수도 있다.

의미로운 작품세계를 드러내 보여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작가가 있겠지만 정작 그는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 수 있기 때문이다.

키냐르는 ‘메두사에 관한 소론‘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생존을 위해 글을 썼다. 내가 글을 썼던 이유는 글만이 침묵을 지키며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프랑스 작가는 카뮈, 사르트르, 레몽 장, 르 클레지오, 파스칼 레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마르그리트 뒤라스,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 정도이다.

모두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 교수의 소개를 받아 읽었던 작가들이다.

첫 탐색을 위해 도서관에서 빌린 키냐르의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은 프랑스 작가들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해줄 작품이다.

˝시, 되찾은 단어, 그것은 이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하며, 어떤 이미지 뒤에나 숨어 있게 마련인 전달 불가능한

이미지를 다시 나타나게 하며, 꼭 들어맞는 단어를 떠올려 빈칸을 채우고.. 은유의 내부에서 실행 중인 단락을 재현하는 언어이다...˝

깊은 관심을 부르는 구절이다.

한 동안 키냐르를 읽게 될 것 같다. 무엇보다 분량이 적어 위압적이지 않아 좋다. 소개해준 분께 감사 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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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다(Der Frühling ist gekommen.)˝고 쓴 한 페친의 글을 보고 잠시 봄 생각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글보다 글을 쓴 사람이 차려 입은 가벼운 옷, 싸이클을 탄 모습의 사진이 봄을 느끼게 해준 것이다.

어떻든 나는 봄을 느끼기도 했지만 착각도 했다.

유쾌하다고도 아쉽다고도 할 수 있는 기억이 내 무의식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슈만의 봄(교향곡 1번 4악장, 원제; Frühling op 38)을 들으며 떠올리던 봄이란 뜻의 독일어 Frühling을 순간 같은 의미를 가진 프랑스어 쁘렝땅(Printemps)으로 착각한 결과이다.

이 착각은 결국 을지로에 있던 쁘렝땅백화점에 대한 추억을 더듬는 데로 나아갔다.(쁘렝땅백화점은 지난 1997년 문을 닫았다.)

지난 1989년 내가 맡던 시골 교회 주일학교의 5학년 아이들 다섯 명을 데리고 을지로 나들이를 했었다. 벌써 28년 전의 일이다.

당시 나는 홀로 민중신학에 빠져들며 내가 속했던 극히 보수적이었던 시골 교회에서 소외감을 느꼈었다.

그럼에도 행복했던 것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어서였다. 산책을 하며 음악을 듣기에 좋은 시간이 되었다.

슈만의 ‘봄‘보다는 전악장이 봄과 참 잘 어울리는 같은 작곡가의 첼로 협주곡을 들으며 산책하는 것으로 봄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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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가 a~님과 저녁 식사를 한 곳이 관철동에 위치한 ‘된장 예술과 술’이란 밥집이란 사실을 안 것은 다시 찾을 것을 생각하고 받아든 명함 주소를 통해서였다.

종로(鐘路)라야 교보문고, 알라딘 중고서점, 인사동, 정독도서관 등을 알 뿐 이면(裏面)의 요소 요소를 알지 못하기에 심사가 조금 복잡했던 것은 의외의 일이 아니다.

저녁 전에 들른 2층 커피 하우스에서 차를 마시고 내려오는 길에 쓰인 계단조심(階段操心)이란 문구마저 명구(名句)인 듯 느꼈던 것은 서울 도심과 어울리지 않는 낯선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 탓일 것이다.

밥집 대표 이름이 李弼莘이기에 이 필자 신자인가요? 물었더니 대표는 친절하게도 필(弼)자 재(宰: 재상 재)자인데 잘못 인쇄된 것이란 말을 했다.

알기로 관철동(貫徹洞)은 1914년 4월 1일 동 이름 개정시 관자동(貫子洞)의 ‘貫’과 그 북쪽의 다리인 철물교(鐵物橋)의 ‘鐵’을 합해 만든 이름이다.

재(宰)와 신(莘)이 다른데 그냥 둔 심사를 알지 못하지만 문제는 오식(誤植)이 아니라 두 지명의 앞 글자를 일률적으로 합치는 상투적인 조어(造語) 방식이 아닐지?

물론 꼭 앞 글자만을 채택하지는 않는 것은 인사동(仁寺洞)의 경우 인사동 부근의 옛 지명인 관인방(寬仁坊)의 仁과 사동(寺洞)의 寺를 합했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왜 관(寬) 대신 인(仁)을 택한 것일까? 다시 말해 관사동이라 하지 않고 인사동이라 한 것일까?

유학자 이기동 선생은 인(仁)이란 글자를 엄마가 아기를 밴 모습, 사람과 사람이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 아니면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부축한 채 기댄 모습을 형상화한, 한국인의 심성을 잘 설명하는 단어라고 소개한다.(이은선 지음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 70 페이지)

지금은 사실 사람들이, 그리고 세상이 다시 말해 천지가 인(仁)하지 못한 시대이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의 시대이다.

지난 해 12월 8일 문화 해설사 수업차 찾은 북촌 한옥 마을에서 내가 눈여겨 본 것들 중 꼭두박물관을 빼놓을 수 없다.

그날은 존 그레이(‘불멸화 위원회’란 책에서 볼셰비키를 영지주의(靈智主義)의 일종으로 본...)가 ‘꼭두각시의 영혼’이란 책을 출간한 날이었다.

그레이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처형한 볼셰비키의 행위를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 아래 벌인 의도적 행위로 보았다.

그레이는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를 쓰기도 했는데 이 책의 원제가 바로 ‘지푸라기 개’를 의미하는 ‘Straw Dogs’이다.

이는 “하늘은 어질지 않다. 만물을 지푸라기 개로 여길 뿐이다(천지불인天地不仁 이만물위추구以萬物爲芻狗)˝란 노자 ‘도덕경’ 5장에서 유래한 말이다.

어질지 않은 세상에서 인(仁)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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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타츠루는 스승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사제론’, ‘타자론’, ‘에로스론’ 등을 해설한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청각과 시각의 근원적인 지향적 차이를 날카롭게 자각’했다는 유대교적 사고에 대해 논했다.

타츠루에 의하면 신의 모습을 조형적으로 본뜨는 것은 신의 타자성을 크게 손상시키는 일이다.

반면 신에게 말을 붙이는 것은 소통의 의미를 지닌 것 즉 신의 절대성에 대한 훼손과 무관한 긍정적 현상이다.(138 페이지)

흥미로운 것은 고대 근동(近東)과 히브리적 사유에서 말이 가진 위상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앗시리아나 바빌론 등 고대 근동에서 신적인 말은 비길 데 없이 역동적인 힘을 가졌다.

반면 구약 성서에 표현된 야훼의 말은 자연력(自然力)이 아니라 언제나 의식적이며 윤리적이고 인격적이었다.

물론 고대 근동의 신적인 말을 상기시키는 신의 말이 소개된 구약 성서 구절들이 일부 있는 것도 사실이다.(토를라이프 보만 지음 ‘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적 사유의 비교’ 70, 73 페이지)

보만에 의하면 히브리인들에게 특징적인 것은 그들의 말은 작용한다는 것이고 그리스인들에게 특징적인 것은 말이 있다는 것이다.

보만에 의하면 그리스인의 자명한 전제는 세계 안에 있는 사물들과 그 유동 과정 자체 안에서 로고스가 원초적으로 경험할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법칙을 지배하는 바 이 법칙이 인간의 로고스 안에서 인식과 이해를 처음으로 가능하게 한다.(82 페이지)

나는 ‘혼돈이 묘비명이 될 것(King Crimson의 ‘Confusion will be my epitaph’)이라는 가사를 ‘고백이 묘비명이 될 것(‘Confession will be my epitaph’)이란 다짐으로 고쳐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제 그런 내가 그에 합당한 분과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내 주도로 그 시간은 일상 이야기 7대 인문적 사유 3의 비율로 채색되었다.

다섯 시간의 동석(同席)을 마치고 귀가하며 나는 르네 마그리트와 반 고흐를 생각했다.

마그리트와 고흐가 트라우마에 대처한 방식은 다르다.

마그리트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자살로 갖게 된 트라우마를 상징적 이미지로 표현했다.

반면 고흐는 일상적인 처리로 트라우마에 대처했다.

이성과 감성의 관계가 그렇듯 일상과 이론 역시 적절하게 균형이 맞춰져야 한다.

7대 3이라면 괜찮은 것이 아닌지? 긴 동석을 가능하게 해준 분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다시 새로우면서도 연속성을 가진 고백을 위해 시를 읽고 인문서를 읽고 문화해설 공부에 몰두해야 하리라.

물론 여행까지 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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