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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滿月)의 반대어는 휴월(虧月)이다. 이지러진 달이란 뜻이다. 절의염퇴(節義廉退) 전패비휴(顚沛匪虧)란 말을 떠올린다. 곤경에 처했을 때에라도 절개와 의리, 염치와 바른 물러남의 덕목을 어그러뜨려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요즘 이 말 만큼 의미심장하게 여겨지는 말은 없다. 휴월은 때가 되면 만월이 된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어긋난 관계는 돌이키기 어렵다. 아름다운 인연을 지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 만남을 이어가는 분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나를 먼저 보는 욕심을 경계하고 우리를 우선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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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당시 강원도 철원, 경기도 연천이 초토화되었지요. 이런 곳은 직선 도로가 많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타 없어져 1차원(직선)의 새 도로를 만들 여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초토화(焦土化)의 초(焦)는 불에 타는 것, 그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수해를 당한 곳도 초토화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문장의 묘(妙)를 샘물의 따뜻함, 불의 차가움, 돌의 결록, 쇠의 지남철과 같다고 본 동계(東谿) 조귀명(趙龜命; 1693 - 1737) 이상의 수사법인가 할 수 있겠지만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단어를 쓰는 것이라 보는 게 맞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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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낭(䧻囊)폭포라고 하면 어리둥절 하겠다. ()은 비둘기를 의미하는 한자다. 비둘기를 뜻하는 한자로 구()가 있다. 전서구(傳書鳩)란 말에 쓰인다. ()은 낯설지만 비둘기를 뜻하는 쉬운 글자다. 유득공의 '발합경(鵓䧻經)'이란 책이 있다. 은 집 비둘기 발이고, 은 비둘기 합이다.

 

흥미로운 점은 비둘기에 관한 책에 경()이란 글을 붙인 것이다. '장자(莊子)'에서 소잡는 일 즉 해우(解牛)하는 포정(庖丁)이란 사람의 행위가 기()가 아닌 도()에 견주어진 것을 연상하게 한다.

 

비둘기낭 폭포를 두고 이러니 저러니 하고 말았다. 비둘기 주머니 폭포라 하면 길고 합낭 폭포라 하면 뜻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합()이란 말보다 훨씬 익숙한 재인이란 말도 한자로 표기(才人)하지 않으니 묻는 사람이 있다.

 

才人으로 표기할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재인(才人)이라 해도 물을 사람은 있을 테다. 주머니를 뜻하는 글자로 포()가 있다. 주머니뿐 아니라 꾸러미, 보따리, 봉지 등도 뜻한다.


그러니 합포폭포가 어떨까? *~포란 형태로 인해 비둘기낭 폭포보다 훨씬 리듬감이 있다. 설명이 필요한가? 비둘기낭 폭포라 해도 연원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이름이든 누군가 지은 것이다.

 

나라면 합포폭포라 이름지었을 것이다. 아니면 발음 편하게 발포폭포(鵓包瀑布)라 했든지재인(才人)폭포도 재인이 백정(白丁)과 통하는 말이니 백정과 하나의 뜻을 공유하는 '장자(莊子)'에 나오는 포정(庖丁)을 써서 포정 폭포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경우 포* ~포 형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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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찾아간 양연로의 한 식당 인근에 조선시대 왕족의 무덤(묘; 墓)이 있다. 이 식당 인근에는 사랑교(沙浪橋)란 다리가 있다. 고운 모래톱 어귀에 있어 불린 사랑이란 예쁜 이름에 걸맞게 사랑교란 이름도 느낌이 좋다. 그럼 사(沙)와 사(砂)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한 신문에 의하면 사(沙)는 개울이나 강가에 있는 가는 모래, 사(砂)는 물가 이외의 곳에 있는 조금 거친 모래다.

 

사전은 사(砂)를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혈(穴) 주위의 형세로 설명했고 한 책은 사신사(四神砂)를 인간과 인간 이외의 영역 또는 삶과 죽음의 영역으로 구분되는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의 경계로 설명해놓았다. 사신사란 다름 아닌 청룡(좌), 백호(우), 주작(전), 현무(후)를 말한다. 물론 나는 풍수를 명당(明堂)에 묘를 쓰고 그로 인해 자손이 복을 받는 것을 의미하는 발복(發福)의 개념으로 대하지 않는다. 내가 보는 풍수란 근대 이전의 전통사회인들이 공간을 대하던 방책(方策)이다.

 

그나저나 앞에서 말한 묘를 직접 찾아가야겠다. 연천 답사길을 계획하고 있는 나는 지난해 읽은 ‘왕들의 길, 다산의 꿈’을 다시 펼쳐보았다. ‘조선 진경 남양주’라는 부제를 가진 책이다. 가끔 생각하는 바이지만 연천에는 조선 왕릉만 없을뿐 있을 것은 다 있다. 지질공원과 고인돌까지 있는 등 다양함면에서 남양주에 뒤지지 않는다. 연천에 조선왕릉은 없지만 군(君)의 묘는 있다. 낙선군 묘가 대표적이다. 다만 방치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

 

어떻든 남양주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을 떠올리게 한다면 연천은 미수(眉叟) 허목(許穆)을 떠올리게 한다. 남양주는 조선 진경(眞景)이란 말에 잘 맞는 곳이다.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광릉(光陵),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의 사릉(思陵), 조선 최초의 황제 릉인 홍릉(洪陵), 광해군 묘, 세종 시대의 천재 천문학자 이순지의 묘, 성종 어머니 소혜왕후 한씨의 오빠 한확의 묘 등이 있는 남양주는 조선 박물관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연천은 삼국, 고려, 조선 등 다양한 시대의 유적이 풍성하고 앞에 썼듯 지질공원과 고인돌까지 있다. 남양주에 수종사, 봉선사가 있다면 연천에는 오봉사, 원심원사가 있다. 남양주의 두 절이 조선사와 관련된 곳이라면 연천의 두 절은 항일독립운동과 관련된 곳이어서 의미가 깊다. 남양주에는 지난해 5월 개관한 정약용 도서관, 12월 개관한 이석영 도서관이 있다. 연천은 조선 말이나 근대에 활약한 인물의 이름을 내세워 만들 도서관이 없는 듯 하다.

 

그럼에도 나는 연천의 가치는 어느 곳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생각인지 모르나 연천 당포성을 천문대로 활용할 방법은 없을까 궁금해진다. 심재철 등이 쓴 ‘오늘의 천체관측’에 이런 구절이 있다. ”광해(光害)가 적고 하늘이 넓고 대기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조건을 충족하는 지역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 조건을 충족하는 장소를 찾기 어렵다.“,

 

”롯데월드타워의 전망대는 해발고도 500미터로 서울에서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다. 평지에서는 눈에 담을 수 있는 지평선까지의 거리가 5lm 정도인데 500미터 높이의 전망대에서는 약 80km까지 보인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높이 올라갈수록 멀리까지 보이는 것이다. 날씨가 맑은 날에 전망대에 서면 사방으로 트인 서울 풍경은 물론 인천 앞바다의 수평선까지 보인다.“

 

연천에서 가장 높은 고대산은 830미터가 넘는다. 작년 11월 간 영월의 별마루 천문대는 높이가 790여미터다. 이 높이가 시민 천문대로는 최적이다. 지난 해 몇 차례 360여미터의 철원 소이산에 올라갔었다. 맑은 날 소이산 높이에서 어디까지 육안으로 볼 수 있을까? 연천 용암대지를 만든 북한 강원도 평강군 오리산은 소이산에서 직선거리로 7km라고 한다.

 

지금 천체관측에 관한 책을 읽는 이유는 당연히 별에 대해 알기 위해서이고 연천에 대해 총체적 시각을 지니기 위해서이다. 열심히 학습해야 할 것이 하나 추가된 셈이다. 내년부터는 임진강 주상절리, 당포성, 물문화관 등도 해설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곳들 말고 차탄천 주상절리, 연강나룻길 등 익숙하지 않은 곳들을 공부해야 하고 두루미도 공부해야 한다. 주자(朱子)와 노론의 송시열을 모신 임장(臨)서원, 미강(湄江)서원(터)도 둘러보아야 한다. 일정이 빡빡하지만 할 것들이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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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0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21-12-20 18:44   좋아요 0 | URL
네.. 그러시군요. 반갑습니다.. 연천 돌아보며 의미 있는 것 건질 수 있도록 할 게요. 말씀하신 묘 부분도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근 내 주위에 생태(生態)를 입에 올리며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 하지만 그들은 대체로 반생태적이다. 사람과 사회를 이용가능성의 관점으로만 대한다. 그들은 지나치게 지엽적이고 개체적 앎을 얻는데 몰두한다. 액세서리 같은 지식을 주렁주렁 단 채 사회 차원에서의 실천이나 자기성찰에는 별 관심도 없다. 생태 지식 과소비자들이다. 생태를 말할 때와는 너무 다르게 일상에서는 삼라만상을 고립적으로 바라본다. 대단히 부조화스럽다. 삶과 지식이 겉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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