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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22년 1월 28일)은 제가 이틀째 강화도(江華島) 투어를 다녀온 날입니다. 덕진진(德津鎭)의 공조루(拱潮樓), 광성보(廣城堡)의 안해루(按海樓)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공조루는 바닷물이 팔짱을 낀 모습으로 돌아드는 곳을 볼 수 있는 누각이라는 이름으로 해석됩니다.(拱; 팔짱낄 공) 안해루는 바닷물을 어루만지는 곳의 누각이라는 의미로 보입니다. 상당히 문학적인 표현입니다.(按; 누를 안, 안마할 안)

 

공조루는 표현이 문학적일뿐 아니라 바닷물이 8자로 돌아드는 형국이 연출되기에 이름과도 어울리는 것 같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안내판에 의하면 보(堡)는 일정 규모를 가진 부대 단위나 지휘소를 말합니다. 병사 주둔지, 창고 등도 포함됩니다. 돈대(墩臺)는 경사면을 절토(切土; 흙을 깎아내림)하거나 성토(盛土: 흙을 쌓음)하여 얻은 계단 모양의 평탄지를 옹벽으로 받친 방위시설을 말합니다.

 

용진진(龍津鎭)의 참경루(斬鯨樓)는 고래를 벤다(잡는다)는 의미의 누각입니다. 고래는 조선을 함락시켰던 청나라를 의미합니다. 석모도(席母島), 보문사(普門寺), 마니산(摩尼山) 참성단(塹星壇) 등은 처음 가보는 곳이어서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성곽에서 물이 흘러내리도록 홈을 판 돌을 의미하는 누조석(漏槽石)을 보고 조선 궁궐을 오래 해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떠올렸습니다.(槽; 구유 조) 드넓게 탁 트인 서해의 수평선을 보고 700여 미터의 김포 강화 해협을 보니 감회가 특별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지 못한 교동도(喬桐島)를 언제 가볼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14번째로 큰 교동도는 연산군이 왕 자리에서 내려와 유배를 간 곳으로 유명합니다. 구름에 뜬 섬이라는 의미의 대운도(戴雲島)가 원래 이름이었습니다. 현재의 이름인 교동도의 교는 높을 교자입니다. 구름에 떴으니(높이 있는 것이기에) 높을 교자를 썼을 것입니다.

 

재인폭포 근무 후 박대표님을 뵈었습니다.(2022년 1월 29일) 로드맵과 비전을 제시하는 특유의 위의(威儀; 무게가 있어 공경할 만한 거동, 예법에 맞는 몸가짐)에 고개만 끄덕이던 저는 두 가지의 맞장구를 쳤습니다.

 

1) 지성인은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이리로도 저리로도 치우치지 않고 두 가지를 포용할 수 있는 경계에 자리한다는 말씀에 저는 중국 전국 시대의 철학자 장자(莊子)의 도추(道樞)라는 말을 했습니다. 도추는 도의 지도리(경첩)란 말로 ”이 지도리에 섰을 때 어떤 것들의 상대성이 보이고 그것들을 평등하게 대할 수 있다. 어떤 능선도 아닌 산의 정상에 섰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산의 여러 능선들(해법들)을 함께 볼 수 있는 것이다.“란 말입니다.

 

2) ‘강화도 서편의 고려산 산자락에 심도학사(尋道學舍)라는 수행센터가 있습니다. 이 센터의 주인인 종교학자가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는 책을 썼습니다. 우리의 가치관을 뒷받침하는 제목이고 글이지요.’ 이 말에 대표님은 (부끄럽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평생 공부한 것을 실천해 지식인을 넘어서는 지성인이 되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강화 고려산에 올라 서해를 내려다본 것이 지난 2013년입니다. 이때 마음에 품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저 작은, 구체적이지 않은 생각이지만 내가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란 생각이었습니다. 이제 그 생각을 본격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시간 앞에 선 것 같습니다.

 

”과장된 평가로 들뜨게 하여 이미 나이 든 나를 빠리로 유혹하고, 논문지도 교수와 그곳 작가들을 소개해주고 고통스럽지만 보람 있는 지적 방랑의 길로 이끌어주셨던 교수 겸 문학평론가 고(故) 알베레스 선생님을 생각하면서“란 글로 ‘다시 찾은 빠리 수첩’이란 책의 머리 부분을 장식한 시인겸 철학자, 프랑스 문학자 박이문 교수가 생각납니다. 이 분의 고백은 그대로 제 고백이기도 합니다. 어렵고 생소한 공부의 길에 함께 해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셔서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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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강화 평화 시민 연대 회원분들께 재인폭포 해설을 한 지난 18일은 작은 이정표 하나가 세워진 날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날 해설은 의뢰는 1주일 전에 받았지만 수술(19)을 하루 앞둔 18일 아침 820분 서초구의 서울 성모병원에 도착해 코로나 검사를 받고 서둘러 돌아오는 길에 잠시 구상을 하고 한 해설이었다.

 

이날 해설에서는 강화, 김포 분들을 고려해 김포 - 강화 해협 이야기와 몽골군의 고려 수도인 강화도 공격(1236), 몽골 군사와 혼연일체가 되어 극대화된 전투능력을 보인 몽골 말, 소 한 마리를 잡아 가루를 내어 양의 오줌보에 담으면 부피가 크지 않지만 한 병사의 1년치 식량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그들이 강화도를 함락시키지 못한 이야기 등을 했다.(내 해설을 들은 분들은 15분 이상의 강화 분들과 한 분의 김포 분이었다.)

 

이 점이 남다른 점이었다. 즉 재인폭포든 베개용암이든 연천의 지질명소만 이야기하던 관례를 지양하고 관심을 끌기 위해 또는 예우 차원에서 연천 이야기 사이 사이에 방문객들의 고향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제가 서울에서 문화 해설을 하고 전국을 돌아다님에도 어떤 곳에 대해서도 부러움을 느끼지 않지만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할 강화도에 대해서는 부러움을 느낀다는 말을 했다.

 

주목할 부분은 더 있다. 주차장 옆의 프롬나드(걷기) 조형물을 보며 직립의 중요성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 뒤 연천과 강화, 김포의 공통점인 DMZ 접경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구석기인들이 살고 있는데 용암이 덮쳐온 것인지, 아니면 용암이 지나간 뒤 구석기인들이 정착한 것인지 물으며 걷기의 중요성에 대해 한 번 더 강조했다. 짐승의 발자국을 의미하는 자귀라는 말과 짐승을 잡기 위해 그들의 발자국을 쫓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자귀 짚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사실 프롬나드 조형물을 보며 이 말을 하려 했었다. 구석기인들이 자귀 짚을 때 살금살금 걸었을까요, 아니면 직립한 사람들이었으니 넓고 힘차게 걸음을 떼어놓았을까요?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덧붙일 말은 청나라가 침략해온 병자호란(1636년 이후) 당시 강화도의 군사들은 고려 당시의 몽골군을 생각하며 자만했다는 말이다.

 

청나라는 투항해온 명나라 수군을 대거 동원했고 홍이포(紅夷砲)라는 장거리 대포가 있었다. 또한 고려 당시 힘을 발휘했던 성곽들이 형편 없이 무너진 탓도 있었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조선은 패했다.

 

강화에는 조선이 청나라에 함락되자 강화산성 남문루 위에 화약을 쌓아놓고 불을 붙여 순국한 김상용 선생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든 김상용 순절비도 있다.(김상용은 병자호란 패전으로 청나라로 끌려가며 가노라 산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란 시조를 지은 김상헌의 형이다.) 강화도는 지주들의 폭압적 수탈 사례와 소작쟁의 등이 없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개인적으로 고려산에 올라 서해 바다를 내려본 지난 2013년 이후 9년만에, 그리고 강화 스토리 워크 행사에 참여해 성공회 성당, 고려궁지, 철종의 잠저인 용흥궁, 조양방직 등을 둘러본 지 3년만에 다시 강화도를 밟게 되었다.(고려산에 올라 서해를 바라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9년전 일이라니 놀랍다.) 2013, 2019년 모두 좋았지만 이번에는 투어란 이름의 공부여서 마음 가짐이 다르다. 함께 하는 분들이 있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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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가 만들어내는 수 없이 많은 갈등과 불협화음 등을 보며 중성미자(뉴트리노)를 떠올린다. 레너드 서스킨드가 거의 보이지 않는 입자라 표현한 중성미자는 수광년의 두께에 해당하는 납을 궤도를 휘게 함 없이 통과할 수 있으나 완전히 무(無)가 아닌 입자(레너드 서스킨드 지음 ‘우주의 풍경’ 9, 87 페이지)다.

 

그들은 약한 핵력이라는 밋밋한 이름의 상호작용만 하며(리사 랜들 지음 ‘천국의 문들 두드리며’ 177 페이지) 양성자 지름의 1/ 1,000 정도의 엄청나게 짧은 영역에서만 작용한다.(레너드 서스킨드 지음 ‘우주의 풍경’ 289 페이지)

 

그들은 아주 미미(微微)한 존재여서 1백억 개가 우리 몸을 통과해가도 아무런 느낌도 갖지 못하게 하지만 태양이 빛을 내게 하는 수소핵융합 반응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김제완 지음 ‘겨우 존재하는 것들’ 22 페이지) 우리가 뉴트리노 같은 존재 양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우리에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는 있다. 우리는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며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 당위를 가진 존재들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디뎌야 할 첫 걸음은 아집과 어리석음에 빠진 실존의 부끄러움을 바로 보고 고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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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가을 입사 2년차인 30세의 A씨가 과로로 인한 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았어요. 고인의 아버지는 좋지도 않은 회사를 그만두게 하지 못한 것을 오열로 토로했고요. '"죽을 만큼 힘들면 회사 그만두지 그래"가 안 되는 이유'란 책이 바로 그런 문제를 다루었지요. A씨는 너무 너무 힘들게 공부 또는 준비해 입사했기에, 2인분의 일을 도맡아 하느라 야근을 밥먹듯 한 열악하고 가혹한 노동조건을 견뎌온 2년간의 시간이 아까워 제 발로 회사를 그만두지 못했을 것이라 보여요.

 

전쟁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을 추슬러야겠지요? 스콜라철학/ 스쿨(학교 또는 학파) 등의 단어에서 비롯된 여가라는 말을 보며 저는 요즘 몇 차례 따라나선 투어 답사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한 줄의 글도 읽지 못한 제 현주소(저질체력)가 여가가 없으면 공부도 없는 현실을 증거한다고 생각합니다. 잠 없이는 의식도 없고 기억도 없다는 것과 차원이 같은 말이지요. 내일은 좋아질 것이라 믿습니다. '죽을 만큼~'이란 책을 언급한 것은 제가 죽을 만큼 힘들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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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滿月)의 반대어는 휴월(虧月)이다. 이지러진 달이란 뜻이다. 절의염퇴(節義廉退) 전패비휴(顚沛匪虧)란 말을 떠올린다. 곤경에 처했을 때에라도 절개와 의리, 염치와 바른 물러남의 덕목을 어그러뜨려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요즘 이 말 만큼 의미심장하게 여겨지는 말은 없다. 휴월은 때가 되면 만월이 된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어긋난 관계는 돌이키기 어렵다. 아름다운 인연을 지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 만남을 이어가는 분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나를 먼저 보는 욕심을 경계하고 우리를 우선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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