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때가 오면 - 존엄사에 대한 스물세 번의 대화
다이앤 렘 지음, 황성원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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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은 공존한다. 삶이 있으면 죽음도 있다. 삶이 시작되면 죽음도 시작된다. 다만 현세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비교적 죽음을 연장할 수 있는 각종 의료시설 및 환경에 놓여있고, 죽음을 온전히 마주하지 않는 사회적 심리로 인해 죽음을 현실적으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근래야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라든지, 고독사와 같은 사회적 현상을 비롯한 여러 죽음의 상황을 목도하게 되면서 더는 죽음을 마냥 묻어둘 수만은 없게 되었다. 우리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언젠가라는 죽음의 ‘때’를 과연 내가 원하는 온전한 시기와 형태로 맞이할 수 있을까.

먹고 싶은 음식을 내 의지대로 먹고, 여행하고 싶은 곳을 내 의지대로 여행하는 것처럼 내가 어떻게 죽고 싶은지도 마찬가지로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령 몸은 덜 아픈 상태로, 편안한 집에서, 내가 마지막까지 마주보고 싶은 이들과 마주하며 눈을 감는 상상을 해 본다.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어떻게 죽을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보기는커녕, 애초에 우리는 성숙하고 안정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마음가짐이나 환경에 있지도 않다. 죽음이라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무력감 때문에 자연히 그렇게 된 것일까.

어쨌든 그런 까닭으로 준비 없이 죽음을 목도하게 되면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그저 막연히 언젠가 죽겠거니, 나중에 되면 다 알아서 되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살다가 말이다. 그래서 아직 죽음이라는 경험에 미숙한 본인으로서도 그저 두려울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는 방법은 되레 죽음을 주제로 한 논의에 관심을 갖고, 생각을 아끼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안락사, 존엄사, 연명의료와 같은 죽음과 얽힌 주제에도 적극적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또한, 죽음을 알아간다는 것은 그 공포를 마주하는 일을 넘어서, 우리 각자의 삶에 대해 돌아보고 개개인의 더욱 의미있고 충만한 삶을 만들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때가 오면>은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를 주는 좋은 책이었다. 이 책은 일찍이 어머니와 남편의 죽음을 마주하고 존엄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저자가, 훗날 다양한 이들을 만나며 그들과 함께 존엄사를 주제로 나눈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질병으로 인한 말기 환자, 그의 가족, 의료 종사자, 종교인, 입법가 등)

이 책의 저자는 존엄사를 찬성하는 의견 및 반대하는 의견 모두 골고루 포용하며, 다가올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꾸릴 것인지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도록 한다.
더불어 어떠한 죽음의 형태가 옳은지 그른지를 섣불리 재단하지 않고, 각자가 놓인 상황과 환경에서 어떻게 삶의 마침표를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다.

*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면 정신적으로 고통이 극심한 이들을 대상으로 안락사를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되면 좋겠다. (안락사는 인위적인 생명 단축 행위로서 존엄사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인 개념이다. 신체적으로 병들고 아픈 경우는 죽음에 이를 수 있지만, 정신적으로만 병들고 아플 때는 죽음에 이를 수 없다. 다만 죽음을 선택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마음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신체적인 고통과 더불어 정신적인 고통도 인정받았으면 싶은 것이다.

삶은 행복할 때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고통스러운 순간이 느껴질 때가 더 많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러한 유형의 안락사는 정말 복잡하고 논란이 될 사안이 분명하니 신중히 접근해야 할 것이다.
본인은 단순히 무조건적인 정신적 고통에 따른 안락사 입법을 위한 목표의 논의를 바라는 것보다는, 우리가 삶을 이야기하는 만큼 거리낌 없이 죽음에 관해서도 이야기함으로써 이른바 죽음에서 삶을 찾는 과정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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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체중 - 크고 뚱뚱한 몸을 둘러싼 사람들의 헛소리
케이트 맨 지음, 이초희 옮김 / 현암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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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걸 줄이고 많이 움직이면 살이 빠진다는 말은, 잠을 줄이고 많이 공부하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확실함을 전제로 말이다.

‘신체는 합리적이지 않다.’ 책의 194페이지의 문장이다. 해당 문장처럼 사람의 신체는 일관적이지 않다. 키, 생김새 등과 같이 살이 찌고 안 찌고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먹어도 삐쩍 마른 사람이 있고, 그 삐쩍 마른 사람보다 덜 먹어도 살찐 사람이 있다. 친구(마른 사람)와 나(살찐 사람)의 이야기다.

그런데도 아직 이런 지방, 특히 비만에 대한 부분에서는 사람의 의지로 바꿀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한다. 사람의 몸은 내부 환경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항상성’이 있다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바뀌지 않으려고 한다는 거다. 그래서 마른 사람이 살찌기 어려운 거고, 살찐 사람은 요요현상을 겪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가? 오히려 제대로 노력하지 않았다고, 의지가 없어 실패한 거라고 변하지 않은 이를 욕하는 게 태반이다. 그 비난은 특히 비만인에게 가혹할 정도다. 비난과 함께 조롱, 특히 혐오는 암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진다.

부끄럽지만 나도 비만 혐오를 한다. 내 몸에 있는 지방을 싹 빼내려고 지방흡입 수술까지 두 번이나 했다. 이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수술 부위를 고민하고 있다. 거울 너머로 내 몸을 보는 게 싫고, 두툼한 살덩이를 부여잡고 이만큼 뜯어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

심지어 공공장소에서 비만해 보이는 사람을 보면 혐오감도 든다. 그런 사람들과 닿으면 다른 사람과 닿는 것보다 더 더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비만이 죄가 될 수 없음에도 그저 비만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 그래서 더더욱 이 책이 좋았다. 이런 태도가 부끄럽고 무례하고 단편적인 편향적 사고라는 걸 자꾸만 알려주기 때문이다.

<비정상체중>은 이렇듯 우리의 비만 혐오가 당연해진 이유와 비만혐오를 공고히 하는 사회적 구조를 파고드는 책이다. 건강 걱정을 빙자한 조롱적 품평을 저격하는 책이기도 하다. 건강과 비만에 대한 상관관계에 관해서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책의 저자는 비만인이며 철학자이다. 저자의 내밀한 경험과 섬세하고 정교한 글의 정리, 여러 주제 관련 사례를 통해 비만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비만 혐오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책이라 깊이 있게 읽었다. 무엇보다 비만 혐오는 개인의 편향된 태도가 아니라, 비만인과 비만인을 벗어나려는 이에게 ‘구조적’으로 폭력을 주는 하나의 현상이며 이 현상이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밀접하게 알 수 있었다.

이를테면, 비만인은 둔하거나, 게으르거나, 의지가 없고, 신뢰가 떨어지는 등 사회에서 제 기능을 제대로 못 하는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대놓고가 아니더라도 은연중이라도 말이다. 온라인에서는 어떤가? 무자비하게 쏘아대는 화살처럼 비만인에게 비난을 퍼붓는다. 거기에 반응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단연코 비만인에 대한 조롱이다. 불만이면 살을 빼라는 식이다.

바꾸기 어려운 것에 대한 수용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너그러운 시각을 갖는 것이 더 이로운 사회일까, 획일적인 것을 만들기 위해 몸에 해로운 약을 쓰고 칼을 대는 게 더 이로운 사회일까.
보이는 것에서만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보이는 것에 치중해서 놓치고 있는 수많은 가치가 더 많지는 않을까.
전반적으로 외적인 부분을 신경 쓰느라 극심한 고통을 받는 한국인에게 특히 와닿을 책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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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파랑 - 성우 남도형, 목소리로 세상을 물들이다
남도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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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성우라는 직업에 꿈을 갖고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목소리 좋다는 말을 자주 듣다 보니 우쭐해서 나 혼자 만화를 보거나 게임을 할 때 캐릭터에 빙의해서 재미나게 연기하며 놀곤 했었다.

‘넌 꼭 성우를 해야겠다!’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어서 내가 가야 할 길은 목소리를 쓰는 일을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거 새내기 시절에 대학교 성우 동아리에 참가한 적도 있었다. 어찌저찌 지금은 책 만드는 길로 관심이 바뀌어 그쪽을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비록 이렇게 성우라는 길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더라도, 언젠간 다른 일에서도 내 목소리를 쓰는 일을 융합해 보고 싶은 생각이다.
여하튼 이런 맥락에서 이 책 <인생은 파랑>은 내가 예전에 꿈꿨던 성우라는 직업을 향한 열정을 상기해 주었다.

이 책은 페어리 테일 나츠, 미라큘러스 블랙캣, 미키마우스 미키, 원피스 사보, 메이플 호영, 링피트 링, 쿠키런 킹덤 마들렌맛 쿠키, 체인소맨 덴지 등 애니와 게임 등 다양한 한국 더빙 분야에서 열연을 펼친 성우 남도형님의 에세이다.

그가 최연소 KBS 성우가 되기까지의 일화, 성우가 되고 난 이후 다양한 시련을 통한 성장 과정, 유튜브 ‘남도형의 블루클럽’의 창설부터 실버버튼을 받기까지 등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동안 남도형님이 스스로 마주하며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그의 멋진 가치관을 살펴볼 수 있었다.

성우 남도형이라는 것을 넘어, 인간 남도형의 면모도 함께 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남도형님은 글에서도, 목소리에서도 그가 가진 따스한 심성과 열정이 잘 드러나는 사람인 것 같다.

더불어 에너제틱하고 선한 영향력을 통해 성우라는 직업을 빛냄과 동시에, 성우라는 직업을 중심으로 다방면에서 창조적인 크리에이터의 면모를 뻗어갈 수 있다는 걸 앞장서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다.

매 순간 절실하게 열정적으로 자신과 꿈과 커리어를 지키고 확장해가는 그의 모습을 통해, 나의 꿈과 커리어를 키우고자 하는 열정도 함께 자라난 것만 같다.

앞으로 더욱 무궁무진하게 확장될 그의 파랑의 세계가 기대된다. 초판으로 이 책을 읽고 소장하게 되어 기쁘다. 삶에 에너지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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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해방 - 치매, 암, 당뇨, 심장병과 노화를 피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
피터 아티아.빌 기퍼드 지음, 이한음 옮김 / 부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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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더라도 덜 아프게 오래 살고 싶은 마음에 가제본 서평단을 신청해서 읽어보게 된 부키 출판사 신간 ‘질병해방’. 목차는 총 17장으로, 전체 분량은 700쪽이 훌쩍 넘는 방대한 양이다.

이 책은 암, 당뇨, 치매, 심장병과 같은 질병을 목차마다 나누어 정리했고 이외에 만성통증, 영양, 수면, 정서 건강과 같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대다수의 건강과 질병 문제를 다룬다.

가제본을 받는 독자는 암, 당뇨, 치매, 심장병 중 하나를 무작위로 받게 되는데 나는 심장병을 받았다.
대략 읽어보고 느낀 점은 심장병이 유독 무서운 질병이라는 것이었는데, 그 까닭은 돌연히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심장병과 연관된 심혈관 질환으로 미국에서만 매일 2,300명씩 사망에 이른다고 한다. 놀라웠던 부분은 여성이라면 유방암으로 죽는 것보다 이런 심혈관 질환으로 죽는 경우가 최대 10배는 더 높다는 것이다.

가장 충격적인 점은 겉으로 건강해 보일지라도 심장 문제가 10대 초반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시한폭탄처럼 초가 줄어들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러 펑 하고 터져 돌연사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 이러한 심장병의 발병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늦추거나 멈출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꼼꼼히 숙지하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이는 다른 목차의 질병을 다룬 내용에서도 동일할 것 같다.
더불어 심장병 예방을 위해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해야 하고, 우리 몸의 어떤 수치에 변화를 주어야 하는지 체계적인 예시와 설명이 함께하고 있으므로 점진적인 이해 과정에도 도움이 됐다.

우리가 병을 방어할 수 있는 최선의 범위까지를 현실적으로 알려주는 책이라 좋았다.
이미 시장에는 건강에 관한 책이 정말 많이 나와 있지만, 개인적으로 두툼한 분량과 전문적인 느낌에 더 호감이 간다고 느꼈던 책이다.

정식 출간 정보가 궁금해서 조금 더 알아본 결과, 부키 출판사 인스타그램에 따르면 우수한 이력이 많은 책이다. 이력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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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55주 1위 베스트셀러

출간 12개월 150만부 돌파, 전세계 35개국 출간

기업가, 과학자, 교수, 배우, 월스트리트저널, 가디언, 워싱턴포스트 등 저명한 인물과 기관의 폭발적인 찬사와 추천사

*

원서 제목은 ‘outlive’. 좋은 책이 좋은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기쁘다.

요즘 하루하루 살아보며 부쩍 느끼길, 건강은 개인에게 정말 중요한 자산 중 하나라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아직 젊다고 조심성 없이 내 몸을 막 써왔다가 깊이 깨닫게 됐다.

그래도 나름 영양제도 잘 챙겨먹고 건강에 관한 책도 조금씩 펼쳐보고 있다. 앞으로 내 몸은 녹슬고 더 망가질 일만 남았지만, 잘 가꿔서 오래오래 잘 써야지.

이 다짐을 잊고 다시금 몸을 막 쓸 때마다 건강 바이블로써 항시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 정식 출간을 기대해본다.

PS. 별개로 음식 콜레스테롤과 신체 콜레스테롤의 연관성이 크게 없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안심하고 적당히 맛있게 먹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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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피로한가 - 제로섬게임과 피로감수성
김정희 외 지음 / 르몽드코리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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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한 경제발전, 무한경쟁, 성과주의, 비교문화 등 한국인이 피로한 이유는 이미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에 대한 해법 또한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다만 해법을 알고 있음에도 그 누구도 앞서 해결하려 들지 않고, 그저 동화처럼 이상적인 이야기로만 남겨둘 뿐이다.

이 책도 그렇게 우리들이 이미 아는 이야기를 담은 ‘그저 그런’ 피로에 대한 이야기와 대부분이 아는 해법에 관한 이야기일 뿐인가 싶었지만, 그런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결을 지닌 책이었다.

피로를 이야기하는 책이지만, 읽는 독자가 피로를 덜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우리에게 놓인 피로한 상황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면 좋을지 제시함으로써 ‘또 다른 피로’를 주는 것이 아닌, ‘단지 있는 그대로의 피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따른 감상은 독자 저마다의 입장에 맡겼다.

그러니 아홉 작가가 말하는 아홉 편의 피로를 주제로 한 글에 어떤 감정과 생각이 일든, 그건 독자의 몫이 되었다. 결론에 ‘정답’이 없는 글들이라 여유롭게 유영하듯 ‘책멍’을 할 수 있었다고 느낀다.

책은 한 손에 가볍게 쏙 잡히고 의외로 얇다. 처음엔 책 두께가 꽤 두껍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수많은 활자에 이미 잔뜩 피로한 독자를 위한 배려일까. 필요한 최소한의 활자만 담백하게 담겨있다.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글은 시지프스 2023였다. (36P부터 45P까지.) 고대 그리스 신화의 인물 시지프스는 큰 바위를 짊어지고 산 정상에 오르지만, 이내 그 바위는 정상에서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그럼 몇 번이고 그 바위를 다시 짊어지러 왔다갔다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인데, 끔찍하게 반복적이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신의 형벌이다.
그러나 알베르 카뮈는 이러한 시지프스의 모습을 신의 형벌에 대한 저항,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자 하는 인간상의 모습으로 보았다. (이 글을 읽고 도서관에서 알베르 카뮈 작품을 싹 대여했다. 시지프 신화는 꼭 읽어 봐야지.)

시지프스의 모습은 지루한 일상과 하기 싫은 일을 감내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네의 모습이다. 이렇듯 시지프스의 이야기를 끌어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 투영하여 글을 이어가는 방식이 재미있어서 인상 깊이 읽혔다고 느낀다.

비록 나는 오늘도 피곤하고, 내일도, 그 모레도 피곤할 예정이지만 그럼에도 피로를 주제로 한 다양한 글을 읽어보며, ‘나만이 피로한 건 아니야’라는 자그마한 위로 내지 격려를 받을 수 있었다.

무겁게 읽고 씹어 삼켜야만 하는 피로한 독서만 하던 와중에, 과자처럼 맛있고 가볍게 오독오독 씹어 넘기는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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