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 가장 나답게 사는 길은 무엇일까?, 개정판
파커 J. 파머 지음, 홍윤주 옮김 / 한문화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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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711166322

 

  우리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살아갈 때가 많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나의 참모습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이 바쁘기도 하다. 진로를 결정해야 할 학생들은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으로 보다 높은 가치를 지니는 것을 지향하도록 강요받는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는 유독 대학을 졸업한 후 자신의 전공과 상관없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대학 4년을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과목들을 배우며 어떤 의미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건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참모습을 일찍 깨닫고진로를 결정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행복한 청장년의 시기를 보낼 수 있다. 학생들의 경우 한가하게 홀로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래야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시도해볼 수 있기 떄문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아이들은 그런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다. 학원을 전전하거나, 스마트폰으로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고등학생은 나는 이미 늦었어.’하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늦었음을 알았을 때가 자신의 남은 인생 중 시도하기에 가장 빠른 시기라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거나, 남의 꿈이 내 꿈이 되어버리지는 않는지 학생들도 항상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추워서 맞기 싫어도 매년 다가오는 겨울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맞닥뜨린다. 그럴 때마다 두려워 숨기만 한다면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겨울이 와야 한다면 과감히 그 겨울 속으로 뛰어 들어가라고 저자는 말한다.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대담하게 어려움에 맞선다면 이후 오히려 남은 인생의 자양분으로 삼을 수도 있다. 조금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진로를 결정해야 할 아이들에게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 우리 안의 참자아는 침범을 당하면 우리에게 저항할 것이다. 진실을 인정할 때까지 때로는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면서 우리 인생을 방해할 것이다. 소명은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듣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는 인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그 참모습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참모습이 내가 원하는 인생의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 인생은 내 의도가 아무리 진지하다 할지라도 결코 참된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15-16쪽)



- 사회제도는 종종 사람들에게 진실하지 못한 삶의 방식을 강요하려 든다. 가난한 자여, 빵 반쪽이라도 감사하게 받아들여라. 흑인이여, 저항하지 말고 인종차별을 그냥 당해라. 동성연애자여, 내색하지 말고 아닌 척 그냥 살아라. 이런 상황에서 자기의 진실을 감추라는 유혹에 빠져들기란 얼마나 쉬운가. 그러지 않았을 때 뒤따라오는 사회제도적 불이익은 또 얼마나 큰가.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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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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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710576159

 

  헤밍웨이가 마지막으로 남긴 위대한 작품 <<노인과 바다>>를 아주 오래 전에 읽었었는데 이번에 헤밍웨이의 글쓰기 책을 읽으며 생각나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이 소설의 바로 앞 작품은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나오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그의 살아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 책의 이야기는 정말 단순합니다. 평생을 어부로 살아온 한 노인과 이웃 소년의 우정으로 시작된 내용은 오랫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했던 노인의 청새치 잡이 이야기로 옮아갑니다.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 미끼를 문 청새치를 놓치지 않으려고 낮밤을 고군분투하는 장면, 그리고 잡은 고기를 상어들에게 빼앗기고 뼈와 머리만 남은 채 마을로 돌아오는 장면이 다입니다. 하지만 읽는 동안 작가의 문장들을 통해 그의 매력에 빠져들게 됩니다.

 

  건조한 듯 적어 내려간 문체 속에는 작가의 인생관이 그대로 스며 있습니다. 평소에 낚시를 비롯한 와일드한 일들을 즐겼다는 그는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는 작품들을 남기게 됩니다. <<노인과 바다>>도 굉장히 남성스러운 내용입니다. 바다 사나이는 나이가 들어도 바다 사나이입니다.

  ​쿠바의 하바나는 작가가 자신의 배를 끌고 즐겨 물고기를 잡으러 갔던 곳입니다. 그는 그의 집에 잠시 머물렀던 작가 지망생에게 자신이 쿠바에 대한 글을 쓰기가 더 유리할 거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쿠바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많은 경험을 하고, 그것을 고스란히 작품으로 남긴 그를 보면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습니다. 작가의 필요요건 중 하나가 ‘불우한 어린 시절이라는 글을 본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일은 글의 소재가 될 수 있겠지요?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으면서 5년 동안 그가 갈고 닦아 발표한 이 소설에는 아마도 그동안 그가 느꼈던 고통마저도 스며있지 않을까 합니다.

    

  행운을 위해 애를 쓰고 다 얻은 것 같지만 결국은 뼈만 앙상하게 남아 돌아오는 여정이 어쩌면 우리의 인생과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육체적, 정신적 병으로 인해 생을 마감했던 작가의 마지막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이 남아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니 문학의 힘에 다시 한 번 놀랍니다.

- "푹 쉬어라, 작은 새야." 그는 말했다. "그러고 나서 돌아가 꿋꿋하게 도전하며 너답게 살아, 사람이든 새든 물고기든 모두 그렇듯이 말이다." 밤사이 뻣뻣해진 등이 이제는 심하게 쑤시며 아팠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이야기하는 것이 그에겐 위로가 되었다. (57쪽)



- 놈이 좀 잤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나도 사자 꿈을 꾸며 잘 수 있을 텐데, 노인은 생각했다. 왜 난 사자들만 자주 떠오르는 걸까? 이보게, 늙은이, 생각 같은 건 하지 말게나. 그는 자신을 타일렀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저 뱃머리 판자에 기대어 가만히 쉬게나. 놈은 지금 움직이며 힘을 쓰고 있네. 그러니 자넨 가능한 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게. (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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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글쓰기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이혜경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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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707160465

 

  얼마 전 헤밍웨이와 1년간 지내며 겪은 이야기를 쓴 <<헤밍웨이의 작가수업>>이라는 책을 읽고 이웃 분이 이 책을 권해 주셨다. 사실 이 책을 먼저 읽고 싶었는데 헌책이 무척이나 비싸 못 샀다가 잊고 있었다가 이번에 다시 들어가 보니 헌책이 많이 나와 가격도 저렴해서 하나 구입했다. 글쓰기 책은 두고두고 여러 번 읽으며 글 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주로 헌책으로라도 구입하는 편이다.

 

  이 책은 헤밍웨이가 여러 책에서 언급한 글쓰기 관련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지인들과의 편지 내용도 함께 있었는데 여러 글을 모아 분야에 따라 나누어 다시 묶은 것이라 내용이 이어지지 않아 단편적이긴 하지만 작가의 숨결이 그대로 남아 있는 멋진 내용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가 글을 쓰는 장면을 스스로 묘사한 부분이다. 카페에서, 강가에서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어디서든 글을 썼던 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잘 쓴 건 아니었을 것이다. 어떻게 소설 한 권을 완성할 수 있을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업이 느렸다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그는 집중했고, 꾸준히 글을 썼다. 그 노력의 결과가 세월을 이어오는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이다.

 

  1인칭으로 글을 쓰면 읽는 사람이 작가가 직접 겪은 일로 착각할 수 있으며 대리경험을 할 수 있다는 글을 읽으며 1인칭으로 다시 써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제주도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 제주도 관련 글을 썼다는 걸 들으며 놀랐다. 작가는 자신이 겪지 않아도 겪은 것처럼 쓸 수 있어야 하나보다. 그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취재와 상상을 했을지 생각만 해도 그 노력의 두터움을 알 수 있었다. 모든 경험을 다 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을 조금은 떨칠 수 있었다. 앞 책에서 한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상상해 보라는 헤밍웨이의 말이 생각난다. 그래, 상상하자.

 

 

- 내 글을 모두 짧게 자르고 장식적인 요소들을 모두 없앤 다음, 묘사가 아니라 문장을 만들려고 한 후부터 글쓰기가 아주 멋진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어떻게 소설처럼 긴 글을 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 문단을 완성하기 위해 오전 내내 작업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33쪽)



- 글쓰기와 여행은 정신을 아니 적어도 몸은 건강하게 하지요. 그래서 저는 서서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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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창비세계문학 11
알베르 카뮈 지음, 유영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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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706006958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중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마음속에는 질투가 솟구치지만 겉으로 진심으로 축하하듯 말하고, 불행의 끝자락에서 나는 행복하다스스로 외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친절한 사람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야비하고 악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이 아닐까?

 

  이 책은 독특하다 인간이 지닌 양면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등장인물이 상대방(혹은 관객)에게 들려주는 독백, 모노드라마의 형식을 띤다. 자신이 젊었을 당시 얼마나 잘나갔는지, 그의 인생을 바꾸는 하나의 사건 이후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무대를 바꿔 가며 이야기한다. 빠리의 변호사인 독자는 그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어준다. 아마도 지금은 나이 들고 가난한 사람으로 전락했지만 오히려 죽음마저도 담담히 받아들인다. 잘나가던 당시에 자신이 얼마나 이중적인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하며 인간이 지닌 이중성과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인문학 모임에서 이번 달 도서로 정한 <<전락>>은 두 명의 저자가 있었는데 까뮈의 책을 읽기로 해 놓고 잊고선 필립 로스의 책을 빌려 먼저 읽었다. 중간에 이상한 내용이 나올 때 낌새를 차렸어야 했는데 그 책을 다 읽고도 한참 후에야 또 하나의 <<전락>>을 읽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쨌든 덕분에 두 책을 읽고 비교해볼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두 책 모두 잘나가던 젊은 시절과 나이 들어 병든 노년의 삶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부유하고 명성 있던 젊은 시절에 비하면 그야말로 전락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시기가 정말 전락일까? 젊고 당당하던 시절 가졌던 속물적 이중성 자체가 혹시 전락이 아니었을까? 겉으로 보이는 전락과 자기 스스로 느끼는 전락은 같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명성을 잃은 것이 단지 전락은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스스로 알고 있는 자아가 떳떳하지 못하다면 스스로 전락한 꼴이다.

 

  인간에 대해 깊이 사색했던 알베르 까뮈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가 내린 결론(죽음마저도 받아들이는 용감한 사람, 그로 인한 스스로의 구원)에는 이견이 수 있겠다.

 

 

- 나는 육체를 향유하도록 만들어진 사람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내 안에서 조화로움과 온화한 통제력을 느꼈고, 가끔 이것이 자신들의 삶에 활력이 된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들 나와 친해지려고 했지요. 가령 사람들은 흔히 초면인 내게 어디선가 꼭 본 것 같은 인상이라고들 했습니다. 삶이, 삶의 존재들과 삶이 주는 선물들이 나를 마중하러 나왔던 겁니다. 나는 너그러운 자부심으로 이런 경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이토록 충만하고 자연스러운 사람으로 살다보니 정말 나 자신이 약간 초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지요.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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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
오가와 나오 지음, 나은정 옮김 / 라이카미(부즈펌)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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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705069474

 

  여러분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어떤 분들에게는 쉴 수 있는 곳, 어떤 분들에게는 또 하나의 일터이자 끊임없이 치워야 하는 곳으로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분들이라면 집이 단순히 휴식을 위한 공간만은 아님을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아이들의 특성상 어지르기 마련이고, 바로바로 치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 아이들의 물건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집은 다시 정돈된 상태로 지속될 수 있습니다.

 

  어느 것이든 마찬가지이겠지만 집도 우리가 정성을 쏟는 만큼 우리에게 보답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커플들이 사는 집은 모두 다르게 생겼지만 집에 살고 있는 사람과 소통한다는 의미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넓은 뜰에 잔뜩 심긴 오래된 나무와 꽃들은 이전 주인부터 내려오는 따스한 온기를 전해줄 것입니다. 새로 페인트칠하고, 바닥을 깔았다면 새 주인과의 신선한 만남이 시작되겠지요?

 

  집을 물건을 보관하고, 씻고 먹는 단순한 것으로만 여긴다면 집도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거기까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집에 정성을 쏟고, 부족한 부분들을 점검하고, 구조를 이리저리 바꾸며 보다 나은 공간으로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면 집도 우리에게 보다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할 것입니다.

 

  이 책에는 단순히 전원주택에 대한 것만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연립주택에서 사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초대해 음식을 나눠먹는 사람에게 작은 연립주택이 그저 누추한 집일 리 없습니다. 너무 많은 돈을 들여 사람들에게 자랑하기보다는 소박하지만 깨끗하고 쾌적한 공간으로, 아이디어가 숨 쉬는 공간으로 만들어 누구에게든 편안함을 줄 수 있다면 최고의 집이 아닐까 합니다.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가족의 삶 자체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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